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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13 [칸존]Misaligned
  2. 2013.12.11 [셜록존/마레]폭로전
  3. 2013.12.11 [셜록존]오만과 편견의 결과
  4. 2013.12.11 [셜록존]Heure entre chien et loup
  5. 2013.12.11 [마셜]사랑한다
  6. 2013.12.11 [셜록존]Phone sex
  7. 2013.12.11 [셜록존]술 권하는 탐정
  8. 2013.12.11 [셜록존]메로나
  9. 2013.12.11 [짐존]Artificial baby 2
  10. 2013.12.11 [셜록존]初

[칸존]Misaligned

2013. 12. 13. 02:11 from BBC Sherlock/단편

칸존/약수위

 

 

 "아, 아으...셜록!"

 

 자신의 품에 안겨서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칸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생소한 감정이 다시 늑골 아래쪽에서 치밀어오르고 있다. 빠듯하고 애달픈 느낌. 영 적응이 되지 않는 그 느낌에 기분이 나빠진 칸은 그 정체 모를 감정을 떨쳐내려는 것처럼 남자의 몸에 화풀이라도 하듯 한층 폭력적으로 진퇴를 반복했다. 자신의 손에 허리를 잡힌 채로, 자신의 성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남자가 쾌감으로 몸서리치는 것이 보였다. 힘껏 박아올릴 때마다 요망하게 허리를 흔드는 꼴이 퍽 요염했다. 선정적인 광경에 기분이 나아지려는 찰나 칸은 남자가 눈을 감고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방울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쾌락 때문에 제멋대로 벌려진 입술로는 예의 그 이름을 읊조리며 헐떡이고 있었다.
 셜록.

 

*

 

 칸은 난폭하고 제멋대로이며 독단적이었으나, 그만큼이나 교활했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대원들이 가지고 있는 가족애에 대한 유별난 애호 성향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그 점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것을 통해 그들 사이의 유대감에 편승하는 것은 몹시 손쉬운 일이었다. 가족애이자 동지애는 그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므로-그와 같은 종족들에게만 한정되어 있기는 했지만-그에 대한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자신을 핍박받는 소수민족의 희생양으로 교묘하게 가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엔터프라이즈 호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동안 그는 존 왓슨을 만났다. 셜록 홈즈라는 이름-지겹도록 듣게 될 그 이름을 듣게 된 것도 그때였다. 처음에 그 이름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이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야말로 어긋난 관계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는 것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미궁 속에서 선회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자신을 홀린 듯 바라보며, 자신을 셜록이라고 부르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방비하게 자신의 몸을 내맡기는 존을 보며 우습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저 외양의 유사함으로 인해 저렇게까지 맹목적으로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하위 인간들이 하등한 증거라고 생각하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갖은 애교를 떨어오는 강아지에게 마지못해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주는 것처럼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을 때도 그랬다. 그가 눈물로 완전히 흐려진 시야로 자신을 바라보며 셜록, 하고 부르며 안겨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칸은 자신을 감히 이용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를 용납하지 않았겠지만 그때의 자신은 존에게서 주어진 셜록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거슬리기는 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일종의 전조였음에 틀림없다. 미묘한 거슬림. 자신으로부터의 경고. 그건 분명 앞으로의 수렁같은 관계를 예고하는 것이었겠지.
 생각해보면 존은 칸을 보며 다른 무언가를, 그 셜록 홈즈라는 남자를 투영하고 있음을 숨긴 적이 없다. 비록 이용할지언정. 그러한 솔직함때문인지, 칸은 더욱더 이 작고 애처로운 남자를 원망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존에 대해 일종의 애착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의무감처럼 행하던 섹스를 자신이 먼저 요구하게 되었고, 존이 망설이고 망설이다 겨우 용기를 내어 자신의 방문을 두드릴 때에만 하던 섹스의 빈도가 늘어났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의 어느날이었다.

 

 "사랑해, 존."

 

 사실 칸에게는 자신이 존을 정말로 사랑하는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영향력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혐오하는 그가 '사랑한다'는 간질거리는 고백 따위를 내뱉은 이유는 그렇게라도 존과 그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정의해보고자 함이었다. 가짜 셜록과 존의 관계가 아닌, 칸과 존이라는 관계의 층위를 새로이 쌓기 위해서. 거짓된 관계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라면 입에 발린 말쯤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그때 존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길을 아마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존은 경악이 서린 눈초리로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항상 울었기 때문에 흐려져 있던 두 눈이 그때만큼은 맑은 시선으로 칸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입술을 파들파들 떨던 존은 곧이어 입을 열었다.

 

 "...셜록은 그런 말 안해요."

 

 처음에는 존이 무슨 뜻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칸이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나는-"
 "셜록은!"

 

 존이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셜록은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 따위 안해!"

 

 안 한다고! 폭발하듯 외친 존이 황급히 옷가지를 챙겨 자신의 선실로 휭하니 돌아간 후에야 칸은 그들의 관계가 이미 시작부터 너무나 어긋나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늦게야 깨닫고 만 것이다. 그 남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어떤지를 알아차렸을 때부터 이미 잘못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

 

 존이 섹스를 할 때 눈을 고집스럽게 감기 시작한 것도 그 후부터였다. 눈을 감아버린 채로 한 사람의 이름만을 부르는 그를 대체 어찌해야 할지 칸은 알 수 없었다. 어긋난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칸에게는 그저 그가 안겨올 때마다 집요하게 느끼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자신을 외면하면서도 몸만은 겹치는 그 남자를 아프도록 끌어안고 껍데기뿐인 몸이라도 자신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에 텅 빈 안도감을 느끼며 자위하는 수밖에 없다.

 

 "아아...!"

 

 품 안에서 자지러지며 가버리는 그. 파정의 여운으로 몸을 떠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어깻죽지에 입술을 누른다. 이제 그는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말없이 키스를 한다. 어깨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감촉에 존은 놀란 듯 몸을 굳혔다가 칸이 입술을 뗀 후에야 긴장을 풀고 몸을 이완시킨다.
 그리고 존은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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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마레/막드주의

 

 

 "그러니까,"

 

 셜록이 말을 이었다.

 

 "레스트레이드와 내 형이 몸을 섞는 사이라, 이 말인가?"

 

 셜록이 말을 내뱉는 것과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이 소리쳤다.

 

 "셜록!"

 

 존과 레스트레이드였다. 두 사람의 당황스런 외침 탓에 옆 테이블에서 정찬을 즐기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이편을 향해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던 네 사람은 모두 그것을 알아차렸고, 더이상 이쪽으로 원치 않는 시선이 집중되는 사태만은 피하고 싶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식탁 위에 침묵이 감돌았고, 셜록은 자신의 발언이 불러일으킨 상황에 매우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적절치 못한 일이야.'

 

 존은 생각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그렉 레스트레이드가-그들의 말에 따르면, 교제를 시작했다는 것은 그에게도 물론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셜록이 그들의 관계를 저속한 방식으로 조롱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현재 셜록의 얼굴에는 누가 봐도 명백할 정도로 즐거워하는 기색이 뚜렷하게 떠올라있었다. 노골적으로 즐거워하는 듯한 그 미소는 그의 형이 답지않게 동요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었다. 하긴 마이크로프트가 조금이라도 동요의 기색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존도 '당황하는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이라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바쁘게 굴렸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레스트레이드는 무슨 죄란 말인가?
 존은 레스트레이드를 흘깃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약간의 분노와 수치감. 혹시라도 옆 테이블에서 여기서 벌어지는 대화를 엿들을까 전전긍긍해하는 기색. 의외로 놀라움은 보이지 않았는데, 존은 그 이유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셜록 홈즈라는 인간과 몇 년을 부대껴온 그렉이었기 때문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들의 관계에 가해질 셜록의 가차없는 혹언을 피할 수 있을리가 없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리라. 또한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님 또한 명약관화한 일이기 때문에-날마다 사건때문에 부대끼는 셜록의 날카로운 눈썰미를 피할 수 없는 것또한 자명한 일이고 말이다-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정식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발표하기로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말하자면 지금 테이블을 감싸고 있는 어색한 침묵은 예고된 사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그렉 레스트레이드가 그들의 관계를 알리기로 한 순간부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량하기 그지없는 전직 군의관 존 왓슨은 레스트레이드가 더이상의 망신을 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마이크로프트와의 관계에 대해 선뜻 축복을 내려주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일단은 그래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존은 지금의 불편한 상황을 적절히 마무리할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존 자신이 마이크로프트와 레스트레이드를 대신해 셜록의 난폭한 언사에 대한 점잖은 비난을 함과 동시에, 그의 불퉁한 성미를 가라앉히는 것에 즉효인 부드러운 다독임을 곁들여 셜록이 마이크로프트와 레스트레이드에게 사과를 하도록 종용한다면 셜록은 뭐라고 반항을 하긴 하겠지만 결국에는 못이긴척 하고 사과의 말을 몇 마디 뱉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명색이 애인의 동생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던 레스트레이드의 불안감도 가라앉을 것이고, 마이크로프트도 더이상 상황을 악화시킬 생각이 없다면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 정도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길 바랄 것이다. 존의 예상대로만 상황이 전개된다면 더이상 불필요한 말싸움과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감정 소모를 할 이유는 없어질 것이었다. 또한 불편한 저녁 식사 자리에 멍청하게 붙어앉아서 세 사람의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는 짓거리도 그 즉시로 안녕일 것이고 말이다!
 행복한 저녁식사의 단꿈에 빠진 존이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나서서 상황을 멋지게 봉합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있게 입을 열려는 순간, 마이크로프트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매우 악의적인 방식으로 나와 그렉의 관계를 정의해주어서 고맙구나."

 

 존은 고개를 쳐들고 그렇게 말하는 마이크로프트의 표정을 살폈다. 놀랍도록 차분한 미소였다. 하지만 그의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존은 감지할 수 있었다.

한편 셜록은 '그렉? 그렉이라고?' 라고 중얼거리며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뭐라 중얼거리건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고마움과 더불어 네 감정 표출 방식이 더할 나위없이 유치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싶구나, 셜록. 너도 알다시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는 다른 방법도 많잖니."

 

 마이크로프트의 눈은 셜록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대체 언제쯤 철이 들려고 그러니?'하는 꾸짖음이 들리는 것처럼 엄격한 눈빛이었다. 마이크로프트의 우회적인 질책에 셜록은 한 마디도 지지 않겠다는 듯 곧장 대꾸했다.

 

 "오 친애하는 형. 나는 오직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라고. 뭐, 형이 말한 '교제'라는 모호한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뜻을 좀더 명확하게 알아내려는 의도도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지, 마이크로프트?"

 

 고의적으로 소요를 일으키려는 것이 분명한 셜록의 도발에 마이크로프트의 한쪽 눈썹이 까딱하고 움직이는 것을 존의 눈은 놓치지 않았다. 셜록이 씩 하고 웃으며 마이크로프트의 화를 돋구기 위한 말을 줄기차게 뱉어내고 있는 동안에 그의 눈이 문득 존을 향했다. 존은 셜록과 말싸움을 하는 도중 자신에게 한눈을 파는 마이크로프트의 심중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이크로프트를 마주 바라보았다.
 마이크로프트는 금세 시선을 셜록 쪽으로 돌렸고, 아주 짧은 시간동안 머무른 마이크로프트의 눈길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존이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두 형제 사이에 벌어진 말싸움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 혹시 둘은-소위 말하는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단계인건가? 이거 참, 내가 실례했군."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셜록의 태도에서 실례했다는 기미는 조금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는 공격의 마지막 마무리를 완벽하게 장식하기 위해 준비 동작을 하는 펜싱 선수처럼 숨을 한 번 들이키고 혀끝을 날카롭게 다듬은 후 말을 이었다.

 

 "늙어서 제 뜻대로 물건도 세우지 못하는 형을 떠맡게 되어서 안됬군, 레스트레이드."
 "셜록!"

 

 존은 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너무 심하잖아! 어서 사과하지 못해?"

 

존은 어떻게든 거지같이 굴러가는 이 상황을 개선하려 셜록을 다그쳤다. 하지만 셜록은 도통 말을 듣지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내가 무얼 잘못했느냐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때 마이크로프트가 살짝 테이블 위로 몸을 굽히며 셜록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군?"
 "다이어트의 부작용으로 성욕감퇴라도 된 모양이지? 그래, 그게 분명해."

 

 셜록은 무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존은 평화롭고 오붓한 저녁식사가 전부 물 건너가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애초부터 홈즈 형제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옆에 끼고서 조용하고 편안한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오판을 내린 것이었다. 빌어먹을 셜록 홈즈!

 

 "좋아."

 

 다시 꼿꼿하게 허리를 편 마이크로프트는 놀랍게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야냥대는 기색도 억지로 웃음을 꾸며내는 기색도 없는 순수한 미소였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지? 라고 존은 생각했다. 즐거워보이기까지 하니 원!
 마이크로프트가 미치기라도 한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격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래. 네 말대로, 내 나이와 운동때문에 약간의 성욕감퇴가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꾸나."
 "가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일테니 오랜만에 진실된 대화를 나누어볼 수 있겠군, 마이크로프트."
 "가정이란다. 물론 잘못된 가정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겠구나. 잘못된 가정일 뿐만 아니라 거짓이기도 하지. 왜냐하면 우리는 밤마다-"

 

 느닷없이 시작된 선문답같은 대화를 참아내는 것도 모자라 마이크로프트와 레스트레이드의 밤을 불사르는 섹스라이프에 대해 떠들어내는 것까지 듣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존은-그는 안그래도 정상적인 저녁식사는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 있던 참이었다-더이상 참지 못하고 벌컥 성을 냈다.

 

 "아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겁니까? 이왕 이렇게 된거 하시고 싶은 말씀만 빨리빨리 하시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구요! 더이상의 소란은 질색이니까요!"

 

 존의 온순한 면모밖에 본 적이 없는 마이크로프트는 그의 항의에 약간 놀란 듯했으나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닥터 왓슨의 말이 옳아요. 이미 이 레스토랑에서 요기를 하기는 틀렸고 앞으로도 여기 오기에는 웨이터들의 눈총이 따가워서 안될테니 요점만 짚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주문도 하지 않고 넷이서 레스토랑이 떠내려가라 말싸움만 해대고 했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오랜만에, 아니 난생 처음으로 존과 마이크로프트가 의기투합하는 듯 보였다. 다음에 이어질 말을 미리 알았다면 존이 이처럼 기세좋게 나서지도 못했겠지만.

 

 "그래서 닥터 왓슨과 내 동생은 원나잇 스탠드로 끝난겁니까?"

 

 기습적인 회심의 일격에 미처 방비의 태세를 갖추지 못한 셜록은 의자에서 펄쩍 뛰어오를듯이 놀랐고, 마이크로프트는 그 꼴사나운 모습을 바라보며 속이 시원하다는 듯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존은 마이크로프트가 자꾸만 자신을 힐끗거리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또한 그의 미묘한 눈빛이 의미하던 바로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연민이었다! 자신에게 닥칠 처지를 모르고 벌판에서 태평하게 노니는 영양을 사냥하기 직전의 사자의 눈초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로프트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침대기술이 딸리던가요? 아마 그 점에 대해서는 왓슨 선생이 몸소 신경을 쓰셔야 될 겁니다. 원체 그쪽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말이죠. 부족한 동생을 떠맡기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송구스럽긴 개뿔이! 교활한 마이크로프트 같으니라고! 존은 아까에 이어 홈즈 형제에 대한 욕을 두번이나 하고 말았다.

 

 "오! 설마...?"

 

마이크로프트는 연극적인 어조로 놀라는 체를 하더니,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셜록을 향해 연민의 눈길을 보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그 시선에 셜록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젠장, 난 발기부전따윈 없다고, 마이크로프트!"

 

 온 식당에 셜록이 자신이 발기부전이 아님을 주장하는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집중되었다가 부자연스럽게 흩어졌음은 물론이다. 이제 평화로운 저녁식사건 긴장감넘치는 저녁식사건 완전히 글러먹었다. 물론 이 식당과도 영원히 안녕이다. 아마 이 근처로 발도 들이지 못할 것이다. 전부터 와보고 싶은 식당이었는데! 하여튼 홈즈 형제와 얽히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하고 속으로 불평을 늘어놓던 존은 레스트레이드가 입을 떡 벌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존이 급히 해명을 시도했다. 

 

 "겨, 경위님, 아닙니다!"

 

 마치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용의자와 다름이 없었다. 존은 어찌나 놀랐는지 레스트레이드를 평소에 친근하게 부르던 '그렉'이라는 호칭 대신에 무심코 '경위님'이라고 부르고 말았다.

 

 "아니, 그러니까 셜록이 발기부전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셜록과 전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아니 셜록은 발기부전이 아니긴 한데..."

 

 횡설수설하는 존의 목소리에 여실히 드러나는 동요에 이제까지 시어머니와 올케 앞에서 움츠리고 선 며느리처럼 쪼그라들어 있던 레스트레이드는 감 잡았다는 표정을 하고 드디어 당당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가 그럴줄 알았어!"

 

 승기를 잡은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째려보며 말했다.

 

 "자네도 존과 사귀고 있었으면서 나한테 그따위 말을 할수가 있나 그래?"

 

 셜록이 잠깐 사이를 두고-이 잠시의 간격은 경위에게 마이크로프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에 대한 확증이 되어주었다-조용히 대답했다.

 

 "오햅니다."
"한 달 전이지 아마? 닥터 왓슨이 셜록과 그렉의 사건 현장 조사 과정에 불참했던 때가. 사건이라면 발벗고 셜록을 따라나서며, 셜록 홈즈의 블로거를 자칭하는 존 왓슨 선생이 어째서 그날따라 따라오지 않을 것일까? 아 그리고 그 전날에도 당당하게 케이스 하나를 해결한 둘은 펍에 가서 늘어지게 술을 마셨다지?"

 

  마이크로프트가 씩 웃으며 능청맞게 덧붙였다. 셜록이 투덜거렸다.

 

 "우린 그런 사이 아냐."

 

 불벼락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부터 내리쳤다.

 

 "말 한 번 잘했다. 그럼 우리가 무슨 사인데?"

 

 존이 마침 잘 걸렸다는 듯 팔짱을 끼고 셜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놈의 몰래카메라때문인지 단순히 눈썰미로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나 이왕 그 일을 들춰낸 김에 존은 그동안 매듭짓지 못했던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짓고 싶었다.
 존이 몰아붙이자 셜록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제 무덤을 파고 있는 거라고, 존."
 "됐어! 마이크로프트 말마따나 쪽팔려서 다시는 이 식당에 발걸음도 하지 못할텐데 속시원하게 말이나 하자고. 그날 왜 그런거야?"
 "그건...!"

 

 셜록은 입을 열었으나 뭐라고 말도 못한 채로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셜록이 처녀를 덜컥 임신시키고 덜미를 잡힌 건달패라도 되는양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향해 질타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마이크로프트는 기분이 좋아진듯 싱글거리고 있었다. 열불이 터진 셜록이 목깃을 세워 코트 자락을 여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순간 누군가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알았어! 자네 대답은 잘 알았어. 이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바로 내가 원하던 바야."

 

 셜록이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 존이 외투를 챙기며 쏘아붙였다.

 

 "그리고 자넨 새 플랫메이트를 구해보도록 해!"

 

 통첩을 날리고 돌아서서 씩씩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셜록은 코트를 여밀 생각 따윈 하지도 못하고 '기다려! 기다리라고!'하고 멍청하게 외치며 존을 뒤따라나갔다.

그 광경을 고소하다는 듯이 지켜보던 마이크로프트는 난데없이 일어난 통속적인 사랑싸움을 넋놓고 지켜보던 레스트레이드에게 말했다.

 

 "누가 발기부전인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나요?"

 

 레스트레이드는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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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오만과편견시대배경

 

 

 존 왓슨은 그 자신에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동안 알량한 의사 나부랭이랍시고 헛똑똑이 짓을 해 온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낯이 뜨거워져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본질이라는 것을 그 나름대로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대강은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고, 또 그것을 하나의 자랑거리로 생각해온 존에게 오늘의 일은, 그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왔는지를 일깨우는 사건이었다.
 세상에나, 평범하고 유쾌한 지주로 보였던 짐 모리어티가 사람의 몸에 폭탄을 감아 인질로 삼아서 셜록 홈즈를 협박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보잘것없는 마을 의사일 뿐일 닥터 존 왓슨을 말이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연회장에서 함께 웃고 떠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긴 명색이 세 대륙을 전전하며 인생사에 통달했다고 자부하던 존 자신조차도 그 남자의 본색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아까의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다시금 그를 덮쳐오는 것만 같아 존은 저도 모르게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셜록의 팔을 꼭 잡았다. 주춤하던 셜록은 안심이라도 시켜주려는 것처럼 어색하게 존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몇번 토닥여주었다. 그런 단순한 동작에 불과한 것에 정말로 안심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수영장을 빠져나오자 다리가 풀린 존은 급기야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셜록은 잠시 주춤거렸으나 존이 숨을 돌리도록 내버려두어 주었다. 앉아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존에게 셜록이 문득 입을 열었다.

 

 "벗어요."
 "뭐...뭐라구요?"
 "폭탄 조끼말입니다."

 

 '계속 입고 계시다간 정말 터져도 모릅니다'라는 그의 말에 존은 황급히 상반신에 걸쳐진 폭탄 조끼를 벗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자고 생각해놓고도 또다시 그의 말을 곡해할 뻔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찾아온 존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편 혼자서 낑낑거리며 폭탄 조끼를 벗는 존을 향해 멈칫거리며 손을 뻗던 셜록은 결국 존이 폭탄 조끼를 벗어서 저 멀리로 던져버릴 때까지 별다른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퍽 소리가 나도록 풀밭 저편에 폭탄 조끼를 던져버린 존이 속이 시원하다는 듯 후, 하고 숨을 토해내자 셜록은 그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뜬금없는 사과를 받게 된 존이 당황하여 되물었다.

 

 "뭐가요?"
 "상관없는 일에 연루되도록 만든 것 말입니다. 내 불찰이었어요. 모리어티가 민간인까지 끌어들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완전한 오판이었죠."

 

 무뚝뚝하고 담담한-그래서 일견 거만하게 느껴지는-어조는 그대로였으나 그가 말하는 내용은 그야말로 평소와는 딴판으로 느껴질 정도로 친절한 것이었다. 진심으로 그에게 미안해하는 것을 느낀 존은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그렇게 위험한 사람을 쫄래쫄래 따라가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그래도 제 딴에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몇 년간 썩고 있었으니 그 촉도 무뎌지긴 했나봅니다."

 

 왜인지 혀가 꼬이며 횡설수설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상황에서 촉 타령이라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 존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셜록은 가만히 자신의 말을 듣고 있었다. 존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에게 폐를 끼친 것같아 미안하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존의 사과에 셜록이 화를 벌컥 냈다. 놀란 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화를 내는 셜록을 올려다보자 셜록이 헛기침을 했다. 꽁꽁 언 얼음덩이처럼 빈틈이라곤 조금도 없어보이던 그의 무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동요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 뿐. 존은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모리어티의 정체를 알아낸 것도 모자라 무려 셜록 홈즈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다니, 오늘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존은 셜록의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조바심이 나는 사람처럼 앞뒤로 왔다갔다 하던 셜록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급작스럽게 소리쳤다.

 

 "폐를 끼친 건...납니다."
 "네?"
 "이제 알겠지만, 내가 자문 탐정으로서 모리어티의 범죄를 파헤치고 그의 계략을 무산시킨 것이 이미 여러 차례입니다. 그 다음부터 그는 내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방면에서 손을 쓰고 있죠. 그런 방해 공작 중에 하나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면서 나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나와 당신이...그러니까, 조금...친해진 듯하자 금세 손을 뻗친 거겠죠. 그러니까 사과해야 될 사람은 납니다."

 

 약간 멋쩍은 듯이 말을 마친 셜록을 멍하니 바라보던 존이 갑작스레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조금...친해진 듯하다고요?"

 

 존이 웃어대자 셜록의 창백한 뺨에 약간의 홍조가 감돌았다.

 

 "모리어티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셜록의 말에 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당신은 워낙 사람들과 어울리질 않으니 나를 당신하고 친하다 여길 만도 하군요. 사실 보이는 것만큼 친한 사이는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지요."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셜록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는 것을 알아차린 존은 자신이 실언을 했음을 깨달았다.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그 어떤 인사치레를 해도 모자랄 상황인데 저런 말이나 해버리다니 자신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입을 놀리고 있는 걸까! 존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아니...그게 아니라..."
 "예, 닥터 왓슨의 말이 맞습니다. 우린 보이는 것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죠."

 

 싸늘해진 셜록의 목소리에 마음이 급해진 존이 크게 말했다.

 

 "네! 그, 그렇지만...그건 제 잘못도 있습니다."

 

 존의 말에 셜록이 입을 다물고 자신을 지켜보는 것이 느껴졌다. 존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난...멍청하게도, 당신이 다른 사람들 말마따나 거만한 성격파탄자라고 곧이곧대로 믿어버리고서 그대로 당신을 대했어요. 당신을 직접 대면하면서도 그런 지레짐작을 올바르게 고칠 생각조차 못했죠. 조금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긴 하지만 당신이 소문으로 들리는 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끼면서도 그런 편견을 버리질 못하고 말입니다...멍청한 노릇이죠."

 

 잠자코 존의 말을 듣고 있던 셜록이 천천히 말했다.

 

 "전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당신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애매모호한 말에 존이 살짝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멍청하긴 멍청하다는 거군요."

 

 셜록은 피식 웃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셜록을 바라보며 무언가 응수할 말을 찾던 존이 문득 입을 열었다.

 

 "당신도...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다지 오만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셜록의 눈이 커질 차례였다. 잠깐 커졌던 셜록의 눈이 가늘어졌다. 셜록이 반문했다.

 

 "내가 오만하지 않다고요?"
 "네."
 "저는 제가 무척이나 오만한 사람이고,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입니까?"
 "그래요. 그렇지만 당신은 겸손을 떤답시고 하면서 과시욕에 몸부림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존의 말에 셜록은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다가 결국은 입을 다물었다. 둘 사이에 침묵이 깔렸다. 온기어린 유대감이 둘의 사이를 감싸고 형체를 견고히 하는 것이 느껴졌다.
 침묵을 깨고 존이 지나가는 투로 중얼거렸다.

 

 "오해를 살 만한 그 말투만 고치면 될겁니다."

 

 셜록의 눈썹이 까딱거렸다.

 

 "내 말투가 어때서요?"
 "그러니까...조금만 상냥하게 말입니다. 때로 당신은 너무 솔직할 때가 있어서 그게 탈이예요."

 

 존의 조심스런 충고에 셜록은 눈을 몇 차례 깜박이다가 고심하는 듯 했다. 곧 셜록이 중얼거렸다.

 

 "에둘러 말하라는 건가요?"
 "바로 그거예요."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시간낭비 아닙니까? 저는-"

 

 뭐라고 속사포처럼 반박하려던 셜록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말을 멈추었다. 자신이 셜록의 심기를 거슬렀나 싶어 동태를 살피던 존에게 셜록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돌려 말한다던가, 에둘러서 표현하라던가...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 투성이예요."

 

 말을 흐리던 셜록이 다음 순간 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내게 가르쳐주는게 좋겠군요."

 

 갑작스런 말에 존이 되물었다.

 

 "네?"
 "당신은 친절하잖습니까. 어떻게 하면 친절하게 보이도록 행동할 수 있는지도 잘 알테고요. 그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겁니다."

 

 예상 외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대화에 존이 허둥거리는 사이 셜록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존,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은 존은 셜록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손을 쥐고 위아래로 몇 차례 흔드는 동안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이런 이상한 우정이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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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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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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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1. 23:24 from BBC Sherlock/綠影(~)

셜록존/페도/키잡/짧음주의

 

 셜록은 더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던졌다. 책이 나뒹굴며 페이지가 젖혀지고 종잇장이 팔락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최대한 덜 폭력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최대한 직접적인 방법으로 그는 화를 표출하고 있었으나 눈앞의 아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얼굴로 저만치 형편없이 구겨지고 망가진 책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가 화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 사이 존은 어느새 저만치로 아장아장 걸어가 툇마루의 기둥을 타고 올라가 목조 난간을 붙잡고 놀았다. 햇살이 비치는 녹색의 정원을 배경으로 난간을 목마 삼아 타고 노는 존의 버선발이 가만가만 까닥였다. 버선코가 부드러운 흰빛으로 빛나고, 짧게 잘린 존의 머리카락이 금빛으로 눈부셨으며, 풍경 소리가 쟁그렁쟁그렁 울렸다.
 아이를 훈육하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울 줄은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진즉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좀처럼 안색이 변하는 일이 없는 마이크로프트가 느닷없이 아이를 팔에 감싸 안고 온 셜록을 바라보고 답지 않게 얼굴을 일그러뜨렸을 때부터 알아차려야 했던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평소에는 셜록이 무얼 하고 다니든 일체의 간섭이라곤 하지 않았던 그가 넌지시 만류하는 기미를 비쳤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을 것이다. 그답지 않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마이크로프트의 기색을 살피며 몰래 즐거워하느라 시간을 지체한 것이 실수였다. 이미 빼도 박도 못하게 아이는 셜록의 소관으로 정해졌고 이제는 마이크로프트가 제 무덤을 파버린 셜록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난감해하는 것을 지켜보며 즐길 차례가 되고 말았다.
 존은 여느 아이들처럼 울지도 보채지도 않았기에 다루기 쉬울 것이라는 것은 셜록의 큰 착각이었다. 아이는 얌전했으나 결코 순종적이진 않았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낯을 가리는 것이라 여겼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셜록은 아이가 단순히 말을 듣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존이 그동안 정상적인 양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가정의 규율에 소속된 적이 없는 아이는 이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키는 대로 나돌아 다니기를 좋아했고 셜록의 꾸짖음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곤 했기에 셜록으로서는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그 외에 셜록을 괴롭게 한 것은 존의 말씨였다. 아이의 입은 청아한 외견과는 달리 몹시도 걸었다. 물론 일본어로 지껄이는 것이었기에 전부 다 이해를 할 수는 없었으나 그가 이제껏 만나본 자들이 구사한 억양이 고르고 부드러운, 다시 말해 전형적인 귀족다운 말씨와는 확연히 다른 툭툭한 말투에서 셜록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때까지 살아온 환경이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던 것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게다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자랐기 때문인지 어조도 간드러져 도저히 소년의 말씨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사용하는 어휘라곤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마냥 거칠고 어투는 교태를 부리는 창기와 같았으므로 목소리가 가느다란 지금이야 모르겠지만 크면 얼마나 꼴사나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전까지의 보호자의 무심함 때문에 글을 정식으로 배우지 못한 아이는 여덟 살이나 되었는데도 말을 잘 하지 못했다. 점잖은 투의 일본어를 가르쳐보고자 아이를 위해 일본어 독본을 마련했던 셜록은 도저히 말투가 교정되지 않는 아이 탓에 첫 장을 채 떼기도 전에 책을 서고 깊숙이 꽂아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기를 단념한 셜록은 차라리 영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이왕 가르치는 김에 제대로 된 퀸스 잉글리시를 가르치자고 셜록은 다시 한 번 다짐했으나 그 다짐마저도 지금은 모래 위에 쓰인 글씨처럼 쓸려나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셜록은 책을 집어던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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