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근친/역키잡

 

 셜록 홈즈의 어머니, 해리엇 홈즈는 좀처럼 밖으로 외출을 하지 않는다. 본인이 즐기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녀는 영국의 싸늘한 기후와는 맞지 않는 연약한 체질을 타고났다.
 그러던 그녀가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셜록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셜록이 앉아있는 의자 옆 서랍장 위에 놓인 액자 속의 남자 때문이다. 금발에 다정한 느낌의 푸른 눈. 그리 작지 않은 신장이지만 다부진 체격때문에 오히려 작달막해보이는 체구. 남자는 사막을 배경으로 모랫빛의 군복을 걸치고 카메라 렌즈를 향해 웃고 있다. 강한 햇빛 때문인지 조금 찡그린 듯한 표정이다.
 해리엇이 오랜만에 밝은 표정으로, 심지어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무엇을 입을지 정하는 사이 셜록은 액자를 다시 흘끔 보았다. 아이는 짧은 시간동안, 사진의 남자를 뚫어지도록 보았다.
 지루해.
 셜록은 다시 무릎 위에 놓인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

 

 "존!"

 

 셜록은 별 감흥없이 해리엇과 남자의 만남을 구경했다. 남자의 이름은 존 왓슨이다. 예전에 한 번 듣긴 했으나 본래 셜록은 가치없는 정보라고 판단되는 것은 곧바로 뇌내에서 삭제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아마도 듣자마자 의식적으로 잊어버렸을 확률이 높았다.
 남자는 아프가니스탄, 또는 이라트에서 근무한 듯 거무스름하게 그을려있고 짚고 있는 지팡이로 보아서 다리를 부상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해리엇과 존이 격한 포옹을 할 때에 미묘하게 찌푸려지는 존의 눈가를 보아서는 부상을 입은 부위는 오히려 팔인듯 싶다. 그렇다면 단순한 림프절 이상인가.
 존을 빤히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존이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서 있을 때는 이상이 없지만 걸을 때만 다리를 저는 것으로 보아서는 트라우마성 관절 질환이군, 이라는 생각을 하는 셜록에게 존이 말을 걸었다.

 

 "네가 셜록이구나?"

 

 존이 활짝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셜록은 자신의 앞에 선 남자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보다가 늘어뜨리고 있던 손을 올려 존의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존. 말씀 많이 들었어요."

 

 셜록의 인사를 들은 존이란 남자는 사뭇 감동한 기색이다. 셜록의 어조가 매우 무미건조했으며 의례적인 어투란 것도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 셜록을 번쩍 들어 안으며 해리엇에게 말했다.

 

 "이렇게 귀여운 조카 이야기는 왜 안 한 거야?"

 

 해리엇이 뭔가 대꾸를 하는 것 같았지만 셜록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이런 친밀한 스킨십에 당황하여 멀뚱히 둘을 쳐다보았다.
 정신 박약에 히스테리가 수시로 발작하는 해리엇은 아이를 다루는 일에는 젬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육아에 소질이 없었다.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는 하급 공무원인 홈즈 씨 또한 일에 파묻혀 사느라 아이를 돌볼 능력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덕분에 첫 아이인 마이크로프트를 낳고서도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여 그녀에게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전담시켰을 정도였고, 스스로도 아이를 키우는 일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한동안 임신이 되지 않도록 극도로 신경을 쓰기까지 했다. 그러다 6년 후에 실수로 피임을 하지 않은 바로 그 하룻밤에 불쑥 셜록을 임신하였던 것이다. 첫 아이를 낳아 기를 때와는 달리 집안 형편은 상당히 달라져, 중상계층에서 간신히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그 위상이 낮아져 있었기에 처음과 같이 유모를 들일 형편은 안되는데, 육아 경험은 없으니, 아이에 대해 절로 소홀해질 수 밖에 없었다. 시도때도 없이 빽빽 우는 아이를 달래기는 커녕 한 번 안아주는 것도 제대로 못했으니, 셜록이 스킨십에 거리감을 느끼는 아이로 자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거의 처음으로 느낀 타인의 온기에 폭 싸인 셜록은 한참 높아진 눈높이에서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

 

 존은 한동안은 런던 근교의 제대자 숙소에서 지내는 듯 해리엇의 집으로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그와의 만남으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자 셜록은 존과의 첫 만남에서 느꼈던 당황을 한때의 해프닝으로 치부할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해리엇이 세 번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리엇과 홈즈 씨로서는 앞으로 더욱 등골이 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셜록에게는 희소식이었는데, 해리엇의 임신으로 인해 존이 홈즈 가에 들르는 빈도가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해리엇과 존과 셜록, 이렇게 셋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점점 해리엇이 임신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침대에 몸져누워있는 날이 늘어지며 셜록과 존, 이렇게 둘이서만 방 안에서 지내는 것이 점차 익숙해져 갔다. 처음의 존은 어린 아이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영 어색해하며 함께 그림책을 읽자고 제안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지만, 셜록의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 하나로 존은 어줍잖은 시도를 하는 것을 그만두었고, 차라리 셜록의 취미인 독서에 편승하여 조용히 책을 읽는 편을 택하였다.
 그때부터 셜록의 방은 둘만의 작은 도서관이 되었다.

 

*

 

 "정말...대단한데?(That...was amazing.)"

 

 어느 날 선심을 쓰듯 존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준 셜록은 존의 반응에 속으로 매우 놀랐다. 거듭 말하는 바이지만 셜록의 부모는 그다지 아이에게 애착을 가질 여유도 의지도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바이올린도 셜록이 간간히 모은 용돈과 홈즈 씨의 얼마 안 되는 월급 중 일부를 합쳐 간신히 중고를 산 것이었으며, 셜록이 혼자 낡은 악기를 이리저리 만져대며 끼익끽 소리를 내는 것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셜록은 잠시동안 눈을 굴리며 말없이 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Do you think so?)"

 

 존은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대단해. 정말 대단하구나.(Of course it was. It was extraordinary. It was quite extraordinary.)"

 

 셜록은 어쩐지 존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는 부끄러운 표정을 짓게 될 것 같아 살짝 그를 외면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보통은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요.(That's not what people normally say.)"

 

 존이 웃음기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보통은 어떻게 말하는데?(What do people normally say?)"

 

 셜록이 농담하듯 툭 뱉었다.

 

 "Piss off!"

 

 존이 말도 안된다는 듯 피식피식 웃었고, 바이올린을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는 핑계로 고개를 돌린 셜록의 얼굴에도 몰래 미소가 피었다.

 

*

 

 한동안 안온한 시간을 공유하던 둘의 시간에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가 생긴 것은 셜록이 그의 어머니 해리엇의 임신을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셜록은 성적인 지식 측면 한정으로 어린 아이답게 순진했고, 임신한 지 3개월이 지난 해리엇의 몸이 여느 때보다 더욱 약해진 점, 배가 조금씩 나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존은 혼자 끙끙대며 고민을 했다. 차라리 탱크가 딸린 사단 하나를 상대로 혼자서 전투를 하는 편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존은 간신히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 아이가 생기는 거란다'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럼 얼마나 사랑해야 아이가 생기는 거죠?"

 

 하루 동안의 사랑의 양을 1이라고 할 때, 얼마만큼의 사랑이 모여야 아이가 만들어지는 건가요? 하루 걸러 하루 사랑하면 그 전전날에 사랑한 양은 변화가 없나요? 라는 얼토당토없으면서도 뭔가 묘하게 수학적인 질문을 연이어 해대는 셜록에게 존은 부모들의 전매특허 '좀 더 크면 다 알게 된단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좀더 커다란 문제가 생긴 것은, 그녀가 임신 5개월 때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당장 그만둬! 그만둬! 그만두라고!"

 

 셜록이 다음 달에 개최되는 교내 악기 연주 대회의 참가곡을 연습하고 있을 때였다. 사실 셜록은 특유의 비사교적인 성격 탓에 그런 대회에 참가하는 것에 질색하였지만, 존의 기대감 어린 표정, 셜록이 그의 제안을 거절하자 산책을 나가주지 않는 주인 때문에 잔뜩 실망한 강아지같은 표정을 본 후에 어쩔 수 없이 존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존은 셜록에게 자신이 소리를 지른 사람이기라도 한 듯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해리엇의 방으로 향했다. 셜록은 조금 기다렸다가 조용히 존의 뒤를 따라갔다.

 

 "해리, 해리...진정해."
 "저 소리...저 소리..."
 "그래, 셜록이 바이올린을 켜는 소리야."
 "듣기가 싫어...!"

 

 해리엇이 불분명한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존은 해리엇에게 말했다.

 

 "셜록은 다음 달에 학교에서 연주회를 한다고. 그리고 배 속의 아기는 셜록의 연주를 좋아할거야."
 "...그래?"
 "그럼. 바이올린 선생한테 물어보라고. 셜록의 연주 실력은 그 나이대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대."

 

 조곤조곤 말하는 존. 미처 닫지 못한 문 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셜록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묘한 것이 끓어올랐다.
 이건 뭐지?
 뜨겁고도 차가우며 격렬한 감정. 적의와도 유사한 그 감정의 방향은 해리엇을 향하고 있다.
 아 그렇군.
 셜록은 깨달았다.
 이것이 질투라는 거로군.
 셜록은 비로소 책 속에서만 읽었던 감정의 실체를 느끼게 되었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본 자신은 마치 다른 여인에게 다정하게 구는 연인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물어뜯는 여자같았다. 셜록은 제 자신에게 조소했다.
 해리엇은 존의 상냥한 손길에 다시 잠들었다. 존은 마지막으로 그녀를 두어번 토닥여주고 방을 나섰다.

 

 "!"

 

 셜록은 방문을 연 존을 올려다보았다.
 존은 갑작스럽게 셜록을 발견하여 깜짝 놀란 듯 했으나 조용히 말했다.

 

 "자, 셜록. 우리 방으로 돌아가자. 엄마가 잠드셨어."

 

 셜록은 잠시 해리엇이 누운 침대를 바라보고 존의 인도에 따라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돌아간 셜록은 책상 위에 놓고 온 바이올린을 다시 집어들고 네 가닥의 현을 검지손가락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가느다랗고 하얀 현이 손가락 끝을 파고든다. 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셜록이 방 안의 광경을 모두 본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 말을 해야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셜록이 자못 우울한 표정을 얼굴에 띄우며 말했다.

 

 "엄마는 내가 바이올린을 켜는 것을 싫어하세요."

 

 존은 일단 부정했다.

 

 "그렇지 않아, 셜록."

 

 셜록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손가락을 가장자리의 현에서 하나 옆의 현으로 옮겨 느리게 문질렀다. 존이 셜록의 표정을 살피더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적어도 나는 네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걸 좋아해."
 "오."

 

 셜록은 작은 감탄성만 흘리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의 어머니가 일반적인 어머니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 다만 그가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짓는 것은 존이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행동이 조금, 기분 좋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마를 이해해줘야 해. 아이를 낳는 건 많은 수고로움을 필요로 한단다. 엄마는 그래서 아프신 거고."
 "엄마는 언제나 아팠는 걸요."

 

 존은 매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셜록을 동정하는 듯 연민어린 표정이다. 사실 동정을 받는 것은 그닥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존의 동정은 길거리 거지에게 베푸는 일회성 동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위해주는 것임을 알았기에 셜록은 다소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그때 존은 셜록의 조그만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말이다, 조금만 참으면 동생이 생길 거야. 기쁘지 않아?"
 "동생?"
 "그럼."

 

 손을 잡은 것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셜록이 존의 손 안에서 자신의 손을 슬그머니 빼었다. 존은 셜록의 마음도 모르고 말했다.

 

 "셜록은 여동생이 좋아, 남동생이 좋아?"

 

 일반적으로 남동생이 좋아, 여동생이 좋아, 라고 묻는 것이 일반적인 의문형 패턴일텐데, 여동생을 먼저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답은 뻔했다. 셜록은 당연한 질문을 한다는 듯 말했다.

 

 "여동생이군요."

 

 존은 약간 놀란 듯 했다.

 

 "굉장하구나, 셜록! 어떻게 맞춘 거지?"
 "그냥요."

 

 존이 셜록을 보며 말했다.

 

 "동생이 생기면 셜록은 오빠가 되는 거야."

 

 존은 셜록에게 동생이 생기면 무엇이 좋은지 말하기 시작했으나 셜록은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 다정한 남자는 아무에게나 다정함을 흩뿌리고 다녀.(사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그게 여자애든 남자애든, 존은 그 아이를 더 예뻐할 지도 몰라.
 불안감이 셜록을 덮쳤다. 셜록은 존이 말을 그치길 기다렸다가 물었다.

 

 "동생이 태어나면 존은 나를 더이상 보살펴주지 않을 건가요?"

 

 셜록은 이 질문을 입 밖으로 내자마자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질문이냔 말이다. 그러나 존은 별로 개의치 않는 기색으로 셜록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셜록. 삼촌은 셜록이 제일 좋아."

 

 그렇구나, 라고 셜록은 안도했다. 어느 틈에 속으로 생각하던 것이 얼굴에 표출이 되었는지, 존은 귀여운 아이를 대하는 태도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셜록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잡았다.
 처음으로 자의에 의해 다른 사람의 손을 만져보는 셜록의 손길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존도 셜록이 그런 행동을 먼저 해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조금 놀란 기색이었으나 이내 셜록의 손을 마주 잡았다.

 

 "물론 동생이 어리니까 앞으로 단 둘이 보낼 시간은 줄어들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둘이 함께 동생을 돌보는 거야."

 

 '단 둘이 보낼 시간은 줄어들지도 몰라.'

 

 셜록의 불안감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셜록의 내부에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폭발했다.
 숨막히도록 지독한 독점욕.
 그리고 셜록의 머릿속에서는 일련의 계획이 수립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태어난 이래로 이처럼 빠른 속도로 두뇌가 작동한 적은 없었다. 셜록은 동기부여가 된 사람의 추진력이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체험하고 있었다.
 셜록은 마음 속으로 외쳤다.
 이 남자는 내 꺼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어.
 셜록은 존의 손을 더욱 꼭 쥐었다.

 

-Ch.1 fin-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