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Sherlock/단편'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12.08.22 [셜록존]폭우
  2. 2012.08.22 [셜록존]봄눈
  3. 2012.08.22 [셜록존]베이커 가의 무료한 오후 2

[셜록존]폭우

2012. 8. 22. 23:40 from BBC Sherlock/단편

셜록존/단편/100제/폭우

 

 탕!

 

 빗줄기가 창문을 때렸다. 유난히 요란하게 들리는 소리에 존이 고개를 들어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창문에 부닥치는 소리가 불협화음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정적을 깨부순다. 창문에 진로를 가로막힌 빗방울은 잠시 머물렀다가 다른 빗방울들과 함께 몸을 불리고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빗소리는 간헐적으로 멎어드는 듯 하다가 금세 다시 커진다. 존은 잠시 그 소리를 멍하게 듣고 있다가 다시 손에 든 신문으로 고개를 숙였다.
 눈은 신문을 향하고 있지만 그의 신경은 문으로 쏠려 있다. 참호에서 곧 몰려올 적의 폭격을 기다리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 것 마냥 그의 숨소리는 조용하다. 적의 폭격은 언제인가? 지금? 아니, 조금 후에? 전장에서 단련된 감각은 잔잔한 현실 속에서 더욱 날카롭게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신문 한 페이지를 넘긴다. 읽지도 않은 페이지를. 발그락거리는 종이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잠시 들렸다가 잦아든다. 비는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존의 청각 신경은 문 밖과 한 층 아래에서 나는 소음을 빠짐없이 캐치한다. 지나치게 내리퍼붓는 비 때문에 손님은 없다시피 하다. 항상 분주했던 허드슨 부인도 오늘은 조용하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셜록은 어딜 나간 걸까.

 

 존은 물음을 던진다. 던진 물음은 물수제비처럼 몇 번의 파문을 수면 위에 만들고 곧 사라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수면 속으로.

 

 그는 신문을 내려놓았다. 한 쪽 손으로 머리를 괴고 멍하니 시선을 고정한다. 비 오기 직전의 하늘처럼 흐린 하늘색인 그의 눈은 천천히 움직인다. 눈동자의 움직임은 언제나 그 궤적을 달리한다. 아니, 그저 순서만 다를 뿐이다. 선택지는 정해져 있고 순서만 다를 뿐이다. 그가 쫓는 궤적이란 이 집 안에서의 셜록의 행동 경로이다. 소파에 누워 있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존의-컴퓨터를 만져대고 있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책상 앞의 의자에서 멈춰선다. 가끔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것은 존의 비밀스런 유희이다. 그냥 자기 컴퓨터를 쓸 수도 있는데 IP추적의 위험성을 논하며 굳이 존의 컴퓨터를 고집하는 그의 행동은 그와의 동거 초반에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지금은 둘만의 암묵적인 게임이다. 셜록이 새로운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 그의 행동이 얼마나 웃긴지 그도 알아야 한다. 고개를 기우뚱 한 채로 알아듣지 못할 내용을 중얼거리다가 문득 고개를 휙 돌려 존을 빤히 바라보며 단서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 코를 킁킁대고 돌아다니며 간식이 숨겨진 곳을 알아내려는 강아지같다는 생각에 존은 몇 번이고 웃고 싶다. 그러나 셜록의 행동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것보다는 셜록이 어린아이와도 같은 기이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는 편이 더욱 즐겁다는 생각에 그는 웃음이 새지 않도록 입술을 꾹 다문다.

 

 존의 눈동자가 의자를 떠나 잠시 방황한다. 이 방에는 다 쫓기 어지러울 정도로 셜록의 향기가 배어있다. 어지러울 정도로? 그래, 어지러울 정도로. 쏟아진 향수의 향기가 휘발하는 것에 숨막혀 죽을 정도로.
 그러다 그의 눈은 창 가에 비뚜름하게 세워진 악보고정받침대에서 멈춘다. 오선지 위에 산만하게 휘갈긴 음표. 기계처럼 차갑고 건조한 그에게서 나오는 선율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다. 이성에 억눌린 감성의 분출구이기라도 한 듯 한없이 부드러운 선율. 셜록이 아이린의 사망을 애도하는 음조를 자아내고 있을 때 그는 얼마나 가슴이 타들어갔던가. 그건 분명 질투였다. 기묘한 질투는 그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바이올린. 바이올린이다. 셜록은 바이올린을 아낀다. 마치 하나뿐인 여동생을 예뻐하는 모양으로 아낀다. 낡은 바이올린을 다루는 그 손길마저 부드럽기 그지없다. 하얀 손가락이 현을 지그시 짓누를 때 존은 그 손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더, 더 눌러줘. 손가락뿐 아니라 손바닥 전체로. 내 목을 그 손으로 감싸고 천천히 눌러줘. 숨구멍을 조여줘. 차갑고 무자비하게 목숨을 앗아가줘.

 

 냉혹한 탐정의 손아귀는 언제쯤 자신에게로 덮쳐올까.

 

 존은 또다시 질문한다. 이번 질문은 수면 위에 파문을 형성하지 못하고 풍덩 소리와 함께 가라앉는다.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끝도 없이 가라앉는다. 질문은 힘을 잃고 흐물텅거리는 젤리처럼 흔들리는 물 속에서 물결과 함께 흔들리고 밑바닥에 가까스로 닿아 흙먼지를 살짝 일으키고 자리를 잡는다.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고스란히 그것을 덮어쓴다.
 그 주변에는 비슷한 모양으로, 둥글넙적한 모양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물 속에서 잠자는 질문이 소복하다.

 

 머리를 괴고 있던 손에 피가 통하지 않아 둔통이 느껴지는 것에 존은 손을 뺀다. 앞으로 가지런히 모아 허벅지 위에 다소곳이 놓는다. 유리창을 쳐다본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문을 쳐다본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적.
 정적뿐이다.
 치밀하게 짜인 정적의 그물 속에서 느닷없이 이명이 창처럼 존을 찌른다. 귓속을 파고드는 이명에 존은 귀를 막는다. 머리를 감싼다. 지끈지끈하다. 이미 이명에 찔린 머리는 보이지 않는 피를 쏟아낸다. 존은 머리를 푹 숙인다. 이빨이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앙다문다.

 

 아아, 셜록.

 

*

 

 "2102호 병실, 진통제 가지고 오세요."
 "또인가요?"
 "항상 그렇듯이."

 

 지시대로 진통제를 챙긴 여자는 잠긴 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는 웅크린 형상이 있다. 환자다. 여자는 환자를 덮고 있는 이불을 조심스럽게 들춘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여자는 매듭처럼 감겨 머리를 꼭꼭 감싼 팔 한 쪽을 떼어낸다. 야윈 팔은 쉽게 여자의 뜻대로 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으로 약하게 숨을 뱉어내며 눈물을 흘리는 환자의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여자는 팔을 똑바로 편 후 진통제를 주사한다.
 환자를 바르게 눕힌 여자는 구겨진 이불을 다시 펴 그의 몸에 덮는다. 문득 여자의 손이 환자의 형편없이 헝클어진 머리칼로 향한다. 닿을락 말락하다가 여자는 결국 손을 뗀다. 올 때처럼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병실을 나간다.
 여자는 문을 잠근다. 푸른 빛이 감도는 금속 손잡이에 여자의 간호사 유니폼 빛깔이 비친다. 핑크. 남자의 머리칼은 처량하게 창백한 금발이었지.
 철컥, 하고 문이 잠겼다.

 

*

 

 존은 밀려들던 두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내렸다. 약이라도 한 것처럼 몽롱한 느낌. 존은 소파 등받이에 나른하게 몸을 누인다. 얼굴에는 힘없는 미소가 떠오른다. 눈은 감겨있어 그가 진정 웃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감긴 눈 사이로 투명한 물방울 하나가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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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

[셜록존]봄눈

2012. 8. 22. 23:39 from BBC Sherlock/단편

셜록존/단편/100제/4월에 눈이 내렸다 + 너와 이어지는 그 순간

 

 4월에 눈이 내렸다. 누가 들으면 미친 소리인 줄 알겠지만, 이건 현재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지극히 담담하게 축약한 하나의 문장이었다.
 셜록은 놀랍게도 위의 문장만큼이나 담담하게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긴 그로서는 지구가 자전을 하든 공전을 하든, 둘다 하든 둘다 하지 않든 간에 자기와는 무관한 일로 여기니까 말이다. 하물며 봄에 눈이 오건 비가 오건 우박이 쏟아지건 간에 걱정을 할 턱이 없다. 그러나 일반인의 사고방식을 지닌 존은 셜록처럼 무덤덤하게 굴 수 없었다. 창문을 내다보며 간간히-드디어 말세가 도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미의-한숨과-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경의 아름다움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의-탄성을 번갈아 뱉어내는 존에게 셜록은 말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하지만, 하고 존은 그를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셜록과 말싸움을 해봤자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기력 낭비를 하는 대신 그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찔끔 오다 마는 것도 아닌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 바깥은 때아닌 눈으로 인해 조용하다. 사람들은 옷장 깊숙히 집어넣은지 꽤 된 겨울옷을 다시 주섬주섬 꺼내어 입고 돌아다닌다. 제설차가 이미 한 번 왔다 갔지만 워낙 험악한 기세로 내리는 눈 탓에 전혀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속도를 더해 더욱 두껍게 쌓여가는 눈 때문에 힘겹게 바깥걸음을 했던 사람들마저 집과 건물 안으로 꽁꽁 숨어들었다.
 이렇게나 내리는 눈의 장점은 범죄자들의 발마저 묶어놓는다는 것이다. 덕분에 존과 셜록도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을 잠시 멈추고 오랜만에 느긋한 기분으로 집에 머무를 수 있었다.
 어느덧 느지막한 오후가 되어서야 눈이 멈추었다. 바깥은 인적없이 고요하다. 과연 이 곳이 분주함의 대명사인 런던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존은 덩달아 차분한 기분이 되어 약한 김을 피워올리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어쩐지 차의 맛도 훨씬 좋은 것 같은 기분에 존은 눈을 살며시 감고 차를 음미하며 미소를 살짝 얼굴에 띄웠다. 가끔은 이런 여유도 좋지, 라는 생각을 하며 존은 눈을 다시 뜨고 찻잔을 차받침에 내려놓았다. 사기그릇이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린다.
 그와 달리 셜록은 미묘하게 부루퉁한 기색임을 존은 금세 알아챘다. 휴대전화의 화면을 터치하는 손길이 유난히 무뚝뚝하다. 분명 자기를 고양시키는 사건이란 것이 없으니 심통이 난 것이겠지. 존은 그런 셜록의 괴상한 사고방식도 오늘만큼은 밉게 보이지 않는다. 미묘한 웃음기를 띤 채 존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셜록이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셜록이 갑자기 일어나 평소처럼 코트를 걸치기 시작했다. 존이 깜짝 놀라 물었다.
 

 "어딜 가는거야?"
 "뭐겠어?"

 

 사건이군, 하고 중얼거리는 존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셜록을 코웃음을 쳤다. 눈이 그치자마자 어느 유난히 성실한 범죄자가 또 살인을 저질렀는지 레스트레이드의 문자메세지가 왔기 때문이다. 눈이 왔으니 당연히 자취가 더 쉽게 남아야 정상이건만-경찰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쓸모있는 증거가 단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무흔 살인'이라고 레스트레이드는 다소 멋진 지칭을 하며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자신의 냄새를 뚝뚝 흘리고 다니는 족속. 셜록은 그 대단하다는 현장을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어서 현장으로 날듯이 달려가 지금쯤 안심하고 있을 범인의 꼬리를 쫓아 은밀히 그를 추적한 후 뒤에서 목덜미를 한 번에 물어뜯고 방심하고 있었던 사냥감을 희롱하며 비웃고 싶었다.
 바깥에 폭설이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한 셜록은 겨울 무렵이면 항상 두르고 다니던 회색 목도리를 찾았다. 그런데 대체 그 목도리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도무지 셜록의 눈에 띄지 않았다. 셜록은 부아가 치밀어 올라 온 거실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이러다가는 더욱 목도리를 찾기 힘들어질 정도로 방 꼴이 엉망이 되어가는 순간 존이 셜록을 툭툭 쳤다.

 

 "뭐야?"

 

 사납게 고개를 돌린 셜록의 목에 포근한 것이 감겨왔다. 셜록이 찾던 그 목도리다.

 

 "그러니까 내가 방 청소 좀 하고 살자고 했잖아?"

 

 툴툴거리면서 존은 셜록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매어준다. 항상 셜록이 목도리를 매는 방식대로 심플하게, 둥글게 고리를 만들어 목도리 끝을 통과시킨다. 고리 부분에 잡힌 주름을 살짝 피고 다 됐다는 뜻으로 톡톡 매만진다.
 셜록은 어색하게 목을 뻣뻣하게 굳히고 존이 목도리를 둘러주는 모양새을 바라보았다. 짧은 금발이 덮인 동그란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문득 어떤 욕망이 솟구친다. 아까 전까지 셜록의 뇌리에 빠르게 번져나가던 얼음과 같이 차가운 욕망이 아니다. 고개를 내려 입술로 그 머리칼 사이를 헤집고 부비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 이건...보다 따스한 것이다. 팽팽히 긴장한 마음이 노곤해지는 온도만큼의 따스함. 그러면서도 새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셜록의 내부에서 이성과 충동이 격렬히 한 판 대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이 존이 고개를 들어 셜록을 쳐다본다.

 

 "가야지?"

 

 존의 맑은 눈을 보는 순간 그의 욕망이 더 큰 무언가를 만나 사그라진다. 사랑? 셜록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떠올렸다가 빠르게 그 단어를 뇌리에서 지운다.
 셜록은 큼, 하고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존, 자네도 단단히 차려입어, 라고 속삭이고는 먼저 계단참으로 휭하니 가버린다. 순간 존은 용케도 셜록의 뺨을 물들인 홍조를 본다.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존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존이 셜록의 볼에 떠오른 홍조에 대해 잠시 고찰하기를 보류하고 주섬주섬 점퍼를 챙겨입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셜록은 이미 본디의 핏기 하나 없는 얼굴색을 되찾은 지 오래였다. 아까 본 광경이 잠깐의 착시 현상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셜록의 얼굴은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존이 221b의 문단속을 확인하고 셜록에게로 다가오자 셜록은 기다렸다는 듯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안에 들어앉은 그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마치 그들이 두 번째로 만났을 때 처음으로 함께 사건 현장으로 향했던 것처럼. 존은 셜록에게 레스트레이드가 보낸 사건의 내용이 담긴 문자가 보고싶었으나 조각상처럼 굳어버린 셜록의 면전에 대고 핸드폰 좀 보여달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색한 분위기다. 셜록은 차창 밖을 내다보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존은 셜록의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기보다는 차라리 레스트레이드에게 직접 설명을 듣는 편을 택하고 입을 계속 다물고 있기로 결정했다.
 설마 오늘 내내 저러지는 않겠지, 라는 불길한 생각이 살짝 들었으나 존은 얼토당토않은 생각이라며 그 예감을 무시했다.

 

*

 

 다행히도 셜록은 사건 현장에 도착해서 입을 열기는 했다. 그러나 차라리 입을 다물어줬으면 할 정도로 신경질적인 말을 툭툭 뱉어내는 바람에 경찰들은 불쌍하리만치 고초를 겪었다. 게다가 셜록이 오기 전 앤더슨이 경감을 졸라 사건 현장에 먼저 들어가 수사를 한 것이 어떻게 흔적이 남아 셜록의 눈에 띄었는지 셜록은 이럴 거면 자기를 왜 불렀느냐고 레스트레이드에게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사건 해결의 우선 순위는 경찰에게 있다는 철저히 맞는 말을 하는 동시에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을 달랬으나 셜록은 막무가내였다.

 

 "이럴 거면 앤더슨이랑 살림이라도 차려요! 아주 둘이 잘 먹고 잘 살라구요!"

 

 누가 보면 애인의 바람을 의심하며 땡깡을 부리는 듯한 셜록의 행동 때문에 낯이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존은 셜록을 제지했다.

 

 "셜록, 적당히 좀 해."

 

 다음 순간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토록 날뛰던 셜록이 존의 말 하나에 잠잠해진 것이다. 양처럼 순해진 셜록의 태도에 누구보다 놀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존이었으나 존은 애써 경악을 드러내지 않고 셜록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들어가서 한 번 훑고 나오자고."

 

 셜록은 존을 빤히 바라본 후 순순히 사건이 일어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뒤따라 들어간 레스트레이드는 위생복을 입고 있는 존이 꾸물거리는 사이에 셜록이 또다시 난동을 피울까 무서웠는지 연신 열린 문 사이를 쳐다보며 존이 어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

 

 알고보니 앤더슨이 남겨놓은 흔적이라는 게 고작해야 발자국 두어 개-게다가 사건 수사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도 아니었다-라는 것을 안 존은 셜록을 호되게 꾸짖고 싶었으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화를 참았다. 존의 기분도 모르는 도노반은 '저 freak이 어떻게 된 거죠? 당신 알고보니 대단한 사람이었군요'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면서 존의 속을 알게 모르게 긁어놓았다.
 셜록은 얄밉게도 아까 전까지 깽판을 치던 기색은 싹 지운 채로 평소와 다름없이 현장 감식을 하고 용의자의 범위를 대폭 축소시켜놓았다. 레스트레이드는 그것만으로도 고마운지 수고했어, 한 마디를 남기고 야드로 향했다.
 존은 셜록의 말도 안되는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나 그보다 먼저 휘적휘적 걸어갔다. 셜록은 자기가 잘못한 건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말 없이 존을 쫄래쫄래 뒤쫓아왔다.
 

 다시 택시을 잡아탄 둘은 221b로 들어가기 전 골목까지 정말이지 싸늘한 침묵을 유지한 채로 도착했다. 그때 둘의 눈치를 보던 택시기사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저, 손님."

 

 존이 택시기사를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이 앞에 지금 제설작업때문에 차량 운행이 통제된답니다. 제설차가 아직 안와서...요 앞으론 걸어가셔야 되겠는데요."

 

 셜록은 군말없이 택시비를 지불하고 먼저 내렸다. 존도 뒤따라 택시에서 내렸다.

 

 차에서 나와보니 그 사이 이 근방에 눈이 더 온 듯 밟히는 눈의 깊이가 발목을 훌쩍 넘어섰다. 푹푹 소리를 내며 힘겹게 앞서 걸어가던 걸어가던 셜록이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 것인지 비틀거리다가 옆쪽으로 푹 고꾸라졌다. 옆쪽에 벽이 있으면 그걸 짚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 텐데 그가 넘어진 쪽은 하필 골목길이 나 있는 쪽이었다.
 존은 거리를 둔 채 멈추어 서서 그가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가길 기다렸다. 그러나 툭툭 털고 일어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누운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존은 셜록이 얼음이 언 딱딱한 바닥 쪽에 넘어져 뇌진탕 증세를 겪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생각이 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에 눈이 온지 꽤 긴 시간이 흘렀으므로 아래쪽에 내린 눈이 충분히 얼었을 수도 있었다.
 가슴이 덜컹한 존은 걸음을 빨리 하여 셜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셜록은 대자로 누운 채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존은 셜록이 신경질을 낸 일로 꽁해 있었던 자신의 속 좁음을 반성하며 셜록 옆에 앉아 그의 상태를 살폈다. 바지 종아리 부근에 눈이 엉겨붙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셜록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움직여보던 그는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셜-"

 

 죽은 것마냥 누워있던 셜록이 갑자기 팔을 뻗어 존을 자신의 품 안으로 가두었다. 마침 고개를 셜록의 상체 쪽으로 수그리고 있던 존은 급작스레 자신을 잡아당기는 셜록때문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셜록의 몸 위로 엎어졌다.
 둘의 눈이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마주쳤다.
 두 눈의 시선이 찰나간 마주치고 그 거리가 서서히 좁혀졌다. 셜록의 찬 손이 존의 뒤통수를 감싸고 그를 천천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던 존은 "You-"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존이 말문을 여는 즉시 셜록이 그의 입을 막았다. 그 자신의 입을 사용해서.
 오랜 시간 눈 속에 파묻혀 있던 탓에 차가워진 셜록의 입술이 존의 입술과 맞닿았다. 존은 여전히 뭔가를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셜록의 손은 존의 뒷머리를 완고하게 쥐고 놓지 않았다. 셜록의 투명한 청회색 눈이 존을 직시했고 존은 그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셜록의 품 속에 갇힌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입술과 입술 틈새를 간지럽히는 셜록의 혀의 집요함을 견디지 못한 존은 눈을 감고 입술을 벌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존의 입술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혀는 막상 안으로 들어오자 서툴게 움직일 뿐 진전이 없었다. 한참을 미적거리는 셜록의 혀의 감질나는 움직임에 서서히 묘한 갈증이 일기 시작한 존은 셜록의 머리를 자기 쪽으로 잡아끌었다. 존이 세게 끌어당긴 때문에 존이 셜록의 위에 얹혀 있었던 자세가 역전되어 이제는 셜록의 상체가 존이 누워있는 몸 위에 겹쳐졌다. 눈이 잔뜩 묻은 셜록의 곱슬머리가 아래로 늘어지며 존의 뺨과 입술 사이로 눈송이 몇 개와 차가운 물방울이 스몄다. 존은 셜록을 꼭 잡고 그의 입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혀를 놀렸다. 그동안의 경험을 대변이라도 하듯 그의 혀는 셜록의 입 안에서 과감하게 휘돌며 셜록의 넋을 빼놓았다. 부끄럽게도 존의 끝내주는 키스 테크닉에 황홀경에 빠진 셜록은 가만히 존의 움직임에 순응하거나 미약하게 혀를 떨 뿐이었다.
 누운 존의 실루엣에 따라 푹 파인 눈구덩이의 가장자리가 둘의 열기로 인해 녹아내릴 무렵 둘은 입술을 떼었다. 존은 그제야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온 셜록의 얼굴은 이보다 더 빨개질 수는 없을 정도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직 진한 키스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그 얼굴에는 흥분의 기색이 역력히 남아있었다. 존의 얼굴도 상기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중 셜록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켜 눈더미 속에서 일어났다. 코트 앞뒤에 묻은 눈자국을 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셜록의 뒷모습을 황망히 쳐다보던 존은 황급히 몸을 일으킨 후 그를 따라가며 말했다.

 

 "셜록! 이게 무슨-"
 "Don't say a word, John." 

 

 셜록은 목을 코트깃과 목도리 사에 푹 파묻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존도 그를 뒤따라가다 말고 멈춰섰다. 셜록이 몇 번 숨을 거칠게 들이마시더니 다소 큰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존은 영문을 모른 채 셜록이 짧게 내뱉은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물었다.

 

 "뭐가 말이야?"

 

 셜록이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키스한 거."
 

 ...알다시피 눈은 소리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 게다가 셜록의 목소리는 위축된 탓에 나직했다. 그 때문에 셜록의 말을 듣지 못한 존이 다시 물었다.

 

 "뭐라고? 안 들려."
 "키스한 거!"

 

 셜록이 참다못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이번에는 지나치게 큰 목소리로 외친 탓에 동네의 이웃 몇몇이 무슨 소란인가 싶어 창문을 빼꼼히 열고 대쳬 밖에서 무슨 짓거리들인지 살펴보다가 두 남자가 어색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광경을 보고는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몇 번 주억이고는 창문을 다시 닫았다. 그들의 시선을 견뎌내던 존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셜록과 함께 다니는 동안 둘이 사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은 것이 몇 차례였던가. 그런 의심과 질문을 하도 받다보니 정말로 게이가 된 것일까?
 존은 동네 사람들이 전부 관심을 텔레비전 등의 관심거리로 눈을 돌리길 기다린 후 천천히 셜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눈 쌓인 보도블럭을 밟을 때마다 푹푹 패이는 소리가 사박거렸다.

 

 "네가 미안해할 건 그게 아닐텐데."
 

 셜록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존은 보란 듯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넌 오늘 아주, 아주 말도 안되게 행동했어.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말이야."
 "오."

 

 셜록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멍청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존은 문득 셜록의 코트 뒷자락에 묻은 눈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목덜미부터 등판, 그리고 밑단 부분까지, 꼴사나울 정도로 눈과 눈 녹은 물로 범벅이 된 더러운 코트. 셜록은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존은 셜록 바로 옆까지 다가갔다. 셜록은 존이 그의 옆까지 다가와 발걸음소리가 멈추는 것을 들었다. 그는 입을 떼었다.

 

 "그래서, 키스한 거는?"
 "?"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존은 순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머뭇거리던 존은 우물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Well,-"

 

 존이 뭔가 말하려는 것을 가로막고 셜록이 평상의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다음은 언제?"
 "다, 다음이라니?"

 

 존이 저도 모르게 더듬거렸다. 셜록은 태연하게 말했다.

 

 "글쎄. 그게 뭘까."

 

 그리고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까 전까지의 다급한 걸음이 아니었다. 존은 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때 셜록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빠른 속도로 걸어오던 존이 급작스레 뒤돌아선 셜록의 가슴팍에 푹 파묻혔다. 차가운 코트 자락이 어울리지 않게도 그를 포근하게 감쌌다. 셜록이 그를 안고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와 마찬가지로 젖은 머리에 입술을 살포시 얹고는 잠시 부빈 후에 그를 놓아주었다.
 셜록이 221b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존은 셜록이 입술을 얹은 그 자리에 손을 얹었다. 잠시 그렇게 서있던 그는 셜록이 221b의 문을 열고 현관에서 존이 오길 기다리는 것을 보고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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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스MK-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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