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레존/마존/짐존/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AU

 


 "좋아, 정식으로 소개를 하지. 나는 마이크로프트 홈즈로 자네 상사인 셜록 홈즈의 형이라네."
 "난 제임스 모리어티라고 해. 짐이라고 불러줘~"

 

 우아한 어조의 마이크로프트의 소개에 이어 경박한 어조의 짐의 인사가 이어졌다.
 이미 이 둘이 등장한 시점에서 셜록은 존더러 호텔방으로 돌아가라고 강력하게 권유하고 싶었지만, 연회는 이미 시작하여 음식이 서빙되기 시작한 후에야 셜록은 존을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돌려보냈다간 남들의 눈에도 거시기할 것이고, 잘못했다간 '지금은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의 괜한 관심을 끌 수도 있었기에 셜록은 자신이 존의 방어를 더욱 철저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식사가 시작되었지만 테이블에 앉은 인원의 절반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가 데려온 안시아라는 비서는 다이어트 중인 것인지 휴대폰만 연신 만지작거리며 휴대폰 액정에 거의 고개를 처박다시피 했고, 짐이 데려온 모런이라는 사람도 팔짱을 낀 채로 식탁 위에 험악한 분위기를 주도했다. 셜록이야 말할 것도 없이 음식따윈 즐기지 않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으니 알 만 했다. 음식에 손을 댄 사람은 마이크로프트와 짐과 존 뿐이었는데,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에게 '그러다 또 살찐다'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무척 상했는지 포크를 내려놓았다. 결과적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고 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이 테이블에서는 짐과 존, 두 사람뿐이었다. 짐이야 원래 자기 멋대로라 남들 분위기를 살펴가며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존은 극한 상황을 여러 번 거쳐본 사람으로서 멀쩡한 음식들이 손도 대지 않고 버려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런 불편한 분위기에서의 식사가 그다지 땡기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먹고 있는 중이었다.
 짐은 까나페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마이크로프트 별명 바꿔야겠다."

 

 자신에게 별명이 붙어있다는 것도 모르던 마이크로프트는 음식을 먹지 못해 불편한 심사로 짐을 쳐다보았다.

 

 "아이스맨(iceman)에서 브라더 콤플렉스(brother complex)로 말야."

 

 히죽거리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짓는 짐에게 마이크로프트가 고개를 돌렸다. 하긴 진지한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 그에게 무언가를 기대한 그가 잘못한 것이리라.
 고개를 돌린 그는 아예 짐을 무시하기로 하고 존에게 관심을 돌렸다.

 

 "존, 그새 잘 지냈나?"
 "아, 예...잘 지냈습니다."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의 친형이라는 것이 입증된 이상 딱히 그를 적대할 이유는 없었지만 존은 그의 음험한 태도와 지난 번 그에게 금전적인 이익을 약속하며 스파이 노릇을 제의한 것에 그다지 호감을 갖고있지는 않았다. 존이 떨떠름하게 대꾸하자 마이크로프트가 유한 말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전의 일 때문에 아직도 마음이 상해 있는 것 같군. 이해하네. 나 같아도 그럴 테니까 말이야."

 

 알긴 아는군요, 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지나친 도발은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전직 군인 존 왓슨은 별 말 없이 전채 요리를 입 안으로 우겨넣었다. 게다가 그 자신이 하는 말이니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영국 정보부 MI-5의 수장이라지 않는가. 존은 이 사람이 대체 뭐라고 하며 자신을 구슬릴 지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존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나긋한 목소리와 그에 못지 않게 부드러운 태도로 존에게 말했다.

 

 "하지만 나쁜 뜻은 아니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셜록은 특수한 범죄를 다루는 잡지의 편집장이자 그 자신이 탐정이기도 하지 않나. 그만큼 그의 주변에 위험한 사람이 꼬일 염려가 많지. 나는 어디까지나 그를 무척이나 염려하는 형제의 입장에서 자네를 시험해본 것 뿐이라네."

 

 존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자 마이크로프트가 미안한 듯 미소를 지으며 정정했다.

 

 "'시험한다'라는 표현이 자네에겐 거슬리겠지만...어쩌겠나. 대체할 만한 적절한 표현이 없는 걸 말일세. 어쨌거나 자네도 그만 나를 용서해주길 바라네. 자네가 앞으로 계속 셜록과 함께할 거라면 아마 나와도 얼굴을 많이 마주해야 할 텐데, 계속 불편한 사이로 남는 건 우리 모두에게 이롭지 않을 거야."
 "그 말씀 알아들었습니다."

 

 거듭된 마이크로프트의 회유에 존도 이만 숙이고 들어가기로 하고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둘의 화해를 기분나쁘게 여기는 사람은 의외로 셜록이었다. 그는 마이크로프트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표정이 굳어지더니 존이 마이크로프트가 내민 화해의 제스처를 수락하자 흥 하고 코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짐은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흥미롭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우여곡절 끝에 식사가 끝나고 테이블이 고용인들의 손에 의해 홀의 가장자리로 배치되면서 안은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위험한 느낌의 시퍼런 미드나잇 블루 빛깔의 불빛이 곳곳에 깔렸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고상한 분위기의 홀은 흡사 클럽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분위기가 반전되자 셜록은 호기심에 여기저기 눈여겨보고 있던 존에게 말했다.

 

 "존, 이제 호텔방으로 돌아가."
 "지금요?"
 "그래. 계속 남아있다간 더러운 꼴 많이 보게 될테니까. 여기 있는 사람 중의 절반은 겉으로는 고상한 척 하면서 이런 은밀한 모임에서만은 지저분한 본색을 드러내는 사람들이야."

 

 존은 셜록이 경고하는 것이며 갑자기 이렇게 홀의 분위기가 바뀐 것들이 뭐가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셜록의 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었으므로 그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입구 쪽으로 향했다. 존은 정말로 지금 나가도 되나 싶어서 연신 셜록이 서 있는 쪽을 뒤돌아보았지만 그는 홀에 가득한 수많은 인파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연회장을 나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의 팔목을 잡아챘다.

 

 "어디 가?"

 

 짐 모리어티였다. 싱긋 웃으며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는 주제에 존의 팔을 잡은 그 악력은 꽤나 셌다. 잡힌 손목에서 그의 손을 뿌리치려는 시도가 먹히지 않자 존은 약간 당황했다. 존이 당황한 것을 눈치챈 짐이 더욱 활짝 미소지으며 좀 더 세게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여기 마음대로 나갔다간 큰일 나."

 

 사실 그건 짐의 즉흥적인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 처음 와보는 존이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짐은 그 점을 노리고 존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진짜 재미있는 부분은 못 보고 가는 셈인데, 아쉽지 않겠어?"

 

 짐은 존의 눈빛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보고 좀더 본격적으로 꼬드기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셜록이 바쁜 모양인데 나랑 마이크로프트가 에스코트해줄게. 위험의 위 자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지켜줄 테니까."

 

*

 

 "폴록."

 

 셜록이 이름을 부르자 바에서 진토닉을 홀짝이고 있던 어깨가 구부정한 중키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홈즈!"

 

 그가 반갑게 셜록을 호명했다. 셜록은 그 남자가 뭐라 인삿말도 건네기 전에 다짜고짜 물었다.

 

 "모리어티는 지금 어디 갔나?"

 

 존을 먼저 보내긴 했으나 혹시라도 모리어티가 그의 뒤를 쫓아갔다면 셜록 홈즈의 노력도 허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셜록은 모리어티의 수하임과 동시에 셜록에게 호의적인 폴록을 닥달하여 그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다.
 그러나 폴록은 셜록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기 말만 늘어놓았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더글라스가 위험해."
 "더글라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떠오른 셜록이 말했다.

 

 "존 더글러스 말인가?"
 "그래. 사실 그의 원래 이름은 존 맥머도인데, 존 맥머도의 원래 이름은 버디 에드워즈라네. 그런데 존 맥긴티가-"

 마치 꼬리잡기 수수께끼처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고유명사에 짜증이 치솟은 셜록이 말했다.

 "제기랄, 무슨 존이 그렇게 많아. 하여튼 미국인들은 만만하면 존이란 이름을 붙인다니까. 그리고 더글라스라는 사람은 맥머도이자 에드워즈란 말이지? 뭐가 그리 복잡해?"
 "자꾸 말 끊지 말고 들어보란 말야. 어쨌든 맥긴티가 더글라스 때문에 작년에 미국에서 사형을 당했어."
 "텍사스에서 재판을 받았나보지?"

 

 셜록의 어이없는 유머감각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폴록은 잠시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셜록을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맥긴티의 부하인 테드 볼드윈이 이 연회장에 잠입했다고 해. 더글라스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셜록은 폴록의 말을 다 듣고도 멀뚱히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난 지금 모리어티가 어딨는지 알아야 한다니까."

 

 그 말마따라 매몰차게 돌아서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려는 셜록을 붙잡고 폴록이 말했다.

 

 "홈즈! 그동안 내가 도와준 신세를 이런 식으로 갚을 셈이야?"

 

 그동안 폴록이 사소한 정보 몇 가지를 모리어티의 눈을 피해 셜록에게 넘겨주어 수사를 도운 공로가 있긴 했다. 그러나 짐의 교활한 성미로 미루어 보아 그건 오히려 짐의 계략에 불과할 것이었다. 정도를 넘어 정보를 팔아넘기는 수하가 있다면 단번에 잘라버리려는.
 때문에 셜록이 귀를 후비며 들은 척도 하지 않자 폴록은 마지막 강수를 두었다.

 

 "존 더글라스는 벌스톤 영지의 주인이기도 자네 형님의 중요한 자금원이자 연락책이라고! 그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어? 제발 내 말 좀 알아듣게나!"
 "마이크로프트의 일이야 내 알 바 아니란 거 잘 알지 않아?"
 
 셜록의 반응에 폴록이 셜록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 형님 말고 다른 형님 말이야.'

 

 셜록은 그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싹 굳었다. 창백한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린 것을 보고 폴록이 말했다.

 

 "이제야 좀 신경을 쓰고 싶은 의욕이 나나 보지?"

 

 약간 조롱기가 섞인 말이었지만 셜록은 그에 일일이 대꾸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존 왓슨의 안전 문제가 급하긴 했지만 그의 큰형인 셰린포드가 연루된 일이라면 다른 건 다 제쳐놓고 먼저 다뤄야 하는 급선무였다.
 셰린포드 홈즈는 홈즈 가의 장남이었지만, 그의 친혈육인 마이크로프트와 셜록마저도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보기 힘들었고, 국제적으로도 암암리에 기밀시되는 이름이었다. 그의 무서움은 그가 발휘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없는 것처럼 취급되는 숨겨진 그의 존재, 그러나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감이 바로 그가 정말로 무서운 이유였다.
 이 모임에 셜록이 참석한 것도 셰린포드 때문이었다. 이건 셰린포드가 선의 편이나 악의 편 모두에게 자신의 파워를 상기시키기 위해 막후에서 연 회동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건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런던 바깥을 벗어나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셜록과 음흉한 뒷공작을 꾸미는 것 외에는 행동력이라곤 전혀 없는 마이크로프트도 이 쓸데없는 겉치레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주최한 이 회동에서 만약 그의 재산상이나 일신상에 뭔가 손해가 가해진다면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인력으로 차출될 사람은 마이크로프트와 셜록 홈즈 두 사람이었다. 손해를 본다는 것을 극도의 모욕이자 치욕이라고 간주하는 셰린포드에게, 가정하기조차 무섭지만 셰린포드와 막역한 사이인 것이 분명한 더글라스가 죽거나 다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존 왓슨의 안전 문제고 뭐고를 따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글라스는 어딨고 볼드윈은 어딨는데?"
 "볼드윈은 아무래도 변장을 단단히 하고 온 모양이야. 전혀 눈에 띄질 않아. 더글라스는 저쪽."

 

 셜록은 폴록이 가리킨 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모리어티한테 전해. 존 왓슨을 건드리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야."
 "존 왓슨? 존 왓슨은 또 누구야? 또 다른 존이라니...!"

 

 희극적으로 울부짖던 폴록은 벌써 저만치 멀어지는 셜록의 뒷모습을 보며 연극을 그만두고 한숨을 푹 쉬었다.

 

 "하여간...역시 단세포인 셜록보다는 모리어티 님이 한 수 위라니까. 어서 셜록을 잘 따돌렸다고 그분께 보고하러 가야겠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