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짐/멋진징조들크로스오버/천사시리즈

 

 

 "존, 차tea."

 

 문이 삐걱 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셜록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셜록이 존의 집에 거처한지도-달리 말하자면, 백수마냥 눌러붙은지도 이제 근 2년째였다. 셜록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딱히 음식물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지만 차만큼은 상당히 즐기는 편이었기 때문에 애꿎은 존을 전용 티포트마냥 부려먹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토록 시켜댄 덕분에 존이 차를 끓이는 솜씨는 나날이 일취월장해서, 이제는 존이 탄 차가 아니면 도저히 입에 맞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때문에 셜록은 존이 있든 없든 차를 타달라고 땡깡을 부려대기 일쑤였고, 존은 '제발 나 없을 땐 셜록이 타 마시란 말이예요!'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하고 불평하면서도 꼬박꼬박 셜록의 차를 타주는, 그런 평온하기 그지없는 생활이 지속되고 있었다.

 

 "존-"

 

 오늘따라 이상하게 대꾸 한 마디 없는 존에게 셜록이 다시 한번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재촉하려는 찰나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문틈을 파고들어오는 가느다랗고 음습한 한기처럼 소름끼치는 그 무엇.
 그때 열린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 순간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안온한 기운이 삽시간에 밀려나고 뼛골이 시려오는 한기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그와 동시에 여태까지 침대에서 뒹굴고 있던 셜록은 오후 늦게까지 빈둥대고 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게 몸을 일으켰다. 마치 적의 침입을 알아차린 고양이가 털을 세우고 가르랑거리는 것처럼, 셜록은 아까까지와 다르게 똑바른 자세로 일어나 뒤로 천천히 돌아섰다.

 

 "누구지?"

 

 차분한 목소리가 허공을 때렸다. 어느새 방 안의 공기를 장악한 채로 문가에 조용히 서 있던 남자는 셜록의 물음에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며 자못 정중한 태도로 인사했다.

 

 "모리어티라고 해. 반가워!"

 

 옷차림에 비하자면 무척이나 경망스러운 목소리였다. 단정한 빛깔의 은회색 수트를 깔끔하게 걸치고 머리를 넘긴 남자는 검은 눈으로 셜록을 응시하며 기분나쁘게 킥킥거렸다. 차림새는 몹시 우아한 데 비해 입가엔 비실대는 기묘한 웃음이 맺혀있는 그 간극에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 셜록은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려 했으나 냉정하게 표정을 관리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아아, 이야기나 좀 할까 하고."
 "난 그쪽과 할 이야기가 없어."

 

 셜록이 차갑게 대꾸하며 축객령을 내리려는 순간 모리어티가 눈을 위험하게 번득이며 말했다.

 

 "그렇지만 난 할 이야기가 있는걸?"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강조되어 울려퍼지는 것같은 느낌에 셜록은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의 이름을 모리어티라고 밝힌 남자는 셜록의 반응을 지켜보겠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웃고 있었다. 둘 사이에 침묵과 함께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이윽고 셜록이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정도라면 거절할 이유는 없지."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깐."

 

 히죽대는 모리어티에게 셜록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족은 빼고 용건만 이야기하고 당장 나가도록 해."

 

 모리어티는 놀랐다는 듯이 눈을 깜박거리더니 과장된 제스처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워, 워, 워우. 사나우셔라. 저기, 너무한거 아냐? 그쪽은 나한테 고맙다고 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인데, 조금이라도 상냥하게 굴어보라구."

 

 셜록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지?"

 

 모리어티가 킬킬 웃더니 속삭였다.

 

 "마이크로프트가 이제까지 널 내버려둔 거, 아니 찾아내지 못한 거 말이야, 우연이라고 생각해?"
 "..."

 

 이제는 셜록이 놀랄 차례였다. 애써 동요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저쪽은 이미 셜록이 자신의 마이크로프트에 대한 언급 때문에 당황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표정을 숨겨보았자 발악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모리어티는 셜록을 향해 즐겁다는 듯 미소지으며 약을 올리듯 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손님에 대한 예의를 갖출 생각이 들어?"

 

 예를 들며 의자를 갖춘다던가, 하고 얄밉게 덧붙이는 그에게 셜록은 마음대로 하시지, 라고 말하며 그 자신도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았다.
 의자에 앉은 모리어티는 다리를 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때 널 처음 보고 깜짝 놀랐지 뭐야. 넌 그때 이 집의 소년과 환담을 나누고 있어서 몰랐겠지만 말이야."

 

 그때?
 모리어티가 말하는 그때가 언제인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셜록은 일단 잠자코 듣고 있기로 했다. 마음내키는 대로 떠들어대는 것을 참고 봐주는 것은 불쾌한 일임에 틀림없었지만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휘둘리는 꼴을 보이는 것은 더한 치욕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동생이 내 앞에 나타나다니! 생각도 못했지. 그 내로라하는 악마의 동생이 어정쩡한 반푼이 천사인 것도 모자라서 겨우 타락천사 하나한테 어쩔 줄 모르고 휘둘린다는게 인상깊어서인지 언뜻 수배서만 본 것뿐인데도 바로 알겠더라고."

 

 어정쩡, 반푼이...물론, 일부러 도발하기 위해 고른 단어가 분명했다. 그는 대놓고 셜록의 표정을 관찰하며 보란 듯이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의혹은 확실하게 판명되었다.
 셜록은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 위를 몇 번 톡톡 소리가 나게 두들기고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뭘 말하고 싶은거지? 내가 마이크로프트의 동생이라는 점에 대해서 토론하고 싶은 건 아닐테고."
 "물론 아니지! 사실...부탁이 있거든."

 

 셜록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부탁이라. 네가 내 소재를 마이크로프트에게 알리지 않은 데에 대한 보답을 하라는 뜻인가?"
 "그렇게 받아들여도 무리는 아니지. 그렇지만 여기엔 네가 아직 모르는 뒷사정이 있다고. 그 점에 대해 미리 밝혀도 될까?"
 "빨리 해Make it quick."

 

 본론으로 쉽사리 들어가지 않고 미적대는 모리어티의 말에 노골적으로 피로한 기색을 보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셜록을 바라보며 모리어티가 미소지었다.

 

 "네가 애지중지하는 그 꼬마에 대한 이야기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듣는게 좋을 걸."
 "존?"

 

 셜록은 부러 느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키워드를 던진다고 해서 바로바로 반응을 보이는 것만큼 우스워 보이는 일도 없을테니까, 이를테면 페이크를 친 셈이었다. 하지만 모리어티는 아랑곳하는 것같지 않았다.

 

 "그래. 네가 그토록 아끼는 선량하고 순수한 소년, 존 해미시 왓슨 말이야."

 

 셜록과 모리어티의 시선이 마주쳤다. 강하게 마주닿은 시선이 날카롭게 서로를 겨누었다. 모리어티는 셜록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네가 그 소년과 첫 대면하던 날, 나는 그 소년의 영혼을 수확하기 위해 이 집에 도착해 있었지. 그 귀여운 소년은 말이지, 그때 몹시도 절망에 빠져있었거든. 너도 들었겠지만, 도무지 공감할 수는 없는 하고 많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말이야..."

 

 모리어티가 뒷말을 흐리는 사이, 셜록이 등을 곧게 펴며 끼어들었다.

 

 "그 애의 영혼을 수확한다니? 그 앤 아직 죽기엔 한참 멀었어."
 "모르는 소리 마."

 

 모리어티의 얼굴에 더욱 진한 웃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는 일부러 지어낸 안면 근육의 그로테스크한 굴곡에 더 가까웠다.

 

 "너도 몰랐구나? 그 앤 말이지, 가변 수명을 갖고 있더라고."

 

 셜록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아주 잠깐의 정적 후에 셜록이 곧장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가변적 수명이란 건 몹시 드물지. 그림 리퍼Grim Reaper 노릇을 꽤 오래 해왔던 나로서도 직접 접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게다가 그 애에겐 더욱 놀라운 점이 있더라고!"

 

 모리어티가 아리아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듯 외쳤다.

 

 "희망을 갖고 있으면 그 앤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는 거야!"

 

 웃기지? 그따위 희망이 뭐라고-하고 모리어티가 키들키들 웃었다. 셜록이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금세 웃기를 그친 모리어티는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신 절망하게 되면, 그만큼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지지. 2년 전 그 날이 바로 그런 경우였고. 거기다가 불치병까지 지니고 있으니, 그때야말로 그 애의 영혼을 수확하기에 딱 적기였는데 말이지..."

 

 아쉬운 듯 뒷말을 흐리는 모리어티에게 정신을 차린 셜록이 물었다.

 

 "병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병세가 깊어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잠복기로 평생 유지될 줄 알았지...그것까지 의지의 영역으로 미룰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고? 그건...!"

 

 모리어티가 첨언했다.

 

 "의지가 아니라 희망이라고 하더군."

 

 입술을 파들파들 떠는 셜록에게 모리어티가 조용히 말했다.

 

 "네가 당황해도 나무라지 않아. 비웃지도 않을게. 나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놀라서 어쩔 줄 몰랐으니까."

 

 모리어티가 말을 마친 후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셜록은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 이유가 뭐지?"
 "이유? 아, 그거야,"

 

 모리어티가 활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 애의 영혼을 내가 먹을 수 있게 협조해달라고."

 

 셜록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꼴사나운 표정으로 모리어티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간신히 제정신이 든 셜록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그렇지 않아, 셜록.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애초에 그 먹음직스런 영혼에 눈독을 들인 것도 내가 먼저고, 따지고 보면 네가 교활하게 가로채간 거나 다름없지. 게다가...지금 그 애가 그 몸을 하고도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원인이 뭐라고 생각해? 응?"

 

 일부러 잠깐 뜸을 들인 후 모리어티가 천천히 말했다.

 

 "바로 너. 네가 그 원인이야. 너만 아니었으면 나는 그때 그 애의 영혼을 무사히 수확해서 돌아갔을테고. 너는 너대로 네 갈 길을 갔겠지. 그 애는 운명의 흐름에 따른 평온한 안식으로 회귀했을 거고 말이야."

 

 느릿한 속삭임 끝에 모리어티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솔직히 나는 네가 금방 그 애한테 질려서 떠날 줄 알았어. 아무리 봐도 재미라곤 없는 애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네가 떠나는 대로 그 애가 다시 절망에 빠지면 적당히 영혼을 데려가려고 했단 말이지. 그런데 2년씩이나 버티고 있어도 너는 좀처럼 떠날 기미도 안 보이고, 그 애는 너한테 매달려서 잘만 살아가고 있고 말이야. 이건 정말 내 계산 밖이었다구. 알아? 이거 칭찬이다? 넌 정말 대단해. 이 나를 몸소 나서게 하다니."
 "참을성이 부족한 모양이군. 네가 나서지만 않았어도 난 아마 내년 즈음이면 존과 헤어졌을지도 몰라.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도 내가 존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나?"
 "미안하지만 2년도 충분히 길었어. 물론 난 참을성이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이 촌구석에 박혀서 지겹게 너희가 노닥거리는 꼴만 엿보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잖아? 내 성미하고는 맞지 않는다구."
 "그럼 포기하던가."
 "기세가 좋은걸. 그치만, 네가 아무리 용을 써도 네가 원하는 방향대로 상황이 진척될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아."

 

 빠른 공방. 모리어티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자신감에 차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셜록이 말없이 모리어티를 바라보자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내년이 아마 끝이 될 거야."

 

 모리어티가 셜록에게 조근조근 말했다.

 

 "내가 직접 명부에 가서 문의했으니까 확실해. 아니, 정확히는 내가 건의했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인간 따위가 몇십년이나 되는 기간을 희망 따위로 좌우할 수는 없는 거라고, 인류 전체에 적용되는 시간축에도 영향을 미칠 거라고 했더니 흔쾌히 조정해주더군?"

 

 셜록이 벌떡 일어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왜 그 사실을 내게 말해주는 거지?"

 

 부들부들 떠는 셜록의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모리어티가 다리를 반대편으로 꼬았다. 양복 바짓단이 스치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를 바로잡은 모리어티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거야 당연하잖아?"

 

 그렇게 말한 모리어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처럼 느긋하게 구김이 간 재킷의 매무새를 다듬고, 아랫단추를 채운다. 셜록은 분노에 찬 눈길을 모리어티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모리어티는 온몸을 난도질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그 시선을 즐기며 일부러 구둣발 소리를 선명하게 내면서 점차 셜록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둘의 거리가 다음 순간 0으로 수렴했다.

 모리어티가 셜록의 귓가에 대고 입술을 움직였다.

 

 "네가 그 애를 살린답시고 발버둥치는 꼴이 보고 싶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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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