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존은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자신의 새 방의 창문에 흘린 지 얼마 안 되는 핏방울이 떨어져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생각이란 것을 하려고 노력해봤자 성과가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은 존은 커피나 한 잔 마시면서 다시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그는 풀어진 가운을 다시 여미고 허리끈을 묶고 부엌으로 향했다.

 

*

 

 셜록은 마이크로프트가 준 방에서 널브러져 누운 채로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을 모은 채로 천장을 보던 셜록은 문득 한 쪽 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눈앞에 있는 건 흉한 색이 되어버린 손이다. 보랏빛과 검붉은 색이 어우러진 끔찍한 뼈다귀같은 손. 손을 쥐었다 핀다. 까드득 하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손이 오므렸다가 펴진다. 당시 존의 새로운 플랫 안으로 집어넣었던 부분만 피가 빠져나오고, 경계 바깥에 위치했던 손목 위로는 멀쩡한 피부다.
 햇빛에 정말로 타죽을지 아닐지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밤의 어둠을 틈타 주로 활동했던 셜록의 피부는 핏줄이 보일 정도로 하얗다. 허황한 영화에 등장하는 흡혈귀들처럼 빛을 받은 피부에서 다이아몬드같은 광채가 난다거나 손톱이 투명하다거나 안구 전체가 동공으로 뒤덮이는 상태는 나타나지 않는 점에 셜록은 다소 안도했다. 그러나 오감이 상당히 발달한 것은 분명해보였다. 손목 아래 바싹 마른 부분으로 서서히 혈류가 확장되면서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확연히 재생이 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회복 속도를 높이려면 피를 마셔야 할게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렇게 말했지만, 셜록은 다른 사람의 체액을 함부로 마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셜록은 본능적으로 혀로 송곳니를 쓸며 방 한쪽 구석에 새로 설치된 소형 냉장고를 쳐다보았다. 스쳐지나가는 눈길로 냉장고를 보던 셜록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고 정신을 차린 존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일층까지 터벅터벅 걸어 내려온 존은 식탁에 앉아 준비된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를 두 개 째 만들던 존은 뒤이어 내려온 또 다른 세입자를 보고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부스스한 머리의 여자가 하품을 하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비틀거리며 의자에 털썩 앉은 그녀는 힘없는 손길로 빵조각을 집어 잼과 버터만 쓱쓱 바른 채로 바로 앞의 존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스스럼없이 입에 우겨넣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름은 아직 몰랐지만 헝클어진 머리에 보헤미안 풍의 프린트 원피스를 걸친 그녀는 존의 바로 아래층에 사는 여자였다. 여자는 여윈 볼이 터져 나올 듯 우걱우걱 빵을 씹고 꿀꺽 삼킨 후 말했다.

 

 "그런데 어제 새벽에 이상한 소리 들으셨어요?"

 

 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왜요? 무슨 소릴 들으셨기에?"

 

 여자는 입가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훔치며 말했다.

 

 "듣기만 한 게 아녜요. 이상한 걸 봤다구요."

 

 여자가 소곤거렸다.

 

 "어제 잠이 안 오길래 누워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창문으로 휙 하고 검은 그림자가 지나가더군요. 새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건 새의 크기가 아녜요."

 

 흥미가 생긴 존이 물었다.

 

 "얼마 정도의 크기던가요?"
 "사람만 했어요. 제 생각엔 도둑이 아닌가 싶어요."

 

 별 대단찮고 평범한 추리를 마치 위대한 사상을 토로하듯 말하는 그녀에게 적당히 응수를 해 준 존은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책상 앞의 의자에 앉은 존은 아까 여자가 한 말을 생각해보았다. 곧바로 뇌리에 떠오른 건 '눈먼 은행원'사건이었다. 그때는 고층 건물을 자유자재로 침입해 사람들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져서 자신과 셜록이 사건을 맡았었다. 그러나 그 사건의 주범이었던 '블랙 로터스'라는 조직은 이미 괴멸되었고, 지금의 일과는 엄연히 다른 점이 몇 가지나 되었다. 일단 창문 쪽의 건물 외벽은 당시와는 달리 디딜 만한 곳이 없다. 게다가 어떻게든 벽을 타고 올라왔다 치더라도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피 한 방울만 흘리고 간 것은 가장 이해할 수가 없는 점이었다. 경고의 표식을 놓아둔 것도 아니며, 영문 모를 혈흔만 남기고 갔다는 것이 더욱 이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렸다.
 존은 책상에 턱을 괸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

 

 셜록은 자신이 햇빛에 타죽지 않고 화상도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곧바로 자신의 방에 둘러져있던 검은 천들과 창문을 막아놓은 판자들을 떼어내려고 했으나 마이크로프트가 만류했다.

 

 "이것마저 없으면 뱀파이어답지가 않잖니."

 

 가만 두면 침대 주변에 은십자가나 마늘 화환이라도 장식해 놓을 것만 같은 마이크로프트의 열의에 셜록은 같잖다는 표정과 함께 '마이크로프트 혹시 흡혈귀 페티시즘이라도 있어?'라는 말 하나로 간단히 그를 제압하고 침대 주변을 몇 겹이고 감고 있던 천을 뜯어내었다. 걷어내고 또 걷어내어도 끊이지 않고 펼쳐지는 휘장-게다가 그 천이 흔한 원단 시장에서 볼 수 없는 무척 귀한 원단이라는 사실에도-에 셜록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기와도 비슷한 끈기를 가지고 족히 몇 십 미터는 되는 길이의 휘장을 전부 뜯어낸 셜록은 시무룩한 표정의 마이크로프트를 외면하며 중얼거렸다.

 

 "영국의 세금이 이런 데에 쓰인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야 할 텐데 말이야."

 

 아직도 고딕풍의 콘셉트를 포기할 수 없었던 마이크로프트는 어느 샌가 고풍스런 의자를 가져와 앉으며 말했다.

 

 "근데 셜록, 피는 안 마시는 거냐?"

 

 고상한 척 표정을 짓고 있지만 궁금한 기색이 역력한 마이크로프트는 셜록 전용 연구원이라도 된 듯하다.

 

 "안 마셔."

 

 퉁명스럽고 짧게 대답한 셜록에게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형을 수고스럽게 하지 말고 어서 네 상태에 대해서 좀 말해 봐라."

 

 '내가 왜?'라며 거절하려던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의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말했다.

 

 "피를 안 마신다고 해서 배가 고프다거나 형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지는 않아. 체내수분이 배출되는 양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약간의 수분 보충은 필요해. 일반 음식은 먹든 안 먹든 크게 상관은 없어."

 

 아무리 피가 고프더라도 마이크로프트의 피는 셜록이 가장 마지막 수순으로 고려할 것이기도 했다.

 

 "근력이라던가, 그런 변화는?"

 

 셜록은 연이은 그의 질문에 약간 짜증스런 기색이었으나 순순히 간략하게 대답했다.

 

 "스파이더 맨이 된 기분이야."
 "벽타기라도 해 본 거냐?"

 

 마이크로프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셜록에게 그가 단정하는 투로 말했다.

 

 "존의 집에 올라가본 거군."

 

 조금 미간을 찌푸렸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셜록은 반박하지 않았다. 질문할 거리는 다 질문하고 답변을 얻어낸 그는 만족한 듯 의자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우산을 집어든 후 방을 나섰다.
 방문을 닫고 나가려던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문을 빼꼼 열고 셜록에게 당부했다.

 

 "함부로 나다니지 마라. 모런 대령이 요즘 런던 중심가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것같으니까."

 

 모런 대령, 세바스천 모런은 뛰어난 무훈으로 유명한 전직 대령이다. 그러나 그의 본모습은 선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리어티의 측근으로 암암리에 2인자로 알려져 있을 정도의 범죄자였으니까 말이다. 모리어티의 사후로 그 암적인 위상이 더욱 커져 그 행보가 점차 과감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셜록은 그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현명하게 처신할 것을 믿기로 했다. 닫힌 문 밖으로 우산을 짚는 소리와 규칙적인 발걸음소리가 멀어져갔다.

 마이크로프트의 발소리가 완전히 이 방이 있는 층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셜록은 형이 가져온 팔걸이의자를 창가로 끌어다놓고 불량한 자세로 기대앉았다. 창밖의 눈 내리는 풍경을 투명한 눈동자에 담은 채 잠시 그 상태를 유지하던 그는 서서히 재생되던 손에 생각이 미쳐 손을 들어보았다.
 손등의 절반가량까지 돋아 올라온 새 살이 보인다.
 이건 아예 손 전체가 해골 같은 손이었을 때보다 더욱 그로테스크하다는 생각을 하며 셜록은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재생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피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셜록은 순간적으로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내버려두고 간 소형 냉장고를 흘깃 쳐다보았지만, 아무리 셜록이라도 생판 모르는 이의 피가 담긴 혈액팩을 빨아먹는 짓은 하기가 어려웠는지-그렇다고 팔에 바늘을 꽂는 선택지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곧바로 단념하고 다시 손으로 눈길을 주었다.

 

 -존의 피라면 먹을 만 할 텐데.

 

 찰나 그런 생각이 셜록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의 생각에 자신이 당황한 셜록은 하마터면 아슬아슬하게 앉아있었던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셜록의 이성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그 충동을 억누르려고 했지만 한 번 자각한 욕념은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부각되기만 했다.

 

*

 

 존은 의자에 담요를 방석삼아 놓고 앉아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았다. 며칠 간 싸늘한 날씨와 잿빛 구름을 드리우던 하늘은 때가 되었다는 듯이 연이어 눈을 쏟아내고 있었다.
 흰색 눈송이가 길을 점차 덮는 모습을 바라보던 존은 컵받침에 내려놓았던 반쯤 식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

 

 마이크로프트는 종종 셜록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지만 지난번 이후로 어떤 비밀스런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셜록은 그동안 마지못해 차리던 예의범절마저 싹 팔아먹은 듯 마이크로프트가 무슨 말을 하건 신경조차 쓰지 않고 혼자만의 상념에 심취해있었다.
 가끔은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지르거나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내는 그를 더 이상 지켜보기가 지겨웠던 마이크로프트는 이참에 국외 출장이나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잔먼지같은 눈가루가 휘날리는 밤이다. 셜록은 언제 미친 짓을 했느냐는 듯 멀쩡한 안색으로 깔끔히 다린 와이셔츠와 항상 입던 진회색 롱코트를 입고 어스름이 짙게 깔린 거리로 나섰다. 코트 깃을 한껏 세워 얼굴을 가린 그는 거리의 사각만을 골라 다니며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경계 바깥의 그림자 속으로 자신을 묻었다.

 

*

 

 오늘따라 존이 살고 있는 하숙집의 세입자들은 찬바람 부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로 외출한 상태여서 항상 바글거리던 하숙집은 어쩐지 텅 빈 느낌이었다. 평소에도 조용했지만 오늘따라 인기척이 드문 집 안에서 존은 외롭게 시간을 보내었다.
 새벽이 다 되어가도록 영화를 줄곧 보던 존은 자신의 감각을 줄곧 간질이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방에서 들리는 인기척이겠지 싶어 재삼 영화에 집중하려던 존은 그 소리가 다른 하숙인들이 내는 소리가 아니며, 이 방 어딘가에서 작게 톡톡, 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귀를 기울였다.
 그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존이 영화를 멈춘 것을 눈치 채었는지 소리는 잠시 잦아들었다. 그러나 톡톡, 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다시 끈질기게 이어졌다.
 존의 오감과 육감은 지금 자신의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 '그것'이 지난번에 자신의 창문가에 핏자국을 남기고 간 바로 그라는 것을 직감했다. 존의 이성은 그 직감을 불신했다. 이는 환청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죽은 이를 애도하느라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지 못한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존의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려는 듯 간헐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린다. 커튼에 막혀 귀에 들릴까 말까 한 크기의 그 소리는 너무 집요하지는 않은 빈도로, 그러나 끊임없이 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존은 섣불리 문을 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일어난 자세로, 차마 창문 쪽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존을 더더욱 그 자리에 얼어붙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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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