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레존/마존/짐존/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AU

 

 존은 셜록을 뒤쫓았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걸어도 셜록의 뒷모습은 그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선천적인 다리 길이 차이때문인지, 아까 전 목격한 광경 때문에 화가 난 셜록의 빨라진 걸음 속도와 넓어진 보폭 때문인지 그와의 거리를 좁히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같았다.
 잰걸음을 놀리던 존은 다리를 삐끗하여 넘어지고 말았다.

 

 "윽!"

 

 의가사제대의 원인이 된 쪽의 다리가 꼬인 것이 원인이었다. 항상 절뚝거리던 것이 하필 지금 재발한 것인지 아무 이유 없이 무척이나 저리고 아픈 것이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단 꼬인 다리를 제대로 바로잡고 임시 방편으로 주물러 보았지만 찌르는 듯한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이대로 셜록과는 영영 안녕인가 싶어 절망적인 심정으로 고개를 들어 셜록이 가던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때 존의 눈에 보인 것은, 그를 향해 급히 달려오는 셜록의 모습이었다.

 

*

 

 아무리 셜록과 존이 열성을 다해 다리의 통증을 덜려고 노력해도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더해만 갔다.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새벽에 가까워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택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존은 셜록의 등에 업혀 호텔로 향했다.
 셜록은 존을 업고 한참 걸어가는 와중에 제길, 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존은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빠졌다. 나를 업고 가는 것조차 짜증이 난다는 뜻일까?
 존은 셜록에게 쏘아붙였다.

 

 "됐습니다. 그렇게 나를 업기 싫거든 내려놓고 혼자 가요."

 

 셜록이 곧바로 대꾸했다.

 

 "그게 아냐!...길을 잃었다고."

 

 존은 셜록의 등 위에서 눈을 깜박였다. 런던의 도로 사정에는 해박하던 셜록도 역시 파리에 와서는 길을 잃기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왜인지 아까까지도 화가 치밀던 것이 누그러졌다. 존이 어조를 부드럽게 하고 말했다.

 

 "그럼 차라리 여기 있다가 가요. 이대로 업고 가봤자 셜록 당신 체력만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존의 제안에 셜록은 잠시 멈춰서서 생각하다 말했다.

 

 "...좋은 생각이야."

 

 셜록과 존은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그나마 벤치라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었다면 꼼짝없이 풀숲에 웅크리고 누워서 차가운 밤이슬을 맞으며 밤을 지샐 뻔 했다.
 말 없이 존을 외면하고 있던 셜록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리는 좀 어때?"
 
 고요한 밤공기 속에 그의 목소리가 유난히 선명했다. 존은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까보단 좀 덜하군요. 하지만 걷기에는 무리예요."

 

 왠지 자신이 셜록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해진 존이 말했다.

 

 "이 정도로 아픈 건 처음이라...미처 대비를 못했어요. 미안합니다."
 "괜찮아. 그런 거 가지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

 

 조급하게 셜록이 대답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또 침묵이 내려앉았다. 차분한 밤의 공기를 타고 찌르르 하는 벌레들의 울음소리만이 간간히 들렸다.
 존은 입을 열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아까 전의 오해를 해명하기도 해야했다.

 

 "셜록, 아까 전의 일은-"

 

 셜록은 또 조급하게 존의 말을 잘라먹었다.

 

 "괜찮아. 존이 나를 좋아하지 않은 것 뿐이지, 그것가지고 귀찮게 들러붙을 생각은 없어. 직장은...어쩔 수 없이 옮겨야 하겠지. 존이 불편할 테니까. 추천서는 확실히 써 줄테니 걱정마. 그리고-"
 "잠시만요."

 

 존이 약간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셜록은 미리 생각해둔 말을 외워서 하듯 늘어놓다가 깜짝 놀라 말을 멈추었다.

 

 "일단 내 말 좀 들어줄래요?"

 

 셜록은 존의 말에 따르기로 한 것인지 입을 다물었다. 존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말했다.

 

 "아까 그 키스는 술에 취해서 한 거예요. 아무 의미없는 키스라고요."
 "그런 것치고는 아주 격렬하던데."

 

 셜록이 부루퉁한 어조로 딴지를 걸었다. 존이 말했다.

 

 "말 끊지 말라고 했죠."

 

 셜록이 뭐라 항의하려는 기색이자 존이 선수를 쳤다.

 

 "지금까지 난 셜록, 당신이 하는 말을 충분할 정도로 많이 들어왔다고요. 이제는 내가 말할 차례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입 좀 닥치고 있어요!"

 

 존의 기세에 밀려 셜록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의 휴지 뒤에 존이 입을 열었다.

 

 "아까는 내가 당신 말을 듣지 않고 일찍 연회장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리어티 씨와 당신 형님하고 같이 술을 마시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솔직히...그 키스를 하게 된 건 당신 탓이예요!"

 

 갑자기 분개한 목소리를 내는 존. 그러나 존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거 압니까? 난 당신 수발을 들고 당신 따라서 사건 현장에 드나드느라 여자 친구에게 차였어요."
 "그게 내 탓이라는 거야?"
 "아니요."

 

 셜록의 말에 존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내 탓입니다. 왜냐면,-"

 

 망설이던 존이 마음을 다잡고 말을 이었다.

 

 "내가 내 여자친구보다 당신을 더 아끼게 되어버렸기 때문에...내 여자친구보다 당신에게 신경을 더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셜록은 왠지 모르게 웃고 싶었다. 기쁘다는 감정을 모르는 그였지만, 사건을 해결한 후의 성취감을 기쁨으로 종종 혼동하곤 하던 그였지만, 지금 존의 말을 들이며 이게 기쁨인가, 라는 확신이 들었다.
 셜록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존이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그녀와 헤어졌을 때에도 가슴이 아프진 않았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기보다는, 오랜 시간 같이 지내온 사람과 헤어진다는 느낌이 더 강했지요."

 

 존의 숨소리가 죄책감으로 한 순간 거칠어졌다. 셜록은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현명했기에, 여기서 잠자코 입을 다무는 편을 택했다. 존은 말을 이었다.

 

 "그거 압니까? 당신이 그 얼음장같은 얼굴을 하고 사건 현장을 돌아다니며 멍청한 경찰들을 우롱하고, 명석하고 총명한 눈으로 사건 현장을 훑고서 멋진 추리를 한바탕 늘어놓으면 그게 그렇게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어요. 전율이랄까...난생 처음 그런 걸 느꼈습니다."

 

 존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당신이 상냥해지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은 한없이 불친절해졌다가, 미소를 짓다가, 다시 조롱을 하고, 갑자기 파리에 데려오더니 날 사랑한대요. 그럼, 나는 얼씨구나 좋다,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까? 난 그 전까진 남자를 사랑한 적도 없고, 남자를 사랑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나한테 손만 내밀면 내가 넘어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내가 우습게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셜록은 차마 그 말을 부인할 수 없었다. 존이 자신에게 호의를 보였다는 이유로,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존이 자신의 고백을 당연히 승낙할 것이라고 생각한 자신은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것이니까. 존을 우습게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행동 징후만으로 그의 대답을 예측한 것 또한 잘못한 것이었다.
 한 순간 극단에 다다라 높아졌던 존의 목소리는 다음 문장에 이르러서 꺼질 듯이 낮아졌다.

 

 "난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앵무새처럼 그 말을 반복한다.

 

 "난...정말로 혼란스러웠다고요."

 

 다시금 둘 사이의 말이 끊길 찰나 존이 다시 원래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당신 형님이, 한 번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내가 당신을 정말로 좋아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자기한테 키스를 해보랍디다. 난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거듭 말했지만,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태였고...그래서-"

 

 그 순간, 셜록이 횡설수설하는 존의 턱을 손으로 끌어당겨, 부드럽게 입술을 겹쳤다. 원래 그렇게 되기로 예정된 수순이기라도 한 듯, 존은 아무런 저항 없이 셜록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가볍게 시작된 키스는 점점 서로를 집어삼킬 듯 격렬한 파랑처럼 이어지다가 썰물에 쓸려내려가듯 잔잔해졌다.
 키스를 마치고,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셜록이 말했다.

 

 "어때, 이제 혼란스럽지 않지?"

 

 어둠 속에서 눈꼬리를 휘고 웃는 셜록의 눈이 보였다. 존은 그 눈을 바라보았다.
 그 키스가 뭐길래, 더이상 어지러워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던 존의 머릿속의 고민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착각이 들 만큼 애정을 듬뿍 띠고 반짝이는 셜록의 눈, 호선을 그리는 그의 입꼬리.

 이거면 된 게 아닐까?
 존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마이크로프트 씨가 키스를 잘하긴 하는군요."

 

 뭐라고, 라고 길길이 날뛰며 당장이라도 마이크로프트를 죽이러 갈 기세의 셜록을 기습적으로 끌어안은 존이 셜록의 귓가에 대고 덧붙였다.

 

 "하지만 당신이 훨씬 더 좋아. 한 번 더 해줘."

 

 존의 대담한 요구에 셜록은 기꺼이, 라고 속삭인 후 존과 입맞추었다.
 한 밤의, 파리의 연인들의 숲에서, 두 연인의 정열적인 키스는 그칠 줄 몰랐다.

 

*

 

 셜록은 자신이 존의 대답을 속단한 것에 대해서 그에게 사과했다. 존은 기분좋게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셜록은 곧바로 존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털어놓았다. 폴록이라는 모리어티의 수하가 나불대는 것을 의심할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덫에 걸린 셜록은 존재하지도 않는 테드 볼드윈이라는 사람에게서 더글러스를 보호하려고 들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에 그들을 내버려두고 모리어티를 찾았다. 그러다가 존이 모리어티와 마이크로프트를 양 사이드에 끼고 폭음을 하다가 마이크로프트아 키스하는 존의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번에는 존이 사과했다. 존은 마이크로프트와 다신 그런 일로 엮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셜록은 앞으로 자기 앞에서만 술을 마시라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마시면 절대 안된다고 극구 당부했다. 대체 왜 그런 조건을 내거는 지는-술 취한 자기 모습이 어떤지 모르는-존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아침이 밝고, 그 둘은 사이좋게 런던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대절했다.

 

 런던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존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셜록."
 
 셜록이 왜, 라고 말했다.

 

 "어젯밤 말인데요, 내가 넘어진 건 어떻게 알고 바로 뒤돌아서 달려온 겁니까?"

 

 셜록은 험,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존, 커피 한 잔 마시고 갈까? 설탕 싫어하지?"

 

 서툴게 말을 돌리려는 그 모습에 존은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추궁했다.

 

 "내가 뒤에서 쫓아오나 안 쫓아오나 귀기울여 듣고 있었던 거 맞죠? 그래서 차도 안 타고 가고, 내가 넘어지니까 걱정이 되서 바로..."

 

 셜록은 안되겠다는 듯 머리를 빠르게 굴려 묘안을 짜냈다. 그리고 정말이지 완벽한, 묘안이 떠오른 그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습관적인 몸짓으로 코트 깃을 올리고, 말을 시작했다.

 

 "존."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 셜록에게 존이 말했다.

 

 "왜 갑자기 또 분위기 잡아요?"

 

 하도 셜록과 오래 부대끼다 보니 그의 습성을 다 간파한 존 때문에 기껏 멋있게 지은 무표정이 깨질 뻔 했지만 셜록은 그에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존, 나와 함께 삽시다."

 

 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셜록의 제안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박이며, 입을 열지 못했다. 셜록이 그를 채근하자, 겨우 입을 연 존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갑작스러워서,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셜록이 그런 존을 휘감아 안고는 속삭였다.

 

 "그러다가 또 마이크로프트에게 속아넘어가서 둘이 잠깐 동거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없잖-"

 

 약간 화가 나서 소리치려던 존의 입을 셜록은 자신의 입으로 막았다. 처음에는 말을 가로막힌 존의 저항이 거셌지만, 셜록이 성심성의껏 키스를 함에 따라 그 저항은 점차 누그러지고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키스 후에 가쁘게 숨을 헐떡이는 존에게 셜록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사랑해. 그러니 같이 살자."

 

 존은 홀린 듯 셜록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fin-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