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근친/조슈아/역키잡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온다.
 웬만큼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연주를 매우 잘 된 연주라고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연주를 하는 사람의 정체를 안다면 더욱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고작 열 한 살 난 사내아이이기 때문이다.
 사내아이는 고개를 비스듬히 바이올린에 기댄 채 꼬마답지 않은 격정적인 선율을 뽑아내고 있다. 자못 의젓하게 검은 양복을 입은 것이 귀엽게도 느껴진다. 존은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방문 틈으로 숨죽여 지켜보았다. 클라이막스의 고조되는 음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죽어가는 백조처럼 우아하면서도 가냘프게 스러진 음이 천천히 되살아나 마지막을 향해 달리다가 힘찬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었다.
 실수 하나 없이 연주를 마친 아이는 그 여운을 즐기듯 그 자세 그대로 잠시 멈춰서 있다. 그 모습을 문 틈 사이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던 존은 나지막히 한숨을 쉬며 감탄했다. 존의 한숨 소리를 들은 것인지 아이는 고개를 뒤쪽으로 돌린다. 아이를 방해한 것만 같아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던 존에게 아이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지었다.

 

 "외삼촌."

 

 존도 아이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셜록."

 

*

 

 존 왓슨은 퇴역 군인으로, 제대한 후에 하나뿐인 누나 해리엇 홈즈의 집에 잠시 신세를 지고 있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의 격전지를 전전하던 그는 처음에는 군인 제대자를 위한 임시 숙소에 머무르면서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누이의 초청으로 그녀의 집을 방문한 그는 누이의 정신 상태에 문제가 생겨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해리엇의 히스테리 기질은 집안 내력으로 전해오던 것이었는데, 잦은 임신과 유산으로 몸이 약해진 최근에 더욱 심해져서, 존의 매형은 혼자서 어린 아들-셜록-을 돌보는 것과 동시에 병든 아내의 수발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최근에 해리엇은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라 히스테리 기질이 이전보다 자주 발작하는 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아들인 마이크로프트는 현재 고등학교의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존은 종종 매형과 누이의 아파트에 들러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한 셜록을 돌보아주거나 가사 일을 챙겨주고 있다.

 

*
 
 어느 일요일이었다. 해리엇이 산부인과에 들러 진료를 받고 있는 동안 존과 그의 매형은 병원 건물 바깥에 있는 공원에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공원의 벤치에 앉은 그들은 영국에서 여간해서는 보기가 드문 쨍쨍한 햇살을 만끽하였다.
 존의 매형은 저만치 떨어진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셜록을 바라보며 말했다.

 

 "셜록, 그 아이는 내 아들이지만 정말 알 수가 없어요."

 

 그의 말에 존은 살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제가 보기엔 조금 조숙한 아이일 뿐인데요."

 

 그는 존의 말에 애써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아이는 평소엔 말도 없고, 친구를 사귀지도 않는 것 같아서 걱정이예요. 아이답지가 않다고나 할까요."
 "셜록은 그 또래 애들보다 약간 똑똑한 겁니다. 어려운 책도 곧잘 읽어내는 것을 보세요. 나중에 학업 문제로 속을 썩이는 일을 없겠죠."

 

 그런가요, 라고 씁쓸한 미소를 짓는 매형에게 존이 말했다.

 

 "매형은 자기가 가진 행복을 모를 겁니다. 저처럼 소아과에서 며칠 근무해보시면 떼를 쓰지 않는 아이를 갖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실 거예요."

 

 존의 말에 안심한 그가 그제야 안심한 미소를 지었다. 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그가 말했다.

 

 "존, 힘든 부탁이겠지만 우리 집에 자주 들러서 셜록과 해리엇을 보살펴주었으면 해요. 이런 말 하긴 부끄럽지만 정말로 힘들어서..."

 

 존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전혀요. 부탁이랄 것도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해주셔서 오히려 기쁘군요."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사소한 수다를 떨던 존은 볼이 따끔따끔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셜록이 존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

 

 해리엇은 임신 5개월 째에 접어들었다. 배도 약간 나온 그녀는 요즘 들어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최근 들어 누구에게건 가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대는 그녀의 히스테리 증세는 심각한 정신적인 피로를 그 자신에게 불러일으키는 것인지 몸을 가누는 것조차 그녀에겐 힘들었다. 존으로서도 그녀의 신경질을 감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으므로 그는 조용히 셜록을 돌보는 데에 힘을 쏟을 뿐이었다.

 

 "당장 그만둬! 그만둬! 그만두라고!"

 

 오늘도 해리엇은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바이올린을 켜고 있던 셜록에게 내지른 고함이었다. 셜록의 곁에서 그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던 존은 셜록을 향해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며 잰걸음으로 누이의 방으로 향했다.

 

 "해리, 해리...진정해."

 

 존이 방에 들어와서도 새된 소리를 내지르고 있던 그녀는 존이 어릴 적의 애칭을 부르며 부드럽게 토닥여주자 조금 진정하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너무 소리를 질러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소리...저 소리..."
 "그래, 셜록이 바이올린을 켜는 소리야."
 "듣기가 싫어...!"

 

 초점이 없는 멍한 눈이 방향을 잃고 데굴데굴 굴렀다. 임신 때문에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도 복용하는 것이 금지된 해리엇의 상태는 조금 위험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존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셜록은 다음 달에 학교에서 연주회를 한다고. 그리고 배 속의 아기는 셜록의 연주를 좋아할거야."
 "...그래?"
 "그럼. 바이올린 선생한테 물어보라고. 셜록의 연주 실력은 그 나이대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대."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돌아온다. 이제 평온해진 숨소리를 내며 다시 잠든 그녀를 토닥여준 그는 그녀가 완전히 잠에 빠져들자 발소리를 죽이며 방을 나섰다.

 

 "!"

 

 방문을 나서자 셜록이 서있었다.
 당연히 방 안에서 존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셜록이 바로 방 바깥에 서 있는 것을 본 존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간신히 잠든 해리엇을 다시 깨울 순 없다는 생각으로 입을 다문 존이 진정하고 셜록을 향해 소근소근 말했다.

 

 "자, 셜록. 우리 방으로 돌아가자. 엄마가 잠드셨어."

 

 셜록은 나는 다 알고 있어, 엄마가 정신이 나간 거, 라는 눈빛으로 존을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간 셜록은 바이올린의 현을 손가락으로 슬슬 문질러댔다. 그 모습은 사뭇 슬퍼보였다.

 

 "엄마는 내가 바이올린을 켜는 것을 싫어하세요."

 

 그 똑부러지는 발음으로 Mum, 이라는 어린아이다운 표현을 쓰는 것에 존은 아까 전의 섬뜩함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셜록을 향해 말했다.

 

 "그렇지 않아, 셜록."

 

 존의 말에 셜록은 전혀 수긍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여전히 무표정으로 바이올린에 걸린 현 하나하나를 만지작대던 셜록에게 존이 말했다.

 

 "적어도 나는 네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걸 좋아해."
 "오."

 

 셜록은 그렇게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셜록은 이미 그의 엄마의 히스테리를 목격하고 시무룩해진 듯 했다. 비록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을지라도, 상처를 받았을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 존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엄마를 이해해줘야 해. 아이를 낳는 건 많은 수고로움을 필요로 한단다. 엄마는 그래서 아프신 거고."
 "엄마는 언제나 아팠는 걸요."

 

 셜록의 말에 존은 가슴이 아팠다. 셜록이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존은 외국에 나가있었으니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매형이 언뜻언뜻 흘리는 말에서 해리엇이 심각한 육아 스트레스를 겪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 해야 할 아내가 아팠으니 집안 분위기는 어두웠을 것이다. 그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라다보니 나이답지 않게 차분한 분위기와 조숙한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리라. 존은 셜록에게 더욱 잘 대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존은 셜록의 조그만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말이다, 조금만 참으면 동생이 생길 거야. 기쁘지 않아?"

 

 셜록의 연한 청회색 눈동자가 아주 약간 커졌다. 셜록은 슬그머니 손을 빼며 말했다.

 

 "동생?"
 "그럼."

 

 존은 셜록에게 물었다.

 

 "셜록은 여동생이 좋아, 남동생이 좋아?"

 

 셜록은 존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고는 말했다.

 

 "여동생이군요."

 

 존은 셜록이 단정짓듯 말하는 것에 조금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굉장하구나, 셜록! 어떻게 맞춘 거지?"
 "그냥요."

 

 셜록의 말을 별 생각 없이 넘긴 존이 말했다.

 

 "동생이 생기면 셜록은 오빠가 되는 거야."

 

 존은 동생이 생기면 좋은 점을 몇 가지 말해주었으나 셜록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싶었다. 존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셜록 때문에 조금 맥이 빠진 존이 말을 그쳤다. 그제야 셜록은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동생이 태어나면 존은 나를 더이상 보살펴주지 않을 건가요?"

 

 존은 차가운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질문을 하는 셜록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셜록. 삼촌은 셜록이 제일 좋아."

 

 셜록은 조금 안도한 기색이었다. 아까 전 질문을 할 때 미묘하게 굳어있던 얼굴의 긴장이 풀려있었다.
 그런 것을 걱정하다니, 셜록도 어쩔 수 없이 어른의 애정을 필요로 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아이의 검은 곱슬머리를 쓰다듬으며, 매형더러 셜록에게도 조금 더 신경을 쓰라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존은 셜록이 자기의 머리를 쓰다듬던 존의 손을 잡는 감촉에 정신을 차렸다.
 마치 얇은 유리 공예품을 만지는 듯 어색하고 수줍은 손길이다. 존은 셜록의 손을 끌어당겨 꼭 쥐면서 말했다.

 

 "물론 동생이 어리니까 앞으로 단 둘이 보낼 시간은 줄어들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둘이 함께 동생을 돌보는 거야."

 

 '단 둘이 보낼 시간은 줄어들지도 몰라'라는 부분에서 셜록의 얼굴은 다시 차갑게 굳었다. 그러나 그런 기색을 다시 감쪽같이 숨긴 채 셜록은 존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

 

 존은 드디어 새로운 정규직 일자리에 고용되었다. 해리엇이 임신 7개월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산부인과 의사는 남편 대신 해리엇과 동행한 존에게 해리엇의 착상이 여전히 불안정하며, 지금의 몸 상태로는 조금의 충격에도 유산할 위험이 높다고 강조했다. 지금 일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최선일지 생각해보았으나, 더이상 누이의 원조를 받기에도 민망해진 그는 결국 일자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최근의 셜록은 철이 든 것인지-그 전에도 철이 없지는 않았지만-해리엇의 히스테리도 적당히 무시하면서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에 대한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존은 매형이 셜록을 잘 보살펴줄 것을 기대하며 새로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

 

 해리엇은 존이 월세를 구해 나간 이후로 자주 잠을 설쳤다. 가사를 전반적으로 도와주던 존이 집을 나가자 집 안에는 삭막한 공기가 감돌았다.
 최근 남편이 속한 부서가 구조조정의 위기에 처한 지라, 남편은 사흘이나 연속으로 야근을 하고 있었다. 새벽녘에 그녀가 새우잠을 자고 있을 때 지친 걸음으로 터벅거리며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면도를 하고 나갈 때 잠시 얼굴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도저히 그녀가 잠에 들 수 없었던 이유는, 남편이 야근을 하는 밤마다 문의 경첩이 삐걱이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문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요즈음 공황장애 증세까지 보이는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 날 밤에도 어김없이 그녀의 방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던 그녀는 경첩이 망가진 걸지도, 라고 생각하다가 혹시라도 도둑이 들었나 싶어 겁이 더럭 났다. 그녀는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주 조금 열린 문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불이 전부 꺼진 집 안은 너무나도 어두웠다. 해리엇은 문득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어두운 바닥에 깔린, 더욱 검고 길쭉한 그림자가 보였다.
 해리엇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방 안에서 아무 거나 집어들고 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림자는 그것을 눈치챈 듯 빠른 걸음으로 현관 쪽으로 향했다. 해리엇이 배를 감싼 채로 최대한 빨리 움직였지만 날랜 도둑을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는지 현관문은 이미 열린 채 찬 공기가 밀려들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현관문 바깥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그녀는 계단 쪽에서 들리는 기척을 듣고 손에 든 단단한 것을 더욱 꼭 잡으며 더듬더듬 앞으로 나갔다.
 계단 쪽에서는 기척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체감상 그리 먼 거리는 아닐 것 같았다. 조금만 뛰면 내 집에 침입한 망할 도둑놈을 잡을 수 있어, 라는 생각에 해리엇은 계단을 바쁘게 뛰어내려갔다. 해리엇의 발소리를 들은 그림자가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소리가 더 빨라졌다. 해리엇도 계단을 내려가는 속도를 높였다. 그림자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발목에 차가운 금속 봉이 걸리는 것을 느낀 바로 그 순간, 해리엇은 이미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다음날 소식을 들은 존과 해리엇의 남편이 곧바로 달려왔을 때, 뱃 속의 아기는 이미 유산된 후였다.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던 유산의 충격이 겹쳐 해리엇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하루 휴가를 낸 존은 누이의 집으로 향했다. 매형이 해리엇의 옷과 물건을 챙겨 정신병원으로 가자, 집 안은 메뚜기떼가 쓸고 간 것처럼 휑했다. 존이 집 안을 둘러보며 빨리 치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바이올린의 소리가 들렸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오랜만에 운전석에 앉은 자동차의 시동을 힘주어 거는 것처럼, 음 하나하나가 마치 조율이라도 하듯 길게 울렸다. 존은 오랜만에 연주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 깨끗한 음색에 홀린 듯 셜록의 방으로 향했다.
 존은 망설이며 문을 열었다. 셜록은 등을 돌린 채로 다시 한 번,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음계를 짚고 있었다. 가장 높은 음을 마지막으로, 셜록은 천천히 활을 내리고 존을 돌아보았다.

 

 "이제 바이올린을 켤 수 있어요, 존."

 

 셜록이 웃었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