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단편/조각글

 

 

 셜록은 사실 존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존을 사랑하지 않았다.
 존이 셜록에 대해 품은 감정은 명백한 사랑이었지만 셜록이 존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우정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굳이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그것은 친애의 감정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셜록과 존은 종종 섹스를 했다. 성욕에 그다지 휘둘리지 않는 셜록이었지만 그런 그도 남자였기 때문에 성관계는 불가결한 것이었다. 존이 셜록에게 반한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셜록은 그답지 않게-아주 미량의-죄책감을 가지고 섹스에 임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창녀의 대용품인 셈이었지만 존은 셜록의 괴상하고도 유별난 성미를 무한한 관용으로 이해해 주는 듯 보였고 그는 곧 그러한 관계에서도 장점에만 눈을 돌리려 부단히 노력했다.
 셜록은 존이 그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감정에 보답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와의 섹스는 좋아했다. 효율적이었으니까. 물론 섹스를 할 때 연인처럼 다정하게 굴어주면 존이 훨씬 좋은 반응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때로는 열정적인 연인 사이에서나 할 법한 달콤한 키스를 선사하기도 하고 지독하게 길고 지리한, 그러나 뜨거운 애무를 퍼부어주기도 했다.
 셜록만큼은 아니지만 영리한 축에 속하는 존은 셜록이 자신에게 잘 대해준다고 해서 자칭 고기능성 소시오패스의 마음 속에서 사랑이라는 달착지근한 감정이 생겨나리라고는 추호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이따금 쓸쓸한 표정으로 셜록을 응시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물론 둘은 친구였다. 셜록은 존의, 존은 셜록의 하나뿐인 친구. 둘은 그 안정된 관계의 틀을 굳이 시험대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셜록이 투신을 위장하는 날이 찾아왔다.
 존은 울었고 소리쳤고 절규했다.
 눈 앞에서 그가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으며 그가 분명히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믿음이란 연약해서 그 불씨가 꺼지는 날도 언젠가는 찾아오게 마련이었다.
 
 있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재회의 날.
 식어버린 잿더미에서 되살아나온 불사조처럼 셜록은 건재했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셜록은 존에 옆에 섰다. 셜록은 미소지었다. 존은 눈을 깜박였다.
 -존은 자신이 셜록을 사랑하기에는 너무 지쳤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셜록은 자신이 존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BBC Sherlock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셜록마이크로프트]Panic attack  (0) 2014.09.28
[셜록존]Before they meet  (0) 2014.03.01
[셜존마]애완인간  (0) 2013.12.13
[셜록존]Touch me baby  (0) 2013.12.13
[셜록존]Call me baby  (2) 2013.12.13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