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런던 기차역까지 줄곧 침묵을 지킨 채 도착한 그들은 마치 모르는 사람들처럼 데면데면한 상태로 역을 나섰다.
 역 입구를 빠져나온 존은 어디를 가야될까 고민했지만, 갈 곳은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자신의 플랫. 존이 방향을 정해 걷기 시작하자 셜록은 코트 목깃을 한껏 올려 얼굴을 최대한 가린 채로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셜록과 존이 함께 살면서 사건을 해결하러 바삐 뛰어다닐 적에는 한 번도 존이 셜록을 앞선 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린 존은 이 상황이 어색하다 못해 민망하기까지 했다. 생각의 속도가 존보다 월등히 빨랐던 셜록은 언제나 존을 앞서서 걸었었다. 존은 언제나 그를 쫓아가기 바빴었다. 뒤에서 셜록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존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눈치를 보는 지금, 상황이 전과는 완전히 뒤바뀐 것을 둘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존의 플랫 바로 앞까지 걸어온 셜록과 존은 잠깐 마주보았다. 곁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은 헛기침만 연신 해대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이겨내고 셜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존."

 

 존이 크흠, 하고는 대답했다.

 

 "그래."

 

 셜록은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는 입을 열고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던 손 중 하나를 꺼내 허공으로 뭔가 의미모를 손짓을 하다가 열었던 입을 다시 닫았다. 손을 다시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은 셜록은 짧게 고개를 까딱 하고 미련 없이 뒤로 돌아섰다. 존도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둘 모두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걸 확인한 후에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거나 머리를 벽에 박으며 자학한 것은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

 

 셜록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요즘 들어 부쩍 한가한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의 방 한가운데 버티고 앉아서 셜록을 기다리고 있었다. 셜록을 빠르게 훑어본 마이크로프트가 씨익 미소지으며 말했다.

 

 "먹었구나?"

 

 비죽비죽 웃으며 셜록을 조롱하는 마이크로프트에게 뭐라 응수할 기운도 없는 셜록은 침대로 몸을 던져 시트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런 셜록에게 말했다.

 

 "근데 정말 먹기만 했구나?"

 

 무언가 성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그의 끈질긴 조롱에 아, 성가셔, 라고 생각하며 셜록이 핀잔을 주었다. 핀잔을 주는 사람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는 것은 조금 웃겼지만 말이다.

 

 "최근 유럽이 지나치게 평화로운가보지."

 

 시트 속에서 웅얼거리는 셜록에게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필요 이상이지. 당분간은 그럴 거란다."

 

 제기랄, 당장이라도 3차 세계대전이 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셜록은 저도 모르게 끙 하는 신음을 뱉으며 시트를 더욱 위로 끌어당겼다. 그것도 잠시, 셜록은 침대를 박차고 나와 엉망으로 구겨진 몰골로 방 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나 정신머리가 없는지 코트 한 쪽은 팔에 완전히 걸쳐지지도 않아 바닥으로 늘어진 채인 셜록의 모습을 본 마이크로프트가 조용히 혀를 찼다.
 마이크로프트가 다리를 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땠는데 그러니? 맛이 그렇게 없었던 거야?"
 "…그랬다면 차라리 좋았겠지."

 

 셜록이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그 밤, 셜록이 머금었던 피의 향기는 그저 체향만 맡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매혹을 품고 있었다. 존의 목에 난 상처에서 감질나게 피를 빨아올리며 혀끝으로 너덜한 살갗을 깊이 후벼 파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 입 안에는 다시금 그 맛이 되살아나며 당시 느꼈던 쾌감이 재생되는 것 같다. 비릿하고 달착지근한 혈향이 입 안에서 진동하고 귓가에는 존의 가쁘게 내쉬던 뜨거운 숨결이 훅 끼친다.
 혀로 뾰족한 송곳니 끝을 살살 핥으며 셜록이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는데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을 불렀다.

 

 "-거니, 셜록?"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셜록이 간신히 '듣고 있는 거니'라는 마이크로프트의 끝말을 캐치하고 별일 없다는 듯 대답했다.

 

 "오, 그럼."

 

 셜록은 순식간에 말끔한 얼굴로 돌아와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마이크로프트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분간 혼자 있고 싶어."

 

 그 미소가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그나마도 거짓으로 지어낸 미소라는 것을 마이크로프트는 아주 잘 알았지만, 순순히 셜록의 방에서 나가주었다. 마이크로프트가 나간 후 셜록은 방바닥에 질질 끌리던 코트 한 쪽을 추슬러 다시 팔에 똑바로 끼웠다.

 

*

 

 아침에 셜록과 그런 식으로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헤어짐을 겪고 난 후, 존은 휴대폰을 손에 들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화면에 나타나 있는 것은 마이크로프트의 연락처였다. 존은 또다시 자취를 감춘 셜록의 소재를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마이크로프트에게 기대를 걸어보려는 것이었다.
 바스커빌에서 들었던 셜록의 말에 의하면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겪은 문제의 수술과 사후 처리 등에 깊게 관여하였음이 분명하였고, 평소 이런저런 곳에-심지어 감시 카메라까지 동원하여-신경을 써대는 그의 행동거지를 보았을 때 셜록이 현재 머무르고 있을 안전 가옥도 그가 마련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어쩐지 마이크로프트에게 셜록의 현재 위치 파악을 위해 전화를 건다는 것이 망설여진 존은 손가락을 휴대폰 화면에 가까이 가져갔다가 떼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존은 문득 마이크로프트에게 화가 치밀었다. 생각해보니 존이 거진 반 폐인 상태로 허송세월하던 일 년에 가까운 그 기간 동안 마이크로프트는 줄곧 그의 옆에 있었다. 그 옆에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마이크로프트는 존에게 언질 한 마디도 없었던 것이다.
 존은 지금 화를 내는 것이 상당히 뒷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이크로프트에게 뭔가 한 마디라도 하고 싶고, 화풀이도 하고 싶다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결국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마이크로프트?"
 "오, 존. 웬일이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말이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긋나긋한 어조다.

 

 "그러고 보니, 몸은 좀 괜찮나?"

 

 저 말인즉슨 마이크로프트는 이미 셜록과 존 사이에 일어난 불의의 일에 대해 전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존을 바스커빌로 유인한 시점에서부터, 이렇게 될 것을 예견했거나, 또는 직접 계획한 것일지도 몰랐다. 마이크로프트 특유의 유하면서도 위압적인 말투에 저도 모르게 사그라들뻔했던 화가 더욱 치솟는 것을 느끼며 존이 말했다.

 

 "셜록에 대해 질문할 것이 있긴 하지만, 댁하고는 일단 청산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네요."

 

 존의 심상치 않은 기색에, 마이크로프트가 수화기 너머로 당황한 듯한 웃음을 흘렸다.

 

*

 

 한동안 들볶인 후-적당히 당해준 것 같아서 존은 은근히 더욱 화가 났지만-존이 셜록의 현재 상황을 묻자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셜록은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 받고 있지."

 

 동정하는 것인지 즐거워하는 것인지 모를 모호한 말투로 말한 마이크로프트가 존에게 되물었다.

 

 "그 애가 자네 피를 마셨다면서."

 

 존의 목구멍까지 '그…그걸 어떻게'라는 말이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체념기가 짙게 배인 한숨을 푹 내쉰 존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

 

 마이크로프트는 흐음, 하더니 다시 물었다.

 

 "어때, 자네도 기분이 좋던가?"

 

 존이 마이크로프트의 말을 듣고 헉 소리를 내더니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저, 당신도 물렸어요?"
 "내가 먼저 질문했잖나."

 

 마이크로프트의 완고한 태도에 존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저기…물 때는 아팠는데 막상 피를 빨릴 때는…."
 "기분이 좋았다고?"

 

 존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마이크로프트가 대답을 재촉하자, 그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긍정의 표시를 했다. 그 대답을 잘도 캐치한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그래? 흠."

 

 다음 순간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존의 복장을 터지게 만들었다.

 

 "나는 안 물려봐서 잘 모르겠지만 자네 기분이 좋았다니 다행이군 그래."
 "저…아까는 '자네도'라고 안 하셨나요….?"

 

 존이 당황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하자,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아 그거 거짓말이야."

 

 수화기 너머로 그가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여과 없이 들렸다. 분명 낚시질에 성공했다는 희열에 찬 웃음이었다. 뒷목이 당기기 시작한 존은 더 이상 이 정신 나간 작자와 통화를 계속하다가는 육두문자로 입을 더럽힐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여 휴대폰의 빨간 전화기 버튼을 연타했다.
 그가 씩씩거리며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을 때 휴대폰의 진동음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마이크로프트가 보낸 문자였다. 확인해보지도 않고 삭제할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존의 뇌리를 지배했지만 이성을 되찾고 문자함을 열었다.

 

 -3일 정도만 내버려둬보게. 안 오곤 못 배길 걸^^

 

 끝의 미소 이모티콘은 심히 보기 불편했지만 존은 그래도 셜록의 형이 하는 말이니 믿어보기로 하고 소파에 등을 깊게 묻었다.

 

*

 

 존에게 그렇게 문자를 보내놓은 마이크로프트였으나, 그가 셜록의 방으로 찾아갈 때마다 셜록은 나날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이크로프트는 그의 그런 모습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존에 관련된 문제가 되자 명석한 줄로만 알았던 동생은 일반인보다도 못한 판단력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한심스러우면서도 웃겼다. 하지만 웃긴 것도 한두 번이지, 나흘째 그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구경하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
 그때 셜록이 방만한 자세로 누워있다시피하며 앉아있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결론이 났군."

 

 마이크로프트가 중얼거렸다. 셜록이 그 말에 대답하듯 말했다.

 

 "앞으로 존한테 절대 가지 말아야겠어."

 

 셜록은 나름대로 명쾌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자부하며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마이크로프트가 보기에 그 미소는 미소 같지 않게 비틀려있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 는게 이럴 때 쓰는 말일까, 라고 마이크로프트는 생각했다. 셜록은 자기 자신을 말려죽일 생각을 스스로 해내고서 기뻐하고 있었다.
 한편 셜록은 나름대로 계산적으로 행동한답시고 존을 피해 다닐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인간의 것이 아닌 이 육신이 언제 썩어문드러질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 몸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존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문제는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셜록이었다.
 셜록이 그런 생각을 하며 '나 잘 했지?'하는 표정으로 마이크로프트를 보며 싱긋 웃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이렇게 될 때까지 가만 내버려둔 자신을 탓하며 한 편에 치워놓았던 우산을 찾아 쥐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우산을 짚고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난 가봐야겠군."
 "오."
 "잘 있어라."

 

 사뭇 냉랭하게 들리는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 마이크로프트는 거침없이 걸어나가 방문을 쾅 닫았다. 셜록은 멍청한 표정으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

 

 사흘이 아니라 열사흘은 족히 기다린 존은 셜록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마이크로프트에서 재차 연락을 해 봤지만 비서가 전화를 받을 뿐이었다.

 

 '미스터 홈즈는 현재 통화가 불가능하십니다.'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것 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존은 한숨을 푹 쉬었다. 셜록과 엮일수록 한숨만 느는 것 같았다.
 존은 문득 창밖을 쳐다보았다. 지난번처럼 셜록이 창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기대감이 섞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회색빛 창유리에는 바닷가 바위에 따개비가 붙어있는 것처럼 빗방울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따금 몇 개의 빗방울이 뭉쳐 주르륵 아래로 흘러내리고, 마치 잠 못 드는 아이가 엄마의 방문을 수줍게 노크하는 소리처럼 똑똑 소리가 들리며 비워진 자리를 다시 빗방울들이 메웠다. 조그만 물방울들이 불규칙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강약을 주며 이어졌다.
 한동안 그 모습을 쳐다보던 존은 단념하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제빵이 취미인 집주인이 마침 쿠키를 구웠기 때문에 그 쿠키나 몇 개 얻어오려는 심산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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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