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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셜록이 건물에서 추락사-결코 그 죽음을 자살로 인정할 수 없었던 존의 마지막 타협점이었다―한 후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그 사태가 불러온 파란은 어느 정도 진정되어, 베이커가 221B로 날아들어 오는 사람들의 야유도, 폐쇄시키기 전 블로그에 끊임없이 달리던 악성 댓글이나 메일함을 가득 채우던 스팸 메일도 잦아들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의 암중의 도움, 그리고 허드슨 부인의 든든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고작 다리병신인 퇴역 군의관이 이러한 사태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했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1년 후.
 변한 것은 없다.
 변한 것은, 거의, 없다.
 한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
 한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음으로써 마땅히 쓰임새를 가져야 할 물건들이 그 쓰임새를 잃고 방치되어 있다.
 부엌은 그러한 물건 때문에 너저분하다.
 허드슨 부인은 더 이상 그것을 치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벽난로 위에 그대로 놓인 해골은 텅 빈 구멍을 부엌 쪽으로 향한다.
 노오랗게 빛바랜 해골은 조용히 존을 외면한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는 존도 해골을 외면한다.
 해골의 주인과 셜록은 드디어 해후를 하였을까.
 존의 뇌리에는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존은 소파에 앉아있다. 이는 최근의 존에게 있어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일과 중 하나다. 언제나 커튼은 아주 조그만 틈을 제외하고 단단히 쳐져있다. 존은 창문을 커튼으로 완벽히 가리려고 노력을 해보았다. 그러나 창문의 가로 길이와 커튼의 폭의 미묘한 차이로 언제나 아주 작은 틈새만을 남긴다.
 오늘의 존은 멍하니 커튼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에 비치는 허공의 먼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먼지는 보석 세공점의 공방 안에서 날리는 다이아몬드 가루처럼 아름다운 흰 빛을 내고 있다. 그 중의 하나를 뒤쫓아 간다. 그의 시선은 조용히 아래로 가라앉는다. 시선이 향한 곳을 눈동자에 담는다. 존의 눈에 담긴 것은, 그 날 이후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은 셜록의 메마른 플라스크. 얇게 덮인 먼지 위로 먼지 한 알갱이를 더 보탠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경로를 눈으로 따라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가느다란 햇살 줄기는 존의 얼굴 정면 쪽으로 이동했다. 햇살 줄기가 너 지금 뭐하고 있냐며 눈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존은 문득 눈이 부셔 몸을 깊이 파묻고 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바늘은 오전 10시가 되기 전 애매한 위치에 서있다. 존은 방문 옆에 기대어 놓았던 지팡이를 찾아 쥐고 방을 나섰다.
 지팡이가 차갑다.

 

*

 

 오늘은 심리 치료사와의 정기 상담일이다.
 그 동안 존은 치료사를 방문할 시간도 없었을 뿐 아니라, 밖으로 나다니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에 역시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여자와 존은 마주보고 앉았다. 여자가 먼저 말했다.

 

 "오랜만이예요."

 

 존도 따라서 오랜만입니다, 를 말하고 싶었지만 목에 생선 가시라도 걸린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다소 크게 헛기침을 하고서야 나직하게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여자는 까만 눈으로 그런 존의 얼굴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빤히 쳐다보았다.

 

 "차라도 한 잔 하시면서 얘기할까요?"

 

 여자와의 만남은 꽤 많은 횟수 동안 진행되어왔었다. 그런 중에 그녀가 차를 내오겠다고 제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기 포트에 물을 붓고 전원을 눌렀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서서히 끓기 시작한다.
 존은 의자에 붙박여 앉은 채 물이 보글보글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대체 내가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온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상 심리 치료사가 존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여자는, 기껏해야 존이 그 동안의 정황을 이야기하면 위로하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이 여자를 찾은 것일까? 마치 무릎이 까진 아이가 엉엉 울며 엄마를 찾는 것처럼?
 그의 생각은 다른 갈래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여자도 자신과의 이야기를 난잡한 가십거리를 싣는 데에 혈안이 된 싸구려 신문사에 제공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까? 그가 마음을 놓고 그 이야기를 여자에게 하면 여자는 그것을 귀담아들으며 존이 자리를 뜨기 전까지는 한껏 위로하며 치료사의 본분을 다한 다음 존이 집으로 향한 후 그가 정말로 이 건물을 떠난 것을 창문으로 확인하고 곧바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서 약간의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몇 파운드를 받을 것인지 흥정을 한 후 만족스러운 액수를 약속받으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겠지.
 그 때 주전자가 삑삑 소리를 내는 것에 존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여자는 주전자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쥐고 티백을 넣은 찻잔 안에 주전자 부리를 기울였다. 쪼르륵 하며 뜨거운 물이 찻잔에 담긴다. 여자는 김이 나는 찻잔 두 개 중 하나를 들어 존에게 건넸다.
 존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방금 전까지 자라났던 상념의 가지를 가차 없이 쳐내었다.
 여자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따스한 컵을 양손으로 감쌌다.
 존은 여자의 손에 감싸인 찻잔, 여자가 입은 스웨터, 장신구 없는 여자의 목, 여자의 콧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여자는 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셜록이…."

 

 심호흡 한 번 더.

 

 "…죽었습니다."

 

*

 

 도노반과 앤더슨은 존 왓슨을 볼 때마다 움찔하는 기색이었다. 사실 셜록이 본격적으로 경찰들에게 쫓기게 된 것은 그들이 레스트레이드를 반협박하여 상부에 올린 건의 때문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존도 딱히 그들에게 살갑게 대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손님용 대기 의자에 앉아있던 존은 레스트레이드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직속 부하들과는 다르게 레스트레이드는 현명하게도 그런 낌새라고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이 존을 반가이 맞아들였다. 존은 레스트레이드에게 고개를 까딱 해 보이고는 그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앉게, 존."
 "무슨 일입니까?"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도록 하세나."

 

 레스트레이드의 권유에 존은 더이상 별 말하지 않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런 존을 바라보며 의미모를 한숨을 쉰 그는 자신의 책상 위 서류철 사이에 끼워놓았던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자네도 내 얼굴 보기가 껄끄러울 테니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지. 이걸 보여주고 싶어서 부른 것이라네."

 

 존은 무표정한 얼굴로 레스트레이드가 내민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은 어두운 가운데 어슴푸레한 조명이 비치는 펍이다. 맛집 블로거가 가게 홍보를 위해 찍은 사진인 듯 가게의 전경이 찍혀있다. 스툴이 놓인 사이드바가 길쭉하게 이어져 안쪽으로 사라지고 테이블에는 컵 안에 담긴 희고 납작한 양초가 하나씩 있는 것이 보인다.
 존은 사진에서 눈을 떼고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 제가 뭘 보길 원하시는 겁니까?"

 

 레스트레이드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손가락으로 사진의 귀퉁이를 짚었다.

 

 "여길 자세히 한 번 보게."

 

 존은 약간의 흥분과 설렘이 어린 레스트레이드의 표정을 보고는 의아했으나 그가 여기까지 자신을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은 해보자는 생각에 일단은 그가 가리킨 곳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존은 사진을 집어들고 눈을 가늘게 떴다. 한 남자의 모습이다. 벽에 달린 조명 때문에 그늘이 져 있었으나, 테이블 위에 놓인 양초의 불빛 덕분에 얼굴이 창백한 불빛에 물들어있다. 그 얼굴을 본 존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사진을 레스트레이드의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보는 존을 향해 레스트레이드가 다른 사진을 내밀었다.

 

 "이것도 봐."

 

 존은 손사래를 치며 몸을 약간 뒤로 뺐다. 여전히 입은 굳게 다문 채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소리를 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지금 입을 열면 분명히 자신은 사무실 바깥까지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소리치게 될 것이다. 레스트레이드가 사무실 문을 잠근 보람도 없이.
 레스트레이드는 여전히 그를 향해 사진 한 장을 또 내밀고 있다.
 싫다고 말하며 문을 박차고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그는 손을 내밀어 사진을 받았다.
 존의 손끝에 잡힌 사진이 파르르 떨린다.
 그가 내민 사진은 아까 전의 사진에서 귀퉁이 부분만을 확대한 것이다. 사진 속의 남자는 익숙한 얼굴형, 익숙한 헤어스타일, 심지어 익숙한 옷까지 걸치고 있다.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회색의 롱코트의 깃을 세우고, 안에는 검은 양복 재킷과 목 부분의 단추를 푼 와이셔츠를 입었다. 비록 어둠에 흐려진 실루엣이지만 그의 모습을 익히 잘 알고 있는 그와 레스트레이드는 이 남자가 셜록임을 의심치 않을 정도의 유사함이다.
 애써 사진을 내려놓은 존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이건…말도 안 돼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레스트레이드는 한숨을 쉬었다. 한숨이 무겁게 사무실 안의 공기를 패인다.

 

 "다른 사진은 없습니까?"

 

 존의 물음에 레스트레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존은 이성과 합리, 를 속으로 되뇌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건 그저 닮은 사람일 겁니다."

 

 레스트레이드는 일어나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젓기도 하고 끄덕이기도 했다. 존은 참을성 있게 그가 말하길 기다렸다.

 

 "나도 자네 말이 맞았으면 해. 아니…맞지 않기를 바라기도 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자네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존은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레스트레이드가 말을 계속했다.

 

 "생각해보면 참 웃긴 노릇이야. 내가 이 사진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아나? 체육 교사랑 바람난 아내 맘을 돌리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발견한 거라네. 빌어먹을 노릇이지…. 그 와중에도 그 녀석에 대한 생각이 났으니 말이야."

 

 그의 피로한 목소리에 존을 간만에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실소를 흘리는 그에게 옮은 것인지 존도 큭큭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작게 웃다가 점차 미친 듯이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사무실 바깥의 직원들이 새어나오는 웃음소리에 잠시 그쪽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둘을 내버려두고 다시 자기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도 웃은 나머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존이 말했다.

 

 "저야 말로 정말 웃기다고요. 집 안에 틀어박혀 아무 일도 안하던 사람이 당신이 연락했다고 해서 부리나케 뛰어오다니 말입니다. 대체 뭘 바라고 온 건지…."

 

 존의 말을 들은 레스트레이드는 더 크게 웃었고, 그에 따라 존의 웃음소리도 커졌다.
 남겨진 자들은 서로를 보며 크게 웃었다.
 
 겨우 웃기를 멈춘 그들은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혹시라도 다른 걸 찾으면 자네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겠네."
 "감사합니다."

 

 존은 경시청을 나서서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땅거미가 짙게 깔린 도시는 이미 검게 물들어있다.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찬란하다. 존은 오늘따라 다리가 약간 가벼운 것을 느끼며 조금 빠르게 걸었다.
 열쇠로 하숙집의 현관문을 열던 존은 문득 고개를 돌렸다.
 마치 시선이 강하게 와 닿는 느낌이었다.
 주위는 싸늘한 정적만이 감돈다. 때마침 차 한 대가 쌩 하고 지나간다. 그 바람에 보도블록 위에 나뒹굴고 있던 전단지 한 장이 펄럭이며 붕 떴다가 다시 지표면에 내려앉는다. 존은 스스로 민망해하며 고개를 똑바로 하였다.
 존은 문을 열고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 후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남겨진 시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존이 들어간 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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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들여보내 주게."

 그는 그 말과 함께 존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존은 차마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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