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근친

 

 

 셜록이 마이크로프트와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 베이커가에서는 존이 셜록의 물음에 당황의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존, 존은 키스할 때 느낌이 어땠어요?"

 

 셜록은 특유의 시선으로-그의 투명한 청회색 눈과 마주하면 존은 어쩐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오늘 마이크로프트와 동행한 짐 모리어티라는 자가 와서 키스를 했을 때 셜록은 자신이 존에게 종종 해왔던 도둑 키스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키스라고 하며 혀를 움직여대었던 것은 단순히 입술을 맞대는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셜록은 문득 궁금해져서 존에게 질문을 한 것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존은 그동안 살아온 동안 여러번의 키스를 해보았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용기내어 물어본 것인데, 존은 어쩐지 쩔쩔매며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했던 셜록은 약간의 짜증을 섞어 다시 물어보았다.

 

 "설마 키스를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거짓말을 치진 않을 거죠?"
 "그건 아니란다. 하지만..."

 

 존은 황급히 대답하다가 혀가 꼬여 말을 멈추었다.
 가끔은 귀엽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맹랑하고 똑 부러지는 아이가 오늘은 자신을 당황하게 만드려 작정을 하였는지, 그 질문에 대답을 꼭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기세여서 존은 식은땀을 흘렸다.

 관자놀이를 벅벅 긁고, 미간을 찡그리고, 배어나오는 땀을 닦아내는 존을 셜록은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한숨을 푹 쉬고 나서야 존은 말했다.

 

 "그게 어째서 궁금한 거니?"

 

 셜록이 말했다.

 

 "궁금해하면 안되는 일인가요?"
 "그렇진 않다만...에흠."

 

 누가 듣기에도 어색한 헛기침소리를 내며 존이 턱을 매만졌다.

 

 "키스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입맞춤이지."

 

 존은 직접적으로 느낌을 이야기하지 않고 에둘러 말했다. 틀린 소리는 아니었으나, 셜록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존, 제가 질문한 건 키스할 때의 느낌이 어땠냐는 건데요. 그리고, 키스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끼리도 할 수 있는 것 아니예요?"

 

 분명 짐 모리어티가 자신에게 키스한 것은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닐 터였다. 그와의 키스 자체는 감각적으로 기분이 좋다고 칭할 만했지만, 자신은 존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상을 묻고 있는 거였다.
 그때 존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셜록에게 혹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의 흐름이었지만, 평소에 이성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시피 한 셜록이었기에 조금 늦게 떠올리게 된 것이다. 배제할 수는 없는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을 떠올리니 존의 가슴 한 구석이 왜인지 뒤틀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떠오른 묘한 생각에 존은 머뭇거리다가 일단 셜록의 질문에 대답했다.

 

 "물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끼리도 키스를 할 수 있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가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키스보다 더욱 좋지 않겠니?"

 

 존은 대답하면서도 이런 말을 갓 중학교에 입학할 셜록에게 해도 되는 것일까 확신을 갖지 못했다. 차라리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 건가요'라는 질문이 훨씬 대답하기 쉬울 텐데, 라고 존은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히도 셜록은 그 정도 선에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랑 존이랑 키스하면 기분이 아주 좋겠네요."
 "?!"

 

 존은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그 바람에 존은 무언가를 마시고 있지 않은데도 사레가 들리는 느낌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연신 콜록대는 존의 등을 토닥인 셜록이 존이 조금 진정한 후에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요?"

 

 존의 얼굴이 기침때문에 빨갛게 된 것을 내려다보며 셜록은 그 모습이 매우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존이 사레가 들릴 정도로 당황한 이유는 이해하지 못한 셜록은 존을 바라보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존을 사랑하고 존은 나를 사랑하잖아요."

 

 다시금 기침이 올라오려는 것은 진정시킨 존은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아무래도 셜록은 지나치게 책이나 실험에만 몰두하다보니 그 나이 대 아이들이라면 알 만한 성 지식과 감정의 교류의 측면에는 무지한 듯 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왓슨의 머리 한 구석에서 조그마한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셜록이 결코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다. 또한 셜록은 굉장히 똑똑한 아이다. 그런 아이가 고작 이런 문제에 대해 헷갈릴 리가 없다는 것이 존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뜻일텐데...
 존과 셜록은 서로를 보면서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암중의 두뇌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시간은 잠시처럼 느껴졌지만 존의 대답을 기다리는 셜록에게는 매우 길게 느껴졌다.
 존이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살펴보는 것에 인내심이 바닥난 셜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존?"
 "으응?"

 

 셜록이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말했다.

 

 "왜 대답이 없어요?"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셜록의 얼굴을 존이 빤히 보았다. 저 표정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셜록은 존을 시험하려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했을 뿐이었다는 판단을 내리고서 셜록이 순진하고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순간 셜록의 의중을 의심하며 차갑게 굳었던 마음이 풀리며 존의 표정이 슬쩍 누그러졌다.

 

 "셜록, 나는 너를..."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어쩐지 민망했던 존은 뺨을 살짝 붉히며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사랑...한다만,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단다."

 

 셜록이 귀기울여 듣는 기색이자 존이 어색함을 떨치고 말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가장 일반적인 사랑이지. 너와 나 사이는...가족애란 말이 더 적합하구나."
 "남자랑 남자는 남자와 여자같은 사랑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셜록이 물었다. 존은 점점 화제가 대답하기 곤란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며 이마를 스윽 문질렀다.

 

 "물론, 남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사랑이 존재하지. 여자와 여자 사이에도 가능하고 말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남자와 여자와의 사랑이 더 보편적이란다."

 

 준비하지 않고 말한 것 치고는 적절한 대답이라고 존은 스스로 생각하며 약간 웃었다. 셜록이 무얼 보았길래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지나가면서 분명 텔레비전에서 그런 정보를 접했다고 확신한 존은 앞으로는 셜록이 TV시청을 할 때 좀 더 주의깊게 살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셜록은 존의 설명이 납득이 간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일단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 싶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 존이 화제를 바꾸어 셜록에게 물었다.

 

 "마이크로프트랑은 밥 맛있게 먹고 왔어?"

 

 셜록이 존의 옆에서 물러나 맞은편 소파에 걸터앉으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네."

 

 어쩐지 차가운 어조에 존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마이크로프트를 사주해서 진학 문제를 논의하도록 한 것이 들통이 난 것이 틀림없었다. 존이 슬슬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면서 셜록이 말했다.

 

 "있잖아요, 존."
 "?"
 "나, 존의 뜻대로 에든버러에 있는 중학교에 갈게요."

 

 의외로 쉽게 변심한 셜록의 말에, 존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셜록은 그 눈을 바라보며, 자신이 방금 꺼낸 말을 번복하고 싶었지만, 그러는 것이 더욱 우스울 터였다.
 셜록은 마음 속에 남아서 퍼지는 아쉬움의 여운을 매섭게 쳐내고 말했다.

 

 "내가 오래 여기 없겠지만 존은 날 잊지 않을 거잖아요. 그렇죠?"

 

 확신이 깃든 어조였다. 존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오, 셜록. 나라고 네가 싫어서 보내는 게 아니란다."
 "알아요."
 "자주 찾아갈 테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렴."

 

 셜록은 그제야 안심한 듯 웃음을 지었다.

 

*

 

 셜록의 고집으로 존과 셜록은 오랜만에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셜록이 막무가내로 어리광을 부리는 일은 드물었지만, 셜록이 힘든 결정을 스스로 내렸기 때문에 이 정도 어리광은 당연히 수용할 만 하다고 생각하며 존은 생각을 정리했다.

 

*


 역시나 침대가 좁다.
 자신의 팔베개를 배고 옆에 누운 가느다란 소년의 몸에서 여린 심장 박동이 가까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존은 살짝 몸을 뒤척였다. 존이 뒤척이자 눈을 감고 있던 셜록이 눈을 살그머니 떴다.

 

 "미안해요."

 

 괜한 고집을 부려서...라고 소심하게 중얼거리는 셜록을 향해 미소를 지은 존은 셜록을 자신의 품에 더욱 가까이 끌어안았다.

 

 "이러면 침대가 좁지 않을 거야."

 

 셜록이 존을 올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존이 그런 셜록을 사랑스럽다는 듯 보며 말했다.

 

 "내일은 함께 학교에 가자. 가서 미리 학교도 둘러보자고."
 "좋아요."

 

 그렇게 소근거리며 둘은 대화를 나누었다. 드문드문 이어지던 대화는 곧 잦아들어, 침실 안에는 이윽고 평온한 숨소리만 감돌았다.

 

*

 

 얼마나 지났을까.
 어둠 속에서 셜록이 불현듯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색소가 연한 셜록의 눈이 칼날 위에 날아든 햇살 조각처럼 잠깐 하얗게 빛났다. 다행히 악몽을 꾼 것은 아닌 듯, 조용히 눈을 뜬 셜록은 자신을 안고 잠이 든 존을 바라보았다.
 사뭇 차갑고 집착적인 시선으로 한동안 존을 바라보던 셜록은 존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존의 얼굴 위로 몸을 숙여, 입술을 가볍게 겹쳤다.
 닿은 입술은 미지근하나, 닿은 것만으로도 셜록의 내부에서는 어떤 충동이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짐 모리어티와 키스할 때의 무덤덤한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체 이 남자의 입술은 뭐가 다른 거지. 셜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곧이어 자문자답했다. 그거야 존의 입술이니까. 셜록은 어리석은 질문을 한 자신에게 조소하면서도 줄곧 존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지 않았다. 연한 피부가 맞닿은 경계를 침범하고 싶다는, 달착지근하면서도 끈적한 그 충동에 몸을 맡기고 존의 입술을 열어 그 안의 것을 탐닉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셜록은 쉽사리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다소 긴 시간동안 입술을 맞대고 있던 셜록은 아쉽다는 듯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고 다시 존의 품 안을 비집고 들어가 잠을 청했다.

 

*

 

 셜록이 한밤의 도둑 키스를 하는 그 순간, 존은 격하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입술을 뗀 셜록이 자신의 팔 안에 몸을 누이는 것을 느낀 존은 불안정한 숨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자제하고 최대한 숨을 죽이려고 애썼다. 셜록은 그런 존을 부드럽게 토닥이고 잠깐동안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셜록의 호흡 간격이 다시 멀어진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존은 몰래 숨을 토하여 눈을 떴다. 자신의 입술에 닿은 그 메마른 듯한 입술은 너무도 상냥하게, 마치 꽃 위에 내려앉은 나비와도 같은 가벼운 감촉만을 남기고 어느 순간 날아갔다. 존은 입술을 문지르며, 자신의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오, 셜록, 셜록.
 존은 그 말만을 되뇌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Ch.2 fin-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