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고지대를 올라오는 데 성공한 존은 한참 헉헉거리다가 원래 호흡을 찾기 위해 주저앉았다. 잠깐 동안 바람을 쐬머 땀을 식힌 존은 곧 일어나서 셜록을 뒤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절묘한데..."

 

 존이 바위 동굴의 입구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달빛이 입구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둘은 나란히 등을 동굴 벽에 기대고 앉았다.
 사소한 대화가 잠깐 오가다가 끊어졌다. 셜록은 오늘따라 유난히 말수가 적다. 때문에 분위기 개선은 존의 몫이었다. 존이 어색한 침묵을 탈피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셜록."

 

 셜록이 주의를 기울이는 기색이자, 존이 질문했다.

 

 "자네 설마 거울에 비치지 않는 건…그러진 않겠지?"

 

 농담 섞인 질문이었다. 셜록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역시 그렇지? 항상 생각해왔지만, 고전 뱀파이어 영화들은 말이 안 되는 점이 많단 말이야. 거울을 못 보는데 혼자서 그렇게 머리를 반듯하게 빗어 넘길 수 있다는 거 말야."

 

 존이 셜록 쪽으로 조금 몸을 기울이며 큭큭 웃었다. 셜록의 시야에 유독 존의 숙인 목이 선명히 들어왔다. 셜록은 이성과 합리, 를 되뇌이며 힘들게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그는 이 상황의 주범인 마이크로프트를 떠올리며 셜록은 속으로 교활한 마이크로프트, 증오스런 마이크로프트, 를 연발했다.
 망할 형이란 남자는, 아니 이젠 형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그 작자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내다보고 존을 바스커빌로 불러들인 것이 틀림없었다.
 아까 땀을 흘려서인지, 셜록의 코로 느껴지는 존의 체취가 평소보다 강하다. 남자의 땀 냄새라니, 찝찝할 법도 하지만 셜록에게는 먹음직스런 음식 향기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음식 향기라는 표현으로는 모자랐다. 마이크로프트를 욕하다 말고도 존의 목에 이빨을 박을 생각이 나게 만들 만큼, 강력한 함정이었다.
 지금 존이 어떤 소리를 지껄이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게 뭐든 간에, 지금 셜록의 머릿속에는 존의 체향, 존의 목, 존의 피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작 존의 말에는-미안하게도-별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 더욱 민감해진 청각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뿐만 아니라 존의 심장이 뛰는 소리, 종종 반사적으로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죄다 모아 한데 섞어버렸다. 그 모든 섞은 것이 좁은 깔때기 안으로 퍼부어지는 것 같다. 어지러웠다.
 그런 셜록의 속도 모르고, 존은 긴장으로 딱딱해진 셜록 곁으로 몸을 조금 붙여왔다.

 

 "밤이라 그런지 조금 추운데."

 

 존은 그러면서 오늘따라 상태가 정말 안 좋은 듯, 거의 말문을 열지 않는 셜록을 힐끗 쳐다보았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니, 더럭 걱정이 된 존은, 끙 하고 살짝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 갈까?"

 

 존이 채 말을 다 마치지도 못했는데, 셜록이 강한 악력으로 존의 옷깃을 잡아 끌어내렸다. 졸지에 엉덩방아를 찧은 존은 약간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야, 셜-"

 

 셜록의 눈이 묘한 열기로 빛나며, 아무 말 없이 존을 밀어 넘어뜨렸다. 흙바닥 위로 등을 댄 채 넘어진 존이 당황하여 눈만 꿈벅거리고 있는데, 셜록이 존의 위로 몸을 숙이며 귓가에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게 속삭인 그 말을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셜록이 존의 목 깃을 손으로 강하게 뜯어내었다. 그 순간 짜맞추기라도 한 듯 달빛이 동굴의 입구를 비껴가고, 동굴 안은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

 

 셜록이 존의 후줄근한 와이셔츠의 목깃을 거칠게 뜯어 목까지 채운 단추 중 몇 개가 튕겨 나가 동굴 바닥을 뒹구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존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그때 연약한 목의 살갗에 셜록의 입김이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존의 얼굴이 시뻘개졌고, 셜록을 밀어내려고 애썼다.

 

 "-셜록!"

 

 존의 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셜록의 팔은 존이 쉽사리 자신의 아래의 위치를 벗어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존이 고개를 내저으며 셜록의 머리를 치우려고 노력했으나, 셜록은 한 쪽 손으로 간단히 존의 머리를 내리누르고 그의 목으로 머리를 파묻었다.
 할짝, 하는 젖은 소리가 존의 귀에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동시에 목이 간질간질거렸다. 존의 붉어진 얼굴에 더욱 피가 몰렸다. 더욱 강하게 셜록을 밀어내려고 하는 존에게 셜록이 중얼거렸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

 

 셜록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존의 목을 핥는 데에 열중했다. 존은 욕이라도 해줄까 싶었지만 때마침 셜록이 목의 어느 지점을 핥았다.

 

 '뭐, 뭐, 뭐지?'

 

 목을 핥았을 뿐인데, 하반신에 찌릿하는 느낌이 들었다. 셜록은 존의 저항의 몸짓이 서서히 잦아드는 것을 느낀 듯 그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핥는 것 뿐 아니라 이빨로 자근자근 물었다 놓기까지 했다. 존은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쾌감을 느끼면서 울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성감대가 목에 있었다니, 하필이면 셜록에 의해서 자각하게 되다니. 게다가 쾌감이 주어지자 곧바로 저항을 멈추는 이 간사한 몸이라니. 존은 그런 생각을 하며, 혹시라도 실수로 민망스런 신음을 내뱉지 않도록 온 신경을 썼다.
 잠깐 동안 목을 핥는데 공을 들인 셜록은 욕망에 들뜬 눈으로 목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송곳니를 박아넣었다.

 

 "-흐윽!"

 

 쾌감보다는 고통에 익숙한 존은 비명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셜록은 자신의 목덜미를 너덜너덜하게 만들려는 생각인지, 살점이 떨어져 나가라 세게 물고 있었다.
 셜록이 더욱 강하게 고개를 파묻음에 따라, 결국 살점이 찢기며,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셜록은 찢어진 목에서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피를 한 방울이라도 놓칠세라 정성껏 핥아마셨다. 쾌감에 흐려진 머리가 고통으로 인해 다시 맑아진 존은 그제야 셜록이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사실과 지금의 상황을 연결 지을 수 있었다.

 

 '피는 안 마셔도 된다면서...사기꾼 같으니...'

 

 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셜록은 그동안 어지간히 굶주린 모양인지, 피를 더 나오게 할 요량으로 한 층 더 세게 상처를 빨았다.
 셜록이 존의 피를 마시는데 한참 열중하는 동안, 존은 아랫배에서 뭔가 스멀, 하고 느껴지는 것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존은 목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점차 다른 무언가로 대체되는 것을 느꼈다. 눈앞이 조금 흐려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소름끼치게만 느껴졌던 셜록의 이가 자신의 목의 살갗을 파고드는 느낌이 이제는 감미로운 접촉으로 느껴졌다. 악물고 있던 입이 저절로 열리며 그 열린 틈새로 간간히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존은 멍한 머리로 생각했다. 역시 뱀파이어에게 물리는 사람은 기분이 좋은 거구나. 영화 속에서 뱀파이어에게 목을 물린 사람들이 절정에 달해 오르가즘을 느낀 사람들처럼 축 늘어진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존은 이제 전신으로 퍼진 쾌감이 잔잔한 파도처럼 자신의 몸을 쓸어가는 것에 자신을 내맡겼다.

 

*

 

 동굴 안은 두 남자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하다.
 현재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존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탐닉하던 셜록은 어느 정도 배고픔을 해소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입 안에 가득한 달콤한 피의 맛을 인지한 그는 자신이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존의 피를 마셔버린 것을 알았다.
 피 묻은 입가 그대로 황급히 고개를 쳐든 셜록은 존의 얼굴을 보고 낭패의 기색을 드러내었다. 뱀파이어에게 물린 탓인지 맛이 가서 발갛게 된 얼굴로 얕은 신음을 흘리는 존을 본 셜록은 하마터면 다시 존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버릴 뻔했다.
 당황한 셜록은 일단 존이 정신을 차리길 바라며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존! 존!"

 

 흐으…하는 미약한 신음소리를 내며 존이 젖은 눈으로 셜록을 바라보았다. 힘이 빠진 존은 똑바로 고개를 가누지 못했다. 그답지 않게 매우 당황한 셜록이 누워있는 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던 존은 하아아으, 하고 숨을 내쉬었다. 쾌감에 젖은 듯 야릇한 한숨이었다. 저도 모르게 존의 촉촉한 파란 눈으로 시선이 간 셜록은 이 꼴을 그대로 보고 있다가는 존에게 또 다른 일마저 저질러 버릴 것만 같아 곧바로 존을 자신의 어깨에 들쳐 메고는 동굴을 빠져나갔다.

 

*

 

 셜록이 전속력으로 뛰어 숙박지로 도착했을 때, 존은 다행히도 셜록의 어깨에서 정신을 잃은 듯 했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연 셜록은 존은 침대에 누이고 난 후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얌전히 숨을 쉬는 존을 본 셜록은 그의 목에 난 상처가 세게 빨아올린 듯한 붉은 자국만을 남기고 서서히 아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어 자신의 해골 손에 생각이 미친 셜록이 손을 들어보았다. 피를 마신 탓인지, 자연적인 재생 속도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살이 돋아 오르고 있었다. 주된 혈관을 통해 피를 빨아 마신 것이 아니라 얼마 마시지 않은 것 같았지만 손은 완벽하게 재생되었고, 욕망으로 들끓던 셜록의 머릿속도 시원한 물로 씻어 내린 듯 청량하리만치 깨끗해졌다.
 그래도 목을 물어서 다행이었다. 영화에서 목을 물면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것과는 다르게, 목은 굵은 혈관은 피부 표면에서 안쪽으로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영화 같은 상황이 펼쳐지기는 힘들었다. 셜록의 입으로 가득 한 모금 정도는 마신 것 같았지만, 그 상황에서 자신이 동맥이나 정맥을 건드렸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게다가 셜록의 침, 또는 이빨에서 나오는 것에 상처 자연 치유성분이라도 있는지, 저절로 걱정할 만한 상황-존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출혈이 이어지는 사태-이 해결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평온하게 숨 쉬는 존의 얼굴을 쳐다본 셜록은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

 

 다음 날, 존과 셜록은 일어나서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체크아웃을 한 후 함께 기차를 탔다. 둘 사이의 이유 모를 침묵시위는 기차에 타서도 계속되었다. 마치 대판 싸운 어린아이들이 토라져 입을 열지 않는 모양새와 다름없었다.
 존은 그러나 말을 하기 싫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침대에서 일어나 본 셜록의 표정이 너무나 어두웠기에 말을 붙일 수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랬지만 셜록이 줄곧 말을 하지 않는 것에 저도 모르게 오기가 생겨 존도 입을 꾹 다물게 된 것이다. 게다가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셜록에게 목을 물리면서 정체모를 쾌감에 젖어 저항도 안하고 헐떡대던 자신의 모습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그동안 품어온 자신의 마음이 반영이라도 된 듯 하여 절로 뺨이 뜨거워졌다. 그에 더해, 단추 없이 간신히 여민 와이셔츠의 목깃 안쪽에는 어젯밤의 일을 잊지 말라는 듯 불그스레한 자국이 선명했다.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쪽팔리고 부끄러운 존은 더욱 굳게 입을 다물었다.
 셜록 또한 존과 딱히 대화를 나누기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존이 무사히 깨어나기만을 바라고 존의 침대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존이 자신의 얼굴을 흘끗 보더니 시선을 피하고는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 또한 할 말이 없어 입을 열지 않은 것뿐이었다. 셜록은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지난밤의 일을 돌이켜보았다. 존을 덮쳐서 며칠 간 굶주린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존의 목을 파고들어 결국에는 피를 본 그 상황 자체가 셜록에게는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의 이성이 욕망을 통제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차라리 존에게 솔직하게 고백을 하고 허락을 구해볼 것을, 하고 생각하며 셜록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으로 인해 둘 사이의 공기는 한층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른 아침이라 텅 빈 기차간에서 둘은 굳이 붙어앉아있으면서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런던에 도착하기까지 주욱 침묵을 지켰다.

 

'BBC Sherlock > Let Me In(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셜록존]Let Me In Ch.1_9  (0) 2012.08.23
[셜록존]Let Me In ch.1_8  (0) 2012.08.23
[셜록존]Let Me In Ch.1_6  (0) 2012.08.23
[셜록존]Let Me In Ch.1_5  (0) 2012.08.23
[셜록존]Let Me In Ch.1_4  (0) 2012.08.23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