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존마/중편/양들의침묵AU

 

 "안녕."

 

 그는 대뜸 반말로 인사했다.
 키가 껑충 크고 호리호리해서 더욱 말라보였다. 허름한 죄수복을 입고 있는데도 그에게는 무언가 신비한 느낌이 있었다. 마이크로프트처럼 그는 어딘지 모르게 오만해보이는 인상도 지니고 있었다. 존은 그에게 인사했다.

 

 "존 왓슨입니다. 당신과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왔죠."

 

 셜록 홈즈는 몇 초 간 존을 훑어봄으로써 모든 것을 파악한 것처럼 보였다.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가 말했다.

 

 "우리 형이 보냈군."
 "맞습니다."
 "신분증 좀 볼까?"
 "그러도록 하죠."

 

 존은 거듭 들은 규칙-창에서는 멀리 떨어지셔야 합니다-을 상기하며 자신이 선 위치에서 신분증을 들어보였다. 그가 말했다.

 

 "좀 더 가까이."

 

 팔을 길게 뻗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더 가까이."

 

 몇 발자국 내딛자, 그가 전면 유리창의 가까이로 접근했다. 그는 투명한 빛깔의 회색 눈으로 존을 잠시 관찰하더니, 곧바로 신분증을 샅샅이 뜯어보았다.

 

 "다음 주에 시효 만료라. 정식 요원이 아니군."

 

 그가 차가운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윙크를 했다.

 

 "훈련생입니다."

 

 존이 대답했다. 그가 모욕이라도 당한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나'에게 훈련생을 보내?"

 

 은근히 도발하려는 의도를 간파하고 존은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네, 아직은. 여기 온 건 배우러 온 겁니다. 제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판단하십시오."

 

 흠, 하고 그가 소리내었다.

 

 "아주 영악하군. 왓슨 박사."

 

 그가 약간 웃던 표정을 거두고 말했다.

 

 "앉아요."

 

 존이 그의 부탁-지시였나?-에 준비되 있던 철제 의자에 앉자, 그가 물었다.

 

 "한 번 들어볼까. 옆 방에 있는 믹스-철자 엑스가 두개 있는-가 뭐라고 했지?"

 

 그는 존,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 존은 말했다.

 

 "'계집 냄새가 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군. 내겐 나지 않는데."

 

 그렇게 말한 그는 위쪽의 통풍 구멍 쪽을 향해 코를 향하고는 킁킁거렸다.

 

 "에비앙 스킨 크림을 쓰는군."

 

 정확했다. 그는 한 번 더 코를 킁킁거리고는 말했다.

 

 "가끔, 아주 가끔 불가리 옴므 향수를 뿌리지만, 오늘은 안 뿌렸고."

 

 자료를 찾아보면 내가 쓴 향수 감별법에 대한 논문을 찾을 수 있을 거야-라고 그가 중얼거렸다.
 존은 그의 수감실 안쪽을 보고 지적했다.

 

 "저 악보들,-직접 작곡하신 겁니까?"

 

 그가 책상 위에 놓인 악보들 중 하나를 집어들고는 쓰다듬었다. 가장 손때가 많이 묻은 악보였다.

 

 "난생 처음 뭔가를 느꼈던 여자가 죽었을 때를 생각하며 작곡한 거지."
 "작곡 실력이 상당하신가 보군요, 홈즈씨."

 

 그가 손을 내저으며 셜록이라고 불러요, 라고 말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기억뿐이지. 음악은 추억을 떠올리는 데에 아주 좋은 매개고."

 

 창 가까이에 서서 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은근한 압박을 가하던 셜록과의 대화를 더이상 끌어나가기가 어려워진 존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질문서에 대한 당신의 답변이 필요합니다만."
 "오, 이런...그러면 안되지."

 

 그가 다소 실망했다는 투로 말했다.

 

 "지금까지는 좋았는데.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굴면서 말이야. 믹스의 말까지 인정하며 서로 신뢰를 쌓았잖아. 질문지 따위의 얘길 하면서 나를 지루하게 만들면 안되지."

 

 마치 애를 다루는 듯한 셜록의 태도에 다소 기분이 상한 존은 조금 딱딱하게 말했다.

 

 "싫든 좋든 일단 보셔야 합니다."
 "그래, 마이크로프트가 꽤 바쁜 모양이지. 훈련생을 보낼 정도면. 지금쯤 신경 치료나 받고 있을 게 뻔하지만 말이야."

 

 그가 비아냥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와일드 차일드'를 잡으려면 그렇기도 하겠지. 왜 호칭이 '와일드 차일드'인지 설명해주겠나? 언론에서도 쉬쉬하는 거지만."

 

 존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유명한 하이틴 영화에서 비롯된 거죠. 명문 사립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들만 노려 살갗을 벗겼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왜 가죽을 벗긴다고 생각하지? 왓슨 박사. 그대의 통찰력을 보고 싶군."

 

 존 또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흥분제죠.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은 기념품을 간직하길 좋아하니까요."
 "난 아닌데."
 "그래요. 당신은 예외입니다. 왜냐면 다른 이를 이용하여 피해자들을 죽였으니까요."

 

 그가 눈을 한 번 깜박였다.

 

 "그걸 이리 줘봐."

 

 갑자기 차분해진 셜록의 태도에 존은 약간 당황하면서 배식 창구로 질문지를 넘겨주었다. 그걸 받아든 그는 존더러 구경하라는 듯 종이를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보았다. 존을 향해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보인 그는 질문지를 자세히 보더니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이런, 왓슨 박사. 이렇게 무딘 질문으로 날 분석하려 든건가?"

 

 그 목소리에는 분노의 기색마저 엿보였다. 받아온 질문지를 그대로 셜록 홈즈에게 넘긴 것 뿐인 존은 당황하여 말했다.

 

 "아뇨, 전-"
 "-꿈이 너무 크군. 내 눈에 당신이 어떻게 보이는 줄 아나? 값비싼 신발에 싸구려 외투며...내겐 촌뜨기처럼 보여. 때 빼고 광은 냈어도 품위가 없어. 영양 상태는 좋아 보이지만 가난한 백인 집안 출신이고, 군대식의 억제된 억양이 자기도 모르게 묻어나. 중동 전쟁에 파견되었던 군인이었나? 제대 군인 숙소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군. 다리는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절고 있어. 하지만 심리 치료사가 말한 대로 전쟁에 대한 공포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걸까? 아니지, 아니야...-넌 전쟁을, 격전지에서나 느낄 수 있는 목숨을 담보로 한 스릴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야."

 

 존은 셜록의 속사포처럼 쏟아져나오는 그에 대한 혹평과, 그가 직시하고 싶지 않던 그의 트라우마에 대한 진실을 듣고는 아주 잠시 표정이 굳었다. 그는 무례하지 않으려 억지로 웃음을 지어내며 대답했다.

 

 "아시는 게 많군요. 하지만, 스스로를 판단할 수 있습니까? 자가 분석과 성찰의 결과를 써주시는 게 나을 듯 하군요."

 

 존은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했다.

 

 "아마 그러기가 두려우신가 보군요."

 

 셜록은 존의 반격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배식 창구로 질문지를 다시 넘겼다.쾅 하고 철제 트레이가 부딪히는 소리에 존은 흠칫 했다. 셜록은 얼음장같은 표정으로 존을 응시하며 말했다.

 

 "옛날에, 어줍잖게 나를 조사하려던 형사를 말이지-아마도 이름이 도노반이었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줬지."

 

 단순히 겁 주려는 의도가 아닌 순수하게 사실만을 말하는 그에게 더욱 소름이 끼친 존의 동공이 약간 확장되었다. 셜록은 동화책을 읽기를 그친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말했다.

 

 "돌아가."

 

 뒷짐을 지고 선 그를 등지고 존은 약간 비틀대며 걸었다. 비록 두꺼운 유리창 너머에 서 있었지만 극심한 공포가 그를 덮쳤기 때문이다.
 멍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걷던 그에게 뭐라고 떠들어대던 믹스가 방금 사정한 것이 분명한 끈적한 정액을 손에 담아 던졌다. 기겁을 한 존은 황급히 얼굴에 튄 정액을 닦아내었지만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믹스의 기행을 시작으로 그 옆의 수감실, 또 그 옆의 수감실의 죄수들이 전부 발작적인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셜록 홈즈가 존에게 소리쳤다.

 

 "왓슨 박사! 돌아와! 존 왓슨!"

 

 반사적으로 그에게 달려가자 그가 빠르게 말했다.

 

 "아까는 실례가 많았소."
 "그럼 이걸 작성하세요!"
 "그건 싫지만 당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기회라뇨?"
 "승진의 기회지 뭐겠어. 자신을 돌아보라고. 아주 깊숙한 곳까지. 그리고 내 의뢰인이었던 미스터 모팻을 찾아. 믹스가 또 장난을 시작할 거야. 어서 가!"

 

 마지막 말을 거의 포효하듯 존에게 외친 그의 기세에 밀려 존은 넘어질 듯 빠른 걸음으로 수감실 복도를 걸어나갔다. 문 앞까지 와서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

 

 수용소 건물 바깥으로 빠져나온 그는 기진맥진하여 비척거리며 차로 돌아갔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차 문을 열고 앉은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

 

 본부로 복귀한 그는 재활 훈련, 심리 상담, 체력 단련, 사격 연습 등에 몰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이크로프트가 그에게 준 셜록 홈즈에 대한 자료와 그리고 그의 능력으로 구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자료들을 정독했다.
 존이 얻을 수 있었던 정보에서 유추한 셜록 홈즈라는 인간의 양상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뛰어난 관찰력을 통해 인물의 면면을 순식간에 파악하고, 가령 처음 만난 타인이라 할지라도 아주 조그마한 특징을 통해서도 그 사람을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몇몇 증언에 따르면 그는 '기억의 궁전'이라는 자신만의 추상적인 세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 방법을 통해 백과사전을 능가하는 양의 지식을 지니고 다닌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그의 팬덤 중의 일부는 '그는 이미 호모 사피엔스의 경지를 넘어섰다'라며 추앙하기까지 했다.
 도서실에서 관련 기사를 보고 있던 그에게 사서가 다가와 말했다.

 

 "국장 호출이야."
 "홈즈? 고마워."

 

*

 

 "존?"
 "네."
 "믹스가 죽었어."
 "...죽어요?...어떻게 말입니까?"
 "셜록과 이야기한 후 한참 울다가 혀를 깨물고 죽었다는군."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흐르자 마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존?"

 

 존은 정신을 차리고는 대답했다.

 

 "네, 듣고 있습니다. 그저...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재미로 한 짓이야. 구역질이 나는군...오늘 힘들었겠지만, 한 가지만 질문하지...'모팻'이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뭐 나온 것 있나?"

 

 존은 아까 전 적어둔 메모를 펼치며 대답했다.

 

 "체포되기 전 의뢰인에 대한 기록을 모두 파기해서 그런 자료는 없었지만, 그의 말 중에서 짚이는 데가 있어 조사해보았더니 교외에 창고가 하나 있더군요."

 

*

 

 창고 관리인은 불면 폭삭 꺼질 것같이 마르고 늙은 남자였다. 그는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31번 품목은 맡겨진 지 5년이 넘었는데, 보관비는 전액 선불이었고, 계약자는 미스터 스티븐 모팻이라오."

 

 존은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 보았으나 성과는 없었다.

 

 "이 장사는 프라이버시가 생명이니까."

 

 그런 말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좋습니다."

 

 존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 오래된 창고의 문을 여느라 용을 쓰며 말했다.

 

 "금방 끝날 겁니다."

 

 덜컹거리기만 하며 문은 열리지 않았다. 늙은 관리인의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기어들어갈 정도의 틈이 열렸다. 드문드문 녹이 슬어있는 철제 합판 상자를 끼우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창고 안으로 몸을 들여놓았다. 존은 문이 내려앉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쳐 관리인에게 문이 내려앉을 경우 전화를 걸어달라며 지국의 명함을 내미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열린 틈은 너무나 좁았다. 존의 발목 부분에 쇠가 삐죽이 튀어나온 부분이 걸리며 바짓단과 양말이 동시에 찢어졌고 발목에는 상처가 약간 깊게 난 듯 했다. 피가 조금 스며 나오는 것 같았지만 존은 개의치 않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먼지와 먼지가 내려앉아 희게 보이는 거미줄이 가득 끼어있었다. 안에 쌓여있는 물건들도 뒤죽박죽 질서없이 무작정 쌓여있었다. 박제, 서랍장, 싸구려 청동상 등의 잡동사니들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간 존은 천에 덮인 구형 차를 발견했다. 존은 천을 걷어내고 안에 손전등 불빛을 비춰보았다. 시험삼아 열어본 차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존은 뒷좌석을 확인했다. 목이 없고 저렴한 티가 나는 웨딩드레스가 입혀진 마네킹의 옆에 있는 책을 들춰보던 존은 멀리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허술해보이던 철제 상자가 결국 부서지고 문이 닫혀버린 것이 분명했다. 존은 관리인이 서둘러 지국으로 전화를 걸어주길 기도하며 다시 조사에 들어갔다.
 존은 일부러 가려놓은 것이 분명한 물체를 발견했다. 덮인 핑크색 커튼 천을 벗겨내자, 안에는 진한 화장을 한 남자의 머리가 포르말린에 절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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