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존이 1층의 부엌으로 내려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부엌은 물론이고 연결되어 있는 거실은 흐릿한 조명뿐이었다. 인기척 하나 없이 적막에 싸인 부엌의 조명 스위치를 누른 존은 무의식적으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 밖에는 한 인영이 꼿꼿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 형상이 셜록의 것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챈 존은 쿠키 생각도 잊어버리고 당장에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을 연 존은 셜록에게 거기서 뭐하는 거냐고 말을 걸려다가 멈추어 섰다.
 찬비에 푹 젖은 셜록의 모습은 슬프고도 아련하며 무서웠다. 그의 명료하기 그지없는 눈빛은 몽롱하게 흐려진 채로 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은 존을 향하고 있었지만 존 너머의 어느 지점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존은 그런 셜록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검은 머리칼과 코트는 눅지근하게 늘어져 아래로 물방울을 떨구고 있었다. 존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셜록에게 말했다.


 "셜록."

 존이 말했다.

 

 "거기서 뭐하나."

 

 존의 나직한 목소리에 셜록이 중얼거리듯 답했다.

 

 "미안하네."

 

 순간 빗소리 때문에 잘못 들은 줄 안 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셜록은 절대로 남에게 순순히 사과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존은 곧장 반문했다.

 

 "뭐라고?"

 

 그러나 셜록은 혼자만의 상념에 빠진 듯 계속 중얼거렸다.

 

 "와버리고 말았어. 와서는 안되었는데."
 "셜록, 괜찮아?"

 

 존의 거듭된 물음에 셜록의 눈의 초점이 서서히 돌아왔다. 셜록이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아보이네만, 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존은 꾹 참았다. 그 사이 셜록은 뚜벅뚜벅 걸어와 문가에 몸을 기대고 서있는 존 앞에 섰다.

 

 "들여보내 주겠나?"

 

 존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그의 청승맞은 모습도 그랬지만, 지난번에도 들었던 '들여보내 주겠나'라는 집요하면서도 어딘가 호소 짙은 목소리가 존의 신경을 미묘하게 거스르고 있었다. 셜록이란 남자의 본질은 뭐든 자기 본위대로 하는 그 제멋대로인 성격인데, 그가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은 무언가 모순이 깊게 배어있었다.

 

 "자네 지난번부터 이상한 거 알아?"

 

 셜록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밤의 어둠과 습한 안개 때문에 존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존은 계속해서 말했다.

 

 "들어올 테면 그냥 들어오면 되잖아."

 

 존이 자신이 이상하다 느낀 점을 지적했다. 그 말을 들은 셜록은 묵묵부답으로 존만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묘하게도 부드러운 느낌을 풍겼다.
 조그마한 성냥불이 다 타서 성냥개비만 남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존이 스스로가 너무 까탈스럽게 군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이, 셜록은 의외로 선뜻 존을 지나쳐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셜록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본 존은 그의 옆을 지나간 셜록의 눈에 뭔지 모를 결심이 깃든 것을 보고 순간 움찔하여 그의 모습에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들어온 셜록은 존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바닥으로 빗물이 떨어졌다. 나무 바닥이 동그랗게 짙은 색으로 점점히 물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존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느꼈다. 이상할 뿐 아니라, 무언가 잘못되었다.
 불빛 하나 없는 현관 아래의 셜록의 머리에서부터 검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 줄기가 흐르는 것을 시작으로 그 액체는 점점 더 많이 쏟아져내려왔다.
 바닥은 이제 물방울로 인해 젖는 것보다 더욱 어두운 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어두운 색은 불길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작은 웅덩이는 서서히 그 면적을 넓혔고, 셜록은 그 위에 선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존을 바라보기만 할 뿐, 이를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존은 그제야 셜록에게 뭔가 금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금제는 분명히, 셜록이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면서 그에게 덮어씌워진 굴레일 터였다. 왜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존은 스스로를 원망하며 곧바로 소리쳤다.

 

 "들어와도 돼! 들어와도 된다고, 셜록..."

 

 전신이 피에 젖은 셜록은 다소 수척해보였다. 셜록은 비틀거리며 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피비린내가 어깨를 적시고 무겁도록 코끝에 와 닿는 것을 느끼며 존은 셜록을 감싸 안았다.
 한 쪽 어깨가 따스했다.

 

*

 

 급히 가져온 수건에 물을 적셔서 바닥에 떨어진 빗물 섞인 피와 셜록에게 묻은 피를 얼추 닦아낸 후 존은 셜록이 가는 곳마다 핏자국이 남지 않도록 주의하며 자신의 플랫에 있는 욕실로 셜록을 들여보냈다. 셜록이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욕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문을 닫는 것까지 지켜본 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바로 눈 앞에서 생생히 벌어지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도 가지 않을 지경이었고, 아직까지도 심장이 두근두근한 것이 가슴이 덜컹거린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며 존은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문득, 존의 머릿속에 셜록이 나타나면 온갖 일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벌써 셜록이 없었을 때에는 대체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 싶을 정도이다. 존은 공기가 빠지는 소리를 내며 작게 웃었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한 미소를 입가에 걸친 채로 존은 셜록이 들어간 욕실 문을 응시했다.
 잠시 후 따뜻한 물로 온몸을 적신 탓에 희끄무레한 김이 올라오는 셜록은 존이 빌려준 쥐색 가운을 두르고 욕실 문을 열었다. 뺨은 온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붉었지만 가운 바깥으로 드러난 다른 부분은 눈에 띌 정도로 희었다.
 존이 그를 부축하려고 곁에 다가갔지만 셜록은 혼자서도 몸을 지탱할 수 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다시 소파에 어정쩡하게 앉은 존은 맞은편에 앉은 셜록을 향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의 시선을 보내며 몇 번 입을 뻐끔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괜찮아?"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해쓱한 안색의 셜록에게 차마 다그칠 수 없었던 존이 조심스럽게 셜록에게 물었다. 셜록은 의자에 눕다시피 앉은 채로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그건..., 뭐였어?"

 

 본래에도 군살이 없었던 셜록이 이제는 야위어버린 얼굴을 힘겹게 들며 말했다.

 

 "나도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남의 집에 들어갈 때 허락을 안 받고 들어가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야."

 

 뱀파이어는 초대받지 못한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속설이 진짜일 줄이야, 라고 존은 한순간 생각했다. 그러다가 셜록의 실혈량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을 상기한 존은 느긋한 생각일랑 관두고 일단 셜록에게 뭐라도 좀 먹이기로 했다. 그러나 곧이어 셜록은 여느 사람이 아니라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떠올린 존은 일어나려던 것을 멈추었다. 음식이 아니라 피를 먹여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누구의 피를?
 셜록은 존이 일어서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다가 무엇을 떠올린 듯 다시 의자에 앉는 모습을 지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가 입을 떼었다.

 

 "폐를 끼쳤네."

 

 힘없는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말투는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셜록의 기력이 쇠했다는 징후를 너무나도 완연히 보여주는 납빛 안색을 본 존의 얼굴빛 또한 어두워졌다. 셜록은 그 변화를 다른 것으로 해석한 듯 말했다.

 

 "걱정 마. 지난번과 같은 일은 저지르지 않을 테니."

 

 오해를 바로잡아주고 싶었지만, 속마음으로 셜록이 또다시 자신의 피를 마시려들지 않을까 조금 두려워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존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망설임 후 존이 물었다.

 

 "사실 그…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었어."

 

 셜록은 오, 하고 짧게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일'이란 바스커빌에서 있었던 일임을 굳이 콕 짚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존은 셜록이 이렇게 늦게서야 나타나기 전까지 그 일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쩐다, 하고 셜록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한참동안 입을 다문 채로 앉아있었다. 수많은 어휘와 표현이 그의 머릿속에 죽죽 나열되며 또한 나타난 속도만큼이나 금방금방 스쳐지나갔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어떤 것도 그 상황을 해명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단어처럼 보였다. 그는 그답지 않게 어물거리며 어떻게 존에게 대답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평소에 셜록이 누군가 자신의 말에 끼어드는 것을 불허하겠다는 듯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는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존은 인내심을 가지고 셜록의 대답을 기다렸고, 셜록은 조금 후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날은…내가 자제하지 못했어."
 "내 피를 마시고 싶다는 그걸?"

 

 어렵사리 입을 연 셜록에게 존이 지난 번 바스커빌에서의 일을 직접적으로 상기하는 어구를 입에 담자 셜록은 불편하고 수치감을 느끼는 듯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긍정했다.

 

 "그래."

 

 존이 다시 말했다.

 

 "자네가 말하길, 피를 안 마셔도 된다고 그랬었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네."

 

 셜록이 짧게 말하고서 존이 확언을 받으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어쨌든 자네는 피를 마셔야 하는 거군."
 "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존의 말에 셜록이 대답했고, 방 안은 또다시 침묵에 잠겼다. 셜록은 다시 고개를 뒤로 젖혀 소파에 기대었고, 존은 머리를 팔로 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비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비는 여간해서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 잠시 잦아들었다가도 다시금 세게 빗줄기를 때렸다. 창문에는 간간히 빗방울이 세게 부딪혀 후두둑 소리가 들렸다. 방 안의 시계바늘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으며, 바깥에서는 미약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와 문이 여닫히는 마찰음이 삐걱거리며 들려왔다. 아래층에서는 음악이라도 듣고 있는 듯 들릴락 말락 하게 노랫소리가 스며들었다. 존과 셜록은 여전히 서로를 조심스럽게 외면하며 침묵을 지켰다. 조용한 방으로 온갖 소음이 흘러들어와 두 사람의 상념에 섞여들었다.
 셜록은 조용히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자신의 몸을 관 속에 넣은 채 못질하며 매장이라도 할 것을. 아니면 침대 기둥에 밧줄로 꽁꽁 묶어둘 것을. 한 번 맛본 그 맛과 향내를 잊지 못하여, 세이렌에게 유혹당한 선원들처럼 스스로 파멸의 구렁텅이로 발을 들이민 자신을 조소했다. 자신이 이렇게나 욕망에 쉽게 무너지는 남자였던가. 금연을 할 때 느낀 금단증상보다 몇 배는 강하게 닥쳐드는 욕구를 제어하느라 느낀 스트레스 또한 한 몫을 하였을 것이라고, 셜록은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까 허락없이 집 안으로 들어올 때 흘린 피의 양이 생각보다 많았기에 자신이 괴력을 발휘해서 존을 다시 덮칠 위험은 줄어든 것이었다. 지금의 셜록은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팔걸이에 내려놓은 손을 장난치듯 꼼지락거리며 셜록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존이 문득 등을 똑바로 세워 자세를 바로했다.
 무언가 결정을 내린 듯, 존이 셜록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내 피를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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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