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마]애완인간

2013. 12. 13.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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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성추행/약수위

 

 

  셜록 홈즈는 여러 방면에서 박사 못지않은 박식함을 자랑하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측면에서만큼은 걸음마를 갓 뗀 아이와도 같았다.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그의 주변 환경적인 요인에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는데, 동생에 대한 과다한 애정을 필요 이상으로 과시하는 그의 형에 대한 저항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의 플랫메이트이자,-빌리를 제외하면-첫 번째로 사귄 친구이자, 또한 처음으로 사귄 연인인 존 왓슨을 제외하면 그가 이 정도로 깊은 감정적인 교분을 쌓은 사람 또한 처음이었기 때문에 셜록은 두 연인의 울퉁불퉁한 앞길에 무엇이 나타나든 서툴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사건에 대한 추리의 전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있는 지금,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존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는 지금 셜록의-소위 말해-내적 갈등은 몹시 심화되고 있었다.
 사실 레스트레이드와 존, 그리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다시 말해 자신들의 주의력 결핍과 지적인 열등감을 자극한다는 사소한 이유로 자신에게 항상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도노반과 앤더슨-제발 좀 그 멍청한 면상을 치워주었으면 좋으련만!-앞에서 추리의 과정을 일일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하루를 억지로 흘려보내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거쳐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셜록이 신경쓰이는 것은 도노반이나 앤더슨 따위가 아니었다. 벌판의 야생 소떼들처럼 몰려와 살인사건이 일어난 건물 바깥에서 온갖 불평을 쏟아내며 웅성이는 기자들 무리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존 때문이었다.
 사실 셜록은, 존이 눈을 반짝거리며 그를 쳐다볼 때마다 아랫배, 아니 배꼽 아래편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 감각은 몹시도 생소한 것이었다. 생소한 동시에 동물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은 더욱 나빴다.
 알다시피, 셜록은 약 삼십여년에 해당하는 그의 인생 내내 오직 냉철한 이성과 사각거리는 책장에 인쇄된 기계적인 이론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왔기 때문에 육체적인 욕구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서 결벽증적인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말초적인 욕망에 몸을 맡긴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시시한 화학적인 작용에 의거한 결정을 한다는 것이 왜인지 우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셜록은 지금만큼은 그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욕구에 순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젠장! 존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논리적인 추론 과정도 해내지 못하는 열등한 족속들을 배려한답시고 마지못해 소리내어 말하는 것뿐인, 자기만족을 위한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에 저렇게나 찬양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오다니 얼마나 순진하고 선량하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셜록은 더러운 마룻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향해 고정하고 있던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래, 한결 낫군. 죄지은 사람마냥 눈치를 보는 것처럼 존을 흘끔거리고 있던 아까보다 훨씬 나았다.
 입술이 무어라고 열심히 떠들고 있는 동안 셜록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뭉게뭉게 떠오르고 있었다. 존을 만지고 싶다. 순간적으로 시선이 존의 둔부로 향했다. 어젯밤에만 해도...후. 셜록은 기억을 더듬기를 멈추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이 그의 욕망을 진화하기는 커녕 더욱 부추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차 가지를 뻗어나가며 무성해지는 욕망. 셜록은 마치 먹이를 앞에 두고 침만 흘리는 개가 된 기분이었다. 저 살결을 만지면 얼마나 좋은 기분이 드는지 알기 때문에, 잘 느끼는 부분을 자극해주면 얼마나 멋진 신음을 뱉는지 알기 때문에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셜록은 그가 지극히 혐오하는 호르몬적인 욕망에 굴복하고 존을 향해 손을 뻗었다.

 

*

 

 등 뒤로 갑자기 닿아오는 차가운 손의 감촉에 존은 놀라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서 감히 이런 짓을 할 깜냥이 있는 사람은 오직 셜록뿐이라는 것을 그는 금방 알아차렸다. 하긴 셜록일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헛숨을 들이키는 데서 그쳤기에 사건 현장에서 난데없이 소리를 질러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것은 피했지만 셜록이 난데없이 자신의 허리를 주물럭대는 것은 좌시하고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나마 뒤에 아무도 서있지 않고 셜록의 넉넉한 코트 품이 그가 손을 어디에 집어넣고 있는 것인지 가리고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야드 식구들에게 얼마나 망신살을 뻗쳤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다가 누구한테 발각당하기라도 하면 freak 소리를 듣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겠지. 변태로 낙인을 찍히고 말것임에 분명했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단 존은 명백한 항의의 기색을 담은 눈길로 셜록을 올려다보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런데 셜록은 왠일인지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뻔뻔스럽게 그의 셔츠 자락 안으로 슬그머니 파고들어 허리께를 매만지는게 아닌가.
 더욱 약이 오르는 것은 남몰래 존을 추행하는 와중에도 셜록의 언변은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자신의 추론 과정에 대한 설명을 차근차근 늘어놓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앤더슨에 대한 무자비한 조롱을 덧붙이고 도노반의 지저분한 남자 관계를 들추어내고 레스트레이드에 대한 놀림까지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대체 사건 현장에서 뭐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살짝 젖혀진 셔츠 안으로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끼쳤고 존은 소름이 돋았다.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자 움직이던 셜록의 손이 멈췄다. 불길함이 엄습했다. 자신의 떨림을 셜록이 불건전한 방향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할텐데!
 그리고 어김없이 존의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셜록의 손은 더욱 끈적끈적하게 자신의 허리춤을 지분대기 시작했다. 존은 티나지 않게 허리를 이리저리 피하며 그의 의사를 전달하려 노력했으나 셜록은 완고했다. 고집센 녀석 같으니! 하고 존은 투덜거렸다.
 그러기를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아니 몇십 초밖에 지나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불가피하게도 오직 셜록의 손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되면서 존은 슬슬 셜록의 추행인지 애무인지 모를 행동에 간지럼 이외의 다른 감각도 느끼기 시작했다. 원래 존은 잠자리에서 셜록이 등줄기를 따라 키스를 해준다던가, 척추를 따라 그 길고 유려한 손가락으로 더듬어주는 등의 행위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셜록의 손은 감질나게도 허리에만 맴돌고 있으니 뭔가 아쉬운 기분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물론 야외에서 대뜸 옷을 벗긴다거나 하는 등의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하는 것은 더더욱-절대!-있어서는 안될 일이긴 했지만 마치 사탕을 깨물어먹지 못하고 핥아서만 먹고 있는 듯한 이상한 부족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셜록의 손이 바지 안으로 쑥 들어왔다.

 

*

 

 존의 눈이 커다랗게 뜨이는 것을 흘끗 바라보며 셜록은 애무에 박차를 가했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골덴 바지 아래에 동그마니 자리한 말랑말랑한 엉덩이의 감촉이 기분좋았다. 놀랐는지 엉덩이가 움찔거리는 것을 손바닥으로 꽉 잡았다. 그러자 이것만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존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셜록, 너 정말..."

 

 성이 난 듯 한껏 사나운 눈초리를 하고 기세좋게 입을 열었던 존은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셜록은 부러 느긋하고 평온한 어조로 대꾸했다.

 

 "왜 그러나, 존? 오늘따라 이상하군."

 

 존은 이상한 건 바로 너야! 하는 의미를 듬뿍 담아 자신을 노려보았다. 그를 쏘아보는 눈빛을 가뿐히 무시하며 셜록은 꽉 쥐었던 엉덩이를 놓고 살살 쓰다듬었다. 긴장한 엉덩이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엉덩이를 맘껏 주무르고 내키는 대로 비틀자 존은 점점 심통이 난 듯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존의 기분이 영 좋지 못한 듯 보이자 셜록은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하나, 라고 생각했지만 곧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한 달 전 쯤에 있었던 일이었다. 평소와 같이 오붓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아늑한 거실에서 어찌어찌 좋은 분위기로 키스에 몰입하다가 섹스를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놓였을 때, 존이 입술을 떼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내일 아침 일찍 직장 면접이 있는데...' 하고 운을 떼었을 때 셜록은 미련없이 손을 떼며 '그럼 그만 하지 뭐.' 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때 존은 김이 팍 샜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셜록. 남자라면 이럴 땐 한 번쯤 더 밀어붙여야지.'
 '하지만 내일 직장 면접이 있다면서. 그것도 아침 일찍.'
 '그건 그냥 튕겨본 거란 말이야!'
 '그렇지만 내 경험상 내가 하고싶은 대로 밀어붙이고 나서 자네는 항상 불평을 하던데. 허리가 아프다는 둥, 나 때문에 잠도 못자고 면접에도 늦었다는 둥...'
 '셜록,'

 

 존은 약간 수줍어하는 기색으로, 그러나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내가 자네하고 섹스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

 

 셜록은 그런 존의 얼굴을 한참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아니. 처음에는 마다하는 기색이었지만 항문 섹스와 그에 수반하는 잡다한 절차에 익숙해지고 나서부터는 아주 좋아하는-'
 '닥쳐 셜록. 너무 멀리 나가지 말라구.'

 

 그리고 존은 셜록을 소파에 밀어 쓰러트리며 그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의 아랫도리에 자신의 아랫도리를 비비적대며,

 

 '그리고...그냥 가면 이건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래?'

 

 그 뒤는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였다.


 ...어쨌든 그런 일이 있었으니만큼, 셜록은 지금 와서 애무를 그만두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계속해야 될지 알 수 없었다. 엉덩이를 만지는 것을 그만두었다가 존이 산통을 다 깼다는 둥 불평하면...(이미 셜록은 지금 자신이 서있는 곳이 사건현장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셜록은 또다시 존의 꾸중을 듣기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손에 쥔 엉덩이는 정말 부드러웠다.
 거기까지 생각한 셜록은 존의 엉덩이 골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다물린 엉덩이 사이에 손을 억지로 비집고 넣으니 엉덩이가 더욱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셜록은 그 저항을 무시하고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약간 젖은 듯한 항문 입구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었다. 어제도 혹사당한 애널 입구가 느슨하게 풀린 채로 셜록을 맞아주었다. 존이 서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기는 했지만, 셜록은 손가락을 존의 항문 안으로 넣는 데에 성공했다.
 야들한 점막이 셜록의 손가락을 따끈하게 감쌌다. 무척이나 뜨겁고 음란한 온도가 손끝에서부터 전해져왔다.

 

*

 

 사건 개요에 대한 브리핑을 끝내고 나서 셜록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손을 거두었고 존은 무척 언짢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채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셜록이 따라오거나 말거나 성큼성큼 앞서가는 존을 뒤따라가던 셜록은 존의 등에서 '나 화났음' 이라는 표시를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셜록이 먼저 랜드로버의 운전석에 앉고 존이 뒤따라 조수석에 앉기까지만 해도 셜록은 이번에야말로 두 번째 사과를 해야 하려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이 사납게 쾅 닫히고 나서 이어진 존의 행동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Sherlock, you son of a..."

 

 존이 셜록에게 달려들어 키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뒤로 젖힌 좌석 위로 쓰러지다시피 넘어진 채로, 영문도 모르고 한참동안 키스를 하고 나서야 존은 셜록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존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제기랄...셜록. 너 미쳤어? 대체 무슨 생각에서 그런 짓을 한 거야? 그것도 사건 현장에서!"

 

 그는 여전히 화난 기색이었다.

 

 "이유를 말해. 하찮은 핑계라도 좋으니까 뭐라도 말해보라고."

 

 하지만 순전히 화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셜록은 느낄 수 있었다. 셜록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 자네 때문이야."
 "뭐?"
 "자네가 날 그런 눈으로 바라보니까 어쩔 수 없었단 말이네!"

 

 말을 마치고 셜록은 낮게 젠장, 하고 투덜거렸다. 잠깐동안 벙쪄 있던 존이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까 셜록 네가 내 엉덩이를 난데없이 주무른게 나때문이라고?"
 "...그래."
 "내가 자네를 경탄어린...흠흠, 어쨌든 그런 눈길로 쳐다봐서?"
 "그래. 두말하게 만들지마."

 

 셜록이 짜증스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나자 차 안 공기가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르고 셜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랑 함께 있으면 꼭 내가 밝힘증 환자가 된 기분이라구. 난 원래 질척질척한 스킨십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인데 자네랑 함께 있으면 자꾸만..."

 

 셜록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존이 난감함과 미소가 뒤섞인 오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날 만지고 싶어진다고?"
 "...그래."

 

 셜록이 모기만한 목소리로 고백하고 난 후에 차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셜록의 무릎 위에 올라타다시피 한 존은 묘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존의 아래에 깔린 셜록은 그의 얼굴에 어린 표정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존이 가만히 셜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뭘 망설여?"

 

 셜록은 멍청하게 존을 올려다보았다. 존이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좌석 뒤로 젖혀."

 

 셜록은 그 말이 내포한 의미를 몇 초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무언지 모를 기세에 밀려 셜록이 입도 뻥긋 하지 못하고 좌석을 뒤로 젖히고 나자존은 씩 미소지으며 셜록을 뒤로 밀어 눕히고, 그 위로 올라가 점퍼를 벗어 뒷좌석으로 던지며 말했다.

 

 "차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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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

[셜록존]Call me baby

2013. 12. 13. 02:34 from BBC Sherlock/단편

셜록존/단편

 

 

 "뽑아보게."

 

 존의 어깨 너머로 셜록이 갑자기 휴지곽을 내밀었다. 느긋하게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존이 한발 늦게 반응하며 말했다.

 

 "뭔데?"
 "일단 뽑아보라니까."

 

 두 눈 가득 궁금증을 담은 존에게 셜록이 재촉했다. 대체 이게 뭐하자는 짓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셜록의 행동에 담긴-제 딴에는 심오하다고 주장하는-의미 따위를 짐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것을 존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속편하게 장단을 맞춰주기로 결심한 존은 집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셜록의 시선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티슈상자의 틈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안에는 접힌 종이조각들이 가득 들어있었고 서로 부딪히며 종잇장 특유의 가벼운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대체 이게 뭐지?
 의문이 한층 증폭되는 가운데 셜록은 존이 집어든 종잇조각을 가져가더니 그것을 펴보고선 또다시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정해졌군. '자기'야."

 

 셜록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닭살돋는 호칭에 존은 마신 것도 없는데 사레가 들릴 뻔했다. 말의 내용은 둘째치고, 어떻게 저런 말을 저렇게나 기계적인 어투로 뱉어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왕 저런 소리를 입에 담을 거라면 좀더 부드럽고 다정한 어조로 말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파충류처럼 표정이 없는 셜록에게서 할리퀸 소설의 남자주인공같은 어조의 달콤한 밀어가 흘러나오는 건 그것대로 상당히 기괴할 것같았다.
 몇 번 헛기침을 하고 나서도 존은 당황스러움을 얼굴에서 채 지우지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려주겠어?"

 

 셜록은 의외로 순순히 털어놓았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관계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난 후인데도 그 전과 비교해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의아하게 느껴지더군. 그래서 마이크로프트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했지."

 

 마이크로프트, 라고 언급하는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셜록은 평소에는 마이크로프트라면 치를 떨 정도로 질색하면서도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마이크로프트에게 의존하는 못된 습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을 한껏 놀려먹으며 그동안 무시당한 만큼의 보복삼아 웃음거리로 만들곤 했다. 그러면 존까지 덩달아 휘말려 피곤해지는 것은 물론이었다.
 존은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부디 틀리길 바라며 셜록의 뒷말을 재촉하듯 올려다보았다.

 

 "그랬더니 마이크로프트가 말하길 서로에 대한 호칭을 좀더 다정한 것으로 바꾸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군."
 "그래서 그 권고에 따라 행동한 것의 결과가 '자기'인건가?"
 "그렇지. 이제 자네는 날 자기야 라고 불러야 해."

 

 뭔가 정신줄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스트랄하다는 표현이 이런 때에 적절한 것이겠지...하고 넋을 놓을 뻔했지만 존은 간신히 정줄을 잡고 셜록의 일방적인 요구에 반박했다.

 

 "잠깐, 나는 그런 낯부끄럽기 그지없는 호칭으로 자네를 부를 생각이 추호도 없는데. 그것도 제비뽑기로 뽑은 거고. 완전 되는대로 아냐?"
 "'자기'가 맘에 들지 않는 거라면 다른 호칭도 많은데."

 

 존의 불평을 약간 다른 핀트로 받아들여 이해한 것인지 셜록이 휴지곽을 집어들고 거꾸로 뒤집어 테이블 위에 탈탈 털어 안에 든 종이조각들을 쏟아냈다. 그게 아니라! 하고 대꾸하려던 존은 자신이 너무 매몰차게 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순간 멈칫했다. 이왕 장단을 맞추기로 한 김에 조금만 더 맞춰주지 뭐,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존이 당장 쓸데없는 짓 집어치우라며 셜록에게 면박을 주지 않은 이유는 대체 마이크로프트가 제안한 애칭들이라는 것들이 또 얼마나 변태적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대한 대로, 손에 집히는 대로 아무거나 집어들고 펴자마자 존의 얼굴이 꾸깃꾸깃 구겨졌다.

 

 "'달링'? 진심이야, 셜록?"
 "아 그거. 레스트레이드가 적극 추천하던데."

 

 상식인이라고 여겼던 레스트레이드마저도 이런 병신미넘치는 애칭 궐기대회 나부랭이에 동참했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마 그렉과 마이크로프트가 눈앞에서 서로를 달링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목격했다면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욕과 독설을 일삼았을 셜록은 막상 자기가 그런 애칭을 쓴다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는 듯했다.
 참 낯짝도 두껍지, 하고 혀를 차며 다른 종이조각들을 들추어보던 존은 점점 가관이 되어가는 애칭들에 눈살을 찌푸렸다.

 

 "허니비, 곰탱이, 애기, 꿀빵...대체 누가 이런...누가 이런 걸 주워섬긴..."
 "마이크로프트와 레스트레이드 뿐아니라 앤더슨과 도노반, 몰리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지. 심지어 안시아도 거들더군."

 

 얼굴이 빨개진 채로 말도 제대로 잇지도 못하고 더듬거리는 존을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셜록이 들고 있던 종이조각 하나를 건넸다.

 

 "참고로 내가 적은 것도 몇 개 있다네."

 

 셜록이 고안한 애칭이라면 그나마 좀 덜 오글거리려나, 싶어 받아든 종잇조각에는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것들이 적혀있었다.

 

 "'오빠'?"

 

 존은 온몸으로 너 미쳤어, 셜록? 하고 외치고 있었다. 존의 격한 거부반응에 셜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주일 전에 침실에서는 날 잘도 그렇게 불렀잖은가."
 "...이잇! 그거야 네가 강요했기 때문이잖아! 너...넣어주지 않겠다고 별 말도 안되는 협박을 늘어놓으면서!"

 

 얼굴을 붉히면서 언성을 높이는 존에게 셜록은 얄미우리만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자네는 자네의 말마따나 말도 안되는 그 협박에 굴복했지. 그래서 마음에 들어할 줄 알았는데."
 "마음에 들기는 개뿔!"

 

 대화는 점점 수렁으로 빨려들어갔다.

 

 "'암퇘지'? 이건 도대체 누가 쓴 거야? 미친 거야?"
 "응? 이건 누가 쓴 건지 기억이 안 나는걸. 야드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열성적으로 적어서 협조해주었기 때문에 누가 뭘 썼는지는 잘 모르겠군. 그런데 이건 자네가 날 부를 때 적절한 호칭은 아닌 것 같군. 그 반대라면 모를까."
 "뭣이!"

 

 그럼 난 셜록을 수퇘지라고 불러야 하는건가...하고 멍하니 생각하던 존은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이러면 안돼, 존. 이런 정신나간 짓거리에 동참해서는 안된다고! 비록 상식과는 전혀 거리가 먼 셜록과 사귀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식인 포지션을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나저나 야드의 직원들도 다 안다 이거지. 앞으로 사건 자문에 동행할 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개망신이 따로 없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푹 내쉬며 힙없이 종잇조각을 펴던 존이 동작을 멈추었다.

 

 <여보>

 

 이거 설마 간접적인 청혼은 아니겠지... 존은 얼굴이 다시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얼른 그 종이조각을 다시 접어 쪽지 무더기 속으로 던졌다. 셜록은 혼자 울그락불그락 하고 있는 존을 흘끗 보더니 다시 쪽지에 쓰인 애칭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집중했다.
 존이 왜 가만히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한 그 모습에 존은 약간 안심하면서도 어딘지 아주 아주 아주 약간은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때문에 약간은 뾰족해진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애칭 하나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법석이야? 참나..."
 "아까도 말했잖나. 어째 연인 관계인데도 변한 게 하나 없는 것같단 말이야."

 

 왠지 그의 목소리에 투정기가 어려 있다고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존은 의아해하며 대꾸했다.

 

 "변한게 없긴 뭐가 없어?"
 "그럼 자네가 말해봐. 우리의 현 상태가 섹스파트너에 가까운지 연인에 가까운지."

 

 언뜻 들으면 시비조로 착각할 수도 있는 퉁명스런 어조에 발끈하려던 존이었지만 셜록의 말에 내포된 진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셜록이 연애에 관해서 완전히 무심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나름대로는 생각이 많은 것같았다. 무언가 가시적인 증표가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생각해낸 고육지책이겠지 싶었다. 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서로 사랑하잖아."

 

 셜록의 창백한 뺨이 미미하게 홍조를 띠는 것을 보고 존도 따라서 미소지었다. 흠흠, 하고 가볍게 헛기침을 하던 셜록은 자세를 고쳐 앉기도 하고 어깨를 들썩거리기도 하고 손가락을 가만 놔두질 못하고 꿈질꿈질거리더니 영 간지럽다는 표정을 억누르며 테이블 위에 온통 흩뿌려져있는 종잇조각들을 주섬주섬 치우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도 치우네, 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존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근데 어젠가 그저껜가 티슈 새로 갖다놓았던거로 기억하는데. 벌써 다 썼어?"

 

 질문을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비참했다. 사나이 존 왓슨, 이제 주부 다 됐구나...
 한편 셜록은 한참 머뭇거리다 질문에 대답했다.

 

 "다 썼어."
 "뭐하느라?"

 

 존이 물어오는 것에 셜록은 눈썹을 한 번 까딱 하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 거 없네."

 

 그답지않게 명확한 대답을 얼버무리는 뉘앙스에서 존은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다음 순간 존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실마리 비슷한 것이 스쳐지나갔다. 그건 바로 존이 단기근무로 나가는 병원에서의 야근때문에 셜록이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금욕기간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존의 안면근육이 묘하게 씰룩거리는 것을 몰래 뜯어보던 셜록이 조그맣게 말했다.

 

 "자네가 생각하는 바가 맞을 거야."

 

 셜록은 존의 얼굴이 다시 시뻘개지도록 내버려두고 얼른 거실을 나섰다. 그래! 항상 부끄러움은 존 왓슨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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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