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역키잡

 

 

 차에 탄 그들은 아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무 말도 오가지 않은 채 조용했다. 셜록은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된 존을 향해 몇 번 고개를 돌려보았으나 존은 의도적으로 살짝 고개를 피해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에겐 좀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겐 용기를 낼 시간이 필요했다. 존은 기차역에서 본 광경에 대한 확실한 설명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잘못 본 것이길 원했지만 셜록의 해명이 없이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셜록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이라 민감한 사안임을 충분히 숙지하고는 있었으나, 그 누구도 아닌 셜록의 일이었으므로 그는 그 일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성을 강력히 느꼈다. 무엇보다도, 그는 궁금증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을 성격이 되지 못했다.


 베이커가에 다 와갈 즈음 드디어 결심한 듯 존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가 아까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둘이 키스하고 있던데-두 사람 사귀는 거야?"

 

 차창 밖을 향해 고정되어 있던 셜록의 시선이 약간 흔들렸다. 존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그랬구나.'

 

 존은 셜록이 정말로 그 남자와 키스를 한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사실을 드디어 확인했음에도 쌓여있는 설거지더미를 본 것처럼 마음이 찝찝한 것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바깥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안쪽으로 거두어들인 후 셜록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요?"
 
 존은 셜록의 반문에 조금 당황했으나 이왕 대화를 꺼낸 김에 끝장을 보자 싶었다.

 

 "제임스 모리어티, 그리고 너 말야."

 

 셜록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 지레 놀란 존은 셜록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그런 데 편견 없다는 거야. 네가 행복하다면, 난 상관없어."
 "Oh, really?"

 

 약간의 비아냥기가 섞인 셜록의 대답에 존은 흠칫 했으나 말을 이었다.

 

 "물론...걱정은 되지만. 그게, 넌 아직 어리잖아. 게다가 지난 번에 우리집에 방문했을 때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마이크로프트와 그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것 같고 그러면 둘 사이가 영 어색해지지 않을까 싶고..."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존은 자기가 생각해도 지금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셜록의 후견인이자 삼촌이 이런 질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자신은 셜록이 혹시라도 마음이 상할까 두려워 비굴할 정도로 그의 눈치나 슬슬 보고 있었다. 게다가 하도 횡설수설하느라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그는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셜록에게는 지나치리만큼 너그러워지고 물러지는 자신을 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존이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데 셜록이 약간 화난 듯한 표정을 하고선 그의 말을 잘랐다.

 

 "자, 존. 내가 하나 물어보겠는데요, 지금 걱정이 되는 쪽이 마이크로프트 쪽인가요, 아니면 나인가요?"

 

 느닷없는 단호한 질문에 물론 네 쪽이지! 라고 대답하려던 존은 셜록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 저도 모르게 목구멍까지 올라온 대답을 삼켰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잠시 주저하던 존은 천천히 말했다.

 

 "둘 다...지."

 

 존의 말을 들은 셜록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존은 옳은 답을 말했을까? 그냥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았으련만, 일말의 자존심이란 것이 존의 혀가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막았을 뿐이다. 셜록의 어두워진 표정을 보면 존의 대답이 셜록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은 절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존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셜록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미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셜록의 뜻 모를 눈빛 공세를 견딜 수가 없었던 존은 일단 분위기를 개선시켜야겠다는 뜻으로 말을 시작했다.

 

 "셜록, 난 너희들의 관계에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혹시라도 마이크로프트가 마음이 상하기라도 하면-"
 "그건 존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요. 난 그와 사귀는 게 아니니까."
 "오."

 

 졸지에 민망해진 존이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Just casual sex, you know."

 

 금욕적으로 보이는, 아니 그것보다도-어디까지나 존에게는-아직 갓 성인이 된 아이에 불과한 셜록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섹스', 그것도 '가벼운 섹스'라는 말이 나오자 존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 존의 표정을 주의깊게 지켜보며 셜록은 말했다.

 

 "We're having sex from time to time, that's all."

 

 두 번째로 '섹스'라는 단어가 나오자 존은 정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셜록은 그런 존의 얼굴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I'm not a boy, John..."

 

 느지막히 질질 끄는 목소리로 그는 존의 이름을 발음했다. 나른하면서도 어딘지 위험한 그 울림에 존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Not anymore."

 

 마치 선고와도 같이 그를 내리찍는 셜록의 말에 존은 입술을 몇 번 깨물었다.

 

 "미안해. 내가 주제넘었어."

 

 차 안에는 다시 침묵이 깔렸다. 이번 침묵은 아까의 침묵보다 배는 무거웠다. 그 무게감에 진저리를 치며 존은 자신이 괜한 질문을 한 것일까, 생각했다.
 알 수가 없었다.
 존은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 뜻 없이 차창 바깥을 향해 눈을 돌렸다.

 

*

 

 "그런데, 내가 아까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둘이 키스하고 있던데-두 사람 사귀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셜록의 기분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개찰구에서 자신을 보았을 때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색이 느껴지더라 싶었다. 그의 미묘하게 굳은 표정이 추운 바람을 맞고 서있었기 때문인가 싶어서 목도리를 벗어 둘러주었을 때만 해도 존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마치 수줍은 소녀가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았을 때처럼. 물론 이런 비유를 자기한테 쓴다는 사실을 알면 존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말이다.
 그런데-정말로 그 광경을 봤기 때문이었다니.
 셜록은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향해 고정시키고 있던 눈을 존에게로 돌려 반문했다.

 

 "누구요?"
 
 일단은 태연한 듯, 차분한 목소리를 내어 물어보았다. 존은 그의 반문에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계속해서 말했다.

 

 "제임스 모리어티, 그리고 너 말야."

 

 이런. 이래서야 빼도박도 못하겠군.
 속으로 혀를 찬 셜록은 한숨을 쉬었다. 셜록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존은 셜록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그런 조심스러운 태도는 셜록의 부아를 더욱 돋구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정말이지 뻔했다. 성적 지향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춘기 소년을 바라보는 듯한 조심스러운 시선. 존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존의 말은 셜록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그런 데 편견 없다는 거야. 네가 행복하다면, 난 상관없어."

 

 셜록의 생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존은 여전히 자신을 사리분간 못하는 아기 취급을 하고 있다. 그가 자신을 신경써주는 것이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셜록은 그런 존의 애정을 무척이나 반긴다. 그러나 저런 방식은 정말 싫었다. 셜록은 그에 약간 화가 나 일부러 비열한 어조로 대꾸했다.

 

 "Oh, really?"

 

 셜록의 대답에 존이 흠칫 놀라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그러나 존 왓슨이 괜히 존 왓슨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입술을 한 번 축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걱정은 되지만. 그게, 넌 아직 어리잖아. 게다가 지난 번에 우리집에 방문했을 때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마이크로프트와 그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것 같고..."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존의 말에서 무언가 거슬리는 단어가 셜록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이크로프트라니? 대체 이 문제에 마이크로프트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물론 짐이 그와 잠시 육체적인 관계를-그것도 꽤 오래-가졌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언젯적 일인데 물고 늘어진단 말인가? 자신이 알기로는 존과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이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는 왕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친밀하게 이름을 부르다니, 설마 자신이 보지 않는 곳에서 마이크로프트가 그를 만났단 말인가?
 그러고보니 존은 짐을 거의 6년만에 처음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그렇게나 그가 인상깊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때문에?
 짐은 자신에게 한 것처럼 추파를 던져서 존을 꼬셨을지도 모른다. 존은 은근히 순진한 구석이 있으니 그런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대시에 어물쩡 속아넘어가버릴 수도 있다. 혹시 두 사람이 따로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생각이 미치자 셜록의 안에서 끓어오르던 화는 더욱 격해지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그를 어린애 취급을 하는 존의 태도 때문에 신경질이 나던 참이었던 셜록은 조금 무례해지기도 마음먹고 존의 말을 가로막았다.

 

 "자, 존. 내가 하나 물어보겠는데요, 지금 걱정이 되는 쪽이 마이크로프트 쪽인가요, 아니면 나인가요?"

 

 그가 생각해도 매우 유치한 질문이었으나, 셜록은 존이 당연히 자신이 우선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렇게 대답하는 것을 들으면 셜록의 분노가 그나마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그는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물론 셜록은 셜록 자신의 눈빛이 지나치게 형형하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존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곧바로 내놓지 못하는 것에 대해 셜록은 더욱 충격을 받고 있었다. 설마 정말 그 둘 중 하나와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둘 다...지."

 

 어정쩡하기 그지없는 존의 말을 들은 셜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존은 셜록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는 것인지, 셜록이 꽤나 무서운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음에도 무심하게 다른 말을 꺼내고 있었다.

 

 "셜록, 난 너희들의 관계에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혹시라도 마이크로프트가 마음이 상하기라도 하면-"

 

 또, 또 마이크로프트! 그 이름 좀 꺼내지 말라고요, 존!
 더이상 존의 입에서 마이크로프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셜록은 약간 급하게 끼어들어 말했다.

 

 "그건 존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요. 난 그와 사귀는 게 아니니까."
 "오."

 

 셜록의 말에 존은 그 딴에는 지레짐작한 것이 민망했는지 조금 얼굴을 붉히더니 물었다.

 

 "그럼...?"

 

 셜록은 순간적으로 대답했다.

 

 "Just casual sex, you know."

 

 셜록은 존이 그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을 보자마자 낭패 반, 될 대로 되라는 심정 반으로 말을 이었다.

 

 "We're having sex from time to time, that's all."

 

 분명 존은 '어린아이'에 불과한 자신의 입에서 저런 단어가 나온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우리라. 존의 저런 반응은 셜록 자신에 대한 일종의 가학이기도 했다. 존이 셜록의 낯선 일면을 보면서 겪는 쇼크는 고스란히 셜록에게도 전달되고 있었다. 셜록의 말에 뭐라 반응할지 몰라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하고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는 존의 얼굴을 셜록은 놓치지 않고 쳐다보았다. 존의 얼굴에는 슬픔, 당황, 충격 그 모든 것이 버무려져 있었고 그것을 보는 셜록은 가슴이 무척이나 아프면서도 그가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상처받는 것을 보면서 일말의 기쁨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의 변화를 느긋하게 감상하며 셜록은 천천히 말했다.

 

 "I'm not a boy, John..."

 

 부드럽게 존의 이름을 발음한다. 언제 발음해도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감흥을 일으키는 그 이름.

 

 "Not anymore."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그 말에 존은 부르르 떨고 입술을 깨물다가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미안해. 내가 주제넘었어."

 

 아니예요. 존. 미안해하지 말아요. 당신은 주제넘지 않아요. 계속 그렇게 신경을 써 달라구요. 내가 당신을 밀어내도 당신을 그렇게 내게 다가오려고 노력해 줘요.
 그렇지 않으면 난 무척 슬플 테니까요.
 셜록은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존을 외면하고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