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마레/막드주의
"그러니까,"
셜록이 말을 이었다.
"레스트레이드와 내 형이 몸을 섞는 사이라, 이 말인가?"
셜록이 말을 내뱉는 것과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이 소리쳤다.
"셜록!"
존과 레스트레이드였다. 두 사람의 당황스런 외침 탓에 옆 테이블에서 정찬을 즐기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이편을 향해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던 네 사람은 모두 그것을 알아차렸고, 더이상 이쪽으로 원치 않는 시선이 집중되는 사태만은 피하고 싶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식탁 위에 침묵이 감돌았고, 셜록은 자신의 발언이 불러일으킨 상황에 매우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적절치 못한 일이야.'
존은 생각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그렉 레스트레이드가-그들의 말에 따르면, 교제를 시작했다는 것은 그에게도 물론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셜록이 그들의 관계를 저속한 방식으로 조롱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현재 셜록의 얼굴에는 누가 봐도 명백할 정도로 즐거워하는 기색이 뚜렷하게 떠올라있었다. 노골적으로 즐거워하는 듯한 그 미소는 그의 형이 답지않게 동요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었다. 하긴 마이크로프트가 조금이라도 동요의 기색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존도 '당황하는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이라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바쁘게 굴렸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레스트레이드는 무슨 죄란 말인가?
존은 레스트레이드를 흘깃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약간의 분노와 수치감. 혹시라도 옆 테이블에서 여기서 벌어지는 대화를 엿들을까 전전긍긍해하는 기색. 의외로 놀라움은 보이지 않았는데, 존은 그 이유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셜록 홈즈라는 인간과 몇 년을 부대껴온 그렉이었기 때문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들의 관계에 가해질 셜록의 가차없는 혹언을 피할 수 있을리가 없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리라. 또한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님 또한 명약관화한 일이기 때문에-날마다 사건때문에 부대끼는 셜록의 날카로운 눈썰미를 피할 수 없는 것또한 자명한 일이고 말이다-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정식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발표하기로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말하자면 지금 테이블을 감싸고 있는 어색한 침묵은 예고된 사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그렉 레스트레이드가 그들의 관계를 알리기로 한 순간부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량하기 그지없는 전직 군의관 존 왓슨은 레스트레이드가 더이상의 망신을 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마이크로프트와의 관계에 대해 선뜻 축복을 내려주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일단은 그래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존은 지금의 불편한 상황을 적절히 마무리할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존 자신이 마이크로프트와 레스트레이드를 대신해 셜록의 난폭한 언사에 대한 점잖은 비난을 함과 동시에, 그의 불퉁한 성미를 가라앉히는 것에 즉효인 부드러운 다독임을 곁들여 셜록이 마이크로프트와 레스트레이드에게 사과를 하도록 종용한다면 셜록은 뭐라고 반항을 하긴 하겠지만 결국에는 못이긴척 하고 사과의 말을 몇 마디 뱉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명색이 애인의 동생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던 레스트레이드의 불안감도 가라앉을 것이고, 마이크로프트도 더이상 상황을 악화시킬 생각이 없다면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 정도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길 바랄 것이다. 존의 예상대로만 상황이 전개된다면 더이상 불필요한 말싸움과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감정 소모를 할 이유는 없어질 것이었다. 또한 불편한 저녁 식사 자리에 멍청하게 붙어앉아서 세 사람의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는 짓거리도 그 즉시로 안녕일 것이고 말이다!
행복한 저녁식사의 단꿈에 빠진 존이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나서서 상황을 멋지게 봉합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있게 입을 열려는 순간, 마이크로프트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매우 악의적인 방식으로 나와 그렉의 관계를 정의해주어서 고맙구나."
존은 고개를 쳐들고 그렇게 말하는 마이크로프트의 표정을 살폈다. 놀랍도록 차분한 미소였다. 하지만 그의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존은 감지할 수 있었다.
한편 셜록은 '그렉? 그렉이라고?' 라고 중얼거리며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이 뭐라 중얼거리건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고마움과 더불어 네 감정 표출 방식이 더할 나위없이 유치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싶구나, 셜록. 너도 알다시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는 다른 방법도 많잖니."
마이크로프트의 눈은 셜록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대체 언제쯤 철이 들려고 그러니?'하는 꾸짖음이 들리는 것처럼 엄격한 눈빛이었다. 마이크로프트의 우회적인 질책에 셜록은 한 마디도 지지 않겠다는 듯 곧장 대꾸했다.
"오 친애하는 형. 나는 오직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라고. 뭐, 형이 말한 '교제'라는 모호한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뜻을 좀더 명확하게 알아내려는 의도도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지, 마이크로프트?"
고의적으로 소요를 일으키려는 것이 분명한 셜록의 도발에 마이크로프트의 한쪽 눈썹이 까딱하고 움직이는 것을 존의 눈은 놓치지 않았다. 셜록이 씩 하고 웃으며 마이크로프트의 화를 돋구기 위한 말을 줄기차게 뱉어내고 있는 동안에 그의 눈이 문득 존을 향했다. 존은 셜록과 말싸움을 하는 도중 자신에게 한눈을 파는 마이크로프트의 심중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이크로프트를 마주 바라보았다.
마이크로프트는 금세 시선을 셜록 쪽으로 돌렸고, 아주 짧은 시간동안 머무른 마이크로프트의 눈길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존이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두 형제 사이에 벌어진 말싸움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 혹시 둘은-소위 말하는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단계인건가? 이거 참, 내가 실례했군."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셜록의 태도에서 실례했다는 기미는 조금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는 공격의 마지막 마무리를 완벽하게 장식하기 위해 준비 동작을 하는 펜싱 선수처럼 숨을 한 번 들이키고 혀끝을 날카롭게 다듬은 후 말을 이었다.
"늙어서 제 뜻대로 물건도 세우지 못하는 형을 떠맡게 되어서 안됬군, 레스트레이드."
"셜록!"
존은 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너무 심하잖아! 어서 사과하지 못해?"
존은 어떻게든 거지같이 굴러가는 이 상황을 개선하려 셜록을 다그쳤다. 하지만 셜록은 도통 말을 듣지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내가 무얼 잘못했느냐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때 마이크로프트가 살짝 테이블 위로 몸을 굽히며 셜록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군?"
"다이어트의 부작용으로 성욕감퇴라도 된 모양이지? 그래, 그게 분명해."
셜록은 무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존은 평화롭고 오붓한 저녁식사가 전부 물 건너가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애초부터 홈즈 형제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옆에 끼고서 조용하고 편안한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오판을 내린 것이었다. 빌어먹을 셜록 홈즈!
"좋아."
다시 꼿꼿하게 허리를 편 마이크로프트는 놀랍게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야냥대는 기색도 억지로 웃음을 꾸며내는 기색도 없는 순수한 미소였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지? 라고 존은 생각했다. 즐거워보이기까지 하니 원!
마이크로프트가 미치기라도 한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격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래. 네 말대로, 내 나이와 운동때문에 약간의 성욕감퇴가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꾸나."
"가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일테니 오랜만에 진실된 대화를 나누어볼 수 있겠군, 마이크로프트."
"가정이란다. 물론 잘못된 가정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겠구나. 잘못된 가정일 뿐만 아니라 거짓이기도 하지. 왜냐하면 우리는 밤마다-"
느닷없이 시작된 선문답같은 대화를 참아내는 것도 모자라 마이크로프트와 레스트레이드의 밤을 불사르는 섹스라이프에 대해 떠들어내는 것까지 듣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존은-그는 안그래도 정상적인 저녁식사는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 있던 참이었다-더이상 참지 못하고 벌컥 성을 냈다.
"아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겁니까? 이왕 이렇게 된거 하시고 싶은 말씀만 빨리빨리 하시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구요! 더이상의 소란은 질색이니까요!"
존의 온순한 면모밖에 본 적이 없는 마이크로프트는 그의 항의에 약간 놀란 듯했으나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닥터 왓슨의 말이 옳아요. 이미 이 레스토랑에서 요기를 하기는 틀렸고 앞으로도 여기 오기에는 웨이터들의 눈총이 따가워서 안될테니 요점만 짚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주문도 하지 않고 넷이서 레스토랑이 떠내려가라 말싸움만 해대고 했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오랜만에, 아니 난생 처음으로 존과 마이크로프트가 의기투합하는 듯 보였다. 다음에 이어질 말을 미리 알았다면 존이 이처럼 기세좋게 나서지도 못했겠지만.
"그래서 닥터 왓슨과 내 동생은 원나잇 스탠드로 끝난겁니까?"
기습적인 회심의 일격에 미처 방비의 태세를 갖추지 못한 셜록은 의자에서 펄쩍 뛰어오를듯이 놀랐고, 마이크로프트는 그 꼴사나운 모습을 바라보며 속이 시원하다는 듯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존은 마이크로프트가 자꾸만 자신을 힐끗거리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또한 그의 미묘한 눈빛이 의미하던 바로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연민이었다! 자신에게 닥칠 처지를 모르고 벌판에서 태평하게 노니는 영양을 사냥하기 직전의 사자의 눈초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로프트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침대기술이 딸리던가요? 아마 그 점에 대해서는 왓슨 선생이 몸소 신경을 쓰셔야 될 겁니다. 원체 그쪽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말이죠. 부족한 동생을 떠맡기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송구스럽긴 개뿔이! 교활한 마이크로프트 같으니라고! 존은 아까에 이어 홈즈 형제에 대한 욕을 두번이나 하고 말았다.
"오! 설마...?"
마이크로프트는 연극적인 어조로 놀라는 체를 하더니,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셜록을 향해 연민의 눈길을 보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그 시선에 셜록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젠장, 난 발기부전따윈 없다고, 마이크로프트!"
온 식당에 셜록이 자신이 발기부전이 아님을 주장하는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집중되었다가 부자연스럽게 흩어졌음은 물론이다. 이제 평화로운 저녁식사건 긴장감넘치는 저녁식사건 완전히 글러먹었다. 물론 이 식당과도 영원히 안녕이다. 아마 이 근처로 발도 들이지 못할 것이다. 전부터 와보고 싶은 식당이었는데! 하여튼 홈즈 형제와 얽히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하고 속으로 불평을 늘어놓던 존은 레스트레이드가 입을 떡 벌리고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존이 급히 해명을 시도했다.
"겨, 경위님, 아닙니다!"
마치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용의자와 다름이 없었다. 존은 어찌나 놀랐는지 레스트레이드를 평소에 친근하게 부르던 '그렉'이라는 호칭 대신에 무심코 '경위님'이라고 부르고 말았다.
"아니, 그러니까 셜록이 발기부전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셜록과 전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아니 셜록은 발기부전이 아니긴 한데..."
횡설수설하는 존의 목소리에 여실히 드러나는 동요에 이제까지 시어머니와 올케 앞에서 움츠리고 선 며느리처럼 쪼그라들어 있던 레스트레이드는 감 잡았다는 표정을 하고 드디어 당당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가 그럴줄 알았어!"
승기를 잡은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째려보며 말했다.
"자네도 존과 사귀고 있었으면서 나한테 그따위 말을 할수가 있나 그래?"
셜록이 잠깐 사이를 두고-이 잠시의 간격은 경위에게 마이크로프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에 대한 확증이 되어주었다-조용히 대답했다.
"오햅니다."
"한 달 전이지 아마? 닥터 왓슨이 셜록과 그렉의 사건 현장 조사 과정에 불참했던 때가. 사건이라면 발벗고 셜록을 따라나서며, 셜록 홈즈의 블로거를 자칭하는 존 왓슨 선생이 어째서 그날따라 따라오지 않을 것일까? 아 그리고 그 전날에도 당당하게 케이스 하나를 해결한 둘은 펍에 가서 늘어지게 술을 마셨다지?"
마이크로프트가 씩 웃으며 능청맞게 덧붙였다. 셜록이 투덜거렸다.
"우린 그런 사이 아냐."
불벼락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부터 내리쳤다.
"말 한 번 잘했다. 그럼 우리가 무슨 사인데?"
존이 마침 잘 걸렸다는 듯 팔짱을 끼고 셜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놈의 몰래카메라때문인지 단순히 눈썰미로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나 이왕 그 일을 들춰낸 김에 존은 그동안 매듭짓지 못했던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짓고 싶었다.
존이 몰아붙이자 셜록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제 무덤을 파고 있는 거라고, 존."
"됐어! 마이크로프트 말마따나 쪽팔려서 다시는 이 식당에 발걸음도 하지 못할텐데 속시원하게 말이나 하자고. 그날 왜 그런거야?"
"그건...!"
셜록은 입을 열었으나 뭐라고 말도 못한 채로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셜록이 처녀를 덜컥 임신시키고 덜미를 잡힌 건달패라도 되는양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향해 질타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마이크로프트는 기분이 좋아진듯 싱글거리고 있었다. 열불이 터진 셜록이 목깃을 세워 코트 자락을 여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순간 누군가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알았어! 자네 대답은 잘 알았어. 이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바로 내가 원하던 바야."
셜록이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 존이 외투를 챙기며 쏘아붙였다.
"그리고 자넨 새 플랫메이트를 구해보도록 해!"
통첩을 날리고 돌아서서 씩씩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셜록은 코트를 여밀 생각 따윈 하지도 못하고 '기다려! 기다리라고!'하고 멍청하게 외치며 존을 뒤따라나갔다.
그 광경을 고소하다는 듯이 지켜보던 마이크로프트는 난데없이 일어난 통속적인 사랑싸움을 넋놓고 지켜보던 레스트레이드에게 말했다.
"누가 발기부전인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나요?"
레스트레이드는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