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남자는 우물 안의 소녀에게 두레박을 통해 로션 병을 주었다. 강아지를 안고 쓰다듬으며 그가 자못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킬 때마다 로션을 발라."

 

 소녀는 엉엉 울면서 말했다.

 

 "몸값은 원하는 대로 다 줄거예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어대는 소녀를 바라보며 남자는 다시 말했다.

 

 "로션을 안 바르면 물벼락을 맞을 거야."

 

 여성적인 말투다. 그의 품 안에 안겨있는 강아지가 그의 말에 동조하는 왕 하고 한 번 짖자 남자가 몹시 귀엽다는 듯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물을 뿌리자꾸나."

 

 남자의 태도에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순응했다.

 

 "알았어요..."

 

 소녀는 연신 콧물을 훌쩍거리며 남자가 시키는 대로 로션을 발랐다. 남자는 그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살펴보다가 소녀가 로션을 다 바른 후에 다시 두레박을 내려보냈다. 소녀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보내주기만 하면 신고하지 않을게요."

 

 남자는 시끄럽게 소리치는 소녀에게 욕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엄마는 상원의원이예요. 그건 몰랐을 거예요."
 "로션을 바구니에 담아."

 

 소녀는 다시 엉엉 울며 말했다.

 

 "제발...집에 보내줘요. 집에 가고 싶어요."

 

 남자의 눈가가 파들파들 떨렸다. 간신히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그가 말했다.

 

 "로션을 담으란 말이야."

 

 소녀는 남자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자기 감정에 북받쳐올라 더욱 시끄럽게 울면서 말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를 보게 해줘요...제발 보내주세요..."

 

 남자가 가늘게 꾸며낸 목소리를 집어치우고 거칠게 소리쳤다.

 

 "어서 담지 못해!"

 

 화들짝 놀란 캐서린은 떨리는 손으로 로션을 두레박에 집어넣었다. 남자는 두레박을 끌어올렸다. 두레박에는 조명이 달려 있었다. 소녀는 훌쩍거리는 것을 멈추지않으며 두레박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벽에는 누군가가 손톰으로 박박 그은 듯한 손자국이 나있었다. 손자국은 회갈색의 벽과 달리 선명하고 진한 갈색이었다. 소녀는 그것이 피가 아니길 간절히 바랬다. 두레박의 조명을 따라가던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이 뿌리째 구덩이의 벽에 박혀 있었다.
 캐서린은 거의 발작적으로 울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셜록의 전신을 구속구로 감고, 철창처럼 생긴 마스크를 씌운 키티 라일리 박사는 셜록의 감방 침대에서 반쯤 누운 자세로 셜록에게 조롱조로 말했다.

 

 "아직도 해변을 걸으며 새를 볼 생각을 한단 말이야?"

 

 존이 가져다준 제안 사항이 담긴 서류를 펼쳐보던 라일리는 서류철을 탁 소리 나도록 덮으며 말했다.

 

 "꿈 깨셔."

 

 셜록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시선에 일말의 미동도 없었다.

 

 "마리 터너 의원은 전혀 모르고 있던데? 당신은 속은 거야."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향해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그렉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이 처음으로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부터 주욱 셜록 홈즈의 전담 간수였다. 전담 간수이자 대변인의 역할 까지 맡을 정도로 그는 셜록 홈즈에게 묘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 다른 간호사, 의사, 간수들 중 셜록 홈즈에게 험한 꼴을 당한 사례도 간간히 있었지만 레스트레이드는 그들은 사실 그래도 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셜록 홈즈가 죄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멸시하고 지나치게 무례하게 대했다. 확실히 셜록 홈즈는 범죄자였지만, 그래도 그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게다가 그는 범인이 상상하지 못하는 엄청난 지능의 소유자다. 그런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 대체 어떤 사람을 존중하란 말인가? 레스트레이드는 그렇게 셜록 홈즈를 최대한 존중하고 예의바르게 대했다. 셜록 홈즈도 그런 그가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은 듯 종종 레스트레이드를 신경 써주기도 했다.
 지금도 레스트레이드는 라일리 박사가 셜록에게 하는 과한 언사에 마음이 상했고 조금 걱정이 되었다.
 라일리 박사는 그런 레스트레이드를 성가시다는 듯 보더니 말했다.

 

 "밖에 나가 있어. 문은 닫고."

 

 마지막으로 셜록을 한 번 쳐다본 레스트레이드는 라일리 박사의 험악한 얼굴에 어쩔 수 없이 수감실을 나갔다. 그런 그에게 셜록은 안타깝다는 듯 작게 속삭였다.

 

 "...레스트레이드..."

 

 레스트레이드가 나가자 라일리 박사는 몸을 일으키며 즐겁게 말했다.

 

 "터너 의원과의 협상은 내가 다시 초안을 잡겠어. 물론, 나한테 유리해야지. '와일드 차일드'의 본명을 대고, 여자애가 살아난다면 산자락에 있는 수용소로 보내주지. 나도 여기 너무 오래 있었으니 승진도 하는 겸 같이 가도록 해야지."

 

 마치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한 듯 평온하게 숨쉬는 셜록에게 라일리가 살짝 열받은 목소리로 대답을 재촉했다.

 

 "대답해보실까?"

 

 셜록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수틀리면 여기서 절대, 절대로 못 나가. '와일드 차일드'는 누구야?!"

 

 셜록은 라일리 박사에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움푹 들어간 이불자락으로 아주 아주 천천히 눈을 움직였다. 거기에 라일리가 떨어뜨린 펜이 보였다. 아주 약간, 눈이 커졌다가 다시 눈을 감은 셜록이 입을 열었다.

 

 "이름은 루이스."

 

 그녀가 해냈다는 듯 얼굴이 밝아졌다.

 

 "나머지는 의원과 직접 만난 자리에서 말하겠다. 나도 조건이 있거든."

 

 그녀는 황급히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며 자리를 떴다.

 

 "-그래, 출발 준비 시켜."

 

 셜록은 침대 위에 그대로 자리한 펜을 향해 고정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그 시각 마이크로프트의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마이크로프트, 셜록 홈즈가 다른 곳으로 이송되네."

 

 마이크로프트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다가 허리를 바로세웠다.

 

 "이송?"
 "터너 의원의 이름으로 거짓 약속을 했었나?"
 "그래, 일종의 모험이었네만."
 "그녀는 화가 많이 났어. 법무성 사람이 나와 있는데 바로 인계를 바라는군."

 

 몇 마디 더 나누어보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는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

 

 셜록은 전신이 강력하게 구속된 채로 마스크까지 쓴 채로 어딘가로 운반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철제 침대구조에 강하게 묶인 상태로 침대 전체가 일으켜세워진채 남들이 밀어주어야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를 향해 두 명의 경찰이 다가오더니 건성으로 자기 소개를 했다.

 

 "난 보일 경위, 이쪽은 홉스 경사요. 당신 행동 여하에 따라 대우가 많이 달라질 거요."

 

 그렇게 말한 경위는 셜록 홈즈 옆에 서있던 라일리 박사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박사님, 여기 서명해주시죠."

 

 키티 라일리는 서명을 하기 위해 펜을 찾아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항상 갖고 다니던 펜이 보이지 않았다. 살짝 인상을 쓰며 주머니를 다시 뒤지는데 경사가 자기가 갖고 있던 펜을 내밀었다.

 

 "제 걸 쓰시죠."

 

 한참 서명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터너 의원과 경호원, 그리고 몇몇 다른 이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터너 의원이 셜록 홈즈와 약간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키티 라일리는 귀한 애완동물 전시장에 나온 애견의 주인처럼 과시하는 듯한 태도로 터너 의원에게 말했다.

 

 "터너 의원님이시군요. 이쪽은 셜록 홈즈입니다."

 

 마리 터너 의원은 그녀의 과시와 아양이 뒤섞인 태도를 안중에 둘 여유가 없는 듯 했다. 그녀는 셜록을 보면서 말했다.

 

 "홈즈씨군요."

 

 그녀는 수심에 잠겨 있었지만 자세를 꼿꼿이 하고 부은 눈과 눈물자국도 최대한 가리는 등의 우아함을 발휘한 듯 했다. 그녀는 비서에게서 몇 장의 종이를 건네받아 셜록 쪽으로 내밀었다.

 

 "당신의 권리를 보장하는 진술서를 가져왔어요. 서명하시기 전에 읽어보세요."

 

 셜록은 서류를 멀뚱히 보았고-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현재 전신이 구속되어 있는 상태였으니까-라일리 박사가 대신 그것을 받아들었다. 라일리 박사가 그것을 셜록의 눈 앞에 보이려는데 셜록이 말했다.

 

 "이런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군요. 시간은 이미 경찰들이 많이 잡아먹었으니까. 따님이 무사하기만을 빌 뿐입니다. 그나저나...이런 일은 서로간의 신뢰가 생명인 법이죠."

 

 제안 사항이 적힌 서류를 흘깃 쳐다본 셜록은 다시 의원을 쳐다보았다. 의원은 말했다.

 

 "믿어도 좋아요."

 

 셜록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와일드 차일드'의 본명은 루이스 프렌드(Louis Friend). 앤더슨의 소개로 2003년 봄에 한 번 만났는데 둘은 연인이었지만 앤더슨은 겁에 질려 있었소. 루이스가 사람을 죽이고 가죽을 벗겼으니까."

 

 떨고 있는 의원을 대신하여 옆에 서있던 비서가 말했다.

 

 "놈의 주소와 인상착의는?"

 

 셜록은 그의 말은 싹 무시하고 의원만을 보면서 말했다.

 

 "있잖습니까, 캐서린에게 젖을 먹였나요?"
 "뭐라구요?"

 

 의원은 자신의 귀에 들려온 그의 말을 의심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셜록은 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모유를 먹였나요?"

 

 비서가 표정이 굳은 채 말했다.

 

 "이거 보시오."

 

 그러나 의원은 단서가 될까 싶은 마음에 비서가 한 발 앞으로 나서는 것을 저지하고 셜록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그랬어요."

 

 셜록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유두가 딱딱해졌겠군."

 

 의원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망할 자식!"

 

 그녀는 돌아섰다. 라일리 박사는 셜록이 상원의원을 모욕하는 모습을 보고 벙쪄있었다. 셜록이 의원에게 빠른 속도로 말했다.

 

 "절단된 다리도 가려움을 느끼는데 따님이 도마 위에 오르면 어느 부위가 가려울까요?"

 

 그녀가 비서에게 지시했다.

 

 "저 자식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셜록이 의원의 뒤에 대고 말했다.

 

 "175센티미터, 건장한 체격, 81킬로그램. 금발에 푸른 눈이고 서른 다섯살 가량이죠. 어디 사는 지는 모르오. 현재로선 그게 전부지만 생각나면 더 알려드리지."

 

 의원은 셜록을 돌아보고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다시 몸을 돌려 비서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딘가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뒤에 대고 다시 셜록이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셜록이 의원에게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입고 계신 옷이 참 예쁘군요."

 

*

 

 언론은 셜록 홈즈와 마리 터너 상원의원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오늘의 만남으로 납치범을 체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라일리 박사는 어지간히 언론의 주목에 목말라있던 듯 벌써 서너 군데의 신문사, 잡지사와 인터뷰 약속을 잡은 듯 했다.
 존은 쏟아지는 관심에 들떠있는 라일리 박사를 구슬려 셜록의 자필 악보를 얻어내어 그를 만나러 갔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내내 경비를 맡은 사람들은 말했다.

 

 "규칙은 알고 계시죠?"
 "네, 몇 번 만나보았습니다."

 

 존은 셜록이 갇혀 있는 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5층 건물의 최상층에서 반경 8미터의 정사각형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주변에는 경비 책임자들의 시야 확보를 위한 것인지 가구 한 점 없었다.
 그는 5층 건물의 최상층에서 반경 8미터의 정사각형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존이 철창 가까이 다가가도 그는 입구 쪽에서 등을 돌린 채 미동도 없었다. 검은 곱슬머리, 곧게 핀 등, 단정하게 여민 죄수복은 여전했다. 도도하게 도사리고 있는 그 태도는 마치 사로잡힌 야생 사자같았다.

 

 "어서 와."

 

 그가 문득 말했다. 무감정하고 단조로운 어조였다. 여전히 그는 등을 돌려 존을 바라봐주지 않는다. 존은 그를 속인 죄책감이 자신을 콕콕 찌르는 것을 느꼈다.

 

 "악보를 가져왔어요."

 

 철창 가까이에 악보를 내려놓았다. 셜록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사려가 깊으시군."

 

 그리고 회전의자를 살짝 돌리며 존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니면 내 형의 지시로 마지막 아부를 하러 온건가?"

 

 존이 말했다.

 

 "내 의지로 온 겁니다."

 

 셜록은 존의 눈에서 셜록을 속인 죄책감과 미안함을 읽었다. 참으로 성실하고 선량한 남자야, 라고 생각하며 셜록은 어쩐지 그에게 들던 분노가 사그라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셜록은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며 오히려 존을 비꼬았다.

 

 "남들이 보면 사랑에 빠진 줄 알겠어."

 

 셜록은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며 말했다.

 

 "뭐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캐서린이 가련하군."

 

 셜록은 입으로 틱, 톡, 틱, 톡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내었다. 존은 그런 그에게 대들듯 말했다.

 

 "루이스 프렌드(Louis Friend)의 철자를 애너그램화하면, 황철광(Iron Sulfide)입니다.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그건 바보들의 금(Fool's gold)으로 유명하죠."

 

 셜록은 살짝 존을 외면하며 말했다.

 

 "당신은 영 재미란 걸 몰라."

 

 존은 셜록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진실을 말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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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