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마레/고양이/리퀘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http://mirror.enha.kr/wiki/%EC%B4%9D%EB%A6%AC%EA%B4%80%EC%A0%80%20%EC%88%98%EC%84%9D%EC%88%98%EB%A0%B5%EB%B3%B4%EC%A2%8C%EA%B4%80

 

 

 나는 제 14대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 존이라고 한다. 비공식 직책이긴 하지만 영국 총리의 참모진 중 하나로서 현재 재임 중인 마이크로프트 홈즈 경과 함께 다우닝가 10번지 관저에 머무르고 있다.
 나 자신의 유능한 실력에 힘입어 재무부 장관의 보좌관에서 일국의 수상의 보좌관으로 전격 승진하게 된 나이지만, 최근에는 한 가지 골칫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야옹."

 

 바로 저 녀석 때문이다. 구석탱이에 웅크리고 앉아서 심드렁하게 야옹거리기나 하는 저 고양이녀석! 그따위로 나지막하게 가르랑거린다고 해서 누가 거들떠볼 줄 아는가보지! ...아니 뭐 나도 고양이이긴 하지만.
 그래, 난 고양이다. 내가 지닌 직책의 본 업무도 총리 관저에 숨어있는 쥐를 소탕하는 일이지. Chief mouser이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자세로 퍼질러앉아서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연신 그르렁거리는 저 고양이녀석이 문제라는 것이다. 노랑 태비에 예쁜 파란색 눈을 가진 나와는 달리 저녀석은 음침하게시리 온통 시커먼 털색을 지닌데다가 덩치도 나보다 훨씬 크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쥐가 눈 앞에서 뽈뽈거리며 달려다녀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경질당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나저나 고양이 주제에 쥐도 못잡아서 경질된 녀석이 왜 아직도 총리관저에 빌붙어서 호의호식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전관예우라나 뭐라나. 인간들은 별 쓸데없는 걸 다 챙긴다니까.
 게다가 이름도 누가 지었는지 괴상하기 짝이 없다. 

 

 "셜록."

 

 어느새 뒤까지 바싹 다가와서 제 이름을 속삭이고 유리알같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어슬렁거리는 저 음습한 행동거지를 보라. 제 이름 생각하고 있는 건 또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는지, 셜록이라고 불러 운운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말 그대로 멍멍이다(개같다는 말은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제일 심한 욕이라는 것을 참고하자). 매일같이 저러니 아홉개나 되는 고양이 목숨도 남아나지 않을 노릇이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온몸의 털을 빳빳이 세우고 캬옹 하고 신경질적으로 울어대고 말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현 영국의 수상 마이크로프트 홈즈 경이 들어왔다.

 

 "하하, 오늘도 사이가 좋구나."

 

 느물느물하게 웃는 홈즈 경이 얄밉다. 사이가 좋긴 개뿔! 아무리 인간들이 고양이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 상황이 사이가 좋은 걸로 보일 수가 있어!

 

 "네가 그렇게 백날 야옹거려봐야 저 늙다리 변태가 알아들을 거 같냐?"

 

 저 싸가지없는 말뽄새 좀 보소. 하여튼 셜록...하고 짜증스럽게 그르렁거리다가 문득 고개를 쳐들었다.

 

 "근데 누가 늙다리 변태라는 거야?"

 

 어느새 또 식빵자세를 하고 앉은 셜록이 집무실로 향하는 마이크로프트의 뒷모습을 향해 느릿하게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누군 누구야, 저 늙은이지."

 

 존의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더욱 커졌다. 그 모습이 몹시 귀엽다고 생각하며 셜록이 말을 이었다.

 

 "가끔가다 방문하는 런던 경시청 경위가 왜 찾아오는 건지도 모르지?"

 

 존의 입이 빠끔히 벌어지며 귀엽고 촉촉한 연분홍빛 혀가 언뜻 보였다. 입가에 돋아난 하얗고 가느다란 수염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셜록이 막타를 날리려는 순간 당사자가 뒤를 따라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홈즈 경. 이렇게 자꾸 부르시면 곤란합니다."

 

 레스트레이드 경위였다. 난색을 표하며 걸어들어오던 레스트레이드는 한참 야옹거리고 있던 두 고양이들을 보고 미소를 띠며 다가와 각자 한 번씩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갸르릉거리는 존과 역시나 귀찮은 듯 멀뚱하니 쳐다만 보는 셜록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야옹아 안녕? 하고 쫑알거리는 레스트레이드더러 얼른 들어오지 않고 뭐하느냐며 채근하는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가 들렸고 레스트레이드는 한숨을 푹 쉬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레스트레이드가 집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쾅 닫혔다.
 어쩐지 요란하고 단호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나서 존과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위화감 섞인 침묵도 잠시, 안에서 조근거리는 밀어가 새어나왔다. 셜록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은-그리고 본능적으로 조금 있으면 일어나게 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존은 패닉에 빠졌고 셜록은 티벳여우처럼 초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럼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떻게 신성한 일터에서!"

 

 존이 순진하기 그지없는 경악의 의미를 담아 야옹거리자 셜록이 흘낏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저 꼴 보기 싫어서 내가 쥐를 안 잡았던거지."

 

 그 말에 넋이 나가있던 존이 빼액 하고 날카롭게 야옹거렸다.

 

 "그렇다고 쥐새끼들이 돌아다니는 걸 내버려둔다는 게 말이 돼?"
 "그러면 경위가 싫어하거든. 따라서..."

 

 셜록이 고갯짓을 하며 가르랑거렸다.

 

 "저 안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짓거리도 일어나지 않는거고."

 

 존은 저도 모르게 귀가 쫑긋거렸지만 고양이 특유의 예민한 청각을 발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고개를 앞발 사이에 파묻었다. 그런 존을 바라보며 셜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털을 골랐다. 존은 재무부 장관 사옥에서 총리관저로 옮겨온 것이 잘한 일인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의심 섞인 눈으로 셜록을 슬쩍 쳐다보았는데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언제나처럼 거만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정하게 느껴지는 눈빛이다. 수컷고양이에게 같은 수컷이 얼마나 다정하겠냐마는. 그러고보니 저녀석 항상 야옹야옹거리며 시도때도없이 잘난체를 해대고 잔뜩 어지르기나 하고 밉상이 따로없지만 꽤 준수하게 생긴 것같...

 거기까지 생각하다 존은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요즘 한동안 암코양이 구경도 못했더니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발정기. 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애써 생각했다.

 

 '얼른 암컷고양이를 사귀어야겠다.'

 

 그리고 그런 다짐을 하는 존을 보는 셜록의 동공이 좁아지며 눈이 한층 밝게 빛났다. 앞으로 펼쳐질 존의 암담한 묘생(猫生)의 앞길을 밝히려는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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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

[셜록존]Domination

2013. 12. 13.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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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Gaze 上+下

2013. 12. 13. 02:18 from BBC Sherlock/단편

셜록존/집사물/약수위

 

 

Looking off to the side is the submissive response.

 

 

 "어서 오게." 

 

 마차에서 방금 내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정중하게 목례했다.

 

 "반갑습니다."

 

 가볍게 손끝만 잡는 악수를 하고 남자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자신보다 반 피트 정도 키가 큰 남자가 저택을 둘러보는 것을 못본 척하며 호기롭게 그를 끌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사용하지 않아 덧문이 닫힌 지 오래된 창이며, 손질이 되지 않아 쇠락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건물을 그에게 오래 보게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모순된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저택의 모든 것을 관리하게 될 집사에게 저택의 면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꼭...흠모하는 선생 앞에서 필사적으로 흠결을 감추려 애쓰는 순진한 여학생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다. 그때부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 되어 앞뒤가 맞지 않는 횡설수설을 늘어놓기를 몇 분, 남자가 앞으로 쓰게 될 방에 다다르고 나서야 그것을 멈출 수 있었다.

 

 "앞으로 여길 쓰면 되네."

 

 남자가 들고 있던 가방을 침대 옆에 내려놓자 그제야 남자가 자신이 저택 안을 보여주는 동안 계속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다녔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미, 미안하네...미처 생각지 못했어."
 "뭐가 말입니까?"

 

 양손에 든 가방을 차례로 옮기던 그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서생처럼 하얀 피부에 정갈한 미모의 청년의 물음에 그의 앞에 선 자신은 더욱 초라해지는 것같아 얼굴을 붉힌다.

 

 "가방을...들고 다니게 해서 말이네. 무거웠을 텐데..."

 

 남자가 딱 잘라 말했다.

 

 "어차피 제가 할 일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런 것에 마음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선을 긋는 듯한 태도에 조금, 마음이 아프다.

 

 "왓슨 씨는 제 주인님이니까요."

 

 미묘하게 누그러진 어조에 기뻐져 저도 모르게 말하고 말았다.

 

 "존. 존이라고 부르게."

 

 남자는 고개를 까딱 하더니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도 셜록이라고 불러 주십시오...존."

 

 남자의 묵직한 저음이 울렸고, 귓볼이 벚꽃색으로 조금 붉어졌다.

 

*

 

 의가사제대를 하고 손에 쥔 보잘것없는 돈으로 한량마냥 런던에서 한정없이 향락을 즐기던 몰락 귀족 존 왓슨이 난데없이 서섹스로 돌아오게 된 것은 그의 누님의 부고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해리엇 클라렌스. 자식도 변변한 친척도 그 외의 피붙이도 없는 그녀는 클라렌스 경이 일찍이 작고한 후로 홀로 저택을 지켜왔다. 여인의 몸으로 혼자서 넓은 저택을 예전의 모습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몹시도 외롭고 힘든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입관 직전에 간신히 도착한 존이 본 누이의 시신의 얼굴에는, 쾌활하고 볼이 통통했으며 남편과 금슬이 좋았던 그녀의 생전 모습이라곤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 창백하게 야위어 애처로울 정도로 마른 그녀의 모습은, 슬프다기보다는 무서웠다.
 그래서 일부러 새로운 집사를 모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생각에 잠겨 있던 존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질문의 답은 '아니다'였다. 런던의 풍속주점에서 흔히 먹고 마셨던 화려하고 기름지지만 속이 텅 빈 껍데기같은 음식들보다 형편에 맞는 간소하고 담백한 음식은 훨씬 맛이 있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는 듯 자신을 빤히 응시해오는 셜록의 푸른 눈을 넋을 잃고 응시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존이 황급히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존이 답지않게 깨작거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신의 옆에 시립해서 자신이 식사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셜록의 존재가 그 이유였다. 도저히 속내를 파악할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이 포크를 움직이는 모양이라던가 무엇을 골라서 입에 넣는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은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런 눈길을 온몸으로 무방비하게 받고 있으면서도 기분만큼은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마치 목을 알맞게 옥죄이는 넥타이를 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핥듯이 끈적하게 전신을 훑고, 빠져나갈 틈새라곤 없이 답답하고 집요하게 자신을 노리는 것처럼 닿아오는 푸른 눈의 시선을 분명하게 의식하면서도 아예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말하자면, 길고 긴 마인드 게임을 펼치는 것처럼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말랑한 오믈렛과 그 안에서 녹아내리는 치즈를 오물거리는 것, 신선한 샐러드와 그 위에 뿌려진 단단하고 고소한 아몬드를 씹는 것, 잘 익어 바알갛게 육즙이 배어나오는 고기를 먹기 좋은 모양으로 잘라 입 안에 넣는 것... 그 모든 과정에 셜록의 시선이 드레싱처럼 곁들여지고 있었다. 셜록의 시선을 음식과 함께 씹어삼키는 것같았다. 아니, 셜록의 눈이 자신을 먹어치운다는 표현이 더욱 옳았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며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이 흡수당하는 과정을 하루에 세 차례나 겪는다는 것은 몽롱하고도 이상한 행복감을 존에게 선사했다.
 불편하게 여겨야 마땅할 시선을 기분좋은 긴장감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자신은 미쳐도 단단히 미친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야지만,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를 원하는 욕심많은 자신을 겨우 억제할 수 있다.
 멈춘 시선은 여전히 미동도 없다. 식사를 계속했다. 부드러운 빛을 반사하는 은식기가 달그락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

 

 "마리는 오래 전에 죽었다네."

 

 존이 말했다.

 

 "장티푸스를 앓았지. 아주 길고 힘든 나날이었어. 연약한 이였지만 오래 버텨내주었는데... 그때문에 완쾌될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가진 순간 그녀는 편안하게 잠들었지."

 

 담담한 투로 하는 고백을 셜록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리고 군대를 갔지...아니, 그녀의 죽음 때문에 입대를 한 걸까. 지금은 잘 모르겠네. 전쟁터에서의 일들이 워낙에 인상이 깊었는지 그 이전의 일은 안개처럼 흐릿하다네. 그때의 안락한 일상은 마치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아."

 

 낙엽이 떨어지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존이 셜록을 향해 웃어보였다.

 

 "왜 내가 사용인이라고는 자네 하나만 둔 채로 이 대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것인지 그동안 궁금해했을 것같아서 말이네."

 

 한동안 침묵이 내리깔렸다. 셜록은 여느 때와 같이 차분한 시선으로 존을 바라보았다. 존은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며 말라비틀어진 낙엽이 날리는 것을 응시했다.
 줄곧 묵묵하게 자신의 말을 듣고만 있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첫날,"

 

 둔중하게 울리는 아름다운 목소리.

 

 "반지를 끼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셜록의 말에 존이 무의식적으로 약지를 매만졌다. 수수한, 아무런 장식이 없는 금반지였다. 생각해보면 마리는 십년도 더 전에 세상을 떠났다. 왜 아직도 이 반지를 끼고 있는 걸까. 고집일까. 오기일까. 그도 아니면 옛날에 대한 향수일까.

 존이 반지를 낀 손가락을 움츠렸다 폈다 하는 것을 셜록은 흘깃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일반적인 안주인들께서는 새로운 집사가 오면 꼭 맞이하러 나오시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집을 관리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그러나 안주인분께서는 제가 이 저택에 도착한 첫날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가 있죠. 병환때문이거나, 돌아가셨거나."

 

 냉정하고 침착한 분석이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제가 섣불리 입에 올릴 만한 사안은 아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허한 웃음을 토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살면서 저절로 알게 되었겠지."

 

 내 아내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의문문인지 평서문인지 모호한 어조의 말에 셜록이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존이 낮게 웃었다. 잠깐 동안 허허로이 웃던 그가 웃음을 그치고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예의가 바르지만...그와 동시에, 무례하기도 하군."

 

 셜록이 고개를 갸웃 하더니 물었다.

 

 "그래서, 싫으십니까?"

 

 존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답했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네."

 

 한 박자를 놓친 것마냥 셜록이 조금 늦게 대답했다.

 

 "다행이군요."

 

 다시 정적. 무거워진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존이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무엇보다도 땡전 한푼 없이 낙향한 몰락 귀족에게 있어서 집사를 고용하는데 그리 많은 선택지가 남았을 리도 없고 말이야."

 

 미소짓는 존을 쳐다보던 셜록이 옆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The new covenant

 

한 번은 물었다. 

 

 "뭐라도 좀 들지 않겠나?"

 

 식사 도중이었다.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평온하며, 셜록의 은밀한 시선과 존의 묵인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순조롭게 흘러가던 시간의 흐름은 갑작스런 존의 물음으로 뚝 끊겼고, 셜록은 시중들기를 멈추었다. 빠르지만 경박스럽지 않게, 본연의 우아한 기품을 잃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던 셜록의 하얀 소맷부리의 사각거림이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셜록의 얼굴에 미미한 이채가 잠시 어렸다 사라지는 것을 존은 놓치지 않았다.
 그가 눈썹을 까닥인다. 존은 그것을 약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웃음기 띤 시선과 셜록의 눈길이 마주쳤고 셜록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존의 속내를 낱낱이 읽어내려는 것처럼 약간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빤히 존을 바라보았고 느닷없이 시작된 그 눈싸움에 존이 서서히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을 드러낼 즈음 셜록이 입을 열었다.

 

 "요 며칠간 그걸 묻고 싶으셨던 겁니까?"

 

 이번엔 존이 놀랄 차례였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만 쳐다보았다고 생각했건만 셜록의 예민함은 상상 이상인 모양이었다.
 존은 살짝 헛기침을 하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자네가 무언가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말일세."

 

 셜록은 대답이 없었다. 두 사람의 간격을 메우는 것은 침묵뿐이었으나 어쩐지 그들을 감싼 공기는 한층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에 존은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함께 식사라도...?"

 

 존이 입술을 달싹이는데 셜록이 갑자기 존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급작스레 거리를 좁혀오는 것에 놀란 존이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렸지만 딱딱한 등받이의 감촉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어느새 존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셜록은 위압적인 태도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존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소름끼치도록 새파랗기만 한 그 눈은 마치 깊은 밤 나무둥치 사이로 빛나는 굶주린 늑대의 안광처럼 빛났고 존은 화살에 목줄기를 꿰뚫린 사슴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서슬이 퍼런 셜록의 기세에 좀처럼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존의 귓가에 문득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를 그다지 즐기지 않습니다."

 

 사뭇 차분한 어조였다.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나긋한 목소리였으나 긴장을 늦추기에는 일렀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던 존이 간신히 숨을 내쉬려는 순간 셜록이 존의 왼손을 억세게 움켜잡았다. 존은 숨이 멎을 것처럼 흡 하고 가쁜 숨소리를 내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들어올리며 셜록이 무심한 어조로 속삭였다.

 

 "하지만..."

 

 단단하게 마디진 손가락이 존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숨막힐듯이 얽어들어왔다.

 

 "당신이라면 구미가 당기는군요."

 

 귓가로 더욱 가까이 그의 숨결이 닿아왔다. 몹시요. 셜록이 속삭였다. 미온을 띤 숨결이 간지러워 존은 진저리를 쳤다. 부끄럽고 좋았다. 동시에 두려웠다. 결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셜록이 자신을 말 그대로 먹어치우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말도안되는 상상을 하며 환상에 가까운 두려움을 품는다. 그런 존을 좀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셜록은 소중한 인형에 코를 부비는 아이처럼 콧잔등으로 존의 귓불을 부드럽게 뭉갰다. 여전히 규칙적인 셜록의 숨결과 점차 가빠오는 존의 숨결이 뒤섞였다.
 하아.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신음과 함께 존이 셜록을 끌어안았다. 경련 때문일까, 그때껏 손에 쥐고 있던 은제 나이프가 바닥에 부딪히며 쟁그랑 소리를 내었다.

 

*

 

 식탁 위에 눕혀진 채로 서로를 갈구하는 키스만도 수백번을 하는 동안 존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새로웠다. 상대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나서의 안온하고 안정적인 교감이 아닌, 그야말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대와의 섹스. 존이 셜록에 관해 아는 것이라곤 이름이 셜록 홈즈라는 것과 그가 자신의 사용인이라는 것뿐이다.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시죠."

 

 셜록의 말에 존은 푸흐흐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괴팍하고 놀라울만큼 명석한 분석의 대가이기도 하지. 하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는 남자라는 것이었다. 주인과 하녀의 스캔들로 여차저차 얼버무릴 수도 없는 것이다. 위험천만한 도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셜록이 그의 손을 잡았을 때, 그가 살아온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도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박동했다는 것이다.
 관계의 후폭풍에 대해 미리 염려하기보다는 관계의 물꼬를 트는 데에 집중하자고 존은 생각했다. 존의 내심을 읽어낸 듯 셜록은 불안감을 떨치려는 듯 매달려오는 존의 키스에 호응해 주었다.
 혀가 또 한 번 엉켰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그들은 서로를 만끽할 수 있었으나 기다림으로 인해 고조된 갈증은 쉽사리 해소되지 못하고 끈덕지게 그들을 괴롭혔다. 한참 후에야 간신히 입술을 떼었다. 셜록은 그 와중에도 존의 베스트 단추를 풀러내리고 있었다. 촘촘하게 잠긴 단추가 하나씩 풀리는 동안 존은 스스로 느슨하게 여민 넥타이를 거칠게 벗어던졌다. 셔츠를 거의 찢어발기듯이 양 옆으로 벌리고 나서 차디찬 셜록의 손이 셔츠자락 안으로 쑥 들어갔다. 정열로 얼룩진 육체가 몸서리쳤다. 바르르 떠는 존에게 셜록이 말했다.

 

 "말랐군요."

 

 존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그는 나이가 들었다. 금발에는 흰머리가 드문드문 섞여나오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보송보송한 피부의 미소년과 감히 비할 수도 없다. 불현듯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는 셜록의 시선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볼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걱정을 불식시키려는 것처럼 셜록은 그 딴에는 다정한 태도로 입을 맞추어오며 말했다.

 

 "또 하잘것없는 생각을 하는 중이네요."

 

 입술에서 뺨으로, 뺨에서 불거진 목젖을 더듬고, 목에서 가슴팍으로 옮겨간 입술. 질척한 애무에 흐늘흐늘해진 존이 신음을 입가로 줄줄 흘리는 것을 면밀히 살피며 셜록은 이빨을 세워 유두를 긁어내렸다. 예민한 부분에 가해지는 애무에 당황해하며 존이 움찔거리자 셜록이 그를 붙잡고 내리눌렀다.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존을 지켜보며 셜록 또한 점차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지 벨트를 끌르고 부푼 앞섶을 풀어헤치며 생각했다. 자신이 이제껏 이토록 충동적인 욕망에 몸을 맡긴 적이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다.
 셜록은 남은 이성을 끌어모아 자신의 아래에서 허덕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몰락 귀족의 후예. 평범한 독신남. 평범한 외모.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평범하지 않다. 자신을 자신답지 못하게 만드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것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인가?
 나다움이라...하고 속으로 읊조리며 차가운 시선으로 존을 훑어보던 셜록은 문득 존의 왼손에 눈길이 갔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줄곧 왼손 약지에 자리잡고 있던 금반지가 식탁 촛대의 불빛을 반사하며 은은히 빛났다. 갑자기 배알이 뒤틀린 셜록은 지금껏 하던 성찰적인 고민 따위는 집어치우고 존의 손을 잡아당겼다. 존은 영문을 몰라하며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존의 손을 눈 앞까지 끌어당겨 정욕과 함께 미묘한 질투가 뒤섞인 눈빛으로 응시하던 셜록은 영문을 몰라하는 존을 흘끗 쳐다보고는 혀를 내어 존의 손가락 끝에 갖다대었다. 축축하지만 흥분되는 감촉에 존이 흐읏, 하고 나직하게 신음했다.


 한동안 할짝거리는 젖은 소리가 홀에 조용히 울렸다. 손가락을 혀로 휘감으면서도 셜록은 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상기된 뺨을 하고 잇새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억누르는 존도 마찬가지였다. 뭉툭한 손가락 끝에서 손가락 뿌리 부분으로 옮겨간 혀는 한결 느릿하게 그러나 그만큼 더 자극적으로 움직이며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의 갈퀴 부분을 간질여대었다. 동시에 셜록은 금반지의 틈새를 혀로 적시고 은근하게 눌렀다. 낡고 흠집난 금반지가 타액에 젖어들며 미끌미끌해졌다. 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순간, 좀처럼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던 반지가 놀라우리만치 쉽게 벗겨져나왔다.
 입 안에서 맴도는 금반지를 뱉어낸 셜록은, 여전히 존을 향한 눈길을 거두지 않고 반지를 살며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두 남자가 뒹구느라 엉망이 된 식탁 한옆에 놓인 금반지는 몹시도 초라하게 빛났다.
 존은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한몸처럼 끼워져 있던 반지가 사라진 약지손가락의 뿌리는 다른 손가락보다 약간 잘록했고 덜 그을려 희어보였다. 그렇다고 아쉽게 느껴지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조금은 홀가분한 느낌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하던 존은 셜록의 시선을 눈치챘다. 자신을 바라보며, 어쩐지 눈치를 보는 듯한 그에게 존은 착잡함이 드러나는 미소를 설핏 띠어보였다. 그러나 역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셜록을 살짝 끌어당겼다.

 식사는 계속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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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애견가

2013. 12. 13. 02:14 from BBC Sherlock/단편

마레/도그플레이/조교/약수위

 

 

 "내가 자네 형이 시킨다고 뭐든 다 하는 사람인줄 아나?"

 

 거짓말이었다.

 

*

 

 물론-그렉 레스트레이드는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그러한 '일'의 범주는 넓었다. 침실에서의 육체적인 봉사도 개중에 하나였다.
 ...글쎄, 봉사는 오히려 그가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핥아줄까요."

 

 마이크로프트가 물었다. 무심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저리도 노골적인 내용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저 사람뿐이겠지. 레스트레이드는 뺨을 붉혔다. 익숙한 질문이지만 거듭 들어도 뺨이 뜨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답이 없는 레스트레이드의 뒤에서 마이크로프트가 재촉하듯, 가만히 귓볼을 핥았다. 혀가 귓볼을 끈적하게 핥아올리며 나는 질척한 소리가 곧장 고막으로 스며들었다. 따스한 숨결와 촉촉한 습기가 엉겨 머릿속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숨이 가빠왔다. 목에 감긴 가죽 목줄이 답답했다. 노곤한 쾌락으로 움찔거리는 레스트레이드를 안고서 마이크로프트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느릿하게 훑었다.

 

 "흐읏-"

 

 참고 참던 신음소리가 가냘프게 흘러나온다. 부끄러워 스스로 자신의 입을 막는다. 마이크로프트는 친절하게 그 손을 떼어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대로, 솔직하게 신음을 내주세요."

 

 귓바퀴에 입김을 불어넣듯이 속삭였다. 마이크로프트는 레스트레이드의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도록 했다. 고개를 돌리던 레스트레이드가 뒤척거리며 마이크로프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바닷물처럼 파란색과 초록색이 뒤섞인 색의 눈이 레스트레이드를 응시했다. 손을 뻗어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빗듯이 뒤로 넘긴다. 개의 털을 빗겨주는 것처럼 부드럽고 조심스런 동작이다. 땀에 젖어 치덕거리는데다가 짧아 뒤로 잘 넘어가지도 않는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는 것이 뭐가 그리도 즐거운 것인지 마이크로프트는 입가에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띠고 있다.
 레스트레이드가 눈꺼풀을 내리깔자, 마이크로프트가 조용히 웃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개로군요."

 

 머리카락을 만지던 것을 그치고, 마이크로프트는 장님처럼 레스트레이드의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더듬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손가락이 몇 개인지 세는 사람처럼 신중하게.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과정을 마치고 마이크로프트는 레스트레이드의 이마에 키스했다.

 

 "순종적인 개라면 주인의 손길에 기쁘게 울어주는 것이 도리겠지요."

 

*

 

 개라고 불리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다. 옷을 벗고 마이크로프트가 손수 목에 까끌한 검정 목줄을 채워주면 그때부터 레스트레이드는 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는 사람의 말을 하지 않으니까.
 침묵은 의외로 몹시도 편했다. 처음에는 무의식적으로 이런저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느라 안달이 났으나 마이크로프트는 그런 말들이 아예 나올 필요가 없도록 세심하고 상냥하게 레스트레이드를 '보살폈다'.

 

 "저는 애견가이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기르는 개를 소중하게 돌보는 것이야말로 주인의 본분이 아닐까요."


 그 말마따나 마이크로프트는 침대 기둥에 목줄이 매인 채 벌거벗고 누운 레스트레이드를 위해 직접 트레이를 밀고 와 레스트레이드로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산해진미를 먹여주는 것도 모자라 입가에 묻은 것을 냅킨으로 닦아내어주기까지 한다. 그 냅킨이라는 것의 감촉이 또 너무 부드러워 레스트레이드가 깜짝 놀라자 마이크로프트는 소리내어 웃었다.
 후식으로 위스키 봉봉을 입 안에 넣어주는 마이크로프트의 손가락을 무의식적으로-처음으로 핥았을 때 그의 태도에서는 난감해하는 듯한, 또한 묘하게 난처해하는듯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에 조금은 장난스럽게, 손가락 마디마디를 혀로 더듬었다. 펜대를 잡느라 생긴 동그란 굳은살을 자근자근 깨물고, 안쪽의 연한 살을 간지럽게 핥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손을 빼지 않았다. 어떤 형태의 성행위를 연상시키도록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뺐다 하며 마이크로프트의 손가락을 빠는 행위에 골몰하고 있다가 스스로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서 급하게 손가락을 뱉어낸 연후에야 마이크로프트는 가만히 내밀고 있던 손가락을 거두었다.
 소꿉놀이처럼 잔잔하던 분위기는 어느새 성적인 뉘앙스를 물씬 풍기는 분위기로 변모해있었지만 마이크로프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계속해서 레스트레이드를 시중들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도, 레스트레이드의 눈에도 무언가에 대한 열망과 긴장이 피어올랐다는 것을 서로가 분명히 알아차리고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마이크로프트가 방을 나가고 나서 레스트레이드는 욕망으로 멍해진 머리로 떠올렸다. 여유로운 미소만을 띠고 있던 엄숙한 입매가 무언지 모를 동요로 비틀려 있는 그 모습은 놀랍게도 귀여워보였다. 개들이 어째서 주인의 관심에 그토록 기뻐하는 것인지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상호적인 애정의 교환이란 꽤 즐거운 일이므로.
 마이크로프트의 동요가 기쁨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개로서의 레스트레이드의 애교는 날로 늘어만 갔다. 수동적으로 '주인님'의 보살핌을 받기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매일매일, 조금씩 더...

 

*

 

 신사다운 포옹, 느릿한 애무, 잔잔한 키스. 그 다음 순서는 뻔하다.
 자신의 위에 올라탄 그의 몸 안을 꿰뚫었다. 남자와의 섹스에서 발생하는 익숙치 않은 고통 때문인지 레스트레이드는 반사적으로 손을 짚어 마이크로프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그러나 저항도 잠시 그는 곧 손에 주었던 힘을 빼고 앙칼지게 손톱을 세워 길고 붉은 상흔을 남긴다. 뭉툭한 손톱이 창백한 살갗을 긁어내린다. 진심으로 밀어내려 마음먹었다면 얼마든지 밀어낼수도 있을 터. 그러나 레스트레이드는 저항하지 않았다.
 서툴지만 분명히 적극적으로 허리를 움직이는 레스트레이드의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목줄의 이음매의 쇠고리에서 찰그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소리와 함께 흘러내린 눈물은 마이크로프트의 가슴팍에 난 손톱자국 위에 정확히 떨어졌다. 쓰라렸다.
 연결된 부분은 뜨거웠다. 그의 안으로 침투한 자신의 일부가 녹아버리는 것같다. 차갑고 미지근한 육신이 고조되며 달아오른다. 온몸을 점령하는 열기에 머릿속이 어질어질하다. 언제까지고 녹지 않을 것만 같던 만년설이 부드러운 온풍의 훈기에 속절없이 녹아버리고 마는 그 감각에 달리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순응하고 만다.
 그리고 함께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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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베니]School-look

2013. 12. 13.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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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존]Misaligned

2013. 12. 13. 02:11 from BBC Sherlock/단편

칸존/약수위

 

 

 "아, 아으...셜록!"

 

 자신의 품에 안겨서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칸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생소한 감정이 다시 늑골 아래쪽에서 치밀어오르고 있다. 빠듯하고 애달픈 느낌. 영 적응이 되지 않는 그 느낌에 기분이 나빠진 칸은 그 정체 모를 감정을 떨쳐내려는 것처럼 남자의 몸에 화풀이라도 하듯 한층 폭력적으로 진퇴를 반복했다. 자신의 손에 허리를 잡힌 채로, 자신의 성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남자가 쾌감으로 몸서리치는 것이 보였다. 힘껏 박아올릴 때마다 요망하게 허리를 흔드는 꼴이 퍽 요염했다. 선정적인 광경에 기분이 나아지려는 찰나 칸은 남자가 눈을 감고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방울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쾌락 때문에 제멋대로 벌려진 입술로는 예의 그 이름을 읊조리며 헐떡이고 있었다.
 셜록.

 

*

 

 칸은 난폭하고 제멋대로이며 독단적이었으나, 그만큼이나 교활했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대원들이 가지고 있는 가족애에 대한 유별난 애호 성향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그 점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것을 통해 그들 사이의 유대감에 편승하는 것은 몹시 손쉬운 일이었다. 가족애이자 동지애는 그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므로-그와 같은 종족들에게만 한정되어 있기는 했지만-그에 대한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자신을 핍박받는 소수민족의 희생양으로 교묘하게 가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엔터프라이즈 호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동안 그는 존 왓슨을 만났다. 셜록 홈즈라는 이름-지겹도록 듣게 될 그 이름을 듣게 된 것도 그때였다. 처음에 그 이름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이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야말로 어긋난 관계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는 것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미궁 속에서 선회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자신을 홀린 듯 바라보며, 자신을 셜록이라고 부르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방비하게 자신의 몸을 내맡기는 존을 보며 우습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저 외양의 유사함으로 인해 저렇게까지 맹목적으로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하위 인간들이 하등한 증거라고 생각하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갖은 애교를 떨어오는 강아지에게 마지못해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주는 것처럼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을 때도 그랬다. 그가 눈물로 완전히 흐려진 시야로 자신을 바라보며 셜록, 하고 부르며 안겨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칸은 자신을 감히 이용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를 용납하지 않았겠지만 그때의 자신은 존에게서 주어진 셜록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거슬리기는 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일종의 전조였음에 틀림없다. 미묘한 거슬림. 자신으로부터의 경고. 그건 분명 앞으로의 수렁같은 관계를 예고하는 것이었겠지.
 생각해보면 존은 칸을 보며 다른 무언가를, 그 셜록 홈즈라는 남자를 투영하고 있음을 숨긴 적이 없다. 비록 이용할지언정. 그러한 솔직함때문인지, 칸은 더욱더 이 작고 애처로운 남자를 원망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존에 대해 일종의 애착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의무감처럼 행하던 섹스를 자신이 먼저 요구하게 되었고, 존이 망설이고 망설이다 겨우 용기를 내어 자신의 방문을 두드릴 때에만 하던 섹스의 빈도가 늘어났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의 어느날이었다.

 

 "사랑해, 존."

 

 사실 칸에게는 자신이 존을 정말로 사랑하는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영향력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혐오하는 그가 '사랑한다'는 간질거리는 고백 따위를 내뱉은 이유는 그렇게라도 존과 그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정의해보고자 함이었다. 가짜 셜록과 존의 관계가 아닌, 칸과 존이라는 관계의 층위를 새로이 쌓기 위해서. 거짓된 관계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라면 입에 발린 말쯤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그때 존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길을 아마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존은 경악이 서린 눈초리로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항상 울었기 때문에 흐려져 있던 두 눈이 그때만큼은 맑은 시선으로 칸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입술을 파들파들 떨던 존은 곧이어 입을 열었다.

 

 "...셜록은 그런 말 안해요."

 

 처음에는 존이 무슨 뜻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칸이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나는-"
 "셜록은!"

 

 존이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셜록은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 따위 안해!"

 

 안 한다고! 폭발하듯 외친 존이 황급히 옷가지를 챙겨 자신의 선실로 휭하니 돌아간 후에야 칸은 그들의 관계가 이미 시작부터 너무나 어긋나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늦게야 깨닫고 만 것이다. 그 남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어떤지를 알아차렸을 때부터 이미 잘못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

 

 존이 섹스를 할 때 눈을 고집스럽게 감기 시작한 것도 그 후부터였다. 눈을 감아버린 채로 한 사람의 이름만을 부르는 그를 대체 어찌해야 할지 칸은 알 수 없었다. 어긋난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칸에게는 그저 그가 안겨올 때마다 집요하게 느끼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자신을 외면하면서도 몸만은 겹치는 그 남자를 아프도록 끌어안고 껍데기뿐인 몸이라도 자신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에 텅 빈 안도감을 느끼며 자위하는 수밖에 없다.

 

 "아아...!"

 

 품 안에서 자지러지며 가버리는 그. 파정의 여운으로 몸을 떠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어깻죽지에 입술을 누른다. 이제 그는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말없이 키스를 한다. 어깨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감촉에 존은 놀란 듯 몸을 굳혔다가 칸이 입술을 뗀 후에야 긴장을 풀고 몸을 이완시킨다.
 그리고 존은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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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마레/막드주의

 

 

 "그러니까,"

 

 셜록이 말을 이었다.

 

 "레스트레이드와 내 형이 몸을 섞는 사이라, 이 말인가?"

 

 셜록이 말을 내뱉는 것과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이 소리쳤다.

 

 "셜록!"

 

 존과 레스트레이드였다. 두 사람의 당황스런 외침 탓에 옆 테이블에서 정찬을 즐기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이편을 향해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던 네 사람은 모두 그것을 알아차렸고, 더이상 이쪽으로 원치 않는 시선이 집중되는 사태만은 피하고 싶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식탁 위에 침묵이 감돌았고, 셜록은 자신의 발언이 불러일으킨 상황에 매우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적절치 못한 일이야.'

 

 존은 생각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그렉 레스트레이드가-그들의 말에 따르면, 교제를 시작했다는 것은 그에게도 물론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셜록이 그들의 관계를 저속한 방식으로 조롱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현재 셜록의 얼굴에는 누가 봐도 명백할 정도로 즐거워하는 기색이 뚜렷하게 떠올라있었다. 노골적으로 즐거워하는 듯한 그 미소는 그의 형이 답지않게 동요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었다. 하긴 마이크로프트가 조금이라도 동요의 기색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존도 '당황하는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이라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바쁘게 굴렸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레스트레이드는 무슨 죄란 말인가?
 존은 레스트레이드를 흘깃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약간의 분노와 수치감. 혹시라도 옆 테이블에서 여기서 벌어지는 대화를 엿들을까 전전긍긍해하는 기색. 의외로 놀라움은 보이지 않았는데, 존은 그 이유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셜록 홈즈라는 인간과 몇 년을 부대껴온 그렉이었기 때문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들의 관계에 가해질 셜록의 가차없는 혹언을 피할 수 있을리가 없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리라. 또한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님 또한 명약관화한 일이기 때문에-날마다 사건때문에 부대끼는 셜록의 날카로운 눈썰미를 피할 수 없는 것또한 자명한 일이고 말이다-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정식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발표하기로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말하자면 지금 테이블을 감싸고 있는 어색한 침묵은 예고된 사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그렉 레스트레이드가 그들의 관계를 알리기로 한 순간부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량하기 그지없는 전직 군의관 존 왓슨은 레스트레이드가 더이상의 망신을 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마이크로프트와의 관계에 대해 선뜻 축복을 내려주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일단은 그래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존은 지금의 불편한 상황을 적절히 마무리할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존 자신이 마이크로프트와 레스트레이드를 대신해 셜록의 난폭한 언사에 대한 점잖은 비난을 함과 동시에, 그의 불퉁한 성미를 가라앉히는 것에 즉효인 부드러운 다독임을 곁들여 셜록이 마이크로프트와 레스트레이드에게 사과를 하도록 종용한다면 셜록은 뭐라고 반항을 하긴 하겠지만 결국에는 못이긴척 하고 사과의 말을 몇 마디 뱉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명색이 애인의 동생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던 레스트레이드의 불안감도 가라앉을 것이고, 마이크로프트도 더이상 상황을 악화시킬 생각이 없다면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 정도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길 바랄 것이다. 존의 예상대로만 상황이 전개된다면 더이상 불필요한 말싸움과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감정 소모를 할 이유는 없어질 것이었다. 또한 불편한 저녁 식사 자리에 멍청하게 붙어앉아서 세 사람의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는 짓거리도 그 즉시로 안녕일 것이고 말이다!
 행복한 저녁식사의 단꿈에 빠진 존이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나서서 상황을 멋지게 봉합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있게 입을 열려는 순간, 마이크로프트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매우 악의적인 방식으로 나와 그렉의 관계를 정의해주어서 고맙구나."

 

 존은 고개를 쳐들고 그렇게 말하는 마이크로프트의 표정을 살폈다. 놀랍도록 차분한 미소였다. 하지만 그의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존은 감지할 수 있었다.

한편 셜록은 '그렉? 그렉이라고?' 라고 중얼거리며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뭐라 중얼거리건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고마움과 더불어 네 감정 표출 방식이 더할 나위없이 유치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싶구나, 셜록. 너도 알다시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는 다른 방법도 많잖니."

 

 마이크로프트의 눈은 셜록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대체 언제쯤 철이 들려고 그러니?'하는 꾸짖음이 들리는 것처럼 엄격한 눈빛이었다. 마이크로프트의 우회적인 질책에 셜록은 한 마디도 지지 않겠다는 듯 곧장 대꾸했다.

 

 "오 친애하는 형. 나는 오직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라고. 뭐, 형이 말한 '교제'라는 모호한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뜻을 좀더 명확하게 알아내려는 의도도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지, 마이크로프트?"

 

 고의적으로 소요를 일으키려는 것이 분명한 셜록의 도발에 마이크로프트의 한쪽 눈썹이 까딱하고 움직이는 것을 존의 눈은 놓치지 않았다. 셜록이 씩 하고 웃으며 마이크로프트의 화를 돋구기 위한 말을 줄기차게 뱉어내고 있는 동안에 그의 눈이 문득 존을 향했다. 존은 셜록과 말싸움을 하는 도중 자신에게 한눈을 파는 마이크로프트의 심중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이크로프트를 마주 바라보았다.
 마이크로프트는 금세 시선을 셜록 쪽으로 돌렸고, 아주 짧은 시간동안 머무른 마이크로프트의 눈길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존이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두 형제 사이에 벌어진 말싸움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 혹시 둘은-소위 말하는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단계인건가? 이거 참, 내가 실례했군."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셜록의 태도에서 실례했다는 기미는 조금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는 공격의 마지막 마무리를 완벽하게 장식하기 위해 준비 동작을 하는 펜싱 선수처럼 숨을 한 번 들이키고 혀끝을 날카롭게 다듬은 후 말을 이었다.

 

 "늙어서 제 뜻대로 물건도 세우지 못하는 형을 떠맡게 되어서 안됬군, 레스트레이드."
 "셜록!"

 

 존은 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너무 심하잖아! 어서 사과하지 못해?"

 

존은 어떻게든 거지같이 굴러가는 이 상황을 개선하려 셜록을 다그쳤다. 하지만 셜록은 도통 말을 듣지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내가 무얼 잘못했느냐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때 마이크로프트가 살짝 테이블 위로 몸을 굽히며 셜록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군?"
 "다이어트의 부작용으로 성욕감퇴라도 된 모양이지? 그래, 그게 분명해."

 

 셜록은 무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존은 평화롭고 오붓한 저녁식사가 전부 물 건너가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애초부터 홈즈 형제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옆에 끼고서 조용하고 편안한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오판을 내린 것이었다. 빌어먹을 셜록 홈즈!

 

 "좋아."

 

 다시 꼿꼿하게 허리를 편 마이크로프트는 놀랍게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야냥대는 기색도 억지로 웃음을 꾸며내는 기색도 없는 순수한 미소였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지? 라고 존은 생각했다. 즐거워보이기까지 하니 원!
 마이크로프트가 미치기라도 한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격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래. 네 말대로, 내 나이와 운동때문에 약간의 성욕감퇴가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꾸나."
 "가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일테니 오랜만에 진실된 대화를 나누어볼 수 있겠군, 마이크로프트."
 "가정이란다. 물론 잘못된 가정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겠구나. 잘못된 가정일 뿐만 아니라 거짓이기도 하지. 왜냐하면 우리는 밤마다-"

 

 느닷없이 시작된 선문답같은 대화를 참아내는 것도 모자라 마이크로프트와 레스트레이드의 밤을 불사르는 섹스라이프에 대해 떠들어내는 것까지 듣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존은-그는 안그래도 정상적인 저녁식사는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 있던 참이었다-더이상 참지 못하고 벌컥 성을 냈다.

 

 "아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겁니까? 이왕 이렇게 된거 하시고 싶은 말씀만 빨리빨리 하시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구요! 더이상의 소란은 질색이니까요!"

 

 존의 온순한 면모밖에 본 적이 없는 마이크로프트는 그의 항의에 약간 놀란 듯했으나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닥터 왓슨의 말이 옳아요. 이미 이 레스토랑에서 요기를 하기는 틀렸고 앞으로도 여기 오기에는 웨이터들의 눈총이 따가워서 안될테니 요점만 짚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주문도 하지 않고 넷이서 레스토랑이 떠내려가라 말싸움만 해대고 했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오랜만에, 아니 난생 처음으로 존과 마이크로프트가 의기투합하는 듯 보였다. 다음에 이어질 말을 미리 알았다면 존이 이처럼 기세좋게 나서지도 못했겠지만.

 

 "그래서 닥터 왓슨과 내 동생은 원나잇 스탠드로 끝난겁니까?"

 

 기습적인 회심의 일격에 미처 방비의 태세를 갖추지 못한 셜록은 의자에서 펄쩍 뛰어오를듯이 놀랐고, 마이크로프트는 그 꼴사나운 모습을 바라보며 속이 시원하다는 듯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존은 마이크로프트가 자꾸만 자신을 힐끗거리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또한 그의 미묘한 눈빛이 의미하던 바로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연민이었다! 자신에게 닥칠 처지를 모르고 벌판에서 태평하게 노니는 영양을 사냥하기 직전의 사자의 눈초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로프트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침대기술이 딸리던가요? 아마 그 점에 대해서는 왓슨 선생이 몸소 신경을 쓰셔야 될 겁니다. 원체 그쪽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말이죠. 부족한 동생을 떠맡기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송구스럽긴 개뿔이! 교활한 마이크로프트 같으니라고! 존은 아까에 이어 홈즈 형제에 대한 욕을 두번이나 하고 말았다.

 

 "오! 설마...?"

 

마이크로프트는 연극적인 어조로 놀라는 체를 하더니,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셜록을 향해 연민의 눈길을 보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그 시선에 셜록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젠장, 난 발기부전따윈 없다고, 마이크로프트!"

 

 온 식당에 셜록이 자신이 발기부전이 아님을 주장하는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집중되었다가 부자연스럽게 흩어졌음은 물론이다. 이제 평화로운 저녁식사건 긴장감넘치는 저녁식사건 완전히 글러먹었다. 물론 이 식당과도 영원히 안녕이다. 아마 이 근처로 발도 들이지 못할 것이다. 전부터 와보고 싶은 식당이었는데! 하여튼 홈즈 형제와 얽히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하고 속으로 불평을 늘어놓던 존은 레스트레이드가 입을 떡 벌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존이 급히 해명을 시도했다. 

 

 "겨, 경위님, 아닙니다!"

 

 마치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용의자와 다름이 없었다. 존은 어찌나 놀랐는지 레스트레이드를 평소에 친근하게 부르던 '그렉'이라는 호칭 대신에 무심코 '경위님'이라고 부르고 말았다.

 

 "아니, 그러니까 셜록이 발기부전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셜록과 전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아니 셜록은 발기부전이 아니긴 한데..."

 

 횡설수설하는 존의 목소리에 여실히 드러나는 동요에 이제까지 시어머니와 올케 앞에서 움츠리고 선 며느리처럼 쪼그라들어 있던 레스트레이드는 감 잡았다는 표정을 하고 드디어 당당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가 그럴줄 알았어!"

 

 승기를 잡은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째려보며 말했다.

 

 "자네도 존과 사귀고 있었으면서 나한테 그따위 말을 할수가 있나 그래?"

 

 셜록이 잠깐 사이를 두고-이 잠시의 간격은 경위에게 마이크로프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에 대한 확증이 되어주었다-조용히 대답했다.

 

 "오햅니다."
"한 달 전이지 아마? 닥터 왓슨이 셜록과 그렉의 사건 현장 조사 과정에 불참했던 때가. 사건이라면 발벗고 셜록을 따라나서며, 셜록 홈즈의 블로거를 자칭하는 존 왓슨 선생이 어째서 그날따라 따라오지 않을 것일까? 아 그리고 그 전날에도 당당하게 케이스 하나를 해결한 둘은 펍에 가서 늘어지게 술을 마셨다지?"

 

  마이크로프트가 씩 웃으며 능청맞게 덧붙였다. 셜록이 투덜거렸다.

 

 "우린 그런 사이 아냐."

 

 불벼락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부터 내리쳤다.

 

 "말 한 번 잘했다. 그럼 우리가 무슨 사인데?"

 

 존이 마침 잘 걸렸다는 듯 팔짱을 끼고 셜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놈의 몰래카메라때문인지 단순히 눈썰미로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나 이왕 그 일을 들춰낸 김에 존은 그동안 매듭짓지 못했던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짓고 싶었다.
 존이 몰아붙이자 셜록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제 무덤을 파고 있는 거라고, 존."
 "됐어! 마이크로프트 말마따나 쪽팔려서 다시는 이 식당에 발걸음도 하지 못할텐데 속시원하게 말이나 하자고. 그날 왜 그런거야?"
 "그건...!"

 

 셜록은 입을 열었으나 뭐라고 말도 못한 채로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셜록이 처녀를 덜컥 임신시키고 덜미를 잡힌 건달패라도 되는양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향해 질타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마이크로프트는 기분이 좋아진듯 싱글거리고 있었다. 열불이 터진 셜록이 목깃을 세워 코트 자락을 여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순간 누군가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알았어! 자네 대답은 잘 알았어. 이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바로 내가 원하던 바야."

 

 셜록이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 존이 외투를 챙기며 쏘아붙였다.

 

 "그리고 자넨 새 플랫메이트를 구해보도록 해!"

 

 통첩을 날리고 돌아서서 씩씩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셜록은 코트를 여밀 생각 따윈 하지도 못하고 '기다려! 기다리라고!'하고 멍청하게 외치며 존을 뒤따라나갔다.

그 광경을 고소하다는 듯이 지켜보던 마이크로프트는 난데없이 일어난 통속적인 사랑싸움을 넋놓고 지켜보던 레스트레이드에게 말했다.

 

 "누가 발기부전인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나요?"

 

 레스트레이드는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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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오만과편견시대배경

 

 

 존 왓슨은 그 자신에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동안 알량한 의사 나부랭이랍시고 헛똑똑이 짓을 해 온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낯이 뜨거워져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본질이라는 것을 그 나름대로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대강은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고, 또 그것을 하나의 자랑거리로 생각해온 존에게 오늘의 일은, 그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왔는지를 일깨우는 사건이었다.
 세상에나, 평범하고 유쾌한 지주로 보였던 짐 모리어티가 사람의 몸에 폭탄을 감아 인질로 삼아서 셜록 홈즈를 협박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보잘것없는 마을 의사일 뿐일 닥터 존 왓슨을 말이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연회장에서 함께 웃고 떠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긴 명색이 세 대륙을 전전하며 인생사에 통달했다고 자부하던 존 자신조차도 그 남자의 본색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아까의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다시금 그를 덮쳐오는 것만 같아 존은 저도 모르게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셜록의 팔을 꼭 잡았다. 주춤하던 셜록은 안심이라도 시켜주려는 것처럼 어색하게 존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몇번 토닥여주었다. 그런 단순한 동작에 불과한 것에 정말로 안심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수영장을 빠져나오자 다리가 풀린 존은 급기야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셜록은 잠시 주춤거렸으나 존이 숨을 돌리도록 내버려두어 주었다. 앉아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존에게 셜록이 문득 입을 열었다.

 

 "벗어요."
 "뭐...뭐라구요?"
 "폭탄 조끼말입니다."

 

 '계속 입고 계시다간 정말 터져도 모릅니다'라는 그의 말에 존은 황급히 상반신에 걸쳐진 폭탄 조끼를 벗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자고 생각해놓고도 또다시 그의 말을 곡해할 뻔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찾아온 존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편 혼자서 낑낑거리며 폭탄 조끼를 벗는 존을 향해 멈칫거리며 손을 뻗던 셜록은 결국 존이 폭탄 조끼를 벗어서 저 멀리로 던져버릴 때까지 별다른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퍽 소리가 나도록 풀밭 저편에 폭탄 조끼를 던져버린 존이 속이 시원하다는 듯 후, 하고 숨을 토해내자 셜록은 그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뜬금없는 사과를 받게 된 존이 당황하여 되물었다.

 

 "뭐가요?"
 "상관없는 일에 연루되도록 만든 것 말입니다. 내 불찰이었어요. 모리어티가 민간인까지 끌어들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완전한 오판이었죠."

 

 무뚝뚝하고 담담한-그래서 일견 거만하게 느껴지는-어조는 그대로였으나 그가 말하는 내용은 그야말로 평소와는 딴판으로 느껴질 정도로 친절한 것이었다. 진심으로 그에게 미안해하는 것을 느낀 존은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그렇게 위험한 사람을 쫄래쫄래 따라가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그래도 제 딴에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몇 년간 썩고 있었으니 그 촉도 무뎌지긴 했나봅니다."

 

 왜인지 혀가 꼬이며 횡설수설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상황에서 촉 타령이라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 존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셜록은 가만히 자신의 말을 듣고 있었다. 존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에게 폐를 끼친 것같아 미안하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존의 사과에 셜록이 화를 벌컥 냈다. 놀란 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화를 내는 셜록을 올려다보자 셜록이 헛기침을 했다. 꽁꽁 언 얼음덩이처럼 빈틈이라곤 조금도 없어보이던 그의 무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동요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 뿐. 존은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모리어티의 정체를 알아낸 것도 모자라 무려 셜록 홈즈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다니, 오늘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존은 셜록의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조바심이 나는 사람처럼 앞뒤로 왔다갔다 하던 셜록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급작스럽게 소리쳤다.

 

 "폐를 끼친 건...납니다."
 "네?"
 "이제 알겠지만, 내가 자문 탐정으로서 모리어티의 범죄를 파헤치고 그의 계략을 무산시킨 것이 이미 여러 차례입니다. 그 다음부터 그는 내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방면에서 손을 쓰고 있죠. 그런 방해 공작 중에 하나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면서 나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나와 당신이...그러니까, 조금...친해진 듯하자 금세 손을 뻗친 거겠죠. 그러니까 사과해야 될 사람은 납니다."

 

 약간 멋쩍은 듯이 말을 마친 셜록을 멍하니 바라보던 존이 갑작스레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조금...친해진 듯하다고요?"

 

 존이 웃어대자 셜록의 창백한 뺨에 약간의 홍조가 감돌았다.

 

 "모리어티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셜록의 말에 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당신은 워낙 사람들과 어울리질 않으니 나를 당신하고 친하다 여길 만도 하군요. 사실 보이는 것만큼 친한 사이는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지요."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셜록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는 것을 알아차린 존은 자신이 실언을 했음을 깨달았다.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그 어떤 인사치레를 해도 모자랄 상황인데 저런 말이나 해버리다니 자신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입을 놀리고 있는 걸까! 존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아니...그게 아니라..."
 "예, 닥터 왓슨의 말이 맞습니다. 우린 보이는 것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죠."

 

 싸늘해진 셜록의 목소리에 마음이 급해진 존이 크게 말했다.

 

 "네! 그, 그렇지만...그건 제 잘못도 있습니다."

 

 존의 말에 셜록이 입을 다물고 자신을 지켜보는 것이 느껴졌다. 존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난...멍청하게도, 당신이 다른 사람들 말마따나 거만한 성격파탄자라고 곧이곧대로 믿어버리고서 그대로 당신을 대했어요. 당신을 직접 대면하면서도 그런 지레짐작을 올바르게 고칠 생각조차 못했죠. 조금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긴 하지만 당신이 소문으로 들리는 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끼면서도 그런 편견을 버리질 못하고 말입니다...멍청한 노릇이죠."

 

 잠자코 존의 말을 듣고 있던 셜록이 천천히 말했다.

 

 "전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당신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애매모호한 말에 존이 살짝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멍청하긴 멍청하다는 거군요."

 

 셜록은 피식 웃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셜록을 바라보며 무언가 응수할 말을 찾던 존이 문득 입을 열었다.

 

 "당신도...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다지 오만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셜록의 눈이 커질 차례였다. 잠깐 커졌던 셜록의 눈이 가늘어졌다. 셜록이 반문했다.

 

 "내가 오만하지 않다고요?"
 "네."
 "저는 제가 무척이나 오만한 사람이고,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입니까?"
 "그래요. 그렇지만 당신은 겸손을 떤답시고 하면서 과시욕에 몸부림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존의 말에 셜록은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다가 결국은 입을 다물었다. 둘 사이에 침묵이 깔렸다. 온기어린 유대감이 둘의 사이를 감싸고 형체를 견고히 하는 것이 느껴졌다.
 침묵을 깨고 존이 지나가는 투로 중얼거렸다.

 

 "오해를 살 만한 그 말투만 고치면 될겁니다."

 

 셜록의 눈썹이 까딱거렸다.

 

 "내 말투가 어때서요?"
 "그러니까...조금만 상냥하게 말입니다. 때로 당신은 너무 솔직할 때가 있어서 그게 탈이예요."

 

 존의 조심스런 충고에 셜록은 눈을 몇 차례 깜박이다가 고심하는 듯 했다. 곧 셜록이 중얼거렸다.

 

 "에둘러 말하라는 건가요?"
 "바로 그거예요."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시간낭비 아닙니까? 저는-"

 

 뭐라고 속사포처럼 반박하려던 셜록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말을 멈추었다. 자신이 셜록의 심기를 거슬렀나 싶어 동태를 살피던 존에게 셜록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돌려 말한다던가, 에둘러서 표현하라던가...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 투성이예요."

 

 말을 흐리던 셜록이 다음 순간 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내게 가르쳐주는게 좋겠군요."

 

 갑작스런 말에 존이 되물었다.

 

 "네?"
 "당신은 친절하잖습니까. 어떻게 하면 친절하게 보이도록 행동할 수 있는지도 잘 알테고요. 그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겁니다."

 

 예상 외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대화에 존이 허둥거리는 사이 셜록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존,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은 존은 셜록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손을 쥐고 위아래로 몇 차례 흔드는 동안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이런 이상한 우정이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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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셜]사랑한다

2013. 12. 1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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