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Gaze 上+下

2013. 12. 13. 02:18 from BBC Sherlock/단편

셜록존/집사물/약수위

 

 

Looking off to the side is the submissive response.

 

 

 "어서 오게." 

 

 마차에서 방금 내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정중하게 목례했다.

 

 "반갑습니다."

 

 가볍게 손끝만 잡는 악수를 하고 남자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자신보다 반 피트 정도 키가 큰 남자가 저택을 둘러보는 것을 못본 척하며 호기롭게 그를 끌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사용하지 않아 덧문이 닫힌 지 오래된 창이며, 손질이 되지 않아 쇠락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건물을 그에게 오래 보게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모순된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저택의 모든 것을 관리하게 될 집사에게 저택의 면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꼭...흠모하는 선생 앞에서 필사적으로 흠결을 감추려 애쓰는 순진한 여학생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다. 그때부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 되어 앞뒤가 맞지 않는 횡설수설을 늘어놓기를 몇 분, 남자가 앞으로 쓰게 될 방에 다다르고 나서야 그것을 멈출 수 있었다.

 

 "앞으로 여길 쓰면 되네."

 

 남자가 들고 있던 가방을 침대 옆에 내려놓자 그제야 남자가 자신이 저택 안을 보여주는 동안 계속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다녔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미, 미안하네...미처 생각지 못했어."
 "뭐가 말입니까?"

 

 양손에 든 가방을 차례로 옮기던 그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서생처럼 하얀 피부에 정갈한 미모의 청년의 물음에 그의 앞에 선 자신은 더욱 초라해지는 것같아 얼굴을 붉힌다.

 

 "가방을...들고 다니게 해서 말이네. 무거웠을 텐데..."

 

 남자가 딱 잘라 말했다.

 

 "어차피 제가 할 일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런 것에 마음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선을 긋는 듯한 태도에 조금, 마음이 아프다.

 

 "왓슨 씨는 제 주인님이니까요."

 

 미묘하게 누그러진 어조에 기뻐져 저도 모르게 말하고 말았다.

 

 "존. 존이라고 부르게."

 

 남자는 고개를 까딱 하더니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도 셜록이라고 불러 주십시오...존."

 

 남자의 묵직한 저음이 울렸고, 귓볼이 벚꽃색으로 조금 붉어졌다.

 

*

 

 의가사제대를 하고 손에 쥔 보잘것없는 돈으로 한량마냥 런던에서 한정없이 향락을 즐기던 몰락 귀족 존 왓슨이 난데없이 서섹스로 돌아오게 된 것은 그의 누님의 부고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해리엇 클라렌스. 자식도 변변한 친척도 그 외의 피붙이도 없는 그녀는 클라렌스 경이 일찍이 작고한 후로 홀로 저택을 지켜왔다. 여인의 몸으로 혼자서 넓은 저택을 예전의 모습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몹시도 외롭고 힘든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입관 직전에 간신히 도착한 존이 본 누이의 시신의 얼굴에는, 쾌활하고 볼이 통통했으며 남편과 금슬이 좋았던 그녀의 생전 모습이라곤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 창백하게 야위어 애처로울 정도로 마른 그녀의 모습은, 슬프다기보다는 무서웠다.
 그래서 일부러 새로운 집사를 모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생각에 잠겨 있던 존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질문의 답은 '아니다'였다. 런던의 풍속주점에서 흔히 먹고 마셨던 화려하고 기름지지만 속이 텅 빈 껍데기같은 음식들보다 형편에 맞는 간소하고 담백한 음식은 훨씬 맛이 있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는 듯 자신을 빤히 응시해오는 셜록의 푸른 눈을 넋을 잃고 응시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존이 황급히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존이 답지않게 깨작거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신의 옆에 시립해서 자신이 식사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셜록의 존재가 그 이유였다. 도저히 속내를 파악할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이 포크를 움직이는 모양이라던가 무엇을 골라서 입에 넣는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은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런 눈길을 온몸으로 무방비하게 받고 있으면서도 기분만큼은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마치 목을 알맞게 옥죄이는 넥타이를 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핥듯이 끈적하게 전신을 훑고, 빠져나갈 틈새라곤 없이 답답하고 집요하게 자신을 노리는 것처럼 닿아오는 푸른 눈의 시선을 분명하게 의식하면서도 아예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말하자면, 길고 긴 마인드 게임을 펼치는 것처럼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말랑한 오믈렛과 그 안에서 녹아내리는 치즈를 오물거리는 것, 신선한 샐러드와 그 위에 뿌려진 단단하고 고소한 아몬드를 씹는 것, 잘 익어 바알갛게 육즙이 배어나오는 고기를 먹기 좋은 모양으로 잘라 입 안에 넣는 것... 그 모든 과정에 셜록의 시선이 드레싱처럼 곁들여지고 있었다. 셜록의 시선을 음식과 함께 씹어삼키는 것같았다. 아니, 셜록의 눈이 자신을 먹어치운다는 표현이 더욱 옳았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며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이 흡수당하는 과정을 하루에 세 차례나 겪는다는 것은 몽롱하고도 이상한 행복감을 존에게 선사했다.
 불편하게 여겨야 마땅할 시선을 기분좋은 긴장감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자신은 미쳐도 단단히 미친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야지만,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를 원하는 욕심많은 자신을 겨우 억제할 수 있다.
 멈춘 시선은 여전히 미동도 없다. 식사를 계속했다. 부드러운 빛을 반사하는 은식기가 달그락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

 

 "마리는 오래 전에 죽었다네."

 

 존이 말했다.

 

 "장티푸스를 앓았지. 아주 길고 힘든 나날이었어. 연약한 이였지만 오래 버텨내주었는데... 그때문에 완쾌될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가진 순간 그녀는 편안하게 잠들었지."

 

 담담한 투로 하는 고백을 셜록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리고 군대를 갔지...아니, 그녀의 죽음 때문에 입대를 한 걸까. 지금은 잘 모르겠네. 전쟁터에서의 일들이 워낙에 인상이 깊었는지 그 이전의 일은 안개처럼 흐릿하다네. 그때의 안락한 일상은 마치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아."

 

 낙엽이 떨어지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존이 셜록을 향해 웃어보였다.

 

 "왜 내가 사용인이라고는 자네 하나만 둔 채로 이 대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것인지 그동안 궁금해했을 것같아서 말이네."

 

 한동안 침묵이 내리깔렸다. 셜록은 여느 때와 같이 차분한 시선으로 존을 바라보았다. 존은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며 말라비틀어진 낙엽이 날리는 것을 응시했다.
 줄곧 묵묵하게 자신의 말을 듣고만 있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첫날,"

 

 둔중하게 울리는 아름다운 목소리.

 

 "반지를 끼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셜록의 말에 존이 무의식적으로 약지를 매만졌다. 수수한, 아무런 장식이 없는 금반지였다. 생각해보면 마리는 십년도 더 전에 세상을 떠났다. 왜 아직도 이 반지를 끼고 있는 걸까. 고집일까. 오기일까. 그도 아니면 옛날에 대한 향수일까.

 존이 반지를 낀 손가락을 움츠렸다 폈다 하는 것을 셜록은 흘깃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일반적인 안주인들께서는 새로운 집사가 오면 꼭 맞이하러 나오시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집을 관리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그러나 안주인분께서는 제가 이 저택에 도착한 첫날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가 있죠. 병환때문이거나, 돌아가셨거나."

 

 냉정하고 침착한 분석이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제가 섣불리 입에 올릴 만한 사안은 아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허한 웃음을 토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살면서 저절로 알게 되었겠지."

 

 내 아내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의문문인지 평서문인지 모호한 어조의 말에 셜록이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존이 낮게 웃었다. 잠깐 동안 허허로이 웃던 그가 웃음을 그치고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예의가 바르지만...그와 동시에, 무례하기도 하군."

 

 셜록이 고개를 갸웃 하더니 물었다.

 

 "그래서, 싫으십니까?"

 

 존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답했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네."

 

 한 박자를 놓친 것마냥 셜록이 조금 늦게 대답했다.

 

 "다행이군요."

 

 다시 정적. 무거워진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존이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무엇보다도 땡전 한푼 없이 낙향한 몰락 귀족에게 있어서 집사를 고용하는데 그리 많은 선택지가 남았을 리도 없고 말이야."

 

 미소짓는 존을 쳐다보던 셜록이 옆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The new covenant

 

한 번은 물었다. 

 

 "뭐라도 좀 들지 않겠나?"

 

 식사 도중이었다.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평온하며, 셜록의 은밀한 시선과 존의 묵인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순조롭게 흘러가던 시간의 흐름은 갑작스런 존의 물음으로 뚝 끊겼고, 셜록은 시중들기를 멈추었다. 빠르지만 경박스럽지 않게, 본연의 우아한 기품을 잃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던 셜록의 하얀 소맷부리의 사각거림이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셜록의 얼굴에 미미한 이채가 잠시 어렸다 사라지는 것을 존은 놓치지 않았다.
 그가 눈썹을 까닥인다. 존은 그것을 약간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웃음기 띤 시선과 셜록의 눈길이 마주쳤고 셜록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존의 속내를 낱낱이 읽어내려는 것처럼 약간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빤히 존을 바라보았고 느닷없이 시작된 그 눈싸움에 존이 서서히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을 드러낼 즈음 셜록이 입을 열었다.

 

 "요 며칠간 그걸 묻고 싶으셨던 겁니까?"

 

 이번엔 존이 놀랄 차례였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만 쳐다보았다고 생각했건만 셜록의 예민함은 상상 이상인 모양이었다.
 존은 살짝 헛기침을 하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자네가 무언가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말일세."

 

 셜록은 대답이 없었다. 두 사람의 간격을 메우는 것은 침묵뿐이었으나 어쩐지 그들을 감싼 공기는 한층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에 존은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함께 식사라도...?"

 

 존이 입술을 달싹이는데 셜록이 갑자기 존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급작스레 거리를 좁혀오는 것에 놀란 존이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렸지만 딱딱한 등받이의 감촉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어느새 존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셜록은 위압적인 태도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존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소름끼치도록 새파랗기만 한 그 눈은 마치 깊은 밤 나무둥치 사이로 빛나는 굶주린 늑대의 안광처럼 빛났고 존은 화살에 목줄기를 꿰뚫린 사슴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서슬이 퍼런 셜록의 기세에 좀처럼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존의 귓가에 문득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를 그다지 즐기지 않습니다."

 

 사뭇 차분한 어조였다.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나긋한 목소리였으나 긴장을 늦추기에는 일렀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던 존이 간신히 숨을 내쉬려는 순간 셜록이 존의 왼손을 억세게 움켜잡았다. 존은 숨이 멎을 것처럼 흡 하고 가쁜 숨소리를 내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들어올리며 셜록이 무심한 어조로 속삭였다.

 

 "하지만..."

 

 단단하게 마디진 손가락이 존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숨막힐듯이 얽어들어왔다.

 

 "당신이라면 구미가 당기는군요."

 

 귓가로 더욱 가까이 그의 숨결이 닿아왔다. 몹시요. 셜록이 속삭였다. 미온을 띤 숨결이 간지러워 존은 진저리를 쳤다. 부끄럽고 좋았다. 동시에 두려웠다. 결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셜록이 자신을 말 그대로 먹어치우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말도안되는 상상을 하며 환상에 가까운 두려움을 품는다. 그런 존을 좀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셜록은 소중한 인형에 코를 부비는 아이처럼 콧잔등으로 존의 귓불을 부드럽게 뭉갰다. 여전히 규칙적인 셜록의 숨결과 점차 가빠오는 존의 숨결이 뒤섞였다.
 하아.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신음과 함께 존이 셜록을 끌어안았다. 경련 때문일까, 그때껏 손에 쥐고 있던 은제 나이프가 바닥에 부딪히며 쟁그랑 소리를 내었다.

 

*

 

 식탁 위에 눕혀진 채로 서로를 갈구하는 키스만도 수백번을 하는 동안 존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새로웠다. 상대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나서의 안온하고 안정적인 교감이 아닌, 그야말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대와의 섹스. 존이 셜록에 관해 아는 것이라곤 이름이 셜록 홈즈라는 것과 그가 자신의 사용인이라는 것뿐이다.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시죠."

 

 셜록의 말에 존은 푸흐흐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 괴팍하고 놀라울만큼 명석한 분석의 대가이기도 하지. 하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는 남자라는 것이었다. 주인과 하녀의 스캔들로 여차저차 얼버무릴 수도 없는 것이다. 위험천만한 도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셜록이 그의 손을 잡았을 때, 그가 살아온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도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박동했다는 것이다.
 관계의 후폭풍에 대해 미리 염려하기보다는 관계의 물꼬를 트는 데에 집중하자고 존은 생각했다. 존의 내심을 읽어낸 듯 셜록은 불안감을 떨치려는 듯 매달려오는 존의 키스에 호응해 주었다.
 혀가 또 한 번 엉켰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그들은 서로를 만끽할 수 있었으나 기다림으로 인해 고조된 갈증은 쉽사리 해소되지 못하고 끈덕지게 그들을 괴롭혔다. 한참 후에야 간신히 입술을 떼었다. 셜록은 그 와중에도 존의 베스트 단추를 풀러내리고 있었다. 촘촘하게 잠긴 단추가 하나씩 풀리는 동안 존은 스스로 느슨하게 여민 넥타이를 거칠게 벗어던졌다. 셔츠를 거의 찢어발기듯이 양 옆으로 벌리고 나서 차디찬 셜록의 손이 셔츠자락 안으로 쑥 들어갔다. 정열로 얼룩진 육체가 몸서리쳤다. 바르르 떠는 존에게 셜록이 말했다.

 

 "말랐군요."

 

 존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그는 나이가 들었다. 금발에는 흰머리가 드문드문 섞여나오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보송보송한 피부의 미소년과 감히 비할 수도 없다. 불현듯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는 셜록의 시선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볼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걱정을 불식시키려는 것처럼 셜록은 그 딴에는 다정한 태도로 입을 맞추어오며 말했다.

 

 "또 하잘것없는 생각을 하는 중이네요."

 

 입술에서 뺨으로, 뺨에서 불거진 목젖을 더듬고, 목에서 가슴팍으로 옮겨간 입술. 질척한 애무에 흐늘흐늘해진 존이 신음을 입가로 줄줄 흘리는 것을 면밀히 살피며 셜록은 이빨을 세워 유두를 긁어내렸다. 예민한 부분에 가해지는 애무에 당황해하며 존이 움찔거리자 셜록이 그를 붙잡고 내리눌렀다.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존을 지켜보며 셜록 또한 점차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지 벨트를 끌르고 부푼 앞섶을 풀어헤치며 생각했다. 자신이 이제껏 이토록 충동적인 욕망에 몸을 맡긴 적이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다.
 셜록은 남은 이성을 끌어모아 자신의 아래에서 허덕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몰락 귀족의 후예. 평범한 독신남. 평범한 외모.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평범하지 않다. 자신을 자신답지 못하게 만드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것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인가?
 나다움이라...하고 속으로 읊조리며 차가운 시선으로 존을 훑어보던 셜록은 문득 존의 왼손에 눈길이 갔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줄곧 왼손 약지에 자리잡고 있던 금반지가 식탁 촛대의 불빛을 반사하며 은은히 빛났다. 갑자기 배알이 뒤틀린 셜록은 지금껏 하던 성찰적인 고민 따위는 집어치우고 존의 손을 잡아당겼다. 존은 영문을 몰라하며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존의 손을 눈 앞까지 끌어당겨 정욕과 함께 미묘한 질투가 뒤섞인 눈빛으로 응시하던 셜록은 영문을 몰라하는 존을 흘끗 쳐다보고는 혀를 내어 존의 손가락 끝에 갖다대었다. 축축하지만 흥분되는 감촉에 존이 흐읏, 하고 나직하게 신음했다.


 한동안 할짝거리는 젖은 소리가 홀에 조용히 울렸다. 손가락을 혀로 휘감으면서도 셜록은 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상기된 뺨을 하고 잇새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억누르는 존도 마찬가지였다. 뭉툭한 손가락 끝에서 손가락 뿌리 부분으로 옮겨간 혀는 한결 느릿하게 그러나 그만큼 더 자극적으로 움직이며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의 갈퀴 부분을 간질여대었다. 동시에 셜록은 금반지의 틈새를 혀로 적시고 은근하게 눌렀다. 낡고 흠집난 금반지가 타액에 젖어들며 미끌미끌해졌다. 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한순간, 좀처럼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던 반지가 놀라우리만치 쉽게 벗겨져나왔다.
 입 안에서 맴도는 금반지를 뱉어낸 셜록은, 여전히 존을 향한 눈길을 거두지 않고 반지를 살며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두 남자가 뒹구느라 엉망이 된 식탁 한옆에 놓인 금반지는 몹시도 초라하게 빛났다.
 존은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한몸처럼 끼워져 있던 반지가 사라진 약지손가락의 뿌리는 다른 손가락보다 약간 잘록했고 덜 그을려 희어보였다. 그렇다고 아쉽게 느껴지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조금은 홀가분한 느낌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하던 존은 셜록의 시선을 눈치챘다. 자신을 바라보며, 어쩐지 눈치를 보는 듯한 그에게 존은 착잡함이 드러나는 미소를 설핏 띠어보였다. 그러나 역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셜록을 살짝 끌어당겼다.

 식사는 계속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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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