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근친/조슈아/역키잡


 존의 매형은 직장 일을 점차 소홀히하기 시작했다. 명목상으로나마 아내 역할을 하던 해리엇이 정신 병원에 입원하고, 존 또한 자신의 일로 바빠져 집안일을 할 사람이 자신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없는 살림에 가정부를 고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는 야근을 자제하고 집에 일찍 오기 시작했다.
 그는 존이 신신당부한 대로 셜록에게 애정을 가지고 다가가보려고 했지만, 셜록은 이미 마음의 문이 닫힌 것인지 그가 귀가해도 방 안에서 조용히 독서를 하거나 바이올린으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기만 했다.
 본래 사람이란 호의가 거절당하면 거절한 이에 대해서 호의를 품은 만큼 더욱 악의를 품게 마련이다. 셜록이 조금이라도 그에게 보통의 어린 아이로 비쳤다면 자신의 악의를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며 누그러뜨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셜록은 그의 안에서는 거의 어른과 같이 취급되고 있어서 그는 셜록에 대해 서서히 분노라는 감정을 품게 되었다. 종종 주말에 존이 놀러오면, 그에게 하는 것과는 다르게 조금이나마 상냥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그 분노는 점점 커져 갔다.
 그런 식으로 3개월이 흘렀다.

 

 때는 화창한 6월의 일요일이었다. 점점 셜록을 꺼리게 된 존의 매형은 셜록을 돌보는 일을 거의 존에게 위임하다시피 했으나, 그날의 산책에는 유감스럽게도 존이 동행하지 못했다.
 공원에는 그 말고도 산책을 나온 모자나 모녀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그는 오랜만의 산책을 즐기며 마음을 좋게 먹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셜록이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너그러운 아버지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그는 분수대 앞에 앉아 셜록에게 말을 걸었다.

 

 "셜록."

 

 셜록은 감정의 편린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정한 눈으로 그의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눈은 사뭇 모르는 아저씨가 말을 거는 것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는 치밀어오르는 화를 눌러참으며 말했다.

 

 "오늘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좀 해보자꾸나."
 "난 할 얘기 없는데."
 "그러지 말고-"

 

 셜록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던 그는 셜록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깜짝 놀라 다들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아들의 머리 위로 손을 뻗고 있고 아들이 소리를 지른 이 상황이 자신이 아들을 때리려고 하는 상황으로 비춰질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셜록은 이쪽을 두려운 눈길로 보며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셜록, 왜 그러니?"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셜록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주변 사람들 중 몇몇이 아이가 소리지르는 것을 듣고 이쪽을 흘깃 바라본다. 그는 애써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앉은 자리에서 튀어나갈 태세인 셜록을 진정시키려 손을 내밀었다. 조금 빠르게 움직인 그의 손이 셜록의 등에 살짝 닿자 셜록은 마치 등짝을 얻어맞은 것처럼 앞으로 엎어지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빠, 제발 밖에서는 때리지 마세요!"

 

 상황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을 현명하게 수습할 만큼 그의 두뇌 회전은 빠르지 못했다. 너무나 놀란 그는 아이가 대체 왜 이러는 지 알지 못했고, 아이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된다는 생각에 셜록을 잡으려고 다시 손을 뻗었다. 셜록은 더 크게 엉엉 울며 다른 쪽으로 기어서 도망쳤다.
 서서히 주변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놀란 것이 아니라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한 그는 잘도 도망가는 셜록을 잡으려 뛰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의 아이는 요리조리 잘도 그의 손길을 피했다. 그러나 역시 아이인지라 얼마 못가 잡히고 말았다. 그는 아이를 잡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 녀석!"

 

 하고 손을 치켜든 그는 반사적으로 아이의 뺨을 치고 말았다.
 셜록의 입가가 터져 피가 흘렀다. 순간적으로 홱 돌아서 그런 짓을 저지른 그는 아이의 입에서 피가 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들었다.
 그 즈음 주변에서 사람들이 슬슬 다가와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셜록은 주저앉아 몸을 웅크리고 훌쩍이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셜록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활짝 미소지었다.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너무나 확연하게 이해한 그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셜록을 향해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그들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그 둘을 떼어놓았고, 누가 불렀는지 경찰이 그를 연행했다.

 

*

 

 유치장에 갇힌 그는 필사적으로 아이의 정신 상태를 감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도 절실하게 요구를 하는 터라 경찰 측에서 선임한 정신과 의사가 셜록의 집으로 파견되었다.
 파견된 여의사는 도통 정리되지 않아 쑥대밭이 된 집 안을 둘러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셜록은 그녀를 향해 수줍은 아이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아이에 대한 동정심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자, 이름이 셜록 홈즈, 맞니?"
 "네."

 

 기가 죽은 목소리로 아이가 대답했다. 그녀는 아이를 향해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셜록이라고 부를게. 누나는 셜록의 방에 가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고개를 작게 끄덕인 셜록은 자신의 방으로 여의사를 이끌고 갔다. 방 안은 누군가가 장난감을 쓸어 부숴버린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었다. 여의사는 점점 안 좋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를 향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셜록, 우리는 오늘 그림을 그릴 거야. 혹시 크레용 있니?"

 

 셜록이 꺼내온 크레용은 이미 닳고 닳아 몽당이만 남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여의사는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가져온 크레용 상자를 건넸다. 상자를 열어본 셜록이 매우 기쁜 미소를 짓자 여의사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선물이야. 마음대로 쓰렴."

 

 셜록이 눈에 띄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미소지었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상기한 그녀는 셜록에게 말했다.

 

 "이 크레파스로 그리고 싶은 걸 한 번 그려 볼래?"

 

 셜록은 활짝 미소지으며 스케치북을 펼치고 크레용 하나를 손에 들었다.

 

*

 

 유치장에 갇혀있던 그는 셜록의 정신을 감정한 여의사의 요청으로 면담실로 불려갔다. 이제 자신의 무죄가 일부 나마 증명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던 그는 의자에 앉아있는 여자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조금 불안해졌다. 그러나 그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애쓰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그가 물었다.

 

 "그래, 어떻던가요?"
 "어떻더냐고요?"

 

 여의사의 어조가 심상치 않았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녀는 스케치북에 첫 장을 펼치고 홈즈 씨에게 보여주었다. 검은색과 빨간 색, 일그러진 형상이 스케치북 전체에 메워져있다. 그러나 그가 그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여자도 곧 그 점을 깨닫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말이죠, 홈즈 씨. 전형적인 심각한 아동 폭력의 징후라고요."

 

 그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 여자의 말을 멍하니 듣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아이의 몸을 살펴봤는데, 몸통에 멍이 가득하더군요. 교묘하게도 팔뚝이나 다리는 때리지 않으신 걸 보니, 고의가 확실해요. 그 착한 아이를 그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때리시다니..."

 

 그녀의 말은 계속됬지만 그는 더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 없었다.
 셜록이 해리엇이 입원한 이후부터 방 안에서 스스로 멍 자국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

 

 여의사의 기소로 아동폭력죄에 입건된 그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 존은 재판 과정에서 필사적으로 무언가 오해가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수많은 증인들의 증언에는 이길 수 없었다. 그 일요일에 셜록을 때리는 것을 보았다는 증인만 수십 명이었기 때문에 빼도박도 못하고 그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게다가 여의사의 강력한 요구로 정신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여 받게 되었다.
 존은 다소 우울한 기분으로 이제는 셜록 혼자만 남아있는 커다란 집으로 향했다. 셜록은 오늘도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느리고 감미로운 선율이 울리는 가운데 존은 어지럽혀진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널브러진 옷가지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존은 어떻게 셜록을 건사할 것인지 고민했다.
 홈즈 부부가 모두 양육권을 행사할 상태가 아니게 되었으니, 대부인 존이 마이크로프트와 셜록 형제를 맡아야 했다. 친할머니인 홈즈 부인도 살아계시긴 했지만, 여든이 훌쩍 넘어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듯한 분이었기 때문에 두 형제를 그 곳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더욱이 보살핌이 시급한 셜록을 맡길 수는 없었다. 마지막 그릇을 씻어 찬장에 올린 그가 고무장갑을 벗어놓는 찰나에 뒤에서 셜록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을 팔아요."

 

 존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의자를 끌어다 앉고 말했다.

 

 "하지만 이건 너희 집이야. 가족의 추억이 담긴..."

 

 거기까지 말하던 존은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정신병원에 갇힌 어머니, 감옥에 간 아버지를 둔 셜록에게 가족의 추억 운운 하는 것은 잔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셜록은 무표정한 얼굴로 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면, 마이크로프트에게 편지를 보내요."
 "편지는 물론 보낼 거란다. 하지만 문제는 이거야. 너를 허름한 하숙집에서 살게 할 수는 없어."

 

 셜록은 존의 말을 예상했다는 듯이 손에 쥐고 있던 신문을 존에게 내밀었다. 아이의 손으로 서투르게 동그라미가 쳐진 부분에는 'Baker Street 221B'에서 하숙인을 구한다는 광고가 실려 있었다.

 

*

 

 예상 외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하숙집은 존의 새 일자리와 셜록이 다니는 학교와도 가까운 곳이었다. 내부는 약간 낡았지만 아늑하였고, 집세도-집이 팔렸다는 전제 하에-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숙집의 여주인인 허드슨 부인은 인자하신 분으로 약간 괴짜같은 성미도 지니고 계신 분이었다. 그녀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침착한 셜록을 오히려 마음에 들어하며 살갑게 대하는 연륜을 지니기도 했다. 그녀는 존과 셜록의 관계를 물어보아 존을 잠시 당황시켰지만 셜록이 대답을 가로채어 양친이 모두 돌아가셔 자신의 보호자가 된 외삼촌이라고 깜찍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했다. 허드슨 부인은 딱히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다. 그에 기분이 좋아진 셜록이 바이올린 소리가 방해되지 않겠느냐고 묻자 오히려 기뻐하시면서 시간이 날 때 연주를 들려달라고 하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계약이 성립되었고, 마이크로프트가 집의 매각을 허락하는 의사가 담긴 편지가 배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의 매각과 새로운 하숙집과의 계약이 완료되었다.

 

 단촐한 짐 정리가 끝난 후, 존은 차를 끓였다. 집 안으로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단정한 차림의 셜록이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이 유난히 눈부시다.
 눈을 감은 채 짧고 아름다운 서정곡을 연주한 셜록은 바이올린에서 고개를 살짝 들고 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야 둘만 있게 되었네요."

 

 존은 셜록을 바라보았다.

 

 "진작에 이렇게 되었어야 하는건데."


 셜록은 존을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