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마리 터너 상원의원의 딸, 캐서린 터너 양이 연쇄살인범 '와일드 차일드'에 의해 납치된 가운데 국립 중앙 경찰청의 수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찰청 내의 넓직한 휴게실 안에서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이제는 피해자의 범위가 유력 정치가의 자식으로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쉬쉬할래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는 다들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는 파악하고 있었으나 수사의 진척 과정은 국장인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철저한 통제로 인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기에 다들 뉴스에라도 뭔가 새로운 사실이 발표나지 않을까 싶어 사람들은 모두 방송 앵커의 말에 귀를 집중하고 있었다.

 

 "...캐서린 터너는 18세로, 상원의원 마리 터너의 외동딸입니다. 이번 납치 사건은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때마침 휴게실로 들어오던 왓슨은 뉴스가 방송되는 것을 보고 혹시나 따로 발표된 것이 있을지 궁금하여 가득 들어찬 사람들을 제치며 텔레비전 화면 앞으로 향했다.
 뉴스 화면이 전환되고 마리 터너 의원이 호소하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녀는 침통한 기색으로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제 딸, 캐서린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에게 알립니다. 캐서린은...착하고 온순한 애입니다. 그 애와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의원의 얼굴 위로 캐서린 터너의 사진이 오버랩되었다. 증명 사진, 친구들과 웃고 있는 사진, 발레복을 입고 찍은 어린 시절의 사진, 아기 때의 사진...
 의원의 호소는 계속되었다.

 

 "이건 당신의 자비심을 세상에 보여줄 좋은 기회입니다. 세상에게 당한 것을 캐서린에게 보복하려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에겐 동정심이, 그리고 그것을 발휘할 힘이 있습니다. 그런 힘을 가진 건 당신입니다...제발, 캐서린은 제 딸이예요.-"

 

 존은 터너 의원이 참으로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저런 말을 하라고 가르쳐준 사람이 영리했거나. 이름을 반복하는 것은, 사물을 명명한다는 것은 그것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이 방송을 볼지도 모르는 납치범으로 하여금 캐서린을 처리해야 할 사물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인식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던 것이다.

 

*

 

 키티 라일리 박사는 단단히 화가 난 듯,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존의 앞을 가로막고는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인터뷰만 하고 아무 말 없이 가버린 게 벌써 세 번째예요."
 "수사 절차상의 문제라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존의 변명에도 라일리 박사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저 사람은 내 환자예요!"
 "그건 압니다만..."
 "난 단순한 교도관이 아니라구요!"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존의 말허리를 자르며 계속해서 자기 할 말만 내뱉는 라일리 박사는 마치 자기 장난감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떼쟁이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존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검사의 관할 사항이예요. 전 제가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존이 그녀의 옆으로 빠져나가 출입문 앞에 서자, 레스트레이드는 기다렸다는 듯 존을 들여보냈다. 라일리 박사는 한동안 씩씩거리며 존의 뒷모습을 보다가, 무언가가 생각이 난듯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급히 위층의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

 

*

 

 존은 셜록에게 기쁜 듯 말했다.

 

 "캐서린 터너가 죽기 전에 와일드 차일드를 잡게 해준다면, 의원께서 약속한 대로 좀더 감시가 덜한 요양원으로 이송될 겁니다."

 

 셜록은 새하얗도록 창백한 얼굴로 방 안의 그늘 안에서 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존은 셜록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거기선 책도 읽을 수 있어요. 더 멋진 건..."

 

 존은 마이크로프트가 건네준 자료를 뒤적거리다 한 장의 지도를 꺼냈다. 그 지도에는 한 섬의 평면도가 그려져 있었다. 존은 그 지도를 셜록이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전면 유리창에 대고 펼쳐 주었다.

 

 "...1년에 1주일 동안 요양원을 떠나 여기서 지내는 거예요."

 

 셜록의 투명한 청회색의 눈동자가 지도에 초점을 두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딘지 아시죠?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니 제가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고 있겠죠. 당신은 그 1주일 동안 매일 해변을 산책하고 원하신다면 수영도 즐길 수 있어요. 물론...감시가 따르겠지만 말입니다."

 

 셜록은 지도를 본 후 존을 보다가 시선을 약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사건 파일은?"

 

 존은 배식 창구를 열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와일드 차일드'의 사건 파일, 상원의원의 제안 사항. 협상은 불가합니다. 캐서린이 죽으면 다 날아가는 거죠."

 

 존은 배식 창구를 닫고 셜록에게 미소지어보였다. 셜록은 자신을 놀리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섬의 대표 시설이 동물 질병 연구센터라지. 매력적이군."

 

 설마 그걸 지적할 줄은 몰랐던 존이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그건 섬의 일부일 뿐입니다. 멋진 해변, 제비갈매기 둥지, 아름다운-"
 "제비갈매기? 따분하군."

 

 셜록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도 따로 원하는 게 있지.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 사건 이야기 말고, 당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그 순간 존의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라일리 박사의 경고. 캐서린 터너. 와일드 차일드.
 셜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 뒤에는 존의 배짱을 시험하면서도, 사건을 풀고 싶지 않느냐는 유혹이 동시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떤가?"

 

 그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였다. 존은 그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그는 존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대답해, 캐서린이 기다리잖나."

 

 셜록은 고개를 돌린 채로 미소가 비어져 나오려는 것을 억제했다. 노오란 머리의 햇병아리 프로파일러는 지금쯤 자신의 말이 어떤 의도인지 파악하느라 머리를 굴리고 있을 터였다. 존 왓슨이란 남자는 나름대로 머리가 있는 편에 속했으나 셜록 홈즈에 비견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관대한 사람들과 다르게 셜록 홈즈는 웬만큼 우수한 능력은 우수의 범주로 쳐주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닌 '무언가'때문에 마이크로프트도 그를 곁에 두고 애지중지하는 거겠지.
 존 왓슨과 만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그 '무언가'는 이성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이미 오래 전에 한 톨도 남김없이 지웠으리라고 확신했던 감성이 그것을 깊이 이해했다. 셜록 홈즈는 이런 상황에 스스로 놀라면서도 분석적인 태도를 취하여, '존 왓슨'이라는 남자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아나가기로 했다.
 -그러니 어서 제안을 받아들여.
 셜록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을 그 때에 존 왓슨이 말했다.

 

 "좋습니다."

 

 대답을 들은 셜록은 그 무감정한 얼굴을 휙 돌려 존을 응시하면서 첫 번째 질문을 했다.

 

 "전쟁터에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은?"

 

 존은 잠시 놀랐으나 그와의 첫 번째 만남에서 그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단번에 파악한 것을 상기해냈다. 마이크로프트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묻지도 않고 자신의 신상 내역을 파악하고 있던 것을 이미 겪었기에 셜록 홈즈도 그런가 싶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가문 형제들의 지적인 능력은 범상치 않은 수준을 뛰어넘었다. 한 명은 양봉업에, 다른 한 명은 좌천된 경찰, 다른 하나는 특급 범죄자이지만 말이다. 다만 정의의 편에서 그 능력을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며 그는 대답했다.

 

 "동료가 전사했을 때."
 "아는 바를 그대로 말해줘."
 "그는...그의 이름은 케네스입니다."

 

 존은 제대한 후로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으며 애써 감춰왔던 기억을 조심스레 풀어헤쳤다. 그의 목소리는 차츰 떨리기 시작했다.

 

 "위생병 중 한 명인데, 군의관을 지키는 역할이었죠. 그런데...어느 날 막사까지  반군이 쳐들어왔고...그는 총에 맞았어요."

 

 셜록이 속삭이듯 물었다.

 

 "바로 목숨을 잃었나?"
 "아닙니다. 그는 한 달 이상을 버텼지만...결국엔, 그래요. 죽고 말았죠. 그는 언제나 나를 지켜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해댔었는데...이런 말 하면 게이가 아니냐고 오해를 하겠지만,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었습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셜록이 말했다.

 

 "아주 솔직하군. 사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감동적이야...좋아, 주고 받는 거니까."

 

 셜록이 존에게 물었다.

 

 "미스 데번셔도 몸집이 큰가?"

 

 데번셔에서 발견된 피해자를 약칭하는 말인듯 했다. 존은 대답했다.

 

 "네."
 "궁둥이도 펑퍼짐하고?"

 

 일부러 상스러운 어휘를 골라쓰는 셜록이었지만 존은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답했다.

 

 "맞아요."
 "다른 건?"

 

 존이 말했다.

 

 "식도 안에 이상한 게 있더군요. 아직 발표도 하지 않았습니다. 의미를 도통 모르겠어서요."

 

 셜록은 양손을 마주대며 말했다.

 

 "나비였나?"

 

 존은 깜짝 놀랐지만 곧 자신의 경악을 가라앉히고 그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나방이었습니다."

 

 존이 숨을 가다듬고 셜록에게 질문했다.

 

 "앤더슨의 뇌 안에도 한 마리가 삽입되어 있더군요. 왜 그걸 넣었을지 짐작이 가나요?"

 

 셜록이 존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답지 않게 성실한 태도였다.

 

 "나방이나 나비는 변화를 뜻하지. 유충에서 번데기로 변하고, 나중에는 아름다운 날개로 변태를 하는 거야...우리의 '차일드'도 변신을 원해."

 

 존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성전환증은 매우 수동적이라 폭력과 관련성이 희박한데..."

 

 셜록이 그의 투명한 눈으로 존을 쏘아보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영리하군. 놈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간 걸 알겠어?"

 

 존은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는 셜록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자신이 한 말에 어떤 결론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물었다.

 

 "아뇨, 무슨 뜻입니까?"

 

 셜록이 존을 줄곧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고 다시 질문했다.

 

 "케네스가 죽은 후에는?"

 

 존이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지만 셜록은 아랑곳않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부대가 좀 더 전방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최전선으로요."
 "거기서 얼마나 있다가 제대한 거지?"
 "두 달."
 "너무 짧군."
 "부상을 당했어요."
 "어쩌다? 또 막사까지 적군이 들이쳤나?"
 "아뇨, 그건 아닙니다. 이제 당신 차례예요."

 

 숨가쁜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지나가고 셜록이 다시 존에게 시선을 향한 채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차일드'는 성전환증이 아니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시도는 많았을 거야."

 존이 셜록에게 물었다.

 

 "가까이 갔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셜록은 시선을 딴 데로 옮기며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성전환수술로 유명한 곳은 미국에 많은데 존스 홉킨스, 미네소타 대학, 콜럼버스 메디컬 센터지. '차일드'가 그곳에서 수술을 거부당했을 가능성이 커."
 "거부당한 이유는 뭐죠?"

 

 셜록은 여전히 허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폭력이 얼룩진 불우한 어린 아이의 한 때를 생각해보라구. '차일드'는 타고난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희생양이야.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성전환을 꿈꾸지만 더 끔찍하고 무서운 병은 다른 데 있어."

 

*

 

 그리고 키티 라일리 박사는 도청 장치로 전달되는 셜록의 말 하나하나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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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