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셜록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사건 파일을 읽었을 텐데. 이 서류에 다 들어있어."
 "설명해 봐요."

 

 셜록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키웠다.

 

 "첫 번째 원칙은 단순함이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따르면 사물에 본질에 접근하라고 했지. 그 친구가 뭘 했는지 생각해 봐."

 

 존이 말했다.

 

 "여자들을 죽였습니다."

 

 셜록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부차적이야. 그는 과연 살인을 통해서 뭘 보상받으려 한 걸까?"

 

 존은 서서히 라일리 박사가 이 곳으로 와서 그와 셜록의 대화를 방해하지나 않을 까 걱정되었다. 그는 좌우로 왔다갔다 하며 말했다.

 

 "분노, 사회적 용인, 성적인 좌절감..."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는 존에게 셜록이 말했다.

 

 "그건 탐욕이야. 그게 그의 본성이지."

 

 셜록은 존이 안절부절하는 것을 외면하며 느릿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탐욕의 시작은 뭘까? 대상을 물색하나? 말해봐."
 "아뇨...그냥-"
 "그래, 일상에서 본 것을 탐하지. 당신의 몸에 쏟아지는 시선처럼, 당신의 눈도 탐욕의 대상을 쫓지."
 "맞아요, 그럼 어떻게-"

 

 존이 황급히 셜록의 다음 말을 끌어내려했다. 셜록이 말했다.

 

 "아니, 이젠 당신 차례야. 어쩌다 최전선에서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된 거지?"
 "셜록, 이젠 시간이 없습니다."

 

 존의 다급하게 부탁했으나 셜록은 요지부동이었다.

 

 "시간은 상대적이야. 당신의 유일한 기회를 날리지 말라고."
 "나중에-"
 "아니! 난 듣겠어. 지금 당장. 제대 두 달 전 케네스가 전사하고, 최전선으로 갔지. 그 다음에는?"

 

 셜록이 강하게 말했다. 존은 포기하고 그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냥 부상당했을 뿐입니다."
 "아니, 이유가 있었겠지. 정확히 언제였지?"
 "낮이었어요."
 "뭘 하고 있었나?"
 "그땐...교전 중이었죠. 우리 편이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방어선이 무너지고...난전이 벌어졌습니다."
 "당신은 그때 어떻게 했지?"
 "처음엔 싸웠습니다. 하지만 적군은 단단히 마음먹고 온 듯 싶었죠...수적으로도 열세, 화력도 밀렸습니다."
 "그래서 달아났나?"
 "아뇨, 우리 부대에 속한 사람 중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어요. 다들...서로 도망가라며 격려했습니다."
 "계속 얘기해봐."
 "아무래도 지원 요청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중령님이 말씀했습니다. 이미 통신 장비도 쓸모없어진 지 오래였으니까 누군가는 여기서 살아나가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며 절 보냈죠. 그렇지만 나는 싸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제가 가까스로 지원군을 데리고 온다 하더라도, 그 상태라면 다들 이미 죽어있을 가능성이 농후했으니까요. 게다가, 그들과는 서로의 생명의 은인이었으니까, 죽을 때도 같이 죽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그러나 중령님의 명령을 받고 혼자서 후퇴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적군에서 후퇴하는 저를 발견했나봅니다. 정확히 저를 향해서 총알이 날아왔습니다. 저는 눈을 감았죠. 이만하면 만족스럽게 싸웠다 싶어서. 그런데...눈을 떠보니 중령님이 절 대신해서..."

 

 존은 손을 깍지 낀 채 고개를 숙였다.

 

 "그게 끝입니다."
 "그래서 홧김에 싸우다가 다친건가?"
 "맞습니다."
 "아직도 악몽을 꾸나? 어둠 속에서 깨어나면 중령과 케네스를 죽였던 총성이 들리나?"
 "네."
 "캐서린을 살려내면 모두 끝날 것 같은가? 악몽 속에서 총성을 듣는 것이."

 

 셜록의 집요한 물음에 존은 멍한 눈으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말했다.

 

 "몰라요, 모르겠습니다."

 

 저편에서 구둣굽이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쪽을 바라보며 셜록이 말했다.

 

 "당신도 라일리 박사를 잘 알겠군."
 "셜록, 당신 차례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경찰 두어명이 존을 끌고 철창에서 멀어져갔다. 존은 셜록 쪽을 필사적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이름을 말해요!"
 "용감한 존, 총성이 멎으면 알려줘."
 "이름을 말해줘요!"
 "존."

 

 셜록이 존에게 사건파일을 들고 말했다.

 

 "사건 파일이야."

 

 철창 밖으로 사건 파일을 내미는 셜록을 본 존은 단번에 자신의 양팔을 잡고 끌고가던 경찰 두 명을 뿌리치고 달려와 파일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셜록은 파일을 내민 손가락을 곧게 뻗어 존의 손가락을 쓸었다.

 

 "잘 가, 존 왓슨."

 

 셜록은 파일을 놓아주었고, 존은 다시 입구 쪽으로 끌려갔다.

 

*

 

 셜록과 존이 헤어진 그 날 밤, 셜록은 라일리 박사에게서 훔친 펜촉으로 수갑을 해제하고 철창을 탈출했다. 탈출 과정에서 경관 둘을 사살했으며, 감시망이 뚫린 원인은 빠르게 정상화되지 못한 전자 감시 시스템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종적은 묘연했다.

 

*

 

 "그가 절 찾아오진 않을 겁니다."

 

 셜록의 탈옥 소식을 전해준 마이크로프트의 질문에 존은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설명하기는 힘듭니다만..."

 

 존은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을 살폈다. 항상 빈틈이 없고 차분하던 그의 안색이 오늘따라 피곤하고 까칠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이제 다 끝나버린 건가..."
 "국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존이 말했다. 마이크로프트는 말만이라도 고맙다는 듯 손을 살짝 움직였다.

 

 "놈을 잡는데 필요한 건 여기 다 있다고 했는데..."
 "그는 많은 말을 했지."

 

 희망이 없어보이는 마이크로프트와는 달리 존은 사건 파일을 짚으며 말했다.

 

 "분명 여기에 단서가 있을 겁니다."

 

*

 

 빈 세미나실을 빌린 존은 그 안에서 셜록이 건넨 사건 파일을 하나하나 늘어놓으며 헤집고 있었다. 사건의 발생지, 시체의 발견 지점이 표시된 지도가 보였다. 지도에는 셜록이 쓴 글씨가 적혀있었다.

 -장소를 무작위로 고르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는군. 서투른 거짓말쟁이의 거짓말처럼.

 

 '애쓴 흔적이라면 무슨 뜻이지?'

 

 그렇다면, 무작위가 아니라 패턴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면 컴퓨터가 이미 찾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강바닥에 가라앉은 하나만 예외였다. 프레드리카 허드슨. 첫 번째 희생자였지만 발견은 세 번째였다. 왜냐하면...떠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셜록이 말한 첫 번째 원칙은 '단순함'이었다. 그 남자의 감정 동기는 '탐욕'. '탐욕'의 시작은 본 것을 탐하는 것에서부터.
 그렇다면-'차일드'는 그녀를 자주 봤었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희생자들은 모두 사립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프레드리카도 그 중에 한 명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프레드리카 허드슨의 학교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

 

 프레드리카 허드슨이 다니던 학교는 세인트 고야드 프라이빗 하이스쿨로, 기숙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역사가 아주 오래된 학교는 아니었던지라 비교적 타 기숙 사립 학교에 비해 출입 규정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존은 이 학교의 학생들과 인터뷰를 나누는데 매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아닌 온실 속의 난초처럼 세상 물정 하나 모르고 자라온 여학생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학교 정문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그를 보고 수군수군거리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던 학생들은 수적 우세에 놓여 있다는 점을 빌어 그를 노골적으로 구경하기 시작했고, 여자 다루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던-이래뵈도 존 왓슨은 무려 세 대륙의 여인들을 섭렵해왔던 몸인 것이다-존은 여학생들의 공세에 밀려 번번한 질문 한 마디 못해보고, 급기야는 헤어진 여자친구 사라를 불러오는 편이 수사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때 수 린 야오라는 중국 대사의 영애가 어렴풋이 흘린 말이 없었다면 수사는 진전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 애는 재봉에 열을 올렸었죠."

 

 수 린 야오의 말에 존이 물었다.

 

 "허드슨 양은 재봉에 관심이 많았군요. 그렇다면 그 관심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친구도 필요했을텐데요."

 

 수 린 야오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 애랑 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어요. 그저 급식을 같이 먹었던 사이일 뿐이라서..."
 "야오 양."

 

 존이 말했다.

 

 "당신의 말이 현재 납치당한 터너 양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가 될 지도 모릅니다. 힘드실테지만 천천히 생각해봐 주세요."

 

 그녀는 존의 부탁에 잠시 기억을 찬찬히 떠올리는 듯 했다. 아직 영어가 서툰 그녀는 존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전을 잠시 뒤지더니 더듬더듬 말했다.

 

 "프레드리카는...주말마다 외출 허락을 받아서 시내로 나갔죠. 때마다 재봉에 대한 자문을 누군가에게 구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애가 시내에서 남자친구를 사귄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으로 프레드리카에게 많은 질문을 했지만...그 애 말은 좀...뒤죽박죽이었어요. 누군지 설명만 조금 해주었지만 설명하는 걸 듣고 있으면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모르겠어서, 몇 번 물어본 후에는 그냥 더이상 궁금함을 갖지 않게 되었어요."
 "여자인지 남자인지조차 모르겠다는 건 무슨 뜻이죠?"

 

 존의 질문에 수 린 야오는 난처한 기색을 띠었다.

 

 "추궁하는 게 아닙니다. 음...허드슨 양이 그 사람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혹시 기억이 나시나요."
 "...금발에 백인. 그렇게 들은 것 같아요. 상냥하고 키가 크다고 했을 때는 당연히 남자겠지 싶었는데, 언젠가는 그 사람을 미스 립먼(Ms. Lipman)이라고 불렀어요."

 

 바로 그 사람이다.
 직감이 존의 뇌리를 후려쳤다. 수 린 야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 감사의 인사를 한 후에 존은 곧바로 마이크로프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홈즈 국장님?"
 "존, 어쩐 일인가?"
 "범인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범인은 여자의 피부로 옷을 만들어 입으려고 가죽을 벗겨왔던 겁니다. 바느질에 아주 능숙한 재봉사가 틀림없어요."
 "존?"
 "몸집이 큰 여자를 골라, 한동안 굶긴 다음 피부가 늘어지면-"
 "존."

 

 마이크로프트가 존의 말을 끊었다.

 

 "놈이 누군지 알아냈어. 지금 경찰 병력을 출동시켰네."

 

 존이 당황하여 물었다.

 

 "반가운 소식이군요. 한데 어떻게..."
 "존스 홉킨스에서 나온 이름을 전과 기록과 비교해보았어. 용의자의 이름은 제이미 검. 존 그랜트라는 가명도 쓴다고 하더군."

 

 마이크로프트가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셜록은 이름에 대해서만 거짓말을 했어. 들어보게나. 2년 전의 세관 기록을 보니 수리남에서 밀반입한 나방 유충이 압수되었다가 다시 그가 돌려받았다고 되어있더군."
 "범인의 거취는 어디입니까?"
 "자네가 그 곳에서 여기로 오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네. 체포 작업에 동참시키지 못하게 되어 아쉽지만, 기소시키기 전에 허드슨과의 연관성을 더 파헤칠 필요가 있어."

 

 존은 자신의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싶어 약간 맥이 빠졌으나 마이크로프트가 간곡하게 부탁을 해 왔기도 하고 범인을 조금이라도 더 먼저 잡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죠."

 

 마이크로프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존..."

 

 그가 잠깐 망설이다 말했다.

 

 "자네 덕분이야. 다들 알고 있어. 적어도...난 알고 있다네."

 

 자존심이 강한 마이크로프트가 이런 소리를 하다니, 존은 약간 놀라면서도 얼굴에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홈즈 국장님."
 "내게 감사하지 않아도 되네. 그리고 앞으로는...딱딱하게 국장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둘만 있을 때는 마이크로프트라고 불러도 되니까."

 

 존은 약간 얼굴이 붉어져 오는 것을 느끼며 마이크로프트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조금 가벼워진 기분으로 그는 시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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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