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장편/203이후/뱀파이어

 

 셜록의 사나운 눈초리에도 마이크로프트는 흔들리지 않고 미소 띤 얼굴을 유지했다. 그 완만한 호선을 그리는 입술을 셜록은 증오스럽다는 듯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마이크로프트는 영혼을 대가로 한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인간을 구슬리는 악마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 마시고 싶다면 마시는 수밖에 없단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를 내고 싶은 것을 참고 흥분된 숨을 몰아쉬며 그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다. 명백히 화난 기색을 드러내는 셜록을 보고도 마이크로프트의 안색에는 섬뜩하리만치 변화가 없다. 그는 외려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혹시 실수로 죽인다고 해도, 내가 처리해 줄테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마렴."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한 셜록이 단호하게 말했다.

 

 "닥쳐."
 "거듭 말하는 거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어."

 

 잠깐 입을 다물었다 다시 입을 연 마이크로프트는 정곡을 찔렀다.

 

 "존은 널 좋아해."

 

 연이어 그가 또 다른 정곡을 찌른다.

 

 "너도 그렇지."

 

 셜록은 놀라 평소보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조급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더욱 안 된다는 것을 모르겠어?"

 

 이건 현명한 대답이 아니었다. 말을 내뱉고서 그 사실을 깨닫는다. 화를 못 이겨 깊숙이 숨겨놓았던 속엣말을 꺼내어버린 셜록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오히려 골칫거리가 하나 줄어든 거지."

 

 그는 손을 들어 여전히 해골 같은 상태의 셜록의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제까지 그 상태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빈정대는 듯 신랄한 어조다. 셜록은 부지중에 계속 드러내고 있었던 한 쪽 손은 그때까지 걸치고 있던 코트 주머니 안에 푹 찔러넣었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 것 같아?"

 

 재차 빈정거리는 마이크로프트와 더는 냉정한 정신으로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진 셜록은 그를 한 번 노려본 후 성큼성큼 걸어 방을 나갔다.
 객실의 문이 쾅 닫히고, 마이크로프트는 닫힌 문을 감정이 징후가 비치지 않는 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

 

 셜록은 넓은 황무지를 정처 없이 헤메었다. 거칠기로 악명이 높은 황무지의 바람은 오늘따라 산들바람처럼 얌전했다. 악마같이 불어대는 센 바람보다 더욱 악마 같은 자들이 자신의 영역에 방문한 것을 눈치 채고 지레 겁을 먹은 것일지도 모른다. 셜록은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서 피식 웃었다.
 멀리 구름에 가리운 달이 보인다. 구름은 달을 완전히 덮었으나 달이 있음직한 자리가 둥그렇게 빛난다. 미약하게 새어나오는 달빛이 어느 한 곳을 비춘다. 허허벌판인 이 지대에 존재하는 고지대이다. 지반 자체가 계단처럼 불쑥 솟아있는 그 위는 평평하며, 다소 압도적인 위용의 바윗덩이들이 한데 뭉쳐있다. 가까이 접근한 그는 어렵지 않게 위쪽으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가서 꼼꼼히 바윗덩이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을 살펴본 셜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바윗덩이들 자체가 하나의 오두막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인간 남자 한 명 정도가 쉬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입구를 찾아낸 셜록은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눅눅하였으나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셜록은 평평한 바닥을 찾아 거리끼는 기색 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그 곳은 조용하다.
 그는 다른 누구도 없는 짙은 어둠 속에서야 안심한 듯 평온하게 호흡하며 등을 돌벽에 기대었다.

 

*

 

 고전영화 특유의 흑백의 스크린.
 따스한 느낌으로 지직거리는 온화한 검은색과 회색과 흰색.
 한가운데에는 오롯이 그 혼자서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존이 자리한다.
 동그랗고 맑고 그 어떤 더러운 때도 묻은 적 없는 하늘색의 눈이 스크린 바깥의 자신을 응시한다.
 가로로 된 스크린에는 존의 흉상이 담겨있다.
 하얀 목.
 하얀 목.
 하얀 목.
 클로즈업.

 

*

 

 기대고 있던 돌벽의 한기가 파고드는 느낌에 셜록은 소스라치게 깨어났다.
 아니, 그것은 한기가 아니라 그저 악몽이다.
 한 번 악몽을 꾼 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셜록은 동굴 안으로까지 햇빛이 침입할 즈음이 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지난밤 머물렀던 객실로 향했다.
 객실은 텅 비어있다.
 셜록은 객실을 살폈다. 보란 듯이 놓아둔 휴대전화기가 테이블 위에 있다. 그는 휴대전화기의 전원을 켰다. 예약 메시지로 보내어진 메시지가 화면에 뜬다.

 -숙박비는 충분히 지불해놓았으니 머리나 좀 식히고 와라. M

 셜록은 메시지를 닫았다. 마이크로프트가 무슨 꿍꿍이로 셜록이 바스커빌에 남아있기를 종용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지속적으로 자신의 정신을 침범하는 욕념을 어떻게든 다스릴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한적한 도시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럭저럭, 방책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틀이 지났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방 안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흰 목과 흘러내리는 피에 대한 환상이 자신의 뇌리를 점령했다. 꿈속에서뿐만 아니라 깨어있을 때조차 그랬다. 이제는 송곳니 끝이 간질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하루만 더 기다려보았다가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바스커빌 연구소에서 제공해준-존이 아닌 다른 사람의-피를 섭취해보기로 했다.

 또 한 번의, 흰 목에 대한 환상이 스쳐지나갔다. 셜록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찬 물로 세수를 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눈에 핏발이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한 남자가 보인다. 망상의 발작을 막기 위해 그동안 일체 잠을 자지 않았건만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남은 건 한심한 남자. 셜록은 자신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수건을 수건걸이에 다시 걸어놓고 화장실 밖으로 나온 그의 귀에 익숙한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셜록은 그것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귀가 잘못 판단하였기를 바랐다. 그러나 예상은 들어맞아, 발소리는 셜록의 방 앞에 멈추었고, 방문을 노크했다.
 문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셜록?"

 

 그건 존의 목소리였다.

 

3

 

 존이 말했다.

 

 "셜록!"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질문한 셜록은 존이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자문자답했다.

 

 "오, 멍청하긴. 당연히 마이크로프트겠지?"
 "그래. 네가 아파서 전지요양을 와 있다고 하더라고."

 

 전지 요양을 하기엔 조금-이상한 곳이지만, 너답다, 라고 말하며 싱긋 웃는 존의 얼굴을 본 셜록은 눈앞에 흰 목에 대한 환상이 오버랩 되는 것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도 되?"

 

 지나치게 긴 시간 존을 문가에 세워두었다. 셜록은 쭈뼛거리며 존은 안으로 들였다. 안으로 들어온 존은 소파를 향해 눈짓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존은 냉큼 소파에 앉았다. 서 있던 셜록은 존이 왜 앉지 않아? 라고 묻자 그제야 같은 소파의 반대편 끝에 앉았다.
 존이 셜록에게 말했다.

 

 "마이크로프트가 말하길 네가 방 밖으로 통 나가지 않을 거라고 하던데 내가 보기엔 사실인거 같네."
 "쉬려고 왔는데 돌아다니는 건 기력 낭비라네, 존."

 

 셜록은 귀찮은 듯 대꾸했다. 존은 셜록의 퉁명스런 말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의사로서의 소견을 말해보자면, 셜록, 자네는 명백한 운동 부족이야."

 

 자, 나가자구, 라며 열성적으로 셜록을 잡아끄는 존에게 딱히 반항할 이유가 없었다. 다짜고짜 존, 자네와 있으면 자네를 잡아먹고 싶어진다고! 라고 토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말이다.

 

*

 

 셜록과 존은 사냥개 사건을 조사할 때 들렀다가 피를 본-단어 그대로의 피는 아니었지만-계곡 쪽으로는 다시 가보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들은 아예 정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침묵이 깔렸다. 둘 사이에는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존은 다시 셜록에게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셜록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상황-특히 셜록의 변화-도 있고, 마이크로프트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정말로 셜록이 몸이 좋지 않은데 자신이 억지로 바깥으로 끌고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셜록이 입을 열었다.

 

 "내가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나중에 이야기해주겠다고, 지난번에 말했지."
 "그랬지."

 

 셜록이 천천히 말했다.

 

 "내가 비로소 정신을 차린 건 3개월 전이네. 유전자 변화라는 건 일반 대중들의 생각만큼 쉬운 절차는 아니라서,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정양을 해야 했지. 게다가 적응 문제도 있고-알다시피, 햇빛이나 은탄환같은 것 말야-해서 그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어. 또다른 이유로는 현재 런던의 상황이 있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런던을 비롯한 영국의 상황일세. 모리어티가 죽긴 했지만, 그 수하들이 여전히 남아있어. 그 상황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가장 위험한 것은 자네야. 자네는 믿음직한 친구이긴 하지만 만의 하나라는 경우도 고려해서 자네에게 내 생존을 알리지 않은 것이라네."

 

 평소의 독설어린 말투와는 달리, 무뚝뚝하나 조리 있게 설명하는 셜록의 말이 존은 섭섭하긴 했으나, 납득은 갔다. 하지만 또 다른 질문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자살을 한 이유. 그것에 대해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으나, 몸도 좋지 않은 셜록을 추궁하는 것을 삼가자는 의미에서 그는 그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 때 짙은 구름이 끼어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내며 한 곳으로 빛을 뿌렸다. 존이 그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평지에 있는 지형치고는 특이하군."

 

 그곳은 셜록이 사흘 전 가보았던 고지대의 바위동굴이었다. 다소 흥미어린 존의 얼굴을 본 셜록은 말했다.

 

 "한 번 가보겠나?"

 

 존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바람이야?"
 "존, 자네가 궁금해 하는 것 같아서. 근데 '무슨 바람이냐', 라니. 그 말이야말로 무슨 뜻이지?"
 "몰라서 묻나?"
 "몰라."
 "자네가 여간 움직이길 싫어해야 말이지."
 "그건 런던이 여간 지루한 도시가 아니기 때문이지."
 "지루하단 말야? 런던이?"
 "그래. 모리어티가 죽었으니, 이제 더욱 지루해졌겠군."

 

 그거 하나는 섭섭한 걸, 이라고 말하며 벌써 저만치 걸어가는 셜록을 향해 존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지대 쪽으로 앞장서서 가는 그를 뒤따라갔다.

 

*

 

 고지대 바로 앞에 당도한 존은 감탄성을 흘렸다.

 

 "이야, 정말 높구만."

 

 존이 감탄하는 사이 셜록은 훌쩍 바위를 짚고 고지대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위로 올라가면 바위 동굴이 있다고."

 

 셜록의 말에 존이 놀라며 말했다.

 

 "이미 와 본 거야?"
 "안 와봤으면 내가 어떻게 알겠어?"

 

 존은 고지대의 모습을 한 번 더 눈에 담고는 고지대 아랫부분에 있는 바위를 딛고 올라섰다. 재빠르게 잘도 올라가는 셜록과는 달리 존은 상당히 고전하는 기색이었다.

 

 "아무리 자네가, 그게, 되었다고는 해도, 이거 너무 차이나는 것 아냐?"

 

 어느새 맨 위에 도착해서 존이 올라오는 모습을 구경하던 셜록이 말했다.

 

 "내 몸 탓이 아니라 자네 몸을 탓해야 할 걸.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무려 3.5파운드나 쪘잖나. 자네야 말로 운동 부족 아닌가?"

 

 인정하긴 싫지만, 셜록의 눈썰미는 정확했다. 게다가 황무지로 나오기 전에 존이 셜록에게 한 말을 그대로 받아치고 있다. 존이 속으로 귀신같은 자식!이라고 욕을 하며 항변했다.

 

 "3파운드야!"
 "그런가? 흠."

 

 셜록이 들으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저 자식 이걸 의도하고 여기 올라오자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존은 전직 군인의 힘을 보여주마! 라며 열정적으로 고지대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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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