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근친/조슈아/역키잡

 

 보기 드문 셜록의 미소를 마주한 존의 등골이 선뜩했다.
 지난 번 해리엇이 입원한 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에게 '이제 바이올린을 켤 수 있어요, 존'이라고 말했을 때와 같은, 담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기쁨이 어린 미소였다. 당시 그는 그 조그마한 어린아이의 알 수 없는 당당함에 밀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셜록의 얼굴만 줄곧 쳐다보았었다. 바이올린에 집착하는 셜록을 보며, 자신이 셜록이 바이올린을 켜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라는 자책도 하였다. 아니면 아직 부모님과의 이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철 없는 어린아이의 말이라고 생각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지금, 위험 상황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빈번하게 노출이 되어왔던 그의 본능이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해리엇이 입원하게 된 경위에는 미심쩍은 점이 많았다. 횡설수설하기는 했지만 해리엇은 쇠기둥에 다리가 걸려 넘어졌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발을 디딘 것으로 추정되는 계단에는 눈이 녹은 것 같은 더러운 물이 남아있었기 때문에-게다가 그 지점은 계단참의 창문으로 눈이 들이치는 자리였기 때문에 사고 원인으로서 더할 나위없는 설명이 되었다-다들 임신 우울증에 시달리던 여자가 물 때문에 계단에서 헛디뎌 미끄러진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해리엇의 다리에 금속과 부딪힌 자국이 확실하게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워낙에 정황 증거가 논리적이었던지라 존 또한 계단 끝의 미끄러짐 방지용 쇠 부분에 부딪힌 것을 해리엇이 잘못 느낀 것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이번의 재판도, 사실상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비록 매형이 셜록을 탐탁잖아 하기는 했지만, 결코 셜록을 상습적으로 구타할 위인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증인과 증언의 힘에 밀려 재판에서 패소하고 셜록에 대한 영원한 접근 금지 명령과 함께 전과 기록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존도 매형을 변호하는 입장에 서기 위해 유투브에 올라간 구타 동영상을 보았다. 중간부터 찍은 것 뿐이었지만, 그 동영상만 가지고 보았을 때 매형이 셜록을 때린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매형의 유약한 성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셜록이 꾸민 거라는-끔찍한 가정을 하면 다 설명이 된다.
 해리엇의 사고를 셜록이 꾸몄다면?
 셜록이 쇠 기둥을 갖다놓은 뒤 해리엇을 유인하여 넘어뜨렸다면?
 해리엇이 넘어진 후 쇠 기둥을 치우고 물을 뿌려 놓았다면?
 사실 공원에서의 구타는 조작된 것이었다면?
 맞는 척을 하며 과한 행동을 취하고, 울며 소리질렀다면 바로 옆에서 본 사람이 있지 않은 한 밝혀내기가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정신 감정을 위한 그림을, 셜록이 미리 사전 조사를 하고 외워서 그린 것이라면?
 몸에 가득하던 멍 자국들을 스스로 만든 것이라면?
 존은 왼손으로 턱을 괴며 전혀 불가능해보이는 가정을 늘어놓았다. 허나 간과할 수 없는 미묘한 연결고리의 종착지점에 셜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든 존의 텅 빈 시선에 셜록의 얼굴이 담겼다.
 눈을 지그시 감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낡은 중고 바이올린에서 웬만한 고급 바이올린의 음색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소리를 내는 셜록.
 자그마한 어린 아이의 모습.
 그 모습을 보는 존은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존은 눈을 감았다.

 셜록은 어느새 다른 곡을 연주하고 있다. 애수 어린 음조가 방 안을 떠돈다.
 이번에도 실수 한 번 없이 긴 곡을 마친 셜록에게 존이 말했다.

 

 "셜록."
 "네?"

 

 셜록이 환하게 웃으며 존을 돌아본다. 방금 전까지의 가정을 무(無)로 돌리고 싶을 만큼 셜록의 미소는 천진한 아이 그 자체다.
 그러나 존은 미심쩍은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는 참지 못하는 남자다. 존 왓슨은 그런 남자였다. 비록 어린 아이에게 가혹한 일일지라도, 존은 셜록에게 그 일들에 대해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존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존이라면, 얼마든지 질문해도 돼요."

 

 마치 애인을 대하듯 어른스런 어조에 존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너의 솔직한 대답이야...그래줄 수 있니?"

 

 셜록은 존의 표정을 살핀다. 그는 신중하게 대답한다.

 

 "좋아요."

 

 셜록의 대답을 들은 존은 물었다.

 

 "해리엇이 유산한 날, 네가 쇠 기둥을 계단에 놓았니?"

 

 셜록이 아주 잠깐 눈을 궁굴렸다. 존은 긴장하며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네."

 

 짐작한 일이었지만 직접 듣는 것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존은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싶은 생각을 애써 접고 다음 질문을 했다.

 

 "사실 공원에서 맞은 건 아니지?"

 

 No, 라고 말하려는 입모양을 보고 존이 황급히 질문을 바꾸었다.

 

 "처음에 말이야."

 

 셜록이 말했다.

 

 "맞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그림은 어떻게 된 거지?"
 "인터넷을 보고 찾았어요."

 

 혹시나, 했던 가정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는 것을 보며 존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셜록은 막상 일을 저지른 자신보다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존을 멀뚱하니 쳐다보았다. 끙끙대던 존은 셜록에게 말했다.

 

 "그건 나쁜 짓이야, 셜록!"

 

 셜록이 고개를 갸웃 하며 존에게 물었다.

 

 "경찰에게 말 할 거예요?"

 

 셜록의 말에 존이 되물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왜냐구요?"

 

 셜록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야 물론, 존과 함께 있고 싶어서죠."

 

*


 셜록의 대답을 들은 존은 자신이 들은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동시에 기가 막혔다. 이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다면, 삼촌이 조카에게 주는 기본적인 양의 애정에 혹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대꾸할 말이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존은 다시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런 존에게 셜록이 달래듯 말했다.

 

 "존, 존은 나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러고 싶은데...라고 순진하게 종알거리는 셜록을 존은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존은 셜록을 품 안에 꼭 안아버렸다.

 

 "!"

 

 난데없이 존의 품에 안긴 셜록의 눈이 커졌다.
 셜록을 안은 채 꽤 긴 시간동안 말이 없던 존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셜록, 너는 이런 짓을 하기에는 너무나 착하고 똑똑한 아이야."

 

 차가운 질책을 예상했던 셜록은 당황하여 눈을 깜작였다. 존은 셜록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라."

 

 깊은 슬픔과 우울감이 어린 어조였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결국 존은 셜록에게 품은 애정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존의 품 속에서 셜록이 말했다.

 

 "나랑 같이 있어줄 거죠?"

 

 존이 셜록에게 말했다.

 

 "이제는 나쁜 일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렴."

 

 셜록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할게요. 그럼 존은 날 좋아해줄 거죠?"

 

 존이 속삭였다.

 

 "나는 항상 널 아낀단다."

 

 셜록이 존의 품 안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럼 나랑 함께 있을 거죠?"

 

 존이 셜록은 더욱 꼭 안으며 말했다.

 

 "그래."
 "영원히?"

 

 셜록이 존을 마주 끌어안으며 말했다. 존이 대답했다.

 

 "영원히."

 

 냉기 서린 눈으로 남모르게 존의 동태를 살피던 셜록은 존의 확답을 듣고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존을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