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짐/마레/월드오브다크니스크로스오버/뱀파이어더마스커레이드AU

 

 

높은 창문 위로 빛이 쏟아지고 있다.
당신의 엄숙한 얼굴 역시
둥근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조용한 은빛 달이 이토록이나
나를 감동시켰던 밤은 없었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노래 중의 노래가
말할 수 없이 감미롭다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잠자코 있다 나도 잠자코 있다
침묵 또한 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호수 위 한 쌍의 백조와 머리 위의 별 외에는
달리 생명 있는 것이라곤 없다

 

당신은 창문으로 몸을 내밀었다
당신이 내민 손과
당신의 가는 목덜미를
은빛 달이 곱게 물들였다.

 

-헤르만 헤세

  

 

 저택에 들어서면서도 레스트레이드는 자신이 지금 마이크로프트를 찾아가는 것이 올바른 처사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의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고뇌를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레스트레이드는 걸음을 멈추었다. 멈춰선 그의 뒤로 앙상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챙 하는 쇳소리가 그를 떠밀듯 울렸으나 레스트레이드는 못박힌 듯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망설임은 마이크로프트에 대한 너무나도 깊은 그리움에 기인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그는 가늠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마음 속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오랜 시간동안 뱀파이어들과 가까이 지내온 레스트레이드는 그들의 특성에 대해 알 만큼 알고 있었다. 뱀파이어들이 때때로 특정한 사람에 대해 사랑과 비슷한 열정에 사로잡히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한 열정의 대상이 되는 이를 뱀파이어들은 '죽음의 신부'라고 칭했다. 뱀파이어들이 죽음의 신부를 맞이하게 되면 결과는 대체로 두 가지였다. 죽음이 그들의 사이를 갈라놓거나, 아니면 언약과도 같이 죽음으로 맺어지거나. 확률은 반반이었다.
 섬약한 뱀파이어들은 마음에 둔 인간의 죽음에 크게 상처입고 그를 따라 소멸을 택하거나 한동안 광란의 발작 또는 깊은 토퍼(수면)에 빠져드는 것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다. 인간을 동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엘더와 프린스의 허락을 받는 등의 만만치 않은 절차를 필요로 했으나 또한 많은 뱀파이어들이 택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그들의 사랑을 깨뜨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권태였다. 오랜 세월을 누리는 그들은 쉽게 서로에게 질렸고 끝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레스트레이드는 반세기 남짓밖에 살지 못한 인간이었으나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많은 뱀파이어들이 그렇게 하찮고도 지저분한 감정 싸움에 휘말리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마이크로프트가 내놓고 말을 하진 않았으나 레스트레이드는 그가 하고 많은 인간들 중에서 자신을 유별나게 아끼는 이유가 자신이 그의 죽음의 신부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리고 레스트레이드는 또한 그가 자신에게 영생을 선사하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뱀파이어가 인간을 혈족으로 변화시키는 순간을 그 인간이 가장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시기를 골라 택했으며 레스트레이드 자신은 이미 젊음을 잃은지 한참도 더 지난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불멸의 동반자로 삼으리라는 희망을 오래 전부터 저버리고 있었다.
 한때는 그와 영원을 살아가리라는 치기어린 희망을 품기도 한 그였지만 이제 현실과의 타협이라는 것을 할 줄 알게 된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마이크로프트가 먼저 자신을 저버리지 않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3개월 전 주제넘게도 마이크로프트에게 투정을 부리듯 화를 내고 그의 곁을 떠난 자신이 이제야 그에게 돌아간다고 해서 그가 과연 기뻐할 것인가? 천성이 냉정한 데다 자기자신에 대한 자긍심으로 충만한 마이크로프트를 떠올리니 그가 돌아온 자신을 다시 받아줄 것이라는 것에 대해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다. 냉대를 받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미 그는 자신은 안중에도 없을지도 모른다. 다른 인간을 총애하고 싱싱한 젊은이를 골라 그의 피를 맛보는 데에 맛들였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저택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옅어진 레스트레이드는 지금이라도 저택을 나가 모습을 감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련이라는 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미 마이크로프트는 자신이 저택 안으로 들어온 것을 눈치채었을 터, 조금만 더 머무르며 그가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려도 무리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라고 레스트레이드는 자신의 미련을 합리화하며 한옆에 정원을 향해 발을 돌렸다. 그러나 초겨울 날씨에 이미 혹사당한 바깥쪽 정원에는 추위에 강한 관목만 흔적처럼 남아있었고 그나마도 무성히 자라 야생의 수풀과 별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래서야 정원을 구경한다는 핑계도 댈 수 없겠군, 하고 자조하던 레스트레이드가 무심코 고개를 돌린 곳에는 새장처럼 서있는 유리온실이 보였다. 흐린 유리창 너머로 홍조처럼 붉은 빛깔이 언뜻 보이는 것에 레스트레이드는 그 안으로 향했다.

 

 온실을 들어서자마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풀내와 잔향처럼 남은 장미향기가 레스트레이드를 감쌌다. 안은 전혀 손질되지 않은 장미넝쿨이 엉망으로 엉켜 무턱대고 가지를 뻗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꽃송이를 떨어뜨리지 않은 몇 떨기의 장미가 남아 최소한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버려진 지 오래되어 퇴색할 대로 퇴색한 정원의 모양새와 동질감을 느낀 레스트레이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정원 안을 거닐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의 자태가 피어있던 모양 그대로 시들어버린 듯 바랜 주홍색의 장미가 레스트레이드가 뻗은 손가락에 닿아 바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붙어있던 꽃잎을 떨구었다. 반쯤 시든 장미향의 관능에 취한 레스트레이드는 머리가 아찔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꽃향기로 가득한 곳에 오래 있으니 현기증이 일었다. 레스트레이드는 아파오는 머리를 무시하고 마이크로프트가 결국엔 와주지 않으려나 하고 온실 안을 초조히 거닐었다.

 

 "오랜만이예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온실 내벽을 울렸다. 레스트레이드는 깜짝 놀라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향한 곳에는 언제나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마이크로프트가 서있었다.
 은거하는 동안 수심에 잠기지나 않았을까 걱정했던 레스트레이드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그의 핏기도 홍조도 한 점 없는 이목구비는 여전했다. 온 몸에 배인 위엄도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전히 퇴색해버린지 오래된 정원 한복판에 결코 퇴색하지 않는 우아함을 지닌 남자가 서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러닉했다.
 레스트레이드가 떨리는 입술을 열려다가 다시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마이크로프트가 입을 열었다.

 

 "못 본 사이 수척해졌군요."

 

 지극히 일상적인 말을 차분한 어조로 말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의 얼굴에 드리운 일말의 순결한 우울과 애절한 고뇌로 말미암아 매우 중요한 듯한 울림을 심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레스트레이드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고 마이크로프트의 생기를 잃은 붉은 입술도 이윽고 닫혀버렸다.
 재회의 순간을 기쁨이 아닌 무겁기 그지없는 침묵이 점령하고 말았다. 악마의 저주처럼 그들을 짓누르는 침묵의 그늘을 미처 걷어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길고 긴 시선의 조우 끝에 레스트레이드가 먼저 눈을 돌렸다.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로 레스트레이드가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강하시니 되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요."

 

 레스트레이드가 몸을 돌려 온실을 나가려는 것을 마이크로프트가 가로막고 말했다.

 

 "내 안부만을 확인하러 온 건 아닐텐데요?...그렉."

 

 망설이다 뱉어낸 이름에 더이상 동요를 숨기지 못하고 레스트레이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복하여 말했다.

 

 "그것뿐입니다. 그것뿐이라고요."

 

 마이크로프트는 흠씬 두들겨맞은 어린애처럼 울상을 짓고 있는 레스트레이드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을 열려던 마이크로프트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억지로 자신을 외면하려고 노력하는 기색이 역력한 레스트레이드를 한동안 응시하던 마이크로프트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정말로 납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레스트레이드의 속마음을 마이크로프트가 입 밖으로 내어버린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을 없을 것이었으니까. 레스트레이드는 안도섞인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간다고요, 그렉?"

 

 또다시 이름을 불러온다.
 레스트레이드는 더이상 마이크로프트를 피하지 못하고 그와 다시 시선을 마주쳤다.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긴 했으나 어깨를 간헐적으로 떨고 있는 레스트레이드에게 마이크로프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알 수 없는 눈길로 레스트레이드를 바라보던 그는 눈앞의 반백이 다 된 남자를 품에 안았다. 난데없는 포옹에 레스트레이드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가 꼼지락거리던 손을 살그머니 올려 마이크로프트를 마주 안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당신은 정말 어렵군요."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레스트레이드는 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표정을 보려 했으나 마이크로프트는 팔의 구속을 풀지 않았다.
 일일천추라고 했던가.
 그를 만나지 못했던 삼 개월은 오랜 기간을 살아온 마이크로프트에게도 고문과 다름이 없는 시간이었다. 마치 존재의 한 조각이 영영 떨어져나간 것처럼 활기도 의욕도 없는 하루하루는 그 이전까지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을까 싶을 정도로 공허한 시간들이었고, 마이크로프트는 권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던 수많은 기억 속의 혈족들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부유감을 떠안고 간신히 시간을 흘려보내던 중, 레스트레이드가 저택에 당도한 순간이 되어서야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능동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을 자각하자 씁쓸한 조소가 치밀었다. 그렇게 자기혐오의 감정이 들면서도 레스트레이드를 막상 품에 안으니 이렇게 기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이크로프트의 심정을 더욱 착잡하게 만들었다.
 무슨 심경에서 하는 말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모호한 어조로 마이크로프트가 레스트레이드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이 나를-자신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지요."

 

 간접적으로 레스트레이드에게 그 자신이 그의 속내를 파악했음을 알리자 마이크로프트에게 안길 때부터 빨라진 심장의 고동이 한층 더 빨라졌다. 레스트레이드가 오길 기다리며 저택의 불을 밝힌 마이크로프트. 일부러 저택이 아닌 정원으로 발길을 돌린 레스트레이드. 결국 레스트레이드가 있는 곳으로 움직인 것은 마이크로프트가 먼저였다. 그것을 지금 굳이 언급한 이유는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레스트레이드에게만큼은 한 수 접고 들어간다는 것을 은밀히 시사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레스트레이드의 두 뺨에 홍조가 몰렸다. 사탕발림과도 같이 달콤하기만 한 그의 속삭임에 레스트레이드는 그가 지금 하는 말의 진실성에 대한 불안함을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었지만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을 먼저 찾아주고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레스트레이드를 감격하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에 따라 소심하게 손을 등 뒤로 올리는 것에 불과했던 그의 포옹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런 한없이 순수하고 솔직한 그를 꼭 안은 채로 마이크로프트는 야비하게 일그러진 미소를 띠었다. 지금 이 순간 끔찍하고 기괴한 소유욕으로 얼룩졌을 자신의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는 좀더 단단히 그를 끌어안았다. 레스트레이드는 한낱 보잘것없는 인간에 불과했으나 그가 힘들여 자신을 향한 마음을 토해낼 때 마이크로프트는 어디에서도 그보다 더한 희열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레스트레이드를 안심시킬 수 있는 자신의 친절하고 상냥한 가면을 계속해서 덮어쓰고 있기로 했다.
 레스트레이드의 등을 쓸어내리며 마이크로프트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들어요."

 

 새빨갛게 되었을 얼굴을 들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쳐들게 한 후 그 입술에 부드럽게 입맞추며 마이크로프트가 속삭였다.

 

 "나의 그렉..."

 

 마이크로프트의 속삭임을 들은 레스트레이드가 얼굴을 붉혔다. 그런 그에게 짧은 키스를 한 마이크로프트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다시 그에게 키스했다. 수줍지만 분명히 적극적인 몸짓으로 레스트레이드가 화답했다.
 신사적인 입맞춤으로 시작되었던 키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레스트레이드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깊어졌다. 오랜만에 맛보는 입 안의 점막을 하나하나 느끼려는 것처럼 깊숙이 혀를 집어넣은 마이크로프트는 입 안에서 난폭하게 분탕질을 쳤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것처럼 진득한 키스가 이어졌다. 간간이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마이크로프트가 나의 그렉, 을 연신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소유를 재확인하듯 연신 낭만적인 속삭임을 퍼부으며 마이크로프트는 키스를 계속했다. 집착처럼 끈질기게 이어지는 입맞춤에 숨이 가빠온 레스트레이드가 잠깐, 하고 고개를 뒤로 물리려고 했지만 마이크로프트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오히려 바들바들 떨리는 그의 구강 점막을 한계까지 유린하는 데에 집중했다.
 호흡의 주도권마저 마이크로프트에게 박탈당해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레스트레이드를 지탱하듯 안고 마이크로프트는 만족스럽게 키스를 마치고 입술을 떼었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레스트레이드의 뺨을 어루만지며 마이크로프트가 못박듯이 말했다.

 

 "당신은 내것이지요?"

 

 키스의 여운으로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레스트레이드가 대답했다.

 

 "...네."

 

 솔직한 대답에 마이크로프트가 미소지었다. 웬만해서는 개인적인 희노의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는 일이 적은 마이크로프트로서는 커다란 감정 표현인 셈이었다.
 온실 안으로 은은한 달빛이 들어와 두 사람을 감쌌다. 달빛을 따라 더욱 농도를 더했을 고독의 유혹은 이제 간데없었다. 대신 마이크로프트는 아직도 헐떡이는 레스트레이드를 끌어안고는 달이 완전히 기울기 전에 저택으로 돌아가 회포를 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장미 온실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달빛의 파도가 흠뻑 적셨다.

 

*


 아침이 가까워왔고, 레스트레이드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피를 빨린 목덜미가 욱신거렸지만 참을 만했다. 사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둔통이 더 심했지만 그건 달리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밤의 행위를 되새기듯 허리를 살살 매만지며 레스트레이드는 자신의 옆에 누운 마이크로프트를 바라보았다. 흡사 죽은 사람처럼 숨도 쉬지 않고 얌전히 누워있는 마이크로프트의 모습은 레스트레이드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굉장히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다정한 시선으로 잠시 그를 바라보던 레스트레이드는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저택 복도에 햇빛이 비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저택의 주인이 뱀파이어이니만큼 아침이 되기 전까지 반드시 저택 안으로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으나 간밤에 문을 열어놓고 닫는 것을 잊어버렸는지 지금 저택 안으로는 여느 인간들이 사는 곳처럼 무방비하게 햇빛이 쏟아져들어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레스트레이드는 급히 침대에서 내려서다 허리를 삐끗할 뻔했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일어선 그는 바닥에 내팽개쳐진 옷을 줏어 대충 걸치고 방을 나서려다 무언가를 기억해낸듯 다시 뒤돌아서 마이크로프트가 누워있는 침대로 향했다. 흡혈의 효능으로 약간 발그스름하게 혈색이 도는 마이크로프트의 뺨에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입을 맞춘 레스트레이드는 시트를 끌어당겨 그를 덮어주고 침대 매무새를 다듬어주는 것까지 끝마친 후에야 방을 빠져나갔다.

 

 저택 곳곳을 돌아다니며 젖혀져있는 커튼을 하나하나 닫던 레스트레이드가 문득 그 자리에 멈춰섰다. 깊은 밤 등 뒤에서 신경을 묘하게 곤두서게 만드는 이상한 기척이 바스락바스락 들려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방 안의 분위기가 으슬으슬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간임에도 오한이 든다는 것은 확실히 기이한 것이었기에 레스트레이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한 차례 몸을 떨고 다시 손을 움직여 열려있던 마지막 커튼을 틈새 없이 여몄다. 커튼을 닫고 뒤로 돌아선 레스트레이드는 그제서야 그가 이유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검은 머리의 남자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레스트레이드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셜록 홈즈. 마이크로프트의 호의를 입어 저택에서 함께 지내게 된 신생 뱀파이어. 언제나 활력없이 무심한 시선으로 그를 흘깃 바라보고 지나치던 남자가 어째서  지금 자신의 뒤에서 수상쩍은 눈빛을 보내오고 있는지 레스트레이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물건을 품평하듯 위아래로 자신을 훑어보는 셜록의 시선에 최대한 동요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레스트레이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죠?"

 

 그의 나이가 분명 자신보다 어리다는 것을 레스트레이드는 알고 있었지만 그는 엄연히 포식자의 입장이었고 자신은 그 반대의 입장이라는 것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것이라고 결론지었고 따라서 셜록에게 다소 과도할 정도로 예의를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당황하지 않고 자신을 마주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을 거는 레스트레이드의 의연한 대처에 셜록이 오히려 당황한 듯 잠시 그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배가 고픈데요."

 

 그가 입을 여는 순간 훅 끼치는 피냄새에 레스트레이드가 본능적으로 표정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기묘하고도 따뜻한 냄새가 짙게 풍겨왔다. 왜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싶도록 진한 피냄새였다. 급작스레 변하는 상황에 위기감이 든 레스트레이드는 기민한 관찰력을 동원해 멀리 떨어져 있는 그를 관찰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그가 매끈한 돌바닥에 남긴 핏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피바다에 푹 빠졌다 나온 것처럼 핏물로 그려진 발자국이 회색 대리석 바닥에 선명했다. 셜록의 상반신으로 시선을 향하자 피에 푹 젖은 채로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는 와인색의 셔츠깃이 보였다. 과연 그 셔츠가 본디 와인색이었을지, 그렇지 않으면 피에 젖어 와인색으로 변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더욱 무서웠다. 언뜻 보기에도 몸 전체에 피범벅이 아닌 곳이 없을 정도였지만 신기하게도 얼굴에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아 보랏빛으로 창백하게 보였다.
 셜록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처럼 입을 살짝 벌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어정쩡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가 멋쩍었는지 혀로 메마른 입술을 쓸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레스트레이드는 그 입 안이 위험한 붉은색으로 물들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겁이 더럭 난 그는 약간 급하다 싶게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곤란해요."

 

 레스트레이드의 말에 셜록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한옆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던 고개가 다시 똑바르게 들려 그를 바라보는 것에 레스트레이드는 괜히 입을 열었다 싶었지만 어쩔 수없이 말을 이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아까 전까지 마셨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소립니다."

 

 사실 지금도 머리가 조금 아픕니다만, 하고 말을 끝맺는 레스트레이드에게 셜록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예요. 사실 지금 배가 고프다는 것이 저로서도 의외이긴 한데..."

 

 셜록이 말을 흐리며 곤란한 듯 손을 올려 머리를 긁적였다. 가만히 늘어뜨리고 있던 팔을 갑자기 위로 들어올리자 피가 엉겨붙어 한층 짙은 검은색으로 변한 재킷 소매에서 핏방울이 몇 초의 간격을 두고 간헐적으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손에 피가 묻은 것도 모르고 있었는지 찐득하게 핏자국이 달라붙은 손으로 머리를 만지다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에 달라붙는 것에 당황하는 셜록을 보는 레스트레이드는 그의 허술한 모습에 다소 안심이 되면서도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왜 저 남자를 받아들인 걸까? 그는 마이크로프트와 일견 닮은 듯한 분위기를 지니긴 했으나 마이크로프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레스트레이드는 두 흡혈귀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이크로프트가 특유의 기품과 식견으로 타인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라면, 셜록은 그보다 복잡미묘한 존재였다. 두렵지만 동시에 연민이 뒤섞인 모순된 감정을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품게 한다고나 할까. 아직 인간의 피를 앗아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하지 못한 젊은 흡혈귀에게서 흔히 보이는 인간성의 잔재때문인지 아니면...
 방황하는 레스트레이드의 상념의 끈을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셜록이 입을 열었다.

 

 "사실 아까까지 한 인간의 피를 마시고 돌아왔거든요."

 

 딱 보기에도 그래보입니다, 라고 답하려고 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의 몸 속의 피를 남김없이 뽑아낸다고 해도 저렇게 피에 푹 절도록 할 만큼의 양은 되지 못했다. 그러면 어디서, 라고 물어보려던 레스트레이드가 미처 질문하기 전에 셜록이 해답을 주었다.

 

 "그런데도 배가 고파서 저택 지하실에 있는 혈액보관함에서 몇 팩 꺼내마셨죠."

 

 피로 가득 채운 욕조에 담갔다 꺼냈다고 해도 믿을만한 그의 몰골을 보면 몇 팩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일이었지만 레스트레이드는 대화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길 원하지 않았기에 적당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대신했다.

 

 "인간의 피를 언제 마셨는데요?"
 "어젯밤이었습니다."

 

 셜록의 대답에 레스트레이드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벌써 목이 마를 이유가 없을텐데요."

 

 레스트레이드의 말에 셜록이 짜증섞인 목소리로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고 말했다. 격앙되던 목소리는 금세 힘을 잃고 나직하게 잦아들었다.

 

 "그런데 갈증이 가시질 않아요."

 

 내뱉은 탄식에는 절박함이 어려있었고,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이 섣불리 자신의 피를 마시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하필 마이크로프트가 자고 있을 때 이런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단 말인가. 흡혈귀의 생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기는 했지만 명색이 형제인 마이크로프트가 마땅히 이런 돌발상황에 관여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레스트레이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시기에 갑작스레 젊은 뱀파이어의 상담역이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한숨을 내쉰 레스트레이드는 입을 열었다.

 

 "일단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그 몸부터 어떻게 합시다. 이야기는 그 다음에 하죠."

 

 그의 옆을 지나치던 레스트레이드가 다시 돌아서 셜록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함부로 뭐 만지지 말아요. 그 꼴로 이 집 물건에 손댔다간 마이크로프트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하나하나가 적어도 몇 십년의 세월을 지닌 물건들이니까요, 라고 말한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이 목마름을 해소한답시고 엉망진창으로 피를 튀겨놓았을 지하창고를 청소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

 

 셜록이 깨끗이 씻고, 레스트레이드가 피범벅이 된 지하실을 청소하고 나자 정오가 훌쩍 지나있었다. 셜록은 여전히 갈증이 치미는지 종종 목을 만져대긴 했으나 그 비정상적인 갈증을 풀기 위해 레스트레이드를 습격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게다가 뱀파이어들의 힘이 약해지는 낮시간이었으므로 그는 졸음을 간신히 참는 사람처럼 소파에 몸을 나른하게 누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뱀파이어의 우월한 신체 능력이 어딜 가는 것이 아니었고, 만의 하나의 상황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기에 레스트레이드는 그와 멀찍이 떨어진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레스트레이드의 모습을 본 셜록은 쓴웃음을 지었으나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지라 달리 무어라고 말은 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이런저런 상황에 휩쓸리느라 식사도 하지 못한 레스트레이드는 혼자만을 위한 애프터눈 티타임을 가지며 셜록의 설명을 들었다. 셜록은 초조해하는 기색이었으나 금방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초지종을 듣게 된 레스트레이드는 당혹스러웠다.
 그의 말에 따르면 셜록은 한 인간의 냄새를 맡았고, 주체할 수 없는 욕구를 느낀 끝에 그 남자의 피를 빨았다고 했다. 하지만 흡혈귀의 흡혈은 본래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들의 신원 조회 절차가 복잡화되면서 시체를 유기하는 것이 어려워진 지금 흡혈귀들은 욕구에 몸을 맡긴 채로 인간을 습격하는 원시적 사냥 방식을 버리고 좀더 교묘한 방법을 택했다. 보통은 밤거리에서 흥청망청대는 인간들이 제 일의 목표물이었다. 술이나 약에 취해있을 것이므로 설사 기억을 한다 해도 환각으로 치부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적합한 사냥감이 없을 경우에는 좀더 번거로운 방법을 썼는데, 상대방을 유혹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방법이었다. 물론 뱀파이어가 소유한 강한 매료 능력이 그 작업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매료 능력만 발휘한다고 해서 인간이 흡혈귀의 수중에 쉽사리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의심이 극도로 많아진 현대 인간들을 속이기 위해서는 책략을 구사할 줄 아는 지성과 그것을 줄기차게 지속해낼 수 있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다. 그건 마치 사랑과도 같은 일련의 과정이었다. 물론 기간이 하루에서 이틀 정도로 무척이나 짧다는 것과, 결과가 흡혈로 끝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셜록이 털어놓은 바는 그와는 확연히 달랐다. 처음부터 상대방을 제압하여 꼼짝 못하게 만들고 흡혈을 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은 매료 능력이 웬만큼 강해서는 먹히지 않는 수법이다. 또한 흡혈을 하고 나서도 욕구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특이한 반응은 단 한 가지 특정한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었다. 마이크로프트가 자신을 죽음의 신부로 낙점지은 것처럼, 셜록이 그 남자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다.
 반려나 다름없는 죽음의 신부는 보통은 뱀파이어가 된지 한참 지나고도 한 명을 발견할까 말까 한 것이었다. 그런데 혈족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가, 그것도 첫 흡혈을 한 대상에게서 그것을 느끼다니, 우연이 겹친다 해도 이리도 절묘할 수는 없었다.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에게 그 점을 셜명하고선 말했다.

 

 "...그런 상황이 닥칠 수 있지. 네가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이 그 상황에 따른 것이라면, 불행하게도 너로서는 억제할 방법이 없어."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레스트레이드의 말투는 자연스럽게 반말조로 바뀌어 있었으나 딱히 셜록은 그에 신경쓰는 것같지는 않았다. 레스트레이드가 말해준 사실들이 충격적이었는지 그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억제할 수 없다고요, 라는 말을 한숨과 함께 중얼거릴 뿐이었다. 감성을 배제하고 이성에 입각한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지니고 있던 셜록에게는 자신으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뜻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 못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셜록이 왜 절망하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자의로 흡혈귀가 된 것도 아닌데다가 통제불능의 상황에 휩싸인 그의 혼란스러움만큼은 레스트레이드는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그를 위로하고 싶었던 레스트레이드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이크로프트와 나도 그런 관계야."

 

 네가 상상하는 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하고 중얼거리며 후후 웃는 그에게 셜록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유난히 친밀해보였던 까닭이 있었군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레스트레이드를 쳐다본 셜록은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굳이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당신은 그와 함께하고 싶은 것같은데요."

 

 이유는 당신이 더 잘 알테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하고 말한 후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평소에 얼굴을 마주칠 때에도 소 닭보듯 데면데면하게 굴며 그다지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 싶었던 셜록이 자신과 마이크로프트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의외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에 놀란 레스트레이드는 급히 말을 돌렸다.

 

 "사실 이런 것은 내가 아닌 마이크로프트와 의논해야 하는 것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주의할 점만 간단히 알려주지."

 

 레스트레이드가 말을 이었다.

 

 "두 가지만 주의하면 돼. 하나는 그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

 

 셜록이 레스트레이드를 바라보자 그가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내가 그와 같은 입장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그렇게 말한 레스트레이드는 표정을 심각하게 굳히고 말을 이었다.

 

 "사실 뱀파이어들 사이에서는 죽음의 신부라는 개념 자체를 말만 번드르르하지 실상은 전속 수혈팩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그건 모르고들 하는 소리거든. 그가 죽으면 너도 상처를 받게 돼. 그런 뱀파이어들을 여럿 보아온 내가 하는 말이니 믿어도 되네."

 

 셜록은 수긍하는 것인지 부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태도로 레스트레이드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레스트레이드가 당부했다.

 

 "육체적인 면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말이야."

 

 딴에는 걱정이 되어 해주는 말이었지만 셜록은 그에 말을 영 진지하게 듣는 기색이 아니었다. 기껏 말해주었더니 정작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에 한편으로는 화가 났지만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던지라 레스트레이드는 그저 몇 마디 덧붙이는 정도로 이야기를 마치려 했다.

 

 "아마 자신은 괜찮을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견딜 수 없을지도 몰라.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게 좋겠지."
 "굳이 당신이 당부하지 않더라도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겁니다."

 

 거듭된 레스트레이드의 말에 셜록이 툴툴거리듯 답했다. 레스트레이드는 곧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두 번째는 그 인간에게 당신의 피를 먹여서는 안된다는 거야."

 

 레스트레이드의 목소리는 한층 진지해졌다.

 

 "그를 혈족으로 탈바꿈하려면 웃전의 허락을 얻어야 해. 엘더들 말이야. 그렇지만 당신은 탄생부터가 그들에게 밉보였으니 그들이 허락해주지 않을게 뻔하지. 허락 없이 그를 뱀파이어로 만들었다간 그는 한때 당신이 처했던 상황을 겪게 되겠지. 이번에도 마이크로프트가 비호해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레스트레이드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단 한 방울도 먹여서는 안돼."

 

 '단 한 방울도'를 강조하는 레스트레이드에게 셜록이 이유를 물었다.

 

 "한 방울 정도로는 인간이 뱀파이어로 변하기엔 부족하잖습니까. 당신이 그 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을테지요?"

 

 레스트레이드가 셜록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건 나도 몰라. 마이크로프트도 그 점에 대해서만큼은 알려주지 않더군. 내가 알아보았자 소용이 없는 사실이라면서 말이야."

 

 확신이 없는 어조에 셜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당신조차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사실을 그토록 강조하는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웃기지 않나요?"

 

 시비조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셜록의 말에 당혹을 감추지 못하는 레스트레이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그의 말을 믿나요?"

 

 명백히 도발적인 어조에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다지 확신이 담긴 눈빛은 아니었으나 아까처럼 시선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셜록이 파란 안광을 빛내며 마주 바라보는 것에 그는 곧 고개를 돌리며 약한 어조로 말했다.

 

 "믿고 말고."

 

 레스트레이드가 말을 맺었다.

 

 "그리고 믿어야 하고 말이지."

 

*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 간신히 눈을 떴다. 줄곧 감고 있던 눈에는 옅은 햇빛도 고통스러웠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눈을 떴다가, 손가락 사이를 천천히 벌려 눈이 햇빛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그런 후에야 존은 겨우 눈을 똑바로 뜰 수 있었다.
 눈은 떴지만 몸은 흙 속에 묻히기라도 한 듯 딱딱하게 굳어 말을 듣지 않았다. 밤새 온몸을 엄습했을 냉기에 사지가 굳은 듯 팔다리를 까딱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장시간 노력한 끝에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존의 발 아래로 무언가가 스르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동시에 싸늘한 아침 공기가 목덜미를 파고드는 것에 존은 부르르 떨었다. 그는 땅바닥에 떨어진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목도리였다. 처음 보는 색상과 질감의 그것은 당연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남자의 눈동자 색깔을 한층 짙게 한 후 가라앉힌 듯한 톤의-
 목도리를 보고 곰곰히 생각하는 동안 흐려졌던 어제의 기억이 다시금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길을 잃고 이름모를 저택으로 향하던 중 한 남자를 만났고, 무뚝뚝하지만 다소 정중한 태도의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덫에 발꿈치가 씹힌 것처럼 도망칠 수가 없었던 어젯밤.
 존은 급히 자신의 목덜미를 만졌다. 신기하게도 어제 남자에게 잘근잘근 씹혔던 그곳은 빠르게 아물어 손끝에는 다소 울퉁불퉁한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살갗 위로 느껴지는 다소간의 요철감만이 그가 어제 당했던 일이 단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하하하 하고 허탈한 웃음소리가 존의 입술로 새어나왔다. 한여름밤의 꿈도 아니고, 라는 다소 낙천적인 중얼거림이 존의 머리를 맴돌았다. 아니, 따지고 보면 한여름밤의 꿈보다 더욱 질이 나쁘다. 적어도 거기선 남녀간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라도 했잖은가? 그것도 세 쌍이나. 이왕 당할거면 미녀한테 당했으면 좋았으련만, 하고 존은 애써 가볍게 생각하려 했다.
 잊자, 잊어, 하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의 시야에 다시 목도리가 들어왔다. 그는 땅바닥에 흩어진 그것을 집어들었다. 어젯밤 자신을 습격한 남자가 남기고 간 것이 분명했다. 대체 왜 그런 뜬금없는 호의를 베풀었는지는 존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추위에 굳은 손가락에 목도리가 감겨왔다. 고급스런 질감에, 밤새 자신의 목을 감싸고 있던 부드럽고 따뜻한 목도리. 아직 자신의 온기를 머금고 있는 그것을 손에 들고 존은 망설였다.
 그는 그것을 길바닥에 내버릴 수도 있었다.
 한동안 망설이던 그는 남들의 눈치를 보듯 좌우를 흘깃 둘러보고 빠르게 왕진 가방 안에 목도리를 쑤셔넣었다. 자신을 습격한 자가 남긴 목도리를 당장에 내팽개치기는 커녕 소중하게 챙긴 자신의 행동은 순전히 고급 머플러를 내버리기 아까워서였을 뿐이다 라고 합리화하며 존은 숫제 누가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바삐 걸음을 옮겼다.

*

 

불쌍한 의사양반 존 왓슨이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가 따끈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침대에 누워 간밤에 있었던 일을 기억에서 지우려고 결심하던 그때 마이크로프트는 막 오수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언제나와 같이 빈틈없이 완벽한 차림새를 한 그는 셜록이 거처하는 작은 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덧창과 커튼까지 빠짐없이 전부 내려져 빛이라곤 한 점도 들어오지 않는 저택의 컴컴한 복도를 걷는 그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셜록의 방문 앞에 다다른 마이크로프트는 살그머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셜록의 방은 천장이 높은 탓에 실제의 넓이보다 다소 좁아보이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벽에 나 있는 단 하나의 유일한 창문은 17세기 후반에 유행한 타원형 양식을 본뜬 것이었다. 이 창문은 저택의 채광 방향과 건물 주위를 둘러싼 숲의 조감에 대한 고려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창문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하늘을 직접 볼 수 없고 연못에서 반사되는 위치의 하늘만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낮은 위치의 창문으로 약한 저녁 노을빛이 희미하게 비쳐들었다. 램프 하나도 심지어 촛불 하나도 켜져 있지 않은 어둠침침한 방은 밤이 다가오고 유일한 광원이라 할 수 있었던 햇빛마저 스러져가면서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셜록은 방의 가장자리에 놓인 의자에 심란한 기분으로 앉아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의기소침해보이는 셜록을 향해 다가가며 연극적인 어조로 말했다.

 

 "내 사랑하는 동생아."

 

 막이 오르고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처럼 거창한 서두였다.

 

 "이 무슨 우울하고 낙심천만한 사태란 말이냐?"

 

 마이크로프트의 말은 셜록의 주의를 자신 쪽으로 잡아끄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셜록은 잠시 마이크로프트를 바라본 후 황망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늘진 어둠 속에 침잠한 채로 연못의 잔잔한 표면에서 반사되는 석양빛을 응시하는 셜록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죄를 저질러 순수를 상실한 어린아이의 비애감이 배어있었다.
 그런 셜록을 바라보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인간의 피를 마신 것이 그렇게나 충격적이었니?"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에게 건넨 말은 폐부 깊이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건만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몰래 엿듣기라도 한 것인가? 혐오감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셜록이 물으려 하자 마이크로프트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곧바로 말했다.

 

 "이 저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내 눈과 귀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란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니? 하고 말하며 마이크로프트가 웃었다. 그의 낮은 웃음소리가 방 안을 낮게 떠돌다 가라앉아 사라졌다. 웃음소리의 잔향이 사라지고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에게 말했다.

 

 "그럼 충격적인 전모를 한 번 들어볼까."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셜록은 발작하듯 소리쳤다.

 

 "충격적이지 않으면? 충격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건가?"

 

 셜록이 고개를 푹 숙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

 

 이성을 잃고 짐승같은 욕망에 몸을 맡긴 것이 충격적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마이크로프트가 그 점을 모르고 셜록에게 그렇게 자못 순진한 뉘앙스의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첫 흡혈이란 본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흠 하나 없이 결백한 인간성이 난생 처음으로 흔들리고 점차 괴물의 길로 접어드는 첫걸음이니만큼 셜록의 동요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자신이 몇 백년 전에 이미 끝마친 고민에 새로이 잠겨 허우적대는 셜록을 보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루하기도 했다. 마이크로프트는 방 한 편에 놓인 침대 가장자리에 다가가 앉았다. 침대를 덮은 남색의 벨벳이 사각거리며 부드러운 감촉을 주었다. 얼마쯤 그대로 앉아 있던 사내의 어깨가 마치 목이 메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금씩 들먹거리며 흔들렸다. 심상치 않은 기색에 셜록이 마이크로프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본 셜록의 얼굴은 곧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왜 웃는 거지?"

 

 셜록이 물었으나 마이크로프트는 좀처럼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셜록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간신히 웃기를 멈춘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을 향해 다정스레 말했다.

 

 "오, 순진한 아이야."

 

 셜록이 파랗게 안광을 빛내며 마이크로프트를 노려보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셜록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린 인간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존재들이 아니야."

 

 아니고 말고, 라고 마이크로프트는 잔혹하게 중얼거렸다.

 

 "우리들이 고귀한 혈통을 가진 우아한 귀족이라고 생각하나? 절대 그렇지 않아. 조금의 수고도 없이 여인들이 우리에게 기꺼이 목덜미를 바치고 우리의 발치에 엎드려 굴복하며 우리의 존재를 갈구하리라고 생각해? 부분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이지. 하지만 그건 우리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가 아니야."

 

 마이크로프트가 속삭였다.

 

 "본질적으로 말이다, 우리는 더럽고 야비한 악당에 지나지 않는단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한밤중에 타인의 목숨을 몰래 빼앗고, 무덤에서 일어나 자기자신의 수의를 갈가리 찢어 씹어먹는 괴물이란 거야. 폭력과 죽음, 그것의 결정체일 뿐이라고...그 가운데의 하나가 된 너조차도 자신의 본모습을 이때껏 깨닫지 못한 것이로구나."

 

 셜록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까지 가차없이 비하하는 조롱을 내뱉으며 즐거워하는 마이크로프트는 변함없이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정한 자태로 앉아 있는 그의 얼굴에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투명하고 아득한 햇빛이 비쳤다. 태양의 황금빛, 보랏빛을 띤 구름의 색조, 서서히 떠오르는 별들의 선홍빛이 타오르는 듯 선명하게 창문가로 스며들며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믿기지 않게도, 추악하게 일그러져 셜록은 물론이고 그 자신까지도 비웃는 그의 모습은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첫 난관을 넘어서지 못하고 절망으로 주저앉는 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 스스로 햇빛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이들도 많단다."

 

 잠시 입을 다물었던 마이크로프트가 다시 입을 열어 셜록에게 말했다.

 

 "살고 싶지 않다면 당장 저 일몰로 나서면 된단다."

 

 그가 유혹하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놀라울 정도로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우리보다 한참은 더 연약한 인간들은 갖은 방법을 다해 죽음에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말이다. 성공하더라도 남은 이들에게 몹시 추한 꼴을 남기고 갈 때도 많지 않니.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우아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으로 존재의 소멸을 택할 수 있다니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마이크로프트는 마침 그 절정에 달하여 있는 석양의 태양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그 치명적인 빛의 물결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의 눈빛은 아련한 기미를 담고 있었다.

 

 "물론 네가 죽음을 택한다면 난 무척 아쉬울 거란다. 넌 내 무료함을 잠시나마 달래주었지 않니. 더이상 그럴 수 없다면 난 다시 나를 즐거이 해줄 수 있는 또다른 누군가를 찾아나서야 할 테고."

 

 철저히 이기주의에 매몰된 사고방식으로 점철된 말에 셜록이 인상을 찡그렸다. 마이크로프트도 셜록의 표정 변화를 눈치챘는지 어조를 다소 다정하게 바꾸어 말을 이었다.

 

 "그러나, 알겠지."

 

 마이크로프트가 조용히 말했다.

 

 "고통은 한순간이란다."

 

 충격으로 잠시 말문이 막혀 있던 셜록은 곧 냉정을 되찾았다. 마이크로프트에게 야릇하고 복합적인 면이 숨겨져있다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냉혹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한없이 감상적으로 돌변할 때도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의 본모습에 놀란 것은 예상치 못한 야습에 놀란 적군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더이상 감정에 휘둘려 절망하는 것은 그에게 치욕적일 터였다. 냉정하게 동요를 수습한 셜록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속이 메스꺼워질 정도로 추악하군."

 

 셜록의 중얼거림에 마이크로프트가 웃음을 그치고 차분히 동조했다.

 

 "옳은 말이구나."

 

 그리고 잠시, 둘 사이의 대화가 끊겼다. 오가는 대화가 사라진 공간을 메운 것은 그날의 안녕을 고하는 햇빛이었다. 창에서 들어오는 빛은 아직 불그스름한 낙조의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마지막으로 저무는 햇살이 길게 구릿빛을 드리우다가 그날따라 푸르다기보다는 꺼멓게까지 보이는 어두운 하늘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빛줄기가 잠시 머물렀다 떠나버린 하늘에는 아직 주홍빛이 간간이 남아있었으나 셜록의 방 안은 그와는 대조되는 어둠이 한층 짙게 내려앉아, 셜록과 마이크로프트의 실루엣은 마치 그림자 무언극에 나오는 윤곽처럼 보였다.
 완전한 어둠에 잠긴 채로 묵묵하게 앉아있던 마이크로프트가 입을 열었다.

 

 "네가 거리끼지만 않는다면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주도록 하지."

 

 셜록은 코웃음쳤다. 무엇에 대한 조언이란 말인가? 어떻게 하면 인간의 피를 효율적으로 강탈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조언?
 마이크로프트를 도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셜록이 말했다.

 

 "그런 당신을 두둔하려는 자가 불쌍하군."

 

 셜록이 지칭하는 사람이 레스트레이드라는 것을 알아차린 마이크로프트는 잠시 침묵한 후 대답했다.

 

 "그가 내게 과분한 존재라는 것은 알고 있지."

 

 마이크로프트가 슬픈듯이 덧붙였다.

 

 "저주받은 긴 세월 속에서 그 하나만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빛이자 천사였는데 그는 이제 늙어가고 있구나."

 

 셜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내가 보기엔 무척이나 간단해 보이는데. 그에게 영생을 선물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또한 당신의 혈족이 되는 것을 원하고 있는 듯 보이던데."

 

 셜록의 말에 마이크로프트가 미소지었다.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야."

 

 답답하기 짝이 없군, 하고 중얼거린 셜록이 약간 언성을 높여 말했다.

 

 "뭐가 문제인 것인지 모르겠군. 당신과 대립하고 있는 다른 흡혈귀들이 문제인 건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당신이 그 정도의 반발을 통제하지 못할 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따위 사소한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그를 당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도 말이 되지 않아. 마이크로프트 당신은 현명한 척 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누구보다도 겁이 많고 어리석은 사람이야."

 

 셜록은 줄곧 앉아있던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어. 이제 당신의 혀끝에 섣불리 놀아나지 않을 거야. 당신이야말로 당신 자신의 문제에 신경을 쓰는 게 좋을 걸. 빛이니 천사이니 하는 닭살돋는 고백은 내 앞에서 하지 말고 당사자 앞에서 하란 말이야."

 

 매몰차게 쏘아붙인 후 셜록은 코트를 걸친 후 방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불빛 한 점 없는 어둠에 파묻힌 방 안에서 마이크로프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이미 그를 죽일 뻔했어."

 

 그가 느닷없이 중얼거렸다.

 

 "그런 내가, 내 욕심 때문에 그를 또다시 위험에 처하게 할 순 없단다."

 

 예전의 두통이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마이크로프트는 고개를 숙였다. 참회하는 신도처럼 경건하게 고개를 숙인 마이크로프트는 정적 속에 몸을 맡겼다. 흐린 별빛만이 비쳐들어 순간적인 신기루처럼 그림자와 어둠이 먼 과거의 백일몽처럼 어른거리는 방 안에서 그는 뚜렷한 검은 윤곽의 하나가 되어버린 채로 밤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