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마모/근친/약수위

 

 

 모리어티를 호텔을 데려다놓고 다시 객실을 나선 마이크로프트는 베이커가 221B 앞의 계단에 주저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던 셜록을 데리고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장신의 청년과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소년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남들이 보기엔 생경한 것이었으나 극도로 말을 아끼는 습성과 눈빛 깊은 곳에서 새어나오는 본질적인 냉기는 두 사람의 동질성을 은근히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은 간단히 주문을 한 후 서로를 마주보았다. 마이크로프트가 물을 마시며 말을 걸었다.

 

 "그래, 만족하니?"

 

 셜록이 대답했다.

 

 "그래."

 

 마이크로프트가 입에 대었던 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확실히 배짱은 있어보이는 남자더구나."
 
 셜록이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했다.

 

 "칭찬에 인색하군."
 "네가 한 짓을 생각해보렴. 그런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3년 전 부모님을 각각 감옥과 정신병원으로 보낸 일을 이르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중 하나는 감옥에서 병사. 마이크로프트는 그 일을 떠올리며 냉정하게도 피식 웃었다.
 그때 연이어 일어난 사건을 접한 마이크로프트는 그당시에도 피식 웃었었다. 홈즈 가의 두 번째 돌연변이가 이번엔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하면서 말이다.

 

 "오, 충분한 가치가 있지."

 

 셜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형은 절대 모를 걸."

 

 독점욕과 집착이 여실히 드러나는 미소다. 그때 에피타이저가 나왔다. 셜록은 이내 관심을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으로 돌렸다.
 작은 손으로 서툴게 포크질을 하는 셜록을 바라보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대놓고 목줄을 조이면 안되지."

 

 셜록은 마이크로프트를 조금 째려보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 안에 집어넣은 까나페를 느린 속도로 씹어삽킨 후에야 입을 열었다.

 

 "존은 애완동물이 아니야. 내 애인이지."

 

 언제부터 영국이 사촌도 아니고 삼촌지간에 애정이 오가는 타락한 나라가 되었을꼬. 마이크로프트는 그렇게 탄식했다.

 

 "그래서 에든버러에 가지 않으려고 버팅기고 있는 거냐?"

 

 물잔을 들고 있던 셜록의 손이 움찔하며 잔 속의 물이 찰랑거렸다.
 마이크로프트는 그 손을 주의깊게 보며 냉정히 말했다.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움찔거리지 마."

 

 셜록이 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존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아서 안심할 수가 없다고. 내버려두면 나 따윈 잊고 결혼해버리겠지. 자기 애가 생기면 나를 잊어버릴 게 분명한데 혼자 두고 그 먼 곳까지 간다는 건 어불성설이야."
 "셜록..."

 

 마이크로프트가 얼굴에 호선을 그렸다. 웃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웃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묘한 얼굴이다. 셜록은 무의식적으로 그 얼굴을 머릿속 하드디스크에 저장했다. 저 얼굴이야말로 영국 전역에 걸쳐, 아니 전세계에 걸쳐서 가장 의뭉한 남자의 얼굴일 것이다.

 

 "정 가지고 싶다면, 소유자가 있더라도 그 소유물을 빼앗으면 되는 일이지."

 

 우아한 손짓으로 물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 마시면서 입술을 축인 마이크로프트가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의 어조로 말했다. 셜록은 과연 그렇다, 싶었다. 어쩐지 잘난 척하는 듯한 마이크로프트의 말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옳은 말을 가지고 그르다 하는 것이 더욱 어리석은 일일 터였다.
 형의 말을 받아들인 셜록이었지만, 조금 약이 오르는 것은 갚아주어야겠다 싶어 한 마디 툭 뱉었다.

 

 "형이야말로 특이한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던데."

 

 애완동물이라. 마이크로프트는 생각했다. 애완동물치고는 지나치게 버릇이 없긴 하지만.

 지금쯤 호텔 방 안에서 부족한 자극을 뒤에 머금고 치밀어오르는 신음을 억누르며-아니, 짐 모리어티는 방음이 잘 되건 안 되건 제가 내키는 대로 마음껏 신음을 내지를 위인이었으니, 이 부분은 정정해야겠다-어떻게든 더 느껴보려고 엉덩이짓을 하고 있을 모리어티를 생각하며 오늘 어떤 벌을 줄 것인지 고민하던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셜록의 시선을 알아채고 자연스럽게 시선을 회피하며 앞선 질문에 대답했다.

 

 "특이하긴 하지."

 

 마이크로프트는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익히 추론한 바다. 내 선에서 제재를 가할테니 그 점은 염려마라. 그런데-"

 

 마이크로프트의 표정이 조금 굳은 채 말했다.

 

 "-너야말로 무슨 생각이었던 거냐?"
 "그거, 말이지."

 

 셜록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존이랑 너무 오래 대화를 나누길래, 심심해서."
 "되도록이면 그를 멀리해."
 "아까부터 계속 명령조인데, 맘에 들지 않아."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형 자신을 생각한 거겠지."

 

 두 빙산의 충돌과 같이 수면 아래에서의 격렬한 공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웨이터가 첫 번째 메인 요리를 서빙하기 시작했다. 웨이터가 가고 나자 셜록이 조롱조로 말했다.

 

 "항상 이렇게 먹다간 살이 찌고 말걸."
 "너야말로 그렇게 깨작거리다간 땅딸보가 될 거다."
 
 셜록이 말했다.

 

 "소화작용은 집중에 방해된다구."
 "그러렴. 선택은 네 몫이니까."

 

 나긋한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셜록은 입술을 비죽거리다가 결국 나이프를 들고 앞에 놓인 닭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애정어린 미소를 짓던 마이크로프트는 금세 미소를 지우고 자신도 닭고기를 먹기 시작하려다 주머니에 든 바이브레이터 리모콘이 생각난 마이크로프트는 안의 물건으로 손을 뻗어 잠깐 스위치를 조작하고 다시 나이프를 들었다.
 셜록이 수상쩍다는 듯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대체 그 아래에서 뭘 하는 거야?"

 

 마이크로프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천천히 닭고기를 썰며 말했다.

 

 "네가 알 일이 아니니 신경쓰지 마."

 

 대답으로 간주할 수 없는 묘한 대답에 셜록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시 질문하지는 않았다.

 

*

 

 오랜만에 만난 셜록과의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나고, 마이크로프트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호텔방으로 향했다. 본래 느린 걸음은 아니지만 어쩐지 여유롭게 걷고 싶었다.
 발자국 소리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현관으로 들어선 마이크로프트는 양복 상의와 조끼를 옷걸이에 걸어놓고 풀어낸 허리띠를 손에 든 채 모리어티의 달뜬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방 문을 천천히 열었다.
 옆으로 몸을 누인 채 쾌감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던 모리어티가 고개를 돌렸다. 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검은 눈에 어린 물기가 색스럽다. 그러나 마이크로프트는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며 모리어티를 향해 다가왔다.

 

 "어때, 제임스. 혼자서 즐거웠나?"

 "하아...마이크로프트, 이제 빨리..."
 "조르지 마."

 

 마이크로프트는 모리어티의 뒤로 다가서 거칠게 엉덩이를 뒤로 돌렸다. 그런 행동에도 흥분이 되는지 모리어티가 작게 숨을 뱉었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움찔거리는 구멍 안으로 쑤셔넣어 바이브레이터를 느릿하게 빼내고 모리어티의 눈 앞으로 던졌다. 텅 빈 구멍이 허전함을 이기지 못하고 꿈틀거리며 애액을 흘려내었다. 처지에 맞지 않게 음흉스러워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그린 모리어티가 엎드린 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허리띠는 손에 들고 뭐해?"

 

 '안 때려?'라고 말하며 히죽 웃는 그 얼굴을 손바닥으로 치고 싶다. 하지만 마이크로프트는 그 뺨을 손가락의 손톱을 세워 위험스럽게 긁어내리며 속삭였다.

 

 "어련히 알아서 때려주지 않을까봐."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일으켜 마이크로프트는 허리띠를 쥐고 노련한 손놀림으로 모리어티의 등을 후려쳤다. 빨갛고 긴 자국이 화끈하게 남았다.

 

*

 

 시트를 허리께까지 덮은 모리어티가 엎드려 있었고, 마이크로프트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허리띠를 다시 매고 있었다.
 모리어티가 고개를 마이크로프트 쪽으로 돌리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선배."

 

 1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처음으로 듣는 '선배'라는 호칭이다.
 아마 앞으로의 행보를 예측해보았을 때 마지막이 될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어찌하여 마이크로프트가 모리어티를 체벌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 또는 모리어티가 마이크로프트에게 체벌을 받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 그 사정은 그 둘 만고는 아는 이가 없다. 또한 전학 온 2학년생일 뿐이었던 제임스 모리어티와 교내 최고의 지위인 학생회장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당사자인 그 둘에게 지워지지 않을 각인을 남기게 되었는지 그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는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 둘 간의 일은 오직 둘에게만 해당된 일일 뿐, 다른 이들에게는 인지가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있잖아요, 선배.
 -한 번 때려볼래요?

 

 <모피 옷을 입은 비너스>라는 책을 눈 앞에 흔들어보이며 유혹이랍시고 하던 말이 귓가에 쟁쟁 울리는 듯 싶다. 먼 곳을 바라보듯 초점이 흐리던 마이크로프트는 눈을 깜박여 다시 초점을 찾았다. 시답잖은 추억 되감기가 무슨 말이란 말인가.
 지금껏 같은 공간을 공유하던 그들의 관계는-이를테면, 같은 평면에 위치하지도 않고, 같은 방향으로 가지도 않는 두 개의 직선의 관계와 같다. 딱 한 번, 서로를 마주보고 영원토록 겹쳐지지 않은 두 개의 선.
 알려지지 않은 모종의 사정을 뒤로한 채 케임브리지에 입학한 마이크로프트는 그렇게 그의 길을 갈 것이고, 모리어티 또한 그의 길을 갈 것이다.

 

 "그동안 즐거웠다."

 

 정석적으로 교과서를 읽는 말투 자체인 마이크로프트의 어조를 들으면서 모리어티가 킬킬대었다.

 

 "그냥 솔직히 말해요. 앞으로 영원히 만나지 말자고."

 

 마이크로프트는 냉랭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모리어티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표정을 뒤덮고 있던 살얼음이 깨지며 마이크로프트가 피식 하고 냉기어린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을 우리 둘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나."

 

 모리어티는 수긍하며 웃었다.
 그의 작은 연극은 여기서 막을 내린다.
 아이스맨과 자신의 연은 여기까지다. 그는 마이크로프트가 애지중지하면서도, 절대 그 애정을 드러내지 않는 검은 머리의 꼬마를 생각하며 앞으로의 일을 기대하기로 했다.

 문득 모리어티가 말했다.

 

 "그래도 말이죠, 선배."

 

 마이크로프트가 고개를 들었다.

 모리어티가 어울리지 않게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날 아직까지도 제임스라고 부르는 건 당신 하나뿐이예요."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 하나뿐이겠죠, 라고 모리어티는 읊조렸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