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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존은 미스 립먼의 집을 찾았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그의 집은 시내라기보다는 약간 외진 구석에 있었다. 집 옆에는 큰 강으로 이어지는 넓은 개울이 세차게 흘러가고 있다.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

 

 그 시각 용의자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진입 작전이 한창이었다. 택배 회사 직원으로 위장한 한 요원이 초인종을 눌렀다.

 

*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존이 임시 신분증을 들어보였다.

 

 "실례지만 립먼 부인을 찾습니다."

 

*

 

 안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요원이 살짝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다는 표시였다. 다가온 특수 요원들이 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

 

 나온 남자는 급하게 옷을 챙겨 입은 듯 셔츠 목 부근의 단추가 제대로 채워지지않은 상태였다. 헝클어진 옅은 금발에, 하얀 얼굴의 남자는 존이 치켜든 신분증을 쓱 보더니 말했다.

 

 "이제 여기 안 삽니다."

 

 곧바로 문을 닫으려는 남자를 존이 저지했다.

 

 "죄송하지만 몇 가지 질문에 답변해주셔야겠습니다."

 

*

 

 안으로 진입한 요원들은 집 안이 텅 비었을 뿐 아니라, 애초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 또한 없는 것을 확인했다. 샅샅이 뒤졌지만 먼지밖에 눈에 보이지 않았고, 요원들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

 

 존이 말했다.

 

 "프레드리카 허드슨의 죽음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성함이?"

 

 남자가 말했다.

 

 "잭 고든입니다."
 "자, 고든 씨. 프레드리카가 립먼 부인과 친했다고 하는데, 모르십니까?"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뇨...잠깐, 그 뚱뚱한 여자?"

 

 무언가 떠올려내고 미소를 짓는 남자에게 존이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러고보니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남자가 코를 손가락으로 문지른 후 말했다.

 

 "립먼 부인의 아들이 있는데, 명함을 드릴테니 들어오세요."

 

 남자는 흔쾌히 문을 열며 존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고맙습니다."

 

 서랍 위의 고지서와 서류 뭉치를 뒤지며 남자가 존에게 물었다.

 

 "수사는 잘 되간답니까?"
 "네, 그럭저럭."

 

 존은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오며 말했다.

 

 "립먼 부인이 돌아가신 뒤 이 집에 입주하셨습니까?"
 "네, 몇 개월 전에 들어왔죠."
 "세금 명세서나 고용인 장부 기록은 없을까요?"
 "그런 건 전혀 없더군요."

 

 존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한 남자는 다시 존을 힐끔 하고 쳐다보며 그에게 물었다.

 

 "성과가 좀 있는지? 경찰들은 아직까지 헤매더군요."

 

 존은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았다. 집 안은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언뜻 보면 차곡차곡 쌓여있는 물건들도 자세히 보면 그저 쑤셔넣어진 것 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벽에 걸린 나비 그림을 바라보던 존의 눈길은 식탁 다리 옆의 상자 안으로 쏠렸다. 안을 보자 안에는 색색의 실패가 담겨있었다. 그때 붉은색의 실패 위에 어디선가 날아온 시커먼 색의 나방이 내려앉았다.
 남자는 연이어 질문했다.

 

 "용모나 지문 같은 건 알아냈나요?"

 

 존은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요."

 

 남자는 존을 보고서는 다시 종잇조각 더미를 뒤적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존은 총을 확실히 챙겨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다행히도 홀스터에는 총이 들어있었다. 때마침 남자가 명함 하나를 꺼내들며 말했다.

 

 "여기 있군요."

 

 존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남자가 명함을 내민 팔을 어색하게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당연히 쓰셔야죠."

 

 히죽 웃으며 몸을 돌리는 남자에게 존은 총을 겨누었다.

 

 "손 들어! 돌아서서 다리 벌려."

 

 남자는 계속 히죽거리며 존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 든 명함 몇 장이 팔락이며 부엌 바닥으로 떨어졌다. 느린 속도로 돌아선 그는 갑자기 재빠른 몸놀림으로 집 안쪽으로 도망쳤다.

 

 "꼼짝 마!"

 

 집은 복잡한 구조였다. 부엌과 안 쪽 방 사이에도 문이 있었고, 황급히 남자를 쫓아들어간 방 안에서 두리번거리다 보니 방마다 사이에는 잠금 장치가 달린 문짝이 있는 것이 보였다. 존은 총을 든 채로 이 방 저 방을 뒤졌다. 미처 잠기지 못한 문을 열고 안을 보자, 덮개가 살짝 비뚜름하게 덮인 지하로 연결된 통로가 보였다. 존은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지하 통로의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눈 앞에는 몇 개의 닫힌 문이 있었다. 존은 그 중에 하나를 조심스럽게 천천히 밀었다. 안에는 마치 복도처럼 길고 좁은 방이 보였다.
 뒤쪽으로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운 채 안을 살펴보자, 벽에는 영국 전역의 지도가 붙어있었다. 존은 자신이 총을 뽑아든 선택이 맞았다는 사실에 잠깐 기뻤으나 지금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존은 옆 쪽의 문을 거세게 열었다.
 안은 그동안의 희생자들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더덕더덕 붙어있었고, 마네킹에는 XL사이즈의 여자 옷들과, '와일드 차일드'가 지금까지 수집한 가죽들을 봉제하여 만든 것이 분명한 여성의 몸 형태의 인피가 걸려있었다.
 그때 존의 뒤에서 소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존이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 밑에 있어요!"

 

 그는 쳐다보기조차 싫은 그 방을 나와 조심스럽게 다른 쪽 방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우물처럼 생긴 구덩이가 있었다. 소녀의 목소리는 그 아래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캐서린 터너?"

 

 존의 목소리는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살짝 갈라졌다. 소녀는 대답했다.

 

 "네!"

 

 존은 우물 방과 연결된 다른 문을 열어 확인하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이제 괜찮아요."

 

 캐서린이 외쳤다.

 

 "어서 꺼내주세요!"

 

 존은 쓸모없어 보이는 방의 문을 걸어잠그고, 바깥을 수시로 내다보며 퇴로를 확보하며 캐서린에게 물었다.

 

 "놈은 어디 있죠?"

 

 캐서린은 피로와 공포에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꺼내줘요."

 

 투덜거리며 계속 꺼내달라고 소리치는 그녀에게 존이 말했다.

 

 "잠깐만 조용히 좀 해줘요."

 

 우물 근처로 접근한 존은 소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말했다.

 

 "캐서린, 꼭 꺼내줄 테니까 잘 들어요. 조금 있다 다시 올게요."

 

 존이 우물 입구에서 모습을 감추자 소녀가 외쳤다.

 

 "안돼, 날 버리고 가지 마! 가면 안돼! 그 자식은 미쳤어! 어서 꺼내달란 말이야!"

 

 이제 거의 꽥꽥 거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소리쳤다.

 

 "캐서린, 다른 사람이 곧 올 겁니다!"

 

 존은 범인이 그 말을 듣기를 바랬고, 정말이지 실제로도 그랬으면 하고 기원했다. 소녀는 존의 말을 듣고도 가지말라고 계속 울면서 외쳤고, 존은 애써 그 소리를 무시하며 벽을 등지고 서서 총을 유일하게 열려있는 문 쪽으로 겨누었다. 다른 쪽 벽에 재빨리 옮겨가서 다른 문을 열어본 존은 그 안에 있는 나방 사육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나치게 엄폐물이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은 이런 일까지 미리 내다보고 계획을 세웠던 걸까? 어두운 조명, 충분히 키 큰 남자를 숨길 수 있는 나무 상자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게다가 복잡한 내부 구조. 게다가 '와일드 차일드'는 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지만, 생소한 환경체 처한 그는 까딱 잘못하면 바로 죽는다. 존은 온 몸의 신경과 오감을 최대한 곤두세우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하 전체에는 범인이 일부러 재생시켜 놓은 것이 분명한 비트가 강한 음악이 울려퍼진다. 존은 이상한 냄새가 스며 나오는 쪽의 문을 발로 걷어차며 들어갔다.
 욕조 안에는 부패한 시체가 더러운 물에 잠겨있다. 이미 시체는 부패하다 못해 분해되기 직전이다. 존의 얼굴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순간 탁, 하는 소리가 들리고 시야가 캄캄해졌다.

 

*

 

 제이미 검은 적외선 안경을 쓴 채로 남자를 관찰했다. 눈 앞의 모든 것이 초록색으로 보인다. 초록빛으로 물든 다부진 짧은 금발 머리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등을 벽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그는 손으로 주변 사물을 더듬더듬거리며 용케 움직이고 있었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도. 손을 미약하게 떨면서 그는 움직였다. 노련한 솜씨. 제이미는 그렇게 남자를 평가하며, 그 쪽으로 서서히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제이미는 그의 지척까지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손을 뻗었다. 손이 닿을락 말락 하다. 원한다면 그를 만질 수 있다. 제이미는 남자가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이 남자는 자신의 원대한 계획에 심각한 방해를 초래하고 있다. 제이미 검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등 돌린 존 왓슨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노리쇠를 당겼다.

 

*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리자 존은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몸을 돌려 격발했다. 어지러운 사격 소리와 함께 몇 발의 총탄이 서로 오갔다. 일순간 존의 오른뺨이 화끈 했고, 눈 앞의 형체가 쓰러졌다. 남자가 쓰러지며 조명 장치를 건드린 것인지 불이 환하게 켜졌다. 적외선 안경을 낀 남자는 가슴에 총을 맞은 채 피거품을 토해내고 꿈틀거린다. 주저앉은 존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총탄을 새로 장전했다. 남자는 꿈틀거림을 서서히 멈추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쓰러진 남자 옆으로 다가가 떨어진 총을 멀리 걷어찬 존은 깨달았다.
 자신의 다리는 이 숨막히는 추격전 속에서 철저히 정상이었다.

 

*

 

 드물게 현장까지 왕림한 마이크로프트는 오자마자 존의 어깨를 감싸쥐고 친히 앰뷸런스 쪽으로 데려갔다. 마이크로프트는 총탄에 스친 존의 오른뺨을 살폈다.

 

 "괜찮나?"
 "화약 때문입니다. 괜찮아요."

 

 완벽하게 스치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생 그 화약 자국은 지워지지 않겠지. 영광의 상흔으로.

 마이크로프트는 생각했다. 그리고 존의 어깨를 더욱 강하게 감쌌다. 발빠르게 현장까지 침범한 카메라 기자의 질문 공세를 그는 위엄있게 손짓함으로써 존으로부터 떨어뜨려놓았다.

 

*

 

 정식 경찰이자 특수 요원으로 승진한 존과 그 외 여러 사람들을 위한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음료를 한 잔 집어들고 마시려는데 한 동료가 다가왔다.

 

 "존, 너한테 온 전화가 있어."
 "고마워."

 

 존이 지나가려는데 입구 쪽에 서 있던 마이크로프트가 다가왔다.

 

 "존."

 

 그가 존을 상냥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진심으로 축하하네, 존."
 "감사합니다. 홈즈...아니, 마이크로프트."

 

 마이크로프트는 존이 그에 대한 호칭을 정정하자 조금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이런 즐겁고 시끌시끌한 파티는 내 성미엔 그다지 맞지 않아서 이만 자리를 뜨려고. 자네는 좀 더 즐기다 가게."
 "알겠습니다."

 

 존은 머뭇거리다 손을 위로 올렸다. 마이크로프트는 그 손을 살짝 잡았다. 잠시 후 그는 아쉬운 듯 손을 놓으며 말했다.

 

 "자, 가서 전화를 받아야지."

 

 작게 미소지은 마이크로프트는 곧바로 방을 나갔다.


 "존 왓슨입니다."
 "존."

 

 절대 다른 사람과 혼동되지 않는, 셜록 홈즈 특유의 나직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총성이 멈추었나?"
 "셜록 홈즈..."

 

 존이 속삭였다.

 

 "금방 끊을 테니까 추적은 소용없어."

 

 존이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셜록이 그만의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 같은 유명 인사를 방문할 생각은 없으니, 당신도 같은 호의를 베풀어주었으면 해."

 

 존이 눈을 살짝 감으며 대답했다.

 

 "그런 약속은 못 드립니다."

 

 셜록이 약간 즐거운 듯 웃음지으며 말했다.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만...옛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어서."

 

 셜록은 존에게 연인에게 속삭이듯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그는 키티 라일리를 선뜩하니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탈옥한 셜록이 그녀를 포식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채 저 편으로 걸어갔다. 셜록은 멀어져가는 그녀를 보며, 존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럼 안녕."
 "셜록-"

 

 전화는 끊겼으나, 존은 전화기를 붙잡은 채 계속해서 셜록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Mad Detective-the silence of the gunfire-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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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

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셜록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사건 파일을 읽었을 텐데. 이 서류에 다 들어있어."
 "설명해 봐요."

 

 셜록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키웠다.

 

 "첫 번째 원칙은 단순함이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따르면 사물에 본질에 접근하라고 했지. 그 친구가 뭘 했는지 생각해 봐."

 

 존이 말했다.

 

 "여자들을 죽였습니다."

 

 셜록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부차적이야. 그는 과연 살인을 통해서 뭘 보상받으려 한 걸까?"

 

 존은 서서히 라일리 박사가 이 곳으로 와서 그와 셜록의 대화를 방해하지나 않을 까 걱정되었다. 그는 좌우로 왔다갔다 하며 말했다.

 

 "분노, 사회적 용인, 성적인 좌절감..."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는 존에게 셜록이 말했다.

 

 "그건 탐욕이야. 그게 그의 본성이지."

 

 셜록은 존이 안절부절하는 것을 외면하며 느릿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탐욕의 시작은 뭘까? 대상을 물색하나? 말해봐."
 "아뇨...그냥-"
 "그래, 일상에서 본 것을 탐하지. 당신의 몸에 쏟아지는 시선처럼, 당신의 눈도 탐욕의 대상을 쫓지."
 "맞아요, 그럼 어떻게-"

 

 존이 황급히 셜록의 다음 말을 끌어내려했다. 셜록이 말했다.

 

 "아니, 이젠 당신 차례야. 어쩌다 최전선에서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된 거지?"
 "셜록, 이젠 시간이 없습니다."

 

 존의 다급하게 부탁했으나 셜록은 요지부동이었다.

 

 "시간은 상대적이야. 당신의 유일한 기회를 날리지 말라고."
 "나중에-"
 "아니! 난 듣겠어. 지금 당장. 제대 두 달 전 케네스가 전사하고, 최전선으로 갔지. 그 다음에는?"

 

 셜록이 강하게 말했다. 존은 포기하고 그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냥 부상당했을 뿐입니다."
 "아니, 이유가 있었겠지. 정확히 언제였지?"
 "낮이었어요."
 "뭘 하고 있었나?"
 "그땐...교전 중이었죠. 우리 편이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방어선이 무너지고...난전이 벌어졌습니다."
 "당신은 그때 어떻게 했지?"
 "처음엔 싸웠습니다. 하지만 적군은 단단히 마음먹고 온 듯 싶었죠...수적으로도 열세, 화력도 밀렸습니다."
 "그래서 달아났나?"
 "아뇨, 우리 부대에 속한 사람 중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어요. 다들...서로 도망가라며 격려했습니다."
 "계속 얘기해봐."
 "아무래도 지원 요청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중령님이 말씀했습니다. 이미 통신 장비도 쓸모없어진 지 오래였으니까 누군가는 여기서 살아나가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며 절 보냈죠. 그렇지만 나는 싸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제가 가까스로 지원군을 데리고 온다 하더라도, 그 상태라면 다들 이미 죽어있을 가능성이 농후했으니까요. 게다가, 그들과는 서로의 생명의 은인이었으니까, 죽을 때도 같이 죽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그러나 중령님의 명령을 받고 혼자서 후퇴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적군에서 후퇴하는 저를 발견했나봅니다. 정확히 저를 향해서 총알이 날아왔습니다. 저는 눈을 감았죠. 이만하면 만족스럽게 싸웠다 싶어서. 그런데...눈을 떠보니 중령님이 절 대신해서..."

 

 존은 손을 깍지 낀 채 고개를 숙였다.

 

 "그게 끝입니다."
 "그래서 홧김에 싸우다가 다친건가?"
 "맞습니다."
 "아직도 악몽을 꾸나? 어둠 속에서 깨어나면 중령과 케네스를 죽였던 총성이 들리나?"
 "네."
 "캐서린을 살려내면 모두 끝날 것 같은가? 악몽 속에서 총성을 듣는 것이."

 

 셜록의 집요한 물음에 존은 멍한 눈으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말했다.

 

 "몰라요, 모르겠습니다."

 

 저편에서 구둣굽이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쪽을 바라보며 셜록이 말했다.

 

 "당신도 라일리 박사를 잘 알겠군."
 "셜록, 당신 차례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경찰 두어명이 존을 끌고 철창에서 멀어져갔다. 존은 셜록 쪽을 필사적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이름을 말해요!"
 "용감한 존, 총성이 멎으면 알려줘."
 "이름을 말해줘요!"
 "존."

 

 셜록이 존에게 사건파일을 들고 말했다.

 

 "사건 파일이야."

 

 철창 밖으로 사건 파일을 내미는 셜록을 본 존은 단번에 자신의 양팔을 잡고 끌고가던 경찰 두 명을 뿌리치고 달려와 파일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셜록은 파일을 내민 손가락을 곧게 뻗어 존의 손가락을 쓸었다.

 

 "잘 가, 존 왓슨."

 

 셜록은 파일을 놓아주었고, 존은 다시 입구 쪽으로 끌려갔다.

 

*

 

 셜록과 존이 헤어진 그 날 밤, 셜록은 라일리 박사에게서 훔친 펜촉으로 수갑을 해제하고 철창을 탈출했다. 탈출 과정에서 경관 둘을 사살했으며, 감시망이 뚫린 원인은 빠르게 정상화되지 못한 전자 감시 시스템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종적은 묘연했다.

 

*

 

 "그가 절 찾아오진 않을 겁니다."

 

 셜록의 탈옥 소식을 전해준 마이크로프트의 질문에 존은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설명하기는 힘듭니다만..."

 

 존은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을 살폈다. 항상 빈틈이 없고 차분하던 그의 안색이 오늘따라 피곤하고 까칠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이제 다 끝나버린 건가..."
 "국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존이 말했다. 마이크로프트는 말만이라도 고맙다는 듯 손을 살짝 움직였다.

 

 "놈을 잡는데 필요한 건 여기 다 있다고 했는데..."
 "그는 많은 말을 했지."

 

 희망이 없어보이는 마이크로프트와는 달리 존은 사건 파일을 짚으며 말했다.

 

 "분명 여기에 단서가 있을 겁니다."

 

*

 

 빈 세미나실을 빌린 존은 그 안에서 셜록이 건넨 사건 파일을 하나하나 늘어놓으며 헤집고 있었다. 사건의 발생지, 시체의 발견 지점이 표시된 지도가 보였다. 지도에는 셜록이 쓴 글씨가 적혀있었다.

 -장소를 무작위로 고르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는군. 서투른 거짓말쟁이의 거짓말처럼.

 

 '애쓴 흔적이라면 무슨 뜻이지?'

 

 그렇다면, 무작위가 아니라 패턴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면 컴퓨터가 이미 찾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강바닥에 가라앉은 하나만 예외였다. 프레드리카 허드슨. 첫 번째 희생자였지만 발견은 세 번째였다. 왜냐하면...떠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셜록이 말한 첫 번째 원칙은 '단순함'이었다. 그 남자의 감정 동기는 '탐욕'. '탐욕'의 시작은 본 것을 탐하는 것에서부터.
 그렇다면-'차일드'는 그녀를 자주 봤었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희생자들은 모두 사립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프레드리카도 그 중에 한 명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프레드리카 허드슨의 학교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

 

 프레드리카 허드슨이 다니던 학교는 세인트 고야드 프라이빗 하이스쿨로, 기숙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역사가 아주 오래된 학교는 아니었던지라 비교적 타 기숙 사립 학교에 비해 출입 규정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존은 이 학교의 학생들과 인터뷰를 나누는데 매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아닌 온실 속의 난초처럼 세상 물정 하나 모르고 자라온 여학생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학교 정문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그를 보고 수군수군거리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던 학생들은 수적 우세에 놓여 있다는 점을 빌어 그를 노골적으로 구경하기 시작했고, 여자 다루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던-이래뵈도 존 왓슨은 무려 세 대륙의 여인들을 섭렵해왔던 몸인 것이다-존은 여학생들의 공세에 밀려 번번한 질문 한 마디 못해보고, 급기야는 헤어진 여자친구 사라를 불러오는 편이 수사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때 수 린 야오라는 중국 대사의 영애가 어렴풋이 흘린 말이 없었다면 수사는 진전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 애는 재봉에 열을 올렸었죠."

 

 수 린 야오의 말에 존이 물었다.

 

 "허드슨 양은 재봉에 관심이 많았군요. 그렇다면 그 관심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친구도 필요했을텐데요."

 

 수 린 야오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 애랑 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어요. 그저 급식을 같이 먹었던 사이일 뿐이라서..."
 "야오 양."

 

 존이 말했다.

 

 "당신의 말이 현재 납치당한 터너 양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가 될 지도 모릅니다. 힘드실테지만 천천히 생각해봐 주세요."

 

 그녀는 존의 부탁에 잠시 기억을 찬찬히 떠올리는 듯 했다. 아직 영어가 서툰 그녀는 존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전을 잠시 뒤지더니 더듬더듬 말했다.

 

 "프레드리카는...주말마다 외출 허락을 받아서 시내로 나갔죠. 때마다 재봉에 대한 자문을 누군가에게 구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애가 시내에서 남자친구를 사귄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으로 프레드리카에게 많은 질문을 했지만...그 애 말은 좀...뒤죽박죽이었어요. 누군지 설명만 조금 해주었지만 설명하는 걸 듣고 있으면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모르겠어서, 몇 번 물어본 후에는 그냥 더이상 궁금함을 갖지 않게 되었어요."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모르겠다는 건 무슨 뜻이죠?"

 

 존의 질문에 수 린 야오는 난처한 기색을 띠었다.

 

 "추궁하는 게 아닙니다. 음...허드슨 양이 그 사람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혹시 기억이 나시나요."
 "...금발에 백인. 그렇게 들은 것 같아요. 상냥하고 키가 크다고 했을 때는 당연히 남자겠지 싶었는데, 언젠가는 그 사람을 미스 립먼(Ms. Lipman)이라고 불렀어요."

 

 바로 그 사람이다.
 직감이 존의 뇌리를 후려쳤다. 수 린 야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 감사의 인사를 한 후에 존은 곧바로 마이크로프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홈즈 국장님?"
 "존, 어쩐 일인가?"
 "범인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범인은 여자의 피부로 옷을 만들어 입으려고 가죽을 벗겨왔던 겁니다. 바느질에 아주 능숙한 재봉사가 틀림없어요."
 "존?"
 "몸집이 큰 여자를 골라, 한동안 굶긴 다음 피부가 늘어지면-"
 "존."

 

 마이크로프트가 존의 말을 끊었다.

 

 "놈이 누군지 알아냈어. 지금 경찰 병력을 출동시켰네."

 

 존이 당황하여 물었다.

 

 "반가운 소식이군요. 한데 어떻게..."
 "존스 홉킨스에서 나온 이름을 전과 기록과 비교해보았어. 용의자의 이름은 제이미 검. 존 그랜트라는 가명도 쓴다고 하더군."

 

 마이크로프트가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셜록은 이름에 대해서만 거짓말을 했어. 들어보게나. 2년 전의 세관 기록을 보니 수리남에서 밀반입한 나방 유충이 압수되었다가 다시 그가 돌려받았다고 되어있더군."
 "범인의 거취는 어디입니까?"
 "자네가 그 곳에서 여기로 오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네. 체포 작업에 동참시키지 못하게 되어 아쉽지만, 기소시키기 전에 허드슨과의 연관성을 더 파헤칠 필요가 있어."

 

 존은 자신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싶어 약간 맥이 빠졌으나 마이크로프트가 간곡하게 부탁을 해 왔기도 하고 범인을 조금이라도 더 먼저 잡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죠."

 

 마이크로프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존..."

 

 그가 잠깐 망설이다 말했다.

 

 "자네 덕분이야. 다들 알고 있어. 적어도...난 알고 있다네."

 

 자존심이 강한 마이크로프트가 이런 소리를 하다니, 존은 약간 놀라면서도 얼굴에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홈즈 국장님."
 "내게 감사하지 않아도 되네. 그리고 앞으로는...딱딱하게 국장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둘만 있을 때는 마이크로프트라고 불러도 되니까."

 

 존은 약간 얼굴이 붉어져 오는 것을 느끼며 마이크로프트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조금 가벼워진 기분으로 그는 시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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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남자는 우물 안의 소녀에게 두레박을 통해 로션 병을 주었다. 강아지를 안고 쓰다듬으며 그가 자못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킬 때마다 로션을 발라."

 

 소녀는 엉엉 울면서 말했다.

 

 "몸값은 원하는 대로 다 줄거예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어대는 소녀를 바라보며 남자는 다시 말했다.

 

 "로션을 안 바르면 물벼락을 맞을 거야."

 

 여성적인 말투다. 그의 품 안에 안겨있는 강아지가 그의 말에 동조하는 왕 하고 한 번 짖자 남자가 몹시 귀엽다는 듯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물을 뿌리자꾸나."

 

 남자의 태도에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순응했다.

 

 "알았어요..."

 

 소녀는 연신 콧물을 훌쩍거리며 남자가 시키는 대로 로션을 발랐다. 남자는 그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살펴보다가 소녀가 로션을 다 바른 후에 다시 두레박을 내려보냈다. 소녀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보내주기만 하면 신고하지 않을게요."

 

 남자는 시끄럽게 소리치는 소녀에게 욕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엄마는 상원의원이예요. 그건 몰랐을 거예요."
 "로션을 바구니에 담아."

 

 소녀는 다시 엉엉 울며 말했다.

 

 "제발...집에 보내줘요. 집에 가고 싶어요."

 

 남자의 눈가가 파들파들 떨렸다. 간신히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그가 말했다.

 

 "로션을 담으란 말이야."

 

 소녀는 남자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자기 감정에 북받쳐올라 더욱 시끄럽게 울면서 말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를 보게 해줘요...제발 보내주세요..."

 

 남자가 가늘게 꾸며낸 목소리를 집어치우고 거칠게 소리쳤다.

 

 "어서 담지 못해!"

 

 화들짝 놀란 캐서린은 떨리는 손으로 로션을 두레박에 집어넣었다. 남자는 두레박을 끌어올렸다. 두레박에는 조명이 달려 있었다. 소녀는 훌쩍거리는 것을 멈추지않으며 두레박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벽에는 누군가가 손톰으로 박박 그은 듯한 손자국이 나있었다. 손자국은 회갈색의 벽과 달리 선명하고 진한 갈색이었다. 소녀는 그것이 피가 아니길 간절히 바랬다. 두레박의 조명을 따라가던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이 뿌리째 구덩이의 벽에 박혀 있었다.
 캐서린은 거의 발작적으로 울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셜록의 전신을 구속구로 감고, 철창처럼 생긴 마스크를 씌운 키티 라일리 박사는 셜록의 감방 침대에서 반쯤 누운 자세로 셜록에게 조롱조로 말했다.

 

 "아직도 해변을 걸으며 새를 볼 생각을 한단 말이야?"

 

 존이 가져다준 제안 사항이 담긴 서류를 펼쳐보던 라일리는 서류철을 탁 소리 나도록 덮으며 말했다.

 

 "꿈 깨셔."

 

 셜록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시선에 일말의 미동도 없었다.

 

 "마리 터너 의원은 전혀 모르고 있던데? 당신은 속은 거야."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향해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그렉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이 처음으로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부터 주욱 셜록 홈즈의 전담 간수였다. 전담 간수이자 대변인의 역할 까지 맡을 정도로 그는 셜록 홈즈에게 묘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 다른 간호사, 의사, 간수들 중 셜록 홈즈에게 험한 꼴을 당한 사례도 간간히 있었지만 레스트레이드는 그들은 사실 그래도 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셜록 홈즈가 죄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멸시하고 지나치게 무례하게 대했다. 확실히 셜록 홈즈는 범죄자였지만, 그래도 그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게다가 그는 범인이 상상하지 못하는 엄청난 지능의 소유자다. 그런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 대체 어떤 사람을 존중하란 말인가? 레스트레이드는 그렇게 셜록 홈즈를 최대한 존중하고 예의바르게 대했다. 셜록 홈즈도 그런 그가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은 듯 종종 레스트레이드를 신경 써주기도 했다.
 지금도 레스트레이드는 라일리 박사가 셜록에게 하는 과한 언사에 마음이 상했고 조금 걱정이 되었다.
 라일리 박사는 그런 레스트레이드를 성가시다는 듯 보더니 말했다.

 

 "밖에 나가 있어. 문은 닫고."

 

 마지막으로 셜록을 한 번 쳐다본 레스트레이드는 라일리 박사의 험악한 얼굴에 어쩔 수 없이 수감실을 나갔다. 그런 그에게 셜록은 안타깝다는 듯 작게 속삭였다.

 

 "...레스트레이드..."

 

 레스트레이드가 나가자 라일리 박사는 몸을 일으키며 즐겁게 말했다.

 

 "터너 의원과의 협상은 내가 다시 초안을 잡겠어. 물론, 나한테 유리해야지. '와일드 차일드'의 본명을 대고, 여자애가 살아난다면 산자락에 있는 수용소로 보내주지. 나도 여기 너무 오래 있었으니 승진도 하는 겸 같이 가도록 해야지."

 

 마치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한 듯 평온하게 숨쉬는 셜록에게 라일리가 살짝 열받은 목소리로 대답을 재촉했다.

 

 "대답해보실까?"

 

 셜록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수틀리면 여기서 절대, 절대로 못 나가. '와일드 차일드'는 누구야?!"

 

 셜록은 라일리 박사에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움푹 들어간 이불자락으로 아주 아주 천천히 눈을 움직였다. 거기에 라일리가 떨어뜨린 펜이 보였다. 아주 약간, 눈이 커졌다가 다시 눈을 감은 셜록이 입을 열었다.

 

 "이름은 루이스."

 

 그녀가 해냈다는 듯 얼굴이 밝아졌다.

 

 "나머지는 의원과 직접 만난 자리에서 말하겠다. 나도 조건이 있거든."

 

 그녀는 황급히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며 자리를 떴다.

 

 "-그래, 출발 준비 시켜."

 

 셜록은 침대 위에 그대로 자리한 펜을 향해 고정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그 시각 마이크로프트의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마이크로프트, 셜록 홈즈가 다른 곳으로 이송되네."

 

 마이크로프트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다가 허리를 바로세웠다.

 

 "이송?"
 "터너 의원의 이름으로 거짓 약속을 했었나?"
 "그래, 일종의 모험이었네만."
 "그녀는 화가 많이 났어. 법무성 사람이 나와 있는데 바로 인계를 바라는군."

 

 몇 마디 더 나누어보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는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

 

 셜록은 전신이 강력하게 구속된 채로 마스크까지 쓴 채로 어딘가로 운반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철제 침대구조에 강하게 묶인 상태로 침대 전체가 일으켜세워진채 남들이 밀어주어야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를 향해 두 명의 경찰이 다가오더니 건성으로 자기 소개를 했다.

 

 "난 보일 경위, 이쪽은 홉스 경사요. 당신 행동 여하에 따라 대우가 많이 달라질 거요."

 

 그렇게 말한 경위는 셜록 홈즈 옆에 서있던 라일리 박사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박사님, 여기 서명해주시죠."

 

 키티 라일리는 서명을 하기 위해 펜을 찾아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항상 갖고 다니던 펜이 보이지 않았다. 살짝 인상을 쓰며 주머니를 다시 뒤지는데 경사가 자기가 갖고 있던 펜을 내밀었다.

 

 "제 걸 쓰시죠."

 

 한참 서명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터너 의원과 경호원, 그리고 몇몇 다른 이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터너 의원이 셜록 홈즈와 약간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키티 라일리는 귀한 애완동물 전시장에 나온 애견의 주인처럼 과시하는 듯한 태도로 터너 의원에게 말했다.

 

 "터너 의원님이시군요. 이쪽은 셜록 홈즈입니다."

 

 마리 터너 의원은 그녀의 과시와 아양이 뒤섞인 태도를 안중에 둘 여유가 없는 듯 했다. 그녀는 셜록을 보면서 말했다.

 

 "홈즈씨군요."

 

 그녀는 수심에 잠겨 있었지만 자세를 꼿꼿이 하고 부은 눈과 눈물자국도 최대한 가리는 등의 우아함을 발휘한 듯 했다. 그녀는 비서에게서 몇 장의 종이를 건네받아 셜록 쪽으로 내밀었다.

 

 "당신의 권리를 보장하는 진술서를 가져왔어요. 서명하시기 전에 읽어보세요."

 

 셜록은 서류를 멀뚱히 보았고-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현재 전신이 구속되어 있는 상태였으니까-라일리 박사가 대신 그것을 받아들었다. 라일리 박사가 그것을 셜록의 눈 앞에 보이려는데 셜록이 말했다.

 

 "이런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군요. 시간은 이미 경찰들이 많이 잡아먹었으니까. 따님이 무사하기만을 빌 뿐입니다. 그나저나...이런 일은 서로간의 신뢰가 생명인 법이죠."

 

 제안 사항이 적힌 서류를 흘깃 쳐다본 셜록은 다시 의원을 쳐다보았다. 의원은 말했다.

 

 "믿어도 좋아요."

 

 셜록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와일드 차일드'의 본명은 루이스 프렌드(Louis Friend). 앤더슨의 소개로 2003년 봄에 한 번 만났는데 둘은 연인이었지만 앤더슨은 겁에 질려 있었소. 루이스가 사람을 죽이고 가죽을 벗겼으니까."

 

 떨고 있는 의원을 대신하여 옆에 서있던 비서가 말했다.

 

 "놈의 주소와 인상착의는?"

 

 셜록은 그의 말은 싹 무시하고 의원만을 보면서 말했다.

 

 "있잖습니까, 캐서린에게 젖을 먹였나요?"
 "뭐라구요?"

 

 의원은 자신의 귀에 들려온 그의 말을 의심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셜록은 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모유를 먹였나요?"

 

 비서가 표정이 굳은 채 말했다.

 

 "이거 보시오."

 

 그러나 의원은 단서가 될까 싶은 마음에 비서가 한 발 앞으로 나서는 것을 저지하고 셜록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그랬어요."

 

 셜록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유두가 딱딱해졌겠군."

 

 의원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망할 자식!"

 

 그녀는 돌아섰다. 라일리 박사는 셜록이 상원의원을 모욕하는 모습을 보고 벙쪄있었다. 셜록이 의원에게 빠른 속도로 말했다.

 

 "절단된 다리도 가려움을 느끼는데 따님이 도마 위에 오르면 어느 부위가 가려울까요?"

 

 그녀가 비서에게 지시했다.

 

 "저 자식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셜록이 의원의 뒤에 대고 말했다.

 

 "175센티미터, 건장한 체격, 81킬로그램. 금발에 푸른 눈이고 서른 다섯살 가량이죠. 어디 사는 지는 모르오. 현재로선 그게 전부지만 생각나면 더 알려드리지."

 

 의원은 셜록을 돌아보고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다시 몸을 돌려 비서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딘가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뒤에 대고 다시 셜록이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셜록이 의원에게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입고 계신 옷이 참 예쁘군요."

 

*

 

 언론은 셜록 홈즈와 마리 터너 상원의원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오늘의 만남으로 납치범을 체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라일리 박사는 어지간히 언론의 주목에 목말라있던 듯 벌써 서너 군데의 신문사, 잡지사와 인터뷰 약속을 잡은 듯 했다.
 존은 쏟아지는 관심에 들떠있는 라일리 박사를 구슬려 셜록의 자필 악보를 얻어내어 그를 만나러 갔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내내 경비를 맡은 사람들은 말했다.

 

 "규칙은 알고 계시죠?"
 "네, 몇 번 만나보았습니다."

 

 존은 셜록이 갇혀 있는 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5층 건물의 최상층에서 반경 8미터의 정사각형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주변에는 경비 책임자들의 시야 확보를 위한 것인지 가구 한 점 없었다.
 그는 5층 건물의 최상층에서 반경 8미터의 정사각형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존이 철창 가까이 다가가도 그는 입구 쪽에서 등을 돌린 채 미동도 없었다. 검은 곱슬머리, 곧게 핀 등, 단정하게 여민 죄수복은 여전했다. 도도하게 도사리고 있는 그 태도는 마치 사로잡힌 야생 사자같았다.

 

 "어서 와."

 

 그가 문득 말했다. 무감정하고 단조로운 어조였다. 여전히 그는 등을 돌려 존을 바라봐주지 않는다. 존은 그를 속인 죄책감이 자신을 콕콕 찌르는 것을 느꼈다.

 

 "악보를 가져왔어요."

 

 철창 가까이에 악보를 내려놓았다. 셜록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사려가 깊으시군."

 

 그리고 회전의자를 살짝 돌리며 존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니면 내 형의 지시로 마지막 아부를 하러 온건가?"

 

 존이 말했다.

 

 "내 의지로 온 겁니다."

 

 셜록은 존의 눈에서 셜록을 속인 죄책감과 미안함을 읽었다. 참으로 성실하고 선량한 남자야, 라고 생각하며 셜록은 어쩐지 그에게 들던 분노가 사그라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셜록은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며 오히려 존을 비꼬았다.

 

 "남들이 보면 사랑에 빠진 줄 알겠어."

 

 셜록은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며 말했다.

 

 "뭐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캐서린이 가련하군."

 

 셜록은 입으로 틱, 톡, 틱, 톡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내었다. 존은 그런 그에게 대들듯 말했다.

 

 "루이스 프렌드(Louis Friend)의 철자를 애너그램화하면, 황철광(Iron Sulfide)입니다.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그건 바보들의 금(Fool's gold)으로 유명하죠."

 

 셜록은 살짝 존을 외면하며 말했다.

 

 "당신은 영 재미란 걸 몰라."

 

 존은 셜록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진실을 말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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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마리 터너 상원의원의 딸, 캐서린 터너 양이 연쇄살인범 '와일드 차일드'에 의해 납치된 가운데 국립 중앙 경찰청의 수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찰청 내의 넓직한 휴게실 안에서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이제는 피해자의 범위가 유력 정치가의 자식으로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쉬쉬할래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는 다들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는 파악하고 있었으나 수사의 진척 과정은 국장인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철저한 통제로 인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기에 다들 뉴스에라도 뭔가 새로운 사실이 발표나지 않을까 싶어 사람들은 모두 방송 앵커의 말에 귀를 집중하고 있었다.

 

 "...캐서린 터너는 18세로, 상원의원 마리 터너의 외동딸입니다. 이번 납치 사건은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때마침 휴게실로 들어오던 왓슨은 뉴스가 방송되는 것을 보고 혹시나 따로 발표된 것이 있을지 궁금하여 가득 들어찬 사람들을 제치며 텔레비전 화면 앞으로 향했다.
 뉴스 화면이 전환되고 마리 터너 의원이 호소하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녀는 침통한 기색으로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제 딸, 캐서린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에게 알립니다. 캐서린은...착하고 온순한 애입니다. 그 애와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의원의 얼굴 위로 캐서린 터너의 사진이 오버랩되었다. 증명 사진, 친구들과 웃고 있는 사진, 발레복을 입고 찍은 어린 시절의 사진, 아기 때의 사진...
 의원의 호소는 계속되었다.

 

 "이건 당신의 자비심을 세상에 보여줄 좋은 기회입니다. 세상에게 당한 것을 캐서린에게 보복하려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에겐 동정심이, 그리고 그것을 발휘할 힘이 있습니다. 그런 힘을 가진 건 당신입니다...제발, 캐서린은 제 딸이예요.-"

 

 존은 터너 의원이 참으로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저런 말을 하라고 가르쳐준 사람이 영리했거나. 이름을 반복하는 것은, 사물을 명명한다는 것은 그것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이 방송을 볼지도 모르는 납치범으로 하여금 캐서린을 처리해야 할 사물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인식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던 것이다.

 

*

 

 키티 라일리 박사는 단단히 화가 난 듯,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존의 앞을 가로막고는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인터뷰만 하고 아무 말 없이 가버린 게 벌써 세 번째예요."
 "수사 절차상의 문제라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존의 변명에도 라일리 박사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저 사람은 내 환자예요!"
 "그건 압니다만..."
 "난 단순한 교도관이 아니라구요!"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존의 말허리를 자르며 계속해서 자기 할 말만 내뱉는 라일리 박사는 마치 자기 장난감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떼쟁이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존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검사의 관할 사항이예요. 전 제가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존이 그녀의 옆으로 빠져나가 출입문 앞에 서자, 레스트레이드는 기다렸다는 듯 존을 들여보냈다. 라일리 박사는 한동안 씩씩거리며 존의 뒷모습을 보다가, 무언가가 생각이 난듯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급히 위층의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

 

*

 

 존은 셜록에게 기쁜 듯 말했다.

 

 "캐서린 터너가 죽기 전에 와일드 차일드를 잡게 해준다면, 의원께서 약속한 대로 좀더 감시가 덜한 요양원으로 이송될 겁니다."

 

 셜록은 새하얗도록 창백한 얼굴로 방 안의 그늘 안에서 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존은 셜록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거기선 책도 읽을 수 있어요. 더 멋진 건..."

 

 존은 마이크로프트가 건네준 자료를 뒤적거리다 한 장의 지도를 꺼냈다. 그 지도에는 한 섬의 평면도가 그려져 있었다. 존은 그 지도를 셜록이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전면 유리창에 대고 펼쳐 주었다.

 

 "...1년에 1주일 동안 요양원을 떠나 여기서 지내는 거예요."

 

 셜록의 투명한 청회색의 눈동자가 지도에 초점을 두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딘지 아시죠?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니 제가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고 있겠죠. 당신은 그 1주일 동안 매일 해변을 산책하고 원하신다면 수영도 즐길 수 있어요. 물론...감시가 따르겠지만 말입니다."

 

 셜록은 지도를 본 후 존을 보다가 시선을 약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사건 파일은?"

 

 존은 배식 창구를 열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와일드 차일드'의 사건 파일, 상원의원의 제안 사항. 협상은 불가합니다. 캐서린이 죽으면 다 날아가는 거죠."

 

 존은 배식 창구를 닫고 셜록에게 미소지어보였다. 셜록은 자신을 놀리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섬의 대표 시설이 동물 질병 연구센터라지. 매력적이군."

 

 설마 그걸 지적할 줄은 몰랐던 존이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그건 섬의 일부일 뿐입니다. 멋진 해변, 제비갈매기 둥지, 아름다운-"
 "제비갈매기? 따분하군."

 

 셜록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도 따로 원하는 게 있지.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 사건 이야기 말고, 당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그 순간 존의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라일리 박사의 경고. 캐서린 터너. 와일드 차일드.
 셜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 뒤에는 존의 배짱을 시험하면서도, 사건을 풀고 싶지 않느냐는 유혹이 동시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떤가?"

 

 그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였다. 존은 그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그는 존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대답해, 캐서린이 기다리잖나."

 

 셜록은 고개를 돌린 채로 미소가 비어져 나오려는 것을 억제했다. 노오란 머리의 햇병아리 프로파일러는 지금쯤 자신의 말이 어떤 의도인지 파악하느라 머리를 굴리고 있을 터였다. 존 왓슨이란 남자는 나름대로 머리가 있는 편에 속했으나 셜록 홈즈에 비견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관대한 사람들과 다르게 셜록 홈즈는 웬만큼 우수한 능력은 우수의 범주로 쳐주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닌 '무언가'때문에 마이크로프트도 그를 곁에 두고 애지중지하는 거겠지.
 존 왓슨과 만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그 '무언가'는 이성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이미 오래 전에 한 톨도 남김없이 지웠으리라고 확신했던 감성이 그것을 깊이 이해했다. 셜록 홈즈는 이런 상황에 스스로 놀라면서도 분석적인 태도를 취하여, '존 왓슨'이라는 남자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아나가기로 했다.
 -그러니 어서 제안을 받아들여.
 셜록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을 그 때에 존 왓슨이 말했다.

 

 "좋습니다."

 

 대답을 들은 셜록은 그 무감정한 얼굴을 휙 돌려 존을 응시하면서 첫 번째 질문을 했다.

 

 "전쟁터에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은?"

 

 존은 잠시 놀랐으나 그와의 첫 번째 만남에서 그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단번에 파악한 것을 상기해냈다. 마이크로프트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묻지도 않고 자신의 신상 내역을 파악하고 있던 것을 이미 겪었기에 셜록 홈즈도 그런가 싶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가문 형제들의 지적인 능력은 범상치 않은 수준을 뛰어넘었다. 한 명은 양봉업에, 다른 한 명은 좌천된 경찰, 다른 하나는 특급 범죄자이지만 말이다. 다만 정의의 편에서 그 능력을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며 그는 대답했다.

 

 "동료가 전사했을 때."
 "아는 바를 그대로 말해줘."
 "그는...그의 이름은 케네스입니다."

 

 존은 제대한 후로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으며 애써 감춰왔던 기억을 조심스레 풀어헤쳤다. 그의 목소리는 차츰 떨리기 시작했다.

 

 "위생병 중 한 명인데, 군의관을 지키는 역할이었죠. 그런데...어느 날 막사까지  반군이 쳐들어왔고...그는 총에 맞았어요."

 

 셜록이 속삭이듯 물었다.

 

 "바로 목숨을 잃었나?"
 "아닙니다. 그는 한 달 이상을 버텼지만...결국엔, 그래요. 죽고 말았죠. 그는 언제나 나를 지켜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해댔었는데...이런 말 하면 게이가 아니냐고 오해를 하겠지만,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었습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셜록이 말했다.

 

 "아주 솔직하군. 사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감동적이야...좋아, 주고 받는 거니까."

 

 셜록이 존에게 물었다.

 

 "미스 데번셔도 몸집이 큰가?"

 

 데번셔에서 발견된 피해자를 약칭하는 말인듯 했다. 존은 대답했다.

 

 "네."
 "궁둥이도 펑퍼짐하고?"

 

 일부러 상스러운 어휘를 골라쓰는 셜록이었지만 존은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답했다.

 

 "맞아요."
 "다른 건?"

 

 존이 말했다.

 

 "식도 안에 이상한 게 있더군요. 아직 발표도 하지 않았습니다. 의미를 도통 모르겠어서요."

 

 셜록은 양손을 마주대며 말했다.

 

 "나비였나?"

 

 존은 깜짝 놀랐지만 곧 자신의 경악을 가라앉히고 그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나방이었습니다."

 

 존이 숨을 가다듬고 셜록에게 질문했다.

 

 "앤더슨의 뇌 안에도 한 마리가 삽입되어 있더군요. 왜 그걸 넣었을지 짐작이 가나요?"

 

 셜록이 존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답지 않게 성실한 태도였다.

 

 "나방이나 나비는 변화를 뜻하지. 유충에서 번데기로 변하고, 나중에는 아름다운 날개로 변태를 하는 거야...우리의 '차일드'도 변신을 원해."

 

 존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성전환증은 매우 수동적이라 폭력과 관련성이 희박한데..."

 

 셜록이 그의 투명한 눈으로 존을 쏘아보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영리하군. 놈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간 걸 알겠어?"

 

 존은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는 셜록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자신이 한 말에 어떤 결론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물었다.

 

 "아뇨, 무슨 뜻입니까?"

 

 셜록이 존을 줄곧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고 다시 질문했다.

 

 "케네스가 죽은 후에는?"

 

 존이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지만 셜록은 아랑곳않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부대가 좀 더 전방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최전선으로요."
 "거기서 얼마나 있다가 제대한 거지?"
 "두 달."
 "너무 짧군."
 "부상을 당했어요."
 "어쩌다? 또 막사까지 적군이 들이쳤나?"
 "아뇨, 그건 아닙니다. 이제 당신 차례예요."

 

 숨가쁜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지나가고 셜록이 다시 존에게 시선을 향한 채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차일드'는 성전환증이 아니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시도는 많았을 거야."

 존이 셜록에게 물었다.

 

 "가까이 갔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셜록은 시선을 딴 데로 옮기며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성전환수술로 유명한 곳은 미국에 많은데 존스 홉킨스, 미네소타 대학, 콜럼버스 메디컬 센터지. '차일드'가 그곳에서 수술을 거부당했을 가능성이 커."
 "거부당한 이유는 뭐죠?"

 

 셜록은 여전히 허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폭력이 얼룩진 불우한 어린 아이의 한 때를 생각해보라구. '차일드'는 타고난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희생양이야.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성전환을 꿈꾸지만 더 끔찍하고 무서운 병은 다른 데 있어."

 

*

 

 그리고 키티 라일리 박사는 도청 장치로 전달되는 셜록의 말 하나하나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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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존과 마이크로프트는 지역 경찰의 인도를 받아 희생자의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현장 조사와 더불어 피해자의 프로파일링 분석과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세 가지의 목적을 띠고 이 곳까지 방문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떼거지로 몰려있는 경찰들에게 마이크로프트가 다가가서 말했다.

 

 "국립 경찰 소속의 마이크로프트 홈즈입니다. 이쪽은 왓슨 박사입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긋하게 말하는 그에게 우두머리 경찰로 보이는 남자가 퉁명스레 말했다.

 

 "전화한 건 내가 아니오. 방해는 하지 않겠지만-"
 "-경감님."

 

 불만이 가득해보이는 그의 말을 중단시킨 마이크로프트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런 성범죄 사건은 조용히 이야기하는 게 좋겠습니다만. 이해하십니까?"

 

 사실 강간이 성립되지가 않았으므로 성범죄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였으나, 여성만이 피해자가 되어왔고 또 어떤 형태의 성적인 학대가 가해졌을 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경찰들은 성범죄를 극도로 꺼려했다. 지금처럼 사건이 자신의 손을 떠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영역 침범이라고 여기는 경감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성범죄라는 말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진정할 것이 분명했다.
 과연 마이크로프트의 의도대로 경감은 단 둘이서 잠깐 자리를 피해 이야기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마이크로프트는 경감의 뻔히 보이는 행동에 따라 주면서 존에게 작업에 착수하라는 눈짓을 했다.

 

*

 

 피해자의 방을 둘러보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경감이 누군가에게 지시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디모크 박사를 모셔와."
 "존, 여긴 끝났네."

 

 뒤이어 마이크로프트가 경감의 뒤를 따라나오며 말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입가를 매만지며 존을 불렀고 존은 어쩐지 조금 불만스런 기색이 가신 경감을 돌아보며 마이크로프트를 따라갔다.

 

*

 

 부검실로 온 마이크로프트는 존이 비협조적인 나머지 경찰들을 다루도록 한 후 여기저기로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 존은 우글거리는 경찰들을 부검실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했다. 존이 말하자 다들 그를 향해 묘한 불복종의 눈길을 보내며 천천히 부검실 밖으로 나섰다. 경감은 마이크로프트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마이크로프트는 전화 상으로 무언가를 급히 지시하고 있었던 터라 그는 포기하고 부검실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모두 나간 후 마이크로프트는 통화를 마치고 존을 비롯해 다른 의사들과 증거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 가운을 걸치고 모자와 마스크를 썼다.
 안쪽에는 시체를 담는 비닐백이 있었다.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디모크 박사, 한 번 볼까요."

 

 디모크이라고 불린 의사가 비닐백의 지퍼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괜히 가방을 살살 열었다가 물에 퉁퉁 불은 시체의 표피가 벗겨져나갈까 두려웠던 그는 한 번에 입구를 열어젖혔다. 마스크로도 막을 수 없는 역한 냄새와 시체의 가죽이 섬세하게 벗겨진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모두들 작게 인상을 쓰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존은 시체와 죽음과는 익숙한 편이었지만 이렇게나 악의적으로 타인에게 가한 상흔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약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런 존을 보며 조금 걱정스런 기색을 보였으나 이것 또한 업무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존에게 말했다.

 

 "자, 존 왓슨 박사. 분석을 시작하지."

 

 존은 천천히 시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프로파일링을 할 때 쓰는 간이 녹음기를 켜고 존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흉골 부위에 별 모양의 상처. 재갈에 물린 자국..."

 

 디모크 박사 옆에 서 있던 다른 의사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처참하군."

 

 그 방 안의 모두의 심경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었다. 얼떨결에 존도 따라서 말했다.

 

 "처참한 죽음..."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과학 수사국의 병리학자에게 보여야겠군요."

 

 아까 탄식을 했던 의사가 말했다.

 

 "전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남은 일은 디모크 박사가 알아서 처리해 주실 겁니다...하느님 맙소사."

 

 디모크 박사는 옆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마이크로프트가 존에게 물었다.

 

 "다른 건 없나?"

 

 그 사이 찬찬히 시체를 살펴보고 있던 존이 말했다.

 

 "이 지역 출신이 아니군요. 귀는 뚫지 않았지만...손톱에는 매니큐어를 공들여 발랐던 흔적이 있습니다. 도시에 살았을 가능성이 높죠."

 

 손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여자의 손톱을 본 존이 다시 말을 이었다.

 

 "손톱 두 개가 깨지고, 흙이 낀 걸 보면...어딜 기어오르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존의 말을 주의깊게 듣던 마이크로프트가 사진기를 치우려는 디모크 박사에게 말했다.

 

 "박사님, 마지막으로 치아 사진을 찍어서 실종자와 조회를 해보도록 합시다."

 

 곧바로 출력된 사진을 본 존이 큰 소리로 말했다.

 

 "목구멍에 뭔가 있습니다."

 

 디모크 박사가 말했다.

 

 "물에 한동안 잠겨 있었으니, 나뭇잎 같은 게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여자의 목구멍에서 나온 것은, 이상하게 생긴 갈색 물체였다. 디모크 박사의 말대로 나뭇잎이 동그랗게 말린 것 같아 보이기도 했으나 가까이서 보니 갈색의 껍질로 감싸인 통통한 무언가였다.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뭐지? 무슨 열매인가?"
 "아뇨, 저건 고치입니다. 저런 게 들어갈 리가 없는데..."
 "누가 집어넣은 것이 분명합니다."

 

 디모크가 당혹스런 목소리로 말하자 존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부검실 안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식물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추후에 전문가의 조사를 거치기로 합의한 후 좌중은 다시금 시체 분석에 착수했다. 존이 고치를 조그마한 유리병 안에 넣고 액상 포르말린을 붓는 동안 그의 뒤에서는 시체의 뒷면을 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런...국장님, 이건 뭘까요?"
 "다른 것과 다르군요. 근접 촬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존은 녹음기에 대고 말했다.

 

 "둔부 위로 커다란 두 개의 다이아몬드 형태의 상처. 별 모양 상처는 흉부 척추 깊이, 우측 견갑골과 15센티미터 거리..."

 

*

 

 "존."

 

 본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마이크로프트가 물었다.

 

 "경감과 따로 이야기를 해서 화가 많이 났나? 따돌리려는 작전이었어, 이해해주게."

 

 존은 원래 그런 데에 지나치게 신경쓰거나 응어리를 만드는 편이 아니었으나, 마이크로프트가 그에게 세심하게 배려를 하는 모습에 특별 대우를 받는 듯 기분이 약간 좋아였다. 더불어 아까 전까지 사건의 분석으로 다소 긴장되어 있던 마음도 누그러졌다.

 

 "경찰들이 다 보고 있는데 그런 행동은 곤란합니다."

 

 농담으로 받아치는 그에게 마이크로프트가 안심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마이크로프트는 전화기에 다시 눈을 돌렸다. 존은 다시 시체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다시 녹음기를 집어들었다.

 

 "끈에 묶인 자국은 발목이 아닌 팔목에서 발견됨. 사후 절개 작업의 증거-"

 

*

 

 본부에 도착한 존은 마이크로프트의 연줄을 이용해 생물사 박물관의 한 분석가를 만날 수 있었다.

 

 "왓슨 박사님?"

 

 존은 임시 신분증을 들어보였다. 남자는 이미 이야기를 들었고 다 알고 있다는 듯 씩 웃었다.
 마이크 스탬포드예요, 라고 말한 그는 곧바로 일에 착수했다.

 

 "대체 이건 어디서 나신 거예요?"
 "XX 강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식도에서요."

 

 그는 아무래도 곤충에 깊은 흥미를 지닌 괴짜인지, 그 말을 듣고서도 반짝거리는 눈빛을 지우지 않았다.

 

 "'와일드 차일드'로군요?"

 

 오히려 그렇게 반문하는 그였다.

 

 "수사에 관계된 사항은 더 이상 말씀 못 드립니다."
 "라디오에서 이미 들었다구요. 그러면 이게 살인 사건의 증거란 말야? 굉장한데?"

 

 혼잣말을 지껄이며 힘찬 발걸음으로 나비 표본이 수없이 박제된 채 진열되어 있는 방에 들어간 그는 무신경하게 떠들어대는 것과는 다르게 병에 든 고치를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어 현미경 아래에 놓고 관찰하기 시작했가.

 

 "...박각시 나방인데...엄청나게 크군. 자...조직을 한 번 볼까?"

 

 그는 손에 고치를 쥐고 다른 쪽 손에 든 얇은 칼날로 고치에 자그마한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껍질이 어긋난 방향으로 벗겨져 안의 내용물의 손상당하지 않도록 주의를 집중하는 스탬포드의 손이 미약하게 떨린다. 워낙에 조심스러워야 하는지라 진척이 쉽지 않았다. 잠시 후 위쪽의 껍질을 살짝 들어올리는 데 성공한 그가 존에게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왓슨 박사, 애커론티아 스틱스를 소개합니다. '죽은 자의 나방'으로 통하는 녀석이죠."

 

 아마도 박각시 나방의 한 종류의 학명인 듯 싶었다. 극적인 어조로 말하는 스탬포드에게 존이 물었다.

 

 "어디서 온 거죠?"

 "이상한데...알 수가 없군. 아시아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종인데...수입한 게 틀림없어요. 누군가가 꿀과 가지를 먹이며 길렀군요. 따뜻하게, 정성껏 보살폈어요."

 

*

 

 나비 사육장이 꽉 들어차있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자 불이 꺼져 있는 방이 보인다. 옆방에서 비치는 조명으로 사물이 어렴풋하게 자리한다. 간신히 보이는 것은 깨끗하게 세척된 의료용 도구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있는 수술대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그것들은 푸르고 시린 빛을 반사한다.
 불빛을 따라들어간 방 안에는 여자 형상의 마네킹 여럿이 있다. 각각의 마네킹에는 가발과 다소 과장된 실루엣의 여성용 의복이 걸쳐져 있다.
 살려줘요, 여기서 꺼내줘요, 라는 소녀의 목소리가 방 안에 크게 틀어놓은 몽환적인 음악과 섞인다. 이 방 안은 마치 울림통과 같아서 섞인 소리가 다시 섞이고 다시 섞이고 다시 섞여버린다. 그 휘섞인 소리를 들으며 알몸의 남자는 흥얼거렸다. 계속해서 소녀는 도와달라는 헛된 부르짖음을 토해낸다. 재봉틀을 앞에 놓고 페달을 밟는 남자의 옆에서 강아지가 왕왕 짖는다.
 강아지는 그치지 않는 소녀의 목소리를 따라 다른 방으로 향한다. 강아지는 오래된 우물과 같은 구덩이의 위쪽에서 네 발을 단단히 지탱한 채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서 소녀는 지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소리쳤다.

 

 "도와줘요!"
 
 대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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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존은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수용소에 도착했다. 그의 연락을 받은 레스트레이드가 존을 맞이했다.

 

 "존, 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단 조심하세요."

 

*

 

 존은 빗물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셜록을 향해 말했다.

 

 "그 창고는 당신이 빌린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조명이 꺼져 있어 셜록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배식 창구가 철컹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망설이며 안을 들여다보자,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새 수건이 놓여있었다. 존은 수감실 안을 살폈으나 셜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셜록 홈즈와 물건을 주고받아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떠올랐으나, 이 정도의 호의는 거절하는 것이 지나치게 무례한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수건을 집어들었다.

 

 "고마워요."

 

 존이 말하자 그늘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셜록이 말했다.

 

 "출혈이 멈췄군."
 "그걸 어떻게..."

 

 깜짝 놀란 존이 물기를 닦던 것을 멈추고 말하다가 멈추었다. 그러나 셜록이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조금 긁힌 것 뿐이예요."

 

 존은 다시 질문했다.

 

 "병 속의 머리는 누구의 것인가요?"
 "'와일드 차일드'에 대해 묻지 그러나."

 

 차분한 목소리의 셜록에게 존이 물었다.

 

 "그에 대해 뭘 알고 계신 겁니까?"
 "사건 파일을 보면 알 수 있지. 갖다 줘."

 

 존이 다른 질문을 했다.

 

 "왜 미스터 모팻을 찾으라고 한 거죠? 내가 그걸 찾기를 바란게 맞습니까?"

 

 셜록이 말했다.

 

 "그의 본명은 앤더슨. 이국적인 것에 매우 집착을 보이던 내 의뢰인 중 하나였지. 내가 그 남자의 목을 자르지는 않았어. 시체를 발견하긴 했지만."

 

 셜록의 설명을 주의깊게 듣던 존이 말했다.

 

 "만약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겁니까?"
 "그야 모르지. 그의 정신 상태는 개선의 여지가 없었는데, 차라리 잘 된 거야."
 "옷이나, 화장을 보면...그는 변태성욕자였나요?"
 "전혀. 평범한 조울증 환자였지. 흔해빠진 질병이야. 여장을 하는 건 그로서는 하나의 실험이 아니었나 싶어."

 

 그는 갑자기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애송이 킬러의 화려한 변신이지...그를 본 느낌이 어땠나?"

 

 존은 셜록이 요구하는 대로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았다.

 

 "두려움은 잠시, 나중에는 흥분되었죠."

 

 어둠 속에서 씨익 웃던 그가 말했다.

 

 "아무래도 마이크로프트랑 서로 좋아하는 사이 같은데. 그는 널 좋아하고 너도 그를 좋아하지."

 

 정곡을 찔린 존은 목소리를 일부러 딱딱하게 하며 대답했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그가 너를 성적인 의미로 생각한다는 생각은 해봤나? 나이는 들었지만 말야, 승진을 미끼로 당신에게 잠자리를 요구한다면 어쩌겠어?"

 

 존은 관심없는 표정을 꾸며내었다. 실수로 말을 더듬지 않도록 주의하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런 가십거리에는 흥미가 없어요. 그런 이야기는 믹스나 할 만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셜록은 믹스의 감방 쪽을 슬쩍 돌아보더니 미약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젠 못하지."

 

 둘 사이에 정적이 깔렸다.

 그때 셜록의 수감실에 조명이 켜졌다. 셜록이 눈을 감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레스트레이드."

 

 존은 셜록의 감방 안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악보가 전부 사라져있다.

 

 "악보는 어디 갔죠?"

 

 셜록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처벌이지. 믹스 때문에. 지금 내 텔레비전에 보이는 저 종교 방송처럼 말이야. 당신이 떠나면 볼륨을 높일 테고, 라일리 박사의 고문이 시작되겠지.

 

 존은 화제를 바꾸어보았다.

 

 "'변신'이란 무슨 뜻입니까?"

 

 셜록이 몸을 일으키고 존을 보면서 말했다.

 

 "이 방에 들어온지 4년째야. 살아서 나가긴 힘들테지. 그러나 나는 풍경을 보고 싶어. 여긴 너무 답답해. 나무나 물을 봤으면 좋겠어. 라일리 박사가 없는 곳 말이야."
 "애송이 킬러는 어떤 의미로 말씀하신 겁니까? 그가 또 죽였다는 뜻인가요?"

 

 셜록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증거에 입각한 '와일드 차일드'의 심리 상태를 알려줄까 해."

 

 그는 존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말했다.

 

 "그 친구를 잡게 해주지."

 

 존은 의자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가 누군지 알고 있군요. 누가 당신의 의뢰인의 목을 베었는지 말해줘요."

 

 셜록이 말했다.

 

 "인내는 미덕이지. 나는 인내하고 있지, 존. 너는 얼마나 기다릴 수 있나? 그 아이는 지금도 다음 희생자를 물색하고 있을 거야..."

 

*

 

 캐서린 터너는 용돈을 모아서 산 중고 밴을 끌고 밤길을 가고 있었다. 살집이 있는 편이나 갈색 머리채는 윤기가 돈다. 그녀는 다이어트를 숱하게 시도해봤지만 식탐을 억제할 수가 없어 그동안 번번히 식이 조절에 실패했다. 오늘도 그녀는 친구의 집에 파자마 파티를 하러 가기 위해 학교 기숙사를 나섰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리 터너라는 이름난 상원 의원이었지만 이혼한 터라 여느 어머니들처럼 자신을 돌봐줄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캐서린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기숙학교에 갇혀있다시피 했다. 오늘은 어머니가 그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 죄책감을 자극하고, 그녀의 친구들 모두가 입을 모아 보증한 덕택에 겨우 학교를 빠져나올 우 있었다. 캐서린은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음정 박자 생각지 않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불렀다. 때마침 나오는 곡은 그녀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곡이었기에 흥이 한층 더 붙었다.
 그녀는 문득 과자를 좀 사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직진하다보니 소형 마트가 보였다. 주차를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웬 비쩍 마른 남자가 자기 차의 뒷트렁크 안으로 무거운 서랍장을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늦은 밤이라 주변에는 그녀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갔고, 이번에는 그 남자의 한쪽 팔이 석고 붕대로 감싸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서랍장을 차 가까이 밀어놓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다소 차체가 높은 그 차의 뒷트렁크에 서랍장을 놓는데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도와드릴까요?"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남자는 힘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캐서린은 그 남자에 대한 동정심이 의심을 압도해서 그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도와드릴게요."

 

 남자가 살았다는 듯 휴 하고 숨을 내쉬었다.

 

 "고맙소. 이것만 넣으면 집에 갈 수 있는데, 아가씨 말고는 아무도 따뜻한 마음이란게 없는 사람들 같구려."
 "뭘요. 다치셨군요."
 "네, 어떻게 끌고 오긴 했는데 올릴 수가 없군요."

 

 둘이 들자 서랍장은 의외로 금방 들렸다. 남자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서랍장을 좀 끌어당겨줘요. 내가 밖에서 밀테니까. 참 친절하시군요. 정말 고맙소. 그래요, 그렇게 쭉 잡아당겨요."

 

 트렁크 가장 안쪽까지 서랍장을 잡아당긴 그녀가 남자를 향해 말했다.

 

 "다 됬어요."

 

 남자는 트렁크 안쪽으로 들어와서 서랍장을 더 깊숙이 밀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사이즈가 14요?"
 "뭐라고요?"

 

 그녀가 답을 채 마치기도 전에 남자가 석고 붕대를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후려쳤다. 급소인 정수리는 묘하게 비껴나간 채 연이어 강하게 주먹을 날리는 그의 회심의 미소가 어린 표정을 마지막으로 캐서린은 트렁크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
 남자는 혹시 누가 볼세라 황급히 트렁크 문을 닫고 여자의 옷 태그를 확인했다. 사이즈가 14인 것을 확인하고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좋아, 라고 혼잣말을 했다. 다음으로 남자는 여자의 등이 위로 오도록 눕힌 후에 준비해두었던 재단용 가위로 여자의 옷을 싹둑싹둑 잘라 양 옆으로 헤쳤다. 그녀의 피부 상태를 확인하고 쓰다듬어 보며 남자는 정말로 만족스러운 듯 기쁨의 한숨까지 쉬었다.

 

*

 

 존은 격투 방어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호루라기가 울리며 훈련이 중단되고, 누군가가 그를 훈련장 밖으로 불러내었다. 훈련 중간에 체육관을 빠져나가 보이지 않는다 싶었던 코치였다.
 코치는 그와 동행하며 말했다.

 

 "씻고 출동 준비를 해. 홈즈 국장과 사건 현장에 가게 될 거야."
 "어딥니까?"
 "데번셔에서 변사체가 발견됬다. '와일드 차일드'의 수법이라고 하더군."

 

*

 

 급하게 공수한 작은 헬리콥터 안에서 마이크로프트와 존은 좁은 뒷좌석에 끼어앉아 수사 문건을 함께 보았다. 최고급 수제 양복을 입은 마이크로프트와 캐주얼한 야상 점퍼와 면바지를 입은 존이 함께 웅크려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았다. 셜록 홈즈만 아니었다면, 마이크로프트는 지금쯤 고급스런 사무실 안에서 한국 대선이라던가 하는 문제에 관해 고찰하며 이런 현장 조사에는 투입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존의 뇌리를 스쳤다. 그때 마이크로프트가 존에게 말을 걸었다.

 

 "문제는 이걸세."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왜 사흘 동안 살려뒀는지가 미스터리야. 강간이나 고문의 흔적은 없고, 살갖을 벗기는 작업은 희생자의 사망 이후에 이루어졌어. 정리하자면, 사흘 동안에 범인은 피해자에게 총을 쏘고, 가죽을 벗기고, 강에 버렸다. 모두 다른 강에 버렸고, 발견 시기가 너무 늦어서 미량 증거까지 모두 씻겨나갔어."

 

 소음 때문에 마이크로프트는 목소리를 높였다. 존이 마침 한 사진을 꺼내들자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첫 번째 희생자 프레드리카 허드슨인데, 일부러 시체를 강바닥에 가라앉힌 유일한 경우야. 이후로는 그냥 내버려두고 있어."

 

 지도를 펴며 마이크로프트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걸 보게. 원은 여자들이 납치된 장소, 화살표는 시체가 나온 장소야. 오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데번셔의 XX 강."

 

 거기까지 설명했을 때 헬리콥터가 착륙 준비를 했다. 한 층 더 심해진 헬리콥터 소음때문에 마이크로프트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차량으로 갈아탄 그들은 각자 자료를 마저 살펴보는 데 집중했다. 먼저 자료를 다 읽은 마이크로프트는 존이 다 읽기를 기다리다가 존이 자료를 덮자 그에게 질문했다.

 

 "자네 생각을 말해보게."
 "코카시안 남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쇄살인범은 같은 피부색을 지닌 동족을 선택하니까요. 떠돌이가 아니라 집이 있지만 아파트는 아닐 겁니다."
 "왜지?"
 "은밀히 진행해야 하니까요. 3, 40대로 육체적인 완력은 물론 자제력과 주의력을 겸비한 인물이라고 보여집니다. 아마 절대로 멈추지 않겠죠."
 "그건 왜?"
 "점점 능숙해지고 있어요."

 

 마이크로프트는 스치듯, 아주 잠깐 미소를 지었다가 말했다.

 

 "괜찮군. 혹시 다른 할 말이 있다면 해 봐."
 "저..."

 

 존은 망설이다가 별 거 아닌 것을 말하듯 말했다.

 

 "셜록 홈즈의 제안에 대해선 왜 말씀이 없으시죠?"
 "생각 중이야."

 

 존은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질문했다.

 

 "그래서 절 보내신거죠? 그의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마이크로프트는 어깨만 으쓱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어두워진 그의 표정에 존이 그를 북돋워주려는 의도로 말을 계속했다.

 

 "만약 그렇다면 잘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마이크로프트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니 그도 우리의 목적을 알아챘을 거야. 자네를 가지고 놀았겠지."

 

 터널 구간이었다. 존은 마이크로프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고 싶었으나, 어둠에 가려 마이크로프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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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안녕."

 

 그는 대뜸 반말로 인사했다.
 키가 껑충 크고 호리호리해서 더욱 말라보였다. 허름한 죄수복을 입고 있는데도 그에게는 무언가 신비한 느낌이 있었다. 마이크로프트처럼 그는 어딘지 모르게 오만해보이는 인상도 지니고 있었다. 존은 그에게 인사했다.

 

 "존 왓슨입니다. 당신과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왔죠."

 

 셜록 홈즈는 몇 초 간 존을 훑어봄으로써 모든 것을 파악한 것처럼 보였다.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말했다.

 

 "우리 형이 보냈군."
 "맞습니다."
 "신분증 좀 볼까?"
 "그러도록 하죠."

 

 존은 거듭 들은 규칙-창에서는 멀리 떨어지셔야 합니다-을 상기하며 자신이 선 위치에서 신분증을 들어보였다. 그가 말했다.

 

 "좀 더 가까이."

 

 팔을 길게 뻗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더 가까이."

 

 몇 발자국 내딛자, 그가 전면 유리창의 가까이로 접근했다. 그는 투명한 빛깔의 회색 눈으로 존을 잠시 관찰하더니, 곧바로 신분증을 샅샅이 뜯어보았다.

 

 "다음 주에 시효 만료라. 정식 요원이 아니군."

 

 그가 차가운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윙크를 했다.

 

 "훈련생입니다."

 

 존이 대답했다. 그가 모욕이라도 당한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나'에게 훈련생을 보내?"

 

 은근히 도발하려는 의도를 간파하고 존은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네, 아직은. 여기 온 건 배우러 온 겁니다. 제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판단하십시오."

 

 흠, 하고 그가 소리내었다.

 

 "아주 영악하군. 왓슨 박사."

 

 그가 약간 웃던 표정을 거두고 말했다.

 

 "앉아요."

 

 존이 그의 부탁-지시였나?-에 준비되 있던 철제 의자에 앉자, 그가 물었다.

 

 "한 번 들어볼까. 옆 방에 있는 믹스-철자 엑스가 두개 있는-가 뭐라고 했지?"

 

 그는 존,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 존은 말했다.

 

 "'계집 냄새가 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군. 내겐 나지 않는데."

 

 그렇게 말한 그는 위쪽의 통풍 구멍 쪽을 향해 코를 향하고는 킁킁거렸다.

 

 "에비앙 스킨 크림을 쓰는군."

 

 정확했다. 그는 한 번 더 코를 킁킁거리고는 말했다.

 

 "가끔, 아주 가끔 불가리 옴므 향수를 뿌리지만, 오늘은 안 뿌렸고."

 

 자료를 찾아보면 내가 쓴 향수 감별법에 대한 논문을 찾을 수 있을 거야-라고 그가 중얼거렸다.
 존은 그의 수감실 안쪽을 보고 지적했다.

 

 "저 악보들,-직접 작곡하신 겁니까?"

 

 그가 책상 위에 놓인 악보들 중 하나를 집어들고는 쓰다듬었다. 가장 손때가 많이 묻은 악보였다.

 

 "난생 처음 뭔가를 느꼈던 여자가 죽었을 때를 생각하며 작곡한 거지."
 "작곡 실력이 상당하신가 보군요, 홈즈씨."

 

 그가 손을 내저으며 셜록이라고 불러요, 라고 말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기억뿐이지. 음악은 추억을 떠올리는 데에 아주 좋은 매개고."

 

 창 가까이에 서서 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은근한 압박을 가하던 셜록과의 대화를 더이상 끌어나가기가 어려워진 존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질문서에 대한 당신의 답변이 필요합니다만."
 "오, 이런...그러면 안되지."

 

 그가 다소 실망했다는 투로 말했다.

 

 "지금까지는 좋았는데.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굴면서 말이야. 믹스의 말까지 인정하며 서로 신뢰를 쌓았잖아. 질문지 따위의 얘길 하면서 나를 지루하게 만들면 안되지."

 

 마치 애를 다루는 듯한 셜록의 태도에 다소 기분이 상한 존은 조금 딱딱하게 말했다.

 

 "싫든 좋든 일단 보셔야 합니다."
 "그래, 마이크로프트가 꽤 바쁜 모양이지. 훈련생을 보낼 정도면. 지금쯤 신경 치료나 받고 있을 게 뻔하지만 말이야."

 

 그가 비아냥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와일드 차일드'를 잡으려면 그렇기도 하겠지. 왜 호칭이 '와일드 차일드'인지 설명해주겠나? 언론에서도 쉬쉬하는 거지만."

 

 존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유명한 하이틴 영화에서 비롯된 거죠. 명문 사립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들만 노려 살갗을 벗겼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왜 가죽을 벗긴다고 생각하지? 왓슨 박사. 그대의 통찰력을 보고 싶군."

 

 존 또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흥분제죠.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은 기념품을 간직하길 좋아하니까요."
 "난 아닌데."
 "그래요. 당신은 예외입니다. 왜냐면 다른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들을 죽였으니까요."

 

 그가 눈을 한 번 깜박였다.

 

 "그걸 이리 줘봐."

 

 갑자기 차분해진 셜록의 태도에 존은 약간 당황하면서 배식 창구로 질문지를 넘겨주었다. 그걸 받아든 그는 존더러 구경하라는 듯 종이를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보았다. 존을 향해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보인 그는 질문지를 자세히 보더니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이런, 왓슨 박사. 이렇게 무딘 질문으로 날 분석하려 든건가?"

 

 그 목소리에는 분노의 기색마저 엿보였다. 받아온 질문지를 그대로 셜록 홈즈에게 넘긴 것 뿐인 존은 당황하여 말했다.

 

 "아뇨, 전-"
 "-꿈이 너무 크군. 내 눈에 당신이 어떻게 보이는 줄 아나? 값비싼 신발에 싸구려 외투며...내겐 촌뜨기처럼 보여. 때 빼고 광은 냈어도 품위가 없어. 영양 상태는 좋아 보이지만 가난한 백인 집안 출신이고, 군대식의 억제된 억양이 자기도 모르게 묻어나. 중동 전쟁에 파견되었던 군인이었나? 제대 군인 숙소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군. 다리는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절고 있어. 하지만 심리 치료사가 말한 대로 전쟁에 대한 공포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걸까? 아니지, 아니야...-넌 전쟁을, 격전지에서나 느낄 수 있는 목숨을 담보로 한 스릴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야."

 

 존은 셜록의 속사포처럼 쏟아져나오는 그에 대한 혹평과, 그가 직시하고 싶지 않던 그의 트라우마에 대한 진실을 듣고는 아주 잠시 표정이 굳었다. 그는 무례하지 않으려 억지로 웃음을 지어내며 대답했다.

 

 "아시는 게 많군요. 하지만, 스스로를 판단할 수 있습니까? 자가 분석과 성찰의 결과를 써주시는 게 나을 듯 하군요."

 

 존은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했다.

 

 "아마 그러기가 두려우신가 보군요."

 

 셜록은 존의 반격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배식 창구로 질문지를 다시 넘겼다.쾅 하고 철제 트레이가 부딪히는 소리에 존은 흠칫 했다. 셜록은 얼음장같은 표정으로 존을 응시하며 말했다.

 

 "옛날에, 어줍잖게 나를 조사하려던 형사를 말이지-아마도 이름이 도노반이었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줬지."

 

 단순히 겁 주려는 의도가 아닌 순수하게 사실만을 말하는 그에게 더욱 소름이 끼친 존의 동공이 약간 확장되었다. 셜록은 동화책을 읽기를 그친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말했다.

 

 "돌아가."

 

 뒷짐을 지고 선 그를 등지고 존은 약간 비틀대며 걸었다. 비록 두꺼운 유리창 너머에 서 있었지만 극심한 공포가 그를 덮쳤기 때문이다.
 멍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걷던 그에게 뭐라고 떠들어대던 믹스가 방금 사정한 것이 분명한 끈적한 정액을 손에 담아 던졌다. 기겁을 한 존은 황급히 얼굴에 튄 정액을 닦아내었지만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믹스의 기행을 시작으로 그 옆의 수감실, 또 그 옆의 수감실의 죄수들이 전부 발작적인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셜록 홈즈가 존에게 소리쳤다.

 

 "왓슨 박사! 돌아와! 존 왓슨!"

 

 반사적으로 그에게 달려가자 그가 빠르게 말했다.

 

 "아까는 실례가 많았소."
 "그럼 이걸 작성하세요!"
 "그건 싫지만 당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기회라뇨?"
 "승진의 기회지 뭐겠어. 자신을 돌아보라고. 아주 깊숙한 곳까지. 그리고 내 의뢰인이었던 미스터 모팻을 찾아. 믹스가 또 장난을 시작할 거야. 어서 가!"

 

 마지막 말을 거의 포효하듯 존에게 외친 그의 기세에 밀려 존은 넘어질 듯 빠른 걸음으로 수감실 복도를 걸어나갔다. 문 앞까지 와서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

 

 수용소 건물 바깥으로 빠져나온 그는 기진맥진하여 비척거리며 차로 돌아갔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차 문을 열고 앉은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

 

 본부로 복귀한 그는 재활 훈련, 심리 상담, 체력 단련, 사격 연습 등에 몰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이크로프트가 그에게 준 셜록 홈즈에 대한 자료와 그리고 그의 능력으로 구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자료들을 정독했다.
 존이 얻을 수 있었던 정보에서 유추한 셜록 홈즈라는 인간의 양상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뛰어난 관찰력을 통해 인물의 면면을 순식간에 파악하고, 가령 처음 만난 타인이라 할지라도 아주 조그마한 특징을 통해서도 그 사람을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몇몇 증언에 따르면 그는 '기억의 궁전'이라는 자신만의 추상적인 세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 방법을 통해 백과사전을 능가하는 양의 지식을 지니고 다닌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그의 팬덤 중의 일부는 '그는 이미 호모 사피엔스의 경지를 넘어섰다'라며 추앙하기까지 했다.
 도서실에서 관련 기사를 보고 있던 그에게 사서가 다가와 말했다.

 

 "국장 호출이야."
 "홈즈? 고마워."

 

*

 

 "존?"
 "네."
 "믹스가 죽었어."
 "...죽어요?...어떻게 말입니까?"
 "셜록과 이야기한 후 한참 울다가 혀를 깨물고 죽었다는군."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흐르자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존?"

 

 존은 정신을 차리고는 대답했다.

 

 "네, 듣고 있습니다. 그저...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재미로 한 짓이야. 구역질이 나는군...오늘 힘들었겠지만, 한 가지만 질문하지...'모팻'이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뭐 나온 것 있나?"

 

 존은 아까 전 적어둔 메모를 펼치며 대답했다.

 

 "체포되기 전 의뢰인에 대한 기록을 모두 파기해서 그런 자료는 없었지만, 그의 말 중에서 짚이는 데가 있어 조사해보았더니 교외에 창고가 하나 있더군요."

 

*

 

 창고 관리인은 불면 폭삭 꺼질 것같이 마르고 늙은 남자였다. 그는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31번 품목은 맡겨진 지 5년이 넘었는데, 보관비는 전액 선불이었고, 계약자는 미스터 스티븐 모팻이라오."

 

 존은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 보았으나 성과는 없었다.

 

 "이 장사는 프라이버시가 생명이니까."

 

 그런 말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좋습니다."

 

 존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 오래된 창고의 문을 여느라 용을 쓰며 말했다.

 

 "금방 끝날 겁니다."

 

 덜컹거리기만 하며 문은 열리지 않았다. 늙은 관리인의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기어들어갈 정도의 틈이 열렸다. 드문드문 녹이 슬어있는 철제 합판 상자를 끼우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창고 안으로 몸을 들여놓았다. 존은 문이 내려앉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쳐 관리인에게 문이 내려앉을 경우 전화를 걸어달라며 지국의 명함을 내미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열린 틈은 너무나 좁았다. 존의 발목 부분에 쇠가 삐죽이 튀어나온 부분이 걸리며 바짓단과 양말이 동시에 찢어졌고 발목에는 상처가 약간 깊게 난 듯 했다. 피가 조금 스며 나오는 것 같았지만 존은 개의치 않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먼지와 먼지가 내려앉아 희게 보이는 거미줄이 가득 끼어있었다. 안에 쌓여있는 물건들도 뒤죽박죽 질서없이 무작정 쌓여있었다. 박제, 서랍장, 싸구려 청동상 등의 잡동사니들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간 존은 천에 덮인 구형 차를 발견했다. 존은 천을 걷어내고 안에 손전등 불빛을 비춰보았다. 시험삼아 열어본 차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존은 뒷좌석을 확인했다. 목이 없고 저렴한 티가 나는 웨딩드레스가 입혀진 마네킹의 옆에 있는 책을 들춰보던 존은 멀리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허술해보이던 철제 상자가 결국 부서지고 문이 닫혀버린 것이 분명했다. 존은 관리인이 서둘러 지국으로 전화를 걸어주길 기도하며 다시 조사에 들어갔다.
 존은 일부러 가려놓은 것이 분명한 물체를 발견했다. 덮인 핑크색 커튼 천을 벗겨내자, 안에는 진한 화장을 한 남자의 머리가 포르말린에 절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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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왓슨, 홈즈 국장이 찾네."
 "알겠습니다."

 

 오늘도 재활훈련을 하느라 땀에 흠뻑 젖은 존 왓슨에게 그의 담당 의사가 다가와 말했다. 그는 곧바로 땀을 닦고 위층의 행동 과학 연구소로 향했다.
 존 왓슨은 아프간 귀환병이다. 실력있는 의사를 양성하기로 유명한 영국의 바르톨로뮤 의학 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서 제 5 노섬벌랜드 퓨질리어 연대 소속으로 복무했다. 직업 군인으로의 활동도 고려할 정도로 우수한 경력을 쌓아가던 존 왓슨이 현재 병원의 재활 시설 내에서 재활 훈련이나 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은 그가 겪은 마지막 전투에서 얻은 부상 때문이었다. 당시에 그가 입은 부상은 매우 심했던 터라 팔이 괴사 직전까지 몰렸으나 다행히도 적합한 후속 조치가 취해졌던 터라 팔은 정상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왔다. 그랬던지라 군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현재는 국립 경찰청의 행동 과학 부서의 견습 요원으로 스카웃될 수 있었다.
 다만 현재까지도 문제가 되는 바는 트라우마 때문에 유발된 림프관의 이상이었다. 가만히 서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걸을 때, 그리고 특히 뛸 때는 다리에 무리가 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존은 수시로 재활 센터에 들러 따로 재활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사실 신체적인 재활을 한다고 트라우마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존은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훈련에 열심이었다.
 존은 앳된 얼굴의 훈련생들을 지나쳐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앞으로 국가 기밀과 관련된 업무를 맡게 될 건장한 체격의 청년들이 엘리베이터에 가득했지만 최상층까지 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홀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를 소환한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사무실로 향했다. 보안은 철저하여 무려 다섯 개의 비서실을 거친 후에야 그의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했으나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보이지 않고, 그 휘하의 차관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심각하게 무언가 논의하고 있다가 방에 들어온 존을 발견하고 물었다.

 

 "홈즈 국장을 뵈러 왔나?"
 "그렇습니다."
 "금방 오실 거야. 우린 이만 나가보지."

 

 남자들은 그 말대로 바로 방을 나갔다. 존은 국장을 기다리며 방 안을 슬쩍 둘러보았다. 방 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그 주인을 상징하듯 고급스럽기 그지없었으나 벽의 한 면만은 수십 장의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지저분하게 느껴진다. 사진의 주인공은 통칭 '와일드 차일드'와 그의 피해자들이다.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서 옆을 돌아보았다.

 

 "왓슨. 존 H. 어서 오게."
 "안녕하십니까."
 "급하게 불러서 미안하네."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매우 장신이다. 말랐지만 수트가 불쌍하게 헐렁일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고급 수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마찬가지였고, 그의 제 2의 살갗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그에게 잘 어울렸다. 그는 베스트에서 체인이 달린 회중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확인하며 존에게 양해를 구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렇게 빈틈이 없으면서도 사려깊은 모습을 보면 과거의 고풍스런 댄디 신사가 연상되었다.
 그는 우아하게 걸어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며 존을 향해 살짝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역시나 흠 잡을 데 없이 간결하고 거역할 수 없는 동작이다. 존은 일순 입을 뻐끔거리다 뒤쪽의 의자를 끌어와 마이크로프트와 마주보고 앉았다.

 

 "잘 하고 있다더군. 적응도 빠르고."
 "그렇게 여겨주신다니 다행입니다."

 

 의자에 앉은 존에게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이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자네가 해줄 일이 있네. 일보다는 심부름에 가깝지만."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내 세미나에서 본 기억이 나는군. 맞나?"

 

 정말로 물어보는 것이라기보단 확인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그렇습니다."
 "부전공생 치고는 수준 높은 질문과 이해력, 그리고...레포트도 훌륭했던 기억이 나. A를 줬던가?"
 "A-였습니다."

 

 그는 미소짓고는 서류철을 피며 말했다.

 

 "바르톨로뮤 의학 대학 외과 전공, 행동 심리학 부전공. 차석 졸업이라. 라이징거 클리닉에서 인턴을 했었고, 그 후로 아프간 전쟁에 파견되었군. 팔에 부상으로 의가사 제대를 했고. 당시 희망 진로 사항을 참고하자면 졸업 후 나와 행동 과학을 연구하고 싶었다고 쓰여있는데."

 

 존은 멋적었는지 손을 깍지 낀 채 몇 번 움직이다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마이크로프트는 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른 서류철을 꺼내어들었다.

 

 "현재 자네에게 돌아갈 업무는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들을 인터뷰하는 일이야. 미해결 사건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네. 아직까지는 대부분 협조적이네만,-자넨 겁이 많은 편인가? 아니...전직 군인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게 우습군."

 

 존은 그저 웃어보였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를 흘끔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협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인물을 한번 만나봐 주게."
 "그게 누구죠?"
 "전직 자문 탐정이자 자문 범죄가였던 셜록 홈즈네."
 "아..."

 

 순간적으로 '미친 탐정(Mad detective)'이란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정신을 차린 존은 자제력을 발휘하여 단순한 감탄사만 뱉어내는 데 성공했다.
 미친 탐정 셜록 홈즈는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친동생으로, 소시오패스를 넘어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이중인격자였다. 마이크로프트 못지 않은 뛰어난 지능과, 마이크로프트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활발한 행동력으로 한 때 신문과 인터넷에서까지 이름이 오르내렸던 유명한 탐정이었으나, 자신이 만들어낸 범죄를 자신이 해결해낸다는 것이 발각되면서 친형의 손에 검거되었다. 그 탓에 영국 정보부의 수장직이자 영국 정부의 대표격이던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직위는 겨우 국립 경찰청의 행동 과학 부서의 국장으로 강등되고 말았으나, 셜록 홈즈가 저지른 일의 경중을 생각해보면 그나마도 다행인 일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존이 그의 눈치를 보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입을 열 가능성은 없지만, 최소한 노력은 해봐야지."

 

 어쩐지 목소리에 힘이 빠진 듯한 그를 존은 약간의 연민을 가지고 쳐다보았다. 마이크로프트는 다시금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감옥이나, 수감자의 상태라도 보고하도록. 혹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무슨 그림인지, 여하튼 모든 것을 말이야."

 

 그는 미리 준비를 해두었는지, 서랍을 열고 밀봉된 서류 한 뭉치를 꺼내어 존에게 건넸다.

 

 "이건 셜록 홈즈에 관한 서류일세. 그리고 질문서와 특별 신분증이야. 수요일 오후 8시까지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존은 서류를 챙겨가다 말고, 마이크로프트를 돌아보았다.

 

 "죄송한 질문이지만, 왜 서두르시는 겁니까? 그가 수감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요. 저기-"

 

 존은 벽면에 가득 붙어있는 사진을 슬쩍 눈짓하며 말했다.

 

 "'와일드 차일드'와 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러길 바라야지. 각별히 신경을 써주길 바라네, 왓슨."
 "알겠습니다."
 "일급 요주의 인물이야. 수용소의 라일리 박사가 행동 지침을 알려주면 반드시 그대로 따라야 하네."

 

 불쾌한 여자지만 말이야-라고 언뜻 마이크로프트가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적인 이야기는 금물. 그가 누구인지 명심하게. 본인의 임무에만 충실하도록."
 "그에 대해 점점 궁금해지는군요."

 

*

 

 "그는 괴물이예요. 미치광이."

 

 자기 딴에는 소시오패스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말예요, 라고 키티 라일리 박사가 말했다. 가슴팍을 지나치게 풀어헤치고 자기 나이가 몇인지 망각한 듯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자였다. 그녀는 특유의 졸린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살아있는 연구자료로는 대단히 희귀한 경우죠."

 

 존은 언제나 이 지루한 절차가 끝날까 싶어 방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녀가 지나치게 활짝 웃으며 존에게 말했다.

 

 "호호, 이 삭막한 수용소에 이렇게 매력적인 분이 방문한 건 처음이군요.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하룻밤 묵어가시는 것도...?"

 

 노골적으로 그를 유혹하는 라일리 박사에게 존이 곤란한 듯 웃으며-그러나 너무 거절하는 기색이 비치지 않도록 주의하며-말했다.

 

 "정말이지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군요. 다만, 결과를 오늘 오후까지 보고해야 합니다."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빨리 끝내죠."

 

*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그의 앞을 인도하며 말했다.

 

 "표준 테스트로는 그 사람을 연구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그는 저를 원수 보듯 한다니까요."

 

 라일리 박사가 지하로 통하는 계단 문을 열며 말했다.

 

 "당신이 와서 다행이예요."
 "무슨 뜻이죠?"
 "글쎄,...멋지고 매력적인 남성이니까."

 미친 탐정, 그는 연쇄살인마에다가 호모이기까지 한 것이다. 존은 속으로 혀를 찼다.

 

 "남자 구경한 지 하도 오래돼서 입맛에 맞을 겁니다. 말하자면요."
 "챠밍스쿨을 졸업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군요."
 "그래요. 아까 말해준 규칙을 절대 잊지 마세요."

 

 그녀는 한 번 더 반복했다.

 

 "절대 창에 다가가지 마세요. 종이 외의 필기구를 줘선 안되고, 스테이플러, 클립도 물론이예요. 무언가를 전달할 때는 반드시 배식 창구를 이용하세요. 뭘 주더라도 받지 말아요. 이해하셨어요?"
 "이해했습니다."
 "이런 규칙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답니다. 2008년 7월 8일, 가슴 통증을 호소해서 의무실로 옮겨서 마우스피스를 벗겼더니 간호사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놨어요."

 

 라일리 박사는 심한 상처를 입어 성형을 해도 원상복귀가 불가능하게 된 끔찍한 여자의 얼굴 사진을 품에서 꺼내 내밀었다. 그녀는 존이 셜록 홈즈에 대한 선입견을 갖도록 만들고 싶은 듯, 어딘지 악의적인 의도가 가득해보였다. 사진을 받아들고 꼼꼼히 살펴보면서도 존은 동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찌어찌 턱을 교정하고 눈 하나는 치료했지만 간호사의 혀를 찢어낼 때도 맥박이 85를 넘지 않았어요."

 

 그녀는 사진을 다시 받아들고는 말했다.

 

 "여기 수감시켜 놓았어요."

 

 따라가려는 작정인지 그녀가 안으로 발걸음을 들였다. 존이 황급히 말했다.

 

 "라일리 박사님, 셜록 홈즈가 선생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혼자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다소 불쾌한 듯 말했다.

 

 "사무실에서 미리 얘기하셨으면 좋았을 뻔 했네요."

 

 존은 환심을 사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여기까지 안내받을 기회를 잃어버렸겠죠."

 

 그녀는 불쾌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 듯 싶었지만 일단은 웃어보였다. 그녀는 그의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간수를 향해 말했다.

 

 "끝나면 밖으로 모셔."

 

 그녀는 지시를 마치고 곧바로 위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박사의 지시를 받은 반백의 중년이 인사했다. 그녀를 수감실 복도 쪽으로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그렉 레스트레이드라고 합니다. 창에서 거리를 두시는 건 들으셨을거라 믿습니다."

 

 존은 박사보다 호감이 가는 인상의 남자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존 왓슨입니다."
 "반갑습니다. 외투는 여기에 거세요."
 "네, 고마워요."

 

 그는 복도로 통하는 잠긴 문을 열고 존을 들여보내준 후 말했다.

 

 "쭉 가시다 마지막의 오른쪽 방입니다."

 

 창살문이 닫히는 소리가 묘하게 크게 울려 흠칫 한 존은 레스트레이드를 쳐다보았다.

 

 "의자를 준비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약간 긴장한 존에게 레스트레이드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제가 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감실의 통로가 열렸다. 한 쪽 벽은 견고한 벽돌로 꽉 짜여 있었고, 다른 쪽에는 수감실이 연이어 놓여 있는 구조였다. 쭉 걸어가면서 존은 다른 죄수들을 관찰했다. 동공이 풀린 채로 실실 웃는 남자, 우울하게 웅크리고 있는 남자를 거치자 다음 방에서는 쥐새끼처럼 생긴 남자가 그를 발견하고 창살에 매달려 헥헥댔다.

 

 "계집 냄새가 난다..."

 

 천박한 말을 하는 남자를 외면하고 계속 걸어갔다.
 바로 다음 방에서 한 남자가 똑바른 자세로 선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창백한 얼굴에 검은 곱슬머리의 남자. 셜록 홈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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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