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역키잡

 

 

 개찰구는 시끄러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쓸데없는 소음을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한 나날을 영위해왔던 평소와는 달리 허용 범주 이상의 과다한 소음에 노출된 셜록의 귀는 피로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귀를 막고 역에서 북적이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셜록은 트렁크를 질질 끌고 플랫폼을 나섰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기차를 탄 순간부터 끈질기게 따라붙던 사람이 지금까지도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시끄러워 죽겠지?"


 

 놀리듯 빙글거리며 말한 그는 검은 눈을 반짝이며 셜록에게 미소지었다. 당연한 것을 굳이 물어볼 정도로 할 말이 없는 건가? 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셜록은 신경질을 가라앉히고 나직하게 대꾸했다.

 "...조용하진 않지."

 

 셜록의 대답에 짖궂게 웃는 그 눈동자를 무시하고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남자를 무시하고 휘적휘적 앞서 걸어나가는 것에 남자는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으며 셜록에세 볼멘소리를 토해냈다.

 

 "냉정해라."

 

 그는 여전히 셜록의 옆을 따라오며 들으란 듯 크게 말했다.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말 같았지만 그 말을 들은 셜록은 무척이나 귀찮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개찰구에 다다라 셜록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열차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그들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만나는 경계선에 자리한 공간이었다. 그를 지금껏 따라온 사람도 셜록의 바로 옆에 멈추어섰다. 남자는 정말이지 말하기를 좋아했다. 평소에는 잘만 입다물고 있지만 셜록 앞에서는 그 입을 놀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는 듯 했다. 그 입만 좀 다물면 좋을 것 같았지만 남자가 셜록의 요청에 순순히 응할리 만무했다.

 셜록이 학교에서 나와 열차에 올라탈 때부터 그의 곁에 붙어있던 남자는 그가 이곳에 멈추어 자신의 말을 듣기를 원할 것이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와중에도 교묘하게 핀트를 조절하여 남을 조종하길 즐기는 그의 성향으로 미루어보자면 그는 셜록을 가지고 모종의 놀이를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누구의 뜻대로, 특히 이 남자의 뜻대로 놀아나는 것은 질색인 셜록은 계속해서 그를 무시해왔으나 이런 혹을 단 채로 존을 만나는 것은 셜록이 결코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 남자가 그 교활한 입으로 존에게 어떤 말을 나불거릴지도 모르는 것이었고말이다.
 남자에게 대충이나마 응수해주기로 마음먹은 셜록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모리어티, 대체 뭘 원하는 거야?"

 

 멈춰선 셜록의 앞에 서서 그와 마주보고 선 모리어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작별 인사."

 

 모리어티가 지금껏 긴 시간동안 자신의 옆에 머물렀던 의도가 겨우 그런 의도일리 없었다. 셜록은 같잖다는 듯 픽 하고 콧방귀를 뀌고선 말했다.

 

 "지금 네가 돌아서서 네 갈 길을 가고, 나는 이대로 내 갈 길을 가면, 그게 작별 인사지. 혹시 말 그대로의 '인사'를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해주지. GOOD BYE!"

 

 한시라도 빨리 그를 떼어내고 존을 보고 싶었던 셜록은 그 어느때보다도 빠르게 지껄였고 마지막으로 연극적인 어투를 발휘해 작별 인사를 고했다. 셜록이 속사포로 쏟아내는 말을 듣고 있던 모리어티는 파하하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런 웃기는 걸 원하는 게 아니란 거 잘 알면서 왜 그래?"

 

 말 한 마디로 순식간에 셜록을 웃음거리로 전락시킨 모리어티는 느긋하게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그는 한 걸음 셜록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말했다.

 

 "이런 찰거머리는 떼어버리고 얼른 네 님을 만나러 가고 싶은 거지. 네 외삼촌 말이야. 이름이-"
 "그 이름 입에 올리지 마."

 

 어우, 예민하셔라-라고 셜록을 비웃은 모리어티는 보란 듯이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존 왓슨, 이었지 아마? 존 해미쉬 왓슨...정말 귀여운 이름이야. 네가 찜해놓지 않았다면 관심도 가지지 않았겠지만...아니, 아닌가? 하긴 너같은 애를 평범한 애처럼 예뻐해준 걸 보면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긴 하지."
 "닥쳐."
 "알았어. 네가 원하는 대로-닥칠게."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빼앗았다가 다시 돌려주는 것처럼 잔혹한 장난기가 어린 목소리로 모리어티가 말했다. 하긴 이 어린애한테는 '존 왓슨'이 금구였지. 그렇지만 저렇게 반응하는 걸 보면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
 그렇게 생각한 모리어티는 자기 입으로 닥친다고 말하긴 했음에도 전혀 닥칠 생각은 없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쉽네. 기껏 취향에 맞게 길들여놨더니, 이렇게 매몰차게 떠나려고하다니."

 

 은근슬쩍 셜록의 뺨을 감싸며 짐짓 슬픈 어조로 말하는 것에 셜록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누가 누굴 길들여? 착각하지 말라고."
 "혹시라도 외로우면 언제든지 불러. 알잖아. 나는 너를 완전히(completely) 이해(understand)할 수 있다는 거."

 

 요염한 기색이 가득 밴 눈웃음을 치며 말하는 모리어티의 말에 셜록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대체 언제까지 네 말을 들어줘야 하는 거지?"
 "내 말이 그렇게나 듣기 싫어?"

 "그래."

 

 셜록의 단호한 대답에 모리어티는 한 발 양보한다는 듯 풀죽은 어조로 말했다.

 

 "그럼 부탁 하나 들어줘."

 

 뜬금없는 모리어티의 말에 셜록은 단번에 거절했다.

 

 "네 부탁따윈 들어주지 않아."
 "한 번 들어보기라도 해."

 

 모리어티의 강권에 셜록은 노골적으로 싫다는 티를 내며 지친 표정으로 뭔데, 라고 물었다. 모리어티는 슬몃 웃으며 말했다.

 

 "Kiss me, Sherlock."

 

 전혀 예상치 못한 요구를 받은 셜록은 눈이 약간 커졌으나 금세 평상심을 회복하고 대꾸했다.

 

 "No."

 

 오늘만 해도 두 번째로 가차없이 거절당한 모리어티는 짐짓 상처받았다는 듯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마안-마지막 키스만큼은 해주는 게 도리잖아. 우리 사이가 여느 사이였던 것도 아니고..."

 

 안 그래? 라고 속삭이는 모리어티의 조름에 굴하지 않고 셜록은 차갑게 말했다.

 

 "Shut up, bitch."
 "That's very harsh of you."

 

 그리고 모리어티의 입술과 그의 입술이 부딪혔다. 어느새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서 입술을 억지로 부비어대는 모리어티의 행동에 셜록은 당했다 싶었지만 어차피 닳는 것도 아니고, 라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그의 키스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이 정도로 그를 떼어낼 수 있다면 자신이 더욱 환영이었던 것이다. 아, 빨리 존을 만나고 싶어...셜록은 그렇게 딴생각을 하며 모리어티의 능수능란한 키스에 무심히 응했다.
 깊은 것도 아니고 얕은 것도 아닌 이상한 키스를 두 남자가 나누고 있는 사이 셜록은 자신의 뺨에 따갑게 꽂히는 시선 쪽을 향해 무심코 눈을 돌렸다.
 그는 어떤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빛 바랜 듯한 금발에 동그란 푸른 눈.
 존 왓슨.

 존?
 셜록은 낭패다 싶어 급히 입술을 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존에게 이 모습을 들키다니!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자신과 존의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글거리며 몰려들었다가 저만치로 쓸려갔다. 멀리서 보이는 존의 눈에는 일말의 당황한 기색이 스치고 있었다. 자신이 모리어티와 키스한 것을 본 것이 분명하다. 모리어티가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리며 시간을 끈 것은 이걸 노리고 한 것이 분명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만회한다? 이제 존을 어떻게 해명한다?

 셜록은 속으로 혀를 쯧하고 차며 모리어티를 밀쳐내었다.
 그는 얄미울 정도로 즐겁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낭군님이 당도하셨나보네, 셜록."

 "...빨리 꺼져."

 

 셜록이 존이 모리어티와 자신이 붙어있는 광경을 다시 볼까봐 안절부절못하며 거칠게 말하는 것에, 모리어티는 싱긋 웃었다. 그는 환히 미소지으며 특유의 멋을 잔뜩 부리는 어투로 드디어, 작별 인사를 고했다.

 

 "Farewell, Sherlock Holmes."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