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짐]유예

2013. 12. 13. 02:32 from BBC Sherlock/단편

셜존짐/멋진징조들크로스오버/천사시리즈

 

 

"...이 조그만 흠이, 글쎄 그걸 흠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름다움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소만, 하여튼 그것이 이 지상의 불완전성의 상징처럼 나에게 충격을 주는구려."
...(중략)...
"...지금의 저처럼 어중간한 정신적 성숙 단계에 이른 사람들에게 삶은 슬픈 소유물에 지나지 않아요. 차라리 제가 더 약하거나 맹목적이라면 삶은 행복일 수 있겠죠. 제가 만일 더 강하다면 삶은 행복일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 저의 상태를 보면 죽기에 가장 알맞는 것같아요."
"당신은 죽음을 맛볼 필요가 없는 천국에나 어울리는 사람이오!"

-나다니엘 호손, <반점> 에서 발췌

 

 

느긋한 오후였다. 방 안은 조용했고, 창가에서는 부드러운 햇빛이 들이치고 있었다. 이따금 산들바람이 들이치며 후텁지근한 공기를 몰아낼 뿐.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존은 조그만 손으로 찻잔을 들어올렸다. 아침에 끓였던 차는 식은 지 오래였으나, 정오를 넘긴 시간에는 오히려 미지근한 찻물이 더 개운한 감이 있었다. 거리낌없이 미지근한 차를 호로록 삼키며 존은 셜록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셜록은 오랜만에 잠을 자고 있었다. 존의 체구에 딱 맞는 자그마한 사이즈의 침대에 그렇지 않아도 키가 큰 셜록이 몸을 오그리고 누워 있는 모습은 퍽 우스웠다. 게다가 등 뒤의 날개뼈가 있어야 할 부분에서는 정말로 날개가 뻗어나와서 마치 그것이 별개의 생물이라도 되는 듯이 까딱거리고 있었다.
 항상 의식적으로 날개를 접고 있던 셜록이 날개를 편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차피 일반적인 인간들은 천사와 악마의 날개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펴고 다녀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때마침 셜록의 곁에는 그 날개를 꿰뚫어볼 수 있는 존이 있었기 때문에 셜록은 존을 위해 상시 날개를 숨긴 채로 다니곤 했다.
 그러나 잠이 들고 나니 그런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도 무색하게 날개는 오랜만에 숨통이 트인다는 듯이 제멋대로 뻗어나와 얼마 없는 바닥의 공간을 점령해버리고 말았다. 셜록의 날개 깃털은 꽤 깔끔하게 정리된 편이었지만 방바닥의 자리를 꾸역꾸역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꼭 깃털 뭉치가 한 무더기 쌓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존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조용히 덮고 셜록의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존이 침대 귀퉁이에 걸터앉자 이미 과중한 무게를 이고 있던 침대가 작게 삐걱거렸다. 존은 낡은 매트리스의 출렁임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셜록의 호흡이 고른 것을 확인한 후 펼쳐진 채로 늘어져 있는 셜록의 날개로 손을 뻗었다. 무방비하게 활짝 펴진 모양으로 바닥까지 점령하고 있던 검은 날개는 존의 손길이 와닿자 놀란 토끼처럼 퍼덕거리다가 이내 얌전하게 존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존은 손가락으로 빗질을 하는 것처럼 셜록의 깃털을 결에 맞추어 쓰다듬어주었다. 날개는 고로롱거리는 고양이처럼 종종 움찔움찔거리며 존의 접촉을 기분좋게 음미했다.
 그렇게 한가로이 셜록의 날개를 만지작거리던 존은 문득 무언가가 자신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을 발견했다. 다 자란 깃털 아래에 막 새로 돋아올라오눈 어린 깃털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뿐이었다면 딱히 시선이 갈 이유도 없었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띤 색깔이었다.
 흰색.
 타락 천사의 날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있어서도 안될 순백의 흰 깃털이 새까만 깃털들 사이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존의 얼굴에서는 천천히 미소가 사라졌다.
 착잡한 표정으로 그 깃털을 응시하던 존의 머릿속에서는 얼마 전의 만남이 떠오르고 있었다.

 

*

 

 "난 셜록의 친구야."

 

 남자는 존의 '누구세요?'라는 질문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마치 너무도 익숙해진 거짓말을 되짚어 재생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존이 대답하지 않고 남자를 빤히 쳐다보자 남자는 손을 내저으며 변명조로 말했다.

 

 "그래그래, 사실 친구라고 할 만한 사이는 아니지. 하지만 안면이 있는 사이라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구."

 

 간접적으로 처음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인정해버리고 만 사내는, 그렇다고 해서 인상을 찌푸린다던가 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다. 존이 의심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준비된 또다른 거짓말을 뻔뻔스레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쉽사리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거리껴하지도 않는 남자. 그에게서는 처음부터 줄곧 꺼림칙한 분위기가 풍겨나왔고, 존은 그것을 피부로 확실히 느끼고 있었으며, 눈 앞의 남자도 존이 받은 인상을 눈치챈 것같았다.
 남자는 미소지으며 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어. 오늘 우리가 이렇게 굳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이유는 딱히 너한테 위해를 끼치려고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구. 네가 셜록과 각별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깐."

 

 셜록과 각별하지 않았다면 위해를 끼치고 남았을 것이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존이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로 서있자 남자는 곧장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너 그건 알고 있니."

"뭘 말이예요?"

 

 존이 그제야 입을 열어 묻자 남자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

 

 존의 눈이 커졌다. 남자는 부러 깜짝 놀란 체를 하며 말했다.

 

 "몰랐구나. 너에 대해 오해할 뻔했네. 난 네가 일부러 셜록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줄로만 알았는데."
 "제가 왜 셜록을 붙잡는다는 거죠? 셜록은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요."
 "그거야, 셜록은 말이지...너도 알다시피, 냉정하고 감수성따위는 약에 쓸래도 없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속내는 그 누구보다도 여리잖아. 웬만한 낭만주의자보다도 인연에 얽매이는게 그녀석인걸."

 

 남자는 한 박자 말을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자기가 널 떠나면 금방 죽을 걸 아는데, 셜록이 널 두고 가버릴 리가 없잖아?"

 

 그렇게 마음착한 녀석이 말이야, 하고 칭찬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는 뉘앙스로 남자가 중얼거리는 동안 존은 놀란 마음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입술이 저도 모르게 떨려왔다. 셜록이 자신의 옆에 머물렀기에, 금방이라도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자신의 몸 상태가 호전되었던 건가. 그래서였나. 이제야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가 명쾌하게 풀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존의 머릿속 생각의 흐름은 더욱 엉켜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셜록을 보내주어야 하나?
 하지만...
 살고 싶어.
 셜록을 끝내 붙들어놓더라도, 더 오래오래 살고 싶어.
 셜록과 함께 살아있고 싶어...
 존의 마음 속에서 휘돌아 맴도는 생각의 끈을 잡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가 입을 열었다.

 

 "셜록이 네 곁에 남아주길 원할 거야. 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

 

 남자는 위로하듯 조곤조곤 말했다.

 

 "물론 셜록도 그걸 싫어하진 않을 거고. 어차피 셜록은 영겁의 시간을 가진 천사이기 때문에 몇십년 정도를 너에게 할애하는 정도는 유희에 불과할테니까."

 

 유희, 라는 말이 아프게 존을 찔렀다. 남자가 말하는 대로, 셜록이 자신의 곁에 머물러주는 것은 단시간의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는 일일까.
 존의 눈빛이 흐려지는 것을 지켜보며 남자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네가 본래 수명보다 오래 살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남자와 존의 시선이 마주쳤다. 남자는 눈 하나 깜박 하지 않고 말했다.

 

 "누군가가 너를 대신해서 죽는 거야."

 

 존의 눈빛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어딘가의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확실한 건,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그 사람의 수명은 일분 일초 깎이고 있다는 거지. 본디 누려야 할 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너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나 할까. 말하자면 셜록은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을 위해 돌아가야 할 수도꼭지를 너한테 억지로 돌리고 있는거지. 네가 살아나가는 만큼 그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거고."

 

 고작 열 살을 겨우 넘긴 소년에게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발판삼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몹시도 잔혹한 일이었다. 물론 남자는 고의적으로 그 점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눈 앞에서 생명체가 자신의 하루를 연장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꼴을 구경하는 것만한 재미는 없을 것이라고, 모리어티는 생각했다.

 하지만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어내며 모리어티는 혼란에 빠져든 소년을 다독였다.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주렴."

 

 속이 시원하도록 낄낄거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모리어티는 다정하게 말했다.

 

 "아직 어린 너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세상은 세심한 계획에 의거해서 조밀하게 짜여진 채로 돌아가는 거란다. 천사도 악마도 세계의 안정을 위해서 바삐 일하는 거고. 한 명이라도 씨실과 날실의 자리에서 엇나가게 되면 모두의 삶이 위태로워져."

 

 모리어티는 부드럽게 선고했다.

 

 "그게 운명의 섭리라는 거야."

 

 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를 위해서라고 생각해."

 

 모리어티의 말이 끝나고서도 존은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지루해진 모리어티가 그럼 이만, 하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존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언제죠?"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질문이었으나 모리어티는 금세 존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3개월 정도, 유예를 줄까."
 "아뇨."

 

 존이 빠르게 말했다.

 

 "일주일. 그정도면 충분해요."

 

 여기에는 모리어티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겨우 일주일? 네 생을 마감하는 시간으로서 부족하지 않겠어?"

 

 존이 쓸쓸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전 어려요. 제가 죽는다고 해봤자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여파도 얼마 없을 거고요. 저보다 중요한 사람들도 자기에게 얼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고 죽어가잖아요? 일주일이면...괜찮은 시간이죠."

 

 존이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저는 그래도 준비할 시간이라도 있으니까...축복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눈 앞에서 한없이 선한 고백을 하는 소년에게야, 모리어티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아무리 끔찍한 악이라도 천연의 순수 앞에서는 그 위명을 잃는 법. 모리어티도 마찬가지였다.
 잠깐동안 말을 잃고 소년을 바라보던 모리어티는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그럼, 하고 짧게 소년을 일별하고 날아가버렸다. 더이상 그 선량함을 눈앞에 두고 견뎌내기 힘들다는 듯이, 모리어티는 도망치고 만 것이다.

 

*

 

 그것이 나흘 전이었다.
 한참동안 날개깃을 만지작거리던 존은 갓 머리를 내민 하얀 깃털을 조심스럽게 뽑아냈다. 덜 여물어 말랑한 깃털은 생각보다 쉽게 뽑혀져나왔다. 깃털이 뽑히고 남은 구멍은 발갛게 물들었을 뿐이었다.
 존은 다시 주위의 검정 깃털을 모아 어린 깃털이 뽑혀나온 자리를 감추었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깃털이 가지런하게 덮힌 그 모습을 보고, 존은 결국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셜록의 날개에 몸을 엎드렸다. 혹시라도 셜록이 잠에서 깨어날세라 조용히 숨죽여 우는 존을 위로하는 것처럼 날개가 푹신하게 존을 감쌌다. 그 따스한 느낌에 존의 눈에선 더욱 눈물이 흘러나왔다.

 

 울다 지친 존이 겨우 잠이 들고 나서야 셜록은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날개에 푹 파묻힌 채로 불쌍하게 잠이 든 어린 소년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셜록은, 존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를 들어올려 침대에 누였다.
 서툴게 이불을 끌어올려 소년의 몸을 덮고, 셜록은 침대맡에 서서 조용히 존을 응시했다. 잠시 후 셜록은 결심을 한듯 입을 굳게 다물고 창가에 섰다. 창틀을 넘어가 위태하게 올라선 셜록은 날개를 활짝 펴고 몇 번 펄럭이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아니, 모리어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지켜보고 있었다.
 존과의 일대일 대면에서 꼴사납게 도망치는 꼴을 보이고 만 모리어티는 고작 열 살을 겨우 넘긴 꼬맹이에게 패퇴한 것과 같은 충격에 빠져 혹시라도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지 않을까 두려운 나머지 감시를 강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전혀 그답지 않은 주의력과 세심함이라고, 모리어티라는 사신의 진면목을 아는 악마라면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그래, 전혀 나답지 않은 일이지.'

 

 젠장, 하고 입술을 깨물던 모리어티는 발로 허공을 몇 번 짓이겼다. 겨우 꼬마 따위에게 밀리고 만 것은 분명히 자신의 실책이었다. 일개 인간 아이가 그토록 착한 심성을 갖고 있으리라고 어느 악마가 감히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존에게 당하고 만 모리어티는 한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존의 영혼은 이미 천사의 반열에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순수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셜록을 만남으로써 그 승격이 늦추어졌다. 위편에서 그토록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 희생심과 삶에 대한 적은 미련에도 불구하고 셜록의 존재가 곁에 있음으로써 존을 지상에 붙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미녀의 희고 고운 뺨에 자리한 손바닥 모양의 붉은 반점처럼.
 존에게는 그 아이의 존재가 지속되는 것의 책임이 오로지 존 자신의 것으로만 여겨지도록 말해놓았지만, 그 점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저 셜록을 다른 곳으로 따돌리고 나서 영혼을 데려가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담을 수도 없는 것이니 아쉬운 입맛을 다실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결연한 표정으로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셜록을 바라보았다. 셜록은 분명 그의 형에게로 가고 있는 것이겠지. 곤란활 때마다 형에게 달려가는 것은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로서는 다른 수가 없을 테니까 한 수 물러주는 셈 치고 내버려두고 있다. 따지고 보면, 셜록의 의외로 약한 면모를 목격하면서 모리어티의 방심이 초래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자신과 만난 이후로 암중으로 갖은 노력을 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나치게 마음이 풀어졌던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도 뒤지지 않는 위엄과 그동안 인간들을 상대로 수많은 승리를 거둔 성과에 낙관한 나머지 오만한 태도를 견지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셜록으로 하여금 최고의 패를 뽑아내도록 한 것.
 지나치게 게임을 스릴있게 끌어나가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자충수를 두고 만 것이 아닐까.
 패를 보여주고 만 도박사처럼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낯설 뿐 아니라 치욕적이었다. 스스로에게 들으라는 듯이 혀를 요란하게 차던 모리어티는 그러나 자신이 띄운 승부수를 믿기로 했다.
 모리어티는 셜록이 지옥으로 떠난 것을 확인하고 존의 집 창가로 다가갔다. 눈이 부어오른 채로 새근새근 잘도 자는 아이. 숨을 쉴 때마다 가냘프게 들썩거리는 여린 어깨. 당장에라도 저 아이의 얇디얇은 육체의 덧없는 껍데기를 찢어내면 그 속에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을 영혼을 그 근원의 정수까지 남김없이 뽑아내고 싶다는 유혹에 몸서리가 쳐졌다. 얼마나 맛있을까! 어리고 야들야들한 소년의 천연스럽기 그지없는 선량한 영혼의 맛이란! 생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이 그를 말렸다. 도둑놈도 아니고 자는 사람의 영혼을 몰래 도적질하는 건 영 모리어티의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궁지에 몰리더라도 말이다.
 과연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을 도울 수 있을까?
 천사라면 모를까, 같이 타락한 처지의 악마라면 승산은 이쪽에 있다. 비록 위세가 당당한 7대 악마의 수좌에 있다고는 하나 그림 리퍼인 자신에게 우선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리어티는 그제야 안심하고 키들키들 웃었다.
 그래, 이 승부의 승리는 자신의 것이다.
 상대가 고작 악마인 이상.
 천사라면 모를까...
 후후 웃던 모리어티는 조용히 마음 속으로 축배를 들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승리의 예감을 즐겼다.

 

 

*

 

 안시아가 문을 두들겼다.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아니,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이라고 해도 좋았다.
 잠시 기다리던 안시아는 망설임없이 곧장 문을 박차고 열었다.

 

 "바알제불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침대에 번데기마냥 웅크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덩어리에서 한동안 신음이 흘러나왔다.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죽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다가 겨우 음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들렸다.

 

 "돌려보내."

 

 자고 있는 거 안 보이냐...등등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안시아는 눈썹 하나 까딱 안하고 덩어리에서 흘러나오는 불평불만이 끝나길 기다렸다. 겨우 중얼거림이 잦아들자 안시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돌려보내죠."

 

 곧바로 돌아서는 안시아의 뒤로 덩어리가 멈칫했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말이십니까?"
 "네가 순순히 방문객을 돌려보낼리가 없는데 말이지."

 

 안시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끙끙대던 덩어리가 뒤척이다가 물었다.

 

 "누군데?"

 

 돌아선 안시아가 아무런 감정의 기복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리시던 분이요."

 

 그 대답을 곱씹던 덩어리가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갑자기 꿈틀꿈틀거리더니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적갈색의 머리를 뒤로 넘기고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중년의 남자로 탈바꿈한 남자, 마이크로프트가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진작에 말했어야지!"

 

 당장에 뛰쳐나가려는 마이크로프트를 안시아가 제지했다.

 

 "왜!"
 "옷은 입고 가셔야죠. 또 동생분께 한소리 들으실려구요?"

 

 막 인간의 모습을 취한 마이크로프트가 홀딱 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시아의 침착한 제지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프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녀석이 제발로 들어올리가 없는데 이렇게 순순히 지옥으로 돌아온 걸 보면 뻔한게 아니겠나? 뭔가 거리끼는 게 있거나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지."

 

 형의 맨몸을 보는 것쯤이야 충분히 참아줘야지 않겠어! 하고 개소리를 지껄이던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기다리는 곳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뒤에서 안시아가 무표정으로 한숨을 내쉰 것쯤은 덤이다.

 

*

 

 "오랜만이구나 동생아!"

 

 응접실에 앉아있던 셜록은 요란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이크로프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질색하며 쏘아붙이기를 기대하며 만면에 웃음을 띤 채로 셜록을 쳐다보았으나 셜록은 예상외로 눈 하나 깜짝 않고 마이크로프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야 형. 어서 와서 앉지 그래."

 

 아주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자리에 앉으라는 둥 이야기를 해대는 셜록을 보고 실망한 마이크로프트는 쳇 하고 혀를 차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소리와 함께 마이크로프트의 몸 위에 한순간에 옷이 나타났다. 깔끔한 양복을 갖춰입은 마이크로프트는 투덜거리며 셜록의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반응이 시원찮구나. 재미없어."
 "별로. 웬 천사랑 비역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내게 들켰을 때 이미 형의 알몸을 지겹도록 봐서 말이야."

 

 셜록의 지적에 움찔하던 마이크로프트가 항변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사는 치르지도 못했단다! 갑자기 밀고들어온 너 때문에!"
 "아 그러셔."
"그리고 그 천사는 내 눈앞에서 쪼르라니 도망가버렸지! 맛있게 먹어치우기 직전이었는데 말이다. 위쪽에서 도통 얼굴을 보일 기미도 없고..."

 "그렇게 아쉬워?"

 "그럼 아쉽고 말고."


 "그럼 내가 사과할 겸, 그 천사랑 다시 얼굴을 마주할 기회를 주지."

 

 셜록의 말에 마이크로프트가 흠칫 하며 팔짱을 꼈다. 응접실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조용히 머리를 굴리던 마이크로프트가 생각을 정리하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네가 정말 나 잘되라고 그런 일을 제안할 성격이 아니란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셜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셜록을 바라보던 마이크로프트가 질문했다.

 

 "무슨 일인데?"
 "웬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탐내고 있거든."

 

 마이크로프트는 부러 하품을 하며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야 메피스토펠레스 이전에도 숱하게 있었던 일이지. 위쪽에서는 엄금하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천사들의 눈을 피해 인간의 영혼 하나쯤 슬쩍하는 건 일도 아닌데-아니, 거의 본업이라고 봐도 무방하지-왜 하필 네가 나서는 거냐?"

 

 셜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다문 채로 마이크로프트를 응시하는 셜록을 보고 마이크로프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하긴 네가 나한테까지 찾아온 이유가 그것때문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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