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존이 때 아닌 성정체성의 고민에 빠져있을 때 셜록은 자신의 방에 가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어제 양껏 마신 피 덕분인지 컨디션은 아주 좋았지만, 셜록의 머릿속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제의 존은-그야말로 섹시했다. 자신의 피를 마시라며 당당하고 결단력 있는 태도로 셔츠의 단추를 끌어내리는 그 모습이며, 정반대로 양순하게 목을 셜록 앞에 얌전히 드러낸 그 모습이며, 쾌감으로 인해 수줍게 신음하는 존의 여러 모습이 셜록의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셜록은 그런 장면이 떠오르는 것을 막으려 고개를 흔들었다.
 존은 친구로서 우정을 베푼 것뿐이라고.
 셜록은 그렇게 속으로 말하며 머리를 차갑게 식히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조금 한가하게 생각할 여유가 나자 바스커빌에서 자신이 폭주했던 일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되엇다. 그 때 존은 동굴로 가보자는 자신의 말에 상당히 의아한 기색이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행동은 자신이 봐도 상당히 어색한 행동이었다. 존이 가보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도 아니었는데 자신이 앞장서서 동굴로 간 셈이 아닌가.
 분석해보자면 자신의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존을 그리로 데리고 가게 된 원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근원적인 부분은 마이크로프트가 손을 대긴 했지만, 훤히 트인 들판에서 존을 덮치는 것의 위험을 인지한 자신의 이성과 존의 피를 마시고야 말겠다는 욕망의 어울리지 않는 이중주로 인해 그 날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한 번으로 끝났다면 좋았을 것을, 이성의 통제가 더이상 듣지 않게 된 그의 다리는 정해진 철로로 움직이는 기차처럼 존의 플랫 앞으로 와버렸고, 어제 자신은 또다시 존의 피를 마셨다.
 허기가 일단 채워지고 나자 다음의 문제가 된 것은 언제나 가진 것보다 더욱 욕심이 생겨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었다. 존이 자신의 아래에서 헐떡거리는 모습이 다시금 생각이 나며 그는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도 하반신이 이렇게 되었던 것을 존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기느라 다소 고충이 있었다. 셜록이 피를 마시면 피를 빨리는 존도 쾌감을 느끼지만 마시는 당사자도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바스커빌의 동굴 안에서는 피를 마시겠다는 욕구에 급급하여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사실이었다.
 존의 피를 마심으로써 유발되는 정욕은 온건하고 잔잔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뼈째 씹어 삼켜도 모자랄 듯한, 격렬한 파랑과도 같이 폭급한 성질의 것이었다. 셜록은 피를 핥아 마시면서도 그의 안으로 침범하고 싶다는, 잔혹하고 이기적인 생각이 드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해야 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침을 한 번 삼켰다. 누워있는 그의 하얀 목울대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는 서둘러서는 안되었다.
 이때의 셜록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이미 존을 어떻게든 손에 넣겠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생각을 마친 그는 온기 없는 침대에서 몸을 훌쩍 일으켜 미련 없는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불빛 한 점 없어 퇴색한 꽃잎의 빛깔처럼 보이는 누르스름한 복도 바닥에 셜록의 호리호리한 그림자가 자리했다가 금방 사라졌다.

 

*

 

 어스름이 진 런던의 어느 외진 골목길 안쪽의 어느 구석에는, 그저 버려진 건물처럼 보이는 한 건물이 있다. 3층과 지하 창고까지 있는 그 건물은 외벽의 칠이 조금 벗겨진 것 외에는 정상이다. 하지만 그 건물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다. 건물이 위치한 지역이 우범 지역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 구역에서 내로라 한다는 양아치들도 그 곳의 말을 들으면 듣지 못한 체를 하며, 심지어는 입에 담는 것도 꺼려한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나 휘돌아갈 것 같은 그 건물에는 그러나 한정된 소수, 그리고 초대받은 몇몇 사람은 꾸준히 드나든다.
 인적이 드묾에도 불구하고 그 건물에 불이 꺼지는 날이 없는 이유는, 그 곳이 세바스천 모런 대령의 아지트이자, 대령이 주 거점으로 삼는 도박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호랑이 사냥꾼으로 유명한 그는 전쟁과 사냥으로 얻는 스릴에는 진력이 나있는 사내라, 은퇴한 이후로는 그의 승부사 기질을 십분 발휘하여 도박가를 평정하고 나서 은밀한 향락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상류층 자제분들도 종종 드나드는 이곳의 내부만큼은 고급스럽기 그지없었다. 특히 높으신 나으리들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지하실은 더욱 그랬다. 오늘도 세바스천 모런 대령은 자신이 잡았던 호랑이 가죽을 두른 악취미적인 화려한 의자에 앉아 심심풀이 도박을 즐기고 있다. 심심풀이라지만 액수는 일반인들이 입에 거론하기조차 부담스러운 액수임은 당연하다. 돈을 꽤 잃은 그였지만 이 정도 손해는 손해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양 그는 연신 웃고 떠들며 최상급 몰트 위스키를 들이키고 있었다.

 

 "이런, 패가 엉망이군!"

 

 모런 대령이 자못 흥겹게 소리치던 그때 한 사람이 지하실의 문을 열고 등장했다. 한눈에 보아도 지하실에서 한창 돈을 만지고 있는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사람처럼 보이는 그는 약간 눈치를 보며 상석에 앉은 모런 대령을 향해 다가갔다. 모런 대령은 그를 보며 흥을 깬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눈치를 주었지만, 그 정도의 면박은 감수할 만한 사안인 듯 그는 대령의 귓가로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알콜 기운이 올라 붉었던 대령의 얼굴은 남자의 말을 계속 들으면서 더욱 붉어졌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흥청망청하던 좌중은 대령의 안색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은 그는 남자를 먼저 내보낸 후 인위적인 미소를 주위의 사람들에게 보이며 말했다.

 

 "여러분, 흥을 깨서 정말 미안합니다만, 이 몸을 원하는 곳이 또 있군요. 저 없이도 잘들 즐기실 수 있죠?"

 

 사람들은 대령에게 말 못할 사정이 생긴 것을 눈치 채고 순순히 그를 보냈다. 개중 '대령이 없이 어찌 즐겁게 놀라고 합니까'라며 푸념을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아첨기 섞인 빈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와 3층으로 향한 그는 급히 소집된 자신의 수하들 사이로 걸어들어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사실인가?"

 

 말보다는 증거물로 증명하는 것이 낫겠다는 듯, 한 사람이 아무 말 없이 봉투를 내밀었다. 미약하게 떨리는 손을 내밀어 봉투를 받아든 그는 페이퍼나이프를 성급하게 그어 내용물을 앞의 책상 위에 쏟았다.
 책상 위에 흩어진 사진들에는 단 한 사람의 얼굴만이 담겨있었다.
 멀리서 급하게 찍은 듯 흔들리고 화질이 조악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주된 피사체의 정체를 알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진을 혐오스럽다는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모런 대령의 험악한 기세에 주변인들은 입을 열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사진 속의 인물을 잠시 쏘아보다가 이를 부득 갈며 입을 열었다.

 

 "위치는 파악했나?"
 "몇 번 나다니는 것을 포착하긴 했지만, 놈이 은신처로 사용할 법한 곳은 아직 추적하지 못했습니다."

 

 주눅이 들어 말하는 부하에게 못마땅한 눈빛을 보내는 그였지만,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그 소임을 다한 그들을 질책할 생각은 없었는지 모런 대령은 부드럽게 말했다.

 

 "좋아. 앞으로는 이 빌어먹을 놈의 은신처 파악에 주력해라. 여러 곳일 가능성이 있으니 그 점 고려하도록 하고. 추적 즉시 연락하도록."

 

 해산, 이라고 말한 모런 대령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수하들은 방을 나갔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모런 대령의 오른팔인 로널드 아데어였다. 모런 대령은 그를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나가고 뭐하나?"
 "저 자를 처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의 경중을 아셔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다소 무뚝뚝한 그의 말에 대령은 기분이 상한 듯 했지만 한 번 들어보자는 듯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아데어는 입을 열었다.

 

 "지금 모리어티가 죽고 나서 흩어진 세력을 규합하여 대령님이 가장 강한 세력으로 부상하시긴 했지만, 아직 그 세력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어 결집력이 부족합니다. 이전의 행동력의 절반도 채 수복되지 못했는데, 지금은 조직의 결속을 좀 더 다지시고, 이후에 그를 노리심이-"

 

 거기까지 들은 모런 대령은 벌컥 화를 내었다.

 

 "닥쳐!"

 

 화를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던 대령의 기세에 움찔한 아데어는 어깨를 움츠렸지만 다행히도 대령이 폭력을 쓰는 사태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화를 가라앉힌 대령은 말했다.

 

 "자네의 식견은 높이 사지만, 내게는 이 일이 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네."

 

 대령은 생전의 모리어티를 추종하듯 유난히 따르던 사람 중에 하나였기에 지금의 일을 나중으로 미룰 것을 제안한 아데어에게 몹시 화가 난 듯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듯 조용히 당부했다.

 

  "아데어, 이번 한 번만큼은, 자네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게나."

 

 대령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한낱 비서인 아데어로서는 더 이상 항명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대령은 책상 위에 쏟아진 사진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희멀건 얼굴, 마른 실루엣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곧 그 분의 뒤를 따라가게 해주마…셜록 홈즈."

 

*

 

 문을 닫고 나온 아데어는 2층의 사무실에 들러서 총을 챙긴 후, 계단을 걸어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섰다.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골목길을 벗어난 그는 주변을 슬슬 둘러보며 한 장소로 향했다.
 그 곳은 한 카페였는데, 반백의 머리의 사내가 신문을 들여다보며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고 있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지 엎드려서 힌트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는 너무 몸을 숙인 나머지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자신의 티스푼을 밀어 떨어뜨리고 말았다. 챙그랑 소리가 들렸다. 하필 티스푼은 아데어가 카운터로 향하는 중간 지점에 떨어져있었다. 아데어는 무시할까 하다가 마지못해 다가가 스푼을 주워 건넸다.
 겸연쩍었는지 작게 감사의 뜻을 표한 남자는 티스푼을 쟁반 안쪽에 다시 올려놓고, 크로스워드 퍼즐로 눈을 돌렸다.
 아데어는 카운터로 다가가 커피를 한 잔 주문했고, 테이크아웃이었기 때문에 그는 커피를 받은 후 곧장 가게를 나갔다. 그가 나가는 것을 곁눈으로 훔쳐보던 반백의 사내는 아까 티스푼을 건네받을 때 함께 받은 새끼손톱만한 종이 두루마리를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카페를 벗어나 경시청으로 향했다.
 경시청 안으로 들어가자 도노반이 그를 맞았다.

 

 "경감님, 어디 갔다 오셨어요?"

 

 주머니 안에 든 종이 두루마리를 손가락으로 굴리며, 레스트레이드가 대답했다.

 

 "정보를 얻어오는 중이야."

 

 도노반은 궁금해 하는 기색이었지만 레스트레이드는 별 언질 없이 자신의 사무실로 쏙 들어갔고, 그녀는 나중에 그 정보가 무엇인지 알 기회가 오길 바라며 다시 자신의 업무로 고개를 돌렸다.
 사무실 안에 들어가 두루마리를 조심스럽게 펼친 그는 안에 적힌 속기를 천천히 읽었다.
 그의 눈이 한 순간 두루마리의 어느 글자가 쓰인 부분에 고정되었다.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한 번 읽어보아도 쓰여 있는 글씨는 바뀌지 않았다. 레스트레이드는 한동안 그렇게 두루마리에 쓰인 글을 읽고 또 읽었다.

 

(Let Me In Ch.1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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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

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내 피를 마셔."

 

 존이 결연히 말했다.
 가느다란 뼈가 하얀 피부 위로 도드라진 자신의 손을 줄곧 바라보고 있던 셜록이 존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뭐라고?"

 

 셜록은 당황한 나머지 조금 늦게 대답했다. 간신히 더듬거리는 것은 면했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셜록의 얼굴에 경악의 표정이 떠오른 것을 보고 존은 약간 움찔했지만 다시 한 번 말했다.

 

 "내 피를 마시라고."

 

 강한 어조의 존의 말을 들은 셜록은 존이 허투루 말하는 것임이 아님을 알고 소파에 깊이 파묻고 있던 몸을 일으켜 존을 바로 쳐다보았다.

 

 "지금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각은 하고 있는 건가?"

 

 맞은편의 남자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냉랭하게 말했다. 어느새 그에게 어려있던 물기는 간데없다. 건조한 인상의 셜록은 눈에 띄게 여위긴 했지만 그가 지닌 특유의 기세는 여전하다. 존 역시 셜록이 호락호락 넘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것에는 역시 당황한 듯 말이 없었다.
 셜록은 말했다.

 

 "자네가 지금의 나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것쯤이야 예상된 패턴이야. 하지만 자네는 내가 자네의 피를 마실 때의 상황과 그 후의 상황 또한 간과하고 있군. 혹시라도 내가 자네를 죽여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은 생각해보았나? 과다출혈은? 또한 지금의 나의 상태는 불안정하기 그지없고 뱀파이어라는 것이 여타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이는 특질들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어떤 유전적 특이성을 지니고 있는지 완벽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네가 나에게 물린 후 자네마저도 뱀파이어로 변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빠른 속도로 혀를 놀린 셜록은 결론을 내렸다.

 

 "자네가 한 말은 고맙지만, 앞으론 생각을 조금 더 깊게 하고 말을 하길 바라네."

 

 존은 셜록이 말을 마치고 다시 몸을 힘없이 소파에 늘어뜨리는 것을 보고,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하는 말은 험악하고 비난 일색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말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임을 눈치 챈 존은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외면하는 셜록을 잠시 바라본 존은 벌떡 일어섰다. 셜록이 그를 흘깃 쳐다보는 것을 느끼며, 존은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고, 남방의 단추를 풀러 내리기 시작했다.
 목 부근 단추를 전부 풀어 내린 존에게, 셜록이 천천히 말했다.

 

 "존."

 

 셜록은 묘하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지 마."

 

 존이 셜록에게 말했다.

 

 "지금 자네 꼴이나 좀 보고 이야기하라고."
 "내 꼴이 어떤데?"

 

 셜록이 멍청히 반문하자 존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죽기 직전의 노인네처럼 보인다고!"

 

 존의 말에 셜록은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존이 계속해서 말했다.

 

 "게다가 의사로서의 소견을 부가하자면, 자네가 흘린 피의 양은 엄청나. 일반인이었다면 지금쯤 벌써 빈혈로 사망했을 거야. 그나마 자네가...뱀파이어라는 걸 다행으로 여기게."
 "오, 그렇다면 자네는 의사로서 환자에게 수혈을 제안하는 거로군. 미안하지만 필요 없네."

 

 셜록이 고집을 부리는 것에 존은 벌컥 화를 내었다.

 

 "셜록!"

 

 셜록은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휙 고개를 돌렸다. 존은 셜록을 잠시 쳐다보다가 그가 앉아있는 소파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셜록은 회피하려는 듯 몸을 움츠렸다.

 

 "오지 마."

 

 거부에도 아랑곳 않고 존은 셜록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셜록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그 옆에 꿇어앉았다. 셜록은 필사적으로 존에게서 멀어지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은 셜록의 의지를 따라주지 못했다.

 

 "셜록,-"

 

 존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의사이건 뭐건 말이네, 나는 자네가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거야. 왜냐하면-"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했다.

 

 "-나는 자네의 친구니까."

 

 셜록이 느릿하게 눈을 굴려 존과 눈을 마주쳤다. 존의 진파랑색의 눈이 꾸밈없는 정감을 지니고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각각 청색소의 농도가 다른 두 눈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오, 존.
 셜록은 속으로 신음했다. 그 신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조금 머뭇거리며 마른 손가락을 뻗어 존의 목으로 갖다 대자, 존은 놀랄 만큼 순순히 몸을 셜록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셜록은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태도로 엄숙하게 고개를 숙여 존의 목에 입술을 대었다.

 

*

 

 두 남자의 숨소리가 점차 고조되어갔다. 젖은 소리, 무언가를 흡입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누군가가 말했다. 침대로 갈래? 다른 한 사람이 대답했다. 그래. 젖은 소리가 멈추지 않는 가운데 의자 하나가 넘어졌다. 오, 제길. 한 사람이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 그 후로도 몇 개의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혈색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셜록이 누워있는 존의 뺨을 톡톡 쳤다.

 

 "존?"

 

 존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응?"

 

 셜록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또 정신을 잃은 줄 알았어."
 "아냐…근데 이 기분 좀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존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셜록이 대답했다.

 

 "왜? 보기엔 아주 좋아하는 것 같던데."
 "좋다는 건…부정할 순 없지만, 보기에 좀 이상하잖아."

 

 셜록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뉘앙스로 오, 라고 말했다. 존이 고개를 돌려 그를 흘깃 보고는 웃음기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셜록, 가서 옷이나 좀 입고 와!"

 

 셜록이 흘러내린 가운을 여미며 말했다.

 

 "뭐 어때."

 

 다시 머리를 팔로 괸 셜록은 존을 토닥이며 말했다.

 

 "일단 좀 자라고, 존."

 

 그리고 존은 거짓말처럼 잠에 빠져들었다.

 

*

 

 다음 날 아침.
 비가 온 후에나 볼 수 있는 청명한 공기와 햇살이 존의 플랫으로 쏟아져들어왔다. 존은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깜박였다. 지난 밤의 일이 새록새록 머릿속에 되새겨지며 존의 양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아무리 셜록을 회복시키기 위한 일이라 해도 조금 도가 지나친 일이었을까? 존은 문득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누웠음에 분명한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는 시트가 보였다. 셜록은 지난밤에 여기서 잔 것일까? 존은 졸린 머리로 생각을 하려 애썼다. 젠장할, 머리는 생각만큼 원활히 돌아가 주질 않았다.
 존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간밤의 일이 있었다는 것이 의심될 정도로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상쾌한 편에 속했다고나 할까. 존은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셜록을 찾아 나섰다.
 셜록은 의외로 거실의 소파에 얌전히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뭐해?"

 

 존이 묻자 셜록이 짤막하게 말했다.

 

 "문자."

 

 그러더니 셜록이 존을 쓱 쳐다보았다. 뭔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이었다. 존은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셜록을 마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셜록은 존을 향해 핸드폰을 쓱 내밀며 말했다.

 

 "나 대신 문자 좀 보내줘."

 

 존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셜록을 바라보았지만, 셜록은 요지부동이었다. 할 수 없이 핸드폰을 받아든 그가 말했다.

 

 "수신인은?"
 "마이크로프트."
 "뭐라고 써서 보내야 해?"
 "지금부터 하는 말 토씨 하나 빠뜨리지 말고 부탁해."

 

 존은 귀를 기울였다. 셜록은 자못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존의 플랫에 양복 한 벌만 갖다줘'."

 

 문자를 치던 존이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에 셜록에게 물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내 주소를 모를텐데?"
 "존, 아직도 그 인간을 잘 모르는 것 같군. 그 '빅 브라더(Big brother)'는 설사 지금 당장은 자네 주소를 모른다 하더라도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거야."

 

 빈정대는 것이 분명한 셜록의 말을 들은 존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전송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셜록에게 돌려준 후 말했다.

 

 "영국 정부 전체나 다름없는 사람한테 양복 배달 심부름을 시켜도 되는 건가 싶군."
 "우애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 것 아니겠어?"

 

 뻔뻔한 셜록의 말에 존은 실소를 지었다.

 약 30분 후 존의 플랫으로 셜록의 치수에 꼭 맞는 양복 한 벌과 구두까지 배달된 직후 존의 얼굴의 미소는 사라졌지만 말이다.

 

*

 

 존은 오랜만에 바깥에서 브런치를 사먹기로 했다. 셜록이 잠깐 자신의 안전 가옥에 들렀다 온다고 말하고 나서, 그는 근처의 식당에 들어갔다. 알맞게 구워진 계란 요리를 씹으며 존은 아침에 하던 생각을 이어나갔다.
 어제는 정말로 우여곡절이 많은 날이었어, 라고 존은 생각했다. 존은 자신이 셜록에게 피를 기증-기부? 증여? 그는 적당한 단어를 찾기가 힘들었다-한 정황에 대해 되돌이켜 보았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때 자신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일까, 새겨 보아도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셜록은 자신의 가장 친한-이 부분에서부터 약간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존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친구다. 아마 그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자신은 함께 그 위기에 뛰어들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무턱대고 그렇게 할 것이었다. 옷자락을 스스로 풀어헤쳐 피를 마음껏 빨게 한 것도 그런 맥락의 하나였던 것 같다. 그것도 셜록이 거절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셜록이 자신의 하숙집에 찾아와서 문간에서 중얼거린 말-와서는 안되었었는데-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존의 피를 너무나도 마시고 싶어했지만 그것을 나름대로 자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런 셜록의 노력을 와해시켰다. 게다가 존의 성별만 바꾸면, 그 행동은 마치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가 옷을 벗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존은 생각했다. 이게 정상인가?
 그는 순간 깨달았다.
 오 이런.
 나는 셜록을 좋아해.
 그것도 매우.
 존은 손에 쥔 포크를 떨어뜨릴 뻔한 것을 간신히 잡아내었다.
 그때부터 셜록이 식당으로 찾아올 때까지, 그는 포크로 남은 계란을 산산히 짓이겼다.
 식당에 들어서 존의 반대편 의자에 앉은 셜록은 그런 존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생각해?"

 

 존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는 상냥하게 미소짓고,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무 것도."

 

*

 

 존이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챈 셜록은 존을 잠시 혼자 두기로 하고 플랫을 나갔다. 남아있는 존은 곰곰이 생각에 몰두했다.
 그는 자신이 쾌감과 사랑을 헷갈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라면 종종 그런 일도 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셜록과는 이런저런 일을 함께 겪어온 친구가 아닌가. 존은 우정과 쾌감의 묘한 조합 때문에 자신이 착각에 빠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텍스트 메시지가 도착했다. 셜록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저녁(Dinner)?

 

 존은 '좋아'라고 답장을 보냈다. 전송 버튼을 누른 후 그는 아까 전까지 하던 생각은 잠시 잊고 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어젯밤 한 사람은 소파에 앉고 한 사람은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었기에 자세가 너무나 불편했던 둘은 자리를 옮기기로 합의했고, 이동하는 와중에 의자를 넘어뜨리고 탁자 위에 있던 장식품 두어 개가 바닥에 떨어뜨리는 등의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방 안은 영 깔끔한 모양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셜록은 그 때 정말로 피에 굶주린 듯 정신없이 자신의 목에 매달렸고, 그가 피를 빨 때에 전해져오는 강한 쾌감에 젖어버린 그는 셜록을 떼어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찰싹 달라붙어서 좁은 방을 지나간 탓이었다.
 존은 장식품을 다시 정위치에 놓으면서도 자신의 얼굴이 다시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셜록으로부터 온 문자를 받으면서도 보기 싫게 히죽거렸던 것 같았다. 그는 방정리를 하다 말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존 왓슨!
 존은 그 전까지는 개소리라고 믿어왔던, 혈통 내에 동성애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이론을 다시 한 번 탐구해보자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해리엇이 레즈비언인 것이 그의 심층정신구조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 것 같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면, 뱀파이어들은 정말로 매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슬슬 머리가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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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존이 1층의 부엌으로 내려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부엌은 물론이고 연결되어 있는 거실은 흐릿한 조명뿐이었다. 인기척 하나 없이 적막에 싸인 부엌의 조명 스위치를 누른 존은 무의식적으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 밖에는 한 인영이 꼿꼿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 형상이 셜록의 것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챈 존은 쿠키 생각도 잊어버리고 당장에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을 연 존은 셜록에게 거기서 뭐하는 거냐고 말을 걸려다가 멈추어 섰다.
 찬비에 푹 젖은 셜록의 모습은 슬프고도 아련하며 무서웠다. 그의 명료하기 그지없는 눈빛은 몽롱하게 흐려진 채로 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은 존을 향하고 있었지만 존 너머의 어느 지점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존은 그런 셜록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검은 머리칼과 코트는 눅지근하게 늘어져 아래로 물방울을 떨구고 있었다. 존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셜록에게 말했다.


 "셜록."

 존이 말했다.

 

 "거기서 뭐하나."

 

 존의 나직한 목소리에 셜록이 중얼거리듯 답했다.

 

 "미안하네."

 

 순간 빗소리 때문에 잘못 들은 줄 안 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셜록은 절대로 남에게 순순히 사과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존은 곧장 반문했다.

 

 "뭐라고?"

 

 그러나 셜록은 혼자만의 상념에 빠진 듯 계속 중얼거렸다.

 

 "와버리고 말았어. 와서는 안되었는데."
 "셜록, 괜찮아?"

 

 존의 거듭된 물음에 셜록의 눈의 초점이 서서히 돌아왔다. 셜록이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아보이네만, 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존은 꾹 참았다. 그 사이 셜록은 뚜벅뚜벅 걸어와 문가에 몸을 기대고 서있는 존 앞에 섰다.

 

 "들여보내 주겠나?"

 

 존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그의 청승맞은 모습도 그랬지만, 지난번에도 들었던 '들여보내 주겠나'라는 집요하면서도 어딘가 호소 짙은 목소리가 존의 신경을 미묘하게 거스르고 있었다. 셜록이란 남자의 본질은 뭐든 자기 본위대로 하는 그 제멋대로인 성격인데, 그가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은 무언가 모순이 깊게 배어있었다.

 

 "자네 지난번부터 이상한 거 알아?"

 

 셜록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밤의 어둠과 습한 안개 때문에 존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존은 계속해서 말했다.

 

 "들어올 테면 그냥 들어오면 되잖아."

 

 존이 자신이 이상하다 느낀 점을 지적했다. 그 말을 들은 셜록은 묵묵부답으로 존만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묘하게도 부드러운 느낌을 풍겼다.
 조그마한 성냥불이 다 타서 성냥개비만 남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존이 스스로가 너무 까탈스럽게 군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이, 셜록은 의외로 선뜻 존을 지나쳐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셜록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본 존은 그의 옆을 지나간 셜록의 눈에 뭔지 모를 결심이 깃든 것을 보고 순간 움찔하여 그의 모습에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들어온 셜록은 존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바닥으로 빗물이 떨어졌다. 나무 바닥이 동그랗게 짙은 색으로 점점히 물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존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느꼈다. 이상할 뿐 아니라, 무언가 잘못되었다.
 불빛 하나 없는 현관 아래의 셜록의 머리에서부터 검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 줄기가 흐르는 것을 시작으로 그 액체는 점점 더 많이 쏟아져내려왔다.
 바닥은 이제 물방울로 인해 젖는 것보다 더욱 어두운 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어두운 색은 불길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작은 웅덩이는 서서히 그 면적을 넓혔고, 셜록은 그 위에 선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존을 바라보기만 할 뿐, 이를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존은 그제야 셜록에게 뭔가 금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금제는 분명히, 셜록이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면서 그에게 덮어씌워진 굴레일 터였다. 왜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존은 스스로를 원망하며 곧바로 소리쳤다.

 

 "들어와도 돼! 들어와도 된다고, 셜록..."

 

 전신이 피에 젖은 셜록은 다소 수척해보였다. 셜록은 비틀거리며 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피비린내가 어깨를 적시고 무겁도록 코끝에 와 닿는 것을 느끼며 존은 셜록을 감싸 안았다.
 한 쪽 어깨가 따스했다.

 

*

 

 급히 가져온 수건에 물을 적셔서 바닥에 떨어진 빗물 섞인 피와 셜록에게 묻은 피를 얼추 닦아낸 후 존은 셜록이 가는 곳마다 핏자국이 남지 않도록 주의하며 자신의 플랫에 있는 욕실로 셜록을 들여보냈다. 셜록이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욕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문을 닫는 것까지 지켜본 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바로 눈 앞에서 생생히 벌어지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도 가지 않을 지경이었고, 아직까지도 심장이 두근두근한 것이 가슴이 덜컹거린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며 존은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문득, 존의 머릿속에 셜록이 나타나면 온갖 일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벌써 셜록이 없었을 때에는 대체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 싶을 정도이다. 존은 공기가 빠지는 소리를 내며 작게 웃었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한 미소를 입가에 걸친 채로 존은 셜록이 들어간 욕실 문을 응시했다.
 잠시 후 따뜻한 물로 온몸을 적신 탓에 희끄무레한 김이 올라오는 셜록은 존이 빌려준 쥐색 가운을 두르고 욕실 문을 열었다. 뺨은 온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붉었지만 가운 바깥으로 드러난 다른 부분은 눈에 띌 정도로 희었다.
 존이 그를 부축하려고 곁에 다가갔지만 셜록은 혼자서도 몸을 지탱할 수 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다시 소파에 어정쩡하게 앉은 존은 맞은편에 앉은 셜록을 향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의 시선을 보내며 몇 번 입을 뻐끔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괜찮아?"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해쓱한 안색의 셜록에게 차마 다그칠 수 없었던 존이 조심스럽게 셜록에게 물었다. 셜록은 의자에 눕다시피 앉은 채로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그건..., 뭐였어?"

 

 본래에도 군살이 없었던 셜록이 이제는 야위어버린 얼굴을 힘겹게 들며 말했다.

 

 "나도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남의 집에 들어갈 때 허락을 안 받고 들어가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야."

 

 뱀파이어는 초대받지 못한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속설이 진짜일 줄이야, 라고 존은 한순간 생각했다. 그러다가 셜록의 실혈량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을 상기한 존은 느긋한 생각일랑 관두고 일단 셜록에게 뭐라도 좀 먹이기로 했다. 그러나 곧이어 셜록은 여느 사람이 아니라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떠올린 존은 일어나려던 것을 멈추었다. 음식이 아니라 피를 먹여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누구의 피를?
 셜록은 존이 일어서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다가 무엇을 떠올린 듯 다시 의자에 앉는 모습을 지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가 입을 떼었다.

 

 "폐를 끼쳤네."

 

 힘없는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말투는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셜록의 기력이 쇠했다는 징후를 너무나도 완연히 보여주는 납빛 안색을 본 존의 얼굴빛 또한 어두워졌다. 셜록은 그 변화를 다른 것으로 해석한 듯 말했다.

 

 "걱정 마. 지난번과 같은 일은 저지르지 않을 테니."

 

 오해를 바로잡아주고 싶었지만, 속마음으로 셜록이 또다시 자신의 피를 마시려들지 않을까 조금 두려워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존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망설임 후 존이 물었다.

 

 "사실 그…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었어."

 

 셜록은 오, 하고 짧게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일'이란 바스커빌에서 있었던 일임을 굳이 콕 짚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존은 셜록이 이렇게 늦게서야 나타나기 전까지 그 일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쩐다, 하고 셜록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한참동안 입을 다문 채로 앉아있었다. 수많은 어휘와 표현이 그의 머릿속에 죽죽 나열되며 또한 나타난 속도만큼이나 금방금방 스쳐지나갔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어떤 것도 그 상황을 해명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단어처럼 보였다. 그는 그답지 않게 어물거리며 어떻게 존에게 대답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평소에 셜록이 누군가 자신의 말에 끼어드는 것을 불허하겠다는 듯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는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존은 인내심을 가지고 셜록의 대답을 기다렸고, 셜록은 조금 후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날은…내가 자제하지 못했어."
 "내 피를 마시고 싶다는 그걸?"

 

 어렵사리 입을 연 셜록에게 존이 지난 번 바스커빌에서의 일을 직접적으로 상기하는 어구를 입에 담자 셜록은 불편하고 수치감을 느끼는 듯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긍정했다.

 

 "그래."

 

 존이 다시 말했다.

 

 "자네가 말하길, 피를 안 마셔도 된다고 그랬었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네."

 

 셜록이 짧게 말하고서 존이 확언을 받으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어쨌든 자네는 피를 마셔야 하는 거군."
 "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존의 말에 셜록이 대답했고, 방 안은 또다시 침묵에 잠겼다. 셜록은 다시 고개를 뒤로 젖혀 소파에 기대었고, 존은 머리를 팔로 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비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비는 여간해서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 잠시 잦아들었다가도 다시금 세게 빗줄기를 때렸다. 창문에는 간간히 빗방울이 세게 부딪혀 후두둑 소리가 들렸다. 방 안의 시계바늘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으며, 바깥에서는 미약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와 문이 여닫히는 마찰음이 삐걱거리며 들려왔다. 아래층에서는 음악이라도 듣고 있는 듯 들릴락 말락 하게 노랫소리가 스며들었다. 존과 셜록은 여전히 서로를 조심스럽게 외면하며 침묵을 지켰다. 조용한 방으로 온갖 소음이 흘러들어와 두 사람의 상념에 섞여들었다.
 셜록은 조용히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자신의 몸을 관 속에 넣은 채 못질하며 매장이라도 할 것을. 아니면 침대 기둥에 밧줄로 꽁꽁 묶어둘 것을. 한 번 맛본 그 맛과 향내를 잊지 못하여, 세이렌에게 유혹당한 선원들처럼 스스로 파멸의 구렁텅이로 발을 들이민 자신을 조소했다. 자신이 이렇게나 욕망에 쉽게 무너지는 남자였던가. 금연을 할 때 느낀 금단증상보다 몇 배는 강하게 닥쳐드는 욕구를 제어하느라 느낀 스트레스 또한 한 몫을 하였을 것이라고, 셜록은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까 허락없이 집 안으로 들어올 때 흘린 피의 양이 생각보다 많았기에 자신이 괴력을 발휘해서 존을 다시 덮칠 위험은 줄어든 것이었다. 지금의 셜록은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팔걸이에 내려놓은 손을 장난치듯 꼼지락거리며 셜록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존이 문득 등을 똑바로 세워 자세를 바로했다.
 무언가 결정을 내린 듯, 존이 셜록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내 피를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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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런던 기차역까지 줄곧 침묵을 지킨 채 도착한 그들은 마치 모르는 사람들처럼 데면데면한 상태로 역을 나섰다.
 역 입구를 빠져나온 존은 어디를 가야될까 고민했지만, 갈 곳은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자신의 플랫. 존이 방향을 정해 걷기 시작하자 셜록은 코트 목깃을 한껏 올려 얼굴을 최대한 가린 채로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셜록과 존이 함께 살면서 사건을 해결하러 바삐 뛰어다닐 적에는 한 번도 존이 셜록을 앞선 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린 존은 이 상황이 어색하다 못해 민망하기까지 했다. 생각의 속도가 존보다 월등히 빨랐던 셜록은 언제나 존을 앞서서 걸었었다. 존은 언제나 그를 쫓아가기 바빴었다. 뒤에서 셜록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존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눈치를 보는 지금, 상황이 전과는 완전히 뒤바뀐 것을 둘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존의 플랫 바로 앞까지 걸어온 셜록과 존은 잠깐 마주보았다. 곁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은 헛기침만 연신 해대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이겨내고 셜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존."

 

 존이 크흠, 하고는 대답했다.

 

 "그래."

 

 셜록은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는 입을 열고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던 손 중 하나를 꺼내 허공으로 뭔가 의미모를 손짓을 하다가 열었던 입을 다시 닫았다. 손을 다시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은 셜록은 짧게 고개를 까딱 하고 미련 없이 뒤로 돌아섰다. 존도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둘 모두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걸 확인한 후에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거나 머리를 벽에 박으며 자학한 것은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

 

 셜록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요즘 들어 부쩍 한가한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의 방 한가운데 버티고 앉아서 셜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셜록을 빠르게 훑어본 마이크로프트가 씨익 미소지으며 말했다.

 

 "먹었구나?"

 

 비죽비죽 웃으며 셜록을 조롱하는 마이크로프트에게 뭐라 응수할 기운도 없는 셜록은 침대로 몸을 던져 시트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런 셜록에게 말했다.

 

 "근데 정말 먹기만 했구나?"

 

 무언가 성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그의 끈질긴 조롱에 아, 성가셔, 라고 생각하며 셜록이 핀잔을 주었다. 핀잔을 주는 사람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는 것은 조금 웃겼지만 말이다.

 

 "최근 유럽이 지나치게 평화로운가보지."

 

 시트 속에서 웅얼거리는 셜록에게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필요 이상이지. 당분간은 그럴 거란다."

 

 제기랄, 당장이라도 3차 세계대전이 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셜록은 저도 모르게 끙 하는 신음을 뱉으며 시트를 더욱 위로 끌어당겼다. 그것도 잠시, 셜록은 침대를 박차고 나와 엉망으로 구겨진 몰골로 방 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나 정신머리가 없는지 코트 한 쪽은 팔에 완전히 걸쳐지지도 않아 바닥으로 늘어진 채인 셜록의 모습을 본 마이크로프트가 조용히 혀를 찼다.
 마이크로프트가 다리를 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땠는데 그러니? 맛이 그렇게 없었던 거야?"
 "…그랬다면 차라리 좋았겠지."

 

 셜록이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그 밤, 셜록이 머금었던 피의 향기는 그저 체향만 맡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매혹을 품고 있었다. 존의 목에 난 상처에서 감질나게 피를 빨아올리며 혀끝으로 너덜한 살갗을 깊이 후벼 파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 입 안에는 다시금 그 맛이 되살아나며 당시 느꼈던 쾌감이 재생되는 것 같다. 비릿하고 달착지근한 혈향이 입 안에서 진동하고 귓가에는 존의 가쁘게 내쉬던 뜨거운 숨결이 훅 끼친다.
 혀로 뾰족한 송곳니 끝을 살살 핥으며 셜록이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는데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을 불렀다.

 

 "-거니, 셜록?"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셜록이 간신히 '듣고 있는 거니'라는 마이크로프트의 끝말을 캐치하고 별일 없다는 듯 대답했다.

 

 "오, 그럼."

 

 셜록은 순식간에 말끔한 얼굴로 돌아와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마이크로프트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분간 혼자 있고 싶어."

 

 그 미소가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그나마도 거짓으로 지어낸 미소라는 것을 마이크로프트는 아주 잘 알았지만, 순순히 셜록의 방에서 나가주었다. 마이크로프트가 나간 후 셜록은 방바닥에 질질 끌리던 코트 한 쪽을 추슬러 다시 팔에 똑바로 끼웠다.

 

*

 

 아침에 셜록과 그런 식으로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헤어짐을 겪고 난 후, 존은 휴대폰을 손에 들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화면에 나타나 있는 것은 마이크로프트의 연락처였다. 존은 또다시 자취를 감춘 셜록의 소재를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마이크로프트에게 기대를 걸어보려는 것이었다.
 바스커빌에서 들었던 셜록의 말에 의하면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겪은 문제의 수술과 사후 처리 등에 깊게 관여하였음이 분명하였고, 평소 이런저런 곳에-심지어 감시 카메라까지 동원하여-신경을 써대는 그의 행동거지를 보았을 때 셜록이 현재 머무르고 있을 안전 가옥도 그가 마련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어쩐지 마이크로프트에게 셜록의 현재 위치 파악을 위해 전화를 건다는 것이 망설여진 존은 손가락을 휴대폰 화면에 가까이 가져갔다가 떼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존은 문득 마이크로프트에게 화가 치밀었다. 생각해보니 존이 거진 반 폐인 상태로 허송세월하던 일 년에 가까운 그 기간 동안 마이크로프트는 줄곧 그의 옆에 있었다. 그 옆에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마이크로프트는 존에게 언질 한 마디도 없었던 것이다.
 존은 지금 화를 내는 것이 상당히 뒷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이크로프트에게 뭔가 한 마디라도 하고 싶고, 화풀이도 하고 싶다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결국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마이크로프트?"
 "오, 존. 웬일이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말이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긋나긋한 어조다.

 

 "그러고 보니, 몸은 좀 괜찮나?"

 

 저 말인즉슨 마이크로프트는 이미 셜록과 존 사이에 일어난 불의의 일에 대해 전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존을 바스커빌로 유인한 시점에서부터, 이렇게 될 것을 예견했거나, 또는 직접 계획한 것일지도 몰랐다. 마이크로프트 특유의 유하면서도 위압적인 말투에 저도 모르게 사그라들뻔했던 화가 더욱 치솟는 것을 느끼며 존이 말했다.

 

 "셜록에 대해 질문할 것이 있긴 하지만, 댁하고는 일단 청산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네요."

 

 존의 심상치 않은 기색에, 마이크로프트가 수화기 너머로 당황한 듯한 웃음을 흘렸다.

 

*

 

 한동안 들볶인 후-적당히 당해준 것 같아서 존은 은근히 더욱 화가 났지만-존이 셜록의 현재 상황을 묻자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셜록은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 받고 있지."

 

 동정하는 것인지 즐거워하는 것인지 모를 모호한 말투로 말한 마이크로프트가 존에게 되물었다.

 

 "그 애가 자네 피를 마셨다면서."

 

 존의 목구멍까지 '그…그걸 어떻게'라는 말이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체념기가 짙게 배인 한숨을 푹 내쉰 존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

 

 마이크로프트는 흐음, 하더니 다시 물었다.

 

 "어때, 자네도 기분이 좋던가?"

 

 존이 마이크로프트의 말을 듣고 헉 소리를 내더니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저, 당신도 물렸어요?"
 "내가 먼저 질문했잖나."

 

 마이크로프트의 완고한 태도에 존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저기…물 때는 아팠는데 막상 피를 빨릴 때는…."
 "기분이 좋았다고?"

 

 존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마이크로프트가 대답을 재촉하자, 그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긍정의 표시를 했다. 그 대답을 잘도 캐치한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그래? 흠."

 

 다음 순간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존의 복장을 터지게 만들었다.

 

 "나는 안 물려봐서 잘 모르겠지만 자네 기분이 좋았다니 다행이군 그래."
 "저…아까는 '자네도'라고 안 하셨나요….?"

 

 존이 당황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하자,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아 그거 거짓말이야."

 

 수화기 너머로 그가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여과 없이 들렸다. 분명 낚시질에 성공했다는 희열에 찬 웃음이었다. 뒷목이 당기기 시작한 존은 더 이상 이 정신 나간 작자와 통화를 계속하다가는 육두문자로 입을 더럽힐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여 휴대폰의 빨간 전화기 버튼을 연타했다.
 그가 씩씩거리며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을 때 휴대폰의 진동음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마이크로프트가 보낸 문자였다. 확인해보지도 않고 삭제할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존의 뇌리를 지배했지만 이성을 되찾고 문자함을 열었다.

 

 -3일 정도만 내버려둬보게. 안 오곤 못 배길 걸^^

 

 끝의 미소 이모티콘은 심히 보기 불편했지만 존은 그래도 셜록의 형이 하는 말이니 믿어보기로 하고 소파에 등을 깊게 묻었다.

 

*

 

 존에게 그렇게 문자를 보내놓은 마이크로프트였으나, 그가 셜록의 방으로 찾아갈 때마다 셜록은 나날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이크로프트는 그의 그런 모습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존에 관련된 문제가 되자 명석한 줄로만 알았던 동생은 일반인보다도 못한 판단력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한심스러우면서도 웃겼다. 하지만 웃긴 것도 한두 번이지, 나흘째 그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구경하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
 그때 셜록이 방만한 자세로 누워있다시피하며 앉아있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결론이 났군."

 

 마이크로프트가 중얼거렸다. 셜록이 그 말에 대답하듯 말했다.

 

 "앞으로 존한테 절대 가지 말아야겠어."

 

 셜록은 나름대로 명쾌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자부하며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마이크로프트가 보기에 그 미소는 미소 같지 않게 비틀려있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 는게 이럴 때 쓰는 말일까, 라고 마이크로프트는 생각했다. 셜록은 자기 자신을 말려죽일 생각을 스스로 해내고서 기뻐하고 있었다.
 한편 셜록은 나름대로 계산적으로 행동한답시고 존을 피해 다닐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인간의 것이 아닌 이 육신이 언제 썩어문드러질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 몸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존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문제는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셜록이었다.
 셜록이 그런 생각을 하며 '나 잘 했지?'하는 표정으로 마이크로프트를 보며 싱긋 웃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이렇게 될 때까지 가만 내버려둔 자신을 탓하며 한 편에 치워놓았던 우산을 찾아 쥐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우산을 짚고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난 가봐야겠군."
 "오."
 "잘 있어라."

 

 사뭇 냉랭하게 들리는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 마이크로프트는 거침없이 걸어나가 방문을 쾅 닫았다. 셜록은 멍청한 표정으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

 

 사흘이 아니라 열사흘은 족히 기다린 존은 셜록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마이크로프트에서 재차 연락을 해 봤지만 비서가 전화를 받을 뿐이었다.

 

 '미스터 홈즈는 현재 통화가 불가능하십니다.'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것 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존은 한숨을 푹 쉬었다. 셜록과 엮일수록 한숨만 느는 것 같았다.
 존은 문득 창밖을 쳐다보았다. 지난번처럼 셜록이 창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기대감이 섞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회색빛 창유리에는 바닷가 바위에 따개비가 붙어있는 것처럼 빗방울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따금 몇 개의 빗방울이 뭉쳐 주르륵 아래로 흘러내리고, 마치 잠 못 드는 아이가 엄마의 방문을 수줍게 노크하는 소리처럼 똑똑 소리가 들리며 비워진 자리를 다시 빗방울들이 메웠다. 조그만 물방울들이 불규칙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강약을 주며 이어졌다.
 한동안 그 모습을 쳐다보던 존은 단념하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제빵이 취미인 집주인이 마침 쿠키를 구웠기 때문에 그 쿠키나 몇 개 얻어오려는 심산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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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고지대를 올라오는 데 성공한 존은 한참 헉헉거리다가 원래 호흡을 찾기 위해 주저앉았다. 잠깐 동안 바람을 쐬머 땀을 식힌 존은 곧 일어나서 셜록을 뒤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절묘한데..."

 

 존이 바위 동굴의 입구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달빛이 입구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둘은 나란히 등을 동굴 벽에 기대고 앉았다.
 사소한 대화가 잠깐 오가다가 끊어졌다. 셜록은 오늘따라 유난히 말수가 적다. 때문에 분위기 개선은 존의 몫이었다. 존이 어색한 침묵을 탈피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셜록."

 

 셜록이 주의를 기울이는 기색이자, 존이 질문했다.

 

 "자네 설마 거울에 비치지 않는 건…그러진 않겠지?"

 

 농담 섞인 질문이었다. 셜록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역시 그렇지? 항상 생각해왔지만, 고전 뱀파이어 영화들은 말이 안 되는 점이 많단 말이야. 거울을 못 보는데 혼자서 그렇게 머리를 반듯하게 빗어 넘길 수 있다는 거 말야."

 

 존이 셜록 쪽으로 조금 몸을 기울이며 큭큭 웃었다. 셜록의 시야에 유독 존의 숙인 목이 선명히 들어왔다. 셜록은 이성과 합리, 를 되뇌이며 힘들게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그는 이 상황의 주범인 마이크로프트를 떠올리며 셜록은 속으로 교활한 마이크로프트, 증오스런 마이크로프트, 를 연발했다.
 망할 형이란 남자는, 아니 이젠 형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그 작자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내다보고 존을 바스커빌로 불러들인 것이 틀림없었다.
 아까 땀을 흘려서인지, 셜록의 코로 느껴지는 존의 체취가 평소보다 강하다. 남자의 땀 냄새라니, 찝찝할 법도 하지만 셜록에게는 먹음직스런 음식 향기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음식 향기라는 표현으로는 모자랐다. 마이크로프트를 욕하다 말고도 존의 목에 이빨을 박을 생각이 나게 만들 만큼, 강력한 함정이었다.
 지금 존이 어떤 소리를 지껄이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게 뭐든 간에, 지금 셜록의 머릿속에는 존의 체향, 존의 목, 존의 피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작 존의 말에는-미안하게도-별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 더욱 민감해진 청각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뿐만 아니라 존의 심장이 뛰는 소리, 종종 반사적으로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죄다 모아 한데 섞어버렸다. 그 모든 섞은 것이 좁은 깔때기 안으로 퍼부어지는 것 같다. 어지러웠다.
 그런 셜록의 속도 모르고, 존은 긴장으로 딱딱해진 셜록 곁으로 몸을 조금 붙여왔다.

 

 "밤이라 그런지 조금 추운데."

 

 존은 그러면서 오늘따라 상태가 정말 안 좋은 듯, 거의 말문을 열지 않는 셜록을 힐끗 쳐다보았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니, 더럭 걱정이 된 존은, 끙 하고 살짝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 갈까?"

 

 존이 채 말을 다 마치지도 못했는데, 셜록이 강한 악력으로 존의 옷깃을 잡아 끌어내렸다. 졸지에 엉덩방아를 찧은 존은 약간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야, 셜-"

 

 셜록의 눈이 묘한 열기로 빛나며, 아무 말 없이 존을 밀어 넘어뜨렸다. 흙바닥 위로 등을 댄 채 넘어진 존이 당황하여 눈만 꿈벅거리고 있는데, 셜록이 존의 위로 몸을 숙이며 귓가에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게 속삭인 그 말을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셜록이 존의 목 깃을 손으로 강하게 뜯어내었다. 그 순간 짜맞추기라도 한 듯 달빛이 동굴의 입구를 비껴가고, 동굴 안은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

 

 셜록이 존의 후줄근한 와이셔츠의 목깃을 거칠게 뜯어 목까지 채운 단추 중 몇 개가 튕겨 나가 동굴 바닥을 뒹구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존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그때 연약한 목의 살갗에 셜록의 입김이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존의 얼굴이 시뻘개졌고, 셜록을 밀어내려고 애썼다.

 

 "-셜록!"

 

 존의 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셜록의 팔은 존이 쉽사리 자신의 아래의 위치를 벗어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존이 고개를 내저으며 셜록의 머리를 치우려고 노력했으나, 셜록은 한 쪽 손으로 간단히 존의 머리를 내리누르고 그의 목으로 머리를 파묻었다.
 할짝, 하는 젖은 소리가 존의 귀에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동시에 목이 간질간질거렸다. 존의 붉어진 얼굴에 더욱 피가 몰렸다. 더욱 강하게 셜록을 밀어내려고 하는 존에게 셜록이 중얼거렸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

 

 셜록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존의 목을 핥는 데에 열중했다. 존은 욕이라도 해줄까 싶었지만 때마침 셜록이 목의 어느 지점을 핥았다.

 

 '뭐, 뭐, 뭐지?'

 

 목을 핥았을 뿐인데, 하반신에 찌릿하는 느낌이 들었다. 셜록은 존의 저항의 몸짓이 서서히 잦아드는 것을 느낀 듯 그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핥는 것 뿐 아니라 이빨로 자근자근 물었다 놓기까지 했다. 존은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쾌감을 느끼면서 울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성감대가 목에 있었다니, 하필이면 셜록에 의해서 자각하게 되다니. 게다가 쾌감이 주어지자 곧바로 저항을 멈추는 이 간사한 몸이라니. 존은 그런 생각을 하며, 혹시라도 실수로 민망스런 신음을 내뱉지 않도록 온 신경을 썼다.
 잠깐 동안 목을 핥는데 공을 들인 셜록은 욕망에 들뜬 눈으로 목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송곳니를 박아넣었다.

 

 "-흐윽!"

 

 쾌감보다는 고통에 익숙한 존은 비명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셜록은 자신의 목덜미를 너덜너덜하게 만들려는 생각인지, 살점이 떨어져 나가라 세게 물고 있었다.
 셜록이 더욱 강하게 고개를 파묻음에 따라, 결국 살점이 찢기며,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셜록은 찢어진 목에서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피를 한 방울이라도 놓칠세라 정성껏 핥아마셨다. 쾌감에 흐려진 머리가 고통으로 인해 다시 맑아진 존은 그제야 셜록이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사실과 지금의 상황을 연결 지을 수 있었다.

 

 '피는 안 마셔도 된다면서...사기꾼 같으니...'

 

 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셜록은 그동안 어지간히 굶주린 모양인지, 피를 더 나오게 할 요량으로 한 층 더 세게 상처를 빨았다.
 셜록이 존의 피를 마시는데 한참 열중하는 동안, 존은 아랫배에서 뭔가 스멀, 하고 느껴지는 것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존은 목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점차 다른 무언가로 대체되는 것을 느꼈다. 눈앞이 조금 흐려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소름끼치게만 느껴졌던 셜록의 이가 자신의 목의 살갗을 파고드는 느낌이 이제는 감미로운 접촉으로 느껴졌다. 악물고 있던 입이 저절로 열리며 그 열린 틈새로 간간히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존은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역시 뱀파이어에게 물리는 사람은 기분이 좋은 거구나. 영화 속에서 뱀파이어에게 목을 물린 사람들이 절정에 달해 오르가즘을 느낀 사람들처럼 축 늘어진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존은 이제 전신으로 퍼진 쾌감이 잔잔한 파도처럼 자신의 몸을 쓸어가는 것에 자신을 내맡겼다.

 

*

 

 동굴 안은 두 남자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하다.
 현재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존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탐닉하던 셜록은 어느 정도 배고픔을 해소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입 안에 가득한 달콤한 피의 맛을 인지한 그는 자신이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존의 피를 마셔버린 것을 알았다.
 피 묻은 입가 그대로 황급히 고개를 쳐든 셜록은 존의 얼굴을 보고 낭패의 기색을 드러내었다. 뱀파이어에게 물린 탓인지 맛이 가서 발갛게 된 얼굴로 얕은 신음을 흘리는 존을 본 셜록은 하마터면 다시 존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버릴 뻔했다.
 당황한 셜록은 일단 존이 정신을 차리길 바라며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존! 존!"

 

 흐으…하는 미약한 신음소리를 내며 존이 젖은 눈으로 셜록을 바라보았다. 힘이 빠진 존은 똑바로 고개를 가누지 못했다. 그답지 않게 매우 당황한 셜록이 누워있는 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던 존은 하아아으, 하고 숨을 내쉬었다. 쾌감에 젖은 듯 야릇한 한숨이었다. 저도 모르게 존의 촉촉한 파란 눈으로 시선이 간 셜록은 이 꼴을 그대로 보고 있다가는 존에게 또 다른 일마저 저질러 버릴 것만 같아 곧바로 존을 자신의 어깨에 들쳐 메고는 동굴을 빠져나갔다.

 

*

 

 셜록이 전속력으로 뛰어 숙박지로 도착했을 때, 존은 다행히도 셜록의 어깨에서 정신을 잃은 듯 했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연 셜록은 존은 침대에 누이고 난 후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얌전히 숨을 쉬는 존을 본 셜록은 그의 목에 난 상처가 세게 빨아올린 듯한 붉은 자국만을 남기고 서서히 아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어 자신의 해골 손에 생각이 미친 셜록이 손을 들어보았다. 피를 마신 탓인지, 자연적인 재생 속도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살이 돋아 오르고 있었다. 주된 혈관을 통해 피를 빨아 마신 것이 아니라 얼마 마시지 않은 것 같았지만 손은 완벽하게 재생되었고, 욕망으로 들끓던 셜록의 머릿속도 시원한 물로 씻어 내린 듯 청량하리만치 깨끗해졌다.
 그래도 목을 물어서 다행이었다. 영화에서 목을 물면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것과는 다르게, 목은 굵은 혈관은 피부 표면에서 안쪽으로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영화 같은 상황이 펼쳐지기는 힘들었다. 셜록의 입으로 가득 한 모금 정도는 마신 것 같았지만, 그 상황에서 자신이 동맥이나 정맥을 건드렸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게다가 셜록의 침, 또는 이빨에서 나오는 것에 상처 자연 치유성분이라도 있는지, 저절로 걱정할 만한 상황-존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출혈이 이어지는 사태-이 해결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평온하게 숨 쉬는 존의 얼굴을 쳐다본 셜록은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

 

 다음 날, 존과 셜록은 일어나서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체크아웃을 한 후 함께 기차를 탔다. 둘 사이의 이유 모를 침묵시위는 기차에 타서도 계속되었다. 마치 대판 싸운 어린아이들이 토라져 입을 열지 않는 모양새와 다름없었다.
 존은 그러나 말을 하기 싫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침대에서 일어나 본 셜록의 표정이 너무나 어두웠기에 말을 붙일 수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랬지만 셜록이 줄곧 말을 하지 않는 것에 저도 모르게 오기가 생겨 존도 입을 꾹 다물게 된 것이다. 게다가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셜록에게 목을 물리면서 정체모를 쾌감에 젖어 저항도 안하고 헐떡대던 자신의 모습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그동안 품어온 자신의 마음이 반영이라도 된 듯 하여 절로 뺨이 뜨거워졌다. 그에 더해, 단추 없이 간신히 여민 와이셔츠의 목깃 안쪽에는 어젯밤의 일을 잊지 말라는 듯 불그스레한 자국이 선명했다.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쪽팔리고 부끄러운 존은 더욱 굳게 입을 다물었다.
 셜록 또한 존과 딱히 대화를 나누기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존이 무사히 깨어나기만을 바라고 존의 침대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존이 자신의 얼굴을 흘끗 보더니 시선을 피하고는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 또한 할 말이 없어 입을 열지 않은 것뿐이었다. 셜록은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지난밤의 일을 돌이켜보았다. 존을 덮쳐서 며칠 간 굶주린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존의 목을 파고들어 결국에는 피를 본 그 상황 자체가 셜록에게는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의 이성이 욕망을 통제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차라리 존에게 솔직하게 고백을 하고 허락을 구해볼 것을, 하고 생각하며 셜록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으로 인해 둘 사이의 공기는 한층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른 아침이라 텅 빈 기차간에서 둘은 굳이 붙어앉아있으면서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런던에 도착하기까지 주욱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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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셜록의 사나운 눈초리에도 마이크로프트는 흔들리지 않고 미소 띤 얼굴을 유지했다. 그 완만한 호선을 그리는 입술을 셜록은 증오스럽다는 듯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마이크로프트는 영혼을 대가로 한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인간을 구슬리는 악마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 마시고 싶다면 마시는 수밖에 없단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를 내고 싶은 것을 참고 흥분된 숨을 몰아쉬며 그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다. 명백히 화난 기색을 드러내는 셜록을 보고도 마이크로프트의 안색에는 섬뜩하리만치 변화가 없다. 그는 외려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혹시 실수로 죽인다고 해도, 내가 처리해 줄테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마렴."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한 셜록이 단호하게 말했다.

 

 "닥쳐."
 "거듭 말하는 거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어."

 

 잠깐 입을 다물었다 다시 입을 연 마이크로프트는 정곡을 찔렀다.

 

 "존은 널 좋아해."

 

 연이어 그가 또 다른 정곡을 찌른다.

 

 "너도 그렇지."

 

 셜록은 놀라 평소보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조급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더욱 안 된다는 것을 모르겠어?"

 

 이건 현명한 대답이 아니었다. 말을 내뱉고서 그 사실을 깨닫는다. 화를 못 이겨 깊숙이 숨겨놓았던 속엣말을 꺼내어버린 셜록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오히려 골칫거리가 하나 줄어든 거지."

 

 그는 손을 들어 여전히 해골 같은 상태의 셜록의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제까지 그 상태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빈정대는 듯 신랄한 어조다. 셜록은 부지중에 계속 드러내고 있었던 한 쪽 손은 그때까지 걸치고 있던 코트 주머니 안에 푹 찔러넣었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것 같아?"

 

 재차 빈정거리는 마이크로프트와 더는 냉정한 정신으로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진 셜록은 그를 한 번 노려본 후 성큼성큼 걸어 방을 나갔다.
 객실의 문이 쾅 닫히고, 마이크로프트는 닫힌 문을 감정이 징후가 비치지 않는 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

 

 셜록은 넓은 황무지를 정처 없이 헤메었다. 거칠기로 악명이 높은 황무지의 바람은 오늘따라 산들바람처럼 얌전했다. 악마같이 불어대는 센 바람보다 더욱 악마 같은 자들이 자신의 영역에 방문한 것을 눈치 채고 지레 겁을 먹은 것일지도 모른다. 셜록은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서 피식 웃었다.
 멀리 구름에 가리운 달이 보인다. 구름은 달을 완전히 덮었으나 달이 있음직한 자리가 둥그렇게 빛난다. 미약하게 새어나오는 달빛이 어느 한 곳을 비춘다. 허허벌판인 이 지대에 존재하는 고지대이다. 지반 자체가 계단처럼 불쑥 솟아있는 그 위는 평평하며, 다소 압도적인 위용의 바윗덩이들이 한데 뭉쳐있다. 가까이 접근한 그는 어렵지 않게 위쪽으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서 꼼꼼히 바윗덩이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을 살펴본 셜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바윗덩이들 자체가 하나의 오두막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인간 남자 한 명 정도가 쉬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입구를 찾아낸 셜록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눅눅하였으나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셜록은 평평한 바닥을 찾아 거리끼는 기색 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그 곳은 조용하다.
 그는 다른 누구도 없는 짙은 어둠 속에서야 안심한 듯 평온하게 호흡하며 등을 돌벽에 기대었다.

 

*

 

 고전영화 특유의 흑백의 스크린.
 따스한 느낌으로 지직거리는 온화한 검은색과 회색과 흰색.
 한가운데에는 오롯이 그 혼자서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존이 자리한다.
 동그랗고 맑고 그 어떤 더러운 때도 묻은 적 없는 하늘색의 눈이 스크린 바깥의 자신을 응시한다.
 가로로 된 스크린에는 존의 흉상이 담겨있다.
 하얀 목.
 하얀 목.
 하얀 목.
 클로즈업.

 

*

 

 기대고 있던 돌벽의 한기가 파고드는 느낌에 셜록은 소스라치게 깨어났다.
 아니, 그것은 한기가 아니라 그저 악몽이다.
 한 번 악몽을 꾼 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셜록은 동굴 안으로까지 햇빛이 침입할 즈음이 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지난밤 머물렀던 객실로 향했다.
 객실은 텅 비어있다.
 셜록은 객실을 살폈다. 보란 듯이 놓아둔 휴대전화기가 테이블 위에 있다. 그는 휴대전화기의 전원을 켰다. 예약 메시지로 보내어진 메시지가 화면에 뜬다.

 -숙박비는 충분히 지불해놓았으니 머리나 좀 식히고 와라. M

 셜록은 메시지를 닫았다. 마이크로프트가 무슨 꿍꿍이로 셜록이 바스커빌에 남아있기를 종용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지속적으로 자신의 정신을 침범하는 욕념을 어떻게든 다스릴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한적한 도시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럭저럭, 방책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틀이 지났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방 안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흰 목과 흘러내리는 피에 대한 환상이 자신의 뇌리를 점령했다. 꿈속에서뿐만 아니라 깨어있을 때조차 그랬다. 이제는 송곳니 끝이 간질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하루만 더 기다려보았다가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바스커빌 연구소에서 제공해준-존이 아닌 다른 사람의-피를 섭취해보기로 했다.

 또 한 번의, 흰 목에 대한 환상이 스쳐지나갔다. 셜록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찬 물로 세수를 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눈에 핏발이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한 남자가 보인다. 망상의 발작을 막기 위해 그동안 일체 잠을 자지 않았건만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남은 건 한심한 남자. 셜록은 자신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수건을 수건걸이에 다시 걸어놓고 화장실 밖으로 나온 그의 귀에 익숙한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셜록은 그것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귀가 잘못 판단하였기를 바랐다. 그러나 예상은 들어맞아, 발소리는 셜록의 방 앞에 멈추었고, 방문을 노크했다.
 문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셜록?"

 

 그건 존의 목소리였다.

 

3

 

 존이 말했다.

 

 "셜록!"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질문한 셜록은 존이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자문자답했다.

 

 "오, 멍청하긴. 당연히 마이크로프트겠지?"
 "그래. 네가 아파서 전지요양을 와 있다고 하더라고."

 

 전지 요양을 하기엔 조금-이상한 곳이지만, 너답다, 라고 말하며 싱긋 웃는 존의 얼굴을 본 셜록은 눈앞에 흰 목에 대한 환상이 오버랩 되는 것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도 되?"

 

 지나치게 긴 시간 존을 문가에 세워두었다. 셜록은 쭈뼛거리며 존은 안으로 들였다. 안으로 들어온 존은 소파를 향해 눈짓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존은 냉큼 소파에 앉았다. 서 있던 셜록은 존이 왜 앉지 않아? 라고 묻자 그제야 같은 소파의 반대편 끝에 앉았다.
 존이 셜록에게 말했다.

 

 "마이크로프트가 말하길 네가 방 밖으로 통 나가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 내가 보기엔 사실인거 같네."
 "쉬려고 왔는데 돌아다니는 건 기력 낭비라네, 존."

 

 셜록은 귀찮은 듯 대꾸했다. 존은 셜록의 퉁명스런 말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의사로서의 소견을 말해보자면, 셜록, 자네는 명백한 운동 부족이야."

 

 자, 나가자구, 라며 열성적으로 셜록을 잡아끄는 존에게 딱히 반항할 이유가 없었다. 다짜고짜 존, 자네와 있으면 자네를 잡아먹고 싶어진다고! 라고 토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말이다.

 

*

 

 셜록과 존은 사냥개 사건을 조사할 때 들렀다가 피를 본-단어 그대로의 피는 아니었지만-계곡 쪽으로는 다시 가보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들은 아예 정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침묵이 깔렸다. 둘 사이에는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존은 다시 셜록에게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셜록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상황-특히 셜록의 변화-도 있고, 마이크로프트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정말로 셜록이 몸이 좋지 않은데 자신이 억지로 바깥으로 끌고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셜록이 입을 열었다.

 

 "내가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나중에 이야기해주겠다고, 지난번에 말했지."
 "그랬지."

 

 셜록이 천천히 말했다.

 

 "내가 비로소 정신을 차린 건 3개월 전이네. 유전자 변화라는 건 일반 대중들의 생각만큼 쉬운 절차는 아니라서,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정양을 해야 했지. 게다가 적응 문제도 있고-알다시피, 햇빛이나 은탄환같은 것 말야-해서 그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어. 또다른 이유로는 현재 런던의 상황이 있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런던을 비롯한 영국의 상황일세. 모리어티가 죽긴 했지만, 그 수하들이 여전히 남아있어. 그 상황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가장 위험한 것은 자네야. 자네는 믿음직한 친구이긴 하지만 만의 하나라는 경우도 고려해서 자네에게 내 생존을 알리지 않은 것이라네."

 

 평소의 독설어린 말투와는 달리, 무뚝뚝하나 조리 있게 설명하는 셜록의 말이 존은 섭섭하긴 했으나, 납득은 갔다. 하지만 또 다른 질문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자살을 한 이유. 그것에 대해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으나, 몸도 좋지 않은 셜록을 추궁하는 것을 삼가자는 의미에서 그는 그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 때 짙은 구름이 끼어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내며 한 곳으로 빛을 뿌렸다. 존이 그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평지에 있는 지형치고는 특이하군."

 

 그곳은 셜록이 사흘 전 가보았던 고지대의 바위동굴이었다. 다소 흥미어린 존의 얼굴을 본 셜록은 말했다.

 

 "한 번 가보겠나?"

 

 존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바람이야?"
 "존, 자네가 궁금해 하는 것 같아서. 근데 '무슨 바람이냐', 라니. 그 말이야말로 무슨 뜻이지?"
 "몰라서 묻나?"
 "몰라."
 "자네가 여간 움직이길 싫어해야 말이지."
 "그건 런던이 여간 지루한 도시가 아니기 때문이지."
 "지루하단 말야? 런던이?"
 "그래. 모리어티가 죽었으니, 이제 더욱 지루해졌겠군."

 

 그거 하나는 섭섭한 걸, 이라고 말하며 벌써 저만치 걸어가는 셜록을 향해 존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지대 쪽으로 앞장서서 가는 그를 뒤따라갔다.

 

*

 

 고지대 바로 앞에 당도한 존은 감탄성을 흘렸다.

 

 "이야, 정말 높구만."

 

 존이 감탄하는 사이 셜록은 훌쩍 바위를 짚고 고지대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위로 올라가면 바위 동굴이 있다고."

 

 셜록의 말에 존이 놀라며 말했다.

 

 "이미 와 본 거야?"
 "안 와봤으면 내가 어떻게 알겠어?"

 

 존은 고지대의 모습을 한 번 더 눈에 담고는 고지대 아랫부분에 있는 바위를 딛고 올라섰다. 재빠르게 잘도 올라가는 셜록과는 달리 존은 상당히 고전하는 기색이었다.

 

 "아무리 자네가, 그게, 되었다고는 해도, 이거 너무 차이나는 것 아냐?"

 

 어느새 맨 위에 도착해서 존이 올라오는 모습을 구경하던 셜록이 말했다.

 

 "내 몸 탓이 아니라 자네 몸을 탓해야 할 걸.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무려 3.5파운드나 쪘잖나. 자네야 말로 운동 부족 아닌가?"

 

 인정하긴 싫지만, 셜록의 눈썰미는 정확했다. 게다가 황무지로 나오기 전에 존이 셜록에게 한 말을 그대로 받아치고 있다. 존이 속으로 귀신같은 자식!이라고 욕을 하며 항변했다.

 

 "3파운드야!"
 "그런가? 흠."

 

 셜록이 들으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저 자식 이걸 의도하고 여기 올라오자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존은 전직 군인의 힘을 보여주마! 라며 열정적으로 고지대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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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존의 생각과는 다르게, 셜록의 난데없는 액션 활극은 좀 더 급박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셜록은 존을 향한 '식욕', 다른 말로 하면 '흡혈 욕구'를 참지 못하고 방을 뛰쳐나왔던 것이다.  존이 머리를 갸웃하며 자신에게 차를 권하던 순간에도, 존이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하는 그 순간에도 셜록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존의 흰 목을 움켜쥐고 우악스럽게 물어 상처에서 피를 빨아 마시는 상상이 연속적으로 재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존은 죽었다고 생각한 셜록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너무도 놀란 상태였으며, 일면 그에 감격한 것도 있었기 때문에 항시 갖추고 있던 경계 의식이나 자기 방어랄 것 하나 없이-본래 존은 셜록 앞에서만큼은 조금 무른 점도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셜록 앞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런 존의 체향이 가득찬 방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간 정말로 충동에 못 이겨 눈이 홱 돌아간 나머지 존의 목덜미를 물어뜯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간신히 남은 이성 한 자락을 잡고 여기서 벗어나야겠다, 라고 결정하고 대체 어떻게 존과 작별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정신없이 뛰쳐나온 셜록은 이만하면 존의 플랫에서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확보했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낯선 건물들. 자신은 거의 겪어보지 못했던 높은 위치에서 그것들을 시야에 담아내고 있었다.
 한숨 돌린 셜록은 건물 위를 훌쩍 뛰어넘어 여기까지 이른 자신의 행각을 아무도 보지 못했기를, 설사 보았다 하더라도 인간 개인 특유의 무관심으로 제발 그 광경을 의식 저편으로 지워버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

 

 자신의 방에 돌아온 셜록은 일단 냉장고를 열었다. 괴상한 망상으로 들끓는 자신의 머리를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심으로서 식혀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냉장고 안에는 물이라곤 한 병도 없었고 마이크로프트의 과도한 배려의 산물이 분명한 혈액팩만 꽉꽉 들어차있었다.
 망상으로 인해 흐려진 머리는 이제 마이크로프트를 향한 분노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

 

 일주일 후, 마이크로프트는 귀국하자마자 셜록이 머무르는 방으로 곧장 향했다. 비가 오던 안 오던 항상 지참하고 다니는 검은 장우산을 한 손에, 그리고 외국에서 구해온 수입산(?) 혈액팩이 신선하게 보존된 채 들어있는 서류가방을 다른 한 손에 든 채 셜록의 방문을 연 마이크로프트는 열린 문 바로 뒤에 기다렸다는 듯 서있는 셜록을 발견했다.
 마이크로프트가 놀람으로 인한 감탄사 한 마디 내뱉을 틈도 없이 셜록은 사나운 표정으로 급작스럽게 마이크로프트의 멱살을 움켜쥐고 자신의 코를 마이크로프트의 목덜미로 거칠게 파묻었다. 셜록의 기행의 의도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자신의 체취를 들이마시며 킁킁거리는 내내 온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서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힐끗 곁눈질하는 마이크로프트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공포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괴이한 작업이 끝나자 셜록은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흐트러진 마이크로프트의 양복 깃을 성의없이 툭툭 매만진 후에 뒤쪽에 놓여있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런 셜록을 바라보던 마이크로프트가 물었다.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군?"

 

 마이크로프트는 침대 머리맡 기둥에 우산을 기대어놓고 서류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넥타이를 두 손으로 단정하게 고쳐매며 말했다.
 제의라도 치르듯 넥타이를 정성들여 매는 마이크로프트의 손놀림을 놓치지 않고 지켜본 셜록은 그가 넥타이를 다 매기를 기다렸다가 선언하듯 말했다.

 

 "바스커빌로 가야겠어."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을 이채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잠시 셜록을 관찰하던 그가 말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모르겠구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부연 설명을 기다리는 태도였다. 셜록은 다문 입을 떼고 싶지 않은 눈치였지만 바스커빌로 간다면 어차피 사정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직하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사연을 털어놓았다. 존의 플랫을 방문하여 그간의 사정을 대강 털어놓았고, 존과 해후를 나누던 중 존의 체향에 주체할 수 없이 강한 식욕을 느끼고 도망쳐 나왔다는 것을 말이다.

 

 "아까는 혹시 내가 존이 아닌 사람의 피에도 같은 정도의 식욕을 느끼는지 테스트해본거야."

 

 셜록의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에 다소의 허세가 섞여있다는 것을 간파한 마이크로프트는 속으로 조그맣게 미소지었다. 두뇌와는 별개로 정신연령이 한없이 어린 그의 동생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분류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조금이라도 남에게 지는 일을 싫어하는 것은 여전했다. 지금의 셜록의 뇌내는 평소의 깔끔하게 정돈된 서랍장같은 것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찾으려는 것이 무언지 알지도 못하면서 필사적으로 그것을 찾느라 온통 헤집어지고 뒤집힌 서랍장과 같은 상태일 것이었다. 게다가 무엇을 찾으려는지 알지 못했던 것의 당연한 급부로, 찾으려던 것은 여전히 찾지 못한 상태로 어지럽혀진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양복 베스트의 호주머니 안의 회중시계를 꺼내 뚜껑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런 후 그는 짐짓 자애로운 표정을 지어 얼굴에 드러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다시피 나는 유럽 연합의 결속을 다지느라 바쁘다만, 동생의 일을 나몰라라 할 수는 없지."

 

*

 

 바스커빌에는 이제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방문하는 셈이다. 그 중 한 번은 의식 불명인 상태였기 때문에 기억나는 건 없었지만.
 이번에는 신원 추적 경보가 울릴 걱정없이 들어가는 것이라 긴장감이 덜했으나, 그와는 다른 종류의 긴장감 때문에 셜록은 표정이 굳어있었다. 최하층 특급 기밀 연구소 안으로 진입한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책임자와 조우했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다시 오셨군요."

 

 물론 셜록은 이 남자를 본 기억이 없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남자가 내민 손을 살짝 잡고 악수했다. 셜록은 흰 고무장갑을 낀 채 손을 내밀었던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에 셜록의 시선이 집중된 것을 알아챈 그가 말했다.

 

 "여기선 거의 장갑을 끼고 있기 때문에...미처. 결례를 용서하세요."

 

 남자는 살짝 목례한 후 돌아서서 앞장서며 길을 인도했다.

 

*

 

 혈액 검사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간단한 검사를 한 후 마이크로프트와 홀 박사-가운에 이름표가 달려있지 않았기 대체 이 연구소에서 어떤 위치인지 가늠할 수 없었으나 출입 카드에 적힌 이름을 셜록은 간신히 볼 수 있었다-는 잠시 둘이서 쑥덕거렸다. 그러나 그 둘은 셜록의 인간 이상으로 신장된 청력을 간과한 듯 했다.

 

 "일단 하나하나 시험해보죠."
 "이번에 외국에서 공수해 온 것도 있으니 실험군이 제한적이지는 않을 거요."

 

 셜록을 하얀 실험용 생쥐로 삼아 이런저런 짓을 해보려는 욕망이 발산되는 것이 역력히 느껴지는 것에 셜록의 미간에 약간의 주름이 잡혔다.
 잠시 후 홀 박사는 수십 장의 페트리 접시에 각각 다른 혈액 샘플을 놓고는 셜록의 앞에 진열했다. 마이크로프트가 거들며 말했다.

 

 "자. 냄새를 맡아 보라구."

 

 셜록은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며 말했다.

 

 "지금 이게 가당찮은 일이 아니면 뭐라고 생각해?"
 "일단 냄새부터 맡아보렴."

 

 마이크로프트의 재촉과, 홀 박사의 기대어린 눈길에 부응하고픈 생각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지만 셜록은 제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페트리 접시 쪽으로 코를 살짝 갖다 대었다. 마이크로프트와 홀 박사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몇 십 개에 달하는 접시 위로 종횡무진하던 셜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겨워."

 

 간결한 감상에 홀 박사와 마이크로프트는 조금 실망한 듯 했다. 대체 어떤 맥락에서 실망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셜록은 이제 혈액 감별은 끝났나 싶어 다시 철제 의자에 앉았지만 그 둘이 다시 전의를 다지며 이미 실험대 위에 벌려놓았던 페트리 접시를 싹 쓸어 싱크대에 처넣고 냉장고와 서류가방 안쪽에서 다른 혈액 샘플들을 무더기로 꺼내는 것을 보며 셜록은 벌써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스꽝스럽게만 느껴지는 짓이었지만 이왕 한 거 성심성의를 다해주겠노라고 마음속으로 결심한 셜록은 정말로 열심히 피비린내를 참고 견뎠다.
 약 150개 정도의 샘플을 거쳤을 때, 셜록은 코가 지끈할 정도였으나 아직 감별하지 않은 편의 접시에서 향긋한 느낌이 코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셜록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거."

 

 셜록이 손가락으로 문제의 접시를 가리켰다.
 마이크로프트와 홀 박사의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이며 셜록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홀 박사가 다가와 접시 아래에 써놓은 일련번호를 읽고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보고는 마이크로프트를 불렀다. 화면에 뜬 결과를 읽은 마이크로프트의 시선이 위아래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포착한 셜록은 궁금함을 숨기며 태연하게 물었다.

 

 "누구 피인데 그래?"

 

 고개를 든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을 향해 손짓했다. 직접 와서 확인하라는 뜻이었다. 셜록은 그 말대로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컴퓨터 화면을 확인했다.

 

 '2011.00.00 존 해미쉬 왓슨'

 "?!"

 

 셜록은 입을 뻐끔거릴 뻔한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커진 눈으로 경악했다는 표시를 했다.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네가 아는 그 존 왓슨이 맞아."

 

 셜록이 소리쳤다.

 

 "혈액 샘플은 대체 언제 어디서 빼돌린 거야?"

 

 엉뚱한 부분에서 화를 내는 셜록을 마이크로프트는 가볍게 무시해주기로 했다.

 

*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연구소를 나온 셜록과 마이크로프트는 달도 기운 늦은 밤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바스커빌의 작은 숙소에서 머무는 편을 택했다.
 각설탕은 이미 뜨거운 커피의 온도 때문에 녹은 지 오래일 터인데 티스푼으로 커피를 휘휘 젓는 행동을 반복하는 셜록을 보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무얼 그리 고민하는 거니."

 

 셜록은 눈동자를 잠깐 마이크로프트 쪽으로 굴렸다가 다시 찻잔 안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투명한 갈색 액체가 조용히 소용돌이를 그리고 있다. 셜록의 대답은 없었으나 마이크로프트는 계속해서 말했다.

 

 "존 때문이지?"

 

 찻잔에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있던 셜록의 눈빛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앵그르의 그림 안의 여인들처럼 긴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앉아있던 마이크로프트가 은빛 담비처럼 우아하고 유연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켜 곧게 섰다. 셜록의 옆으로 사뿐 하는 발걸음으로 다가간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어깨에 상냥하게 손을 얹었다. 셜록은 그다지 뿌리칠 의지없이 그의 형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살짝 셜록을 토닥이며 나직하게 말했다.

 

 "오, 셜록……."

 

 그는 탄식하듯 말꼬리를 흐렸다. 곧이어 다물었던 입을 다시 연 그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런저런 일에 너무 구애될 것 없단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귓가에 살짝 고개를 기울여 친절하게 속삭여주었다.

 

 "먹고 싶으면 먹으렴."

 

 셜록은 고개를 돌려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혀 위화감이 없는 상냥함, 그리고 심지어 자애와 일종의 기품마저 느껴지는 마이크로프트의 정교한 가면을 셜록은 서리처럼 차가운 눈초리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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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존."

 

 부정할 수 없이, 그건 셜록의 목소리였다.
 존은 자신의 청신경을 타고 가서 뇌가 내린 인식판단을 믿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흔한 표현이지만,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존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창밖의 셜록의 목소리가 말했다.

 

 "거기 있는 거 알아."

 

 셜록의 목소리는 지극히 담담했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존은 그 목소리에 마치 놀림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창문을 열어, 존."

 

 바깥의 목소리가 말했다. 존은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창가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 존은 팔을 천천히 뻗어 닫힌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젖혔다.
 달을 등진 남자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
 '그'가 부재했던 일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는 전혀 변화없는 모습으로 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걸친 코트자락은 바깥의 찬바람에 날려 펄럭인다. 여미지 않은 코트 사이로 즐겨입던 와이셔츠가 보인다. 어김없이 풀어내린 두세 개의 단추를 지난 존의 시선은 그의 얼굴로 향했다.
 존이 입을 잠깐 벌렸다가 다시 다물고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셜록."

 

 그 한 마디를 어렵게 뱉어낸 존은 차마 셜록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 나야."

 

 드물게 보이는 다정한 눈길로 존을 바라본 그는 설명조로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나는 유령이 아니야. 자네가 유령을 볼 만한 영감을 지니지도 않았다고 생각하네."

 

 분명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던진 것이 분명한 말에도 존은 웃을 수가 없었다. 존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런 존을 응시하던 셜록이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창문을 열어줘."

 

 멍하니 서 있던 존의 손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딸깍, 하고 창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창이 열렸다. 열린 틈으로 급작스럽게 찬바람이 쏟아져들어왔다가 곧 잔잔해졌다. 어느새 창 가까이에 다가선 존이 셜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셜록의 곱슬기있는 검은 머리카락으로 갖다 댄 떨리는 손끝은 셜록은 거절하지 않았다. 머리칼의 감촉을 확인하는 듯 했던 손은 셜록의 창백한 뺨으로 향했다. 그 손길도 역시 셜록은 거절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찬바람을 쏘여 얼음처럼 차가워진 뺨에 닿은 존의 손은 불에 덴 듯 뜨거운 촉감을 전해주었다. 망설이듯 머뭇거리던 손이 용기를 내어 대담하게 셜록의 뺨을 쓰다듬었다. 잠시 그 손길을 가만히 느끼던 셜록은, 그의 뺨 위에 얹힌 존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손은 뺨처럼 차갑다. 어쩌면 더 차가울지도 모르는 그 손으로, 셜록은 존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빛을 발하는 투명한 눈으로 셜록이 존을 직시했다.

 

 "들여보내 주게(Let me in)."

 

*

 

 "들여보내 주게."

 

 망설이던 존은 들어오라는 듯 말 없이 창문 옆쪽으로 비켜섰다. 셜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들어오라고 말을 해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어."

 

 존이 물었다.

 

 "어째서?"

 

 셜록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제발, 그렇게 해줘(Please, do as I said)."

 

 존은 매우 얼떨떨했다. 지금 갑자기 나타난 셜록의 존재 자체도, 대체 어떻게 받침대 하나 없는 창문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도, 그답지 않게 집착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존의 허락을 요구하는 것에도.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전직 군인답게, 일단 그는 자신의 눈 \앞의 셜록이 허상인지 실제인지를 제쳐놓고, 상황에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셜록이 그토록 대답을 요구하는 데도 나름의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 존은 입을 열었다.

 

 "들어와도 좋아(You can come in)."

 

 존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셜록은 그제야 창턱을 손으로 짚고 다리를 방 안으로 들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셜록은 싸늘한 바람이 들이치는 창문을 닫았다. 본래 따뜻했던 방은 셜록과의 조우로 인해 오래 열어놓은 창 때문에 다소 온기가 식었다. 똑바로 선 셜록은 미지근한 공기를 코로 들이마셨다. 아직 완전히 정착한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 존의 체취가 배어가고 있는 방이다. 무늬 없는 올리브그린색의 벽지. 아주 싸구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급도 아닌 몰개성한 가구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는 셜록에게 존이 말을 걸었다.

 

 "차 한 잔?"
 "오."

 

 셜록은 동의하는 표시의 감탄사를 밋밋한 어조로 말하며 멋대로 의자 하나를 끌어다 앉았다. 존은 전기 포트에 물을 채우고 남은 의자에 앉았다.

 

 "자, 그럼 설명해."

 

 비록 주어가 빠진 문장이긴 했지만 무엇을 설명하라는지 모를 셜록이 아니었다. 그러나 셜록은 지금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어 존의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셜록?"

 

 존이 의아한 표정으로 무언가에 몰두해 멍한 표정의 셜록을 부르자 셜록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설명하자면 길어."

 

 주의를 환기하고 말문을 열긴 했지만 셜록은 자신의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 아니 향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셜록은 코를 조용히 킁킁거렸다. 그래, 이 냄새다. 이 냄새가 코에 환각처럼 맴돌았기 때문에 셜록은 세바스천 모런이 런던을 활보하고 다니던 말던 자신이 죽었다고 알려졌다는 팩트(fact)까지 모조리 무시하고 이성을 내팽개친 채 존의 새로운 플랫으로 냉큼 달려온 것이었다. 그동안 몰래몰래 베이커 가에 들락거렸던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을 셜록은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 셜록을 존의 체취 생각을 자신의 뇌리에서 지우려고 애쓰며 존에게 말했다.

 

 "존."

 

 존이 셜록을 가만히 바라보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안그래도 이쪽으로 짙게 풍겨오는 존의 향긋한-셜록은 자신 스스로가 이런 표현을 생각했다는 것에 대해 더욱 놀랐다-체향 때문에 정신이 사납던 셜록은 이성의 지도편달에 따라 상체를 의자 뒤쪽으로 물리며 말했다.

 

 "건물에서 떨어진 직후, 병원으로 갔지만 이미 회생이 불가능했다고 하더군. 결국 마이크로프트는 궁여지책으로 나를 바스커빌 연구소로 데려갔어. 그리고 내 혈액형과 맞는 밤피르(Vampyr) 유전자를 주입했다는군. 지속적인 수혈로 인해 나는 되살아날 수 있었어."

 "밤피르?...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셜록을 응시하는 존에게 셜록이 확답했다.

 

 "내가 뱀파이어가 되었다는군."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그런 말을 하는 셜록을 과연 믿어주어야 할지 존은 조금 회의감이 들었다. 어버버하던 존은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있잖나, 셜록. 나는 자네가 유령이라고 해도 딱히 놀라지는 않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한 존에게 셜록이 생전 그대로의 말투로 말했다.

 

 "그렇지만 말이야, 이게 사실일세. 자네는 방금 나를 만져보았고, 그 실체의 유무를 확인했잖나. 그리고 좀 전에도 말했듯이, 자네는 유령 등의 영체를 느끼는 영감은 없다네. 이제 그만 내가 실재한다는 걸 믿어줬으면 하는군."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존은 조금이나마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왜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 적어도 나한테만큼은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냐?"

 

 분개한 듯 열을 올려 말하는 존에게 셜록이 말했다.

 

 "그 점은 정말...미안하네."

 

 셜록이 힘겹게 사과의 말을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 자세로 침묵을 지키는 셜록에게 존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중에 다 설명하길 바랄게."

 

*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커피포트 안에 담겨있던 물은 이미 끓어서 따끈해졌다. 난데없이 한밤의 다과회를 연 둘은 조용히 차를 홀짝였다. 존이 셜록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원래 자네가 인간의 범주에 속해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네만, 이제 진짜로 인간이...아니게 된 거군."

 

 셜록이 존을 흘끗 쳐다보고 다시 찻잔으로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질문해도 좋아."

 

 기다렸다는 듯 존이 다다다 질문을 쏟아냈다.

 

 "뱀파이어라면 햇빛을 받으면 타죽는 게 맞는 건가? 아니면, 햇빛 아래에서 자네의 살갗이 반짝이기도 하나? 힘이 세진다던가, 시력이 좋아진다던가 신체적인 파라미터가 향상되나? 무언가 특수한 초능력이 생기기도 하나?"

 

 도대체 하는 질문들이 왜 이렇게 천편일률적이란 말인가? 마이크로프트도 거의 흡사한 질문을 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게다가 각 질문의 순서도 유사했다-셜록이 작게 혀를 찼다. 게다가 살갗이 반짝이지는 않느냐니. 셜록이 한심하다는 눈길로 존을 보며 말했다.

 

 "자네도 그 망할 영화를 본 건가? 고자인 남자주인공과 괴물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 말이야."

 

 셜록의 비난에 존이 움찔하며 말했다.

 

 "그저 심심풀이로 본 것뿐이라고."
 "흠?"

 

 셜록이 조롱조로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건 잠시뿐이었으며 곧이어 셜록은 존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햇빛을 받아도 타죽지 않네. 햇빛 아래에서 피부가 반짝이지도 않아. 근력이 대폭 향상되고 시력 등 오감도 일반인에 비하면 월등히 좋아진 건 맞아. 자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초능력은 생기지 않았다네."
 "그렇군..."

 

 존이 대답을 하며 셜록을 바라보았다. 셜록은 존이 자신을 괴물이나 서커스의 광대를 보는 눈길로 바라보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참고로 아까 바깥에서도 상승된 근력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지."

 

 그래서 창문 바깥에서 그렇게 매달려 있을 수 있었던 거군...하고 납득하는 존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본 셜록은 갑자기 입 안에 군침이 감도는 것을 느끼고 화들짝 놀랐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놀란 기색을 숨기며 찻잔을 입에 갖다 대었다. 그러나 저절로 존의 목덜미로 향하는 시선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존은 자신의 목에 고정된 셜록의 시선 따위는 알아채지도 못 한 듯 했다. 그는 머뭇거리며 어떤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질문이 무엇인지는 당연한 것이었다. 셜록은 존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먼저 대답했다.

 

 "피는 아직까지 안 마셨다네. 딱히 마실 필요성도 없어보여."
 "?!...어떻게?...아니다...됐어."

 

 생각을 간파당한 존의 체념은 빨랐다. 이런 일을 겪은 지 일 년이 넘기는 했지만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존이 다른 질문을 하려고 셜록을 향해 몸을 굽히는데 셜록이 갑자기 시계를 보며 말했다.

 

 "미안한데, 존, 지금 가봐야겠어."
 "뭐?"
 "나중에 다 설명해줄게. 지금은 안 되겠어."

 

 의자를 떨치고 창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에게 존이 황급히 말했다.

 

 "잠깐, 셜록! 어딜 가는 거야?"

 

 셜록이 창가에 다리를 걸치며 말했다.

 

 "연락할게."

 

 그는 바깥으로 훌쩍 뛰었다. 존은 황급히 그가 있었던 창문으로 다가갔다. 존은 주변을 살폈다. 아래쪽으로 뛰어내린 줄 알았건만, 의외로 셜록은 건물 위에 올라가 있었다. 신체능력이 좋아졌다더니 과연 그런 모양이었다. 그는 종잇장처럼 얇은 구름에 살짝 가리운 달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달빛이 그의 실루엣을 묘하게 반사시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존은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다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창문을 닫았다.

 

 "하여튼, 멋있어 보이는 척은 혼자 다 한다니까."

 

 지금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굉장히 겉멋이 들어 보인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고 존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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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존은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자신의 새 방의 창문에 흘린 지 얼마 안 되는 핏방울이 떨어져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생각이란 것을 하려고 노력해봤자 성과가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은 존은 커피나 한 잔 마시면서 다시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그는 풀어진 가운을 다시 여미고 허리끈을 묶고 부엌으로 향했다.

 

*

 

 셜록은 마이크로프트가 준 방에서 널브러져 누운 채로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을 모은 채로 천장을 보던 셜록은 문득 한 쪽 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눈앞에 있는 건 흉한 색이 되어버린 손이다. 보랏빛과 검붉은 색이 어우러진 끔찍한 뼈다귀같은 손. 손을 쥐었다 핀다. 까드득 하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손이 오므렸다가 펴진다. 당시 존의 새로운 플랫 안으로 집어넣었던 부분만 피가 빠져나오고, 경계 바깥에 위치했던 손목 위로는 멀쩡한 피부다.
 햇빛에 정말로 타죽을지 아닐지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밤의 어둠을 틈타 주로 활동했던 셜록의 피부는 핏줄이 보일 정도로 하얗다. 허황한 영화에 등장하는 흡혈귀들처럼 빛을 받은 피부에서 다이아몬드같은 광채가 난다거나 손톱이 투명하다거나 안구 전체가 동공으로 뒤덮이는 상태는 나타나지 않는 점에 셜록은 다소 안도했다. 그러나 오감이 상당히 발달한 것은 분명해보였다. 손목 아래 바싹 마른 부분으로 서서히 혈류가 확장되면서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확연히 재생이 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회복 속도를 높이려면 피를 마셔야 할게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렇게 말했지만, 셜록은 다른 사람의 체액을 함부로 마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셜록은 본능적으로 혀로 송곳니를 쓸며 방 한쪽 구석에 새로 설치된 소형 냉장고를 쳐다보았다. 스쳐지나가는 눈길로 냉장고를 보던 셜록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고 정신을 차린 존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일층까지 터벅터벅 걸어 내려온 존은 식탁에 앉아 준비된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를 두 개 째 만들던 존은 뒤이어 내려온 또 다른 세입자를 보고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부스스한 머리의 여자가 하품을 하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비틀거리며 의자에 털썩 앉은 그녀는 힘없는 손길로 빵조각을 집어 잼과 버터만 쓱쓱 바른 채로 바로 앞의 존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스스럼없이 입에 우겨넣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름은 아직 몰랐지만 헝클어진 머리에 보헤미안 풍의 프린트 원피스를 걸친 그녀는 존의 바로 아래층에 사는 여자였다. 여자는 여윈 볼이 터져 나올 듯 우걱우걱 빵을 씹고 꿀꺽 삼킨 후 말했다.

 

 "그런데 어제 새벽에 이상한 소리 들으셨어요?"

 

 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왜요? 무슨 소릴 들으셨기에?"

 

 여자는 입가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훔치며 말했다.

 

 "듣기만 한 게 아녜요. 이상한 걸 봤다구요."

 

 여자가 소곤거렸다.

 

 "어제 잠이 안 오길래 누워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창문으로 휙 하고 검은 그림자가 지나가더군요. 새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건 새의 크기가 아녜요."

 

 흥미가 생긴 존이 물었다.

 

 "얼마 정도의 크기던가요?"
 "사람만 했어요. 제 생각엔 도둑이 아닌가 싶어요."

 

 별 대단찮고 평범한 추리를 마치 위대한 사상을 토로하듯 말하는 그녀에게 적당히 응수를 해 준 존은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책상 앞의 의자에 앉은 존은 아까 여자가 한 말을 생각해보았다. 곧바로 뇌리에 떠오른 건 '눈먼 은행원'사건이었다. 그때는 고층 건물을 자유자재로 침입해 사람들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져서 자신과 셜록이 사건을 맡았었다. 그러나 그 사건의 주범이었던 '블랙 로터스'라는 조직은 이미 괴멸되었고, 지금의 일과는 엄연히 다른 점이 몇 가지나 되었다. 일단 창문 쪽의 건물 외벽은 당시와는 달리 디딜 만한 곳이 없다. 게다가 어떻게든 벽을 타고 올라왔다 치더라도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피 한 방울만 흘리고 간 것은 가장 이해할 수가 없는 점이었다. 경고의 표식을 놓아둔 것도 아니며, 영문 모를 혈흔만 남기고 갔다는 것이 더욱 이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렸다.
 존은 책상에 턱을 괸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

 

 셜록은 자신이 햇빛에 타죽지 않고 화상도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곧바로 자신의 방에 둘러져있던 검은 천들과 창문을 막아놓은 판자들을 떼어내려고 했으나 마이크로프트가 만류했다.

 

 "이것마저 없으면 뱀파이어답지가 않잖니."

 

 가만 두면 침대 주변에 은십자가나 마늘 화환이라도 장식해 놓을 것만 같은 마이크로프트의 열의에 셜록은 같잖다는 표정과 함께 '마이크로프트 혹시 흡혈귀 페티시즘이라도 있어?'라는 말 하나로 간단히 그를 제압하고 침대 주변을 몇 겹이고 감고 있던 천을 뜯어내었다. 걷어내고 또 걷어내어도 끊이지 않고 펼쳐지는 휘장-게다가 그 천이 흔한 원단 시장에서 볼 수 없는 무척 귀한 원단이라는 사실에도-에 셜록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기와도 비슷한 끈기를 가지고 족히 몇 십 미터는 되는 길이의 휘장을 전부 뜯어낸 셜록은 시무룩한 표정의 마이크로프트를 외면하며 중얼거렸다.

 

 "영국의 세금이 이런 데에 쓰인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야 할 텐데 말이야."

 

 아직도 고딕풍의 콘셉트를 포기할 수 없었던 마이크로프트는 어느 샌가 고풍스런 의자를 가져와 앉으며 말했다.

 

 "근데 셜록, 피는 안 마시는 거냐?"

 

 고상한 척 표정을 짓고 있지만 궁금한 기색이 역력한 마이크로프트는 셜록 전용 연구원이라도 된 듯하다.

 

 "안 마셔."

 

 퉁명스럽고 짧게 대답한 셜록에게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형을 수고스럽게 하지 말고 어서 네 상태에 대해서 좀 말해 봐라."

 

 '내가 왜?'라며 거절하려던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의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말했다.

 

 "피를 안 마신다고 해서 배가 고프다거나 형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지는 않아. 체내수분이 배출되는 양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약간의 수분 보충은 필요해. 일반 음식은 먹든 안 먹든 크게 상관은 없어."

 

 아무리 피가 고프더라도 마이크로프트의 피는 셜록이 가장 마지막 수순으로 고려할 것이기도 했다.

 

 "근력이라던가, 그런 변화는?"

 

 셜록은 연이은 그의 질문에 약간 짜증스런 기색이었으나 순순히 간략하게 대답했다.

 

 "스파이더 맨이 된 기분이야."
 "벽타기라도 해 본 거냐?"

 

 마이크로프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셜록에게 그가 단정하는 투로 말했다.

 

 "존의 집에 올라가본 거군."

 

 조금 미간을 찌푸렸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셜록은 반박하지 않았다. 질문할 거리는 다 질문하고 답변을 얻어낸 그는 만족한 듯 의자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우산을 집어든 후 방을 나섰다.
 방문을 닫고 나가려던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문을 빼꼼 열고 셜록에게 당부했다.

 

 "함부로 나다니지 마라. 모런 대령이 요즘 런던 중심가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것같으니까."

 

 모런 대령, 세바스천 모런은 뛰어난 무훈으로 유명한 전직 대령이다. 그러나 그의 본모습은 선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리어티의 측근으로 암암리에 2인자로 알려져 있을 정도의 범죄자였으니까 말이다. 모리어티의 사후로 그 암적인 위상이 더욱 커져 그 행보가 점차 과감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셜록은 그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현명하게 처신할 것을 믿기로 했다. 닫힌 문 밖으로 우산을 짚는 소리와 규칙적인 발걸음소리가 멀어져갔다.

 마이크로프트의 발소리가 완전히 이 방이 있는 층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셜록은 형이 가져온 팔걸이의자를 창가로 끌어다놓고 불량한 자세로 기대앉았다. 창밖의 눈 내리는 풍경을 투명한 눈동자에 담은 채 잠시 그 상태를 유지하던 그는 서서히 재생되던 손에 생각이 미쳐 손을 들어보았다.
 손등의 절반가량까지 돋아 올라온 새 살이 보인다.
 이건 아예 손 전체가 해골 같은 손이었을 때보다 더욱 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을 하며 셜록은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재생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피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셜록은 순간적으로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내버려두고 간 소형 냉장고를 흘깃 쳐다보았지만, 아무리 셜록이라도 생판 모르는 이의 피가 담긴 혈액팩을 빨아먹는 짓은 하기가 어려웠는지-그렇다고 팔에 바늘을 꽂는 선택지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곧바로 단념하고 다시 손으로 눈길을 주었다.

 

 -존의 피라면 먹을 만 할 텐데.

 

 찰나 그런 생각이 셜록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의 생각에 자신이 당황한 셜록은 하마터면 아슬아슬하게 앉아있었던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셜록의 이성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그 충동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한 번 자각한 욕념은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부각되기만 했다.

 

*

 

 존은 의자에 담요를 방석삼아 놓고 앉아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았다. 며칠 간 싸늘한 날씨와 잿빛 구름을 드리우던 하늘은 때가 되었다는 듯이 연이어 눈을 쏟아내고 있었다.
 흰색 눈송이가 길을 점차 덮는 모습을 바라보던 존은 컵받침에 내려놓았던 반쯤 식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

 

 마이크로프트는 종종 셜록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지만 지난번 이후로 어떤 비밀스런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셜록은 그동안 마지못해 차리던 예의범절마저 싹 팔아먹은 듯 마이크로프트가 무슨 말을 하건 신경조차 쓰지 않고 혼자만의 상념에 심취해있었다.
 가끔은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지르거나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내는 그를 더 이상 지켜보기가 지겨웠던 마이크로프트는 이참에 국외 출장이나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잔먼지같은 눈가루가 휘날리는 밤이다. 셜록은 언제 미친 짓을 했느냐는 듯 멀쩡한 안색으로 깔끔히 다린 와이셔츠와 항상 입던 진회색 롱코트를 입고 어스름이 짙게 깔린 거리로 나섰다. 코트 깃을 한껏 세워 얼굴을 가린 그는 거리의 사각만을 골라 다니며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경계 바깥의 그림자 속으로 자신을 묻었다.

 

*

 

 오늘따라 존이 살고 있는 하숙집의 세입자들은 찬바람 부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로 외출한 상태여서 항상 바글거리던 하숙집은 어쩐지 텅 빈 느낌이었다. 평소에도 조용했지만 오늘따라 인기척이 드문 집 안에서 존은 외롭게 시간을 보내었다.
 새벽이 다 되어가도록 영화를 줄곧 보던 존은 자신의 감각을 줄곧 간질이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방에서 들리는 인기척이겠지 싶어 재삼 영화에 집중하려던 존은 그 소리가 다른 하숙인들이 내는 소리가 아니며, 이 방 어딘가에서 작게 톡톡, 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귀를 기울였다.
 그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존이 영화를 멈춘 것을 눈치 채었는지 소리는 잠시 잦아들었다. 그러나 톡톡, 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다시 끈질기게 이어졌다.
 존의 오감과 육감은 지금 자신의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 '그것'이 지난번에 자신의 창문가에 핏자국을 남기고 간 바로 그라는 것을 직감했다. 존의 이성은 그 직감을 불신했다. 이는 환청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죽은 이를 애도하느라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지 못한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존의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려는 듯 간헐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린다. 커튼에 막혀 귀에 들릴까 말까 한 크기의 그 소리는 너무 집요하지는 않은 빈도로, 그러나 끊임없이 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존은 섣불리 문을 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일어난 자세로, 차마 창문 쪽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존을 더더욱 그 자리에 얼어붙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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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레스트레이드를 만난 후의 존은 어쩐지 밝아졌다. 셜록이 어딘가에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지나친 우울감에 젖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아있던 그에게 닥쳐온 조울증의 증세일까?
 어떤 것의 여파일지는 존 스스로도 몰랐지만, 일단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

 

 처음에 존은 레스트레이드가 또 다른 사진을 찾아내었다는, 아니면 사실 사진 모서리에 있던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소식을 전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레스트레이드로부터 더 이상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하긴 런던 경시청의 경감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으로 확인된 사람의 행방이나 뒤쫓을 여력은 없을 터였다.
 그렇게 존은 타다 남은 담배꽁초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연기 같은 희망을 포기했다.
 존은 그렇게 셜록의 잔재와 그에 대한 기억을 떨치고 일어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지만, 어쨌든 그 또한 여느 사람들처럼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망자를 기리는 일도, 고인에 대한 그리움도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는 법이고, 이승에 남아 숨 쉬는 자들은 또 제각기 자신만의 죽음으로의 여정을 계속해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이들 중에서는 어리석은 기다림을 되풀이하다가 '어떤 시점'이 되어서 비로소 자신의 살아있는 자로서의 위치를 깨닫는 이들이 많다. 그 예 중 하나로 매우 사랑하던 연인이 죽은 가브리엘 샤넬은 그를 잃은 슬픔에 못이겨 자신이 묵던 호텔방의 모든 커튼, 침구, 테이블보 등의 장식품을 검은색으로 도배했다. 그 애도의 표시가 모두 완성되어 방 안에 장식된 순간, 그녀는 이런 집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을 옮겼다.
 딱히 그녀를 따라한 것은 아니었지만 존은 한 달 후 새로운 플랫으로 이사하기로 정했다. 이 집의 방세는 허드슨 부인이 아무리 너그러이 깎아준다 해도 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존으로서도 아쉽고, 어쩌면 후회할 지도 모르는 결정이었지만, 존은 기억이라는 몇 겹이나 되는 어두운 베일을 헤치고 그를 가두고 있던 장막을 벗어나 한 발 내디디기로 했다.
 그의 결정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

 

 "이렇게 안녕이라니, 아쉽구나."

 

 존의 결정을 들은 허드슨 부인이 말했다. 허드슨 부인은 오늘도 가장 아끼는 자주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조금 눈가 주름이 깊어진 듯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다정하다. 앞으로는 그녀의 모습도 여간해서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존이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하지만 이 방은 한 명이 쓰기엔 너무 넓으니까요."
 "그래…."

 

 허드슨 부인이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존은 부인의 어깨를 손으로 살짝 잡아주며 상냥하게 말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가더라도 여긴 종종 들를 테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아요. 아주머니의 샌드위치와 차 없이 제가 어떻게 살겠어요?"

 

 둘은 작게 웃었다.

 

*

 

 그가 짐 정리를 위해 일단 방 가운데 서서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울리는 일이 드물었던 존의 전화기가 울리고 있었다.
 '발신자 표시 제한'을 본 존은 단번에 마이크로프트인 줄 짐작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또 무슨 일-"

 

 존의 약간은 짜증 섞인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존, 혹시…음."

 

 평소답지 않게 빠른 속도로 말하던 마이크로프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존은 자신의 말을 가로막은 주제에 수화기 너머로 뭔가 말을 하다가 만 마이크로프트의 침묵을 당황한 채로 듣고 있다가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마이크로프트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존."

 

 존은 이 남자가 또 왜 이러나 싶었다.

 

 "존, 혹시…셜록을 봤나?"
 "네?"

 

 존이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갔나, 싶다는 어조로 반문했다.
 수화기 너머로 다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이크로프트는 한숨을 쉬며 미안하네, 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존은 벙찐 표정으로 일방적으로 끊긴 수화기를 잠시 바라보다가 동생이 죽더니 이 남자마저 정신이 나간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전화기를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짐을 어떻게 싸야 하는지 무척 고민하느라 바쁘던 존은 그 일을 묻어버렸다.

 

*

 

 존은 새로 옮길 방의 구조와 자신이 옮길 짐들이 들어갈 자리를 배치하느라 무척 머리가 아팠다. 셜록과 살 때는, 원래부터 셜록이 먼저 갖다놓은 짐들로 방이 엉망진창이었던 데다가, 그가 아무리 정리해도 셜록이 곧잘 다시 어지럽혀놓곤 했었기 때문에 존도 어느 순간부터는 플랫의 정리를 단념했었다. 그래서 허드슨 부인의 골칫거리가 더 커졌었지. 존은 피곤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며 소파에 쓰러져 잠들었다.

 

 새벽 세 시.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이다.
 소리를 내는 이는 유난히 짙은 이 밤의 어둠에 지레 겁먹고 울어대는 길고양이 한 마리 뿐.
 잘 닫혀있던 창문이 조그만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커튼이 약하게 펄럭이려는 것을 검은 인영이 꾹 잡았다. 흐릿한 검은 인영은 찬바람 내음을 풍기며 창문에 걸터앉았다.
 그는 소파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존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가까이 가거나, 멀어지려는 어떤 행동도 자제하면서, 마치 녹은 청동액에 뒤덮여 굳어버린 동상처럼, 해가 뜨기 전까지 고요히 그 자리를 지켰다.

 

*

 

 이 주 후 그는 예정대로 이사를 원활히 마쳤다. 존이 세심히 안배한 대로 이사하는 도중 그릇이 깨지거나 이삿짐센터에 맡겼던 소중한 책들이 화재로 전소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옮긴 짐을 어느 정도 정리하는 것이 끝났다. 물론 존 혼자서 모두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자잘한 짐 몇 가지는 아직 상자 속에 들어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쯤 해도 하루 동안의 노동량으로는 차고도 넘쳤기 때문에 존은 스스로 만족하며 전에 비해 약간 좁아진 침대에 몸을 누였다.

 그리고 그 날의 새벽 세 시, 모든 것이 잠든 시간, 창문이 살그머니 열렸다.
 허나 이번의 침입은 순조롭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온 손은 자석의 같은 극을 갖다 대었을 때처럼 강하게 튕겨나갔다. 인영은 인상을 쓰며 손을 안쪽으로 들이밀었다.
 들어온 하얀 손의 표피에서 한 방울, 한 방울, 핏방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더불어 손에서 피가 빠져나가면서 손이 잘 마른 장작개비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기현상을 알아챈 그는 급히 손을 다시 바깥으로 빼내었지만, 피 한 방울이 그가 모르는 사이 창턱에 떨어졌다. 놀란 듯 손을 앞뒤로 살피던 그는 미처 창문을 닫을 생각도 못하고 형체를 감추었다.
 한 가지 미처 언급하지 못한 사실은, 존이 새로 세든 방은 5층으로, 사다리를 놓지 않는 한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난 존은 반쯤 열린 창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낡은 건물의 상태를 미루어봤을 때 간 밤 강한 바람에 열렸을 가능성을 생각한 그는 경첩과 창문의 걸쇠를 수리하기로 했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경첩이 삐걱이는 소리를 들어보고 창문의 자물쇠 상태를 면밀히 살피던 그는 창턱에 동그랗게 굳어있는 검붉은 자국을 발견했다. 존은 어딘지 익숙한 향기를 느끼며 저도 모르게 손을 갖다 대었다. 아무래도 페인트 자국은 아닌 듯한, 검지손가락 끝에 묻어나온 그것을 바라보던 존은 혀를 내밀어 살짝 핥았다.
 피.
 명백한 피의 맛이었다.

 

*

 

 어두운 방이다.
 설사 빛 한 줄기라도 들어올까 겁이 나는 듯 방 안은 검은색 휘장이 드리워져 있고 휘장 바깥의 창문도 검은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칠흑 같은 방 안의 휘장 속에 웅크린 인영만이 연한 빛깔의 눈을 깜박이며 자리한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 하얀 피부. 길쯤한 얼굴. 목 아래는 시트로 감싸여 뭉덩이진 천 무더기처럼 보인다.
 굳게 닫힌 방문이 열리자,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두터운 휘장에 시야가 가려 있는데도 용케 신원을 확인한 듯 남자는 옆으로 돌렸던 얼굴을 다시 바로했다.
 들어온 장신의 남자는 문이 잘 닫힌 것을 확인하고 휘장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만."

 

 휘장 안의 남자가 말했다. 중얼거리는 듯한 어조에는 미약한 우울감이 감돈다. 다가오던 장신의 남자는 거부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휘장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온다. 스마트폰을 꺼내 손전등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한 그가 웅크린 남자에게 말했다.

 

 "셜록."

 

 남자, 아니 셜록은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보는 빛이 그의 눈을 찌른다. 서서히 눈을 뜬 그가 이불 속에 감추고 있던 손을 꺼냈다.

 

 "설명해, 마이크로프트."

 

 이름을 불린 남자는, 손에 있던 전화를 셜록이 웅크리고 있는 침대에 내려놓고 그 또한 침대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손을 깍지 끼고, 그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제멋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니."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셜록이 미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마이크로프트가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햇빛에 타죽으면 어쩌려고."
 "그런 식으론 죽지 않는다는 건 이미 증명했어. 조금 눈부시긴 하지만 자연 발화 현상은 일어나지 않더군."

 

 차가운 목소리로 툴툴거리며 셜록이 대답했다.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어."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셜록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다정한 척 하지 말고 이 손에 대해서 설명해."
 "전후 상황을 먼저 말해줘야 알 수 있을 텐데 무턱대고 졸라대지 마렴."

 

 떼쓰는 아이를 달래는 듯한 그의 뉘앙스에 셜록은 입을 삐죽였지만 그에게 순순히 사정을 털어놓았다. 존의 새 집으로 찾아가 창문을 열고 손을 들이밀었더니 피가 손에서 빠져나오고 손은 거친 나뭇가지처럼 바싹 말라버렸다는 것을 들은 마이크로프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그 가설이 증명된 거로군."
 "무슨 가설?"

 

 셜록이 묻자 마이크로프트가 대답했다.

 

 "뱀파이어는 초대받지 못한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 혹시 이전 하숙집에 갔을 때는 별 일 없었어? 아니, 그동안 네가 출입한 장소를 전부 말해봐."
 "221B에 갔을 때는 아무 일 없었어. 거기 말고 내가 간 곳은 몇몇 가게뿐이라고. 술이나 음식이 내 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궁금했기 때문이야."

 

 셜록의 말에 마이크로프트가 묘하게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그거 참 다행이구나. 난 네가 인간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가택 침입도 하고 무력 행사도 해 봤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투명 인간>의 주인공처럼. 이를테면, 강도, 살인,..."

 

 흔한 범죄 행위의 예를 읊조리던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셜록은 항변했다. 항변이라기보다는 핀잔에 가까운 어조였다.

 

 "예상이 빗나가게 되어서 유감이군. 나는 형 같은 성품이 아니라서 말야,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지."

 "상상력이 부족하구나."
 "상상력 과잉이 더욱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사소한 공방이 지나가고, 셜록이 말했다.

 

 "그럼, 집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그 집에 들어가면 손뿐만 아니라 내 몸 전체가 이 비쩍 마른 해골 꼴이 난단 말이군."
 "그렇겠지."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셜록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말했다.

 

 "그럼 원래 하숙집에서는 내가 허락된 존재였고, 존이 현재 하숙집에서는 내가 허락받지 못한 존재라는 거야?"

 

 셜록은 간신히 '-나의 존의 하숙집인데 말야?'라는 뒷말을 삼켰다. 마이크로프트가 불편한 심기가 역력히 드러난 셜록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최근에 관찰한 결과로는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한 듯싶더구나. 네가 사라진 지도 이미 일 년 가까이 되었고, 그 정도로 긴 기간의 애도라면 충분치 않을까?"

 

 대본을 줄줄 읽는 듯 감정이 없는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에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셜록의 내부에서, 이미 갈가리 찢겨 없어진 줄 알았던 감정의 편린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 편린은 깨진 파편이 섞여서 뭉친 것과 같아서 이미 그것을 정의하기에는 무리였다. 셜록은 현미경의 렌즈 배율을 높이듯 그것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을 향해 가까이 다가간 그는 연극적인 정중한 태도로 허리를 굽혀 그것을 응시했다.

 기억의 궁전 구석에 남아있던 먼지야, 네 이름을 말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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