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왓슨, 홈즈 국장이 찾네."
 "알겠습니다."

 

 오늘도 재활훈련을 하느라 땀에 흠뻑 젖은 존 왓슨에게 그의 담당 의사가 다가와 말했다. 그는 곧바로 땀을 닦고 위층의 행동 과학 연구소로 향했다.
 존 왓슨은 아프간 귀환병이다. 실력있는 의사를 양성하기로 유명한 영국의 바르톨로뮤 의학 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서 제 5 노섬벌랜드 퓨질리어 연대 소속으로 복무했다. 직업 군인으로의 활동도 고려할 정도로 우수한 경력을 쌓아가던 존 왓슨이 현재 병원의 재활 시설 내에서 재활 훈련이나 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은 그가 겪은 마지막 전투에서 얻은 부상 때문이었다. 당시에 그가 입은 부상은 매우 심했던 터라 팔이 괴사 직전까지 몰렸으나 다행히도 적합한 후속 조치가 취해졌던 터라 팔은 정상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왔다. 그랬던지라 군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현재는 국립 경찰청의 행동 과학 부서의 견습 요원으로 스카웃될 수 있었다.
 다만 현재까지도 문제가 되는 바는 트라우마 때문에 유발된 림프관의 이상이었다. 가만히 서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걸을 때, 그리고 특히 뛸 때는 다리에 무리가 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존은 수시로 재활 센터에 들러 따로 재활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사실 신체적인 재활을 한다고 트라우마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존은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훈련에 열심이었다.
 존은 앳된 얼굴의 훈련생들을 지나쳐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앞으로 국가 기밀과 관련된 업무를 맡게 될 건장한 체격의 청년들이 엘리베이터에 가득했지만 최상층까지 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홀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를 소환한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사무실로 향했다. 보안은 철저하여 무려 다섯 개의 비서실을 거친 후에야 그의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했으나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보이지 않고, 그 휘하의 차관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심각하게 무언가 논의하고 있다가 방에 들어온 존을 발견하고 물었다.

 

 "홈즈 국장을 뵈러 왔나?"
 "그렇습니다."
 "금방 오실 거야. 우린 이만 나가보지."

 

 남자들은 그 말대로 바로 방을 나갔다. 존은 국장을 기다리며 방 안을 슬쩍 둘러보았다. 방 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그 주인을 상징하듯 고급스럽기 그지없었으나 벽의 한 면만은 수십 장의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지저분하게 느껴진다. 사진의 주인공은 통칭 '와일드 차일드'와 그의 피해자들이다.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서 옆을 돌아보았다.

 

 "왓슨. 존 H. 어서 오게."
 "안녕하십니까."
 "급하게 불러서 미안하네."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매우 장신이다. 말랐지만 수트가 불쌍하게 헐렁일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고급 수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마찬가지였고, 그의 제 2의 살갗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그에게 잘 어울렸다. 그는 베스트에서 체인이 달린 회중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확인하며 존에게 양해를 구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렇게 빈틈이 없으면서도 사려깊은 모습을 보면 과거의 고풍스런 댄디 신사가 연상되었다.
 그는 우아하게 걸어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며 존을 향해 살짝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역시나 흠 잡을 데 없이 간결하고 거역할 수 없는 동작이다. 존은 일순 입을 뻐끔거리다 뒤쪽의 의자를 끌어와 마이크로프트와 마주보고 앉았다.

 

 "잘 하고 있다더군. 적응도 빠르고."
 "그렇게 여겨주신다니 다행입니다."

 

 의자에 앉은 존에게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이며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자네가 해줄 일이 있네. 일보다는 심부름에 가깝지만."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내 세미나에서 본 기억이 나는군. 맞나?"

 

 정말로 물어보는 것이라기보단 확인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그렇습니다."
 "부전공생 치고는 수준 높은 질문과 이해력, 그리고...레포트도 훌륭했던 기억이 나. A를 줬던가?"
 "A-였습니다."

 

 그는 미소짓고는 서류철을 피며 말했다.

 

 "바르톨로뮤 의학 대학 외과 전공, 행동 심리학 부전공. 차석 졸업이라. 라이징거 클리닉에서 인턴을 했었고, 그 후로 아프간 전쟁에 파견되었군. 팔에 부상으로 의가사 제대를 했고. 당시 희망 진로 사항을 참고하자면 졸업 후 나와 행동 과학을 연구하고 싶었다고 쓰여있는데."

 

 존은 멋적었는지 손을 깍지 낀 채 몇 번 움직이다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마이크로프트는 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른 서류철을 꺼내어들었다.

 

 "현재 자네에게 돌아갈 업무는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들을 인터뷰하는 일이야. 미해결 사건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네. 아직까지는 대부분 협조적이네만,-자넨 겁이 많은 편인가? 아니...전직 군인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게 우습군."

 

 존은 그저 웃어보였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를 흘끔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협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인물을 한번 만나봐 주게."
 "그게 누구죠?"
 "전직 자문 탐정이자 자문 범죄가였던 셜록 홈즈네."
 "아..."

 

 순간적으로 '미친 탐정(Mad detective)'이란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정신을 차린 존은 자제력을 발휘하여 단순한 감탄사만 뱉어내는 데 성공했다.
 미친 탐정 셜록 홈즈는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친동생으로, 소시오패스를 넘어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이중인격자였다. 마이크로프트 못지 않은 뛰어난 지능과, 마이크로프트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활발한 행동력으로 한 때 신문과 인터넷에서까지 이름이 오르내렸던 유명한 탐정이었으나, 자신이 만들어낸 범죄를 자신이 해결해낸다는 것이 발각되면서 친형의 손에 검거되었다. 그 탓에 영국 정보부의 수장직이자 영국 정부의 대표격이던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직위는 겨우 국립 경찰청의 행동 과학 부서의 국장으로 강등되고 말았으나, 셜록 홈즈가 저지른 일의 경중을 생각해보면 그나마도 다행인 일이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존이 그의 눈치를 보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입을 열 가능성은 없지만, 최소한 노력은 해봐야지."

 

 어쩐지 목소리에 힘이 빠진 듯한 그를 존은 약간의 연민을 가지고 쳐다보았다. 마이크로프트는 다시금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감옥이나, 수감자의 상태라도 보고하도록. 혹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무슨 그림인지, 여하튼 모든 것을 말이야."

 

 그는 미리 준비를 해두었는지, 서랍을 열고 밀봉된 서류 한 뭉치를 꺼내어 존에게 건넸다.

 

 "이건 셜록 홈즈에 관한 서류일세. 그리고 질문서와 특별 신분증이야. 수요일 오후 8시까지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존은 서류를 챙겨가다 말고, 마이크로프트를 돌아보았다.

 

 "죄송한 질문이지만, 왜 서두르시는 겁니까? 그가 수감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요. 저기-"

 

 존은 벽면에 가득 붙어있는 사진을 슬쩍 눈짓하며 말했다.

 

 "'와일드 차일드'와 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러길 바라야지. 각별히 신경을 써주길 바라네, 왓슨."
 "알겠습니다."
 "일급 요주의 인물이야. 수용소의 라일리 박사가 행동 지침을 알려주면 반드시 그대로 따라야 하네."

 

 불쾌한 여자지만 말이야-라고 언뜻 마이크로프트가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적인 이야기는 금물. 그가 누구인지 명심하게. 본인의 임무에만 충실하도록."
 "그에 대해 점점 궁금해지는군요."

 

*

 

 "그는 괴물이예요. 미치광이."

 

 자기 딴에는 소시오패스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말예요, 라고 키티 라일리 박사가 말했다. 가슴팍을 지나치게 풀어헤치고 자기 나이가 몇인지 망각한 듯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자였다. 그녀는 특유의 졸린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살아있는 연구자료로는 대단히 희귀한 경우죠."

 

 존은 언제나 이 지루한 절차가 끝날까 싶어 방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녀가 지나치게 활짝 웃으며 존에게 말했다.

 

 "호호, 이 삭막한 수용소에 이렇게 매력적인 분이 방문한 건 처음이군요.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하룻밤 묵어가시는 것도...?"

 

 노골적으로 그를 유혹하는 라일리 박사에게 존이 곤란한 듯 웃으며-그러나 너무 거절하는 기색이 비치지 않도록 주의하며-말했다.

 

 "정말이지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군요. 다만, 결과를 오늘 오후까지 보고해야 합니다."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빨리 끝내죠."

 

*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그의 앞을 인도하며 말했다.

 

 "표준 테스트로는 그 사람을 연구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그는 저를 원수 보듯 한다니까요."

 

 라일리 박사가 지하로 통하는 계단 문을 열며 말했다.

 

 "당신이 와서 다행이예요."
 "무슨 뜻이죠?"
 "글쎄,...멋지고 매력적인 남성이니까."

 미친 탐정, 그는 연쇄살인마에다가 호모이기까지 한 것이다. 존은 속으로 혀를 찼다.

 

 "남자 구경한 지 하도 오래돼서 입맛에 맞을 겁니다. 말하자면요."
 "챠밍스쿨을 졸업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군요."
 "그래요. 아까 말해준 규칙을 절대 잊지 마세요."

 

 그녀는 한 번 더 반복했다.

 

 "절대 창에 다가가지 마세요. 종이 외의 필기구를 줘선 안되고, 스테이플러, 클립도 물론이예요. 무언가를 전달할 때는 반드시 배식 창구를 이용하세요. 뭘 주더라도 받지 말아요. 이해하셨어요?"
 "이해했습니다."
 "이런 규칙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답니다. 2008년 7월 8일, 가슴 통증을 호소해서 의무실로 옮겨서 마우스피스를 벗겼더니 간호사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놨어요."

 

 라일리 박사는 심한 상처를 입어 성형을 해도 원상복귀가 불가능하게 된 끔찍한 여자의 얼굴 사진을 품에서 꺼내 내밀었다. 그녀는 존이 셜록 홈즈에 대한 선입견을 갖도록 만들고 싶은 듯, 어딘지 악의적인 의도가 가득해보였다. 사진을 받아들고 꼼꼼히 살펴보면서도 존은 동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찌어찌 턱을 교정하고 눈 하나는 치료했지만 간호사의 혀를 찢어낼 때도 맥박이 85를 넘지 않았어요."

 

 그녀는 사진을 다시 받아들고는 말했다.

 

 "여기 수감시켜 놓았어요."

 

 따라가려는 작정인지 그녀가 안으로 발걸음을 들였다. 존이 황급히 말했다.

 

 "라일리 박사님, 셜록 홈즈가 선생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혼자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다소 불쾌한 듯 말했다.

 

 "사무실에서 미리 얘기하셨으면 좋았을 뻔 했네요."

 

 존은 환심을 사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여기까지 안내받을 기회를 잃어버렸겠죠."

 

 그녀는 불쾌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 듯 싶었지만 일단은 웃어보였다. 그녀는 그의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간수를 향해 말했다.

 

 "끝나면 밖으로 모셔."

 

 그녀는 지시를 마치고 곧바로 위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박사의 지시를 받은 반백의 중년이 인사했다. 그녀를 수감실 복도 쪽으로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그렉 레스트레이드라고 합니다. 창에서 거리를 두시는 건 들으셨을거라 믿습니다."

 

 존은 박사보다 호감이 가는 인상의 남자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존 왓슨입니다."
 "반갑습니다. 외투는 여기에 거세요."
 "네, 고마워요."

 

 그는 복도로 통하는 잠긴 문을 열고 존을 들여보내준 후 말했다.

 

 "쭉 가시다 마지막의 오른쪽 방입니다."

 

 창살문이 닫히는 소리가 묘하게 크게 울려 흠칫 한 존은 레스트레이드를 쳐다보았다.

 

 "의자를 준비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약간 긴장한 존에게 레스트레이드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제가 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감실의 통로가 열렸다. 한 쪽 벽은 견고한 벽돌로 꽉 짜여 있었고, 다른 쪽에는 수감실이 연이어 놓여 있는 구조였다. 쭉 걸어가면서 존은 다른 죄수들을 관찰했다. 동공이 풀린 채로 실실 웃는 남자, 우울하게 웅크리고 있는 남자를 거치자 다음 방에서는 쥐새끼처럼 생긴 남자가 그를 발견하고 창살에 매달려 헥헥댔다.

 

 "계집 냄새가 난다..."

 

 천박한 말을 하는 남자를 외면하고 계속 걸어갔다.
 바로 다음 방에서 한 남자가 똑바른 자세로 선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창백한 얼굴에 검은 곱슬머리의 남자. 셜록 홈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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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