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존."

 

 부정할 수 없이, 그건 셜록의 목소리였다.
 존은 자신의 청신경을 타고 가서 뇌가 내린 인식판단을 믿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흔한 표현이지만,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존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창밖의 셜록의 목소리가 말했다.

 

 "거기 있는 거 알아."

 

 셜록의 목소리는 지극히 담담했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존은 그 목소리에 마치 놀림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창문을 열어, 존."

 

 바깥의 목소리가 말했다. 존은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창가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 존은 팔을 천천히 뻗어 닫힌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젖혔다.
 달을 등진 남자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
 '그'가 부재했던 일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는 전혀 변화없는 모습으로 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걸친 코트자락은 바깥의 찬바람에 날려 펄럭인다. 여미지 않은 코트 사이로 즐겨입던 와이셔츠가 보인다. 어김없이 풀어내린 두세 개의 단추를 지난 존의 시선은 그의 얼굴로 향했다.
 존이 입을 잠깐 벌렸다가 다시 다물고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셜록."

 

 그 한 마디를 어렵게 뱉어낸 존은 차마 셜록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 나야."

 

 드물게 보이는 다정한 눈길로 존을 바라본 그는 설명조로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나는 유령이 아니야. 자네가 유령을 볼 만한 영감을 지니지도 않았다고 생각하네."

 

 분명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던진 것이 분명한 말에도 존은 웃을 수가 없었다. 존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런 존을 응시하던 셜록이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창문을 열어줘."

 

 멍하니 서 있던 존의 손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딸깍, 하고 창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창이 열렸다. 열린 틈으로 급작스럽게 찬바람이 쏟아져들어왔다가 곧 잔잔해졌다. 어느새 창 가까이에 다가선 존이 셜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셜록의 곱슬기있는 검은 머리카락으로 갖다 댄 떨리는 손끝은 셜록은 거절하지 않았다. 머리칼의 감촉을 확인하는 듯 했던 손은 셜록의 창백한 뺨으로 향했다. 그 손길도 역시 셜록은 거절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찬바람을 쏘여 얼음처럼 차가워진 뺨에 닿은 존의 손은 불에 덴 듯 뜨거운 촉감을 전해주었다. 망설이듯 머뭇거리던 손이 용기를 내어 대담하게 셜록의 뺨을 쓰다듬었다. 잠시 그 손길을 가만히 느끼던 셜록은, 그의 뺨 위에 얹힌 존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손은 뺨처럼 차갑다. 어쩌면 더 차가울지도 모르는 그 손으로, 셜록은 존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빛을 발하는 투명한 눈으로 셜록이 존을 직시했다.

 

 "들여보내 주게(Let me in)."

 

*

 

 "들여보내 주게."

 

 망설이던 존은 들어오라는 듯 말 없이 창문 옆쪽으로 비켜섰다. 셜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들어오라고 말을 해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어."

 

 존이 물었다.

 

 "어째서?"

 

 셜록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제발, 그렇게 해줘(Please, do as I said)."

 

 존은 매우 얼떨떨했다. 지금 갑자기 나타난 셜록의 존재 자체도, 대체 어떻게 받침대 하나 없는 창문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도, 그답지 않게 집착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존의 허락을 요구하는 것에도.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전직 군인답게, 일단 그는 자신의 눈 \앞의 셜록이 허상인지 실제인지를 제쳐놓고, 상황에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셜록이 그토록 대답을 요구하는 데도 나름의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 존은 입을 열었다.

 

 "들어와도 좋아(You can come in)."

 

 존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셜록은 그제야 창턱을 손으로 짚고 다리를 방 안으로 들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셜록은 싸늘한 바람이 들이치는 창문을 닫았다. 본래 따뜻했던 방은 셜록과의 조우로 인해 오래 열어놓은 창 때문에 다소 온기가 식었다. 똑바로 선 셜록은 미지근한 공기를 코로 들이마셨다. 아직 완전히 정착한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 존의 체취가 배어가고 있는 방이다. 무늬 없는 올리브그린색의 벽지. 아주 싸구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급도 아닌 몰개성한 가구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는 셜록에게 존이 말을 걸었다.

 

 "차 한 잔?"
 "오."

 

 셜록은 동의하는 표시의 감탄사를 밋밋한 어조로 말하며 멋대로 의자 하나를 끌어다 앉았다. 존은 전기 포트에 물을 채우고 남은 의자에 앉았다.

 

 "자, 그럼 설명해."

 

 비록 주어가 빠진 문장이긴 했지만 무엇을 설명하라는지 모를 셜록이 아니었다. 그러나 셜록은 지금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어 존의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셜록?"

 

 존이 의아한 표정으로 무언가에 몰두해 멍한 표정의 셜록을 부르자 셜록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설명하자면 길어."

 

 주의를 환기하고 말문을 열긴 했지만 셜록은 자신의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 아니 향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셜록은 코를 조용히 킁킁거렸다. 그래, 이 냄새다. 이 냄새가 코에 환각처럼 맴돌았기 때문에 셜록은 세바스천 모런이 런던을 활보하고 다니던 말던 자신이 죽었다고 알려졌다는 팩트(fact)까지 모조리 무시하고 이성을 내팽개친 채 존의 새로운 플랫으로 냉큼 달려온 것이었다. 그동안 몰래몰래 베이커 가에 들락거렸던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을 셜록은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 셜록을 존의 체취 생각을 자신의 뇌리에서 지우려고 애쓰며 존에게 말했다.

 

 "존."

 

 존이 셜록을 가만히 바라보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안그래도 이쪽으로 짙게 풍겨오는 존의 향긋한-셜록은 자신 스스로가 이런 표현을 생각했다는 것에 대해 더욱 놀랐다-체향 때문에 정신이 사납던 셜록은 이성의 지도편달에 따라 상체를 의자 뒤쪽으로 물리며 말했다.

 

 "건물에서 떨어진 직후, 병원으로 갔지만 이미 회생이 불가능했다고 하더군. 결국 마이크로프트는 궁여지책으로 나를 바스커빌 연구소로 데려갔어. 그리고 내 혈액형과 맞는 밤피르(Vampyr) 유전자를 주입했다는군. 지속적인 수혈로 인해 나는 되살아날 수 있었어."

 "밤피르?...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셜록을 응시하는 존에게 셜록이 확답했다.

 

 "내가 뱀파이어가 되었다는군."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그런 말을 하는 셜록을 과연 믿어주어야 할지 존은 조금 회의감이 들었다. 어버버하던 존은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있잖나, 셜록. 나는 자네가 유령이라고 해도 딱히 놀라지는 않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한 존에게 셜록이 생전 그대로의 말투로 말했다.

 

 "그렇지만 말이야, 이게 사실일세. 자네는 방금 나를 만져보았고, 그 실체의 유무를 확인했잖나. 그리고 좀 전에도 말했듯이, 자네는 유령 등의 영체를 느끼는 영감은 없다네. 이제 그만 내가 실재한다는 걸 믿어줬으면 하는군."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존은 조금이나마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왜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 적어도 나한테만큼은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냐?"

 

 분개한 듯 열을 올려 말하는 존에게 셜록이 말했다.

 

 "그 점은 정말...미안하네."

 

 셜록이 힘겹게 사과의 말을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 자세로 침묵을 지키는 셜록에게 존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중에 다 설명하길 바랄게."

 

*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커피포트 안에 담겨있던 물은 이미 끓어서 따끈해졌다. 난데없이 한밤의 다과회를 연 둘은 조용히 차를 홀짝였다. 존이 셜록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원래 자네가 인간의 범주에 속해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네만, 이제 진짜로 인간이...아니게 된 거군."

 

 셜록이 존을 흘끗 쳐다보고 다시 찻잔으로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질문해도 좋아."

 

 기다렸다는 듯 존이 다다다 질문을 쏟아냈다.

 

 "뱀파이어라면 햇빛을 받으면 타죽는 게 맞는 건가? 아니면, 햇빛 아래에서 자네의 살갗이 반짝이기도 하나? 힘이 세진다던가, 시력이 좋아진다던가 신체적인 파라미터가 향상되나? 무언가 특수한 초능력이 생기기도 하나?"

 

 도대체 하는 질문들이 왜 이렇게 천편일률적이란 말인가? 마이크로프트도 거의 흡사한 질문을 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게다가 각 질문의 순서도 유사했다-셜록이 작게 혀를 찼다. 게다가 살갗이 반짝이지는 않느냐니. 셜록이 한심하다는 눈길로 존을 보며 말했다.

 

 "자네도 그 망할 영화를 본 건가? 고자인 남자주인공과 괴물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 말이야."

 

 셜록의 비난에 존이 움찔하며 말했다.

 

 "그저 심심풀이로 본 것뿐이라고."
 "흠?"

 

 셜록이 조롱조로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건 잠시뿐이었으며 곧이어 셜록은 존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햇빛을 받아도 타죽지 않네. 햇빛 아래에서 피부가 반짝이지도 않아. 근력이 대폭 향상되고 시력 등 오감도 일반인에 비하면 월등히 좋아진 건 맞아. 자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초능력은 생기지 않았다네."
 "그렇군..."

 

 존이 대답을 하며 셜록을 바라보았다. 셜록은 존이 자신을 괴물이나 서커스의 광대를 보는 눈길로 바라보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참고로 아까 바깥에서도 상승된 근력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지."

 

 그래서 창문 바깥에서 그렇게 매달려 있을 수 있었던 거군...하고 납득하는 존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본 셜록은 갑자기 입 안에 군침이 감도는 것을 느끼고 화들짝 놀랐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놀란 기색을 숨기며 찻잔을 입에 갖다 대었다. 그러나 저절로 존의 목덜미로 향하는 시선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존은 자신의 목에 고정된 셜록의 시선 따위는 알아채지도 못 한 듯 했다. 그는 머뭇거리며 어떤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질문이 무엇인지는 당연한 것이었다. 셜록은 존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먼저 대답했다.

 

 "피는 아직까지 안 마셨다네. 딱히 마실 필요성도 없어보여."
 "?!...어떻게?...아니다...됐어."

 

 생각을 간파당한 존의 체념은 빨랐다. 이런 일을 겪은 지 일 년이 넘기는 했지만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존이 다른 질문을 하려고 셜록을 향해 몸을 굽히는데 셜록이 갑자기 시계를 보며 말했다.

 

 "미안한데, 존, 지금 가봐야겠어."
 "뭐?"
 "나중에 다 설명해줄게. 지금은 안 되겠어."

 

 의자를 떨치고 창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에게 존이 황급히 말했다.

 

 "잠깐, 셜록! 어딜 가는 거야?"

 

 셜록이 창가에 다리를 걸치며 말했다.

 

 "연락할게."

 

 그는 바깥으로 훌쩍 뛰었다. 존은 황급히 그가 있었던 창문으로 다가갔다. 존은 주변을 살폈다. 아래쪽으로 뛰어내린 줄 알았건만, 의외로 셜록은 건물 위에 올라가 있었다. 신체능력이 좋아졌다더니 과연 그런 모양이었다. 그는 종잇장처럼 얇은 구름에 살짝 가리운 달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달빛이 그의 실루엣을 묘하게 반사시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존은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다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창문을 닫았다.

 

 "하여튼, 멋있어 보이는 척은 혼자 다 한다니까."

 

 지금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굉장히 겉멋이 들어 보인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고 존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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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