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역키잡

 

 

 개찰구는 시끄러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쓸데없는 소음을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한 나날을 영위해왔던 평소와는 달리 허용 범주 이상의 과다한 소음에 노출된 셜록의 귀는 피로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귀를 막고 역에서 북적이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셜록은 트렁크를 질질 끌고 플랫폼을 나섰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기차를 탄 순간부터 끈질기게 따라붙던 사람이 지금까지도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시끄러워 죽겠지?"


 

 놀리듯 빙글거리며 말한 그는 검은 눈을 반짝이며 셜록에게 미소지었다. 당연한 것을 굳이 물어볼 정도로 할 말이 없는 건가? 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셜록은 신경질을 가라앉히고 나직하게 대꾸했다.

 "...조용하진 않지."

 

 셜록의 대답에 짖궂게 웃는 그 눈동자를 무시하고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남자를 무시하고 휘적휘적 앞서 걸어나가는 것에 남자는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으며 셜록에세 볼멘소리를 토해냈다.

 

 "냉정해라."

 

 그는 여전히 셜록의 옆을 따라오며 들으란 듯 크게 말했다.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말 같았지만 그 말을 들은 셜록은 무척이나 귀찮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개찰구에 다다라 셜록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열차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그들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만나는 경계선에 자리한 공간이었다. 그를 지금껏 따라온 사람도 셜록의 바로 옆에 멈추어섰다. 남자는 정말이지 말하기를 좋아했다. 평소에는 잘만 입다물고 있지만 셜록 앞에서는 그 입을 놀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는 듯 했다. 그 입만 좀 다물면 좋을 것 같았지만 남자가 셜록의 요청에 순순히 응할리 만무했다.

 셜록이 학교에서 나와 열차에 올라탈 때부터 그의 곁에 붙어있던 남자는 그가 이곳에 멈추어 자신의 말을 듣기를 원할 것이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와중에도 교묘하게 핀트를 조절하여 남을 조종하길 즐기는 그의 성향으로 미루어보자면 그는 셜록을 가지고 모종의 놀이를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누구의 뜻대로, 특히 이 남자의 뜻대로 놀아나는 것은 질색인 셜록은 계속해서 그를 무시해왔으나 이런 혹을 단 채로 존을 만나는 것은 셜록이 결코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 남자가 그 교활한 입으로 존에게 어떤 말을 나불거릴지도 모르는 것이었고말이다.
 남자에게 대충이나마 응수해주기로 마음먹은 셜록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모리어티, 대체 뭘 원하는 거야?"

 

 멈춰선 셜록의 앞에 서서 그와 마주보고 선 모리어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작별 인사."

 

 모리어티가 지금껏 긴 시간동안 자신의 옆에 머물렀던 의도가 겨우 그런 의도일리 없었다. 셜록은 같잖다는 듯 픽 하고 콧방귀를 뀌고선 말했다.

 

 "지금 네가 돌아서서 네 갈 길을 가고, 나는 이대로 내 갈 길을 가면, 그게 작별 인사지. 혹시 말 그대로의 '인사'를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해주지. GOOD BYE!"

 

 한시라도 빨리 그를 떼어내고 존을 보고 싶었던 셜록은 그 어느때보다도 빠르게 지껄였고 마지막으로 연극적인 어투를 발휘해 작별 인사를 고했다. 셜록이 속사포로 쏟아내는 말을 듣고 있던 모리어티는 파하하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런 웃기는 걸 원하는 게 아니란 거 잘 알면서 왜 그래?"

 

 말 한 마디로 순식간에 셜록을 웃음거리로 전락시킨 모리어티는 느긋하게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그는 한 걸음 셜록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말했다.

 

 "이런 찰거머리는 떼어버리고 얼른 네 님을 만나러 가고 싶은 거지. 네 외삼촌 말이야. 이름이-"
 "그 이름 입에 올리지 마."

 

 어우, 예민하셔라-라고 셜록을 비웃은 모리어티는 보란 듯이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존 왓슨, 이었지 아마? 존 해미쉬 왓슨...정말 귀여운 이름이야. 네가 찜해놓지 않았다면 관심도 가지지 않았겠지만...아니, 아닌가? 하긴 너같은 애를 평범한 애처럼 예뻐해준 걸 보면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긴 하지."
 "닥쳐."
 "알았어. 네가 원하는 대로-닥칠게."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빼앗았다가 다시 돌려주는 것처럼 잔혹한 장난기가 어린 목소리로 모리어티가 말했다. 하긴 이 어린애한테는 '존 왓슨'이 금구였지. 그렇지만 저렇게 반응하는 걸 보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
 그렇게 생각한 모리어티는 자기 입으로 닥친다고 말하긴 했음에도 전혀 닥칠 생각은 없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쉽네. 기껏 취향에 맞게 길들여놨더니, 이렇게 매몰차게 떠나려고하다니."

 

 은근슬쩍 셜록의 뺨을 감싸며 짐짓 슬픈 어조로 말하는 것에 셜록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누가 누굴 길들여? 착각하지 말라고."
 "혹시라도 외로우면 언제든지 불러. 알잖아. 나는 너를 완전히(completely) 이해(understand)할 수 있다는 거."

 

 요염한 기색이 가득 밴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모리어티의 말에 셜록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대체 언제까지 네 말을 들어줘야 하는 거지?"
 "내 말이 그렇게나 듣기 싫어?"

 "그래."

 

 셜록의 단호한 대답에 모리어티는 한 발 양보한다는 듯 풀죽은 어조로 말했다.

 

 "그럼 부탁 하나 들어줘."

 

 뜬금없는 모리어티의 말에 셜록은 단번에 거절했다.

 

 "네 부탁따윈 들어주지 않아."
 "한 번 들어보기라도 해."

 

 모리어티의 강권에 셜록은 노골적으로 싫다는 티를 내며 지친 표정으로 뭔데, 라고 물었다. 모리어티는 슬몃 웃으며 말했다.

 

 "Kiss me, Sherlock."

 

 전혀 예상치 못한 요구를 받은 셜록은 눈이 약간 커졌으나 금세 평상심을 회복하고 대꾸했다.

 

 "No."

 

 오늘만 해도 두 번째로 가차없이 거절당한 모리어티는 짐짓 상처받았다는 듯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마안-마지막 키스만큼은 해주는 게 도리잖아. 우리 사이가 여느 사이였던 것도 아니고..."

 

 안 그래? 라고 속삭이는 모리어티의 조름에 굴하지 않고 셜록은 차갑게 말했다.

 

 "Shut up, bitch."
 "That's very harsh of you."

 

 그리고 모리어티의 입술과 그의 입술이 부딪혔다. 어느새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서 입술을 억지로 부비어대는 모리어티의 행동에 셜록은 당했다 싶었지만 어차피 닳는 것도 아니고, 라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그의 키스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이 정도로 그를 떼어낼 수 있다면 자신이 더욱 환영이었던 것이다. 아, 빨리 존을 만나고 싶어...셜록은 그렇게 딴생각을 하며 모리어티의 능수능란한 키스에 무심히 응했다.
 깊은 것도 아니고 얕은 것도 아닌 이상한 키스를 두 남자가 나누고 있는 사이 셜록은 자신의 뺨에 따갑게 꽂히는 시선 쪽을 향해 무심코 눈을 돌렸다.
 그는 어떤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빛 바랜 듯한 금발에 동그란 푸른 눈.
 존 왓슨.

 존?
 셜록은 낭패다 싶어 급히 입술을 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존에게 이 모습을 들키다니!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자신과 존의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글거리며 몰려들었다가 저만치로 쓸려갔다. 멀리서 보이는 존의 눈에는 일말의 당황한 기색이 스치고 있었다. 자신이 모리어티와 키스한 것을 본 것이 분명하다. 모리어티가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리며 시간을 끈 것은 이걸 노리고 한 것이 분명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만회한다? 이제 존을 어떻게 해명한다?

 셜록은 속으로 혀를 쯧하고 차며 모리어티를 밀쳐내었다.
 그는 얄미울 정도로 즐겁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낭군님이 당도하셨나보네, 셜록."

 "...빨리 꺼져."

 

 셜록이 존이 모리어티와 자신이 붙어있는 광경을 다시 볼까봐 안절부절못하며 거칠게 말하는 것에, 모리어티는 싱긋 웃었다. 그는 환히 미소지으며 특유의 멋을 잔뜩 부리는 어투로 드디어, 작별 인사를 고했다.

 

 "Farewell, Sherlock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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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커 가에 도착한 셜록은 택시에서 내린 뒤 주위를 휘 둘러보며 후우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가 떠난지 어언 6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런 만큼 영원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것만 같았던 베이커가의 외관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셜록은 기억과 같은 풍경을 눈으로 되새기고, 새로이 변한 부분을 뇌내정보에 갱신하며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바로 고향에 돌아온 느낌일까. 아련하고도 따스한 물결-아니, 낡고 부드러운 모포에 감싸인 느낌.
 셜록이 그런 생각을 하며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가운데 존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셜록의 태도가 존을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했다. 차 안에서의 격한 대화가 오간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셜록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한 표정으로 존을 향해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짓고 있었다. 예전의 셜록은 저렇게 능숙하게 미소지을 줄은 몰랐었다. 그 때문에 줄곧 무표정만 고수하고 있었던 어린 셜록을 떠올려 지금의 셜록과 비교를 하자니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은 더욱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자신을 보는 셜록의 얼굴에 담긴 미소에서는 어쩐지 지어낸 듯한 감이 풍겼다. 그에 위화감을 느낀 존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것이 가시지 않았으나, 이것도 셜록 나름의 화해의 제스처려니 싶었기 때문에 그도 결국엔 미소를 돌려주었다.
 셜록은 존이 그의 트렁크를 들어주려는 것을 마다하고 양 손에 하나씩 든 채로 현관으로 들어섰다. 마침 방을 나서던 허드슨 부인이 몰라보게 큰 셜록을 용케 알아보고 다가와 환대하는 것에 셜록이 활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I'm home, Mrs. Hudson!"

 

*

 

 6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셜록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존은 과거에 셜록이 사용했었고 최근까지만 해도 존이 썼던 침대를 흔쾌히 셜록에게 내주고 자신은 본래 손님용으로 구비해두었던 침대를 사용하기로 했다. 침대맡과 천장에 붙어 때가 낀 야광 별 스티커를 감회어린 눈으로 보는 셜록이 은근히 기뻐하는 것을 보며 존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저 스티커를 대체 언제 붙였었더라, 라는 생각을 하며 셜록은 무심코 그 스티커를 손으로 한 번 쓰다듬었다. 오랜 시간 동안 벽에 붙어있느라 연둣빛이 거의 상아색으로 흐릿해진 그것은 손때가 묻어 무척이나 반들반들거리며 매끈했다. 존이 저것들을 붙이고 밤이 되면 은은한 형광빛으로 빛나던 그것들을 가리키며 별들에 대한 동화를 들려주던 존에게 자신이 성운과 은하에 관한 지식을 뽐내어 존을 기죽게 만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침대에 앉아 이불보를 몇 번 쓸며 추억에 잠겨 있던 셜록은 문득 존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침대 옆 의자에 앉은 그를 살피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존."

 

 존이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던 고개를 돌리며 셜록에게 말을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살이 빠졌군요."

 

 존은 셜록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에 반쯤은 놀라고 나머지 반쯤은 부끄럽다는 생각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 최근에 바쁜 일이 있어서 말야.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거든."

 

 존의 모호한 대답에 셜록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마땅찮다는 듯 말했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 거죠?"
 "그럼, 그럼."

 

 갑자기 집요해지기 시작한 셜록의 질문 공세에 내심 놀라면서도 존은 그 관심이 기분나쁘지 않았으므로 이어지는 자질구레한 질문에도 꼬박꼬박 대답했다. 셜록은 그동안 존을 만나지 못했던 만큼의 시간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의도의 질문이라면 존이 사양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여러 질문들이 중구난방 식으로 이어지다가 드디어 끝에 다다랐다.

 

 "좋아요, 그럼 마지막 질문."

 

 셜록이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사귀는 사람 있어요?"

 

 셜록의 질문에 존은 헛기침을 했다. 아까 전의 셜록은 자신의 사생활에는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말을 하지 않았던가? 아마 그런 말을 내뱉은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던 주제에 셜록은 존 자신의 근황에 대해서는 꽤나 궁금한 모양이었다. 뭔가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들긴 했지만, 존은 셜록을 완전히 이해하려는 것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으므로 다소 앞뒤가 맞이 않는 듯한 언사에 대해 일일히 따질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셜록이 지금 존에게 물은 일은 어차피 언젠간 그에게도 밝힐 일이니 이렇게 된 참에 그에게도 지금의 상황을 털어놓으려 마음먹었다. 사실 아까 말한 '바쁜 일'이라는 것도 지금 존이 말하려는 것과 큰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아 존은 연신 헛기침만 해대며 얼굴을 조금 붉혔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요?"

 

 셜록이 피식 웃으며 존의 대답을 재촉했다.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음, 대답부터 하자면, 있어."

 

 얼굴을 붉히며 사귀는 사람이 있노라고 말하는 존을 바라보는 셜록의 얼굴은 더할 나위없이 싸늘하게 변했으나 억지로 지은 미소가 이번에는 꽤나 자연스러워 보였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의 여자 친구 생각을 하느라 셜록의 표정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는지 존은 미처 셜록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셜록이 물었다.

 

 "아주 좋아하나요?"
 "음...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 사실, 우린 결혼을 생각하고 있거든."

 

 '결혼'이라는 말에 웃음기를 덮어씌운 셜록의 표정이 약간 흔들렸는지 존이 급히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그렇게 젊은 나이는 아니잖니."
 "누가 존이 늙었다고 했나요?"

 

 말투에 저절로 신경질이 묻어나는 것을 억지로 억누르며 셜록은 다시금 표정관리를 했다. 셜록의 탐탁찮다는 반응에 셜록의 얼굴을 훔쳐보며 불안해하는 존에게 셜록은 다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존이 결혼한다니, 왜 진작에 알려주지 않았나요? 무척 섭섭하네요."

 

 응석어린 셜록의 말에 존은 셜록이 화를 내지 않아 안심한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혼수를 보러 다니는 중이야. 아까 무슨 일 때문에 바쁘다고 했었지? 그게 물건을 보러 다니느라고 그런 거야. 물론 우리가 부자는 아니지만, 세간을 합치더라도 낡은 물건들 같은 건 처분하고 새로 장만하는 편이 좋잖아."
 "그럼요."

 

 셜록이 무심히 동의했다. 존은 계속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셜록의 귀에는 무엇 하나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존은 이대로 자신을 떼내고 그 여자와 결혼할 셈인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쉽사리 바뀔 결정은 아니겠지.
 그러면 당연히 셜록과 존, 둘만의 보금자리를 떠나 셜록 자신을 홀로 남겨둘 것이다. 셜록이 외로이 베이커 가에서 고독과 씨름하는 가운데 그는 여자와 아이를 낳아 사랑을 베풀 것이다. 셜록을 버려두고.
 그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존이 처분하는 낡은 물건들 중 하나에는 자신도 속해있다는 것을.

 존은 삐걱이는 나무 의자, 해진 쿠션, 얼룩진 식탁보, 때낀 전자레인지, 그리고 셜록을 전부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서, 그렇게 베이커 가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옮겨갈 셈인 것이었다.
 정말이지 무자비한 남자야, 라고 셜록은 속엣말을 했다. 이렇게 통보하듯이 말하다니, 게다가 존은, 셜록이 먼저 묻지 않았다면 대체 언제 말하려는 생각이었을까? 아마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셜록의 안에서 끓어오르던 뜨거운 화는 부글거리는 용암처럼 그의 안에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얼음장같은 차가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어렸다.
 셜록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그만인 가구가 아니었다. 버린다고 순순히 내버려질 오래된 전자기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셜록은 지금이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할 때임을 알았다.
 셜록이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을 즈음 한참 말하던 존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존 자신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없는 셜록을 불렀다.

 

 "셜록?"

 

 곰곰히 생각에 빠져 있던 셜록이 존의 부름에 퍼뜩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자 존이 셜록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 중이야?"

 

 셜록은 햇살처럼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존의 얼굴을 보고 그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눈 앞에서 미소짓고 있는 그로 인해 촉발된 거센 화마와도 같은 분노는 동일한 인물의 자그마한 미소로 인해 허무하리만치 쉽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아, 정말이지...

 셜록은 속으로 탄식했다.

 당신을, 어쩔 수가 없어...

 순간 스스로의 심경 변화에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만 깜박이며 존을 바라보던 셜록은 의미모를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자신을 다잡았다.
 셜록은 자제력을 발휘하여 금세 자신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저한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났거든요."

 

 존이 셜록의 말에 관심을 보이자, 셜록은 씩 미소지으며 말했다.

 

 "셋이 한 번 만나는 게 어때요?"
 "셋?"
 "그래요. 당신과 그녀, 그리고 저요."

 

 예상치 못한 제안에 놀란 존은 턱을 괴며 셜록의 말에 대해 고민하는 듯했다. 셜록은 존이 그가 한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감언이설로 그를 설득했다.

 

 "앞으로 제 숙모가 될 지도 모르는 분인데, 얼굴이라도 보아두는 게 좋지 않겠어요?"

 

 셜록의 이런저런 말을 들으며 존은 생각했다.
 셜록의 말이 맞아. 앞으로 가족이 될 사인데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다는 건 정말 말이 안되지.
 거기까지 생각한 존은 셜록에게 말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구나, 셜록. 왜 진작에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지금이라도 생각이 났으니까 됐지요 뭘."

 

 여상한 셜록의 어투에 존은 셜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미안해."

 

 갑자기 손을 잡힌 셜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가요?"

 

 존이 말했다.

 

 "내가 결혼한다는 사실 미리 알리지 못한 것."

 

 셜록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존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고, 존은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왜일까, 나는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 같아. 네가 내 결혼을 좋게 여기지 않으리라고...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더욱 말을 꺼내지 못한 것 같아. 그 점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거야. 하지만 이렇게 마음넓게 내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다니,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존의 말에 셜록은 고소가 배어나오는 것을 금치 못했으나, 간신히 부드러운 거짓 미소로 그것을 포장하고 대답했다.

 

 "뭘요. 그런 것 가지고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왜냐면 난 정말로, 당신이 결혼하는 게 싫거든요.
 무자비하면서 순진하고, 냉혹하고도 따스한 당신을 쉽게 내 품에서 놓아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크나큰 착각이라구요.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나야말로 당신에게 미리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네요.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존에게 와닿지 않을 셜록의 중얼거림은 그의 가슴 한 구석에서 손가락 사이에 비벼져 부스러진 나비처럼 흩어졌다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얼룩을 깊이 남기고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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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역키잡

 

 

 차에 탄 그들은 아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무 말도 오가지 않은 채 조용했다. 셜록은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된 존을 향해 몇 번 고개를 돌려보았으나 존은 의도적으로 살짝 고개를 피해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에겐 좀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겐 용기를 낼 시간이 필요했다. 존은 기차역에서 본 광경에 대한 확실한 설명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잘못 본 것이길 원했지만 셜록의 해명이 없이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셜록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이라 민감한 사안임을 충분히 숙지하고는 있었으나, 그 누구도 아닌 셜록의 일이었으므로 그는 그 일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성을 강력히 느꼈다. 무엇보다도, 그는 궁금증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을 성격이 되지 못했다.


 베이커가에 다 와갈 즈음 드디어 결심한 듯 존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가 아까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둘이 키스하고 있던데-두 사람 사귀는 거야?"

 

 차창 밖을 향해 고정되어 있던 셜록의 시선이 약간 흔들렸다. 존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그랬구나.'

 

 존은 셜록이 정말로 그 남자와 키스를 한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사실을 드디어 확인했음에도 쌓여있는 설거지더미를 본 것처럼 마음이 찝찝한 것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바깥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안쪽으로 거두어들인 후 셜록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요?"
 
 존은 셜록의 반문에 조금 당황했으나 이왕 대화를 꺼낸 김에 끝장을 보자 싶었다.

 

 "제임스 모리어티, 그리고 너 말야."

 

 셜록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 지레 놀란 존은 셜록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그런 데 편견 없다는 거야. 네가 행복하다면, 난 상관없어."
 "Oh, really?"

 

 약간의 비아냥기가 섞인 셜록의 대답에 존은 흠칫 했으나 말을 이었다.

 

 "물론...걱정은 되지만. 그게, 넌 아직 어리잖아. 게다가 지난 번에 우리집에 방문했을 때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마이크로프트와 그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것 같고 그러면 둘 사이가 영 어색해지지 않을까 싶고..."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존은 자기가 생각해도 지금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셜록의 후견인이자 삼촌이 이런 질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자신은 셜록이 혹시라도 마음이 상할까 두려워 비굴할 정도로 그의 눈치나 슬슬 보고 있었다. 게다가 하도 횡설수설하느라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그는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셜록에게는 지나치리만큼 너그러워지고 물러지는 자신을 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존이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데 셜록이 약간 화난 듯한 표정을 하고선 그의 말을 잘랐다.

 

 "자, 존. 내가 하나 물어보겠는데요, 지금 걱정이 되는 쪽이 마이크로프트 쪽인가요, 아니면 나인가요?"

 

 느닷없는 단호한 질문에 물론 네 쪽이지! 라고 대답하려던 존은 셜록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 저도 모르게 목구멍까지 올라온 대답을 삼켰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잠시 주저하던 존은 천천히 말했다.

 

 "둘 다...지."

 

 존의 말을 들은 셜록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존은 옳은 답을 말했을까? 그냥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았으련만, 일말의 자존심이란 것이 존의 혀가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막았을 뿐이다. 셜록의 어두워진 표정을 보면 존의 대답이 셜록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은 절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존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셜록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미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셜록의 뜻 모를 눈빛 공세를 견딜 수가 없었던 존은 일단 분위기를 개선시켜야겠다는 뜻으로 말을 시작했다.

 

 "셜록, 난 너희들의 관계에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혹시라도 마이크로프트가 마음이 상하기라도 하면-"
 "그건 존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요. 난 그와 사귀는 게 아니니까."
 "오."

 

 졸지에 민망해진 존이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Just casual sex, you know."

 

 금욕적으로 보이는, 아니 그것보다도-어디까지나 존에게는-아직 갓 성인이 된 아이에 불과한 셜록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섹스', 그것도 '가벼운 섹스'라는 말이 나오자 존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 존의 표정을 주의깊게 지켜보며 셜록은 말했다.

 

 "We're having sex from time to time, that's all."

 

 두 번째로 '섹스'라는 단어가 나오자 존은 정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셜록은 그런 존의 얼굴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I'm not a boy, John..."

 

 느지막히 질질 끄는 목소리로 그는 존의 이름을 발음했다. 나른하면서도 어딘지 위험한 그 울림에 존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Not anymore."

 

 마치 선고와도 같이 그를 내리찍는 셜록의 말에 존은 입술을 몇 번 깨물었다.

 

 "미안해. 내가 주제넘었어."

 

 차 안에는 다시 침묵이 깔렸다. 이번 침묵은 아까의 침묵보다 배는 무거웠다. 그 무게감에 진저리를 치며 존은 자신이 괜한 질문을 한 것일까, 생각했다.
 알 수가 없었다.
 존은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 뜻 없이 차창 바깥을 향해 눈을 돌렸다.

 

*

 

 "그런데, 내가 아까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둘이 키스하고 있던데-두 사람 사귀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셜록의 기분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개찰구에서 자신을 보았을 때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색이 느껴지더라 싶었다. 그의 미묘하게 굳은 표정이 추운 바람을 맞고 서있었기 때문인가 싶어서 목도리를 벗어 둘러주었을 때만 해도 존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마치 수줍은 소녀가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았을 때처럼. 물론 이런 비유를 자기한테 쓴다는 사실을 알면 존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말이다.
 그런데-정말로 그 광경을 봤기 때문이었다니.
 셜록은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향해 고정시키고 있던 눈을 존에게로 돌려 반문했다.

 

 "누구요?"
 
 일단은 태연한 듯, 차분한 목소리를 내어 물어보았다. 존은 그의 반문에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계속해서 말했다.

 

 "제임스 모리어티, 그리고 너 말야."

 

 이런. 이래서야 빼도박도 못하겠군.
 속으로 혀를 찬 셜록은 한숨을 쉬었다. 셜록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존은 셜록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그런 조심스러운 태도는 셜록의 부아를 더욱 돋구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정말이지 뻔했다. 성적 지향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춘기 소년을 바라보는 듯한 조심스러운 시선. 존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존의 말은 셜록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그런 데 편견 없다는 거야. 네가 행복하다면, 난 상관없어."

 

 셜록의 생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존은 여전히 자신을 사리분간 못하는 아기 취급을 하고 있다. 그가 자신을 신경써주는 것이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셜록은 그런 존의 애정을 무척이나 반긴다. 그러나 저런 방식은 정말 싫었다. 셜록은 그에 약간 화가 나 일부러 비열한 어조로 대꾸했다.

 

 "Oh, really?"

 

 셜록의 대답에 존이 흠칫 놀라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그러나 존 왓슨이 괜히 존 왓슨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입술을 한 번 축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걱정은 되지만. 그게, 넌 아직 어리잖아. 게다가 지난 번에 우리집에 방문했을 때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마이크로프트와 그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것 같고..."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존의 말에서 무언가 거슬리는 단어가 셜록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이크로프트라니? 대체 이 문제에 마이크로프트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물론 짐이 그와 잠시 육체적인 관계를-그것도 꽤 오래-가졌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언젯적 일인데 물고 늘어진단 말인가? 자신이 알기로는 존과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이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는 왕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친밀하게 이름을 부르다니, 설마 자신이 보지 않는 곳에서 마이크로프트가 그를 만났단 말인가?
 그러고보니 존은 짐을 거의 6년만에 처음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그렇게나 그가 인상깊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때문에?
 짐은 자신에게 한 것처럼 추파를 던져서 존을 꼬셨을지도 모른다. 존은 은근히 순진한 구석이 있으니 그런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대시에 어물쩡 속아넘어가버릴 수도 있다. 혹시 두 사람이 따로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생각이 미치자 셜록의 안에서 끓어오르던 화는 더욱 격해지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그를 어린애 취급을 하는 존의 태도 때문에 신경질이 나던 참이었던 셜록은 조금 무례해지기도 마음먹고 존의 말을 가로막았다.

 

 "자, 존. 내가 하나 물어보겠는데요, 지금 걱정이 되는 쪽이 마이크로프트 쪽인가요, 아니면 나인가요?"

 

 그가 생각해도 매우 유치한 질문이었으나, 셜록은 존이 당연히 자신이 우선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렇게 대답하는 것을 들으면 셜록의 분노가 그나마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그는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물론 셜록은 셜록 자신의 눈빛이 지나치게 형형하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존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곧바로 내놓지 못하는 것에 대해 셜록은 더욱 충격을 받고 있었다. 설마 정말 그 둘 중 하나와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둘 다...지."

 

 어정쩡하기 그지없는 존의 말을 들은 셜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존은 셜록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는 것인지, 셜록이 꽤나 무서운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음에도 무심하게 다른 말을 꺼내고 있었다.

 

 "셜록, 난 너희들의 관계에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혹시라도 마이크로프트가 마음이 상하기라도 하면-"

 

 또, 또 마이크로프트! 그 이름 좀 꺼내지 말라고요, 존!
 더이상 존의 입에서 마이크로프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셜록은 약간 급하게 끼어들어 말했다.

 

 "그건 존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요. 난 그와 사귀는 게 아니니까."
 "오."

 

 셜록의 말에 존은 그 딴에는 지레짐작한 것이 민망했는지 조금 얼굴을 붉히더니 물었다.

 

 "그럼...?"

 

 셜록은 순간적으로 대답했다.

 

 "Just casual sex, you know."

 

 셜록은 존이 그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을 보자마자 낭패 반, 될 대로 되라는 심정 반으로 말을 이었다.

 

 "We're having sex from time to time, that's all."

 

 분명 존은 '어린아이'에 불과한 자신의 입에서 저런 단어가 나온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우리라. 존의 저런 반응은 셜록 자신에 대한 일종의 가학이기도 했다. 존이 셜록의 낯선 일면을 보면서 겪는 쇼크는 고스란히 셜록에게도 전달되고 있었다. 셜록의 말에 뭐라 반응할지 몰라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하고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는 존의 얼굴을 셜록은 놓치지 않고 쳐다보았다. 존의 얼굴에는 슬픔, 당황, 충격 그 모든 것이 버무려져 있었고 그것을 보는 셜록은 가슴이 무척이나 아프면서도 그가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상처받는 것을 보면서 일말의 기쁨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의 변화를 느긋하게 감상하며 셜록은 천천히 말했다.

 

 "I'm not a boy, John..."

 

 부드럽게 존의 이름을 발음한다. 언제 발음해도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감흥을 일으키는 그 이름.

 

 "Not anymore."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그 말에 존은 부르르 떨고 입술을 깨물다가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미안해. 내가 주제넘었어."

 

 아니예요. 존. 미안해하지 말아요. 당신은 주제넘지 않아요. 계속 그렇게 신경을 써 달라구요. 내가 당신을 밀어내도 당신을 그렇게 내게 다가오려고 노력해 줘요.
 그렇지 않으면 난 무척 슬플 테니까요.
 셜록은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존을 외면하고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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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역키잡

 

 

 역 앞에서 잰걸음으로, 또는 느린 걸음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우두커니 서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또 그런 사람들 가운데, 중키의 금발 남자 하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존 왓슨이다. 몇 년간의 민간인으로서의 생활 이후 짧았던 그의 머리칼은 어느 정도 자랐고, 가무스름하게 그을렸던 피부는 여느 영국인처럼 다시 흰 빛을 찾았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변화와는 별개로 여전히 군인 시절의 행동거지와 습관은 쉽게 떨치기가 어려워, 셜록이 지금의 그를 본다 해도 처음 보았을 때의 인상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 할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 예보와는 다르게 매우 쌀쌀맞은 바람은 존의 얼굴을 후려치고 머리칼을 흩뜨린 채 도망간다. 그는 귀찮더라도 목도리를 하고 나올걸, 하고 생각하며 목을 움츠렸다. 역 안은 무척 추웠다. 온풍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보였지만 어딘가의 창문이 열려있는 것인지 외풍이 고스란히 들어오고 있었다.
 셜록은 존에게 굳이 추운 날 바깥걸음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해외 출장 때문에 셜록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존으로서는 이마저도 하지 않게 된다면 셜록에 대한 부채감을 덜어버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셜록을 에든버러로 보내기 이전 존이 했던 약속-셜록이 있는 곳으로 자주 찾아가겠다는 것-은 존이 새로이 얻은 직업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었다. 어느 대학의 작은 의학부 연구실의 조교로 취직한 존은 어느 명망있는 교수의 신임을 얻어 종종 그와 함께 해외로 출장을 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고등학생이 된 셜록은 존에 대한 그리움을 눈에 띠게 내비치는 일이 없었으나 본래 셜록이 애정 결핍으로 남몰래 고통받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존은 그 점이 못내 미안했다.
 그는 움츠린 목을 펴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에든버러 발 런던 행 열차 7:40 도착 예정'

 

 글씨가 깜박인다. 시계를 쳐다보았다. 7시 38분. 곧 있으면 셜록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 그의 안에서 기대감이 차올랐다.
 슬슬 일어나볼까, 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이제껏 앉아있었던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개찰구 쪽으로 미리 가서 그를 기다릴 심산이었다. 혹시라도 엇갈려버린다면 더한 낭패가 없을 것이기도 했고, 추위로 인해 뻣뻣하게 굳은 몸을 풀려는 의도도 있었다.
 개찰구로 향하는 도중에 열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존은 걸음을 서둘렀으나, 절뚝이는 다리는 존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그의 신형이 위험할 정도로 흔들렸다. 연구직에 종사하는 이답게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진 그는 여간해서는 뛸 일이 없었기에 그에 따라  뜀박질이 서툴러진 것 같았다. 그는 좀더 서두르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하며 걸음을 평상 속도로 늦추었다.

 
 7시 45분, 존은 개찰구 앞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나서는 인파에 떠밀릴 뻔했으나 용케도 제자리를 지킨 채로 존은 셜록을 찾기 위해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뜻 익숙한 형태의 검은색 머리카락을 보았다고 생각한 순간 뚱뚱한 남자가 바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아 시야를 가렸다. 존은 무척이나 분주해보이는 남자가 지나갈 때를 기다려 자신이 셜록을 보았다고 생각한 곳으로 눈을 다시 돌렸다. 회색의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른 채 똑바른 자세로 서있는 남자.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존은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셜록이었다.
 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입에 머금고, 그를 향해 다가가려는데 셜록과 마주보고 서 있는 또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한 번 본 듯한 사람. 그러나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존의 앞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쳐갔다. 다시 그들을 보았을 때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또렷한 흑갈색의 눈, 입가에는 호선과 같이 나긋한 미소가 어려 있는 남자의 얼굴은 존의 오래된 기억 한 편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 자리에 멈춰선 존이 그의 이름을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쓰는 중 남자가 셜록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었다. 그 광경을 본 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비주(bisou)겠지, 비주일거야, 라고 존은 불안스럽게 속으로 되뇌었으나 두 사람의 겹쳐진 얼굴은 떨어질 줄 몰랐다. 존이 망연하게 그것을 지켜보는데 셜록의 고개가 살짝 돌아가더니 자신 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셜록과 눈이 마주친 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그 순간 자신과 셜록 사이에 또다른 인파가 몰려왔다가 쓸려나갔다. 존이 조심스럽게 다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다행스럽게도 셜록과 키스를 한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존은 표정 관리를 하며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셜록을 향해 다가갔다.

 

 "셜록!"

 

 셜록은 존이 자기가 남자와 키스를 하는 장면을 들켰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있다가 인사에 간단히 답했다.

 

 "존."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목소리였다. 더이상 어린아이도, 덜 자란 청소년도 아닌 완연한 어른이 다 된 셜록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건조했다.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훤칠한 키의 청년이 낯설게 느껴졌다. 존은 예전의 치기어린 아이의 모습이 그립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으나 그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척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많이 힘들었지? 에든버러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존의 환대에 셜록의 얼굴이 약간 풀렸다. 그에 안도하는 존에게 셜록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지었다.

 

 "아니예요."

 

 못 본 새 너무나도 달라진 셜록을 이모저모로 뜯어보는 존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셜록이 웃으며 말했다.

 

 "저, 지난 3년간 몰라보게 달라졌지요."
 "정말 그렇구나! 다 컸는걸."

 

 자신이 보지 못한 사이에 이렇듯 키도 자기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커져 성인이 된 셜록을 보니 방치된 새끼고양이가 알아서 잘 커서 집으로 돌아온 모습을 보는 듯 하여 존은 더욱 미안했다. 그리고 그는 아까 전 셜록을 보며 낯이 설다고 생각한 자기자신을 질책했다. 셜록은 그저 응석부리지 않는 어른이 되었을 뿐이야. 그가 내게 의지할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났다고. 속으로 그렇게 말해보아도 그의 마음 속 아쉬움은 여전히 잔류하였으나 이제 그는 셜록을 다시 만난 재회의 기쁨을 좀 더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감격어린 눈으로 셜록을 올려다보는 존에게 셜록이 말했다.

 

 "추운데 어서 들어가죠. 여기서 기다리면서 어지간히 추웠을 텐데."

 

 이제는 존을 앞장서서 그를 이끄는 셜록을 따라가며 뒷모습을 눈에 담은 존은 셜록이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일면 아쉬움이 느껴지면서도 기쁨 마음 한 구석을 채우는 것을 느끼고 이런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생각했다.

 

 "아참. 존. 잠깐만요."
 "왜?"

 

 셜록은 존을 마주보고 서더니 자신에 목에 감긴 목도리를 풀러 존의 목에 정성스럽게 감아 주었다. 존은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라고 말을 흐렸으나 셜록은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목 내놓고 다니면 감기 걸려요."

 

 셜록의 강권에 못이겨 목도리를 매고 만 존은 따스한 목도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감촉을 즐겼다.

 

 "의사니까 자기 몸은 자기가 좀 챙기라고요."

 

 툴툴거리고는 있었으나 흘끔흘끔 자기를 보며 보일듯 말듯 미소를 띤 셜록을 보며 존은 나직하게 고마워, 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존은 자신을 흐뭇한 눈으로 보고 있던 셜록에게 말했다.

 

 "이거, 내가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준 목도리 아냐?"
 "맞아요. 왜요?"

 

 셜록이 존의 물음에 내포된 의미를 모른 채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존이 대답했다.

 

 "내가 보낸 용돈이 부족했던 거니?"
 "그게 무슨 말이예요?"
 "이렇게 추운 날씨에 이토록 낡아빠진 목도리를 매고 올 정도로 네가 쪼들렸다는 거잖아."

 

 셜록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이는 존에게 셜록이 당치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아니예요. 존. 내가 오늘 이 목도리를 하고 온 이유는 이 목도리가 제일 좋아서란 말이예요."
 "나를 위로해주려고 하는 거구나.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어. 일단 하루 정도 쉬고 내일은 새 목도리를 사러 가자꾸나."
 "존!"

 

 셜록이 말에도 여전히 자신을 '나쁜 후견인'으로 몰아붙이고 있던 존은 셜록이 크게 자신을 부르는 것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셜록은 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아요. 존이 그렇게나 나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뭐가 되는 건데요?"
 "셜록..."
 "존은 저에게 너무나도 잘해줬어요. 그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요. 그리고 난 정말 이 목도리가 좋아요. 존을 위로하기 위해 꾸며낸 말이 아니라구요."

 

 셜록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을 계속했다.

 

 "...이 목도리는 존이 선물해준 거잖아요."

 

 나지막하게 줄어든 셜록의 말에 존은 어쩐지 얼굴이 화끈화끈해져오는 것을 느끼며 셜록이 감아준 목도리 속으로 얼굴을 슬쩍 파묻었다. 셜록에게 응석을 부린 건 오히려 자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존은 웅얼거리며 말했다.

 

 "미안. 내가 너무 유치하게 굴었네."

 

 사과하는 존에게 셜록이 말했다.

 

 "존이라면 뭐든 상관없어요."

 

 셜록이 고개를 돌리며 한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존이 되물었다.

 

 "뭐라고?"
 "아니예요. 어서 가죠."

 

 셜록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존은 목도리에 남아있는 셜록의 체온을 느끼며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지?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 뭐야?
 셜록이 그런 말을 해줬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란 말이야-
 ...그러고보니, 아까 전 셜록은 어떤 남자에게 키스를 했었다. 그 남자는, 아, 드디어 기억났다.
 제임스 모리어티.
 존은 간신히 그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그는 아까 전 눈에 담은 광경을 돌이켜보았다.
 멀리 있어서 얼굴을 똑바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키스를 시도했을 때 셜록도 그다지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뿌리치지 않고 마주 키스해주었으니.
 셜록은 그와 사귀는 것이겠지.
 목에 감긴 목도리가 돌연 싸늘하게 느껴진다.
 자신을 향해 무한한 애정을 보내오던 그 아이는 어느새 다 커버려서 사랑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버린 거다.
 셜록, 그 애는 자신과 함께하기 위해 제 부모도 각기 감옥으로,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렸었다-이제 더이상 그런 종류의 비정상적인 애정을 바라서는 안된다.
 그러니 칼로 심장을 저미는 듯한 상실감을 느끼는 자신은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거겠지.
 그래, 이건 과거의 환상에 너무 매달리는 나의 잘못이야. 그 애는 한때 찰나의 애정을 구한 것 뿐이야. 부모놀이에 내가 너무 심취하다보니 셜록에게 어느샌가 지나친 애착을 갖게 된 것 때문이라고.
 그러니 이젠, 그에게 나는 필요없어.
 생각을 거듭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몰아내기 위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지만 어느새 그의 목을 감싼 목도리뿐아니라 마음까지 얼어붙어버릴 뿐이었다.
 그때 뒤따라오는 기색이 없자 셜록이 뒤를 돌아보며 존을 불렀다.

 

 "존?"

 

 잠깐 셜록이 걸어가는 모습을 눈으로 쫓다가 우뚝 멈춰서있던 존은 셜록의 재촉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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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근친

 

 

 셜록이 마이크로프트와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 베이커가에서는 존이 셜록의 물음에 당황의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존, 존은 키스할 때 느낌이 어땠어요?"

 

 셜록은 특유의 시선으로-그의 투명한 청회색 눈과 마주하면 존은 어쩐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오늘 마이크로프트와 동행한 짐 모리어티라는 자가 와서 키스를 했을 때 셜록은 자신이 존에게 종종 해왔던 도둑 키스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키스라고 하며 혀를 움직여대었던 것은 단순히 입술을 맞대는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셜록은 문득 궁금해져서 존에게 질문을 한 것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존은 그동안 살아온 동안 여러번의 키스를 해보았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용기내어 물어본 것인데, 존은 어쩐지 쩔쩔매며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했던 셜록은 약간의 짜증을 섞어 다시 물어보았다.

 

 "설마 키스를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거짓말을 치진 않을 거죠?"
 "그건 아니란다. 하지만..."

 

 존은 황급히 대답하다가 혀가 꼬여 말을 멈추었다.
 가끔은 귀엽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맹랑하고 똑 부러지는 아이가 오늘은 자신을 당황하게 만드려 작정을 하였는지, 그 질문에 대답을 꼭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기세여서 존은 식은땀을 흘렸다.

 관자놀이를 벅벅 긁고, 미간을 찡그리고, 배어나오는 땀을 닦아내는 존을 셜록은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한숨을 푹 쉬고 나서야 존은 말했다.

 

 "그게 어째서 궁금한 거니?"

 

 셜록이 말했다.

 

 "궁금해하면 안되는 일인가요?"
 "그렇진 않다만...에흠."

 

 누가 듣기에도 어색한 헛기침소리를 내며 존이 턱을 매만졌다.

 

 "키스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입맞춤이지."

 

 존은 직접적으로 느낌을 이야기하지 않고 에둘러 말했다. 틀린 소리는 아니었으나, 셜록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존, 제가 질문한 건 키스할 때의 느낌이 어땠냐는 건데요. 그리고, 키스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끼리도 할 수 있는 것 아니예요?"

 

 분명 짐 모리어티가 자신에게 키스한 것은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닐 터였다. 그와의 키스 자체는 감각적으로 기분이 좋다고 칭할 만했지만, 자신은 존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상을 묻고 있는 거였다.
 그때 존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셜록에게 혹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의 흐름이었지만, 평소에 이성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시피 한 셜록이었기에 조금 늦게 떠올리게 된 것이다. 배제할 수는 없는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을 떠올리니 존의 가슴 한 구석이 왜인지 뒤틀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떠오른 묘한 생각에 존은 머뭇거리다가 일단 셜록의 질문에 대답했다.

 

 "물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끼리도 키스를 할 수 있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가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키스보다 더욱 좋지 않겠니?"

 

 존은 대답하면서도 이런 말을 갓 중학교에 입학할 셜록에게 해도 되는 것일까 확신을 갖지 못했다. 차라리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 건가요'라는 질문이 훨씬 대답하기 쉬울 텐데, 라고 존은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히도 셜록은 그 정도 선에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랑 존이랑 키스하면 기분이 아주 좋겠네요."
 "?!"

 

 존은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그 바람에 존은 무언가를 마시고 있지 않은데도 사레가 들리는 느낌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연신 콜록대는 존의 등을 토닥인 셜록이 존이 조금 진정한 후에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요?"

 

 존의 얼굴이 기침때문에 빨갛게 된 것을 내려다보며 셜록은 그 모습이 매우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존이 사레가 들릴 정도로 당황한 이유는 이해하지 못한 셜록은 존을 바라보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존을 사랑하고 존은 나를 사랑하잖아요."

 

 다시금 기침이 올라오려는 것은 진정시킨 존은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아무래도 셜록은 지나치게 책이나 실험에만 몰두하다보니 그 나이 대 아이들이라면 알 만한 성 지식과 감정의 교류의 측면에는 무지한 듯 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왓슨의 머리 한 구석에서 조그마한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셜록이 결코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다. 또한 셜록은 굉장히 똑똑한 아이다. 그런 아이가 고작 이런 문제에 대해 헷갈릴 리가 없다는 것이 존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뜻일텐데...
 존과 셜록은 서로를 보면서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암중의 두뇌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시간은 잠시처럼 느껴졌지만 존의 대답을 기다리는 셜록에게는 매우 길게 느껴졌다.
 존이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살펴보는 것에 인내심이 바닥난 셜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존?"
 "으응?"

 

 셜록이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말했다.

 

 "왜 대답이 없어요?"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셜록의 얼굴을 존이 빤히 보았다. 저 표정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셜록은 존을 시험하려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했을 뿐이었다는 판단을 내리고서 셜록이 순진하고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순간 셜록의 의중을 의심하며 차갑게 굳었던 마음이 풀리며 존의 표정이 슬쩍 누그러졌다.

 

 "셜록, 나는 너를..."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어쩐지 민망했던 존은 뺨을 살짝 붉히며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사랑...한다만,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단다."

 

 셜록이 귀기울여 듣는 기색이자 존이 어색함을 떨치고 말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가장 일반적인 사랑이지. 너와 나 사이는...가족애란 말이 더 적합하구나."
 "남자랑 남자는 남자와 여자같은 사랑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셜록이 물었다. 존은 점점 화제가 대답하기 곤란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며 이마를 스윽 문질렀다.

 

 "물론, 남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사랑이 존재하지. 여자와 여자 사이에도 가능하고 말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남자와 여자와의 사랑이 더 보편적이란다."

 

 준비하지 않고 말한 것 치고는 적절한 대답이라고 존은 스스로 생각하며 약간 웃었다. 셜록이 무얼 보았길래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지나가면서 분명 텔레비전에서 그런 정보를 접했다고 확신한 존은 앞으로는 셜록이 TV시청을 할 때 좀 더 주의깊게 살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셜록은 존의 설명이 납득이 간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일단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 싶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 존이 화제를 바꾸어 셜록에게 물었다.

 

 "마이크로프트랑은 밥 맛있게 먹고 왔어?"

 

 셜록이 존의 옆에서 물러나 맞은편 소파에 걸터앉으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네."

 

 어쩐지 차가운 어조에 존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마이크로프트를 사주해서 진학 문제를 논의하도록 한 것이 들통이 난 것이 틀림없었다. 존이 슬슬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면서 셜록이 말했다.

 

 "있잖아요, 존."
 "?"
 "나, 존의 뜻대로 에든버러에 있는 중학교에 갈게요."

 

 의외로 쉽게 변심한 셜록의 말에, 존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셜록은 그 눈을 바라보며, 자신이 방금 꺼낸 말을 번복하고 싶었지만, 그러는 것이 더욱 우스울 터였다.
 셜록은 마음 속에 남아서 퍼지는 아쉬움의 여운을 매섭게 쳐내고 말했다.

 

 "내가 오래 여기 없겠지만 존은 날 잊지 않을 거잖아요. 그렇죠?"

 

 확신이 깃든 어조였다. 존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오, 셜록. 나라고 네가 싫어서 보내는 게 아니란다."
 "알아요."
 "자주 찾아갈 테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렴."

 

 셜록은 그제야 안심한 듯 웃음을 지었다.

 

*

 

 셜록의 고집으로 존과 셜록은 오랜만에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셜록이 막무가내로 어리광을 부리는 일은 드물었지만, 셜록이 힘든 결정을 스스로 내렸기 때문에 이 정도 어리광은 당연히 수용할 만 하다고 생각하며 존은 생각을 정리했다.

 

*


 역시나 침대가 좁다.
 자신의 팔베개를 배고 옆에 누운 가느다란 소년의 몸에서 여린 심장 박동이 가까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존은 살짝 몸을 뒤척였다. 존이 뒤척이자 눈을 감고 있던 셜록이 눈을 살그머니 떴다.

 

 "미안해요."

 

 괜한 고집을 부려서...라고 소심하게 중얼거리는 셜록을 향해 미소를 지은 존은 셜록을 자신의 품에 더욱 가까이 끌어안았다.

 

 "이러면 침대가 좁지 않을 거야."

 

 셜록이 존을 올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존이 그런 셜록을 사랑스럽다는 듯 보며 말했다.

 

 "내일은 함께 학교에 가자. 가서 미리 학교도 둘러보자고."
 "좋아요."

 

 그렇게 소근거리며 둘은 대화를 나누었다. 드문드문 이어지던 대화는 곧 잦아들어, 침실 안에는 이윽고 평온한 숨소리만 감돌았다.

 

*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셜록이 불현듯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색소가 연한 셜록의 눈이 칼날 위에 날아든 햇살 조각처럼 잠깐 하얗게 빛났다. 다행히 악몽을 꾼 것은 아닌 듯, 조용히 눈을 뜬 셜록은 자신을 안고 잠이 든 존을 바라보았다.
 사뭇 차갑고 집착적인 시선으로 한동안 존을 바라보던 셜록은 존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존의 얼굴 위로 몸을 숙여, 입술을 가볍게 겹쳤다.
 닿은 입술은 미지근하나, 닿은 것만으로도 셜록의 내부에서는 어떤 충동이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짐 모리어티와 키스할 때의 무덤덤한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체 이 남자의 입술은 뭐가 다른 거지. 셜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곧이어 자문자답했다. 그거야 존의 입술이니까. 셜록은 어리석은 질문을 한 자신에게 조소하면서도 줄곧 존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지 않았다. 연한 피부가 맞닿은 경계를 침범하고 싶다는, 달착지근하면서도 끈적한 그 충동에 몸을 맡기고 존의 입술을 열어 그 안의 것을 탐닉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셜록은 쉽사리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다소 긴 시간동안 입술을 맞대고 있던 셜록은 아쉽다는 듯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고 다시 존의 품 안을 비집고 들어가 잠을 청했다.

 

*

 

 셜록이 한밤의 도둑 키스를 하는 그 순간, 존은 격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입술을 뗀 셜록이 자신의 팔 안에 몸을 누이는 것을 느낀 존은 불안정한 숨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자제하고 최대한 숨을 죽이려고 애썼다. 셜록은 그런 존을 부드럽게 토닥이고 잠깐동안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셜록의 호흡 간격이 다시 멀어진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존은 몰래 숨을 토하여 눈을 떴다. 자신의 입술에 닿은 그 메마른 듯한 입술은 너무도 상냥하게, 마치 꽃 위에 내려앉은 나비와도 같은 가벼운 감촉만을 남기고 어느 순간 날아갔다. 존은 입술을 문지르며, 자신의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오, 셜록, 셜록.
 존은 그 말만을 되뇌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Ch.2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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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마모/근친/약수위

 

 

 모리어티를 호텔을 데려다놓고 다시 객실을 나선 마이크로프트는 베이커가 221B 앞의 계단에 주저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던 셜록을 데리고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장신의 청년과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소년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남들이 보기엔 생경한 것이었으나 극도로 말을 아끼는 습성과 눈빛 깊은 곳에서 새어나오는 본질적인 냉기는 두 사람의 동질성을 은근히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은 간단히 주문을 한 후 서로를 마주보았다. 마이크로프트가 물을 마시며 말을 걸었다.

 

 "그래, 만족하니?"

 

 셜록이 대답했다.

 

 "그래."

 

 마이크로프트가 입에 대었던 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확실히 배짱은 있어보이는 남자더구나."
 
 셜록이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했다.

 

 "칭찬에 인색하군."
 "네가 한 짓을 생각해보렴. 그런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3년 전 부모님을 각각 감옥과 정신병원으로 보낸 일을 이르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중 하나는 감옥에서 병사. 마이크로프트는 그 일을 떠올리며 냉정하게도 피식 웃었다.
 그때 연이어 일어난 사건을 접한 마이크로프트는 그당시에도 피식 웃었었다. 홈즈 가의 두 번째 돌연변이가 이번엔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하면서 말이다.

 

 "오, 충분한 가치가 있지."

 

 셜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형은 절대 모를 걸."

 

 독점욕과 집착이 여실히 드러나는 미소다. 그때 에피타이저가 나왔다. 셜록은 이내 관심을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으로 돌렸다.
 작은 손으로 서툴게 포크질을 하는 셜록을 바라보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대놓고 목줄을 조이면 안되지."

 

 셜록은 마이크로프트를 조금 째려보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 안에 집어넣은 까나페를 느린 속도로 씹어삽킨 후에야 입을 열었다.

 

 "존은 애완동물이 아니야. 내 애인이지."

 

 언제부터 영국이 사촌도 아니고 삼촌지간에 애정이 오가는 타락한 나라가 되었을꼬. 마이크로프트는 그렇게 탄식했다.

 

 "그래서 에든버러에 가지 않으려고 버팅기고 있는 거냐?"

 

 물잔을 들고 있던 셜록의 손이 움찔하며 잔 속의 물이 찰랑거렸다.
 마이크로프트는 그 손을 주의깊게 보며 냉정히 말했다.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움찔거리지 마."

 

 셜록이 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존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아서 안심할 수가 없다고. 내버려두면 나 따윈 잊고 결혼해버리겠지. 자기 애가 생기면 나를 잊어버릴 게 분명한데 혼자 두고 그 먼 곳까지 간다는 건 어불성설이야."
 "셜록..."

 

 마이크로프트가 얼굴에 호선을 그렸다. 웃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웃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묘한 얼굴이다. 셜록은 무의식적으로 그 얼굴을 머릿속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다. 저 얼굴이야말로 영국 전역에 걸쳐, 아니 전세계에 걸쳐서 가장 의뭉한 남자의 얼굴일 것이다.

 

 "정 가지고 싶다면, 소유자가 있더라도 그 소유물을 빼앗으면 되는 일이지."

 

 우아한 손짓으로 물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 마시면서 입술을 축인 마이크로프트가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의 어조로 말했다. 셜록은 과연 그렇다, 싶었다. 어쩐지 잘난 척하는 듯한 마이크로프트의 말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옳은 말을 가지고 그르다 하는 것이 더욱 어리석은 일일 터였다.
 형의 말을 받아들인 셜록이었지만, 조금 약이 오르는 것은 갚아주어야겠다 싶어 한 마디 툭 뱉었다.

 

 "형이야말로 특이한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던데."

 

 애완동물이라. 마이크로프트는 생각했다. 애완동물치고는 지나치게 버릇이 없긴 하지만.

 지금쯤 호텔 방 안에서 부족한 자극을 뒤에 머금고 치밀어오르는 신음을 억누르며-아니, 짐 모리어티는 방음이 잘 되건 안 되건 제가 내키는 대로 마음껏 신음을 내지를 위인이었으니, 이 부분은 정정해야겠다-어떻게든 더 느껴보려고 엉덩이짓을 하고 있을 모리어티를 생각하며 오늘 어떤 벌을 줄 것인지 고민하던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셜록의 시선을 알아채고 자연스럽게 시선을 회피하며 앞선 질문에 대답했다.

 

 "특이하긴 하지."

 

 마이크로프트는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익히 추론한 바다. 내 선에서 제재를 가할테니 그 점은 염려마라. 그런데-"

 

 마이크로프트의 표정이 조금 굳은 채 말했다.

 

 "-너야말로 무슨 생각이었던 거냐?"
 "그거, 말이지."

 

 셜록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존이랑 너무 오래 대화를 나누길래, 심심해서."
 "되도록이면 그를 멀리해."
 "아까부터 계속 명령조인데, 맘에 들지 않아."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형 자신을 생각한 거겠지."

 

 두 빙산의 충돌과 같이 수면 아래에서의 격렬한 공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웨이터가 첫 번째 메인 요리를 서빙하기 시작했다. 웨이터가 가고 나자 셜록이 조롱조로 말했다.

 

 "항상 이렇게 먹다간 살이 찌고 말걸."
 "너야말로 그렇게 깨작거리다간 땅딸보가 될 거다."
 
 셜록이 말했다.

 

 "소화작용은 집중에 방해된다구."
 "그러렴. 선택은 네 몫이니까."

 

 나긋한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셜록은 입술을 비죽거리다가 결국 나이프를 들고 앞에 놓인 닭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애정어린 미소를 짓던 마이크로프트는 금세 미소를 지우고 자신도 닭고기를 먹기 시작하려다 주머니에 든 바이브레이터 리모콘이 생각난 마이크로프트는 안의 물건으로 손을 뻗어 잠깐 스위치를 조작하고 다시 나이프를 들었다.
 셜록이 수상쩍다는 듯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대체 그 아래에서 뭘 하는 거야?"

 

 마이크로프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천천히 닭고기를 썰며 말했다.

 

 "네가 알 일이 아니니 신경쓰지 마."

 

 대답으로 간주할 수 없는 묘한 대답에 셜록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시 질문하지는 않았다.

 

*

 

 오랜만에 만난 셜록과의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나고, 마이크로프트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호텔방으로 향했다. 본래 느린 걸음은 아니지만 어쩐지 여유롭게 걷고 싶었다.
 발자국 소리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현관으로 들어선 마이크로프트는 양복 상의와 조끼를 옷걸이에 걸어놓고 풀어낸 허리띠를 손에 든 채 모리어티의 달뜬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방 문을 천천히 열었다.
 옆으로 몸을 누인 채 쾌감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던 모리어티가 고개를 돌렸다. 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검은 눈에 어린 물기가 색스럽다. 그러나 마이크로프트는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며 모리어티를 향해 다가왔다.

 

 "어때, 제임스. 혼자서 즐거웠나?"

 "하아...마이크로프트, 이제 빨리..."
 "조르지 마."

 

 마이크로프트는 모리어티의 뒤로 다가서 거칠게 엉덩이를 뒤로 돌렸다. 그런 행동에도 흥분이 되는지 모리어티가 작게 숨을 뱉었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움찔거리는 구멍 안으로 쑤셔넣어 바이브레이터를 느릿하게 빼내고 모리어티의 눈 앞으로 던졌다. 텅 빈 구멍이 허전함을 이기지 못하고 꿈틀거리며 애액을 흘려내었다. 처지에 맞지 않게 음흉스러워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그린 모리어티가 엎드린 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허리띠는 손에 들고 뭐해?"

 

 '안 때려?'라고 말하며 히죽 웃는 그 얼굴을 손바닥으로 치고 싶다. 하지만 마이크로프트는 그 뺨을 손가락의 손톱을 세워 위험스럽게 긁어내리며 속삭였다.

 

 "어련히 알아서 때려주지 않을까봐."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일으켜 마이크로프트는 허리띠를 쥐고 노련한 손놀림으로 모리어티의 등을 후려쳤다. 빨갛고 긴 자국이 화끈하게 남았다.

 

*

 

 시트를 허리께까지 덮은 모리어티가 엎드려 있었고, 마이크로프트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허리띠를 다시 매고 있었다.
 모리어티가 고개를 마이크로프트 쪽으로 돌리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선배."

 

 1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처음으로 듣는 '선배'라는 호칭이다.
 아마 앞으로의 행보를 예측해보았을 때 마지막이 될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어찌하여 마이크로프트가 모리어티를 체벌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 또는 모리어티가 마이크로프트에게 체벌을 받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 그 사정은 그 둘 만고는 아는 이가 없다. 또한 전학 온 2학년생일 뿐이었던 제임스 모리어티와 교내 최고의 지위인 학생회장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당사자인 그 둘에게 지워지지 않을 각인을 남기게 되었는지 그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는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 둘 간의 일은 오직 둘에게만 해당된 일일 뿐, 다른 이들에게는 인지가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있잖아요, 선배.
 -한 번 때려볼래요?

 

 <모피 옷을 입은 비너스>라는 책을 눈 앞에 흔들어보이며 유혹이랍시고 하던 말이 귓가에 쟁쟁 울리는 듯 싶다. 먼 곳을 바라보듯 초점이 흐리던 마이크로프트는 눈을 깜박여 다시 초점을 찾았다. 시답잖은 추억 되감기가 무슨 말이란 말인가.
 지금껏 같은 공간을 공유하던 그들의 관계는-이를테면, 같은 평면에 위치하지도 않고, 같은 방향으로 가지도 않는 두 개의 직선의 관계와 같다. 딱 한 번, 서로를 마주보고 영원토록 겹쳐지지 않은 두 개의 선.
 알려지지 않은 모종의 사정을 뒤로한 채 케임브리지에 입학한 마이크로프트는 그렇게 그의 길을 갈 것이고, 모리어티 또한 그의 길을 갈 것이다.

 

 "그동안 즐거웠다."

 

 정석적으로 교과서를 읽는 말투 자체인 마이크로프트의 어조를 들으면서 모리어티가 킬킬대었다.

 

 "그냥 솔직히 말해요. 앞으로 영원히 만나지 말자고."

 

 마이크로프트는 냉랭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모리어티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표정을 뒤덮고 있던 살얼음이 깨지며 마이크로프트가 피식 하고 냉기어린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을 우리 둘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나."

 

 모리어티는 수긍하며 웃었다.
 그의 작은 연극은 여기서 막을 내린다.
 아이스맨과 자신의 연은 여기까지다. 그는 마이크로프트가 애지중지하면서도, 절대 그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 검은 머리의 꼬마를 생각하며 앞으로의 일을 기대하기로 했다.

 문득 모리어티가 말했다.

 

 "그래도 말이죠, 선배."

 

 마이크로프트가 고개를 들었다.

 모리어티가 어울리지 않게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날 아직까지도 제임스라고 부르는 건 당신 하나뿐이예요."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 하나뿐이겠죠, 라고 모리어티는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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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마모/근친

 

 

 조촐한 장례식. 장례식을 집전하는 목사 외에 다섯 명 남짓 되는 사람만이 런던 특유의 안개 낀 하늘 아래 모여있다.
 그 중 두 명은 익숙한 인영이다. 마른 듯 싶은 검은 머리의 소년과 그 옆을 지키는 짧은 금발의 남자는 묘비 앞에서 손을 다소곳이 한 채 목사의 기도를 듣고 있었다. 셜록은 눈을 감고 있는 존을 곁눈으로 흘끗 바라보았다. 존은 묵묵히 눈을 감은 채다. 셜록은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곧이어 관이 아래로 내려가고, 차례로 선 사람들이 한 번씩 흙을 삽으로 퍼서 안쪽으로 부었다. 셜록은 흙을 떠서 아래로 뿌린 후 미련없이 돌아섰다.
 오늘 장례식의 주인공은 셜록의 친할머니인 홈즈 여사다. 할머니라고 해봤자 친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흔한 유서 하나 남기지 않고 죽은 그녀는 갈 때조차 외로웠다. 모두의 관심사인 홈즈 가의 유산은 결과적으로 지난 달 감옥 안에서 사망한 외아들인 홈즈 씨를 거쳐 홈즈 여사의 손자인 홈즈 형제에게 왔다. 마이크로프트는 졸업 시험을 앞두고 있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친족 중에서는 셜록만이 장례식에 온 셈이다.
 형식적인 절차가 끝나자 더이상 볼 일 없다는 듯 장례식장을 벗어나는 셜록을 뒤늦게 눈치챈 존이 그의 뒤를 쫓아간다.

 

 "셜록."

 

 셜록의 어깨를 붙잡으며 존이 말했다. 셜록은 존과 함께 살기 시작한 후 부쩍 컸다. 볼에 통통하던 젖살은 흔적이 없고 본디 지니고 있던 갸름한 얼굴선이 드러났다. 또한,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는 열네살 아이일 뿐인데도, 이미 그는 존과 키가 비슷한 정도로 자랐다. 지금 아이의 어깨 위의 손의 높이도 이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존은 미묘한 섭섭함을 느낀다.
 셜록은 그런 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감정한 투로 말했다.

 

 "이만 집에 가려고요."

 

 존의 손을 표나지 않게 떨친 후 성큼성큼 걸어가는 셜록의 뒷모습을 존은 쓸쓸히 지켜보았다.

 

*

 

 둘 사이에 이렇듯 묘한 냉기가 감도는 이유는 셜록의 중학교 진학 문제때문이다. 존은 마이크로프트가 그랬듯이 셜록이 기숙사 시설이 갖추어진 사립 중학교에 진학하여 에스컬레이터식으로 같은 재단 하의 고등학교까지 가길 바랐다. 그러나 셜록의 생각은 달랐나보다. 평소에 존의 의견에 거의 반대하는 법이 없었던 셜록이 이렇게까지 거세게 반항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존은 셜록이 대체 어떤 연유로 자신의 생각을 반대하는 것인지 들어보고나 싶었지만 그 이유를 물어볼 때마다 셜록의 입은 열쇠를 채운 자물쇠처럼 열리질 않아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셜록 모르게 해당 중학교에 가서 전학 수속을 마치려고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 어떻게 존의 행보를 예측한 것인지 셜록은 존이 그 중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설 때마다 존의 꽁무니에 따라붙어 방해를 하곤 했다. 그렇게까지 행동할 정도라면 분명 말하기 어려운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뻔한데, 적어도 입학 전에는 그 이유라도 알았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

 

 존과 셜록의 플랫 안에는 세 개의 소파가 있었다. 1인용 소파 둘, 3인용 소파 하나. 두 개의 자그마한 소파 중 하나는 존이 주로 앉았으며, 남은 하나는 셜록이 쌓아둔 책이나, 때로는 셜록이 염가에 구입한 해골 모형의 일부가 놓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종종 셜록이 바이올린을 켤 때 말고는 항상 그랬다.
 남아있는 3인용 소파는,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셜록의 차지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키가 자라는 속도가 느렸던 셜록은 그 소파에 누워서, 존의 무릎 베개를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만 같던 일상은 셜록이 자람에 따라 변화되어, 어느새 셜록의 키는 길기만 했던 소파에 혼자 누워도 적당할 정도로 커져버렸다. 훌쩍 자란 셜록은 존의 푸른색 가운을 뺏어입고는-결국 그 가운은 셜록의 차지가 되었다. 원 소유자인 존보다 셜록이 더 자주 입는데,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소파에 누워서 뒹굴거리거나, 손을 모은 채 자신만의 기억의 궁전을 짓는 데에 바빴다.
 그러나 오늘 존과 셜록의 모습은 베이커가의 여느 하루와는 조금 달랐다. 지저분한 플랫 안에서 보풀이 일어난 니트와 구겨진 바지를 입고 소파 위에서 신문을 뒤적이는 것이 일상이었던 존은 깨끗한 셔츠와 손수 다림질한 바지를 입고-게다가 여자를 만나러 갈 때나 신는 가장 깨끗한 신발을 신고-혹시나 구김이 갈세라 바른 자세로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고, 셜록도 깔끔한 양장을 걸치고는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아있다. 그러고보니, 일단 눈에 보이는 거실은 정리 작업을 거친 듯 평소보다 공간이 넓어보였다. 평소의 질서를 찾아볼 수 없는 어지러운 공간이 그나마 이렇게라도 변모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이 대대적인 작업의 많은 기여를 한 허드슨 부인에게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깨끗이 치운 테이블 위에 허드슨 부인이 인심좋게도 차려준 다과상을 놓고 이제나저제나 하고 손님을 기다리던 존은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 하나하나에 움찔거리다가 허드슨 부인이 그를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달리다시피 계단을 내려갔다.
 셜록은 존이 성치 못한 다리로 뛰다가 넘어지면 어쩔는지 걱정이 되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방문이 예정되어 있는 손님은 사실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존은 마치 보호 감찰관이라도 오는 듯 부산이었다. 그런 행동의 원인은 존 특유의 성실함도 있겠지만, 존이 해리엇과 홈즈씨에게 지니고 있는 일종의 부채감도 한 몫 보태었을 것이다. 셜록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드디어 오기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랜만이구나."

 

 문을 열고 나긋한 어조로 인삿말을 꺼낸 남자는 마이크로프트, 셜록의 형이었다.

 

*

 

 셜록은 교육을 잘 받은 영국 소년답게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인사를 했다. 넉살좋은 그의 형처럼 곧바로 말을 트는 것은 비사교성의 극치를 자랑하는 셜록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간단한 목례로 그것을 대신했다.
 그때 마이크로프트 뒤에서 마이크로프트의 어깨를 살짝 넘는 키의 남자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다시 본 마이크로프트가 웬만한 남자들보다 훨씬 큰 키를 가졌다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 남자는 보기와는 다르게 키가 그리 작은 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렷한 검은 눈을 흥미롭다는 듯 반짝이며 셜록을 바라보는 남자는 생소한 느낌의 청년이었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와 매우 친밀해보이는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셜록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그는 쉽게 자신의 정체를 알려줄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을 번갈아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고만 있었다. 마이크로프트 또한 같은 생각인지 입을 다문 채였다.
 세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감도는 가운데 존이 들어와 방문을 닫았다.

 

 "앉아요, 모두들."

 

 존의 말에 다들 자리를 잡았다. 존은 평소 앉던 소파에, 셜록은 다른 작은 소파에, 그리고 마이크로프트와 그과 동행한 다른 남자는 긴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마이크로프트는 대학생이 입는 것 치고는 다소 고급스런 수트를 격식에 맞추어 차려입고 있었다. 위화감이 없는 그 모습은 딱히 존과 셜록을 찾아보기 위해 차려입은 것이 아니라 항시 그렇게 다니는 것임을 짐작하게 하였다. 옆의 남자도 동그란 칼라의 와이셔츠를 안에 받쳐입고 꽤 맵시있게 수트를 걸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친족 상봉과도 같은 이 모임에 말도 없이 끼어들어서는 저렇게 뻔뻔하게 만면에 미소짓고 있는 것도 나름의 재주이기는 했다.
 마이크로프트만 오는 줄 알고 있었던 존이 당황하여 헛기침을 하고 있는 사이 마이크로프트가 능숙하게 첫머리를 꺼내었다.

 

 "반갑습니다, 존 왓슨 씨. 아마 이번이 처음 보는 게...맞나요?"

 

 기품있는 그의 말투가 문장의 끝부분에 가서 약간 확신없이 흐려졌다. 그러나 셜록은 그 말투가, 그리고 능숙하게 말꼬리를 흐려서 상대의 대답을 유도하는 것조차 수준높은 화술 교육을 체화한 흔적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존은 어색함을 극복하고 평소의 침착한 말투로 돌아와 말했다.

 

 "자네가 갓 태어났을 때 본 기억이 나네. 그때는 나도 어렸지만 말야."

 

 마이크로프트가 오기 전까지는 속으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전전긍긍하던 존이었지만 강심장의 존답게 연소자인 마이크로프트를 하대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있는 셜록은 몰래 미소지었다. 하긴 나이 차이가 12살 밖에 안 나긴 해도 삼촌은 삼촌이었으니 존의 하대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마이크로프트가 발산하는 묘한 위압감은 그 나이대에서 보이는 카리스마치고는 대단했기에 산전수전 다 겪은 존조차 처음에는 약간 기세면에서 밀렸던 것이다.
 마이크로프트는 쉽게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존이 의외로 대찬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고 약간 예상 외다 싶었지만 능숙하게 얼굴에 미소를 그려내며 말했다.

 

 "그러시군요. 자...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는 합니다만, 지난번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리 시간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곧바로 후견인 문제와 재산 문제로 넘어갑시다."
 "오."

 

 존이 급진전된 대화의 전개에 짧은 감탄사를 토하며 마이크로프트에게 말했다.

 

 "그 문제는...다른 데서 논하도록 하지. 다른 방으로 가서 이야기하도록 할까."
 "그게 편하시다면."

 

 무리없이 상호의 합의를 이끌어낸 존은 일어서서 마이크로프트를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셜록,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테니 과자라도 먹으면서 손님 대접을 하고 있으렴."

 

 존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떳고, 존을 뒤따라가던 마이크로프트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예쁘게 놓인 과자 대열에서 중간의 것을 하나 집어들어 모양을 흐트러뜨린 남자를 향해 'Behave.'라고 나직히 말하고는 따라서 방을 나갔다.

 

*

 

 남은 두 사람 중 하나는 과자를 와작와작 깨물어먹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자기소개조차 하지 않은 남자를 상대하기 싫었던 셜록은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 묘한 대치가 이루어지는 와중에 드디어 과자를 먹을 만큼 먹었는지 만족스런 기색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셜록이구나?"

 

 자신과 존의 공간에 무턱대고 들이닥친 주제에 대뜸 반말이라니. 셜록은 아까부터 이 남자에게 느끼던 적의-남자가 무례한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유모를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것이 더욱 컸다-가 증폭되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맞아요."
 "듣던 대로네."
 "어떤 말을 하던가요."
 "자기랑 닮지 않았다고 하더군."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은 약간 길쯤한 얼굴형과 그러한 얼굴형에 어울리는 콧대를 제외하고는 닮은 부분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붉은 기가 도는 다갈색의 머리칼을 빗으로 깔끔하게 넘겼으나 셜록은 선천적인 곱슬기가 있는 검은 머리를 귀 부근까지 자른 것만 보아도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맞는 말이네요."

 

 이후 잠깐의 시간동안 묘하게 늘어지는 듯 하면서도 활기띤 목소리와 성의없이 단조로운 목소리가 주거니받거니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서로가 서로의 피상적인 부분만을 건드려보며 서로를 시험하는 듯한 대화가 어느덧 끊기고, 남자는 노골적으로 턱을 괴고 자세를 비뚜름하게 하며 노래하듯 말했다.

 

 "근데 말이지, 너 원래 이렇게 지루한 애니?"

 

 셜록은 차를 목으로 넘기는 것을 잠깐 멈추고 눈을 올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찻잔을 천천히 차 받침대에 내려놓으며 셜록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글쎄요. 그럼 이렇게 해볼까요."

 

 셜록이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게이죠?"

Posted by 에스MK-2 :

셜록존/근친/역키잡

 

 셜록 홈즈의 어머니, 해리엇 홈즈는 좀처럼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는다. 본인이 즐기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녀는 영국의 싸늘한 기후와는 맞지 않는 연약한 체질을 타고났다.
 그러던 그녀가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셜록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셜록이 앉아있는 의자 옆 서랍장 위에 놓인 액자 속의 남자 때문이다. 금발에 다정한 느낌의 푸른 눈. 그리 작지 않은 신장이지만 다부진 체격때문에 오히려 작달막해보이는 체구. 남자는 사막을 배경으로 모랫빛의 군복을 걸치고 카메라 렌즈를 향해 웃고 있다. 강한 햇빛 때문인지 조금 찡그린 듯한 표정이다.
 해리엇이 오랜만에 밝은 표정으로, 심지어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무엇을 입을지 정하는 사이 셜록은 액자를 다시 흘끔 보았다. 아이는 짧은 시간동안, 사진의 남자를 뚫어지도록 보았다.
 지루해.
 셜록은 다시 무릎 위에 놓인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

 

 "존!"

 

 셜록은 별 감흥없이 해리엇과 남자의 만남을 구경했다. 남자의 이름은 존 왓슨이다. 예전에 한 번 듣긴 했으나 본래 셜록은 가치없는 정보라고 판단되는 것은 곧바로 뇌내에서 삭제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아마도 듣자마자 의식적으로 잊어버렸을 확률이 높았다.
 남자는 아프가니스탄, 또는 이라트에서 근무한 듯 거무스름하게 그을려있고 짚고 있는 지팡이로 보아서 다리를 부상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해리엇과 존이 격한 포옹을 할 때에 미묘하게 찌푸려지는 존의 눈가를 보아서는 부상을 입은 부위는 오히려 팔인듯 싶다. 그렇다면 단순한 림프절 이상인가.
 존을 빤히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존이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서 있을 때는 이상이 없지만 걸을 때만 다리를 저는 것으로 보아서는 트라우마성 관절 질환이군, 이라는 생각을 하는 셜록에게 존이 말을 걸었다.

 

 "네가 셜록이구나?"

 

 존이 활짝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셜록은 자신의 앞에 선 남자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보다가 늘어뜨리고 있던 손을 올려 존의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존. 말씀 많이 들었어요."

 

 셜록의 인사를 들은 존이란 남자는 사뭇 감동한 기색이다. 셜록의 어조가 매우 무미건조했으며 의례적인 어투란 것도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 셜록을 번쩍 들어 안으며 해리엇에게 말했다.

 

 "이렇게 귀여운 조카 이야기는 왜 안 한 거야?"

 

 해리엇이 뭔가 대꾸를 하는 것 같았지만 셜록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이런 친밀한 스킨십에 당황하여 멀뚱히 둘을 쳐다보았다.
 정신 박약에 히스테리가 수시로 발작하는 해리엇은 아이를 다루는 일에는 젬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육아에 소질이 없었다.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는 하급 공무원인 홈즈 씨 또한 일에 파묻혀 사느라 아이를 돌볼 능력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덕분에 첫 아이인 마이크로프트를 낳고서도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여 그녀에게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전담시켰을 정도였고, 스스로도 아이를 키우는 일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한동안 임신이 되지 않도록 극도로 신경을 쓰기까지 했다. 그러다 6년 후에 실수로 피임을 하지 않은 바로 그 하룻밤에 불쑥 셜록을 임신하였던 것이다. 첫 아이를 낳아 기를 때와는 달리 집안 형편은 상당히 달라져, 중상계층에서 간신히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그 위상이 낮아져 있었기에 처음과 같이 유모를 들일 형편은 안되는데, 육아 경험은 없으니, 아이에 대해 절로 소홀해질 수 밖에 없었다. 시도때도 없이 빽빽 우는 아이를 달래기는 커녕 한 번 안아주는 것도 제대로 못했으니, 셜록이 스킨십에 거리감을 느끼는 아이로 자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거의 처음으로 느낀 타인의 온기에 폭 싸인 셜록은 한참 높아진 눈높이에서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

 

 존은 한동안은 런던 근교의 제대자 숙소에서 지내는 듯 해리엇의 집으로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그와의 만남으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자 셜록은 존과의 첫 만남에서 느꼈던 당황을 한때의 해프닝으로 치부할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해리엇이 세 번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리엇과 홈즈 씨로서는 앞으로 더욱 등골이 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셜록에게는 희소식이었는데, 해리엇의 임신으로 인해 존이 홈즈 가에 들르는 빈도가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해리엇과 존과 셜록, 이렇게 셋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점점 해리엇이 임신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침대에 몸져누워있는 날이 늘어지며 셜록과 존, 이렇게 둘이서만 방 안에서 지내는 것이 점차 익숙해져 갔다. 처음의 존은 어린 아이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영 어색해하며 함께 그림책을 읽자고 제안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지만, 셜록의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 하나로 존은 어줍잖은 시도를 하는 것을 그만두었고, 차라리 셜록의 취미인 독서에 편승하여 조용히 책을 읽는 편을 택하였다.
 그때부터 셜록의 방은 둘만의 작은 도서관이 되었다.

 

*

 

 "정말...대단한데?(That...was amazing.)"

 

 어느 날 선심을 쓰듯 존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준 셜록은 존의 반응에 속으로 매우 놀랐다. 거듭 말하는 바이지만 셜록의 부모는 그다지 아이에게 애착을 가질 여유도 의지도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바이올린도 셜록이 간간히 모은 용돈과 홈즈 씨의 얼마 안 되는 월급 중 일부를 합쳐 간신히 중고를 산 것이었으며, 셜록이 혼자 낡은 악기를 이리저리 만져대며 끼익끽 소리를 내는 것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셜록은 잠시동안 눈을 굴리며 말없이 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Do you think so?)"

 

 존은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대단해. 정말 대단하구나.(Of course it was. It was extraordinary. It was quite extraordinary.)"

 

 셜록은 어쩐지 존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는 부끄러운 표정을 짓게 될 것 같아 살짝 그를 외면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보통은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요.(That's not what people normally say.)"

 

 존이 웃음기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보통은 어떻게 말하는데?(What do people normally say?)"

 

 셜록이 농담하듯 툭 뱉었다.

 

 "Piss off!"

 

 존이 말도 안된다는 듯 피식피식 웃었고, 바이올린을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는 핑계로 고개를 돌린 셜록의 얼굴에도 몰래 미소가 피었다.

 

*

 

 한동안 안온한 시간을 공유하던 둘의 시간에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가 생긴 것은 셜록이 그의 어머니 해리엇의 임신을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셜록은 성적인 지식 측면 한정으로 어린 아이답게 순진했고, 임신한 지 3개월이 지난 해리엇의 몸이 여느 때보다 더욱 약해진 점, 배가 조금씩 나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존은 혼자 끙끙대며 고민을 했다. 차라리 탱크가 딸린 사단 하나를 상대로 혼자서 전투를 하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존은 간신히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아이가 생기는 거란다'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럼 얼마나 사랑해야 아이가 생기는 거죠?"

 

 하루 동안의 사랑의 양을 1이라고 할 때, 얼마만큼의 사랑이 모여야 아이가 만들어지는 건가요? 하루 걸러 하루 사랑하면 그 전전날에 사랑한 양은 변화가 없나요? 라는 얼토당토없으면서도 뭔가 묘하게 수학적인 질문을 연이어 해대는 셜록에게 존은 부모들의 전매특허 '좀 더 크면 다 알게 된단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좀더 커다란 문제가 생긴 것은, 그녀가 임신 5개월 때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당장 그만둬! 그만둬! 그만두라고!"

 

 셜록이 다음 달에 개최되는 교내 악기 연주 대회의 참가곡을 연습하고 있을 때였다. 사실 셜록은 특유의 비사교적인 성격 탓에 그런 대회에 참가하는 것에 질색하였지만, 존의 기대감 어린 표정, 셜록이 그의 제안을 거절하자 산책을 나가주지 않는 주인 때문에 잔뜩 실망한 강아지같은 표정을 본 후에 어쩔 수 없이 존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존은 셜록에게 자신이 소리를 지른 사람이기라도 한 듯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해리엇의 방으로 향했다. 셜록은 조금 기다렸다가 조용히 존의 뒤를 따라갔다.

 

 "해리, 해리...진정해."
 "저 소리...저 소리..."
 "그래, 셜록이 바이올린을 켜는 소리야."
 "듣기가 싫어...!"

 

 해리엇이 불분명한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존은 해리엇에게 말했다.

 

 "셜록은 다음 달에 학교에서 연주회를 한다고. 그리고 배 속의 아기는 셜록의 연주를 좋아할거야."
 "...그래?"
 "그럼. 바이올린 선생한테 물어보라고. 셜록의 연주 실력은 그 나이대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대."

 

 조곤조곤 말하는 존. 미처 닫지 못한 문 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셜록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묘한 것이 끓어올랐다.
 이건 뭐지?
 뜨겁고도 차가우며 격렬한 감정. 적의와도 유사한 그 감정의 방향은 해리엇을 향하고 있다.
 아 그렇군.
 셜록은 깨달았다.
 이것이 질투라는 거로군.
 셜록은 비로소 책 속에서만 읽었던 감정의 실체를 느끼게 되었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본 자신은 마치 다른 여인에게 다정하게 구는 연인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물어뜯는 여자같았다. 셜록은 제 자신에게 조소했다.
 해리엇은 존의 상냥한 손길에 다시 잠들었다. 존은 마지막으로 그녀를 두어번 토닥여주고 방을 나섰다.

 

 "!"

 

 셜록은 방문을 연 존을 올려다보았다.
 존은 갑작스럽게 셜록을 발견하여 깜짝 놀란 듯 했으나 조용히 말했다.

 

 "자, 셜록. 우리 방으로 돌아가자. 엄마가 잠드셨어."

 

 셜록은 잠시 해리엇이 누운 침대를 바라보고 존의 인도에 따라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돌아간 셜록은 책상 위에 놓고 온 바이올린을 다시 집어들고 네 가닥의 현을 검지손가락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가느다랗고 하얀 현이 손가락 끝을 파고든다. 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셜록이 방 안의 광경을 모두 본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 말을 해야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셜록이 자못 우울한 표정을 얼굴에 띄우며 말했다.

 

 "엄마는 내가 바이올린을 켜는 것을 싫어하세요."

 

 존은 일단 부정했다.

 

 "그렇지 않아, 셜록."

 

 셜록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손가락을 가장자리의 현에서 하나 옆의 현으로 옮겨 느리게 문질렀다. 존이 셜록의 표정을 살피더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적어도 나는 네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걸 좋아해."
 "오."

 

 셜록은 작은 감탄성만 흘리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의 어머니가 일반적인 어머니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 다만 그가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은 존이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행동이 조금, 기분 좋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마를 이해해줘야 해. 아이를 낳는 건 많은 수고로움을 필요로 한단다. 엄마는 그래서 아프신 거고."
 "엄마는 언제나 아팠는 걸요."

 

 존은 매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셜록을 동정하는 듯 연민어린 표정이다. 사실 동정을 받는 것은 그닥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존의 동정은 길거리 거지에게 베푸는 일회성 동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위해주는 것임을 알았기에 셜록은 다소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그때 존은 셜록의 조그만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말이다, 조금만 참으면 동생이 생길 거야. 기쁘지 않아?"
 "동생?"
 "그럼."

 

 손을 잡은 것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셜록이 존의 손 안에서 자신의 손을 슬그머니 빼었다. 존은 셜록의 마음도 모르고 말했다.

 

 "셜록은 여동생이 좋아, 남동생이 좋아?"

 

 일반적으로 남동생이 좋아, 여동생이 좋아, 라고 묻는 것이 일반적인 의문형 패턴일텐데, 여동생을 먼저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답은 뻔했다. 셜록은 당연한 질문을 한다는 듯 말했다.

 

 "여동생이군요."

 

 존은 약간 놀란 듯 했다.

 

 "굉장하구나, 셜록! 어떻게 맞춘 거지?"
 "그냥요."

 

 존이 셜록을 보며 말했다.

 

 "동생이 생기면 셜록은 오빠가 되는 거야."

 

 존은 셜록에게 동생이 생기면 무엇이 좋은지 말하기 시작했으나 셜록은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 다정한 남자는 아무에게나 다정함을 흩뿌리고 다녀.(사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그게 여자애든 남자애든, 존은 그 아이를 더 예뻐할 지도 몰라.
 불안감이 셜록을 덮쳤다. 셜록은 존이 말을 그치길 기다렸다가 물었다.

 

 "동생이 태어나면 존은 나를 더이상 보살펴주지 않을 건가요?"

 

 셜록은 이 질문을 입 밖으로 내자마자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질문이냔 말이다. 그러나 존은 별로 개의치 않는 기색으로 셜록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셜록. 삼촌은 셜록이 제일 좋아."

 

 그렇구나, 라고 셜록은 안도했다. 어느 틈에 속으로 생각하던 것이 얼굴에 표출이 되었는지, 존은 귀여운 아이를 대하는 태도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셜록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잡았다.
 처음으로 자의에 의해 다른 사람의 손을 만져보는 셜록의 손길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존도 셜록이 그런 행동을 먼저 해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조금 놀란 기색이었으나 이내 셜록의 손을 마주 잡았다.

 

 "물론 동생이 어리니까 앞으로 단 둘이 보낼 시간은 줄어들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둘이 함께 동생을 돌보는 거야."

 

 '단 둘이 보낼 시간은 줄어들지도 몰라.'

 

 셜록의 불안감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셜록의 내부에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폭발했다.
 숨막히도록 지독한 독점욕.
 그리고 셜록의 머릿속에서는 일련의 계획이 수립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태어난 이래로 이처럼 빠른 속도로 두뇌가 작동한 적은 없었다. 셜록은 동기부여가 된 사람의 추진력이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체험하고 있었다.
 셜록은 마음 속으로 외쳤다.
 이 남자는 내 꺼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어.
 셜록은 존의 손을 더욱 꼭 쥐었다.

 

-Ch.1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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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근친/조슈아/역키잡

 

 보기 드문 셜록의 미소를 마주한 존의 등골이 선뜩했다.
 지난 번 해리엇이 입원한 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에게 '이제 바이올린을 켤 수 있어요, 존'이라고 말했을 때와 같은, 담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기쁨이 어린 미소였다. 당시 그는 그 조그마한 어린아이의 알 수 없는 당당함에 밀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셜록의 얼굴만 줄곧 쳐다보았었다. 바이올린에 집착하는 셜록을 보며, 자신이 셜록이 바이올린을 켜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라는 자책도 하였다. 아니면 아직 부모님과의 이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철 없는 어린아이의 말이라고 생각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지금, 위험 상황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빈번하게 노출이 되어왔던 그의 본능이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해리엇이 입원하게 된 경위에는 미심쩍은 점이 많았다. 횡설수설하기는 했지만 해리엇은 쇠기둥에 다리가 걸려 넘어졌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발을 디딘 것으로 추정되는 계단에는 눈이 녹은 것 같은 더러운 물이 남아있었기 때문에-게다가 그 지점은 계단참의 창문으로 눈이 들이치는 자리였기 때문에 사고 원인으로서 더할 나위없는 설명이 되었다-다들 임신 우울증에 시달리던 여자가 물 때문에 계단에서 헛디뎌 미끄러진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해리엇의 다리에 금속과 부딪힌 자국이 확실하게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워낙에 정황 증거가 논리적이었던지라 존 또한 계단 끝의 미끄러짐 방지용 쇠 부분에 부딪힌 것을 해리엇이 잘못 느낀 것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이번의 재판도, 사실상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비록 매형이 셜록을 탐탁잖아 하기는 했지만, 결코 셜록을 상습적으로 구타할 위인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증인과 증언의 힘에 밀려 재판에서 패소하고 셜록에 대한 영원한 접근 금지 명령과 함께 전과 기록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존도 매형을 변호하는 입장에 서기 위해 유투브에 올라간 구타 동영상을 보았다. 중간부터 찍은 것 뿐이었지만, 그 동영상만 가지고 보았을 때 매형이 셜록을 때린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매형의 유약한 성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셜록이 꾸민 거라는-끔찍한 가정을 하면 다 설명이 된다.
 해리엇의 사고를 셜록이 꾸몄다면?
 셜록이 쇠 기둥을 갖다놓은 뒤 해리엇을 유인하여 넘어뜨렸다면?
 해리엇이 넘어진 후 쇠 기둥을 치우고 물을 뿌려 놓았다면?
 사실 공원에서의 구타는 조작된 것이었다면?
 맞는 척을 하며 과한 행동을 취하고, 울며 소리질렀다면 바로 옆에서 본 사람이 있지 않은 한 밝혀내기가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정신 감정을 위한 그림을, 셜록이 미리 사전 조사를 하고 외워서 그린 것이라면?
 몸에 가득하던 멍 자국들을 스스로 만든 것이라면?
 존은 왼손으로 턱을 괴며 전혀 불가능해보이는 가정을 늘어놓았다. 허나 간과할 수 없는 미묘한 연결고리의 종착지점에 셜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든 존의 텅 빈 시선에 셜록의 얼굴이 담겼다.
 눈을 지그시 감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낡은 중고 바이올린에서 웬만한 고급 바이올린의 음색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소리를 내는 셜록.
 자그마한 어린 아이의 모습.
 그 모습을 보는 존은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존은 눈을 감았다.

 셜록은 어느새 다른 곡을 연주하고 있다. 애수 어린 음조가 방 안을 떠돈다.
 이번에도 실수 한 번 없이 긴 곡을 마친 셜록에게 존이 말했다.

 

 "셜록."
 "네?"

 

 셜록이 환하게 웃으며 존을 돌아본다. 방금 전까지의 가정을 무(無)로 돌리고 싶을 만큼 셜록의 미소는 천진한 아이 그 자체다.
 그러나 존은 미심쩍은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는 참지 못하는 남자다. 존 왓슨은 그런 남자였다. 비록 어린 아이에게 가혹한 일일지라도, 존은 셜록에게 그 일들에 대해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존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존이라면, 얼마든지 질문해도 돼요."

 

 마치 애인을 대하듯 어른스런 어조에 존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너의 솔직한 대답이야...그래줄 수 있니?"

 

 셜록은 존의 표정을 살핀다. 그는 신중하게 대답한다.

 

 "좋아요."

 

 셜록의 대답을 들은 존은 물었다.

 

 "해리엇이 유산한 날, 네가 쇠 기둥을 계단에 놓았니?"

 

 셜록이 아주 잠깐 눈을 궁굴렸다. 존은 긴장하며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네."

 

 짐작한 일이었지만 직접 듣는 것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존은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싶은 생각을 애써 접고 다음 질문을 했다.

 

 "사실 공원에서 맞은 건 아니지?"

 

 No, 라고 말하려는 입모양을 보고 존이 황급히 질문을 바꾸었다.

 

 "처음에 말이야."

 

 셜록이 말했다.

 

 "맞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그림은 어떻게 된 거지?"
 "인터넷을 보고 찾았어요."

 

 혹시나, 했던 가정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는 것을 보며 존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셜록은 막상 일을 저지른 자신보다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존을 멀뚱하니 쳐다보았다. 끙끙대던 존은 셜록에게 말했다.

 

 "그건 나쁜 짓이야, 셜록!"

 

 셜록이 고개를 갸웃 하며 존에게 물었다.

 

 "경찰에게 말 할 거예요?"

 

 셜록의 말에 존이 되물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왜냐구요?"

 

 셜록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야 물론, 존과 함께 있고 싶어서죠."

 

*


 셜록의 대답을 들은 존은 자신이 들은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동시에 기가 막혔다. 이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다면, 삼촌이 조카에게 주는 기본적인 양의 애정에 혹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대꾸할 말이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존은 다시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런 존에게 셜록이 달래듯 말했다.

 

 "존, 존은 나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러고 싶은데...라고 순진하게 종알거리는 셜록을 존은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존은 셜록을 품 안에 꼭 안아버렸다.

 

 "!"

 

 난데없이 존의 품에 안긴 셜록의 눈이 커졌다.
 셜록을 안은 채 꽤 긴 시간동안 말이 없던 존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셜록, 너는 이런 짓을 하기에는 너무나 착하고 똑똑한 아이야."

 

 차가운 질책을 예상했던 셜록은 당황하여 눈을 깜작였다. 존은 셜록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라."

 

 깊은 슬픔과 우울감이 어린 어조였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결국 존은 셜록에게 품은 애정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존의 품 속에서 셜록이 말했다.

 

 "나랑 같이 있어줄 거죠?"

 

 존이 셜록에게 말했다.

 

 "이제는 나쁜 일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렴."

 

 셜록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할게요. 그럼 존은 날 좋아해줄 거죠?"

 

 존이 속삭였다.

 

 "나는 항상 널 아낀단다."

 

 셜록이 존의 품 안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럼 나랑 함께 있을 거죠?"

 

 존이 셜록은 더욱 꼭 안으며 말했다.

 

 "그래."
 "영원히?"

 

 셜록이 존을 마주 끌어안으며 말했다. 존이 대답했다.

 

 "영원히."

 

 냉기 서린 눈으로 남모르게 존의 동태를 살피던 셜록은 존의 확답을 듣고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존을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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