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마레/고양이/리퀘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http://mirror.enha.kr/wiki/%EC%B4%9D%EB%A6%AC%EA%B4%80%EC%A0%80%20%EC%88%98%EC%84%9D%EC%88%98%EB%A0%B5%EB%B3%B4%EC%A2%8C%EA%B4%80

 

 

 나는 제 14대 총리관저 수석수렵보좌관 존이라고 한다. 비공식 직책이긴 하지만 영국 총리의 참모진 중 하나로서 현재 재임 중인 마이크로프트 홈즈 경과 함께 다우닝가 10번지 관저에 머무르고 있다.
 나 자신의 유능한 실력에 힘입어 재무부 장관의 보좌관에서 일국의 수상의 보좌관으로 전격 승진하게 된 나이지만, 최근에는 한 가지 골칫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야옹."

 

 바로 저 녀석 때문이다. 구석탱이에 웅크리고 앉아서 심드렁하게 야옹거리기나 하는 저 고양이녀석! 그따위로 나지막하게 가르랑거린다고 해서 누가 거들떠볼 줄 아는가보지! ...아니 뭐 나도 고양이이긴 하지만.
 그래, 난 고양이다. 내가 지닌 직책의 본 업무도 총리 관저에 숨어있는 쥐를 소탕하는 일이지. Chief mouser이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자세로 퍼질러앉아서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연신 그르렁거리는 저 고양이녀석이 문제라는 것이다. 노랑 태비에 예쁜 파란색 눈을 가진 나와는 달리 저녀석은 음침하게시리 온통 시커먼 털색을 지닌데다가 덩치도 나보다 훨씬 크고 나태하기까지 하다. 쥐가 눈 앞에서 뽈뽈거리며 달려다녀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경질당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나저나 고양이 주제에 쥐도 못잡아서 경질된 녀석이 왜 아직도 총리관저에 빌붙어서 호의호식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전관예우라나 뭐라나. 인간들은 별 쓸데없는 걸 다 챙긴다니까.
 게다가 이름도 누가 지었는지 괴상하기 짝이 없다. 

 

 "셜록."

 

 어느새 뒤까지 바싹 다가와서 제 이름을 속삭이고 유리알같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어슬렁거리는 저 음습한 행동거지를 보라. 제 이름 생각하고 있는 건 또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는지, 셜록이라고 불러 운운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말 그대로 멍멍이다(개같다는 말은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제일 심한 욕이라는 것을 참고하자). 매일같이 저러니 아홉개나 되는 고양이 목숨도 남아나지 않을 노릇이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온몸의 털을 빳빳이 세우고 캬옹 하고 신경질적으로 울어대고 말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현 영국의 수상 마이크로프트 홈즈 경이 들어왔다.

 

 "하하, 오늘도 사이가 좋구나."

 

 느물느물하게 웃는 홈즈 경이 얄밉다. 사이가 좋긴 개뿔! 아무리 인간들이 고양이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 상황이 사이가 좋은 걸로 보일 수가 있어!

 

 "네가 그렇게 백날 야옹거려봐야 저 늙다리 변태가 알아들을 거 같냐?"

 

 저 싸가지없는 말뽄새 좀 보소. 하여튼 셜록...하고 짜증스럽게 그르렁거리다가 문득 고개를 쳐들었다.

 

 "근데 누가 늙다리 변태라는 거야?"

 

 어느새 또 식빵자세를 하고 앉은 셜록이 집무실로 향하는 마이크로프트의 뒷모습을 향해 느릿하게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누군 누구야, 저 늙은이지."

 

 존의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더욱 커졌다. 그 모습이 몹시 귀엽다고 생각하며 셜록이 말을 이었다.

 

 "가끔가다 방문하는 런던 경시청 경위가 왜 찾아오는 건지도 모르지?"

 

 존의 입이 빠끔히 벌어지며 귀엽고 촉촉한 연분홍빛 혀가 언뜻 보였다. 입가에 돋아난 하얗고 가느다란 수염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셜록이 막타를 날리려는 순간 당사자가 뒤를 따라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홈즈 경. 이렇게 자꾸 부르시면 곤란합니다."

 

 레스트레이드 경위였다. 난색을 표하며 걸어들어오던 레스트레이드는 한참 야옹거리고 있던 두 고양이들을 보고 미소를 띠며 다가와 각자 한 번씩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갸르릉거리는 존과 역시나 귀찮은 듯 멀뚱하니 쳐다만 보는 셜록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야옹아 안녕? 하고 쫑알거리는 레스트레이드더러 얼른 들어오지 않고 뭐하느냐며 채근하는 마이크로프트의 목소리가 들렸고 레스트레이드는 한숨을 푹 쉬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레스트레이드가 집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쾅 닫혔다.
 어쩐지 요란하고 단호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나서 존과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위화감 섞인 침묵도 잠시, 안에서 조근거리는 밀어가 새어나왔다. 셜록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은-그리고 본능적으로 조금 있으면 일어나게 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존은 패닉에 빠졌고 셜록은 티벳여우처럼 초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럼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떻게 신성한 일터에서!"

 

 존이 순진하기 그지없는 경악의 의미를 담아 야옹거리자 셜록이 흘낏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저 꼴 보기 싫어서 내가 쥐를 안 잡았던거지."

 

 그 말에 넋이 나가있던 존이 빼액 하고 날카롭게 야옹거렸다.

 

 "그렇다고 쥐새끼들이 돌아다니는 걸 내버려둔다는 게 말이 돼?"
 "그러면 경위가 싫어하거든. 따라서..."

 

 셜록이 고갯짓을 하며 가르랑거렸다.

 

 "저 안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짓거리도 일어나지 않는거고."

 

 존은 저도 모르게 귀가 쫑긋거렸지만 고양이 특유의 예민한 청각을 발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고개를 앞발 사이에 파묻었다. 그런 존을 바라보며 셜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털을 골랐다. 존은 재무부 장관 사옥에서 총리관저로 옮겨온 것이 잘한 일인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의심 섞인 눈으로 셜록을 슬쩍 쳐다보았는데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언제나처럼 거만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정하게 느껴지는 눈빛이다. 수컷고양이에게 같은 수컷이 얼마나 다정하겠냐마는. 그러고보니 저녀석 항상 야옹야옹거리며 시도때도없이 잘난체를 해대고 잔뜩 어지르기나 하고 밉상이 따로없지만 꽤 준수하게 생긴 것같...

 거기까지 생각하다 존은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요즘 한동안 암코양이 구경도 못했더니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발정기. 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애써 생각했다.

 

 '얼른 암컷고양이를 사귀어야겠다.'

 

 그리고 그런 다짐을 하는 존을 보는 셜록의 동공이 좁아지며 눈이 한층 밝게 빛났다. 앞으로 펼쳐질 존의 암담한 묘생(猫生)의 앞길을 밝히려는것처럼...

'BBC Sherlock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셜존짐]소년과 천사  (0) 2013.12.13
[셜록존/마레]윤리 위원회 사전교육  (0) 2013.12.13
[셜록존]Domination  (2) 2013.12.13
[셜록존]Gaze 上+下  (0) 2013.12.13
[마레]애견가  (0) 2013.12.13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