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MES, HANNIBAL and HOLMES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겸 자문 탐정 셜록 홈즈

유명 연쇄 식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

영국 정보부 수장 마이크로프트 홈즈

 

전직 군의관 출신 프로파일러 존 H. 왓슨

FBI 프로파일러 윌 그레이엄

스코틀랜드 야드 경사 그렉 레스트레이드

 

BBC SHERLOCK X NBC HANNIBAL

 

 

http://blog.naver.com/solid_white/150172110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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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셜/마셜/에페보필리아/제인 에어+비밀의 정원 참고

 

 

 퇴역 군의관 존 왓슨이 사용인을 택하는 데에 까다롭기로 소문난-어느 귀족 가문이 그렇지 않겠냐마는-홈즈 가의 간병인으로 별다른 절차 없이 고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저택의 주치의인 마이크 스탬포드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외부인을 들이기를 극도로 꺼리는 저택의 주인의 성향 탓에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일할 마땅한 인사를 찾지 못해 신혼여행을 떠나기 일 주일 전까지 발을 동동 구르던 스탬포드는 마침 부상으로 의가사제대한 의대 동문이자 친구인 존 왓슨을 낚아채다시피 서섹스의 홈즈 저택으로 데려왔고, 다행히도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약간의 마뜩찮아하는 기색을 보이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스탬포드의 대리인으로 존 왓슨을 저택에 들이는 데에 승낙 의사를 표한 것이다.
 존으로서도 다소 성급하게 결정되었다는 점 외에는 나쁘지 않은 전개였다. 군인 연금은 비싼 런던의 물가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막 귀국한지라 변변한 거처도 없었기 때문에 숙식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더욱 안성맞춤의 기회였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 건가?"
 "도련님을 간호하면 돼."
 "도련님?"

 상류사회의 중심부에서 위세를 떨친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지방 유수의 명문가를 꼽는 데에는 단연 한 손에 꼽히는 홈즈 가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특히 가족관계에 대한 사항이 그랬다. 가문마다 한두 명씩은 존재하게 마련인 난봉꾼과 말썽꾼 때문에 오늘은 어느 하녀를 건드려서 사생아를 보았다느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가문의 여식과 야반도주를 하여 앞길을 망쳐놓았다느니 하는 지저분한 소문이 난무해 오히려 어떤 풍문이 진실인지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런저런 가십으로 시끌시끌한 여타 가문들에 비하면 홈즈 가문에 대한 정보는 극히 드물었다. 현 당주의 이름이 마이크로프트 홈즈이며 영국 정부의 미관말직을 차지하고 있고 아직 미혼이라는 점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는 것밖에는. 사교계 풍문이라면 촉각을 곤두세우는 호사가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군인인존 왓슨으로 따지면 그 정도 아는 것으로도 많이 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련님이라니, 홈즈 씨의 아드님인가?"
 "아니, 동생이야. 나이차이가 꽤 나는 남동생이지. 자세한 건 저택에 가면 알 수 있을 걸세."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는 스탬포드를 보며 존은 질문을 억눌렀다. 하긴 홈즈 가문 정도의 신사 집안의 작은도련님이라면 한창 사교계 파티를 전전하며 놀아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굳이 주치의를 상주시키고 주치의가 자리를 잠시 비우는 때까지 간병인을 들여 가며 애지중지한다는 것에는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말 못할 사정의 대부분은 알아 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존 왓슨은 군인 특유의 직감으로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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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마이크로프트/셜마/마이크로프트 오른쪽 합작 프로젝트 제출 원고/약수위

 

 

 금붕어의 꿈이었다.
 느리게 유영하는 금붕어.
 팔랑거리는 금빛 지느러미.
 희끗하게 거스러미가 일어난 몸뚱어리.
 헤엄칠수록 흐들흐들 떨어져나가는 비늘조각.
 현탁액의 응어리처럼 부유하는 파편.
 어항 바닥으로 천천히 천천히 가라앉는 비늘.
 이윽고 그는 힘없는 헤엄을 그치고 하얀 배를 수면에 떠올린다.
 그 순간,
 하얀 손가락이 수조 벽을 퉁퉁퉁 두드린다.
 그 소리에 퍼뜩 잠에서 깨었다.

 두통이 엄습한다. 최근 들어 드문드문 찾아오는 고통은 흔히 묘사하듯 두개골을 쪼갤 듯 강렬하진 않았으나 몹시 성가신 종류의 것이었다.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마이크로프트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감싸고 숨을 내쉬었다. 억지로 물에서 건져올려진 금붕어의 아가미가 팔딱이는 듯한 가파른 호흡을 한 차례. 두통에 이어 찾아오는 미약한 호흡곤란 증상은 공황장애에 뒤따르는 증세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마치 남의 일인듯 무감각하게 떠올려본다.
 발작과도 같은 두통을 겨우 진정시키고 나자 그를 꿈에서 깨워낸 소리가 다시 들렸다. 쿵쿵쿵.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 차례. 이어진 목소리는 착각할래야 착각할 수 없는 이의 것이었다.

 나야.

 문 열어.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었다. 하고자 한다면 못할 말도 없었다.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니.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이렇게 밤늦게 오는 거 실례라는건 잘 알고 있을테지.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셜록 홈즈가, 알아주는 워커홀릭인 마이크로프트마저도 이미 깊이 잠들었을 시간에 그의 사저를 방문한다는 것은 웬만큼 다급하지 않고서야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모두 잘 안다. 또한 마이크로프트는 특히 이번 방문의 저변에 깔린 이유에 대해서만큼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 아니 이미 어제의 일이 되어버린 결혼식 때문이리라.
 닥터 존 왓슨의 결혼식.
 서서히 맑아지는 정신으로 마이크로프트는 확신에 가까운 짐작을 하며 나이트 가운을 걸쳤다. 매사에 정치적인 저울질을 하는 것이 일상화된 마이크로프트로서는 될 수 있으면 타인에게는 최대한 공적인 모습의 자신만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지금 대면할 상대는 복장을 가다듬는다고 해도 한꺼풀 아래의 이면을 간파해낼 수 있는 사람이므로 사소한 요소에 크게 집착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합리화에 가까운 생각으로 느슨한 옷차림으로 나서는 이유를 만들어내었다.
 옷매무새를 추스린 마이크로프트는 인터폰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전송되는 비디오 화면을 바라보았다. 색이 바랜 화면에 가득한 셜록이 렌즈를 통해 그를 마주 바라본다. 그답게 직선적이고 숨김없는 시선이지만 피로한 기색이 은연중에 엿보인다고 생각되는 것은 단순히 영상의 화질이 조악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사형수의 고해 시간처럼 짧고도 긴 시간동안 조용히 화면을 응시하던 마이크로프트는 문을 열기 직전의 마지막 심호흡을 내쉰 후 현관 개폐 버튼을 눌렀다.

 도어벨의 카메라 LED는 그를 응시하는 것처럼 오래도 켜져있었다. 빨갛고 작은 불빛과 눈싸움을 하기를 수 분, 마침내 망설임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처럼 문이 조용히 열렸다.
 열린 문을 통해 저택 안으로 발을 들인 셜록은 복도를 걷다 문득 피식 웃었다. 지나치게 물러진 자신에 대한 조소였다. 확실히 존의 결혼은 그에게 있어 큰 타격을 주었다. 규칙적이고 편안하게 정착한 일상의 틀을 깬다는 측면에서도, 무의식중에 존에게 의존하고 있었던 자신의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진정 귀중한 것의 가치는 그것이 사라졌을 때에야 실감할 수 있다는 다소 진부한 경구가 떠올랐다. 그에 한층 입가에 띤 쓴웃음의 기색을 짙게 하며 셜록은 걸음을 더욱 빨리 했다.
 그는 존 왓슨을 사랑했던 것일까? 지금에 와서는 셜록이 존에게 품고 있던 감정의 정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이 절친한 친구가 결혼하여 그만의 인생을 꾸린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인지 그렇지 않으면 미처 토로할 사이도 없이 종결을 맞은 짝사랑에서 비롯된 슬픔인지...
 확실한 것은 존은 셜록의 인생에 존재해왔던 기간에 비해 그의 인생에서 거대한 비중과 무게를 차지하고 있었고 셜록은 지금 그 굳건한 반석이 사라진 여파로 인해 몹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고 많은 곳 가운데 하필이면 마이크로프트의 집이라니. 갈 곳이 그렇게 없었던가. 심정적으로 괴롭다고 해서 곧장 마이크로프트에게로 향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마치 상처입은 짐승이 조용히 제 보금자리로 회귀하여 몸을 누이고 찢기어 피를 흘리는 환부를 핥아대는 것처럼, 그런 상냥한 위로를 기대하는 것인가. 마이크로프트에게서 그런 행동을 기대해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을 그 자신이 더욱 잘 아는데 말이다. 그는 동생의 심적 고민을 형답게 보듬어준다던가 할 수 있는 위인이 절대 아니었다. 서로 상처가 곪아서 썩어들어간다 할지라도 차라리 부패해 죽고 말지언정 서로 약한 데를 드러내보이고 핥아준다는 건 불가능했다.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사이의 관계는 각자 개인의 특수성때문에 어느 형제보다도 밀접했지만 일반적인 형제 간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역학의 상궤에서는 한참 벗어난 것이었으니까.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셜록은 굳이 마이크로프트에게 올 수밖에 없었다. 집주인의 성미를 반영하듯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메마르고 강퍅한 분위기를 떨치지 못한 복도과 방문들을 지나치며 그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한숨을 쉬는 그의 귓가로 목소리가 내리꽂혔다.


 "담배나 한 대 피우련?"

 마이크로프트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극히 평온한 목소리와 담담한 어조에 적이 안심하며 셜록이 대꾸했다.

 "금연 중이야."

 셜록이 사양하자 그건 이미 집어치운지 꽤 되지 않았니, 라고 말한 마이크로프트는 외려 그 자신이 담배를 끄집어내어 입에 물었다. 잠시 침묵이 깔리는 동안 찰칵 하는 라이터의 발화음이 들렸다. 셜록은 작은 오렌지색 불길이 뱀처럼 쉿쉿거리는 소리를 내며 담배 끝부분을 태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겉담배만 피우는 주제에 꽤 맛있다는 듯이 필터를 빨아대는 것에 위화감을 느낀 셜록이 고개를 갸웃 하다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입을 열었다.

 "약은 먹고 있어?"

 마이크로프트가 담배를 문 채로 웅얼거렸다.

 "무슨 약?"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인걸. 문외한인 내 눈에도 형이 공황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이는데 말이지."

 문외한이라고 자칭하는 그 사람이 일반인의 범주에 분류하기에는 과분한 관찰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또 모르는 일이지만, 하고 마이크로프트는 생각했다. 셜록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챈 셜록의 어조가 신랄해졌다.

 "그놈의 강박증 때문일 수도 있어. 알아들어?"
 "잔소리를 하려고 그 귀하신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행차하신 건 아닐텐데, 셜록."

 입에 문 담배를 내려놓으며 마이크로프트가 짜증이 어린 목소리로 일침을 놓았다. 셜록이 입을 다물었다. 평소처럼 한 마디 했을 뿐인데도 금세 수그러들어 상당히 풀이 죽은 기색의 셜록에게 어린애에게 화풀이를 한 듯한 미약한 죄책감을 느끼며 마이크로프트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정적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셜록의 코트자락에 가득 묻어들어온 밤공기의 찬내가 어느 정도 가셨을 때 즈음, 필터 가까이까지 타들어온 담배를 재떨이에 내려놓으며 마이크로프트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키스해줄까."

 속삭임은 바람에 날아갈 듯이 작고 가벼웠다.

 "예전처럼(Just like the old time's sake)."

 셜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무언의 승낙이라고 여긴 마이크로프트는 천천히 셜록에게 다가가 입술을 겹쳤다. 비슷한 키의 두 형제가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은 어색해보이면서도 어쩐지 일상적이고 당연하다는 듯한 뉘앙스가 묻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메마른 입술이 떨어져나갔다. 관능 따위는 일절 느껴지지 않는 단조로운 키스였지만 그에 오히려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즉시 셜록의 입술이 마이크로프트의 입술을 뒤쫓아갔다. 여전히 다물린 채인 마이크로프트의 입술 표면을 셜록의 혀가 부드럽게 핥았다. 가칠가칠한 입술을 타액으로 적시자 미동도 없던 입술이 살풋 열렸다. 그때까지도 셜록의 두 눈은 마이크로프트의 두 눈을 직시하고 있었다. 푸른 불길처럼 빛나는 두 눈의 광채를 견디지 못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입 안으로 침입한 혀의 노골적이고 색정적인 움직임 때문인지, 마이크로프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다가 천천히 닫혔다.
 나약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소극적인 몸짓에 가학심이 불타오르는지 셜록의 키스가 차츰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적극적으로 마이크로프트의 입 안을 휘젓는 셜록과 이따금 안타까울 정도로 감질나게 그 움직임에 응하는 마이크로프트 간의 주고받음이 계속되었다.
 미묘한 기세 싸움처럼 팽팽하던 흐름에서 어느새 셜록이 우세를 점했다. 셜록은 더 못참겠다는 듯 마이크로프트를 벽쪽으로 세게 밀어붙였다. 조금도 만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단단하게 선 두 사람의 고간이 서로를 애무하는 움직임에 따라 옷자락을 사이에 두고 비벼지며 사뭇 애달픈 쾌감을 자아냈다. 가운의 허리끈을 거칠게 풀어내면서도, 코트를 벗기고 벨트의 버클을 끌르면서도 두 사람의 입맞춤은 멈추지 않았다. 겨우 키스가 멈춘 것은 셜록과 마이크로프트가 그의 침실에 도착하고 난 뒤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셜록이었다. 욕망으로 창백한 뺨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다. 냉정하고 이지적인 눈빛은 수컷의 눈빛으로 돌변해 마이크로프트를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이성을 끌어모아 마이크로프트의 의중을 파악하려 드는 것이 참으로 셜록다운 행동이었다. 그에 마이크로프트가 피식 웃었으나 그도 그다지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오랜만의 전희에 잊고 있었던 열기가 몸을 지배했고 심장이 필요 이상으로 두근거렸다. 빨라진 심장 박동에 다시금 숨소리가 가팔라졌고, 거칠 것없이 치솟아오르는 흥분에 고삐를 채우기 위해 애써 심호흡을 하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현재로써는, 아무 생각도 없어."

 셜록의 눈빛이 의심으로 가득찼다. 언제나 모든 것에 안배를 하기를 좋아하는 마이크로프트에게 무계획적인 행동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더욱 무리였기 때문에 셜록의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뿐이었다.
 그의 혼란에 급제동을 걸기 위함인지, 아니면 엑셀러레이터를 밟는 것인지 마이크로프트가 다시금 입을 맞추어왔다. 반라의 몸이 가까이 다가오자 조금은 낯설고, 서늘하지만 아련한 향수를 불어일으키는 체취도 함께 가까워졌다. 마이크로프트의 몸을 더듬는 셜록의 손이 떨렸다. 추위에 곱은 손처럼 손마디마디가 둔해지는 느낌이었다. 나긋하게 휜 마이크로프트의 등줄기도 바르르 떨렸다. 감각의 극한에 다다른 예민한 쾌감을 미처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상한 위기감이 둘을 덮쳐왔다.
 마이크로프트가 숨을 헐떡였다. 셜록의 손이 그의 엉덩이를 가르고 들어온 탓이었다. 뜨거운지 차가운지도 모를 온도의 손가락이 오랫동안 아무도 들인 적 없는 입구를 파고드는 감각이 지나치게 선연하게 다가왔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자제력을 잃어버릴 것같은 느낌에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의 어깨를 붙잡았다. 생명줄을 부여잡기라도 하듯 매달리는 마이크로프트를 안심시키려는듯 셜록이 쪼듯이 키스했다.
 다정한 키스가 퍼부어지는 가운데 셜록의 것이 마이크로프트의 안으로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셜록의 성기가 쿠퍼액으로 질척하게 젖어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윤활제 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성급하게 삽입한 감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에 마이크로프트에게는 꽤나 커다란 압박감이 느껴졌다. 셜록에게도 그 압박감이 전해지는지 낮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벽이 딱딱한 살덩이에 짓눌리는 불편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의 허리에 다리를 휘감고 그를 끌어당겼다. 셜록이 혀를 차는 소리가 멀리서 울려퍼지는 듯 들려왔다. 하지만 그 어감에 약간의 다급함과 함께 욕망이 어려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이크로프트의 보챔에 응하듯, 천천히 진입하기만 하던 셜록의 것이 서서히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리게 진퇴를 반복하던 그것은 조금씩 속도를 붙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셜록이 피스톤질을 할 때마다 점막이 딸려나가는 느낌에 마이크로프트는 오한이 든 것처럼 몸을 떨었다.
 사지를 불태우는 듯한 쾌감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더욱 갈구하게 된다. 떨리는 입술로 서로를 애타게 찾는다. 멈추지 않는 키스로 가쁜 숨결이지만 질식해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미친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둘은 세상에 둘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몸을 섞는다.

 느리게 유영하는 금붕어.
 팔랑거리는 금빛 지느러미...
 아아, 같은 꿈이다.
 여간해서는 꿈을 꾸는 경우가 드문 마이크로프트로서는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꿈은 중반부까지는 동일한 전개를 이어나갔다.
 희끗하게 거스러미가 일어난 몸뚱어리.
 헤엄칠수록 흐들흐들 떨어져나가는 비늘조각.
 현탁액의 응어리처럼 부유하는 파편.
 어항 바닥으로 천천히 천천히 가라앉는 비늘-까지는 이미 보았던 대로였다.
 이제 금붕어는 눈꺼풀이 없는 검은 동공에 힘을 잃고 희디흰 배를 떠올리게 되리라.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쇠약한 금붕어는 힘겹게 고요한 물살 안에서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커튼자락처럼 부드럽게 물결치는 금빛 지느러미의 움직임을 끝으로-

 다시 한 번 잠에서 퍼뜩 깬다. 눈을 뜨자마자 찬 새벽공기에 잠기운이 깨끗하게 쓸려내려간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준다더니, 하고 속엣말을 중어린다.
 옆을 바라보았다. 새어들어오는 햇빛 아래에서 셜록이 자고 있다. 단정한 눈썹은 고뇌를 잊고 고요히 내리깔린 채로 잠의 무게를 이고 있다. 규칙적으로 들썩이는 가슴어림을 쳐다보며 저도 모르게 내 가련한 동생, 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마이크로프트는 어색하게 손을 내밀어 그를 토닥이며 속삭였다.

 Sleep tight, brother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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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jdsm_jdsm/220122687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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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2ch 스레 번역 어레인지(원 링크: http://vip2ch.tistory.com/1459)

 

 

 이것은 고기능 소시오패스를 자처하던 세계 유일의 자문 탐정 셜록 홈즈가 퇴역 군의관 존 해미쉬 왓슨을 만나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군요." 

 

 저녁 일곱시 반. 타종 시계만큼이나 정확했다. 오늘도 역시, 라고 고개를 주억이던 도노반과 앤더슨이 동시에 레스트레이드를 쳐다보았다. 레스트레이드가 '왜 날 봐?'하는 시선으로 그들을 째려보았으나 둘은 그에 굴하지 않고 '어서 물어봐요!'라는 의미가 듬뿍 담긴 눈빛을 보냈다.
 결국 두 후임의 눈빛 공세를 견디지 못한 레스트레이드가 주섬주섬 코트를 챙겨입는 셜록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셜록, 요즘 매일 그렇게 어딜 가는거야?" 

 

 코트를 반쯤 걸치던 셜록이 동작을 멈추고 레스트레이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평소처럼 매몰차고 차가운 태도로 그건 경감님 알 바 아닌데요, 라고 대꾸할 줄 알았기에 긴장하며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레스트레이드였으나 그의 귀에 들린 대답은 예상 외였다. 

 

 "궁금하신 겁니까?" 

 

 예상과는 딴판으로, 냉정하지만 그렇다고 거부하는 듯한 태도는 아니었기에 용기를 얻은 레스트레이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궁금하다고 그러면 말해줄 건가보지?" 

 

 셜록은 다시 한 번 휴대폰을 보고 시간을 체크했다. 

 

 "5분 정도라면 괜찮겠군요...-그래서 뭐가 궁금하신 거죠?" 

 

 나름대로 허락이라고 할 만한 의사표시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앤더슨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왜 그러는 거야?"
 "뭐가요?"
 "매일같이 일곱시 반만 되면 야드에서 모습을 감추잖아."
 "전에는 자기가 야드 정직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야장천 붙어있었으면서."

 

 도노반이 거들었다. 쏟아지는 질문에 셜록이 한쪽 눈썹을 까딱 하며 말했다. 

 

 "취조라도 당하는 기분인데요." 

 

 원래부터 셜록을 자칭 고기능 소시오패스가 아닌 잠재 사이코패스로 여겨왔던 도노반은 갑작스런 셜록의 행동 반경의 변화가 범죄 행위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실상은 정말로 취조를 하고 싶었으나 애써 그런 기색을 감추며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의 웃음을 본 셜록이 다 안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레스트레이드가 도노반을 제치고 물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구. 사건, 그것도 기묘하고 흥미로운 사건이라면 그렇게 좋다고 쫓아다니던 너였잖아. 그런데 요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건도 고사하고 일곱시 반만 되면 종달새라도 되는 것처럼 정시퇴근이잖나." 

 

 설마 애인이라도 생긴건가? 라고 묻자 셜록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 친구같은 건 안 사귑니다." 

 

 도노반과 앤더슨의 시선이 무언가 다른 것을 시사하는 강렬한 의심으로 들어차자 셜록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남자 친구도 안 사귀긴 매한가지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죠."
 "그럼 뭐냐고? 멀쩡하고 훤칠한 30대 성인 남성이 매일 저녁마다 모습을 감추는데 애인이 아니면 뭐가 또 있겠냔 말이야." 

 

 레스트레이드의 거듭된 물음에 낮게 한숨을 쉰 셜록이 입을 열었다. 

 

 "정말로 별 건 아니지만, 그렇게 궁금하시다면야." 

 

 세 명의 귀가 쫑긋거렸다. 

 

 "플랫메이트를 구하고 있거든요." 

 

 폭탄 선언에 세 사람 보두 화들짝 놀랐다.
 아마 저 말을 한 사람이 셜록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말은 그저 일상적인 대화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셜록이? 사교성이라고는 개미 눈물만큼도 없는 까칠한 셜록이 플랫메이트를 구한다고? 확실히 그건 폭탄 선언이었다.
 두 사람은 어벙벙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으며, 레스트레이드는 순간적으로 셜록이라면 미래의 플랫메이트 심층면접을 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 가정을 입에 올리려 했으나 시계를 흘끗 본 셜록은 그가 말을 꺼낼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름은 존 왓슨. 미들네임은 알파벳 H로 시작하는데 그를 소개시켜 준다는 스탬포드도 모르고 있더군요. 후보로는 헨리, 험프리, 히긴스 등이 유력하지만 출생증명서를 떼어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다 어깨 부상으로 의가사 제대했고요. 하지만 특이하게도 어깨의 부상은 완벽하게 회복되었으나 대신 다리를 저는데, 그건 뭐 심리적인 트라우마라고 쉽게 추론할 수 있지요. 현재는 퇴역 군인 숙소에서 혼자 머물고 있고 누나가 한 명 있습니다. 누나 쪽에서는 존 왓슨을 아끼지만 존 왓슨은 그 누나라는 사람의 알코올 중독때문에 심리적 거리감이 있으니 플랫을 쉐어하기까지는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앤더슨과 도노반의 벌린 입은 더욱 크게 벌어졌고 막 입을 열려던 레스트레이드의 입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동일했다.
 스.토.커.
 세 사람의 경악을 무시하고 셜록이 말을 이었다.
 

 

 "최근에는 스탬포드의 권유로 성 바로톨로뮤 병원에서 저녁 9시에 끝나는 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양이더군요. 존의 숙소와 바츠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15분에서 20분. 지금 야드에서 나가야 제시간에 맞춰갈 수 있습니다." 

 

 이제 가도 되나요? 라고 묻는 셜록의 어깨를 황급히 붙잡고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자, 잠깐. 셜록 너 설마 장래의 플랫메이트가 될 후보들을 전부 스토킹하고 다니기라도 하는 거야?" 

 

 기분나쁘지 않게 경위의 손을 어깨에서 치우며 셜록이 반박했다. 

 

 "스토킹이라뇨. 아무리 경위님이라도 말이 좀 심하시군요." 

 

 셜록의-뻔뻔스럽게 보일 정도로-단호한 태도에 도노반은 '그렇지만 너 아까 출생증명서를 떼어본다고까지 했었잖아! 자기가 한 말은 잊은 거냐!' 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도노반이 말을 고르는 사이 셜록이 말했다. 

 

 "왜 저를 스토커라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 정도의 정보는 딱 보면 나옵니다. 나머지는 우연히 알게 되었을 뿐이고요." 

 

 퍽도 우연이겠다, 하고 생각하며 레스트레이드는 혀를 찼다. 아무리 잘 봐줘도 이건 스토킹이다. 하는 말부터가 전형적인 스토커들의 변명과 같았다. 일단 무엇보다도 그렇게나 자세한 정보를 우연히 알아냈다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설마 우연히 그가 버린 쓰레기 봉투를 주워서 우연히 그 안에 있는 찢어진 메모나 서류를 찾은 후 우연히 셀로판 테이프로 붙여서 우연히 알았다는 전개는 아니겠지...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리고 후보는 그 하나뿐이예요. 많은 후보들 가운데에서 엄정한 기준을 거쳐 선발된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딱 보자마자 영 아니었거든요." 

 

 그 하고 많은 후보들 가운데 괴팍한 널 참아줄 정도로 착한 사람이 그 하나였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모두를 스쳐지나갔다.
 줄곧 가만히 있던 앤더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제시간에 맞춰간다는 건 무슨 소리야?" 

 

 간과하고 있던 점이 모두의 뇌리에 떠올랐다. 셜록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어투로 말했다. 

 

 "아, 그거요. 존의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마중이랄까, 플랫메이트가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해보려고요." 

 

 그러더니 셜록이 주섬주섬 코트 주머니에 종이쪽지를 하나 꺼냈다. 

 

 "그건 또 뭐야?"
 "존한테 가서 할 말을 적어봤는데 어떤지 한 번 들어보시고 말씀해주세요."
 

 

 그래 한 번 들어나 보자 하며 레스트레이드가 팔짱을 끼었다. 

 

 "'수고했어요. 시간도 늦었는데 같이 갈까요. 밤거리는 위험하니까 집까지 바래다드릴게요.'. 이렇게 말하면 어색하지 않겠죠?" 

 

 네가 제일 위험해!
 혼자 가는게 백배는 더 안전해!
 다시 한 번 세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얼굴을 일부러 찡그리는 것처럼 우그러뜨린 어색한 미소라니. 나 위험한 사람이요 하고 얼굴에 써붙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모두가 셜록의 손에 당장이라도 수갑을 채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셜록은 휴대폰을 한 번 더 꺼내보더니 말했다.
 

 

 "아, 근무가 끝나가는 모양이군요. 얼른 나가야겠습니다. 직접 대면한 날 여러가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지만 여기서 말할 생각은 없으니 슬슬 가봐야겠네요." 

 

 핸드폰 액정을 보는 것뿐인데 근무가 끝나가는 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설마 모종의-비밀스럽고 불법적일 것이 자명할-수단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감시까지 하는 건가? 셜록과 자주 접촉하는 사람이라는 입장 상 셜록의 형이라는 작자와 반강제적으로 자주 만나보았던 레스트레이드는 그런 생각이 현실적이지도 않고 신빙성이 매우 적다는 것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게다가 '직접 대면한 날' 이라니, 뭔가 뉘앙스가 이상하다는 것을 캐치한 도노반이 물었다.
 

 

 "둘이 언제 처음 만났는데?" 

 

 셜록이 다시 시계를 쳐다보며 조급하다는 듯 뒷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며칠 전이요. 엄밀히 말하자면 5개월 전이지만." 

 

 그러니까, 직접 둘이 얼굴을 마주한 것은 며칠 전이지만 셜록이 일방적으로 그를 관찰한 것은 5개월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뭐, 괜찮잖아요. 그에게는 굳이 알리지 않았지만, 사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고." 

 

 세 사람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농담이라고 생각했건만, 정말로 스토킹일 줄이야...
 레스트레이드가 억지로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럼 오늘도...직접 대면이 아닌건가?" 

 

 레스트레이드의 억양과 음색으로 셜록은 겨우 세 사람이 자신을 추잡한 범죄자를 바라보는 눈길로 쳐다보고 있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감정적인 면모를 거의 드러내보이지 않는 셜록이 오늘따라 발끈하며 말했다. 

 

 "그 표정은 뭡니까? 그와 저는 5개월 전부터 이런 관계를 지속하고 있단 말입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말해보았더니 그런 반응이라뇨? 게다가 며칠 전 만났을 때 플랫메이트에 관해 이야기했더니 무척이나 긍정적인 반응이었다고요." 

 

 이제 뭐라고 말해도 세 사람의 얼굴에 실린 그늘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것을 본 셜록은 뭐라고 궁시렁거리더니 코트를 여미고는 훌쩍 자리를 떴다.
 셜록이 떠나간 자리에 남은 세 사람이 차례차례 입을 열었다.
 

 

 "스토커...지요?"
 "스토커...네요."
 "스토커...로군."
 

 

 한동안 묵묵히 서 있던 세 사람 가운데 누군가 중얼거렸다. 

 

 "기분 나빠..." 

 

 다시 침묵이 깔리고, 레스트레이드가 분위기를 추스르려는 듯 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러지들 말고. 셜록의 감시 등급을 높이자고!" 

 

 그 말을 신호로 모두 흩어졌다.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셜록의 장래 플랫메이트라는 사람이 스토커 혐의로 셜록을 신고하기 전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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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단편/조각글

 

 

 셜록은 사실 존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존을 사랑하지 않았다.
 존이 셜록에 대해 품은 감정은 명백한 사랑이었지만 셜록이 존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우정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굳이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그것은 친애의 감정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셜록과 존은 종종 섹스를 했다. 성욕에 그다지 휘둘리지 않는 셜록이었지만 그런 그도 남자였기 때문에 성관계는 불가결한 것이었다. 존이 셜록에게 반한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셜록은 그답지 않게-아주 미량의-죄책감을 가지고 섹스에 임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창녀의 대용품인 셈이었지만 존은 셜록의 괴상하고도 유별난 성미를 무한한 관용으로 이해해 주는 듯 보였고 그는 곧 그러한 관계에서도 장점에만 눈을 돌리려 부단히 노력했다.
 셜록은 존이 그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감정에 보답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와의 섹스는 좋아했다. 효율적이었으니까. 물론 섹스를 할 때 연인처럼 다정하게 굴어주면 존이 훨씬 좋은 반응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때로는 열정적인 연인 사이에서나 할 법한 달콤한 키스를 선사하기도 하고 지독하게 길고 지리한, 그러나 뜨거운 애무를 퍼부어주기도 했다.
 셜록만큼은 아니지만 영리한 축에 속하는 존은 셜록이 자신에게 잘 대해준다고 해서 자칭 고기능성 소시오패스의 마음 속에서 사랑이라는 달착지근한 감정이 생겨나리라고는 추호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이따금 쓸쓸한 표정으로 셜록을 응시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물론 둘은 친구였다. 셜록은 존의, 존은 셜록의 하나뿐인 친구. 둘은 그 안정된 관계의 틀을 굳이 시험대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셜록이 투신을 위장하는 날이 찾아왔다.
 존은 울었고 소리쳤고 절규했다.
 눈 앞에서 그가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으며 그가 분명히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믿음이란 연약해서 그 불씨가 꺼지는 날도 언젠가는 찾아오게 마련이었다.
 
 있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재회의 날.
 식어버린 잿더미에서 되살아나온 불사조처럼 셜록은 건재했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셜록은 존에 옆에 섰다. 셜록은 미소지었다. 존은 눈을 깜박였다.
 -존은 자신이 셜록을 사랑하기에는 너무 지쳤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셜록은 자신이 존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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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ageurl.tistory.com/276

 

해당 링크를 타고 들어가시면 저 이외에도 다른 분들의 작품까지 한꺼번에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공개기간 이후에는 따로 업로드하겠습니다.

Posted by 에스MK-2 :

셜존짐/마레/월드오브다크니스크로스오버/뱀파이어더마스커레이드AU

 

 

 셜록을 뿌리치고 살롱을 나선 존이 가운데뜰의 정원으로 당도했을 때 푸르스레한 지평선은 이미 밤의 어둠으로 지워져 하늘과 땅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검게 변해있었다. 저택의 길게 늘어선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정원을 온통 희게 물들이는 통에 밤하늘에 깔린 어둠을 한 조각 떼어낸 틈새처럼 보이는 초라한 반달은 잿빛 구름무더기와 함께 힘없이 하늘을 떠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셨다. 갑작스레 탁 트인 곳으로 나오자 눈앞에 보랏빛 점이 깜박거렸다. 초라히 빛나는 달빛마저도 휘황하게 느껴졌다.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어둠 속을 더듬어 걸었기 때문일까.
 어둠침침한 복도를 지나 장님이 된 것처럼 단단한 땅바닥을 디디어 가며 걸었다. 암석정원의 계단에서 다리가 꺾일 뻔하다 하고, 짧게 자른 주목 울타리에 발이 걸려 허둥거리기도 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걷고 또 걸으며 무사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정원의 중심부를 향해 난 길을 따라 난 거뭇거뭇한 소나무의 형체가 드리운 그늘 밑에서 방황하다가 연못을 둘러싸고 둥글게 다듬어진 공터로 들어서니 환한 불빛에 눈이 따끔따끔 아파왔다.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한없이 긴 꿈에서 가까스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축축했다. 정원을 휩싸고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는 짙은 안개가 흠뻑 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자신에게서 악몽을 꾸다 일어난 사람 특유의 찝찝한 식은땀 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존은 기분이 나빠졌다.
 존은 뜻 모를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한숨소리가 밤공기에 뒤섞이며 정적을 흐트러뜨렸다. 그러자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리며 겹겹이 둘러쳐진 베일이 걷힌 듯 시야도 맑아졌다. 저택에 도착할 무렵부터 사방에서 온통 옥죄여오는 분위기에 짓눌려있다가 풀려난 덕분인지 정교한 미관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상도 떠오르지 않던 머릿속이 한결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덕지덕지 낀 피로감이 조금이나마 풀리자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반투명한 유리가 사라지기라도 한 듯 주위 관물의 본래 색채가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낮이었다면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쳤을 진부한 밝은 색채들은 정제되어 곱게 갈린 안료처럼 본연의 선명한 빛깔로 빛을 발하고 있다. 바닥에 규칙적으로 깔린 판석은 수은처럼 싸늘한 푸른빛을 반사했다. 화강암 재질의 바닥돌에 고르게 퍼진 석영 조각들은 무기질적인 흰빛을 발산하고, 그 인위적인 느낌을 누그러뜨리려는 듯 곳곳에 놓인 이끼 낀 바윗덩어리들은 어스레한 밤빛 아래에서 보랏빛을 띤 초록색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목백일홍은 저마다 갓 봉오리를 틔워 올려 꽃잎이 활짝 벌어지기 전의 모양으로 야물게 오므라들어 있었고 연녹색의 잎사귀에서는 소박한 윤이 났다. 가지마다 다채로운 색색의 꽃송이를 매단 장미나무가 무리지어 있는 가운데 규칙적으로 주위를 둘러치고 있는 기둥의 홈에 도금된 세밀한 금녹색의 세공은 황야의 누런 모랫빛으로 생기가 없었으나 그것을 어지럽게 휘감고 도는 덩굴식물의 덩굴손은 어린아이의 손가락처럼 싱싱하기 그지없었다. 연못 둘레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휘감아 돌듯이 무리지어 핀 꽃들은 강렬한 색으로 빛나 보이기도 하고 또 달빛에 그 색조가 바래보이기도 했으며 복잡한 실루엣의 음영을 검불에 드리우며 자아내는 정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존은 그 순간 파우스트를 생각했다. 파우스트는 외친다. 멈추어라! 너 정말로 아름답구나! 감상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환호성이 잦아든 후의 나른한 공백처럼 공기마저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섬세하게 짜인 거미줄처럼 그를 가두고 있는 향기의 올가미에 갇힌 존은 얼치기처럼 서서 그를 둘러싼 비밀스럽고 낭만적인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존은 깨닫는다. 노상의 꽃들마저도 이 곳의 꽃들처럼 철저히 외면당하고, 무시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서 있는 공간을 점령한 비현실성을 자각하자마자 이제껏 기껍게 여겼던 고독이 도리어 소름끼치는 냉기로 돌변해 그의 등골을 싸하게 얼린다.
 도취의 나른한 여운이 산산이 깨어져내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리는 성 싶었다.

 

 시간이 비껴간 듯 정지된 공간에서 모든 것이 침몰한다.

 

 존은 그 자신이 소름끼치도록 조용한 침묵 한가운데에 내던져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모를 불쾌감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저택에서 새어나오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존의 귀를 간질이며 그의 옆에 아무도 없다는 공백감을 대신 채워주었었다. 나뭇가지에 달린 이파리들이 이따금 나부끼며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내었음은 물론이며 하다못해 발치에 나뒹구는 꽃가지들이 흔들리며 서로 스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그의 귓가를 울렸으나 지금은 달랐다. 존 혼자서만 뚝 떨어진 밀폐된 공간에 떨어진 것처럼 주위는 스산하리만큼 고요했다.
 하늘 귀퉁이에 비스듬히 걸린 달은 그저 무심하게 빛을 뿌리며 정원을 검푸른 색조로 물들일 뿐이었다.
 완전히 캄캄해진 연못의 수면 위에 비친 은빛의 달그림자가 부드럽게 너울너울 떨렸다. 연못 가운데에 설치된 새하얀 대리석 수반으로 떨어지는 분수의 물방울들이 튕겨오르며 공기 중을 떠도는 습기를 한층 무겁게 만들었다.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 무더운 공기는 금방 비가 쏟아져내리고 벼락이 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보였다. 물결 한 점 일지 않는 수면은 얼어붙은 것처럼 매끈했다. 나선형으로 배배 꼬인 채로 자란 나무의 어둠은 그림자처럼 밤을 품고 있었으며 죽음을 연상시키는 검은빛 물속에 뿌리를 잠그고 연못에 드문드문 봉오리를 띄운 하얀 수련은 미동도 없는 조각처럼 생명력이 없어보였다.
 안개가 뭉덩이지며 흐릿하게 뭉친 빛무리에 반사된 풍경은 사실주의적인 흑백의 소묘처럼 무감했다. 고풍스런 멋이 물씬 풍기는 정원은 몹시 매력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비인간적인 무채색으로 얼룩져 음침해보였다. 텁텁하게 물감을 덧칠한 그림에서나 느껴질 법한 음습한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았던 존은 측백나무 아래의 낮은 벤치로 비칠비칠 걸음을 옮겨 엉덩이를 걸쳤다.
 존은 한숨 돌리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당장 떠오른 것은 셜록이었다. 간신히 정리되던 머리가 셜록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복잡하게 뒤엉키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생각을 하자 일말의 안도감이 든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또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 명이나 되는지도 모르는 흡혈귀들이 돌아다니는 괴물들의 아지트인 홈즈 가의 저택 안에서 그나마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셜록 하나뿐이라는 것을 존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건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셜록 홈즈도 존 왓슨의 두려움의 대상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셜록이 본연의 불친절한 성미를 최대한 억누르고 자신에게만큼은 최대한 상냥하게 대해주려는 노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인간적인 모습의 셜록과 흡혈귀로서 존의 피를 탐하는 인간 외적 존재로서의 모습의 셜록 사이에서 느껴지는 간극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는 뱀파이어와 인간이라는 먹이사슬의 층위에서 포식자의 입장도 아니요 피식자의 입장이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셜록과 부대끼며 느껴지기 시작한 일종의 감정적인 변화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자신이 셜록에게 느끼는 호감이 과연 흡혈행위를 당할 때 느껴지는 쾌감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나는 신체적인 증상인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진정으로 그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인지는 자의적인 판단으로만 잘라 판단하기에는 너무도 불확실한 일이었다.
 복잡한 생각으로 끙끙대던 와중 살롱을 빠져나올 때 가지 말라는 듯 자신을 바라보던 셜록의 처량한 눈빛이 문득 떠올랐다. 그로서는 분명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존 자신이 그때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군 것만은 확실했으니 다시 만나면 사과를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처음으로 그를 물고 나서도 근 한 달 만에야 그를 찾아올 정도로 느긋한 셜록이다. 셜록의 괴팍스런 성미로 미루어 짐작해보아도 그가 아무런 언질없이 멋대로 몇 달이고 잠적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다. 잠적하면 오히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길 테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존."


 거짓말처럼 셜록의 목소리가 들렸다.

 

*

 

 하늘 높이 뜬 달은 은빛을 더해가며 불안 속의 조화를 부추긴다. 왠지…불빛이 차가워진 것 같았다.

 

 “여기서 뭘 하고 있나요.”


 평온한 어투.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을 대하는 듯 지극히 차분한 목소리에 존은 도리어 그 자신이 조바심을 치기 시작했다. 초조한 듯 입술을 몇 번 잘근거리다가 존은 다소 급하게 앉은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별로…아무것도.”


 한 박자 늦은 응답에도 셜록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 점이 존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렇군요.”


 달빛을 등진 사내의 시커먼 윤곽이 점차 가까워온다. 그의 등장을 신호탄으로 안개가 눈에 띄게 사라져갔다. 공기 중에 파랗고 투명한 유약을 한 꺼풀 바른 것처럼 자욱한 안개가 깨끗하게 물러가고 있다.
 드러난 그의 창백한 얼굴은 언제나처럼 금욕적인 인상을 풍긴다. 강철같은 회색 눈동자가 파랗게 빛난다. 존을 바라보는 셜록의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지만 깊숙이 감춰진 무의식적인 오만한 기색은 그대로이다. 그 앞에서 존은 마치 뱀 앞에서 꼼짝 못하고 얼어붙은 사람처럼 얼이 빠진 채로 서있었다. 셜록이 난데없이 등장한 것에 놀란 것일까. 아니, 그건 아니다.
 존이 생각에 잠긴 사이 셜록을 그에게 가까이, 아주 가까이 다가와 마치 키스를 하려는 것처럼 고개를 숙인다. 이거야말로 놀랄 만한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존은 그다지 놀라지는 않는다.
 당장이라도 입을 맞출 것처럼 굴던 셜록은 키스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서로의 숨결이 코끝에 끼칠 정도로 가까이 달라붙은 그 틈새-간격을 고수하며 입을 연다.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존.”


 미적지근한 숨결이 정수리에 가만히 떨어진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며 존이 나직하게 대답했다.


 “말해봐.”


 존의 허락이 떨어졌지만 셜록은 곧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존은 인내심을 가지고 셜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고독과 침묵에 싸인 정원의 한가운데를 둘러싸고 앞다투어 핀 장미들이 불빛을 받아 고운 호박색으로 반짝였다. 머리 위로 뜬 달이 움직이며 두 사람의 얼굴에 던져진 음영 또한 벌레가 기어가듯 뺨 위로 천천히 움직였다.
 한동안 머뭇거리던 셜록이 어느 순간 입을 열었다.


 “나는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고 있습니다.”


 메커니즘적인 측면에서 말이지요, 하고 셜록이 덧붙였다.


 “그들은 희생자들의 흐느낌, 애원, 고통에 찬 숨소리를 들으면서 희열을 느낍니다. 종반에 이루어지는 살인 행각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카타르시스의 절정 부분에 해당하지요. 표적의 생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측면에서 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다고 착각하는 것에서 살인자의 행동 동인이 시작되는 겁니다. 사디스틱하고, 어떻게 말하면 병적인 쾌감이 가미된 정신적 충만감이랄까요…….”


 둘 사이의 간격은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얇은 수트의 겉감이 만나며 나직한 사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옷자락의 우아한 마찰음은 셜록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비밀스러운 속삭임에 맞먹을 정도로 커다랗게 존의 고막을 울린다. 차가운 밤공기에 식었던 체온이 천을 사이로 두고 서서히 덥혀진다.


 “그런 것을 추구하고 극대화하려는 과정에서 그는 점점 죄의식도 팽개치고 살인을 거듭하게 되지요. 더욱 극적인 폭력을 자행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셜록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점차 열이 오르는 듯 머릿속이 멍해져왔다. 만약 저것이 제삼자의 이야기를 빙자한 셜록 자신의 이야기라면 역겹기 그지없을 것일 게다. 헛헛한 속에서 뭔가 치밀어오르는 듯 역한 느낌이 일었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존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이해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것에 더욱 가까웠다. 이해하는 순간 완전한 공포에 지배되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이해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었다.
 존은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휘청이는 존의 몸뚱이를 셜록이 감싸안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존을 품 안에 가두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세 풀려날 수 있을 정도로 느슨한 속박이었다. 존은 팔을 뻗어 셜록을 밀어내려고 했다. 떨리는 팔을 들어올려 셜록에게서 멀어지려 했지만 셜록은 허탈할 정도로 쉽게 존의 팔을 잡아채었다. 그다지 강한 악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건만, 아니 오히려 부드럽고 상냥한 몸짓 축에 들었건만 존의 반항은 시시하고 짧은 허우적거림으로 끝나고 말았다.
 일련의 계획된 과정처럼 물 흐르듯 이루어진 동작의 흐름이 끝나고 존은 진이 빠진 것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셜록의 손이 존을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등을 쓸어내렸다. 그 동작은 몹시 느리고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았다. 등을 쓸어내린 손은 축 늘어진 어깻죽지를 매만지고 살살 그의 팔꿈치를 쓰다듬다가 사뭇 다정하게 손을 잡아올렸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제 위치에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존의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더듬어올리던 셜록은 잠깐 망설이다가 자신의 손가락을 존의 손가락 사이로 끼워넣으며 깍지를 끼었다. 접촉한 살갗에서 전해져오는 묘하게 따스한 느낌이 안정감을 주었는지 가파르게 치닫던 존의 숨소리가 점차 조용해졌다.


 “두렵나요?”


 셜록이 재차 물었다.


 “내가 당신을 그렇게 여기고 있을까봐 두려운 게 아닌가요?”
 “그래!”


 존이 외쳤다.


 “네가 그런 식으로 날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가 없어. 두려워하지 않고 싶어도 두려워.”


 존은 심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흐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움직임에 셜록은 가만히 존을 더욱 가까이 당겨 안았다. 존은 딱히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어. 현실감이 들지 않았으니까. 의외로 냉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알아요."


 그리고 그러한 비정상적인 평정심은 언제가 되었든 별안간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가득 차오른 수면에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고, 예상치 못한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넘쳐흐르는 것처럼.
 그것에 대해 토로하려던 존은, 그러나 곧 입을 다물었다. 굳이 목소리를 내어 그가 느꼈던 복잡한 심경의 전말에 대해 내뱉지 않아도 셜록은 존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둘 사이에는 이해와 공감이 자리했다. 셜록과 존 모두 그것을 확연하게 느꼈다.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다. 텅 빈 공허함이 아닌 안온함이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다. 거의 느껴지지 않는 셜록의 희미한 맥박과 크게 두근거리는 존의 맥박이 교차했다.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한다면야 뚜렷하게 매듭지어진 그것을 정말로 만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따스한 정감이 넘치는 공기 속에 침잠해있던 둘 중에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연 사람은 셜록이었다.


 “기억해요, 존.”


 존은 셜록을 올려다보았다. 흰 이마 아래로 역광이 진 눈가. 섬세하고 가지런한 속눈썹 아래에서 빛나는 두 눈이 수많은 의미를 지닌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당신을 죽이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에요."


 존은 홀린 듯이 셜록의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서로에게 빨려들어갈듯이 멈추지 않는 시선의 마주침이 이어지고, 이어졌으며……
 아찔한 장미향기가 하나가 된 두 사람의 실루엣을 감쌌다. 홍조 띤 보드라운 어린 뺨처럼 연분홍색으로 발그레한 꽃망울이 무더기로 만발한 사이에서 마치 꽃봉오리가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듯한 키스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입맞춤은 언제까지고 계속되고 당사자인 두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그들을 방해하지 못할 것같았으나 모든 것에는 끝이 찾아온다. 그것도 느닷없이.
 그들이 서 있는 장미넝쿨 뒤편으로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꿈결에 몸을 맡긴듯이 키스에 몰두해있던 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술을 떼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존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들어갈까?"


 셜록은 미련없이 동조했다.


 "그러죠."

 

***

 

 루드밀라는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뛰다시피 빠른 걸음걸이였다. 급히 움직이느라 드레스 자락에 성가신 나뭇가지가 걸리며 아슬아슬하게 찢어질 듯한 소리가 났지만 자리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살롱 안에 감도는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와 분 냄새에 금방이라도 현기증으로 쓰러질 듯한 기분이 들어 산책을 나왔다가 생각지도 못한 광경-홈즈 경의 동생과 그 주치의라는 남자가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을 보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오르탕스와 함께 그 둘의 이모저모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던 참이었는데 난데없이 둘의 밀회 장면을 목격하게 되다니. 게다가 바보같이 수풀을 건드려서 둘을 놀라게 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바보같은 자신이란 말인가!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생각했다. 그 둘의 사이가 보통 사이는 아닐 것이라고는 짐작했지만 역시나였다. 젊은 나이가 아닌데도 꽤나 귀여운 인상의 의사 선생을 은근히 마음에 들어하던 오르탕스와, 마치 연애 소설의 주인공처럼 차갑고 쌀쌀맞은 미남형의 홈즈 가의 차남이 왠지 모르게 눈 앞에서 아른거리던 그녀로서는 무척이나 안된 일이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이쯤이면 충분히 멀어졌겠지 싶어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추었다. 곱게만 자란 몸은 조금 뛴 것만으로도 심장이 곧 멎을 것처럼 힘들어했다. 상기된 뺨을 진정시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작정 길이 보이는 대로 뛰다가 길을 잃은 듯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앞쪽의 수풀길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내보인 이의 정체를 알아차린 루드밀라가 약간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카른슈타인 여백작님?"


 그녀는 루드밀라의 부름에는 대답하지 않고 후후 웃으며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지그시 갖다대며 쉿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 행동에 루드밀라는 저절로 목소리를 낮추며 다시 물었다.


 "여긴 어떻게?"
 "모라비아 공작 영애처럼 나도 좀 답답해서 말이지요. 바깥 바람을 쐬니 시원하고 좋지요?"


 카른슈타인 여백작이 싱긋이 웃으며 천천히 자신에게 가까워져오는 것을 보며 루드밀라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분명 자신은 아까 뛰면서 저택에서 멀어졌으면 멀어졌지 가까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파티장을 나올 때만 해도 다른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던 카른슈타인 여백작으로서는 저 방향에서 걸어나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묘한 위화감에 몸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루드밀라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에 카르밀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 독수리에게 표정이 있다면, 그가 급강하하며 먹이를 낚아채기 직전의 지을 법한 그런 미소였다.
 미소 띤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하얗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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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존짐/마레/월드오브다크니스크로스오버/뱀파이어더마스커레이드AU

 

 

 살롱 내부의 정경을 넋 놓고 바라보던 존은 멀리서 들려오는 요란한 웃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옅은 노랑과 푸르스름한 장미가 번갈아 넝쿨을 감고 있는 은은한 빛깔의 중국산 자개 병풍을 지나 일단의 숙녀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나중에 입장했지만 지금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이의의 여지없이 카른슈타인 여백작이었다. 웃는 그녀의 몸이 흔들리며 완벽한 두상 위로 커다랗게 물결치는 적색의 숱 많은 머리칼이 찰랑거리며 금빛을 발했다. 다소 크다 싶을 정도의 목소리로 웃고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도 기막히게 우아하게 보였다. 그녀의 자태며, 대화를 이끌면서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방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에게서 감도는 분위기에는 우아함이 섞여있었으며 자극적인 뒷맛을 남겼다. 비록 신사들에게는 그러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주는데 인색한 그녀였지만 멀찍이서 그녀가 소녀들에게만 베푸는 맑은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또한 신사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생명력 강한 들장미처럼 화사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좌중을 장악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미려했다. 때때로 그녀는 수백 년은 산 마녀처럼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사춘기 소녀처럼 풋풋하게도 보일 정도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미모를 지녔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나 할까, 카른슈타인 여백작의 옆에 선 아이린 애들러는 살롱을 휘황하게 밝히고 있는 불빛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희미한 어둠을 품고 있었다. 검푸르게 빛나는 눈동자는 여독의 잔재로 피곤해보였지만 지적인 광채로 반짝였고 군살 없이 늘씬한 몸매에 보석이 촘촘하게 박힌 검정 새틴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달밤 아래의 어둠에 묻힌 채로 핀 한 떨기의 달맞이꽃 같았다.
 미미한 존재감이었지만 어쩐지 존은 그녀에게 눈길이 갔다.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누군지 당장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존이 그녀를 지켜보는 사이 그녀는 다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며시 몸을 일으켜 열띤 대화를 주고받는 숙녀들과 여백작이 동심원으로 둘러앉아있는 무리에서 천천히 벗어났다. 옆으로 언뜻 보이는 갸름하고 야윈 얼굴은 병적일 만큼 새하얬다. 느릿하고 나른한 움직임으로 저만치 걸어가는 그녀의 목을 감싼 장신구가 촛불의 어스름한 빛을 반사하며 아른거리는 광채를 내었다.
 어느 샌가 화이트 드부아의 상감 세공 장식장 곁을 지나치는 그녀를 줄곧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무뚝뚝한 음성이 들려왔다.


 “뭘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는 겁니까?”


 아 그렇지, 셜록. 존은 셜록이 자신의 옆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찬 때부터 따분해하며 열의라곤 조금도 없는 태도를 고수하던 셜록은 살롱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흥겨운 분위기에 섞여들기는커녕 살롱의 외곽으로 물러나서는 조용히 주변을 응시하는 데에만 시간을 쏟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존이 뭐라고 대꾸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존의 시선이 머물던 쪽을 훑어본 셜록이 곧장 내뱉었다.


 “당신 취향도 아니잖아요.”
 “셜록!”


 조그맣게 셜록을 나무라며 존은 혹시 아이린이 셜록이 한 말을 들었을까 싶어 슬쩍 그녀가 서 있던 편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존은 아이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데없이 시선이 마주친 데에 당황한데다 다시 뭐라고 떠들어대려는 셜록을 제지하느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마치 이편의 정황을 모두 꿰고 있다는 듯이 태연자약하게 웃고 있었다.
 단순한 착각일까?
 그렇게 생각하려는 순간 셜록이 말했다.


 “착각이 아닐 겁니다.”


 의미심장한 말에 존이-셜록이 또다시 아무런 전조도 없이 존이 하고 있던 생각을 읽어내었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존의 질문에 셜록이 잠시 입술을 비죽거리다 대답했다.


 “그녀도 우리와 같은 무리에 속한 자이니까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지난 몇 개월간 셜록과 그런대로 친밀해진 존이었지만 뱀파이어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에게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었다. 그건 마치 줄곧 풀어놓고 키운 뱀이 독사라는 것을 방금 알아차린 사람이 느끼는 갑작스런 두려움과 같았으니까.
 더군다나 셜록이 귀띔해주기 전까지는 그녀가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 두려움은 더했다.


 “정확히는 반만요. 몽마가 흡혈귀의 정을 잉태한 것의 산물이라고 하더군요. 또 여백작은 마이크로프트와 같은 클랜의 일원이랍디다. 어린 여자아이라면 그저 사족을 못 쓰는-”


 아이린 애들러 뿐 아니라 저편에서 아직도 소녀들과 즐거이 수다를 떨고 있는 카른슈타인 여백작마저도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존을 엄습하는 공포감은 더욱 강해졌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녀들의 발그스름한 뺨을 비추는 장미 모양의 등갓 아래로 흘러나오는 불빛도 핏빛으로 보였다.
 정찬이 끝날 무렵에 일어났던 해프닝이 떠올랐다. 마이크로프트가 가볍게 바람을 잡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아예 몸이 마비되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었지 않은가. 만약 그때 마음만 먹었더라면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의 피를 모조리 빨 수도 있었으리라. 뱀파이어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찬이 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공포에 질려 굳어버린 사람들은 꼼짝없이 목덜미를 내밀고 있었을 것이며 그들은 양순한 먹잇감들의 동맥에서 힘차게 뿜어져나오는 피를 마음껏 포식할 수 있었겠지. 사람들이-이 자리에서 무사히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홈즈 경의 악취미적인 소행이라고 평하며 입에 올릴 것이 분명한 그 장난은 존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공포의 기억으로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본색을 숨긴 채 독니를 감춘 뱀처럼 도사리고 소녀들의 육체에서 풍기는 신선한 향기를 전채요리 삼아 들이마시고 있는 여백작의 마음만 내킨다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저 소녀들도 그저 저항 하나 없이 조용히, 그리고 무력하게 숨을 거두고 말겠지.
 자신의 말에 존이 겁을 집어먹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 챈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일찍이 입을 꾹 닫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는 부러 신경질적인 태도로 툭툭거리는 등 어쨌든 그 딴에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달변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셜록이었지만 이런 어색한 상황을 무마하는 데는 소질이 없었고 말을 그친 셜록은 계속해서 손을 쥐었다가 폈다 하거나 괜스레 그들이 앉아있는 의자에 놓인 반원형의 쿠션의 위치를 바꾸거나 하며 불안해했다.
 그들을 둘러싼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고막으로는 활기찬 얘깃소리가 새어들어오고는 있었으나 그것은 마치 완벽하게 분리된 딴 세상의 이야기마냥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존…….”


 셜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으나 존은 매몰차게 그의 말을 자르고 일어서며 짧게 말했다.


 “잠깐 머리를 식히고 와야겠어.”


 놀랍도록 매끄러운 거절이었다. 셜록은 존이 성큼성큼 멀어지는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살롱의 문이 조용히 닫히며 존의 모습이 한 자락도 보이지 않게 되자 셜록의 얼굴에서 혈색이 싹 가셨다. 갓 내린 눈처럼 창백하게 무표정으로 얼어붙은 그는 하얀 눈이 덮인 외길마냥 외로워보였다. 그나마 자리하고 있던 인간미조차도 한 조각도 남김없이 사라진, 깡마르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내려앉은 것은 우울, 바로 그것이었다.


*

 

 포근하고 상쾌한 저녁이었다.
 조각조각 해진 구름이 하늘 위로 흘러가며 달빛을 가렸다. 그때마다 구름 그림자가 후원에 널린 폐허의 잔해 위에 우뚝 선 채로 부서져내린 흉벽을 뒤덮었다. 구름 아래로 드리운 뿌연 그림자 속에 선 나무들은 온통 회색으로 보였다. 달은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며 숲과 정원, 그리고 그 사이에 둥글게 자리한 공터를 우울한 빛깔로 물들였다.
 느릿하게 흐르는 달빛의 광채, 고인 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공기, 산들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 무더운 초여름의 날씨.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죽음같은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에서 세 뱀파이어들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이날 밤의 모든 풍경 속에서는 무언가 아주 독특한 분위기가 풍겼다. 봄밤의 후텁지근한 공기와 습도가 만나 안개가 부풀어올랐고 그것은 미로처럼 심은 정원수 사이에 짙게 걸려 그렇지 않아도 희미한 그들의 형체를 더욱 분명치 않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세 명 모두 검정색 옷을 입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놓인 등불이 꺼져가며 내뱉는 창백한 미광을 받아 거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어두운 실루엣으로 보였다.
 연기처럼 은밀하게 다가온 밤안개는 뱀파이어들의 기척을 잠재우는 한편으로 그들 주위의 잔디며 꽃나무를 베일로 감싼 것처럼 아늑하도록 엷은 색조로 감쌌다. 또한 흐릿한 달빛이 안개에 난반사되며 경치를 한층 은은하고 감미롭게 물들였다.
 그들을 둘러싼 경관은 기묘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웠다. 커다란 보리수가 신록의 잎사귀를 피워내고 있었고 고만고만한 키의 장미나무들이 거의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투박한 모양새로 가지를 뻗은 채로 그들 주위에 빽빽이 둘러서 있었다. 장미뿐만 아니라 발치에 무성하게 채송화와 데이지꽃과 민들레같은 풀꽃들이 만발한 모습은 우연히 잡초가 우아하게 우거진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였다. 입구에 세워진 튜더식의 철제 아치를 제외하면 정원에서는 어수선하게 연출된 풍경화처럼 꾸밈없는 아름다움이 배어나왔다. 극도로 계산적이지만 전혀 그런 기색이 느껴지지 않도록 연출된 자연스러운 한 폭의 미관에 세 남녀는 녹아든 것처럼 잘 맞았다. 몹시도 현대적이며 말쑥한 옷차림의 그들이었지만, 마치 그들 자신이 세심하게 조경된 정원에 배치된 관물의 하나이기라도 하듯 그 장소의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사방은 적막했다.
 무덤처럼 깊고 조용한 고요에 잠긴 세 사람은 주변의 매혹적인 전망에 깊은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저마다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 만큼 나른한 침묵에 파묻혀있는가 싶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불안 속의 조화처럼, 서로에 대한 무심함을 가장한 그들의 침묵은 곧 무너질 모래성처럼 위태하기 그지없었다. 공기 중에는 무언가 긴장감이 어린 엄숙함 같은 것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요정들의 축제에 참석한 인간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사이에 던져져 유리되고 동떨어진 채 겁에 질려 입을 다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누구 하나가 먼저 말을 꺼내기만 하더라도 시작된 대화에 기분 좋게 빠져들 수도 있었겠지만 물론, 누구 하나도 가까스로 이룬 그 균형을 깨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숲의 지평선 너머로 기울어가는 달빛 아래에서 그들이 괴이한 엄숙함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도 저편의 저택에서 흘러나오는 초조하고 감미로운 음악의 소리는 끊어질듯 말듯 이어지며 고요한 밤공기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환락을 희구하는 사람들의 열망은 분별없는 태도와 몽롱한 사고가 함께 뒤섞인 이유 없는 열성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습관적으로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에 오로지 교리적인 근거에서 비롯된 죄악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항상 그렇듯이 그들은 그러한 양심의 낌새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쳐들만한 기회를 자신들에게 부여하는 것을 기피하다 못해 증오한다. 때문에 그러한 시간적인 틈새가 생겨나지 않도록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얼른 새로운 유희거리를 찾아내어야 한다는 부르주아적인 강박관념에 지나치게 젖어 있다.
 그러나 시작된 음악은 언젠가는 멈춘다. 한순간 정적이 찾아들고, 비어버린 공백을 틈타 한 줄기 혼란스러움이 빈 공간을 메운다.
 그 순간 산들바람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굳어있던 석상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나른하게 한쪽으로 기대어 앉아있던 아이린 애들러가 단정한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움직임은 프레임 단위로 움직이는 사진 속의 인물처럼 사실적이면서도 부드러웠고 그래서 더욱 감각적이었다.
 핏빛 입술 사이로 나직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아가씨들 말이 맞아요.”

 

 목소리는 울림도 없고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이상했다. 왠지 유령처럼 들렸지만, 그러면서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아이린의 말에 마이크로프트는 계속하라는 듯이 살짝 고갯짓을 했고 아이린은 입술을 말아올려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낡아빠졌다는 말 말이에요.”

 

 비단결 같은 칠흑의 속눈썹이 나비의 날개처럼 몇 차례 빠르게 깜박였다.

 

 “언제가 되었든 당신 저택에서는 항상 반쯤 죽은 꽃향기와 묵은 먼지 냄새가 진동을 하지요. 당신의 그 일관성 있는 취향은 도무지 변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군요.”

 

 그녀는 영민하게 반짝이는 눈길을 셜록이 앉은 방향으로 살짝 보내었다가 다시 마이크로프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요 몇 년 사이 재미있는 일을 벌인다기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 당신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네요.”

 

 마이크로프트가 느릿하고 현학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음 얼굴을 마주했던 세상은 오래 전에 늙어버렸는데도 아이린, 당신은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군요.”
 “같은 말을 그대로 되돌려드리도록 하지요.”

 

 아이린은 그렇게 말하며 버드나무 가지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을 움직여 앞으로 흘러내린 검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들의 중간 지점에 놓인 램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그녀의 하얀 목과 실크 가운 사이로 드러난 어깨를 비췄다. 진한 버건디 색으로 물든 촉촉한 입술은 병색이 감도는 듯한 고운 크림색의 얼굴 위에서 미소짓고 있었으나 아치형으로 우아하게 휘어진 검은 눈썹 아래에 자리한 어둡고 무표정한 눈은 차갑게 빛났다.
 물수제비처럼 수면 위쪽만 통통 건드리던 대화는 결국 둔중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깊숙이 잠겨든다. 그러니까 아무리 본질과는 관계없는 쪽을 공연히 들추어낸다고 해도 결국에는 본심을 꺼내놓고야 말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셜록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간파하기란 힘이 들었으나, 지금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보헤미안 스캔들 때였지요?”

 

 아이린이 선수를 쳤다. 갑작스런 지적에 허를 찔린 것처럼 머뭇거리던 셜록은 곧이어 대꾸했다.

 

 “왜 왕위 계승자를 마다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하긴 일개 변호사 따위와 정분이 나서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칠 리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영생을 얻게 되면 세속의 영욕 따위에는 한결 둔감해지게 되니까요. 하물며 그게 일개 소국의 왕자 따위라면 더욱.”
 “나이를 예측해내지 못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고 말이지.”

 

 셜록의 가시 돋친 말에 아이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아직도 염두에 두고 있었군요!”
 “마치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시치미 떼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아이린은 마이크로프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재주도 좋군요. 당신하고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 인간을 데려왔을 줄이야.”

 

 그녀의 말에 마이크로프트가 흐릿하게 웃음을 띠며 말했다.

 

 “셜록이 기분 나빠 할 겁니다.”

 

 그 말에 셜록이 쏘아붙였다.

 

 “사려 깊은 척 하지 마, 마이크로프트.”

 

 둘이 서로의 신경을 긁는 꼴을 보며 아이린은 무척 즐거워했다. 아예 둘의 말다툼을 관전하려는 자세를 취하기까지 하며 그녀는 촌평을 날렸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닮았군요.”

 

 그 말에 셜록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한편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그러던 말던 여전히 흐릿하게 미소를 띤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따지고 보면 나와 셜록보다는 당신과 셜록이 더욱 가까운 관계가 아닐까요. 휘프노스와 타나토스가 근연관계인 것처럼, 당신들도 그럴 테니까요. 1.”

 

 모종의 것을 암시하는 듯 의미심장한 어조의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이상하게 들떠오르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착 가라앉았다. 아이린은 푸른 눈에 색정적인 불꽃을 담은 채로 열정으로 파르르 떨리는 콧방울을 지닌 머리를 뒤로 젖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녀의 시선은 아주 잠시 셜록에게 머물렀다가 떨어졌고 곧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시선을 내리깔았다. 잔혹한 붉은색을 띤 입술만이 변함없이 비틀린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정원의 모퉁이를 스치며 쏴아 하는 소리를 냈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얕은 잠을 자고 있던 까마귀 떼가 놀라서 푸드덕 날아올랐다.
 밤하늘의 어둠 속으로 날아가는 까마귀들을 꿈꾸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그는 몹시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더구나.”

 

 숲의 나무를 뒤흔들고 한층 약해진 바람이 날아와 셜록의 단정한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셜록은 흥이 깨졌다는 듯이 혀를 찼다. 셜록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공터의 입구 쪽으로 몸을 돌리며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전쟁을 겪은 사람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더욱 드물겠지.”

 

 셜록과 마이크로프트는 한 차례 눈빛을 교환했다. 아이린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둘 사이의 무언의 소통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셜록은 무언가가 못마땅한 듯 떨어진 꽃잎 조각을 발뒤꿈치로 자근자근 짓밟더니 커다랗고 낮게 걸린 달을 등지고 파르스름한 실루엣으로 빛나는 나무들 사이로 성큼성큼 사라져버렸다. 어둠으로 뻗은 길을 따라 땅 속 깊이 박힌 철제 아치에 엉킨 장미 덩굴이 그치지 않는 미풍에 리듬을 타듯 움직이며 조용히 흔들렸다.

 

 

 


1.몽마인 아이린과 죽음과 관련된 혈족인 셜록과의 관계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꿈의 신인 휘프노스와 죽음의 신인 타나토스가 형제관계라는 것과 빗대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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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존짐/마레/월드오브다크니스크로스오버/뱀파이어더마스커레이드AU

 

 

 “그럼 이만 마치도록 합시다.”

 

 청진기를 갈무리하며 존이 말했다. 그 말에 레스트레이드는 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슬쩍 존의 눈치를 살폈다. 레스트레이드가 이편을 연거푸 흘깃거리는 것을 알아차린 존은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원하시는 대로 철분제 처방은 해드리죠. 하지만 과다복용은 좋지 않다는 점 유념하세요.”
 “감사합니다, 닥터 왓슨.”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그렉 레스트레이드를 존은 몰래 염려 섞인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항상 지나치게 건강에 신경을 쓰는 이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위가 혹시라도 심기증의 초기 증상을 약하게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작은 의심에서 비롯된 걱정이었다. 하지만 반백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해져가는 중년의 남자가 스스로의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더욱 바람직하지 못한 일일 터였다. 마음속에서 고개를 쳐드는 작은 의심을-아직은-굳이 지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존은 적당한 인사치레를 마치고 경위의 방을 나섰다.
 진찰을 끝내고 왕진비를 받고 돌아가는 존의 눈이 언뜻 무의식적으로 레스트레이드의 책상으로 향했다. 어지럽게 서류가 쌓여있는 사이로 청동 잉크스탠드가 보였다. 경위의 방이 전형적인 헤플화이트 양식으로 화려한 곡선미의 가구가 놓인 훌륭하고 중후한 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직선적이고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모양의 잉크스탠드는 조금은 의외로 보이는 집기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존이 나가다 말고 그것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 눈치챘는지 레스트레이드가 웃으며 말했다.

 

 “썩 어울리진 않지요? 선물로 받은 것이라서 말입니다.”

 

 겸연쩍어하는 듯한 그의 말에 존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요, 멋진데요.”

 

 그렇게 말하는 존의 시선은 이제 잉크스탠드 아래에 짓눌려 있는 어떤 편지봉투로 옮겨가 있었다. 익숙한 보라색의 편지봉투는 어디선가 분명히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어디서 보았더라, 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기억을 더듬는데 레스트레이드가 짧게 헛기침을 했다. 우회적인 축객령에 존은 멋쩍어하며 손에 든 왕진 가방의 손잡이를 고쳐 쥐고 방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원래는 조금 더 나중이었던 오늘의 진료 시간을 앞당긴 것도 이 뒤에 있을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라고 전해 들었었지. 사정을 알 만큼 알면서도 빠릿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하긴 그 자신도 느긋하게 환자의 책상이나 훔쳐보고 있을 계제는 못되었다. 며칠 전 홈즈 저택에서의 연회 초대장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홈즈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와서 존이 나름대로 조사를 한 결과 홈즈 저택은 템플 가든처럼 명랑한 이름도, 웨스트민스터 사원처럼 엄숙한 위명도 지니지 못했으나 다른 의미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가문의 수완 덕분이었다. 홈즈 가문 특유의 은둔적인 성향과 대대로 작위를 물려받아온 세습 귀족들로서는 썩 달갑게만 여기지 않을법한 그들의 오만한 양태, 그리고 현재 당주인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병적으로 폐쇄적인 기질에도 불구하고 홈즈 가문은 영국을 움직이는 세력가들을 중재하는 의미로서의-이를테면, 가교 역할로 상류사회에서의 은근한 존재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서섹스에서 일가가 런던으로 이주한 지 근 백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신흥 젠트리 가문으로서 그만한 명성을 떨친다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매년 늦봄과 초여름의 경계에 한정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초대장이 돌아간다는 홈즈 가문의 연회는 간단히 말하자면 잠시도 쉬지 않고 요동치는 런던 사교계의 지각 변동과 함께 앞으로 성장 주가가 높은 우량주는 누구이며 누구에게 줄을 대어야 유리한지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표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속사정을 아는 존 왓슨으로서는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초대받은 가문의 위력에 대한 간접적인 증명임과 동시에 어느 누구도 섣불리 초대를 거절하지 못한다는 대단한 연회가 열리는 날짜는 바로 오늘로, 존의 숙소로 마이크로프트가 마차를 보내주기로 했기 때문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집으로 가서 참석할 채비를 해야 했다.
 그런 닥터 왓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위는 항상 의기소침해보였던 의사 선생이 오늘따라 들떠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느 때와는 다른 밝은 기색과 경쾌한 걸음걸이에 고개를 갸웃 하고 멀어지는 존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레스트레이드는 곧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도 연회에 갈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레스트레이드 또한 존과 마찬가지로 오랜만의 사교 행사에 초대받아 흥분했다는 것을 자각하지는 못한 채였다.
 그리고 그들의 육감이 전해준 미묘한 경고-심상치 않은 일치감을 무시한 결과, 잠시 후 그들은 몹시도 어색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됨은 물론이다.

 

*   *   *

 

 어색하게 침묵을 지키던 두 사람 중 존이 먼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레스트레이드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쳤다.

 

 “저도 그렇습니다.”

 

 상투적인 인사를 주고받던 그들은 곧이어 입을 다시 다물었다. 의사와 환자의 사무적인 관계로만 서로를 인식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는 지금의 예기치 못한 상황에 어찌 대처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둘을 잇는 것이 다른 연결고리도 아니고 무려 홈즈 가문이었다는 것 때문에 더욱 그랬다.
 존이 마차가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고 계단에서 내려왔을 때는 아직 가로등 불빛이 켜질 시각은 아니었다. 셜록과 만나고 나서부터는 절름거리는 정도가 덜했지만 그래도 지팡이를 놓고 다니기에는 아직 불안한 감이 있었기 때문에 전용 케인을 챙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인 것이 조금 시간을 잡아먹었다. 약간 숨이 거칠어진 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존은 현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일반적인 연회는 정오 무렵에 시작하여 해가 지기 전에 마무리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홈즈 가의 연회는 가문 특유의 반골 기질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특이하게도 저녁 무렵에 시작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지는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덕 슈트를 걸치려던 존은 고민 끝에 클래식한 이브닝 슈트를 입기로 마음먹었고 건물 입구의 계단참에 잠시 서서 짙푸른 그림자가 드리워진 거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옳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적으로 지팡이 끝을 보도에 뭉개며 마차에 올라탄 존은 그와 마찬가지로 정석적인 검정 턱시도를 빼입은 레스트레이드와 마주치게 되었고 잠시 입을 벌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둘은 마부의 재촉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움직일 수 있었다.
 이것이 두 성인 남자가 같은 마차에 앉아서 수줍음을 타는 영애들 마냥 서로의 눈치만 살피며 얌전히 앉아 있게 된 사태의 전모였다.

 

 “아까 본 편지 말입니다.”

 

 존이 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며 보랏빛 편지봉투를 꺼내어 보이며 웃어보였다.

 

 “어쩐지 눈에 익은 것이다 싶더니 역시나였군요.”

 

 존의 손에 들린 편지봉투의 겉면에 쓰인 마이크로프트의 필적을 본 레스트레이드가 깜짝 놀라며 자신의 것도 꺼내들며 말했다.

 

 “아까 이상하게 유심히 살펴보신다 싶었습니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전혀요.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존이 과감하게 대화의 물꼬를 텄으니 이어나가는 것은 레스트레이드의 몫이었다.

 

 “어느 쪽과 면식이 있으신 것인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저는 그러니까 동생 쪽과…주인분도 만나는 뵈었습니다만 친분이라고 할 만한 것은 딱히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존이 물어왔다.

 

 “경위님께서는?”
 “아, 그러니까 저는 형님 쪽과 어릴 적부터 교분이 있었기 때문에…….”
 “대단하군요.”

 

 솔직하게 감탄하는 존의 말에 레스트레이드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저야 고작 일개 경위일 뿐이고, 어렸을 적의 인연에 기대어 가외로 초대받는 처지인걸요.”
 “그렇다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한 존이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듯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형님분의 성정은 동생 쪽보다는 한결 온화하지만 어딘지 더욱 까다로운 면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분과 오래 친분을 유지했다는 것 자체가 제겐 굉장하게 느껴지는걸요.”

 

 마이크로프트의 음흉한 성미를 은근하게 표현하는 말에 속이 시원해진 레스트레이드는 절로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존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요. 맞습니다. 그 말이 정확하군요.”

 

 그렇게 두 사람이 홈즈 형제의 괴팍스럽기 그지없는 성정에 대해 은밀하게 토로하며 공범으로서의 공감대를 쌓아가는 동안 마차는 열심히 움직여 홈즈 저택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누가 흡혈귀의 마차가 아니랄까봐 햇빛 한 줄기 새어 들어올 틈새도 없이 내려진 채로 꽉 닫혀 있는 덧창을 보고 후후 웃던 레스트레이드가 존을 향해 고개를 돌려 물어보았다.

 

 “덧창을 올릴까요?”

 

 일종의 스무고개의 질문인 셈이었다. 존이 홈즈 저택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동요하는 기미가 비치겠지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존도 레스트레이드가 무슨 의미에서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인지 이해한 듯 살짝 표정을 굳히다가 금방 덧창을 올려도 좋다고 대답했다.
 덧창을 올리자 저녁놀빛을 받아 반짝이는 광대한 녹색 들판이 시야를 꽉 채웠다. 인적이 드문 풍경을 따라가다 보니 건물들의 자취는 점점 줄어들었고, 퇴색한 황혼과 서늘해지는 오후의 공기가 그들의 얼굴을 시원하게 때렸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지평선 위로 암담한 실루엣을 형성하고 있는 숲을 제외하면 밋밋하기만 한 풍경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나름의 정취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저편에는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이 보였고, 위로 뾰족뾰족한 윤곽을 그리는 어두운 회색 숲 위로는 타는 듯 짙은 자줏빛 구름이 모여들었다. 붉게 빛나는 환한 햇살 아래에서는 늘 그렇듯 풍경의 색채는 빛과 어둠의 대비와 그로 인한 경계가 서로를 잠식하려는 듯 어두운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일몰의 마지막 빛은 녹지의 모퉁이에 아직 머무른 채로, 구불거리며 펼쳐지는 오솔길,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자리한 고저택을 그림처럼 아름답게 물들였다.
 그 광경을 멍하니 응시하던 존이 중얼거렸다.

 

 “홈즈 저택은, 이상하게도 말입니다, 늪이나 모래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자신마저도, 서서히 침몰하는 유사(流砂) 속으로 푹 꺼져 들어갈 것만 같았다.
 몇 개월 전의 기억이 빗물처럼 존의 머릿속으로 다시금 스며들어왔다. 저택 안의 어두운 회랑을 서성이며 음산하고 불길한 색채의 그림들이 그를 내려다보는 가운데 캄캄한 복도를 헤매었던 기억. 아니, 그 이전이다. 비밀스러운 광채를 품은 강철 같은 회색 눈동자가 자신을 마주했을 때의 기억. 그 눈이 새파랗게 빛나며 자신의 영혼 깊숙이까지 사로잡았을 때의 기억. 분명 그때부터 중세의 지하 감옥 같은 저택의 그림자가 그에게로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존은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의 존재를 무언의 형식으로 설명한 까닭과, 정체를 드러낼수록 더욱 두려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을 그에게 한 까닭을. 아무리 알맹이를 덮고 있는 겉껍데기를 벗겨낸다 할지라도 그것의 궁극적인 정체인, 이성의 인지 범주를 벗어난 공포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

  저택의 구관 정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니 불이 드문드문 켜진 저택과 연못이며 분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레스트레이드는 그런 것들에 오래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볼거리가 있었다기보다는, 연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마이크로프트와 잠깐이라도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복잡한 저택의 구조에 익숙하지 않을 존을 혼자 남겨두는 것에 대한 걱정이 들었으나 그 걱정은 다행히도 오래가지 않았다. 평소와는 영 다르게 품위 있는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존을 기다리던 셜록이 그와 존이 정문의 노커를 두드리고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한참을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존을 낚아채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대놓고 레스트레이드를 무시한 채 마치 존과 단둘이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은근한 목소리로 그에게만 말을 걸었고, 깔끔한 암회색 장갑을 낀 셜록의 손에 붙들려가는 존은 약간 놀란 것 같았지만 기분나빠하는 기색은 없었다.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띠며 그들을 잠시 바라보던 레스트레이드는 곧 몸을 돌려 옆쪽의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고용인들이 닦아내고 거미줄을 걷어내어도 결국엔 방치되고 다시 지저분해지기 일쑤이던 계단은 밤새 묵을 손님들을 위해서인지 드물게 말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묵은 먼지를 벗겨내느라 깨나 고생했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2층에 일렬로 마련된 손님방을 지나쳐 3층으로 향했다.
 역시나 빈틈없이 꾸며진 복도를 조용히 걸어 마이크로프트의 개인실 앞에 도착한 레스트레이드가 문을 두드렸으나 웬일인지 아무런 반응도 들려오지 않았다.
 발길을 돌릴까 망설이던 레스트레이드의 속에서 가끔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야, 라는 대담한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저 안에 들어가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릴 참이었으니까 그다지 결례를 끼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 결심을 굳히자 몰래 나쁜 짓을 저지르는 쾌감 같은 것이 느껴져 레스트레이드는 오랜만에 소년같이 맑은 웃음을 지었다.
 심호흡을 하고 방문을 열자 우아하고 단정하게 꾸며진 다실이 보였다. 열린 커튼 틈으로 저녁 햇살이 가득 들어와 방 안을 오렌지색으로 밝혔고, 기다란 프랑스풍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는 잎사귀마다 녹색 빛이 스며들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다실에서 오른쪽의 커다란 문을 열면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적합한 응접실이 있고, 반대편으로 가면 의상실과 침실이 있다는 것을 레스트레이드는 잘 알았다. 하지만 주인 없는 방에 몰래 들어오는 것 이상의 일을 범하고 싶지는 않았던 레스트레이드는 다실 한가운데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앉는 것으로 만족했다.
 벨벳 소파에 앉아 등을 기대고 차분한 색상의 벽에 걸린 액자를 바라보았다. 단순한 화풍의 정물화의 둘레를 장식하는 금빛 액자 위로는 흐릿한 빛깔의 베일이 늘어져 있었다. 몇 번이고 본 그림이었기 때문에 거의 사물의 배치를 외울 지경이었지만 다실의 주인의 고집스러운 취향은 몇 년 동안이나 한결같았기 때문에 불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가 지평선으로 서서히 기울며 다실에 드리운 침묵과 어둠은 차차 깊어갔고, 모든 소리를 잠재운 듯한 고요함 속에서 레스트레이드는 인내심을 가지고 한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한가로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어느샌가 침실 쪽에서 바닥 판자가 작게 삐그덕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한 라일락 화장수의 향기가 다실로 느리게 스며들고 있다고 느낄 즈음에 문이 열리며 마이크로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이런 풍의 은백색 타이를 맨 그는 꼼꼼하게 다려진 실크 양복의 라펠을 살며시 매만지며 레스트레이드를 향해 다가왔고 경위는 다소간의 딱딱한 예의를 갖추며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그런 그를 향해 자리에 앉아도 좋다는 손짓을 하며 마이크로프트가 농담조로 말했다.


 “살금살금 들어와서 날 놀라게 하다니, 많이 늘었군요?”


 그렇게 말하는 마이크로프트의 어조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졸음의 여운으로 나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열린 왼쪽 창문으로부터 막 지는 석양빛이 새어들어오고 있는 참이었고 그건 뱀파이어인 그에게 있어서 기상시간을 상당히 일찍 앞당긴 셈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있으면 손님들이 오실 테니 그걸 감안해서 조금 미리 찾아뵈었습니다.”


 레스트레이드가 말하자 마이크로프트가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헤아려주어서 고마워요, 그렉.”


 친밀한 호칭에 레스트레이드의 양볼이 언제나 그랬듯이 미미한 홍조를 띠었다. 그런 레스트레이드를 마이크로프트가 부드럽게 끌어당겨 이마에 입술을 살짝 대었다가 떼었다. 입술이 떨어지자 레스트레이드는 그의 옷맵시가 흐트러질까 두려워 얼른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마이크로프트가 은근하게 힘을 주어 그를 놓지 않는 것에 순순히 그가 강제하는 대로 가만히 동작을 멈추었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멈춘다. 서로를 향한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는 것처럼 달콤하고 안타까운 포옹은 달아오른 용광로에서 날리는 불티처럼 밝게 날아들던 해가 완전히 지고 방 안에 우울한 그림자만이 드리워질 때까지 지속되었다. 창밖으로 마차가 하나둘씩 도착해서 말발굽이 제자리를 두들기며 다그닥거리는 소리와 남녀가 쌍쌍이 흥분한 목소리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마이크로프트는 겨우 레스트레이드를 놓아주었다.
 못내 아쉽다는 듯이 입꼬리를 미묘하게 일그러뜨리던 마이크로프트가 나직이 말했다.


 “오늘은 저들뿐 아니라 조금 더 특별한 손님도 올 예정이랍니다.”


 마이크로프트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레스트레이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여자’인가 보군요.”
 “그래요. 서신으로 미리 각별한 주의를 주긴 했지만, 막상 도착해서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모르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몽마와 흡혈귀의 혼혈이니만큼 성격이 무척이나 제멋대로거든요, 라고 덧붙이며 그는 미미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제야 레스트레이드는 마이크로프트의 안색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붉은 노을빛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 눈을 날카롭게 빛내는 마이크로프트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올려다보던 레스트레이드의 얼굴에도 한 줄기 고통의 경련이 스쳤다. 레스트레이드의 시선을 감지한 마이크로프트는 평소와 같이 여유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꼭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바라보는 어머니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군요.”
 “그야, 걱정하고 있는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곧바로 이어진 레스트레이드의 대답에 마이크로프트의 창백했던 안색에 어렴풋한 핏기가 돌았다. 너무도 예절바르고 몸가짐이 바른 나머지 종종 그를 애타게 만드는 그의 연인은 때로는 이다지도 직설적으로 감정을 피력함으로써 그의 미묘한 정념의 구조를 자극하여 황홀하게 만드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비록 그 자신은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욱 사랑스러웠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를 침대에 끌고 들어가 무자비하게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마이크로프트는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난폭하게 들고일어나는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 차분하게 한숨을 쉬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그럼, 아래에서.”


 레스트레이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창문으로 스민 밤바람에 감긴 머리카락이 천천히, 꼭 살아있는 것처럼 흔들렸다.

 

*   *   *

 

 60피트쯤 되는 길이에 연한 베이지 색깔의 나무로 벽을 댄 실내의 정가운데에서 3단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빛을 뿌리고 있었다. 높은 원형의 천장에 가까운 높이에서부터 길고 가느다란 창문이 십자 모양으로 달려 있었다. 안팎으로 스며들고 흘러나오는 호박색 불빛 속에서 하인들이 천천히 원탁 주위를 돌면서 손님들의 와인잔을 채우고 음식을 덜어주었다.
 테이블 주변에 모여 속닥이는 사람들의 말소리, 낮아졌다 높아지기를 반복하는 웃음소리, 의자를 끄는 소리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홀의 네 외곽에 놓인 전축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가 잔 부딪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즐거운 목소리에 섞여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사람들은 점잖으면서도 화려함이 돋보이는 옷을 입었고 하나같이 취한 것처럼 흥분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현란한 불빛 아래에서는 사람들의 얼굴도, 단단한 가죽 소파와 벽의 군데군데를 메우고 있는 책장도 오래되어 나긋이 닳은 것처럼 보였다. 곳곳에 적절한 배치로 놓인 램프와 등롱에서 발산되는 밝은 불빛과 그것을 반사하여 증폭시키는 빅토리아 초기 양식의 색유리들이 아니었더라면 꽃이 풍성하게 꽂힌 창가의 화병은 말할 것도 없고 엠파이어 풍의 책상이며 번쩍번쩍 빛나는 벽난로 위의 금박 장식품들을 비롯해 녹색 공작석 테이블까지 온갖 유서 깊고 값비싼 장식품들이 하나같이 닳아빠지고 유행이 지난 물건들처럼 보였겠지만, 세밀한 조명의 안배로 인해 그것들은 낡았다기보다는 과거를 향한 은은한 향수가 감돌고 우아함이 서린 우울함을 내포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그러한 감상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라도 하듯 누군가가 속삭이듯 내뱉었다.


 “낡아빠졌군요Vieux jeu.”


 그러고서는 저희들끼리 키들거리며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웃음을 참으려고 서로를 쿡쿡 찌르고 야단인 것이다. 프랑스 사립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귀국한 오길비 백작가의 영애 오르탕스 양과 그녀의 친구 루드밀라 모라비아 공작 영애였다. 스포드 사의 정찬용 디저트 접시를 두고 한 농담치고는 원색적인 언사에 그녀들의 건너편에 앉은 오길비 백작 부인이 급히 나무랐지만 한창의 젊음이라는 특권을 누리며 한껏 들떠있는 그 나이 또래의 사춘기 소녀들의 행실을 단속하기에는 무리였다.
 마이크로프트를 제외하면 가장 상석에 앉은 윌리엄 하그리브스 경은 그것을 보며 눈살을 조금 찌푸렸지만, 홈즈 경의 표정이 조금도 변치 않는 것을 보며 그 자신도 조용히 품위를 지키는 편을 택했다. 부유한 신사의 가문의 자손이라는 것보다도 보수적인 정책을 고수하는 런던의 부시장으로 더욱 유명한 그로서는 철없는 암망아지처럼 날뛰는 계집아이들을 탐탁하게 여길 리 만무했지만 나이가 지긋한 그가 섣불리 스스로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은 더욱 안 될 말이었으므로.
 대신 그는 사교계 행사에는 진력이 난 노신사답게 다른 화제를 입에 올림으로써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노련한 기술을 발휘하는 재치를 부렸다.


 “이 케이크는 무척 맛있군요. 요전에 포츠머스에서 열린 선상 무도회에서 비슷한 것을 먹어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쪽에서는 서운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의 풍미가 그것보다 훨씬 낫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소.”


 십 년 전만 해도 손님들로 하여금 찬사를 받았을 그의 매너-고상한 주인으로서 식탁을 주관하며 서비스를 베풀고,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가도록 돕는 따위의 기술은 이제는 슬프게도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낡은 관행에 불과했지만 이번만큼은 그 효력을 톡톡히 발휘했다. 그렇지 않아도 막 포크로 하그리브스 경이 가리킨 둥근 원통형의 케이크를 찍어 올리고 있던 델라폰테인 남작 부인이 거들기 시작한 것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바랭이던가요?”


 남작이 핀잔을 주었다.


 “바바 오 롬(럼주에 적신 스펀지케이크)이야, 이 사람아.”


 장난스럽게 질책하는 남편에게 부인이 과장스럽게 우는 소리를 내었다.


 “내가 요리사도 아닌데 사바랭인지 바바 오 롬인지 알아서 무엇하겠어요, 여보. 그런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다니.”


 남작 부처가 밀고 당기며 가벼운 말싸움으로 분위기를 돋우는 한편으로 테이블 끝 쪽에 앉은 에드윈 스톤은 아무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틈을 타 프랑스식 완두콩 요리를 양껏 접시로 퍼담고 있었다. 그는 내달이면 인도로 발령나도록 결정된 외교관으로 정계에서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그 평가를 대변하듯 그는 최근에 살이 오르기 시작한 몸을 멋있게 맞춰 입은 양복으로 감싸고 비교적 일찍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한 머리를 깨끗이 넘기기가 예사여서 늘 헤어토닉 향기를 풍기고 다녔다. 옅은 금발에 조각 같은 미모로 유명한 그의 약혼녀 로자먼드 홀 양은 처녀 특유의 걱정스런 얼굴로 야채 스튜를 깨작거리다가 뒤늦게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식의 현장을 알아차리고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시작한 논쟁이 격화되어 점차 언성이 높아지는 와중에 하그리브스 경의 비서 자격으로 자리에 참석한 야심찬 젊은이 체스터 그린 군은 두 남녀가 실랑이를 하고 있는 것을 약간의 비웃음을 담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멀쩡하게 잘 부푼 슈크림을 찔러 구멍을 내고 흘러나오는 크림으로 반짝반짝 윤이 나는 은접시를 더럽히는 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케이크로 시작된 대화의 주제는 워터하우스 로지로 옮겨갔다.


 “가본 적이 있나요, 왓슨 선생?”


 존이 상이군인이라는 것에 일차적인 호감을 보인 델라폰테인 남작이 그에게 호기심어린 어조로 물었다. 존은 입 안에 물고 있던 송아지 고기를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예, 멀리서 본 적은 있습니다만…….”
 “나중에는 꼭 내부를 구경해보도록 해요. 버드나무 무늬가 그려진 벽지가 그렇게나 멋스럽더군.”


 아까 경솔한 발언으로 테이블 위에 일대 소란을 일으킨 레이디 오길비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머, 저도 좀 끼워주세요. 저희들도 런던에 오기 전에 갔다 온 참이라고요.”


 그다지 얌전한 축에 끼지 않는 어린 숙녀임에는 분명했으나 수레국화처럼 파랗게 빛나는 커다란 눈을 빛내며 애교스럽게 눈웃음을 치는 데에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 옆에 앉은 레이디 모라비아 또한 검은 눈을 깜박이며 이편을 바라보았다.
 둘은 똑같이 재단한 듯이 비슷한 시프트 드레스 위에 비단으로 만든 길고 넉넉한 카디건을 걸쳤는데 오길비 양 쪽이 자잘한 레이스로 풍성한 느낌을 더했다면 모라비아 양은 가냘픈 목에 길고 가는 목걸이를 여러 겹 겹쳐 걸어 단순한 미적 감수성을 극대화시켰다는 데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처럼 두 소녀는 동갑에 동문이라는 것 이외에는 거의 정반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차이점이 많았다.
 일단 오길비 양은 자연스럽게 굽이치는 짙은 갈색에 금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둥글게 말아 올리고 보석이 박힌 상아 빗을 꽂고 나머지는 목 부근으로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어느 남자라도 한번쯤은 그 희고 통통한 손목을 쥐어보고 싶어 할 만큼 보기 좋은 몸매를 가진 생기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였다. 반면 모라비아 양은 검은 머리를 단아하게 틀어 묶고 선이 또렷한 얼굴에 지적인 이목구비를 가진데다가 날씬하고 키가 큰 편이었다. 신사들이 으레 찬양하기 마련인 전형적인 연약한 숙녀의 생김새라고 하기에는 도도해 보이는 콧날에 절도 있는 분위기를 지닌 그녀는 친구인 오길비 양보다 성숙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좀더 귀족다운 위엄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두 소녀는 파리의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모라비아 공작가가 있는 비엔나와 독일의 비스바덴을 거쳐 수많은 도시를 바삐 돌아다니다가 런던으로 온 참이었기 때문에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다양한 화제를 꺼낼 수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질 뻔한 식탁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워터하우스 로지를 비롯해서 최근에 유행하는 코티지 양식에 대한 한 차례 토론이 지나간 후 드디어 홈즈 저택이 화제의 물망으로 올랐다.


 “일찍이 1890년대 무렵에 선친께서 이 집을 사셨죠. 그때만 해도 으리으리한 대저택이었습니다. 밸모럴 성을 연상시키는 외관이었다고 전해 들었을 정도이니까요.”


 있지도 않은 선친 운운 하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마이크로프트를 웃음기 어린 눈으로 힐끗거리며 존과 레스트레이드는 한 차례 눈빛을 교환했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마이크로프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 대에 이르러 워낙 손이 귀해진지라 지금 홈즈 가문에는 저와 동생밖에 없지요.”
 “천만에요. 군식구가 딸려있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세요.”


 델라폰테인 남작 부인이 와인을 마시며 말했다. 그에 마이크로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도 외진 저택이라 무료한 것은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제 오랜 친우인 레스트레이드 경위가 종종 찾아와주곤 하죠. 최근에는 제 동생의 주치의인 왓슨 박사도 함께요.”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른 화제로 넘어가죠.”


 아까부터 신사 숙녀를 막론하고 존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달갑잖게 생각하면서도 꾹 참고 있던 셜록이 결국에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고 말았다. 괴팍스럽기 그지없는 그 행동에 신사들은 깜짝 놀랐지만 숙녀들은 다른 측면으로 그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명문가의 젊고 잘생긴 신사가 아직까지 독신이라는 것은 모든 레이디들의 관심을 한 몸에 집중시키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개업의 존 왓슨 보다는 홈즈 가의 차남인 셜록 홈즈가 구미가 당기는 신랑감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존에게 쏠린 관심을 분산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뜻밖에도 그 관심이 온통 자신에게 쏠려버린 것을 눈치 챈 셜록이 작게 혀를 찼다.

 

*


 제아무리 날고 기는 셜록이라도 다섯 여자-수선스런 부인네들과 말괄량이 숙녀들 뿐 아니라 말석에 앉아 얌전빼고 있던 홀 양도 은근슬쩍 공세에 가담한 탓이었다-의 수다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그도 이 애매하고 불편한 상황에 순응하여 숙녀들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표면적인 노력이나마 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정찬의 분위기는 완전히 무르익었다. 또한 신사들의 환담도 끊임없이 이어져 분위기는 순조롭게 고조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깥 하늘은 완전히 어둠에 잠겨 칠흑처럼 검어졌고 사라진 일몰의 흔적 대신 연회장 곳곳에 놓인 복숭앗빛 갓을 씌운 등불이 홀 안을 속속들이 비추었다. 누군가 저택 바깥에서 이편을 바라보면 마치 저택의 창문들이 하나같이 기괴한 바로크 시대의 보석처럼 마구 빛을 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었다. 부끄럼을 타는 레이디의 뺨처럼 발그스름한 조명의 덕택인지, 밤이 깊어졌지만 내객들의 태도는 더한 열기를 띠면 띠었지 덜해지지는 않았다. 영롱한 조명이 석조 벽난로, 하얀 테이블 커버와 늘씬한 제비꼬리처럼 우아하게 빠진 정장의 옷깃, 벨벳 야회복으로 감싸인 여자들의 둥그스름한 어깨를 아른거리며 비추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저녁 식사는 거의 끝나가는 참이었다. 홀 양의 참견에도 불구하고 스톤 씨가 마지막까지 오믈렛 오 샹피뇽(버섯 오믈렛)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적거리다가 포크를 놓은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누구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처지고 느슨해지기 시작할 즈음 지루함으로 몸부림치던 오길비 양이 선봉장이 되어 마이크로프트를 향해 과감하게 입을 열었다.

 

 “홈즈 경? 이제 이 다음 순서를 진행해도 될 것 같은데요?”

 

 그녀가 대담하게 마이크로프트를 지목하자 마이크로프트는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

 

 “혹시 그거 아십니까, 오길비 양?”

 “뭘 말이에요?”

 “열세 명이 모인 자리에서는 제일 먼저 자리를 뜬 사람이 죽는다는 미신 말입니다.”

 

 마이크로프트의 갑작스런 발언에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지자 물결이 이는 것처럼 식탁 주위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 사이에도 한 차례 동요가 일었다. 담담하지만 암시적으로 불길한 징조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어조에서 풍기는 위험에 존은 불안한 표정으로 마이크로프트를 쳐다보았다.

 

 “자, 그러면 모두들 몇 명인지 한 번 세어보도록 합시다.”

 

 물론 좌중의 인원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열세 명이었다.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섬뜩한 무언가가 짙게 묻어나오는 그의 말을 부인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그래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슬그머니 눈동자를 굴려 홀을 둘러보았고 마이크로프트의 말이 옳다는 것만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참다못한 델라폰테인 남작이 입을 열었다.

 

 “자, 홈즈 경. 내 아내는 마음이 약해 무서운 놀이라면 질색이라오. 게다가 어린 숙녀분들도 계시니 농은 그만하십시다.”

 

 남작의 온건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프트는 고의적으로 소름끼치는 공기를 증폭시키려는 듯 담배를 쥔 손가락 끝에 힘을 단단히 주고 강렬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구식인 사람인지라 미신을 아주 신봉하는 편이지요.”

 

 뒤이은 말에 누구도 토를 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장내는 정적에 휩싸였다. 지금의 상황은 누군가의 지독한 악취미가 틀림없다고 모두들 생각했다. 하지만 마이크로프트는 목소리를 높이는 법도 없이 그저 사람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공포에 질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아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담배를 고쳐 물었고, 붉게 타들어가는 담배 끝부분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허공을 떠돌아 모호한 미소를 띤 그의 얼굴을 악마처럼 보이게 했다.

 존은 반사적으로 셜록을 바라보았다. 셜록은 냉정한 국외자처럼 이 모든 소란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 채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 셜록의 모습은 존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마이크로프트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건 간에 셜록은 결코 이렇게 얌전히 앉아있는 성미가 아니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인내심이라는 것을 발휘하는 데에 능숙치 않다. 또한 쉴 새 없이-그의 말에 따르면 악의는 없는-독설을 주위에 퍼부어 상대방의 계략이 무엇이든 여지없이 깨뜨려버리고는 금세 싫증을 내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셜록은 확실히 이상했다. 그것이 적지 않게 존에게 불안감을 주었다.

 다음 순간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자 그럼,”

 

 그는 입술 사이로 물고 있던 담배를 내려놓고 술잔 손잡이를 빙글 돌렸다. 잔 안에 담겨 있던 노르스름한 샴페인이 샹들리에에서 떨어지는 빛무리를 반사했다. 손가락에 나란히 끼워져 있던 그리스 양식을 본뜬 묵직한 은반지도 그의 가슴 언저리에서 번쩍 빛났다.

 

 “미스 아이린 애들러와 미르칼라 폰 카른슈타인 여백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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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