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짐/마레/월드오브다크니스크로스오버/뱀파이어더마스커레이드AU

 

 

 살롱 내부의 정경을 넋 놓고 바라보던 존은 멀리서 들려오는 요란한 웃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옅은 노랑과 푸르스름한 장미가 번갈아 넝쿨을 감고 있는 은은한 빛깔의 중국산 자개 병풍을 지나 일단의 숙녀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나중에 입장했지만 지금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이의의 여지없이 카른슈타인 여백작이었다. 웃는 그녀의 몸이 흔들리며 완벽한 두상 위로 커다랗게 물결치는 적색의 숱 많은 머리칼이 찰랑거리며 금빛을 발했다. 다소 크다 싶을 정도의 목소리로 웃고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도 기막히게 우아하게 보였다. 그녀의 자태며, 대화를 이끌면서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방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에게서 감도는 분위기에는 우아함이 섞여있었으며 자극적인 뒷맛을 남겼다. 비록 신사들에게는 그러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주는데 인색한 그녀였지만 멀찍이서 그녀가 소녀들에게만 베푸는 맑은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또한 신사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생명력 강한 들장미처럼 화사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좌중을 장악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미려했다. 때때로 그녀는 수백 년은 산 마녀처럼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사춘기 소녀처럼 풋풋하게도 보일 정도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미모를 지녔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나 할까, 카른슈타인 여백작의 옆에 선 아이린 애들러는 살롱을 휘황하게 밝히고 있는 불빛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희미한 어둠을 품고 있었다. 검푸르게 빛나는 눈동자는 여독의 잔재로 피곤해보였지만 지적인 광채로 반짝였고 군살 없이 늘씬한 몸매에 보석이 촘촘하게 박힌 검정 새틴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달밤 아래의 어둠에 묻힌 채로 핀 한 떨기의 달맞이꽃 같았다.
 미미한 존재감이었지만 어쩐지 존은 그녀에게 눈길이 갔다.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누군지 당장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존이 그녀를 지켜보는 사이 그녀는 다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며시 몸을 일으켜 열띤 대화를 주고받는 숙녀들과 여백작이 동심원으로 둘러앉아있는 무리에서 천천히 벗어났다. 옆으로 언뜻 보이는 갸름하고 야윈 얼굴은 병적일 만큼 새하얬다. 느릿하고 나른한 움직임으로 저만치 걸어가는 그녀의 목을 감싼 장신구가 촛불의 어스름한 빛을 반사하며 아른거리는 광채를 내었다.
 어느 샌가 화이트 드부아의 상감 세공 장식장 곁을 지나치는 그녀를 줄곧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무뚝뚝한 음성이 들려왔다.


 “뭘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는 겁니까?”


 아 그렇지, 셜록. 존은 셜록이 자신의 옆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찬 때부터 따분해하며 열의라곤 조금도 없는 태도를 고수하던 셜록은 살롱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흥겨운 분위기에 섞여들기는커녕 살롱의 외곽으로 물러나서는 조용히 주변을 응시하는 데에만 시간을 쏟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존이 뭐라고 대꾸를 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존의 시선이 머물던 쪽을 훑어본 셜록이 곧장 내뱉었다.


 “당신 취향도 아니잖아요.”
 “셜록!”


 조그맣게 셜록을 나무라며 존은 혹시 아이린이 셜록이 한 말을 들었을까 싶어 슬쩍 그녀가 서 있던 편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존은 아이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데없이 시선이 마주친 데에 당황한데다 다시 뭐라고 떠들어대려는 셜록을 제지하느라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마치 이편의 정황을 모두 꿰고 있다는 듯이 태연자약하게 웃고 있었다.
 단순한 착각일까?
 그렇게 생각하려는 순간 셜록이 말했다.


 “착각이 아닐 겁니다.”


 의미심장한 말에 존이-셜록이 또다시 아무런 전조도 없이 존이 하고 있던 생각을 읽어내었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존의 질문에 셜록이 잠시 입술을 비죽거리다 대답했다.


 “그녀도 우리와 같은 무리에 속한 자이니까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지난 몇 개월간 셜록과 그런대로 친밀해진 존이었지만 뱀파이어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에게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었다. 그건 마치 줄곧 풀어놓고 키운 뱀이 독사라는 것을 방금 알아차린 사람이 느끼는 갑작스런 두려움과 같았으니까.
 더군다나 셜록이 귀띔해주기 전까지는 그녀가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 두려움은 더했다.


 “정확히는 반만요. 몽마가 흡혈귀의 정을 잉태한 것의 산물이라고 하더군요. 또 여백작은 마이크로프트와 같은 클랜의 일원이랍디다. 어린 여자아이라면 그저 사족을 못 쓰는-”


 아이린 애들러 뿐 아니라 저편에서 아직도 소녀들과 즐거이 수다를 떨고 있는 카른슈타인 여백작마저도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존을 엄습하는 공포감은 더욱 강해졌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녀들의 발그스름한 뺨을 비추는 장미 모양의 등갓 아래로 흘러나오는 불빛도 핏빛으로 보였다.
 정찬이 끝날 무렵에 일어났던 해프닝이 떠올랐다. 마이크로프트가 가볍게 바람을 잡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아예 몸이 마비되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었지 않은가. 만약 그때 마음만 먹었더라면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의 피를 모조리 빨 수도 있었으리라. 뱀파이어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찬이 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공포에 질려 굳어버린 사람들은 꼼짝없이 목덜미를 내밀고 있었을 것이며 그들은 양순한 먹잇감들의 동맥에서 힘차게 뿜어져나오는 피를 마음껏 포식할 수 있었겠지. 사람들이-이 자리에서 무사히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홈즈 경의 악취미적인 소행이라고 평하며 입에 올릴 것이 분명한 그 장난은 존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공포의 기억으로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본색을 숨긴 채 독니를 감춘 뱀처럼 도사리고 소녀들의 육체에서 풍기는 신선한 향기를 전채요리 삼아 들이마시고 있는 여백작의 마음만 내킨다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저 소녀들도 그저 저항 하나 없이 조용히, 그리고 무력하게 숨을 거두고 말겠지.
 자신의 말에 존이 겁을 집어먹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 챈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일찍이 입을 꾹 닫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는 부러 신경질적인 태도로 툭툭거리는 등 어쨌든 그 딴에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달변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셜록이었지만 이런 어색한 상황을 무마하는 데는 소질이 없었고 말을 그친 셜록은 계속해서 손을 쥐었다가 폈다 하거나 괜스레 그들이 앉아있는 의자에 놓인 반원형의 쿠션의 위치를 바꾸거나 하며 불안해했다.
 그들을 둘러싼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고막으로는 활기찬 얘깃소리가 새어들어오고는 있었으나 그것은 마치 완벽하게 분리된 딴 세상의 이야기마냥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존…….”


 셜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으나 존은 매몰차게 그의 말을 자르고 일어서며 짧게 말했다.


 “잠깐 머리를 식히고 와야겠어.”


 놀랍도록 매끄러운 거절이었다. 셜록은 존이 성큼성큼 멀어지는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살롱의 문이 조용히 닫히며 존의 모습이 한 자락도 보이지 않게 되자 셜록의 얼굴에서 혈색이 싹 가셨다. 갓 내린 눈처럼 창백하게 무표정으로 얼어붙은 그는 하얀 눈이 덮인 외길마냥 외로워보였다. 그나마 자리하고 있던 인간미조차도 한 조각도 남김없이 사라진, 깡마르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내려앉은 것은 우울, 바로 그것이었다.


*

 

 포근하고 상쾌한 저녁이었다.
 조각조각 해진 구름이 하늘 위로 흘러가며 달빛을 가렸다. 그때마다 구름 그림자가 후원에 널린 폐허의 잔해 위에 우뚝 선 채로 부서져내린 흉벽을 뒤덮었다. 구름 아래로 드리운 뿌연 그림자 속에 선 나무들은 온통 회색으로 보였다. 달은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며 숲과 정원, 그리고 그 사이에 둥글게 자리한 공터를 우울한 빛깔로 물들였다.
 느릿하게 흐르는 달빛의 광채, 고인 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공기, 산들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 무더운 초여름의 날씨.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죽음같은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에서 세 뱀파이어들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이날 밤의 모든 풍경 속에서는 무언가 아주 독특한 분위기가 풍겼다. 봄밤의 후텁지근한 공기와 습도가 만나 안개가 부풀어올랐고 그것은 미로처럼 심은 정원수 사이에 짙게 걸려 그렇지 않아도 희미한 그들의 형체를 더욱 분명치 않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세 명 모두 검정색 옷을 입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놓인 등불이 꺼져가며 내뱉는 창백한 미광을 받아 거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어두운 실루엣으로 보였다.
 연기처럼 은밀하게 다가온 밤안개는 뱀파이어들의 기척을 잠재우는 한편으로 그들 주위의 잔디며 꽃나무를 베일로 감싼 것처럼 아늑하도록 엷은 색조로 감쌌다. 또한 흐릿한 달빛이 안개에 난반사되며 경치를 한층 은은하고 감미롭게 물들였다.
 그들을 둘러싼 경관은 기묘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웠다. 커다란 보리수가 신록의 잎사귀를 피워내고 있었고 고만고만한 키의 장미나무들이 거의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투박한 모양새로 가지를 뻗은 채로 그들 주위에 빽빽이 둘러서 있었다. 장미뿐만 아니라 발치에 무성하게 채송화와 데이지꽃과 민들레같은 풀꽃들이 만발한 모습은 우연히 잡초가 우아하게 우거진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였다. 입구에 세워진 튜더식의 철제 아치를 제외하면 정원에서는 어수선하게 연출된 풍경화처럼 꾸밈없는 아름다움이 배어나왔다. 극도로 계산적이지만 전혀 그런 기색이 느껴지지 않도록 연출된 자연스러운 한 폭의 미관에 세 남녀는 녹아든 것처럼 잘 맞았다. 몹시도 현대적이며 말쑥한 옷차림의 그들이었지만, 마치 그들 자신이 세심하게 조경된 정원에 배치된 관물의 하나이기라도 하듯 그 장소의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사방은 적막했다.
 무덤처럼 깊고 조용한 고요에 잠긴 세 사람은 주변의 매혹적인 전망에 깊은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저마다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 만큼 나른한 침묵에 파묻혀있는가 싶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불안 속의 조화처럼, 서로에 대한 무심함을 가장한 그들의 침묵은 곧 무너질 모래성처럼 위태하기 그지없었다. 공기 중에는 무언가 긴장감이 어린 엄숙함 같은 것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요정들의 축제에 참석한 인간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사이에 던져져 유리되고 동떨어진 채 겁에 질려 입을 다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누구 하나가 먼저 말을 꺼내기만 하더라도 시작된 대화에 기분 좋게 빠져들 수도 있었겠지만 물론, 누구 하나도 가까스로 이룬 그 균형을 깨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숲의 지평선 너머로 기울어가는 달빛 아래에서 그들이 괴이한 엄숙함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도 저편의 저택에서 흘러나오는 초조하고 감미로운 음악의 소리는 끊어질듯 말듯 이어지며 고요한 밤공기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환락을 희구하는 사람들의 열망은 분별없는 태도와 몽롱한 사고가 함께 뒤섞인 이유 없는 열성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습관적으로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에 오로지 교리적인 근거에서 비롯된 죄악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항상 그렇듯이 그들은 그러한 양심의 낌새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쳐들만한 기회를 자신들에게 부여하는 것을 기피하다 못해 증오한다. 때문에 그러한 시간적인 틈새가 생겨나지 않도록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얼른 새로운 유희거리를 찾아내어야 한다는 부르주아적인 강박관념에 지나치게 젖어 있다.
 그러나 시작된 음악은 언젠가는 멈춘다. 한순간 정적이 찾아들고, 비어버린 공백을 틈타 한 줄기 혼란스러움이 빈 공간을 메운다.
 그 순간 산들바람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굳어있던 석상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나른하게 한쪽으로 기대어 앉아있던 아이린 애들러가 단정한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움직임은 프레임 단위로 움직이는 사진 속의 인물처럼 사실적이면서도 부드러웠고 그래서 더욱 감각적이었다.
 핏빛 입술 사이로 나직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아가씨들 말이 맞아요.”

 

 목소리는 울림도 없고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이상했다. 왠지 유령처럼 들렸지만, 그러면서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아이린의 말에 마이크로프트는 계속하라는 듯이 살짝 고갯짓을 했고 아이린은 입술을 말아올려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낡아빠졌다는 말 말이에요.”

 

 비단결 같은 칠흑의 속눈썹이 나비의 날개처럼 몇 차례 빠르게 깜박였다.

 

 “언제가 되었든 당신 저택에서는 항상 반쯤 죽은 꽃향기와 묵은 먼지 냄새가 진동을 하지요. 당신의 그 일관성 있는 취향은 도무지 변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군요.”

 

 그녀는 영민하게 반짝이는 눈길을 셜록이 앉은 방향으로 살짝 보내었다가 다시 마이크로프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요 몇 년 사이 재미있는 일을 벌인다기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 당신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네요.”

 

 마이크로프트가 느릿하고 현학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음 얼굴을 마주했던 세상은 오래 전에 늙어버렸는데도 아이린, 당신은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군요.”
 “같은 말을 그대로 되돌려드리도록 하지요.”

 

 아이린은 그렇게 말하며 버드나무 가지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을 움직여 앞으로 흘러내린 검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들의 중간 지점에 놓인 램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그녀의 하얀 목과 실크 가운 사이로 드러난 어깨를 비췄다. 진한 버건디 색으로 물든 촉촉한 입술은 병색이 감도는 듯한 고운 크림색의 얼굴 위에서 미소짓고 있었으나 아치형으로 우아하게 휘어진 검은 눈썹 아래에 자리한 어둡고 무표정한 눈은 차갑게 빛났다.
 물수제비처럼 수면 위쪽만 통통 건드리던 대화는 결국 둔중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깊숙이 잠겨든다. 그러니까 아무리 본질과는 관계없는 쪽을 공연히 들추어낸다고 해도 결국에는 본심을 꺼내놓고야 말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셜록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간파하기란 힘이 들었으나, 지금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보헤미안 스캔들 때였지요?”

 

 아이린이 선수를 쳤다. 갑작스런 지적에 허를 찔린 것처럼 머뭇거리던 셜록은 곧이어 대꾸했다.

 

 “왜 왕위 계승자를 마다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하긴 일개 변호사 따위와 정분이 나서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칠 리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영생을 얻게 되면 세속의 영욕 따위에는 한결 둔감해지게 되니까요. 하물며 그게 일개 소국의 왕자 따위라면 더욱.”
 “나이를 예측해내지 못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고 말이지.”

 

 셜록의 가시 돋친 말에 아이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아직도 염두에 두고 있었군요!”
 “마치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시치미 떼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아이린은 마이크로프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재주도 좋군요. 당신하고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 인간을 데려왔을 줄이야.”

 

 그녀의 말에 마이크로프트가 흐릿하게 웃음을 띠며 말했다.

 

 “셜록이 기분 나빠 할 겁니다.”

 

 그 말에 셜록이 쏘아붙였다.

 

 “사려 깊은 척 하지 마, 마이크로프트.”

 

 둘이 서로의 신경을 긁는 꼴을 보며 아이린은 무척 즐거워했다. 아예 둘의 말다툼을 관전하려는 자세를 취하기까지 하며 그녀는 촌평을 날렸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닮았군요.”

 

 그 말에 셜록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한편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그러던 말던 여전히 흐릿하게 미소를 띤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따지고 보면 나와 셜록보다는 당신과 셜록이 더욱 가까운 관계가 아닐까요. 휘프노스와 타나토스가 근연관계인 것처럼, 당신들도 그럴 테니까요. 1.”

 

 모종의 것을 암시하는 듯 의미심장한 어조의 마이크로프트의 말에 이상하게 들떠오르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착 가라앉았다. 아이린은 푸른 눈에 색정적인 불꽃을 담은 채로 열정으로 파르르 떨리는 콧방울을 지닌 머리를 뒤로 젖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녀의 시선은 아주 잠시 셜록에게 머물렀다가 떨어졌고 곧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시선을 내리깔았다. 잔혹한 붉은색을 띤 입술만이 변함없이 비틀린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정원의 모퉁이를 스치며 쏴아 하는 소리를 냈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얕은 잠을 자고 있던 까마귀 떼가 놀라서 푸드덕 날아올랐다.
 밤하늘의 어둠 속으로 날아가는 까마귀들을 꿈꾸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그는 몹시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더구나.”

 

 숲의 나무를 뒤흔들고 한층 약해진 바람이 날아와 셜록의 단정한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셜록은 흥이 깨졌다는 듯이 혀를 찼다. 셜록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공터의 입구 쪽으로 몸을 돌리며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전쟁을 겪은 사람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더욱 드물겠지.”

 

 셜록과 마이크로프트는 한 차례 눈빛을 교환했다. 아이린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둘 사이의 무언의 소통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셜록은 무언가가 못마땅한 듯 떨어진 꽃잎 조각을 발뒤꿈치로 자근자근 짓밟더니 커다랗고 낮게 걸린 달을 등지고 파르스름한 실루엣으로 빛나는 나무들 사이로 성큼성큼 사라져버렸다. 어둠으로 뻗은 길을 따라 땅 속 깊이 박힌 철제 아치에 엉킨 장미 덩굴이 그치지 않는 미풍에 리듬을 타듯 움직이며 조용히 흔들렸다.

 

 

 


1.몽마인 아이린과 죽음과 관련된 혈족인 셜록과의 관계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꿈의 신인 휘프노스와 죽음의 신인 타나토스가 형제관계라는 것과 빗대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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