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역키잡

 

 

 베이커 가에 도착한 셜록은 택시에서 내린 뒤 주위를 휘 둘러보며 후우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가 떠난지 어언 6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런 만큼 영원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것만 같았던 베이커가의 외관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셜록은 기억과 같은 풍경을 눈으로 되새기고, 새로이 변한 부분을 뇌내정보에 갱신하며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바로 고향에 돌아온 느낌일까. 아련하고도 따스한 물결-아니, 낡고 부드러운 모포에 감싸인 느낌.
 셜록이 그런 생각을 하며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가운데 존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셜록의 태도가 존을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했다. 차 안에서의 격한 대화가 오간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셜록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한 표정으로 존을 향해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짓고 있었다. 예전의 셜록은 저렇게 능숙하게 미소지을 줄은 몰랐었다. 그 때문에 줄곧 무표정만 고수하고 있었던 어린 셜록을 떠올려 지금의 셜록과 비교를 하자니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은 더욱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자신을 보는 셜록의 얼굴에 담긴 미소에서는 어쩐지 지어낸 듯한 감이 풍겼다. 그에 위화감을 느낀 존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것이 가시지 않았으나, 이것도 셜록 나름의 화해의 제스처려니 싶었기 때문에 그도 결국엔 미소를 돌려주었다.
 셜록은 존이 그의 트렁크를 들어주려는 것을 마다하고 양 손에 하나씩 든 채로 현관으로 들어섰다. 마침 방을 나서던 허드슨 부인이 몰라보게 큰 셜록을 용케 알아보고 다가와 환대하는 것에 셜록이 활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I'm home, Mrs. Hudson!"

 

*

 

 6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셜록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존은 과거에 셜록이 사용했었고 최근까지만 해도 존이 썼던 침대를 흔쾌히 셜록에게 내주고 자신은 본래 손님용으로 구비해두었던 침대를 사용하기로 했다. 침대맡과 천장에 붙어 때가 낀 야광 별 스티커를 감회어린 눈으로 보는 셜록이 은근히 기뻐하는 것을 보며 존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저 스티커를 대체 언제 붙였었더라, 라는 생각을 하며 셜록은 무심코 그 스티커를 손으로 한 번 쓰다듬었다. 오랜 시간 동안 벽에 붙어있느라 연둣빛이 거의 상아색으로 흐릿해진 그것은 손때가 묻어 무척이나 반들반들거리며 매끈했다. 존이 저것들을 붙이고 밤이 되면 은은한 형광빛으로 빛나던 그것들을 가리키며 별들에 대한 동화를 들려주던 존에게 자신이 성운과 은하에 관한 지식을 뽐내어 존을 기죽게 만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침대에 앉아 이불보를 몇 번 쓸며 추억에 잠겨 있던 셜록은 문득 존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침대 옆 의자에 앉은 그를 살피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존."

 

 존이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던 고개를 돌리며 셜록에게 말을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살이 빠졌군요."

 

 존은 셜록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에 반쯤은 놀라고 나머지 반쯤은 부끄럽다는 생각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 최근에 바쁜 일이 있어서 말야.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거든."

 

 존의 모호한 대답에 셜록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마땅찮다는 듯 말했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 거죠?"
 "그럼, 그럼."

 

 갑자기 집요해지기 시작한 셜록의 질문 공세에 내심 놀라면서도 존은 그 관심이 기분나쁘지 않았으므로 이어지는 자질구레한 질문에도 꼬박꼬박 대답했다. 셜록은 그동안 존을 만나지 못했던 만큼의 시간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의도의 질문이라면 존이 사양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여러 질문들이 중구난방 식으로 이어지다가 드디어 끝에 다다랐다.

 

 "좋아요, 그럼 마지막 질문."

 

 셜록이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사귀는 사람 있어요?"

 

 셜록의 질문에 존은 헛기침을 했다. 아까 전의 셜록은 자신의 사생활에는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말을 하지 않았던가? 아마 그런 말을 내뱉은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던 주제에 셜록은 존 자신의 근황에 대해서는 꽤나 궁금한 모양이었다. 뭔가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들긴 했지만, 존은 셜록을 완전히 이해하려는 것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으므로 다소 앞뒤가 맞이 않는 듯한 언사에 대해 일일히 따질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셜록이 지금 존에게 물은 일은 어차피 언젠간 그에게도 밝힐 일이니 이렇게 된 참에 그에게도 지금의 상황을 털어놓으려 마음먹었다. 사실 아까 말한 '바쁜 일'이라는 것도 지금 존이 말하려는 것과 큰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아 존은 연신 헛기침만 해대며 얼굴을 조금 붉혔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요?"

 

 셜록이 피식 웃으며 존의 대답을 재촉했다.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음, 대답부터 하자면, 있어."

 

 얼굴을 붉히며 사귀는 사람이 있노라고 말하는 존을 바라보는 셜록의 얼굴은 더할 나위없이 싸늘하게 변했으나 억지로 지은 미소가 이번에는 꽤나 자연스러워 보였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의 여자 친구 생각을 하느라 셜록의 표정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는지 존은 미처 셜록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셜록이 물었다.

 

 "아주 좋아하나요?"
 "음...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 사실, 우린 결혼을 생각하고 있거든."

 

 '결혼'이라는 말에 웃음기를 덮어씌운 셜록의 표정이 약간 흔들렸는지 존이 급히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그렇게 젊은 나이는 아니잖니."
 "누가 존이 늙었다고 했나요?"

 

 말투에 저절로 신경질이 묻어나는 것을 억지로 억누르며 셜록은 다시금 표정관리를 했다. 셜록의 탐탁찮다는 반응에 셜록의 얼굴을 훔쳐보며 불안해하는 존에게 셜록은 다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존이 결혼한다니, 왜 진작에 알려주지 않았나요? 무척 섭섭하네요."

 

 응석어린 셜록의 말에 존은 셜록이 화를 내지 않아 안심한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혼수를 보러 다니는 중이야. 아까 무슨 일 때문에 바쁘다고 했었지? 그게 물건을 보러 다니느라고 그런 거야. 물론 우리가 부자는 아니지만, 세간을 합치더라도 낡은 물건들 같은 건 처분하고 새로 장만하는 편이 좋잖아."
 "그럼요."

 

 셜록이 무심히 동의했다. 존은 계속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셜록의 귀에는 무엇 하나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존은 이대로 자신을 떼내고 그 여자와 결혼할 셈인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쉽사리 바뀔 결정은 아니겠지.
 그러면 당연히 셜록과 존, 둘만의 보금자리를 떠나 셜록 자신을 홀로 남겨둘 것이다. 셜록이 외로이 베이커 가에서 고독과 씨름하는 가운데 그는 여자와 아이를 낳아 사랑을 베풀 것이다. 셜록을 버려두고.
 그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존이 처분하는 낡은 물건들 중 하나에는 자신도 속해있다는 것을.

 존은 삐걱이는 나무 의자, 해진 쿠션, 얼룩진 식탁보, 때낀 전자레인지, 그리고 셜록을 전부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서, 그렇게 베이커 가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옮겨갈 셈인 것이었다.
 정말이지 무자비한 남자야, 라고 셜록은 속엣말을 했다. 이렇게 통보하듯이 말하다니, 게다가 존은, 셜록이 먼저 묻지 않았다면 대체 언제 말하려는 생각이었을까? 아마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셜록의 안에서 끓어오르던 뜨거운 화는 부글거리는 용암처럼 그의 안에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얼음장같은 차가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어렸다.
 셜록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그만인 가구가 아니었다. 버린다고 순순히 내버려질 오래된 전자기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셜록은 지금이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할 때임을 알았다.
 셜록이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을 즈음 한참 말하던 존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존 자신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없는 셜록을 불렀다.

 

 "셜록?"

 

 곰곰히 생각에 빠져 있던 셜록이 존의 부름에 퍼뜩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자 존이 셜록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 중이야?"

 

 셜록은 햇살처럼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존의 얼굴을 보고 그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눈 앞에서 미소짓고 있는 그로 인해 촉발된 거센 화마와도 같은 분노는 동일한 인물의 자그마한 미소로 인해 허무하리만치 쉽게 사그라들고 말았다.

 아, 정말이지...

 셜록은 속으로 탄식했다.

 당신을, 어쩔 수가 없어...

 순간 스스로의 심경 변화에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만 깜박이며 존을 바라보던 셜록은 의미모를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자신을 다잡았다.
 셜록은 자제력을 발휘하여 금세 자신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저한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났거든요."

 

 존이 셜록의 말에 관심을 보이자, 셜록은 씩 미소지으며 말했다.

 

 "셋이 한 번 만나는 게 어때요?"
 "셋?"
 "그래요. 당신과 그녀, 그리고 저요."

 

 예상치 못한 제안에 놀란 존은 턱을 괴며 셜록의 말에 대해 고민하는 듯했다. 셜록은 존이 그가 한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감언이설로 그를 설득했다.

 

 "앞으로 제 숙모가 될 지도 모르는 분인데, 얼굴이라도 보아두는 게 좋지 않겠어요?"

 

 셜록의 이런저런 말을 들으며 존은 생각했다.
 셜록의 말이 맞아. 앞으로 가족이 될 사인데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다는 건 정말 말이 안되지.
 거기까지 생각한 존은 셜록에게 말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구나, 셜록. 왜 진작에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지금이라도 생각이 났으니까 됐지요 뭘."

 

 여상한 셜록의 어투에 존은 셜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미안해."

 

 갑자기 손을 잡힌 셜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가요?"

 

 존이 말했다.

 

 "내가 결혼한다는 사실 미리 알리지 못한 것."

 

 셜록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존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고, 존은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왜일까, 나는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 같아. 네가 내 결혼을 좋게 여기지 않으리라고...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더욱 말을 꺼내지 못한 것 같아. 그 점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거야. 하지만 이렇게 마음넓게 내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다니,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존의 말에 셜록은 고소가 배어나오는 것을 금치 못했으나, 간신히 부드러운 거짓 미소로 그것을 포장하고 대답했다.

 

 "뭘요. 그런 것 가지고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왜냐면 난 정말로, 당신이 결혼하는 게 싫거든요.
 무자비하면서 순진하고, 냉혹하고도 따스한 당신을 쉽게 내 품에서 놓아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크나큰 착각이라구요.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나야말로 당신에게 미리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네요.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존에게 와닿지 않을 셜록의 중얼거림은 그의 가슴 한 구석에서 손가락 사이에 비벼져 부스러진 나비처럼 흩어졌다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얼룩을 깊이 남기고 가라앉았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