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존의 생각과는 다르게, 셜록의 난데없는 액션 활극은 좀 더 급박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셜록은 존을 향한 '식욕', 다른 말로 하면 '흡혈 욕구'를 참지 못하고 방을 뛰쳐나왔던 것이다.  존이 머리를 갸웃하며 자신에게 차를 권하던 순간에도, 존이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하는 그 순간에도 셜록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존의 흰 목을 움켜쥐고 우악스럽게 물어 상처에서 피를 빨아 마시는 상상이 연속적으로 재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존은 죽었다고 생각한 셜록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너무도 놀란 상태였으며, 일면 그에 감격한 것도 있었기 때문에 항시 갖추고 있던 경계 의식이나 자기 방어랄 것 하나 없이-본래 존은 셜록 앞에서만큼은 조금 무른 점도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셜록 앞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런 존의 체향이 가득찬 방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간 정말로 충동에 못 이겨 눈이 홱 돌아간 나머지 존의 목덜미를 물어뜯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간신히 남은 이성 한 자락을 잡고 여기서 벗어나야겠다, 라고 결정하고 대체 어떻게 존과 작별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정신없이 뛰쳐나온 셜록은 이만하면 존의 플랫에서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확보했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낯선 건물들. 자신은 거의 겪어보지 못했던 높은 위치에서 그것들을 시야에 담아내고 있었다.
 한숨 돌린 셜록은 건물 위를 훌쩍 뛰어넘어 여기까지 이른 자신의 행각을 아무도 보지 못했기를, 설사 보았다 하더라도 인간 개인 특유의 무관심으로 제발 그 광경을 의식 저편으로 지워버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

 

 자신의 방에 돌아온 셜록은 일단 냉장고를 열었다. 괴상한 망상으로 들끓는 자신의 머리를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심으로서 식혀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냉장고 안에는 물이라곤 한 병도 없었고 마이크로프트의 과도한 배려의 산물이 분명한 혈액팩만 꽉꽉 들어차있었다.
 망상으로 인해 흐려진 머리는 이제 마이크로프트를 향한 분노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

 

 일주일 후, 마이크로프트는 귀국하자마자 셜록이 머무르는 방으로 곧장 향했다. 비가 오던 안 오던 항상 지참하고 다니는 검은 장우산을 한 손에, 그리고 외국에서 구해온 수입산(?) 혈액팩이 신선하게 보존된 채 들어있는 서류가방을 다른 한 손에 든 채 셜록의 방문을 연 마이크로프트는 열린 문 바로 뒤에 기다렸다는 듯 서있는 셜록을 발견했다.
 마이크로프트가 놀람으로 인한 감탄사 한 마디 내뱉을 틈도 없이 셜록은 사나운 표정으로 급작스럽게 마이크로프트의 멱살을 움켜쥐고 자신의 코를 마이크로프트의 목덜미로 거칠게 파묻었다. 셜록의 기행의 의도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자신의 체취를 들이마시며 킁킁거리는 내내 온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서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힐끗 곁눈질하는 마이크로프트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공포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괴이한 작업이 끝나자 셜록은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흐트러진 마이크로프트의 양복 깃을 성의없이 툭툭 매만진 후에 뒤쪽에 놓여있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런 셜록을 바라보던 마이크로프트가 물었다.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군?"

 

 마이크로프트는 침대 머리맡 기둥에 우산을 기대어놓고 서류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넥타이를 두 손으로 단정하게 고쳐매며 말했다.
 제의라도 치르듯 넥타이를 정성들여 매는 마이크로프트의 손놀림을 놓치지 않고 지켜본 셜록은 그가 넥타이를 다 매기를 기다렸다가 선언하듯 말했다.

 

 "바스커빌로 가야겠어."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을 이채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잠시 셜록을 관찰하던 그가 말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모르겠구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부연 설명을 기다리는 태도였다. 셜록은 다문 입을 떼고 싶지 않은 눈치였지만 바스커빌로 간다면 어차피 사정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직하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사연을 털어놓았다. 존의 플랫을 방문하여 그간의 사정을 대강 털어놓았고, 존과 해후를 나누던 중 존의 체향에 주체할 수 없이 강한 식욕을 느끼고 도망쳐 나왔다는 것을 말이다.

 

 "아까는 혹시 내가 존이 아닌 사람의 피에도 같은 정도의 식욕을 느끼는지 테스트해본거야."

 

 셜록의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에 다소의 허세가 섞여있다는 것을 간파한 마이크로프트는 속으로 조그맣게 미소지었다. 두뇌와는 별개로 정신연령이 한없이 어린 그의 동생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분류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조금이라도 남에게 지는 일을 싫어하는 것은 여전했다. 지금의 셜록의 뇌내는 평소의 깔끔하게 정돈된 서랍장같은 것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찾으려는 것이 무언지 알지도 못하면서 필사적으로 그것을 찾느라 온통 헤집어지고 뒤집힌 서랍장과 같은 상태일 것이었다. 게다가 무엇을 찾으려는지 알지 못했던 것의 당연한 급부로, 찾으려던 것은 여전히 찾지 못한 상태로 어지럽혀진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양복 베스트의 호주머니 안의 회중시계를 꺼내 뚜껑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런 후 그는 짐짓 자애로운 표정을 지어 얼굴에 드러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다시피 나는 유럽 연합의 결속을 다지느라 바쁘다만, 동생의 일을 나몰라라 할 수는 없지."

 

*

 

 바스커빌에는 이제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방문하는 셈이다. 그 중 한 번은 의식 불명인 상태였기 때문에 기억나는 건 없었지만.
 이번에는 신원 추적 경보가 울릴 걱정없이 들어가는 것이라 긴장감이 덜했으나, 그와는 다른 종류의 긴장감 때문에 셜록은 표정이 굳어있었다. 최하층 특급 기밀 연구소 안으로 진입한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책임자와 조우했다.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다시 오셨군요."

 

 물론 셜록은 이 남자를 본 기억이 없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남자가 내민 손을 살짝 잡고 악수했다. 셜록은 흰 고무장갑을 낀 채 손을 내밀었던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에 셜록의 시선이 집중된 것을 알아챈 그가 말했다.

 

 "여기선 거의 장갑을 끼고 있기 때문에...미처. 결례를 용서하세요."

 

 남자는 살짝 목례한 후 돌아서서 앞장서며 길을 인도했다.

 

*

 

 혈액 검사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간단한 검사를 한 후 마이크로프트와 홀 박사-가운에 이름표가 달려있지 않았기 대체 이 연구소에서 어떤 위치인지 가늠할 수 없었으나 출입 카드에 적힌 이름을 셜록은 간신히 볼 수 있었다-는 잠시 둘이서 쑥덕거렸다. 그러나 그 둘은 셜록의 인간 이상으로 신장된 청력을 간과한 듯 했다.

 

 "일단 하나하나 시험해보죠."
 "이번에 외국에서 공수해 온 것도 있으니 실험군이 제한적이지는 않을 거요."

 

 셜록을 하얀 실험용 생쥐로 삼아 이런저런 짓을 해보려는 욕망이 발산되는 것이 역력히 느껴지는 것에 셜록의 미간에 약간의 주름이 잡혔다.
 잠시 후 홀 박사는 수십 장의 페트리 접시에 각각 다른 혈액 샘플을 놓고는 셜록의 앞에 진열했다. 마이크로프트가 거들며 말했다.

 

 "자. 냄새를 맡아 보라구."

 

 셜록은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며 말했다.

 

 "지금 이게 가당찮은 일이 아니면 뭐라고 생각해?"
 "일단 냄새부터 맡아보렴."

 

 마이크로프트의 재촉과, 홀 박사의 기대어린 눈길에 부응하고픈 생각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지만 셜록은 제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페트리 접시 쪽으로 코를 살짝 갖다 대었다. 마이크로프트와 홀 박사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몇 십 개에 달하는 접시 위로 종횡무진하던 셜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겨워."

 

 간결한 감상에 홀 박사와 마이크로프트는 조금 실망한 듯 했다. 대체 어떤 맥락에서 실망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셜록은 이제 혈액 감별은 끝났나 싶어 다시 철제 의자에 앉았지만 그 둘이 다시 전의를 다지며 이미 실험대 위에 벌려놓았던 페트리 접시를 싹 쓸어 싱크대에 처넣고 냉장고와 서류가방 안쪽에서 다른 혈액 샘플들을 무더기로 꺼내는 것을 보며 셜록은 벌써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스꽝스럽게만 느껴지는 짓이었지만 이왕 한 거 성심성의를 다해주겠노라고 마음속으로 결심한 셜록은 정말로 열심히 피비린내를 참고 견뎠다.
 약 150개 정도의 샘플을 거쳤을 때, 셜록은 코가 지끈할 정도였으나 아직 감별하지 않은 편의 접시에서 향긋한 느낌이 코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셜록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거."

 

 셜록이 손가락으로 문제의 접시를 가리켰다.
 마이크로프트와 홀 박사의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이며 셜록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홀 박사가 다가와 접시 아래에 써놓은 일련번호를 읽고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보고는 마이크로프트를 불렀다. 화면에 뜬 결과를 읽은 마이크로프트의 시선이 위아래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포착한 셜록은 궁금함을 숨기며 태연하게 물었다.

 

 "누구 피인데 그래?"

 

 고개를 든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을 향해 손짓했다. 직접 와서 확인하라는 뜻이었다. 셜록은 그 말대로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컴퓨터 화면을 확인했다.

 

 '2011.00.00 존 해미쉬 왓슨'

 "?!"

 

 셜록은 입을 뻐끔거릴 뻔한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커진 눈으로 경악했다는 표시를 했다.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네가 아는 그 존 왓슨이 맞아."

 

 셜록이 소리쳤다.

 

 "혈액 샘플은 대체 언제 어디서 빼돌린 거야?"

 

 엉뚱한 부분에서 화를 내는 셜록을 마이크로프트는 가볍게 무시해주기로 했다.

 

*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연구소를 나온 셜록과 마이크로프트는 달도 기운 늦은 밤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바스커빌의 작은 숙소에서 머무는 편을 택했다.
 각설탕은 이미 뜨거운 커피의 온도 때문에 녹은 지 오래일 터인데 티스푼으로 커피를 휘휘 젓는 행동을 반복하는 셜록을 보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무얼 그리 고민하는 거니."

 

 셜록은 눈동자를 잠깐 마이크로프트 쪽으로 굴렸다가 다시 찻잔 안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투명한 갈색 액체가 조용히 소용돌이를 그리고 있다. 셜록의 대답은 없었으나 마이크로프트는 계속해서 말했다.

 

 "존 때문이지?"

 

 찻잔에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있던 셜록의 눈빛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앵그르의 그림 안의 여인들처럼 긴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앉아있던 마이크로프트가 은빛 담비처럼 우아하고 유연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켜 곧게 섰다. 셜록의 옆으로 사뿐 하는 발걸음으로 다가간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어깨에 상냥하게 손을 얹었다. 셜록은 그다지 뿌리칠 의지없이 그의 형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살짝 셜록을 토닥이며 나직하게 말했다.

 

 "오, 셜록……."

 

 그는 탄식하듯 말꼬리를 흐렸다. 곧이어 다물었던 입을 다시 연 그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런저런 일에 너무 구애될 것 없단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귓가에 살짝 고개를 기울여 친절하게 속삭여주었다.

 

 "먹고 싶으면 먹으렴."

 

 셜록은 고개를 돌려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혀 위화감이 없는 상냥함, 그리고 심지어 자애와 일종의 기품마저 느껴지는 마이크로프트의 정교한 가면을 셜록은 서리처럼 차가운 눈초리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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