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레존/마존/짐존/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AU


 그 사이 존을 꼬드겨 바 한 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앉힌 마이크로프트와 짐은 존을 다독이고 '진짜 남자'라고 치켜세워주며 셜록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도록 은근슬쩍 건드리며 동시에 엄청난 양의 술을 먹였다. 처음에 경계하던 존도 아까부터 줄곧 상냥하던 마이크로프트가 옆에 있다는 것에서 짐에 대한 경게심이 허물어진 것인지, 아니면 순전히 셜록에 대한 불평을 하기 위함인지 연신 독한 술을 들이키며 기분을 내고 있었다.
 짐은 헤네시를 얼음도 없이 한 잔 가득 따르며 이미 인사불성에 가까운 존에게 권하며 말했다.

 

 "셜록이랑 같이 다니면 답답하지 않아?"

 

 존은 약간 혀가 꼬인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답답하고...속이...터지는 것 뿐이 아니지. 가끔은 기가 막힌다니까. 도대체가, 같이 협력을 해도 모자랄 경찰들을 놀려먹어서 어쩌겠다는 거냐고. 나중에 그러다가 큰 코 다친다고 아무리 말해도 들어먹지도 않고...아주...그냥...내 속을 까맣게 태워놓는단 말야."

 

 화를 내다 말고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하는 존을 보며 존의 좌우에 앉은 짐과 마이크로프트, 두 남자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셜록 새끼 존나 부럽다.'
 '셜록 이놈 자식 복이 터졌네.'

 

 약간 흐트러진 금발은 산책길에 나선 골든 리트리버의 흔들리는 털처럼 햇살을 머금은 듯 따스한 빛깔이었고, 푸른 조명 아래에 있다고 해서 퇴색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눈물을 한 방울 매단 그 눈꼬리는 순진한 듯한 귀여움과 요염함을 동시에 풍기고 있어 뭐라 말 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엄밀히 따지면 존 왓슨은 30대 중후반의 아저씨에 불과했지만, 어쩜 이리도 보듬어주고 싶은 새끼 고양이처럼 연약하고, 품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걸 주워온건지...진짜 나도 애완동물이나 키워볼까.'

 

 아까 전 셜록을 도발하느라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지금 와서 그걸 진지하게 재고하기 시작한 짐은 존의 손등을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러면 셜록은 내버려두고, 나한테 와."
 "뭐?"
 "나한테 오면 실컷 귀여워해줄게. 지겨울 정도로. 어때?"

 

 끈적한 목소리로 존에게 가까이 다가서 유혹하는 짐을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말똥말똥 쳐다보던 존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 게이야?"

 

 직구를 던지는 존 때문에 헛기침을 한 번 한 짐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게이는 아니지만...당신 한정으로."

 

 짐의 말에 존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난 스트레이트란 말야."

 

 그 말에 낙담하던 짐은 이어지는 존의 웅얼거리는 푸념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게이는 질색이야. 게이따윈 되고 싶지 않다고. 제기랄...셜록 그 놈 때문에..."

 

 짐이 뭔가 심상치 않은 존의 기색에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마이크로프트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셜록을 좋아하나?"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끼어든 것치고는 위화감이 없는 그의 목소리에 존은 술에 취해 무거운 고개를 까딱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니야...제길...그딴 놈...좋아할 리가...난 스트레이트라고 말했잖아!"
 "그래. 존은 스트레이트지. 스트레이트고 말고."

 

 발끈하려던 존은 마이크로프트가 상냥하게 다독이는 것에 금세 수그러들어 다시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셜록 새끼 때문에 머리가 좆나 아프긴 한데...그건 좋아하는게 아니야. 아니라고. 그냥 머리가 아픈 것 뿐이니까. 두통약을 먹으면 괜찮아지겠지."

 

 정말로 심하게 취한 것인지 평소에는 자제하던 욕설이 간간히 튀어나와, 그들은 존의 입이 의외로 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어린애처럼 순진한 발상을 하는 것은 정말 귀여웠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 마이크로프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한 번 알아보자고. 단순한 두통인지 아닌지 말일세."

 

 존이 멍한 시선을 마이크로프트에게 돌리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안단 말야?"

 

 마이크로프트가 속삭였다.

 

 "간단해. 나에게 키스를 해보면 되지."

 

 존은 마이크로프트의 제안을 듣고 잠시 말이 없더니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런 씨발...너도 호모냐? 내 주변엔 왜 호모밖에 없는거야...제기랄..."

 

 또다시 욕을 뱉어내는 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것을 짐이 만류했다. 벌써 존이 돌아가서야, 이렇게 재미있게 돌아가는 상황이 제대로 무르익지도 않고 끝나버리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냐. 마이크로프트는, 자기가 셜록의 형이니까, 셜록 대신으로 한 번 시험해보라는 뜻이었지. 자기가 게이라는 건 아니라고. 그렇지 마이크로프트?"

 

 이 순간만큼은 일심동체 격으로 뜻이 통하는 마이크로프트와 짐이었다. 짐이 존을 말리는 동안 마이크로프트도 상식인의 목소리를 가장하여 말했다.

 

 "나는 절대로 게이가 아니라네. 그냥 자네가 너무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아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인데...그렇게 매정한 반응을 보이다니. 게다가 그런 차별적인 말을 하면 짐이 상처받잖나. 짐은 진짜로 게이란 말이야."
 "아니, 난 게이는 아니고 게이 흉내를 낸 것 뿐인데..."

 

 그러나 이미 존을 꼬신 시점부터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짐은 힘껏 항변했지만 이미 존과 마이크로프트에게 짐은 게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어쨌든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존을 꼬시기 시작했다. 물론 독한 술 한 잔을 더 건네면서.
 
 "머리 색깔이 다르긴 하지만, 나랑 셜록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얼굴도 꽤 갸름한 편이고, 키도 비슷하다고. 한 번쯤 시도해보는 편이 존 자네가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네."

 

 마이크로프트가 거듭 설득하고 짐이 옆에서 거들자 술에 떡이 되어 판단력을 상실한 존은 헤실 미소지으며 "그럴까아...?"라고 운을 떼었다. 마이크로프트와 짐이 그 미소에 넋을 잃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음은 물론이다.
 존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마이크로프트가 앉은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그의 뒷머리를 잡고 입을 맞추었다. 마이크로프트의 열린 입술 틈으로 술기운에 달아오른 혀가 거침없이 파고들어왔다. 그러나 존이 술에 어지간히 취한 탓인지 주인을 따라 술 취한 듯 입 안에서 비틀거리는 혀를 존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사이 마이크로프트가 행동을 개시했다.
 그의 혀는 부드럽게 존의 혀를 감고 말랑한 부분을 농락하며 서서히 무대를 존의 입 안으로 옮겨갔다. 알싸한 술 맛이 느껴지는 점막 안으로 진입하며 마이크로프트는 혀놀림을 좀더 적극적으로 바꾸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존의 혀를 그의 혀로 감싸고 존이 그것에 어쩔 줄 몰라하는 틈을 타 더욱 음란한 혀놀림을 구사하여 존에게 쾌감을 선사했다. 처음에 장난스럽게 마이크로프트의 뒷목을 감싸고 있더던 존의 손은 마이크로프트의 능란한 키스에 못이겨 힘을 잃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두 사람의 입가로 두 사람의 타액이 섞여 새어나왔다.

 

*

 

 존은 부드러운 무언가가 자신의 입 안을 휘젓는 느낌에 점차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쾌감 때문에 자신의 혀는 맥을 못 추고 상대가 선사하는 쾌감에 일방적으로 떨기만 했다. 이런 감각은 처음 겪어 보는 것이라 생소했지만 꽤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자신의 본능적인 육감을 일깨웠다.
 존은 힘겹게 눈을 뜨고, 자신을 강하게 옥죄는 상대를 밀쳐냈다. 구속은 강했지만 존이 거부하자 의외로 쉽게 그는 그 구속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마이크로프트...?"

 

 간신히 정신을 차린 존이 말했다. 믿겨지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잠시 아까 전의 일을 반추해 본 존의 입에서는 바로 쌍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씹...!"

 

 간신히 뒷말이 다 나오는 것은 억제했지만 존은 당장이라도 욕을 저 둘의 면전에 내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존의 주먹이 꽉 쥐어진 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본 마이크로프트는 졸지에 얻어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임 전가를 시도했다. 그는 존에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듯 양 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존, 먼저 키스한 건 자네야. 내가 설득하긴 했지만...그래도 확실히 알지 않았나?"

 

 그의 말이 맞았다. 전부 맞았다. 그의 말대로, 확실히 알아낸 것도 있었다.
 자신은 셜록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
 묘한 거부감에 밀쳐내기 전까지 자신은 키스의 느낌을 온전히 즐기기는 커녕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를 연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사람은 오직 셜록 홈즈, 그 성격 나쁘고 잘난 체는 오지게 하는 그 남자였다.

 

 "그래요. 하지만 방법이 정말 부적절했어요."

 

 어느새 정신을 말짱히 차린 존이 아까 전까지의 귀여움이라곤 온데간데없이 딱딱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두 사람은 아쉬웠지만, 어쩌랴, 존은 이미 임자가 있 몸인 것을.
 그렇게 세 사람이 어정쩡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무렵 짐이 존의 뒤쪽을 바라보고 입을 벌렸다.

 

 "어...?"

 

 예사롭지 않은 짐의 기색에 마이크로프트와 존 모두 짐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셜록이었다.
 살벌한 눈초리로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는 코트 자락을 휙 날리며 입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뒤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뒷모습은 너무나 쌀쌀맞아서 짐도, 마이크로프트도, 존도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

 

 존이 둘에겐 일별도 하지 않고 황급히 셜록을 쫓아가고, 남은 두 남자는 쓸쓸히 술잔을 기울였다.
 두 사람 모두 말이 없다가, 짐이 마이크로프트에게 슬쩍 말을 붙였다.

 

 "갑자기 쓸쓸해보이네, 마이크로프트."
 "새삼스럽게 위로하긴."

 

 존에게 하던 말투와는 정반대로 차갑기 그지없는 말투였지만 그런 말투에 더 익숙한 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오늘 밤은 내가 위로해줄까?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실연 기념으로."

 

 요염하기 그지없는 유혹의 말이었지만 마이크로프트는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누구한테 죽을 일 있냐?"
 "아, 진짜...소심하긴. 셰린포드가 뭐가 무섭다고 그러는 거야?"

 

 그렇다...짐 모리어티는 셰린포드의 애인이었다. 정말이지 충격과 공포의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셰린포드가 어떻게 짐을 꼬셨는지, 모리어티는 어떻게 그의 구애를 받아들였는지는 세간의 미스터리였으나 아무도 그 과정을 알고 싶어하는 이는 없었다. 알려고 들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 분명했으므로...
 더욱 문제인 것은 마이크로프트마저도 벌벌 떠는 셰린포드의 애인이라는 사람이 틈만 나면 바람을 피우려고 안달이 나 있다는 것이었다. 짐 본인의 말에 따르면-

 

 "우리 그이는 독점욕이 너무 심해."

 

 정말이지 민폐였다. 그가 바람을 피우면 짐은-침실에서-벌을 받긴 하지만-짐은 오히려 그걸 노리는 것 같았다-상대는 아작이 나질 않는가.
 마이크로프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너무 문란한 거야."

 

 짐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아까 그 둘, 어떻게 되려나."
 "무슨 상관이야.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지지고 볶겠지."
 "그렇겠지?"

 

 짐은 후훗 웃었고, 마이크로프트도 약간은 허탈한 기가 섞인 미소를 지었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