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짐/멋진징조들크로스오버/천사시리즈

 

*본편에서 악마, 타락천사, 사신은 혼용해서 쓰이는 동일한 개념입니다.

 

 

 "...천사님?"

 

 파란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코를 훌쩍거리며 중얼거리는 소년에게 셜록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천사 좋아하네."

 

 차가운 대답에 놀랐는지 소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셜록도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성격이 개차반인 그로서도 생판 처음 보는 꼬마아이에게 가차없이 비꼬아댄 것은 너무했다고 여긴 것인지 답지않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그것도 잠시, 소년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딸꾹!"

 

 어찌나 놀랐는지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 소년은 막상 딸꾹질을 하는 자신이 더 깜짝 놀랐다는 것처럼 눈이 왕방울만해져서 셜록을 올려다보았다. 탁한 금발이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를 최대한 치켜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을 응시하던 셜록은 한숨을 푹 쉬고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사탕 먹을래?"

 

*

 

 "정말 천사 아니예요?"

 

 한동안 묵묵히 막대사탕을 빨던 소년이 다시 물었다. 셜록이 곧장 부정했다.

 

 "아니라니까."
 "그치만, 날개가 있는데."

 

 보도블럭에 앉은 채로 다리를 쭉 펴고 까딱거리던 존이 셜록의 부정에 조그맣게 항의했다. 셜록이 혀를 차며 되물었다.

 

 "너 이 날개가 하얗게 보이냐? 혹시 장님...은 아니겠지. 내가 보이고, 내 날개도 보인다니까...잠깐, 그러고보니 어떻게 내가 보이는 거지?"

 

 10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핀잔과 독백과 질문을 거쳐가는 정신없는 셜록의 말의 흐름을 채 반도 따라가지 못한 존은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조용히 입 안에서 사탕을 굴렸다.
 한편 얼떨결에 이름도 모르는 꼬마애에게 휘말려 사탕까지 뺏기고 보도블럭에 엉거주춤하게 앉아있는 신세가 된 셜록은 대체 평범한 인간 꼬마가 어째서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의 정리를 마치고 나서 옆을 쳐다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사탕을 오도독 소리나게 깨물며 소처럼 눈만 끔벅거리는 아이를 쳐다보던 셜록은 은근히 부아가 치솟았다.

 

 "바보같으니idiot."

 

 혀뿌리에 단단히 달라붙은 욕설을 뱉어내며 셜록은 소년이 화를 내길 기대했다. 당장 일어서서 훌훌 떨치고 가기에는 어색한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서 그답지 않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그의 천성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년이 화를 내면 자신은 나름대로 떳떳하게(?) 소년을 내버려두고 갈 명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소년의 반응은 셜록이 예상한 바와는 딴판이었다.

 

 "맞아요. 다들 나보고 바보라고 해요."

 

 담담하게 말하며 소년은 입에서 사탕막대를 뺐다. 자근자근 씹어 너덜해진 막대 끝에는 체리물이 거진 다 빠져 처량한 연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쪼글쪼글해진 사탕막대를 빤히 쳐다보던 셜록은 소년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엄마도 아빠도 없고, 학교에 가도 친구도 없구요."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입술을 깨물며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참는 아이의 신세한탄을 듣는 것보단 말이다. 이런 곤혹스런 사정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강림한 것인데, 하필이면 현신하자마자 처음으로 만난 대상이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그대로 꿰뚫어볼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라니.
 돌겠군...하고 셜록은 속으로 중얼거리는 한편으로 끙 하고 신음했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흘러내리는 코를 훔치며 하소연하고 있었다.

 

 "그리고요, 누나는 계집애들하고나 키스하니까 저도 날 때부터 호모자식일거라고도 해요. 누나가 레즈비언인거랑 제가 호모인거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난 게이도 아닌데."
 "전형적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군."

 

 혼잣말로 셜록이 중얼거리자 소년이 셜록을 향해 돌아보았다.

 

 "전형적...인...성급...오류...?"

 

 소년이 더듬거렸다. 셜록은 속엣말을 입에 올렸다는 것을 깨닫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더이상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막고 싶었기 때문에 고분고분 대답해주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너희 누나가 동성애자라고 해서 너까지 동성애자로 치부하는 건 논리적인 결함을 지닌 논법이라는 뜻이지. 그 두 가지 명제 사이의 관련성은 전무하다고. 동일 유전자를 나눠가진 사람들 간에 같은 유형의 성적 지향이 발현된다는 것도 참인 것으로 증명되지도 않았고 말이야."

 

 거기까지 나불대던 셜록은 문득 소년의 열렬한 시선을 느끼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 꼬마는 뺨이 상기된 채로 자신을 엄청나게 뜨거운 눈빛으로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을 잇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왠지 멋쩍어진 셜록은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일부러 과격하게 말을 맺었다.

 

 "그러니까 그런 멍청한 놈들이 하는 소리는 다 개소리bullshit다 이거야."

 

 셜록이 말을 마치자 소년은 참아왔던 탄성을 내질렀다.

 

 "우와!"
 "우와는 무슨 우와야."
 "역시 천사님은 너무 멋져요."
 "글쎄 나 천사 아니라니까."

 

 셜록의 거듭된 부정에 아이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럼 왜 등에 깜장 날개를 달고 있는 건데요?"

 

 망설이던 셜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천사가 아니라고 했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왜냐면 난..."

 

 셜록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맺었다.

 

 "...타락천사거든."

 

 의외로 꼬마는 놀라는 기색도 셜록을 두려워하거나 그를 피하려는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인간 세상에 나오니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군 하며 셜록은 은근히 지금의 상황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지옥이나 연옥에서 죽칠 때에는 하나같이 딱딱하고 지루한 꼰대들뿐이었는데 나오자마자 이렇게 하나같이 예상을 빗겨가는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무료하기 그지없었던 셜록에게는 이보다 더 값진 선물이 따로없었다.
 셜록이 서서히 지금의 상황에 몰입하기 시작하는 동안 소년이 종알거렸다.

 

 "나도 타락천사 뭔지 알아요! 해리엇이 그러는데 크롤리랑 아라이1가 떡치는shagging 사이라고 했어요."

 

 순간 셜록은 먹은 것도 없는데 사레가 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동안 쿨럭거리던 셜록이 등을 두들겨주는 아이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기침을 가라앉히고 나서, 셜록은 벌개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쬐끄만 게 못하는 말이 없군."
 "아, 미안해요."
 "그런 천박한 말을 쓰는 주제에 용케 나를 볼 수 있군 그래. 그나저나 크롤리...크로울리2는 알겠는데 아라이는 누구지?"
 "몰라요. 누나 말로는 천사인데 천상 게이랬어요. 그리고 크롤리는 타락천사구요. 둘이 사귄다고 그러던데요."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군..."

 

 투덜거리던 셜록은 곧 코트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잠시 깔짝거리더니 어떤 화면을 내보이며 물었다.

 

 "네가 말하는 크롤리가 이 남자냐?"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셜록은 곧바로 다시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화면을 두드리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고 말했다.

 

 "설마 네가 말하는 아라이가 아지라파엘...이냐?"
 "네 맞아요! 아지라파엘! 이름이 너무 길어서 까먹었다..."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생략하면 아지라파엘이 아라이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셜록은 사소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활기찬 대화를 제공하는 인간 꼬마애를 울리기는 싫었으니까.
 한편 소년은 눈을 빛내며 셜록에게 질문하기 바빴다.

 

 "그럼 왜 여기 온거예요?"

 

 솔직히 말하자면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인간계에 강림했을 때에 있었던 좌표로 곧장 날아든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소년에게 그런 하잘것없는 이유를 댐으로써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셜록은 머리를 굴리다가 곧-그의 생각에는 대단하기 짝이 없는-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난 사실 널 타락시키러 왔단다."

 

 존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커졌다.

 

 "저를요?"
 "그래."
 "저는 나쁜 아이가 아닌걸요?"

 

 항변하는 아이에게 셜록이 씩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미 못된 아이를 타락시켜봐야 뭐가 재미있겠어? 착한 아이를 나쁜 아이로 타락시켜야 보람차지."

 

 소년의 동요를 드러내듯 파란 눈의 초점이 흔들렸다. 셜록은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저급한 희열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셜록의 반듯한 입매가 일그러지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나는 현대의 악마들보다는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하지. 꼬마야, 바보 이반 이야기를 알고 있니? 악마들은 우직한 이반은 꼬드기지 못했지만, 그 형들인 세묜과 탈라스는 성공적으로 제 편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반보다는 어리석은 세묜과 탈라스와 더 닮았고 말이야. 앞으로 난 네 옆에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성심성의껏 타락하게 만들어 줄 계획이란다. 고리타분하지만 그편이 확실하거든."

 

 모범적인 악마다운 태도로-사악함이 듬뿍 묻어나면서도 한없이 유혹적으로 속삭여주자 눈앞의 소년은 당황한 듯 멍하니 그를 마주 쳐다보았다. 셜록은 마침표를 찍듯 입꼬리를 슬쩍 들어올려 미소지어보였다.
 이제야 타락천사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군, 하고 셜록은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쉬운 기미가 들기도 했다. 이제 소년은 그를 내팽개치고 이 자리를 도망가려 들겠지. 그러면 오랜만에 나눈 즐거운 대화도 이제 안녕일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그 소년은, 놀랍게도 오늘 하루동안 셜록의 예상을 무려 세 번이나 비껴가게 하는 위업을 달성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다행이다. 난 또..."

 

 소년이 뭐라고 말하려다가 뒷말을 삼켰다. 셜록이 그 심상치 않은 생략에 의아해할 틈도 주지 않고 꼬마는 말을 이었다.

 

 "그럼 앞으로 내 옆에 계속 있을 건가요?"
 "...그렇게 되는 셈인가?"

 

 당황한 셜록이 얼떨떨하게 내뱉은 모호한 대답에도 소년은 세상을 다 얻은 것마냥 좋아라 소리를 질러대며 셜록을 꼭 껴안았다. 

 

 "와 신난다!"

 

 작은 소년의 팔이 굳어버린 셜록을 감싸안았다. 무표정이 일상화된 셜록의 얼굴과는 달리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등 뒤에서 어쩔 줄 모르며 움찔거리던 검은 날개에 소년이 얼굴을 폭 묻었다. 작고 보드라운 코끝이 깃털 뭉치 사이로 파묻혀서 속살에 간지럽게 와닿았다. 아까까지 울던 아이의 얼굴에 덜 지워진 채 남아있던 콧물이 윤기나는 깃털을 적시고 말았지만 왠지 기분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신은...뭔가 이상했다.

 

 "...내 이름은 셜록 홈즈라고 한다."

 

 다소 무감정하게 들리는 목소리에도 소년의 환희는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셜록을 더욱 세게 껴안으며 소년이 살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존 왓슨이라고 해요. 미스터 홈즈."
 "장난하냐? 셜록이라고 불러."

 

 자못 아무렇지 않은 듯 핀잔을 주면서도 셜록은 느끼고 있었다.
 그래. 뭔가가 이상하다. 이 모든 상황의 기점이 어디선가부터 비틀려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셜록은, 지금 당장은 그 점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1.뒤에 나오겠지만, 아지라파엘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2.Anthony J. Crowley(<멋진 징조들>의 등장 타락천사이자 악마)와 Aleister Crowley를 헷갈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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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