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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홈왓/그라나다크로스오버/미드나잇인파리AU

 

 

 혹시나 모리어티의 잔당이 그를 납치하지나 않았을지, 마이크로프트가 뒤로 손을 써 존을 빼돌린 것이나 아닐지, 그토록 마음을 졸였던 것이 무색하게도 존은 다음날 아침에 멀쩡한 모습으로 플랫에 돌아와있었다. 그 사이에 화가 풀리기라도 한 것인지 존은 어젯밤의 일에 대해서 딱히 언급하지 않았다. 셜록 또한 존의 화를 돋군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 일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존을 또다시 화나게 하고는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이성적인 사고가 도출한 행동방침과는 반대로 셜록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대체 존이 지난밤에 어딜 갔다온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셜록의 입을 더욱 근질근질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히 어젯밤에 막무가내로 나가서 겪었던 고초라던가 셜록의 말버릇에 대해 한마디쯤 해야 마땅할 존이 그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가 풀렸다면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존이 셜록에 대한 화를 그렇게 금방 풀리가 없다는 거였다!
 게다가 존은 대체 어제 무엇을 하고 왔는지 셜록에게 말 한 마디 붙이지 않고 하루종일 곰곰히 생각에 빠져있었다. 추론의 달인인 셜록으로서도 존이 졸곧 뒤지고 있던 1800년대 후반의 역사책과 타임머신에 대한 책의 내용이 어떤 방식으로 연관이 되는 것인지 도무지 그 관련성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셜록은 오후가 되어서야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존."

 존은 평소대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응? 하고 반문하며 셜록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무언가를 감추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의 순진한 눈망울에 셜록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존에게 어젯밤의 일에 대해 추궁하듯 캐묻는 것이 당키나 한 일인지 자문하였으나 더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궁금증은 셜록으로 하여금 입을 열도록 만들었다.


 

 "어제 일 말인데,"

 

 셜록이 막 질문을 하려는데 존이 마침 잘 되었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그의 말을 막았다.


 

 "안 그래도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믿어주지 않을 것같아서 말을 꺼내기가 좀 그렇더라고."

 

 대화의 방향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셜록이 입을 뻐끔거리다가 다물었다. 일단 존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싶었던 것이다.

 

 "셜록,"


 먼저 말을 꺼내놓고서도 한참을 망설이던 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타임 루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셜록의 얼굴에 어린 불신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존이 굴복하는 대신 털어놓은 어제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한 셜록은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굳어진 셜록의 얼굴을 살피며 존이 더듬더듬 말했다.


 

 "네 생각에도 내가 미친 것같아?"

 

 셜록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그러나 존의 말을 막 부인하려는 찰나 어제 마이크로프트가 전화상으로 남긴 말이 떠올랐다.


 

 '돌아오면 존이 너와 더이상 플랫메이트를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할 지도 모른단다.'
 
 간신히 그런 사태만은 막았건만 여기서 또다시 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함으로써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셜록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가차없는 면박을 간신히 삼키고 비교적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게...아닐까?"

 

 존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야. 어제 플랫을 나가서 먹고 마신 건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이랑 냉육을 끼운 크로아상 샌드위치하고 양배추 수프 뿐이라고...내가 돌아왔을 때 넌 이미 다 알아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기껏해야 존이 갈 만한 곳은 모텔이나 펍일뿐이라고 생각했던 셜록은 존이 플랫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존이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파악하고는 이 근처에서는 그런 음식을 대접하는 식당이 없을 텐데, 라고 속으로 약간 놀랐던 것이다.
 어젯밤의 존은 결코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아주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전제-존이 꺼낸 이야기의 현실성을 고려했을때 그 전제가 무척이나 믿기 힘들기는 했지만, 셜록은 자신이 눈으로 확인한 바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하에서 생각의 과정을 진행시키던 셜록은 확인차 다시 한 번 존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가 만난 자가-"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이었어. 존이란 남자는 미들네임까지 나랑 똑같더라고. 생긴 건 나랑 그렇게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지만 말이야."

 

 골똘하게 생각에 몰두하는 셜록에게 존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혹시 그 사람들이 1898년에 실존했던 사람들 아닐까? 왓슨이란 성은 흔하디 흔하고, 홈즈라는 성은 왓슨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과거에도 있었던 성씨일 거 아냐."

 

 셜록은 존의 조심스런 가정을 단번에 일축했다.


 

 "성이야 그렇다 쳐도 이름까지 똑같은 사람이 있었으리라고는 영 믿기가 힘드네. 자네 미들네임인 해미쉬까지야 그렇다 쳐도, 셜록이란 이름은 흔하지 않기로 유명하단 말이네. 게다가 자네 말에 따르면 셜록 홈즈라는 자는 탐정이었고 존 왓슨이라는 자는 탐정의 조수이자 전직 군의관인 의사였다면서? 성, 이름, 직업까지 일치하는 과거의 인물이라니..."

 

 아무리 이런저런 가정과 추측을 반복해보아도 존의 말은 그가 겪은 타임 루프가 진짜여야 성립하는 것이었고 셜록은 존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쉽사리 믿어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남는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직접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타임루프라는 개념도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인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생동안 한 번 겪는 것도 이상한 타임 루프를 또다시 경험할 수 있을 가능성은 요원한 것이었다.

 

 설명하는 존도 설명을 듣는 셜록도 완전히 지쳐서 플랫의 소파에 나란히 나가떨어진 지 오래였다. 중간에 존이 타온 홍차가 담긴 찻주전자도 차갑게 식어 더이상 김을 올리지 않았다.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문득 벽걸이 시계를 바라본 존이 중얼거렸다.


 "어제 딱 이 시간에 플랫을 나갔었는데."

 

 시계바늘은 열두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셜록은 존의 말을 듣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대꾸가 없었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존은 혼잣말을 계속했다.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내가 잠시 울화에 정신이 홰까닥 돌아서 환상을 보았을지도 모르지."

 

 존이 자조섞인 말을 맺은지 몇 초도 되지 않아 셜록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며칠째 다림질따윈 하지 않은 구겨진 가운을 걸치고 소파에 눕다시피 기대어 앉아있던 셜록이 갑자기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운을 벗어던지고 급하게 옷을 챙겨입는 셜록을 의아한 듯 올려다보며 존이 물었다.

 

 "어디 가?"

 

 어느새 자켓과 코트를 걸치고 목도리를 단단히 둘러맨 셜록이 말했다.

 

 "가볼 곳이 있어. 물론 자네도 같이 가는 걸세."

 

*

 셜록이 갑자기 왜 바깥으로 나가려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의 성화에 못이겨 점퍼를 챙겨입은 존은 성큼성큼 앞서나가는 셜록의 뒤를 따라붙으며 물었다.

 

 "갑자기 오밤중에 어딜 가겠다는 거야?"

 

 셜록이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어 끼고 존에게도 한 켤레를 던지며 소리쳤다.

 

 "우린 지금 실험을 하러 가는 거라네!"

 

 영문을 알 수 없는 셜록의 말에 존이 무슨 소리야? 하고 되물으려는데 존이 미처 입을 열기 전에 셜록이 먼저 속사포로 말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같은 실험을 반복했을 때 해당 결과가 오차범위 내로 동일하게 나오게 하려면 실험 조건을 컨트롤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지. 통제변인이 어제와 같다는 가정 하에 조작변인이라고 보여지는 시간과 장소를 동일하게 조절한다면 어제와 같은 결과가 다시 나올 거라고 보여지는군."

 

 그러면 자네가 어제 제정신이었는지 아닌지도 밝혀지겠지, 하고 농담기를 섞어 중얼거리는 셜록을 째려보며 존이 대답했다.

 

 "문제는 그때 내가 서 있던 장소가 어딘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거야. 무작정 걷는다고 해서 수확이 있을지-"
 "뭔가 생각나는 건 없나? 뭐든 좋으니까 말해보게."

 

 셜록의 물음에 존이 하던 말을 멈추고 어제의 기억을 찬찬히 더듬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걷고 있었지. 신호등을 건너려고 기다리지는 않았어. 계속 이쪽으로 걸었던 것 같아. 그리고...아 그렇지, 종이 울렸어!"

 

 존의 말에 따라 장소 범위를 대폭 축소시킨 셜록이 계속해서 물었다.

 

 "빅 벤 말인가?"
 "그래. 이렇게 뒤를 돌아서 보니까 빅 벤이 보였어."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자신이 왼쪽으로 돌아보았는지 오른쪽으로 돌아보았는지를 떠올리던 존이 제자리에서 앞뒤좌우로 왔다갔다를 반복하고 셜록이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사이, 문제의 종이 울렸다.
 어제와 같이 맑은 소리로 울리는 종소리. 셜록과 존은 무의식적으로 종탑을 올려다보았다. 바라보면 그 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듯 멍하니 종탑을 올려다보던 그들은 종소리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

 

 길고 낮게 귓가를 간지럽히던 종소리의 여운마저 사라진 후에야 그들의 주위를 바라볼 수 있었던 그들은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2013년의 런던에서는 좀처럼 볼래야 볼 수 없는 고전적이면서도 허름한 듯한 분위기의 저층의 주택가였다. 다시 말하자면 1888년의 풍경이 그들을 맞이한 것이다.
 설마 했던 일이 또 다시 일어나다니 하고 존이 놀라는 동안 셜록도 아무 말 없이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다. 셜록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사이 먼저 정신을 차린 존이 셜록의 코트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제 어떡하지?"

 

 잠시 그답지 않게 당황하는 기색이었던 셜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금세 마이페이스로 돌아와 짙게 장난기가 어린 눈동자를 반짝이며 존에게 대답했다.

 

 "'우리' 집으로 가보는 거야."

 

*

 

 "허드슨 부인!"

 

 베이커 가 221B는 한시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정숙한 런던 시민이라면 지금쯤 잠에 곯아떨어져야 정상이련만 정숙함의 범주에 포함되기에는 글러버린 셜록 홈즈와 그의 친우, 그리고 수시로 셜록 홈즈에게 부대끼다 보니 그에게 필요 이상으로 적응이 되어버린 자애로우신 허드슨 부인 또한 홈즈가 시시때때로 그녀를 불러내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한 마디 불평 없이 홈즈의 부름에 답했다.

 

 "또 왜 그러시우?"

 

 말쑥하게 차려입은 홈즈가 우아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따뜻한 스튜라던가, 샌드위치라던가, 뭐든 좋으니 먹을거리를 좀 가져다 주시지요. 2인분이면 족하리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식사를 요구하는 무례한 하숙인의 요청에 허드슨 부인은 자신의 말이 그의 적절치 못한 행동을 교정하는 것에 전혀 소용이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의례적인 불평을 내뱉었다.

 

 "평소에 왓슨 박사님이 아무리 식사를 하라고 권유해도 통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으시더니 대체 무슨 일이우? 어제부터 계속 야참을 찾으시고."
 "제가 먹을 게 아닙니다. 손님이 곧 올거거든요."
 "내 하숙집에 대체 누굴 부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홈즈가 손님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던 허드슨 부인이 위긴스를 비롯한 베이커가 특공대를 떠올리고는 그에 버금가는 지저분한 사람이 기껏 말끔하게 청소한 베이커 가의 현관문을 더럽힐까 걱정이 되기 시작하여 뭐라 잔소리를 퍼부으려는 찰나 왓슨이 걱정 말라는 듯 허드슨 부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부인. 오늘 방문할 사람은 어제 보셨던 그 사람입니다."

 

 잠시 어제 베이커가를 방문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되짚던 허드슨 부인이 오라, 하고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옷차림이 특이하던 총각 말이군요. 그나저나 그 신사분은 참 선량하게 생기셨던데 방문 시간만큼은 참아주기가 어렵구려. 품행이 영 방정하지가 못한 것 아니우?"


 그 외에도 뭔가 중얼중얼 불평을 늘어놓던 허드슨 부인에게 홈즈가 'Mrs. Hudson!'하고 날카롭게 외침으로써 주의를 환기시켰다. 홈즈의 외침에 알았어요 알았어, 하고 계단을 급히 내려가는 허드슨 부인의 뒷모습을 일별하던 왓슨이 문을 닫고 홈즈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홈즈, 정말 그가 올 거라고 생각하나?"
 "물론."

 

 한 점 의심의 기색 없이 단언하는 홈즈에게 왓슨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믿기 힘든 그의 이야기를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가 선뜻 믿어주는 것이 나에겐 더 놀랍군."
 "글쎄, 사실을 따라가면 진실이 결국엔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지. 그 진실이 아무리 말이 되지 않아보여도 진실은 진실이라네. 그리고 난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말이네."

 

 그렇게 말하던 홈즈는 창가를 흘깃 바라보았다. 의미모를 미소를 짓던 홈즈가 의자에서 일어서자 왓슨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왓슨을 향해 몸을 돌린 홈즈가 손을 뻗어 약간 비뚜름하게 꺾인 왓슨의 타이를 바로잡아주자 왓슨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왜 그래?"
 "곧 손님이 올 거라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듯 아랫층에서 초인종이 성급하게 두어번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왓슨은 또다시 홈즈의 말이 들어맞았다는 것에 놀라 세상에, 하고 중얼거렸고 홈즈는 곧이어 들이닥칠 손님들을 기대하며 입가에 그린 미소를 더욱 진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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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홈왓]Midnight in London 1  (0) 2013.12.11
Posted by 에스MK-2 :

셜록존/홈왓/그라나다크로스오버/미드나잇인파리AU

 

 

 "못되처먹은 자식!"

 

 존은 플랫 계단을 쿠당탕거리며 내려와서 들으란 듯이 현관문을 쾅 하고 닫고 나서야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뱉을 수 있었다. 닫힌 문 뒤로 허드슨 부인이 짜증을 냈지만 존은 그에 사과를 할 겨를조차 없었다. 대신 그는 거칠게 발을 놀려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로 앞으로 걸어가면서 씹어뱉듯이 욕을 했다.

 

 "개자식같으니."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할 당사자 앞에서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은 존의 마지막 남은 자제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하지만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채로 플랫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보니 그러한 쓸데없는 자제심따윈 진작 버리고 녀석에게 쏘아붙여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등 뒤에서 겨울바람이 훅 하고 불어왔다. 존은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워낙에 추운 날씨였던지라 얇은 재킷 안으로 찬바람이 고스란히 파고들어왔고 존은 어깨를 떨며 좀더 두꺼운 점퍼를 챙겨입고 밖으로 뛰쳐나왔어야 했는데 라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에게 플랫에서 뛰쳐나올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졌더라도 분노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그의 선택이 지금의 선택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온화하기로 정평이 난 존 왓슨이 무엇 때문에 그리도 화가 나서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로 오밤중에 플랫에서 요란을 떨며 나와버렸단 말인가?
 우습게도 불화의 발단은 존의 블로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존이 연재하는 사설 탐정의 수사일지의 제목 때문이었다.
 존의 블로그가 잘나가기 전부터 셜록은 존의 제목짓기 센스를 영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처음에 존은 셜록이 자신이 정한 제목에 간혹 트집을 잡더라도-그 트집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더라도-별로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셜록은-굳이 분류하자면 극도로 하드보일드한 글을 추종하는 부류였고, 그가 쓰는 글 또한 그랬다. 243가지 담뱃재에 대한 길고도 재미없는 분석을 포스팅하면서 왜 사람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찾는 대신 존의 흥미진진한 사건 기록 포스트에 열광하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구조를 지닌 셜록이었으므로, 존은 셜록의 트집을 투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마무리지은 사건인 '현대판 피핑 톰Modern peeping Tom'이라는 관음증 환자에 대한 포스팅 제목에 셜록이 가한 신랄한 비평-을 가장한 욕-에 참고 참아오던 존의 인내심도 바닥나고 말았다.


 "현대판 피핑 톰? 선정적이군 그래. 아주 선정적이야. 자넨 대중성을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저급한 대중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저변에 깔린 제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아 자네의 테이스트 수준이 짐작이 가는군 그래."

 

 아무리 잘 봐주어도 건설적인 비판이라고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의 말에 존이 뭐라고 날카롭게 대꾸를 했고 셜록은 또 셜록답게 따박따박 대꾸를 했다. 그렇게 격화된 말싸움은 결국 존의 가출을 촉발했던 것이다.
 다시 떠올려보아도 참 서글픈 가출의 사유였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렇게 추운 날에, 라고 존은 생각하면서 이 밤에 어딜 가야 춥지 않게 밤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스탬포드는 학회때문에 미국으로 출장을 갔기 때문에 그에게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한 달 전에 마지막 여자친구였던 재니스와 헤어졌기 때문에 그녀의 집에 들를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모텔에서 하룻밤을 지새는 수밖에 없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존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자정이 가까워올수록 윗니와 아랫니가 다각다각 소리가 나도록 추워지는 날씨에 선 채로 얼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걸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근처에 있는 적당한 가격대의 비교적 청결한 모텔을 머릿속으로 따져보던 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군데를 낙점하였고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재어보던 존은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정신이 들어 그 자리에 멈춰서서 고개를 들었다. 빅 벤이 자정을 알리는 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청명하게 울려퍼지는 청명한 열두번의 종소리를 들으며 넋을 놓고 있던 존은 주변의 공기가 한층 싸늘해지는 느낌이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떨구었다.

 

 "?"

 

 존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 아까 자신에 앞에 펼쳐졌던 광경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박깜박거리던 존은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그에게 저편 담벼락에 기대어 주저앉아있던 시뻘건 얼굴의 주정뱅이가 꼬인 발음으로 소리쳤다.

 

 "술 퍼마시고 길거리에서 나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나 들어가!"

 

 술에 떡이 되어서 걷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존에게 생소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지금 존에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를 멈춘 그는 다급하게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대체 여기가 어딥니까?"
 
 

*

 

 "이럴 수가..."

 

 존은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술 취한 남자에게서 끈질기게 말을 붙인 끝에 자신이 있는 장소가 런던 한복판이며, 지금은 1888년이라는 것을 알아낸 존은 남자가 아닌 자신이야말로 술에 떡이 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자신은 플랫에서 나와서 한동안 목적지 없이 걸어다닌 것뿐인데 순식간에 백년도 넘는 시간을 거슬러왔다니! 셜록이 들으면 자신을 센스없는 글쟁이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정신나간 몽유병 환자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감았다 떠 봐도, 자신의 팔을 세게 꼬집어보아도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평소같았으면 멀리 보일 법한 고층건물은 드물었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높아봐야 다섯층. 자신이 있는 곳은 서너층의 가정주택이 즐비한 곳. 그리고 그 주택의 양식은 가끔 텔레비전에서 시대극을 상영할 때 보았던 건물 모양새와 무척이나 유사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걷는 동안 행여나 드라마 세트장에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되는 의심까지 해보며 한참을 걸어보았지만 존의 의구심을 풀어줄 증거는 보이지 않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무리 걸어도 달라지지 않는 풍경에 낙담한 존은 힘없이 푸념을 뱉어내며 그나마 덜 더러워 보이는 돌바닥에 조심스럽게 주저앉았다. 하도 걸었더니 다리까지 아파온다. 한여름밤의 꿈이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한겨울에 도저히 설명할 수조차 없는 일을 겪자니 놀라움은 잠시였다. 존은 춥고 배고프고 졸렸다.
 거지나 다름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존이 땅이 꺼져라 푹푹 한숨을 내쉬던 중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존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땅울림이 점차 가까워오는 것에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껴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비켜요!"

 

 마부석에 앉은 남자가 새된 소리로 외쳤고, 존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에 치이는 사태를 가까스로 모면할 수 있었다. 말 두 마리가 끄는 소형 마차가 무서운 속도로 그를 지나쳐 좁은 골목길로 자취를 감추고 멀리서 다른 마차가 뒤이어 이 길로 향하는 소리가 들렸다. 존이 아까와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 길 한옆으로 비켜서 있는데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두 번째로 도착한 마차는 속도를 내는 대신 점차 속도를 줄였다.
 존이 우물쭈물 서있는 사이 마차의 창문이 내려가더니 수염을 멋지게 기른 푸근한 인상의 남자가 고개를 내밀어 존에게 말을 붙였다.

 

 "이보시오. 실례하오만 좀전에 여기를 지나간 마차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보셨소? 내 사례하리다."

 

 고풍스런 근대 영어로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남자에게 어찌 대답해야 할지 당황한 존이었으나 에라 모르겠다 하고 대답을 해 주었다.

 

 "저쪽 골목길로 들어가던데요."

 

 남자는 고맙소, 하고 존에게 손을 내밀어 동전 몇 개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든 존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이 화폐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물건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경매에 붙이면 얼마나 나갈지 생각하느라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그 동전을 수집가에게 넘기던 박물관에 기증하려고 하건 간에 일단 망할 1898년의 영국에서 2013년의 영국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자신에 손에 들린 유물에 대한 흥미가 급감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존에게 앞서 온 마차의 행방을 물었던 남자는 마차 안에 들어앉은 다른 남자에게 애석한 어투로 말했다.

 

 "자네의 말대로 결국 놓치고 말았네. 계속 따라가 보는게 좋다고 생각하나?"
 "아니. 그만두세. 저들에게는 우리가 그들의 행방을 놓쳤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편이 우리에게 더욱 도움이 될거야. 또한 저자가 저쪽 골목으로 들어갔다면 우리에게 일은 더욱 쉬워지네. 빈민가에서 소형일지라도 고급인 마차가 눈에 띄지 않을 리없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닌 주정뱅이라도 기억할걸. 설사 기억하지 못한다하면 마차의 소재를 알 수 있는 범위는 더욱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되네. 저런 마차가 아무렇지 않게 머무를 수 있는 장소는 얼마 없으니까. 말도 두 마리밖에 없었으니 우리가 예상한 범위의 지역을 넘어선다고 하면 분명 말을 쉬게 하던가 말을 교체하던가 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니 그에 대한 조사를 하면 그자를 놓치지 않을 걸세."

 

 냉정한 분석에 이어 처음에 불안한 기색이었던 남자가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감탄하는 것이 들렸다.

 

 "굉장하군, 홈즈!"

 

 이어진 남자의 입에서 나온 '홈즈'라는 말에 깜짝 놀란 존이 입을 열었다.

 

 "홈즈라고요?"

 

 그제야 남자는 자신이 창문을 미처 닫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처한 기색으로 창가로 얼굴을 내민 그는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갖다대며 말했다.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주게. 지금 홈즈가 여기 있는 건 비밀이니까."

 

 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에 만족한 남자는 존에게 조금 더 친밀한 어투로 말했다.

 

 "세상에 홈즈의 명성이 이렇게나 퍼질 줄은 몰랐군. 자네도 셜록 홈즈를 안단 말인가?"

 

 존이 마차 안쪽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며 말했다.

 

 "셜록 홈즈라고요? 당연히 알죠. 그런데-"

 

 존의 말을 미처 다 듣기도 전에 남자는 흥분에 찬 기색으로 말했다.

 

 "거 보게 홈즈. 이게 바로 '대중적'인 글의 효과라네. 이제 런던 시민들 가운데 자네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을걸. 다시 말하는 바이지만 이건 자네가 그토록 혐오하는 '대중성'을 갖춘 글이 발휘할 수 있는 효과의 일환이지."

 

 안의 남자가 툴툴거리듯이 말했다.

 

 "그래. 너무도 대중적인 탓에 범죄자들도 자네의 글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 새로운 범죄 수법을 개발하겠지. 하지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것은 그게 아니야. 자네는 대중적인 글을 쓰겠답시고 철저히 사실적인 증거에 입각한 명료한 사건 분석의 과정을 로맨스라던가 상속 문제라던가 하는 감성적이고 드라마틱한-소위 인간적인 요소로 오염시켜버린단 말이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지금 존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근데 제가 아는 셜록 홈즈는 말이죠! 당신 옆에 앉아있는 남자보다 스무살은 어리고요! 머리도 그렇게 뒤로 넘기지 않았고! 오히려 곱슬곱슬한데!"

 

 한참을 줄줄줄 자신이 아는 셜록 홈즈의 신상을 읊어대던 존은 갑자기 으아악! 하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절규했다. 존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남자가 깜짝 놀라 물었다.

 

 "자네 괜찮은가?"
 "아니요! 전혀!"

 

 머리를 여전히 부여잡은 채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완전한 패닉 상태에 빠진 그를 마차 안에서 차분히 지켜보던 셜록 홈즈가 입꼬리를 쓱 올리며 말했다.

 

 "아주 흥미롭군."

 

 뭐, 뭐가 말인가? 하고 반문하는 남자에게 홈즈가 대답 대신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왓슨, 일단 우리 하숙집으로 저 남자를 데려가 따뜻한 것을 좀 먹여야 할 것 같네만, 어떻게 생각하나?"

 

*

 

 한편 존을 괴롭히다가 반강제로 플랫에서 쫓아낸 후의 셜록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을까.

 

 "...마이크로프트."

 

 마이크로프트에게 전화를 건 셜록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철야 서류 작업으로 지새던 밤중에 난데없이 하나뿐인 동생의 전화를 받은 마이크로프트는 무척 기뻤으나 목소리가 들떠오르는 것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무심하게 대꾸했다.


 "왜 그러니 나의 동생아?"

 

 마이크로프트 딴에는 점잖으면서도 닭살돋지 않는 수준에서의 애칭을 부른 것인데 셜록은 그에 대해서는 별반 신경쓰지 않고 여전히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이 있어."

 

 셜록의 말에 마이크로프트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대답했다.

 

 "뭘 알고 싶은데?"

 

 마이크로프트는 통 자기를 피하려고만 하는 셜록이 먼저 전화를 걸어준데다가 먼저 무언가를 부탁한 것 때문에 매우 기뻐하고 있었으나 역시 무신경한 셜록은 형의 기쁨따윈 알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바닥을 기는 듯한 힘없는 목소리로 셜록이 말했다.

 

 "...존이 없어졌어. 존 좀 찾아줘..."

 

 뚝.
 전화가 끊어졌다. 셜록은 끄으으..., 하고 평소의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참한 개같은 신음을 잇새로 흘리며 구겨진 가운을 걸친 채로 소파 안으로 침잠해들어갔다.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왔다. 아까완 달리 냉랭한 목소리로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존이 CCTV의 사각을 파악한 것같구나."

 

 셜록이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로 항의했다.

 

 "말도 안돼. 건물 안처럼 어쩔 수 없이 사각이 생기는 좁은 공간에서라면 모를까, 마이크로프트가 안배한 카메라 각도 상으로는 사각이 생길 리가 없을텐데?"

 

 마이크로프트가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것같구나."

 

 사무적인 어조였으나 그 말에는 동요가 내포되어있음을 셜록은 짐작했다. 휴 하고 긴 한숨을 내쉬는데 마이크로프트가 물었다.

 

 "어쩌다가 싸운 거야?"
 "왜 알면서 물어봐. 내가 존의 행방을 물어본 다음에 이미 조사를 마쳤을 것아냐."

 

 마이크로프트는 그건 그렇지만, 하고 말하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기다려볼 수밖에 없겠구나."

 

 돌아오면 존이 너와 더이상 플랫메이트를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할 지도 모르니까 재주껏 잘 달래보도록 하렴, 하고 약간의 원독이 섞인 말을 내뱉으며 마이크로프트는 전화를 끊었다. 셜록은 늙고 병든 사냥개처럼 끄응...하는 신음을 다시 내뱉으며 소파 위로 다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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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