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존은 미스 립먼의 집을 찾았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그의 집은 시내라기보다는 약간 외진 구석에 있었다. 집 옆에는 큰 강으로 이어지는 넓은 개울이 세차게 흘러가고 있다.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

 

 그 시각 용의자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진입 작전이 한창이었다. 택배 회사 직원으로 위장한 한 요원이 초인종을 눌렀다.

 

*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존이 임시 신분증을 들어보였다.

 

 "실례지만 립먼 부인을 찾습니다."

 

*

 

 안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요원이 살짝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다는 표시였다. 다가온 특수 요원들이 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

 

 나온 남자는 급하게 옷을 챙겨 입은 듯 셔츠 목 부근의 단추가 제대로 채워지지않은 상태였다. 헝클어진 옅은 금발에, 하얀 얼굴의 남자는 존이 치켜든 신분증을 쓱 보더니 말했다.

 

 "이제 여기 안 삽니다."

 

 곧바로 문을 닫으려는 남자를 존이 저지했다.

 

 "죄송하지만 몇 가지 질문에 답변해주셔야겠습니다."

 

*

 

 안으로 진입한 요원들은 집 안이 텅 비었을 뿐 아니라, 애초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 또한 없는 것을 확인했다. 샅샅이 뒤졌지만 먼지밖에 눈에 보이지 않았고, 요원들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

 

 존이 말했다.

 

 "프레드리카 허드슨의 죽음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성함이?"

 

 남자가 말했다.

 

 "잭 고든입니다."
 "자, 고든 씨. 프레드리카가 립먼 부인과 친했다고 하는데, 모르십니까?"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뇨...잠깐, 그 뚱뚱한 여자?"

 

 무언가 떠올려내고 미소를 짓는 남자에게 존이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러고보니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남자가 코를 손가락으로 문지른 후 말했다.

 

 "립먼 부인의 아들이 있는데, 명함을 드릴테니 들어오세요."

 

 남자는 흔쾌히 문을 열며 존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고맙습니다."

 

 서랍 위의 고지서와 서류 뭉치를 뒤지며 남자가 존에게 물었다.

 

 "수사는 잘 되간답니까?"
 "네, 그럭저럭."

 

 존은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오며 말했다.

 

 "립먼 부인이 돌아가신 뒤 이 집에 입주하셨습니까?"
 "네, 몇 개월 전에 들어왔죠."
 "세금 명세서나 고용인 장부 기록은 없을까요?"
 "그런 건 전혀 없더군요."

 

 존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한 남자는 다시 존을 힐끔 하고 쳐다보며 그에게 물었다.

 

 "성과가 좀 있는지? 경찰들은 아직까지 헤매더군요."

 

 존은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았다. 집 안은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언뜻 보면 차곡차곡 쌓여있는 물건들도 자세히 보면 그저 쑤셔넣어진 것 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벽에 걸린 나비 그림을 바라보던 존의 눈길은 식탁 다리 옆의 상자 안으로 쏠렸다. 안을 보자 안에는 색색의 실패가 담겨있었다. 그때 붉은색의 실패 위에 어디선가 날아온 시커먼 색의 나방이 내려앉았다.
 남자는 연이어 질문했다.

 

 "용모나 지문 같은 건 알아냈나요?"

 

 존은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요."

 

 남자는 존을 보고서는 다시 종잇조각 더미를 뒤적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존은 총을 확실히 챙겨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다행히도 홀스터에는 총이 들어있었다. 때마침 남자가 명함 하나를 꺼내들며 말했다.

 

 "여기 있군요."

 

 존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남자가 명함을 내민 팔을 어색하게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당연히 쓰셔야죠."

 

 히죽 웃으며 몸을 돌리는 남자에게 존은 총을 겨누었다.

 

 "손 들어! 돌아서서 다리 벌려."

 

 남자는 계속 히죽거리며 존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 든 명함 몇 장이 팔락이며 부엌 바닥으로 떨어졌다. 느린 속도로 돌아선 그는 갑자기 재빠른 몸놀림으로 집 안쪽으로 도망쳤다.

 

 "꼼짝 마!"

 

 집은 복잡한 구조였다. 부엌과 안 쪽 방 사이에도 문이 있었고, 황급히 남자를 쫓아들어간 방 안에서 두리번거리다 보니 방마다 사이에는 잠금 장치가 달린 문짝이 있는 것이 보였다. 존은 총을 든 채로 이 방 저 방을 뒤졌다. 미처 잠기지 못한 문을 열고 안을 보자, 덮개가 살짝 비뚜름하게 덮인 지하로 연결된 통로가 보였다. 존은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지하 통로의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눈 앞에는 몇 개의 닫힌 문이 있었다. 존은 그 중에 하나를 조심스럽게 천천히 밀었다. 안에는 마치 복도처럼 길고 좁은 방이 보였다.
 뒤쪽으로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운 채 안을 살펴보자, 벽에는 영국 전역의 지도가 붙어있었다. 존은 자신이 총을 뽑아든 선택이 맞았다는 사실에 잠깐 기뻤으나 지금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존은 옆 쪽의 문을 거세게 열었다.
 안은 그동안의 희생자들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더덕더덕 붙어있었고, 마네킹에는 XL사이즈의 여자 옷들과, '와일드 차일드'가 지금까지 수집한 가죽들을 봉제하여 만든 것이 분명한 여성의 몸 형태의 인피가 걸려있었다.
 그때 존의 뒤에서 소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존이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 밑에 있어요!"

 

 그는 쳐다보기조차 싫은 그 방을 나와 조심스럽게 다른 쪽 방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우물처럼 생긴 구덩이가 있었다. 소녀의 목소리는 그 아래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캐서린 터너?"

 

 존의 목소리는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살짝 갈라졌다. 소녀는 대답했다.

 

 "네!"

 

 존은 우물 방과 연결된 다른 문을 열어 확인하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이제 괜찮아요."

 

 캐서린이 외쳤다.

 

 "어서 꺼내주세요!"

 

 존은 쓸모없어 보이는 방의 문을 걸어잠그고, 바깥을 수시로 내다보며 퇴로를 확보하며 캐서린에게 물었다.

 

 "놈은 어디 있죠?"

 

 캐서린은 피로와 공포에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꺼내줘요."

 

 투덜거리며 계속 꺼내달라고 소리치는 그녀에게 존이 말했다.

 

 "잠깐만 조용히 좀 해줘요."

 

 우물 근처로 접근한 존은 소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말했다.

 

 "캐서린, 꼭 꺼내줄 테니까 잘 들어요. 조금 있다 다시 올게요."

 

 존이 우물 입구에서 모습을 감추자 소녀가 외쳤다.

 

 "안돼, 날 버리고 가지 마! 가면 안돼! 그 자식은 미쳤어! 어서 꺼내달란 말이야!"

 

 이제 거의 꽥꽥 거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소리쳤다.

 

 "캐서린, 다른 사람이 곧 올 겁니다!"

 

 존은 범인이 그 말을 듣기를 바랬고, 정말이지 실제로도 그랬으면 하고 기원했다. 소녀는 존의 말을 듣고도 가지말라고 계속 울면서 외쳤고, 존은 애써 그 소리를 무시하며 벽을 등지고 서서 총을 유일하게 열려있는 문 쪽으로 겨누었다. 다른 쪽 벽에 재빨리 옮겨가서 다른 문을 열어본 존은 그 안에 있는 나방 사육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나치게 엄폐물이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은 이런 일까지 미리 내다보고 계획을 세웠던 걸까? 어두운 조명, 충분히 키 큰 남자를 숨길 수 있는 나무 상자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게다가 복잡한 내부 구조. 게다가 '와일드 차일드'는 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지만, 생소한 환경체 처한 그는 까딱 잘못하면 바로 죽는다. 존은 온 몸의 신경과 오감을 최대한 곤두세우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하 전체에는 범인이 일부러 재생시켜 놓은 것이 분명한 비트가 강한 음악이 울려퍼진다. 존은 이상한 냄새가 스며 나오는 쪽의 문을 발로 걷어차며 들어갔다.
 욕조 안에는 부패한 시체가 더러운 물에 잠겨있다. 이미 시체는 부패하다 못해 분해되기 직전이다. 존의 얼굴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순간 탁, 하는 소리가 들리고 시야가 캄캄해졌다.

 

*

 

 제이미 검은 적외선 안경을 쓴 채로 남자를 관찰했다. 눈 앞의 모든 것이 초록색으로 보인다. 초록빛으로 물든 다부진 짧은 금발 머리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등을 벽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그는 손으로 주변 사물을 더듬더듬거리며 용케 움직이고 있었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도. 손을 미약하게 떨면서 그는 움직였다. 노련한 솜씨. 제이미는 그렇게 남자를 평가하며, 그 쪽으로 서서히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제이미는 그의 지척까지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손을 뻗었다. 손이 닿을락 말락 하다. 원한다면 그를 만질 수 있다. 제이미는 남자가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이 남자는 자신의 원대한 계획에 심각한 방해를 초래하고 있다. 제이미 검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등 돌린 존 왓슨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노리쇠를 당겼다.

 

*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리자 존은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몸을 돌려 격발했다. 어지러운 사격 소리와 함께 몇 발의 총탄이 서로 오갔다. 일순간 존의 오른뺨이 화끈 했고, 눈 앞의 형체가 쓰러졌다. 남자가 쓰러지며 조명 장치를 건드린 것인지 불이 환하게 켜졌다. 적외선 안경을 낀 남자는 가슴에 총을 맞은 채 피거품을 토해내고 꿈틀거린다. 주저앉은 존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총탄을 새로 장전했다. 남자는 꿈틀거림을 서서히 멈추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쓰러진 남자 옆으로 다가가 떨어진 총을 멀리 걷어찬 존은 깨달았다.
 자신의 다리는 이 숨막히는 추격전 속에서 철저히 정상이었다.

 

*

 

 드물게 현장까지 왕림한 마이크로프트는 오자마자 존의 어깨를 감싸쥐고 친히 앰뷸런스 쪽으로 데려갔다. 마이크로프트는 총탄에 스친 존의 오른뺨을 살폈다.

 

 "괜찮나?"
 "화약 때문입니다. 괜찮아요."

 

 완벽하게 스치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생 그 화약 자국은 지워지지 않겠지. 영광의 상흔으로.

 마이크로프트는 생각했다. 그리고 존의 어깨를 더욱 강하게 감쌌다. 발빠르게 현장까지 침범한 카메라 기자의 질문 공세를 그는 위엄있게 손짓함으로써 존으로부터 떨어뜨려놓았다.

 

*

 

 정식 경찰이자 특수 요원으로 승진한 존과 그 외 여러 사람들을 위한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음료를 한 잔 집어들고 마시려는데 한 동료가 다가왔다.

 

 "존, 너한테 온 전화가 있어."
 "고마워."

 

 존이 지나가려는데 입구 쪽에 서 있던 마이크로프트가 다가왔다.

 

 "존."

 

 그가 존을 상냥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진심으로 축하하네, 존."
 "감사합니다. 홈즈...아니, 마이크로프트."

 

 마이크로프트는 존이 그에 대한 호칭을 정정하자 조금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이런 즐겁고 시끌시끌한 파티는 내 성미엔 그다지 맞지 않아서 이만 자리를 뜨려고. 자네는 좀 더 즐기다 가게."
 "알겠습니다."

 

 존은 머뭇거리다 손을 위로 올렸다. 마이크로프트는 그 손을 살짝 잡았다. 잠시 후 그는 아쉬운 듯 손을 놓으며 말했다.

 

 "자, 가서 전화를 받아야지."

 

 작게 미소지은 마이크로프트는 곧바로 방을 나갔다.


 "존 왓슨입니다."
 "존."

 

 절대 다른 사람과 혼동되지 않는, 셜록 홈즈 특유의 나직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총성이 멈추었나?"
 "셜록 홈즈..."

 

 존이 속삭였다.

 

 "금방 끊을 테니까 추적은 소용없어."

 

 존이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셜록이 그만의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 같은 유명 인사를 방문할 생각은 없으니, 당신도 같은 호의를 베풀어주었으면 해."

 

 존이 눈을 살짝 감으며 대답했다.

 

 "그런 약속은 못 드립니다."

 

 셜록이 약간 즐거운 듯 웃음지으며 말했다.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만...옛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어서."

 

 셜록은 존에게 연인에게 속삭이듯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그는 키티 라일리를 선뜩하니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탈옥한 셜록이 그녀를 포식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채 저 편으로 걸어갔다. 셜록은 멀어져가는 그녀를 보며, 존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럼 안녕."
 "셜록-"

 

 전화는 끊겼으나, 존은 전화기를 붙잡은 채 계속해서 셜록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Mad Detective-the silence of the gunfire-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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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