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존이 때 아닌 성정체성의 고민에 빠져있을 때 셜록은 자신의 방에 가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어제 양껏 마신 피 덕분인지 컨디션은 아주 좋았지만, 셜록의 머릿속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제의 존은-그야말로 섹시했다. 자신의 피를 마시라며 당당하고 결단력 있는 태도로 셔츠의 단추를 끌어내리는 그 모습이며, 정반대로 양순하게 목을 셜록 앞에 얌전히 드러낸 그 모습이며, 쾌감으로 인해 수줍게 신음하는 존의 여러 모습이 셜록의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셜록은 그런 장면이 떠오르는 것을 막으려 고개를 흔들었다.
 존은 친구로서 우정을 베푼 것뿐이라고.
 셜록은 그렇게 속으로 말하며 머리를 차갑게 식히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조금 한가하게 생각할 여유가 나자 바스커빌에서 자신이 폭주했던 일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되엇다. 그 때 존은 동굴로 가보자는 자신의 말에 상당히 의아한 기색이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행동은 자신이 봐도 상당히 어색한 행동이었다. 존이 가보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도 아니었는데 자신이 앞장서서 동굴로 간 셈이 아닌가.
 분석해보자면 자신의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존을 그리로 데리고 가게 된 원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근원적인 부분은 마이크로프트가 손을 대긴 했지만, 훤히 트인 들판에서 존을 덮치는 것의 위험을 인지한 자신의 이성과 존의 피를 마시고야 말겠다는 욕망의 어울리지 않는 이중주로 인해 그 날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한 번으로 끝났다면 좋았을 것을, 이성의 통제가 더이상 듣지 않게 된 그의 다리는 정해진 철로로 움직이는 기차처럼 존의 플랫 앞으로 와버렸고, 어제 자신은 또다시 존의 피를 마셨다.
 허기가 일단 채워지고 나자 다음의 문제가 된 것은 언제나 가진 것보다 더욱 욕심이 생겨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었다. 존이 자신의 아래에서 헐떡거리는 모습이 다시금 생각이 나며 그는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도 하반신이 이렇게 되었던 것을 존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기느라 다소 고충이 있었다. 셜록이 피를 마시면 피를 빨리는 존도 쾌감을 느끼지만 마시는 당사자도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바스커빌의 동굴 안에서는 피를 마시겠다는 욕구에 급급하여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사실이었다.
 존의 피를 마심으로써 유발되는 정욕은 온건하고 잔잔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뼈째 씹어 삼켜도 모자랄 듯한, 격렬한 파랑과도 같이 폭급한 성질의 것이었다. 셜록은 피를 핥아 마시면서도 그의 안으로 침범하고 싶다는, 잔혹하고 이기적인 생각이 드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해야 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침을 한 번 삼켰다. 누워있는 그의 하얀 목울대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는 서둘러서는 안되었다.
 이때의 셜록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이미 존을 어떻게든 손에 넣겠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생각을 마친 그는 온기 없는 침대에서 몸을 훌쩍 일으켜 미련 없는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불빛 한 점 없어 퇴색한 꽃잎의 빛깔처럼 보이는 누르스름한 복도 바닥에 셜록의 호리호리한 그림자가 자리했다가 금방 사라졌다.

 

*

 

 어스름이 진 런던의 어느 외진 골목길 안쪽의 어느 구석에는, 그저 버려진 건물처럼 보이는 한 건물이 있다. 3층과 지하 창고까지 있는 그 건물은 외벽의 칠이 조금 벗겨진 것 외에는 정상이다. 하지만 그 건물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다. 건물이 위치한 지역이 우범 지역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 구역에서 내로라 한다는 양아치들도 그 곳의 말을 들으면 듣지 못한 체를 하며, 심지어는 입에 담는 것도 꺼려한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나 휘돌아갈 것 같은 그 건물에는 그러나 한정된 소수, 그리고 초대받은 몇몇 사람은 꾸준히 드나든다.
 인적이 드묾에도 불구하고 그 건물에 불이 꺼지는 날이 없는 이유는, 그 곳이 세바스천 모런 대령의 아지트이자, 대령이 주 거점으로 삼는 도박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호랑이 사냥꾼으로 유명한 그는 전쟁과 사냥으로 얻는 스릴에는 진력이 나있는 사내라, 은퇴한 이후로는 그의 승부사 기질을 십분 발휘하여 도박가를 평정하고 나서 은밀한 향락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상류층 자제분들도 종종 드나드는 이곳의 내부만큼은 고급스럽기 그지없었다. 특히 높으신 나으리들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지하실은 더욱 그랬다. 오늘도 세바스천 모런 대령은 자신이 잡았던 호랑이 가죽을 두른 악취미적인 화려한 의자에 앉아 심심풀이 도박을 즐기고 있다. 심심풀이라지만 액수는 일반인들이 입에 거론하기조차 부담스러운 액수임은 당연하다. 돈을 꽤 잃은 그였지만 이 정도 손해는 손해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양 그는 연신 웃고 떠들며 최상급 몰트 위스키를 들이키고 있었다.

 

 "이런, 패가 엉망이군!"

 

 모런 대령이 자못 흥겹게 소리치던 그때 한 사람이 지하실의 문을 열고 등장했다. 한눈에 보아도 지하실에서 한창 돈을 만지고 있는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사람처럼 보이는 그는 약간 눈치를 보며 상석에 앉은 모런 대령을 향해 다가갔다. 모런 대령은 그를 보며 흥을 깬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눈치를 주었지만, 그 정도의 면박은 감수할 만한 사안인 듯 그는 대령의 귓가로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알콜 기운이 올라 붉었던 대령의 얼굴은 남자의 말을 계속 들으면서 더욱 붉어졌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흥청망청하던 좌중은 대령의 안색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은 그는 남자를 먼저 내보낸 후 인위적인 미소를 주위의 사람들에게 보이며 말했다.

 

 "여러분, 흥을 깨서 정말 미안합니다만, 이 몸을 원하는 곳이 또 있군요. 저 없이도 잘들 즐기실 수 있죠?"

 

 사람들은 대령에게 말 못할 사정이 생긴 것을 눈치 채고 순순히 그를 보냈다. 개중 '대령이 없이 어찌 즐겁게 놀라고 합니까'라며 푸념을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아첨기 섞인 빈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와 3층으로 향한 그는 급히 소집된 자신의 수하들 사이로 걸어들어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사실인가?"

 

 말보다는 증거물로 증명하는 것이 낫겠다는 듯, 한 사람이 아무 말 없이 봉투를 내밀었다. 미약하게 떨리는 손을 내밀어 봉투를 받아든 그는 페이퍼나이프를 성급하게 그어 내용물을 앞의 책상 위에 쏟았다.
 책상 위에 흩어진 사진들에는 단 한 사람의 얼굴만이 담겨있었다.
 멀리서 급하게 찍은 듯 흔들리고 화질이 조악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주된 피사체의 정체를 알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진을 혐오스럽다는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모런 대령의 험악한 기세에 주변인들은 입을 열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사진 속의 인물을 잠시 쏘아보다가 이를 부득 갈며 입을 열었다.

 

 "위치는 파악했나?"
 "몇 번 나다니는 것을 포착하긴 했지만, 놈이 은신처로 사용할 법한 곳은 아직 추적하지 못했습니다."

 

 주눅이 들어 말하는 부하에게 못마땅한 눈빛을 보내는 그였지만,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그 소임을 다한 그들을 질책할 생각은 없었는지 모런 대령은 부드럽게 말했다.

 

 "좋아. 앞으로는 이 빌어먹을 놈의 은신처 파악에 주력해라. 여러 곳일 가능성이 있으니 그 점 고려하도록 하고. 추적 즉시 연락하도록."

 

 해산, 이라고 말한 모런 대령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수하들은 방을 나갔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모런 대령의 오른팔인 로널드 아데어였다. 모런 대령은 그를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나가고 뭐하나?"
 "저 자를 처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의 경중을 아셔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다소 무뚝뚝한 그의 말에 대령은 기분이 상한 듯 했지만 한 번 들어보자는 듯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아데어는 입을 열었다.

 

 "지금 모리어티가 죽고 나서 흩어진 세력을 규합하여 대령님이 가장 강한 세력으로 부상하시긴 했지만, 아직 그 세력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어 결집력이 부족합니다. 이전의 행동력의 절반도 채 수복되지 못했는데, 지금은 조직의 결속을 좀 더 다지시고, 이후에 그를 노리심이-"

 

 거기까지 들은 모런 대령은 벌컥 화를 내었다.

 

 "닥쳐!"

 

 화를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던 대령의 기세에 움찔한 아데어는 어깨를 움츠렸지만 다행히도 대령이 폭력을 쓰는 사태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화를 가라앉힌 대령은 말했다.

 

 "자네의 식견은 높이 사지만, 내게는 이 일이 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네."

 

 대령은 생전의 모리어티를 추종하듯 유난히 따르던 사람 중에 하나였기에 지금의 일을 나중으로 미룰 것을 제안한 아데어에게 몹시 화가 난 듯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듯 조용히 당부했다.

 

  "아데어, 이번 한 번만큼은, 자네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게나."

 

 대령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한낱 비서인 아데어로서는 더 이상 항명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대령은 책상 위에 쏟아진 사진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희멀건 얼굴, 마른 실루엣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곧 그 분의 뒤를 따라가게 해주마…셜록 홈즈."

 

*

 

 문을 닫고 나온 아데어는 2층의 사무실에 들러서 총을 챙긴 후, 계단을 걸어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섰다.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골목길을 벗어난 그는 주변을 슬슬 둘러보며 한 장소로 향했다.
 그 곳은 한 카페였는데, 반백의 머리의 사내가 신문을 들여다보며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고 있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지 엎드려서 힌트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는 너무 몸을 숙인 나머지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자신의 티스푼을 밀어 떨어뜨리고 말았다. 챙그랑 소리가 들렸다. 하필 티스푼은 아데어가 카운터로 향하는 중간 지점에 떨어져있었다. 아데어는 무시할까 하다가 마지못해 다가가 스푼을 주워 건넸다.
 겸연쩍었는지 작게 감사의 뜻을 표한 남자는 티스푼을 쟁반 안쪽에 다시 올려놓고, 크로스워드 퍼즐로 눈을 돌렸다.
 아데어는 카운터로 다가가 커피를 한 잔 주문했고, 테이크아웃이었기 때문에 그는 커피를 받은 후 곧장 가게를 나갔다. 그가 나가는 것을 곁눈으로 훔쳐보던 반백의 사내는 아까 티스푼을 건네받을 때 함께 받은 새끼손톱만한 종이 두루마리를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카페를 벗어나 경시청으로 향했다.
 경시청 안으로 들어가자 도노반이 그를 맞았다.

 

 "경감님, 어디 갔다 오셨어요?"

 

 주머니 안에 든 종이 두루마리를 손가락으로 굴리며, 레스트레이드가 대답했다.

 

 "정보를 얻어오는 중이야."

 

 도노반은 궁금해 하는 기색이었지만 레스트레이드는 별 언질 없이 자신의 사무실로 쏙 들어갔고, 그녀는 나중에 그 정보가 무엇인지 알 기회가 오길 바라며 다시 자신의 업무로 고개를 돌렸다.
 사무실 안에 들어가 두루마리를 조심스럽게 펼친 그는 안에 적힌 속기를 천천히 읽었다.
 그의 눈이 한 순간 두루마리의 어느 글자가 쓰인 부분에 고정되었다.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한 번 읽어보아도 쓰여 있는 글씨는 바뀌지 않았다. 레스트레이드는 한동안 그렇게 두루마리에 쓰인 글을 읽고 또 읽었다.

 

(Let Me In Ch.1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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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