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마모/근친

 

 

 조촐한 장례식. 장례식을 집전하는 목사 외에 다섯 명 남짓 되는 사람만이 런던 특유의 안개 낀 하늘 아래 모여있다.
 그 중 두 명은 익숙한 인영이다. 마른 듯 싶은 검은 머리의 소년과 그 옆을 지키는 짧은 금발의 남자는 묘비 앞에서 손을 다소곳이 한 채 목사의 기도를 듣고 있었다. 셜록은 눈을 감고 있는 존을 곁눈으로 흘끗 바라보았다. 존은 묵묵히 눈을 감은 채다. 셜록은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곧이어 관이 아래로 내려가고, 차례로 선 사람들이 한 번씩 흙을 삽으로 퍼서 안쪽으로 부었다. 셜록은 흙을 떠서 아래로 뿌린 후 미련없이 돌아섰다.
 오늘 장례식의 주인공은 셜록의 친할머니인 홈즈 여사다. 할머니라고 해봤자 친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흔한 유서 하나 남기지 않고 죽은 그녀는 갈 때조차 외로웠다. 모두의 관심사인 홈즈 가의 유산은 결과적으로 지난 달 감옥 안에서 사망한 외아들인 홈즈 씨를 거쳐 홈즈 여사의 손자인 홈즈 형제에게 왔다. 마이크로프트는 졸업 시험을 앞두고 있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친족 중에서는 셜록만이 장례식에 온 셈이다.
 형식적인 절차가 끝나자 더이상 볼 일 없다는 듯 장례식장을 벗어나는 셜록을 뒤늦게 눈치챈 존이 그의 뒤를 쫓아간다.

 

 "셜록."

 

 셜록의 어깨를 붙잡으며 존이 말했다. 셜록은 존과 함께 살기 시작한 후 부쩍 컸다. 볼에 통통하던 젖살은 흔적이 없고 본디 지니고 있던 갸름한 얼굴선이 드러났다. 또한,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는 열네살 아이일 뿐인데도, 이미 그는 존과 키가 비슷한 정도로 자랐다. 지금 아이의 어깨 위의 손의 높이도 이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존은 미묘한 섭섭함을 느낀다.
 셜록은 그런 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감정한 투로 말했다.

 

 "이만 집에 가려고요."

 

 존의 손을 표나지 않게 떨친 후 성큼성큼 걸어가는 셜록의 뒷모습을 존은 쓸쓸히 지켜보았다.

 

*

 

 둘 사이에 이렇듯 묘한 냉기가 감도는 이유는 셜록의 중학교 진학 문제때문이다. 존은 마이크로프트가 그랬듯이 셜록이 기숙사 시설이 갖추어진 사립 중학교에 진학하여 에스컬레이터식으로 같은 재단 하의 고등학교까지 가길 바랐다. 그러나 셜록의 생각은 달랐나보다. 평소에 존의 의견에 거의 반대하는 법이 없었던 셜록이 이렇게까지 거세게 반항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존은 셜록이 대체 어떤 연유로 자신의 생각을 반대하는 것인지 들어보고나 싶었지만 그 이유를 물어볼 때마다 셜록의 입은 열쇠를 채운 자물쇠처럼 열리질 않아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셜록 모르게 해당 중학교에 가서 전학 수속을 마치려고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 어떻게 존의 행보를 예측한 것인지 셜록은 존이 그 중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설 때마다 존의 꽁무니에 따라붙어 방해를 하곤 했다. 그렇게까지 행동할 정도라면 분명 말하기 어려운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뻔한데, 적어도 입학 전에는 그 이유라도 알았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

 

 존과 셜록의 플랫 안에는 세 개의 소파가 있었다. 1인용 소파 둘, 3인용 소파 하나. 두 개의 자그마한 소파 중 하나는 존이 주로 앉았으며, 남은 하나는 셜록이 쌓아둔 책이나, 때로는 셜록이 염가에 구입한 해골 모형의 일부가 놓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종종 셜록이 바이올린을 켤 때 말고는 항상 그랬다.
 남아있는 3인용 소파는,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셜록의 차지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키가 자라는 속도가 느렸던 셜록은 그 소파에 누워서, 존의 무릎 베개를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만 같던 일상은 셜록이 자람에 따라 변화되어, 어느새 셜록의 키는 길기만 했던 소파에 혼자 누워도 적당할 정도로 커져버렸다. 훌쩍 자란 셜록은 존의 푸른색 가운을 뺏어입고는-결국 그 가운은 셜록의 차지가 되었다. 원 소유자인 존보다 셜록이 더 자주 입는데,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소파에 누워서 뒹굴거리거나, 손을 모은 채 자신만의 기억의 궁전을 짓는 데에 바빴다.
 그러나 오늘 존과 셜록의 모습은 베이커가의 여느 하루와는 조금 달랐다. 지저분한 플랫 안에서 보풀이 일어난 니트와 구겨진 바지를 입고 소파 위에서 신문을 뒤적이는 것이 일상이었던 존은 깨끗한 셔츠와 손수 다림질한 바지를 입고-게다가 여자를 만나러 갈 때나 신는 가장 깨끗한 신발을 신고-혹시나 구김이 갈세라 바른 자세로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고, 셜록도 깔끔한 양장을 걸치고는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아있다. 그러고보니, 일단 눈에 보이는 거실은 정리 작업을 거친 듯 평소보다 공간이 넓어보였다. 평소의 질서를 찾아볼 수 없는 어지러운 공간이 그나마 이렇게라도 변모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이 대대적인 작업의 많은 기여를 한 허드슨 부인에게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깨끗이 치운 테이블 위에 허드슨 부인이 인심좋게도 차려준 다과상을 놓고 이제나저제나 하고 손님을 기다리던 존은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 하나하나에 움찔거리다가 허드슨 부인이 그를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달리다시피 계단을 내려갔다.
 셜록은 존이 성치 못한 다리로 뛰다가 넘어지면 어쩔는지 걱정이 되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방문이 예정되어 있는 손님은 사실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존은 마치 보호 감찰관이라도 오는 듯 부산이었다. 그런 행동의 원인은 존 특유의 성실함도 있겠지만, 존이 해리엇과 홈즈씨에게 지니고 있는 일종의 부채감도 한 몫 보태었을 것이다. 셜록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드디어 오기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랜만이구나."

 

 문을 열고 나긋한 어조로 인삿말을 꺼낸 남자는 마이크로프트, 셜록의 형이었다.

 

*

 

 셜록은 교육을 잘 받은 영국 소년답게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인사를 했다. 넉살좋은 그의 형처럼 곧바로 말을 트는 것은 비사교성의 극치를 자랑하는 셜록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간단한 목례로 그것을 대신했다.
 그때 마이크로프트 뒤에서 마이크로프트의 어깨를 살짝 넘는 키의 남자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다시 본 마이크로프트가 웬만한 남자들보다 훨씬 큰 키를 가졌다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 남자는 보기와는 다르게 키가 그리 작은 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렷한 검은 눈을 흥미롭다는 듯 반짝이며 셜록을 바라보는 남자는 생소한 느낌의 청년이었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와 매우 친밀해보이는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셜록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그는 쉽게 자신의 정체를 알려줄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을 번갈아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고만 있었다. 마이크로프트 또한 같은 생각인지 입을 다문 채였다.
 세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감도는 가운데 존이 들어와 방문을 닫았다.

 

 "앉아요, 모두들."

 

 존의 말에 다들 자리를 잡았다. 존은 평소 앉던 소파에, 셜록은 다른 작은 소파에, 그리고 마이크로프트와 그과 동행한 다른 남자는 긴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마이크로프트는 대학생이 입는 것 치고는 다소 고급스런 수트를 격식에 맞추어 차려입고 있었다. 위화감이 없는 그 모습은 딱히 존과 셜록을 찾아보기 위해 차려입은 것이 아니라 항시 그렇게 다니는 것임을 짐작하게 하였다. 옆의 남자도 동그란 칼라의 와이셔츠를 안에 받쳐입고 꽤 맵시있게 수트를 걸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친족 상봉과도 같은 이 모임에 말도 없이 끼어들어서는 저렇게 뻔뻔하게 만면에 미소짓고 있는 것도 나름의 재주이기는 했다.
 마이크로프트만 오는 줄 알고 있었던 존이 당황하여 헛기침을 하고 있는 사이 마이크로프트가 능숙하게 첫머리를 꺼내었다.

 

 "반갑습니다, 존 왓슨 씨. 아마 이번이 처음 보는 게...맞나요?"

 

 기품있는 그의 말투가 문장의 끝부분에 가서 약간 확신없이 흐려졌다. 그러나 셜록은 그 말투가, 그리고 능숙하게 말꼬리를 흐려서 상대의 대답을 유도하는 것조차 수준높은 화술 교육을 체화한 흔적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존은 어색함을 극복하고 평소의 침착한 말투로 돌아와 말했다.

 

 "자네가 갓 태어났을 때 본 기억이 나네. 그때는 나도 어렸지만 말야."

 

 마이크로프트가 오기 전까지는 속으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전전긍긍하던 존이었지만 강심장의 존답게 연소자인 마이크로프트를 하대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있는 셜록은 몰래 미소지었다. 하긴 나이 차이가 12살 밖에 안 나긴 해도 삼촌은 삼촌이었으니 존의 하대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마이크로프트가 발산하는 묘한 위압감은 그 나이대에서 보이는 카리스마치고는 대단했기에 산전수전 다 겪은 존조차 처음에는 약간 기세면에서 밀렸던 것이다.
 마이크로프트는 쉽게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존이 의외로 대찬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고 약간 예상 외다 싶었지만 능숙하게 얼굴에 미소를 그려내며 말했다.

 

 "그러시군요. 자...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는 합니다만, 지난번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리 시간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곧바로 후견인 문제와 재산 문제로 넘어갑시다."
 "오."

 

 존이 급진전된 대화의 전개에 짧은 감탄사를 토하며 마이크로프트에게 말했다.

 

 "그 문제는...다른 데서 논하도록 하지. 다른 방으로 가서 이야기하도록 할까."
 "그게 편하시다면."

 

 무리없이 상호의 합의를 이끌어낸 존은 일어서서 마이크로프트를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셜록,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테니 과자라도 먹으면서 손님 대접을 하고 있으렴."

 

 존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떳고, 존을 뒤따라가던 마이크로프트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예쁘게 놓인 과자 대열에서 중간의 것을 하나 집어들어 모양을 흐트러뜨린 남자를 향해 'Behave.'라고 나직히 말하고는 따라서 방을 나갔다.

 

*

 

 남은 두 사람 중 하나는 과자를 와작와작 깨물어먹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자기소개조차 하지 않은 남자를 상대하기 싫었던 셜록은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 묘한 대치가 이루어지는 와중에 드디어 과자를 먹을 만큼 먹었는지 만족스런 기색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셜록이구나?"

 

 자신과 존의 공간에 무턱대고 들이닥친 주제에 대뜸 반말이라니. 셜록은 아까부터 이 남자에게 느끼던 적의-남자가 무례한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유모를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것이 더욱 컸다-가 증폭되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맞아요."
 "듣던 대로네."
 "어떤 말을 하던가요."
 "자기랑 닮지 않았다고 하더군."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은 약간 길쯤한 얼굴형과 그러한 얼굴형에 어울리는 콧대를 제외하고는 닮은 부분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붉은 기가 도는 다갈색의 머리칼을 빗으로 깔끔하게 넘겼으나 셜록은 선천적인 곱슬기가 있는 검은 머리를 귀 부근까지 자른 것만 보아도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맞는 말이네요."

 

 이후 잠깐의 시간동안 묘하게 늘어지는 듯 하면서도 활기띤 목소리와 성의없이 단조로운 목소리가 주거니받거니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서로가 서로의 피상적인 부분만을 건드려보며 서로를 시험하는 듯한 대화가 어느덧 끊기고, 남자는 노골적으로 턱을 괴고 자세를 비뚜름하게 하며 노래하듯 말했다.

 

 "근데 말이지, 너 원래 이렇게 지루한 애니?"

 

 셜록은 차를 목으로 넘기는 것을 잠깐 멈추고 눈을 올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찻잔을 천천히 차 받침대에 내려놓으며 셜록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글쎄요. 그럼 이렇게 해볼까요."

 

 셜록이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게이죠?"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