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레존/마존/짐존/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AU


 그날 저녁, 존이 퇴근하려 하는데 도노반이 잠깐만, 하고 그를 불러세웠다.

 

 "네?"

 

 멈춰서서 도노반을 향해 의문의 눈빛을 보내는 존에게 도노반이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두꺼운 제본책을 건넸다.

 

 "자. 받아."

 

 얼떨결에 무겁디무거운 책을 받아든 존이 책과 도노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이게 뭐예요?"
 "그 책(The Book)이야."

 

 도노반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 달마다 발간되는 잡지의 모든 내용이 여기 다 들어있어. 말하자면 초고라고나 할까. 절대 잃어버리면 안되. 뭐 하나라도 빠뜨려서도 안되고."
 "아-하."
 "발간 일 주일 전에는 항상 편집장님께 가져가서 손을 보아야 해. 갖다드리면 편집장님이 보시고 고쳐야 할 부분이나 빼는 게 좋겠다 싶은 부분을 체크해서 주실 거야."

 

 한참 설명을 듣던 존이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걸 왜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도노반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 책을 무사히 편집장님의 집까지 배달하는 게 바로 선임 어시스턴트의 직무거든. 아직 존 씨는 선임이 아니지만, 조금만 있으면 그렇게 될 테니까 미리 편집장님의 집이 어딘지, 어디에 어떻게 안착시켜놓아야 하는지 알아놔야하지 않겠어?"

 

 그녀의 어조로 보건대 셜록이 그녀를 파리로 데려가는 대신 내건 조건에 넘어가긴 했지만 여전히 파리 행에 불참하게 된 데에는 불만이 있는 듯 싶었다. 그리고 셜록보다는 만만해보이는 존에게 그러한 불만을 해소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가 엉뚱한 데에다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둘째치고, '그 책'을 셜록의 집으로 가져가는 단순한 업무가 어째서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이 되는지-물론 퇴근 후의 잡무라 성가시다는 점은 있지만-이해할 수가 없었던 존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침 도노반은 셜록의 집이 런던 어느 구석에 붙어있는지 설명하려던 참이었다.

 

 "편집장님의 집은-"
 "안 말해주셔도 되요. 저 편집장님 집 어딘지 알아요."

 

 말을 끝맺지 못한 도노반이 입을 어정쩡하게 벌린 채로 잠깐 입을 뻐끔거리다가 말했다.

 

 "그래?"
 "베이커가 221B...아닌가요?"

 

 도노반이 심하게 놀라는 바람에 되려 놀란 존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노반이 존의 대답을 듣더니 물었다.

 

 "거기가 맞는데...어떻게 알았어?"

 

 존이 그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린다는 듯 깊은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번에 말이예요, 한밤중에 문자를 계속 보내시더라고요."

 

 도노반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뭐라고?"
 "오라고요. 처음엔 그냥 씹었는데, 위험할지도 몰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계속 문자가 오길래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주소 불러달라고 그러고 택시타서 갔죠."

 

 차츰 흥미가 생긴 도노반이 존의 뒷말을 재촉했다.

 

 "그랬더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열이 받는지 잔뜩 분개한 어조로 존이 말했다.

 

 "그랬더니 글쎄, 웬 핑크색 아이폰 하나를 주더니 그 전화기로 자기가 불러주는 내용을 문자로 보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자하기가 귀찮아서 저한테 문자를 했다는 거죠. 내참 어이가 없어서. 그냥 자기가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면 되는데 그게 귀찮아서 런던 반대편에 있는 제 잠을 깨운겁니다!"

 

 게다가 제가 문자를 보낸 사람은 알고보니, 연쇄살인범이더라고요! 라고 화를 내는 존을 쳐다보며 도노반은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존 왓슨이 말하는 셜록 홈즈가 내가 아는 셜록 홈즈랑 동일인물이 맞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린 도노반이 물었다.

 

 "그럼 집에 이미 들어가봤겠네?"
 "?...그런 셈이죠."

 

 도노반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다행이네. 들어가봤으니 안이 어떤 몰골인지는 벌써 알 테고, 내가 괜히 걱정했구나."
 "방 안이 왜요?"

 

 질문하는 존에게 도노반이 대답했다.

 

 "가봤으니 알 거 아냐. 온 방 안에 실험이랍시고 시체 쪼가리들 늘어놓고, 전자레인지에다가 사람 눈알을 돌려서 터뜨리질 않나, 실험쥐에다가 별 괴상망칙한 약품을 투여하기도 하고...그러고보니, 넌 뭘 봤는데?

 

 도노반이 늘어놓는 사례를 들으며 점차 표정이 일그러지던 존이 말했다.

 

 "제가 갔을 땐 그런 거 없었는데요?"

 

 도노반과 존은 서로 자기가 간 셜록 홈즈의 집이 과연 같은 베이커가의 221B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잠시 말이 없던 둘 중에 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좀 책들이 많이 쌓여있고...지저분하긴 했지만-그래서 제가 한소리하긴 했죠, 치우라고-, 그런...듣기만 해도 구역질나는 실험은 안했었는데..."

 

 갈 때마다 못 볼 꼴을 보고 나온 나는 대체 어딜 갔다온 거지? 앨리스의 토끼굴에라도 빠졌다 나온 건가? 라고 도노반은 생각했다. 설마하니, 이 편집장 놈이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고 자기가 갈 때마다 일부러 그런 일을 벌려놓은 거라면...
 방금 떠오른 가설에 힘을 실은 도노반의 마음 속에서 셜록 홈즈에 대한 적대감이 좀더 강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존과의 대화 이후 기분이 상당히 저조해진 도노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가, 존이 책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려고 하자, 지친 목소리로 존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앞으로 택시 탈 일 있으면 법인카드로 계산해."

 

 어쩐지 이를 앙다문 듯 발음이 으깨진 목소리였지만, 존은 도노반이 급격히 기분이 나빠진 이유에 대해 자신이 나서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 일에 대해 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물론 도노반의 충고대로 앞으로의 택시 요금은 전부 회사 카드로 결제하기로 마음먹은 존은 무겁고 두꺼운 책을 들고도 가벼운 마음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그래, 셜록이야 편집장이니까 모르겠지만, 런던의 택시비는 어시스턴트에 불과한 존이 감당하기에는 살벌한 수준이었으니까 말이다.

 

 잠시 동안의 짧은 기다림 끝에 셜록의 플랫에 도착한 존은 책을 단단히 품에 안은 채로 택시에서 내려 플랫의 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허드슨 부인이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주며 존을 반갑게 맞이했다.

 

 "왔구나! 어머, 그 책이구나. 이제 네가 배달하는 거니?"
 "네."

 

 오랜 시간 동안 셜록의 하숙집 여주인 생활을 해왔던 여인답게 허드슨 부인은 단번에 존이 들고 있는 제본책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아마 지금-치우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긴 한데, 일단 올라가봐. 기다리고 있을 거야."

 

 허드슨 부인의 말에서-특히 '치우느라'라는 부분에서-미심쩍인 기색이 느껴지긴 했으나 존은 별 것 아니겠지, 라고 치부하고 셜록의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셜록의 방으로 통하는 입구 앞에 선 존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셜록, 저예요."

 

 안에서는 뭔가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와 그릇이 깨지는 것 같이 달그락거리는 등 위험천만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대답이 없는 셜록에게 존이 문 밖에서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셜록?"
 "안돼, 기다려!"

 

 존의 말소리에 뒤이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 주인인 셜록이 그렇게 말하는 데야 기다릴 도리밖에 없었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을 벌리고 있는 것인지, 또는 어떤 일을 수습하고 있길래 저렇게 요란한 소리가 나는 것일까? 존의 궁금증은 2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점점 증폭되어갔다.
 존이 호기심을 참다 못해 한 번 더 셜록의 이름을 외치며 문을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셜록이 문을 열었다.

 

 "왔어, 존?"

 

 무슨 큰일이라도 마친 듯 휴우, 하고 숨을 몰아쉬는 셜록의 얼굴은 영문 모를 성취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문 가에서 셜록의 면전에 대고 아까 뭐하던거예요? 라고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존은 셜록의 안내에 따라 일단 방 안으로 따라들어가 그가 권하는 소파에 앉았다. 반대편 소파에 풀썩 앉은 셜록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오늘부터 존이 내 집에 올 거라고 도노반이 좀 더 일찍 알려줬으면 준비를 좀더 해놨을텐데."
 '준비?'

 

 셜록이 무슨 준비를 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존은 방 안을 슬며시 둘러보았다. 뭔가...확실히 휑한 느낌이었다. 저번에 거듭된 문자질에 못이겨 셜록의 플랫에 들렀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꽉 찬 느낌이었는데...그래, 서류뭉치와 책들이 대책없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싹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설마, 존이 방문한다고 해서 그 종이 무더기를 치운 건가? 어지럽히기는 즐겨해도 제 손으로 그 난장판을 정리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는 셜록이? 셜록과 약 4개월 간 손발을 맞춰온 존은 셜록이 주변 정리를 지독히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의 이 상황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존을 바라보며 나 잘했지?라는 듯 미소짓고 있는 셜록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애매한 미소만 짓고 있던 그때, 허드슨 부인이 문을 들어와 따스한 김을 올리는 차와 과자가 담긴 쟁반을 역시 말끔하게 치워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번 뿐이야, 셜록. 난 네 집주인이지 가정부가 아니란다."

 

 쟁반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허리를 핀 허드슨 부인은 방 안을 둘레둘레 보고는 말했다.

 

 "그러게 내가 진작에 치우라고 몇 번을 말했니? 조금만 손을 보니까 이렇게 깔끔하잖아. 어디 부엌도 치웠나 볼까..."

 

 부엌으로 향하는 허드슨 부인의 발걸음을 셜록이 급히 제지했다.

 

 "아니, 거긴 안돼요!"

 

 그러나 셜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부엌으로 통하는 미닫이문을 연 부인은 안의 광경을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오, 셜록!"

 

 존이 등을 돌려 허드슨 부인의 등 뒤로 보이는 부엌 안을 보았다. 안의 꼴은...

 

 "치운답시고 한참을 돌아다니더니 결국 이 안으로 쓰레기들을 죄다 몰아넣었구나!"

 

 허드슨 부인이 부엌 바닥에 서류들과 책을 몽땅 급히 쑤셔박아놓은 범인이 분명한 셜록을 꾸짖었다. 셜록은 '그러게 내가 열지 말랬잖아요!'라면서 뻔뻔스럽게 대꾸했다. 허드슨 부인의 열띤 잔소리를 막기 위해 셜록은 몸을 일으켜 허드슨 부인을 방 밖으로 몰아내고-정말이지 배은망덕한 행위였다-존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잠시 동안의 어색한 침묵 후에 존이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온다고 해서 저렇게...치운 시늉을 낸 건가요?"

 

 셜록의 입가가 움찔 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리라. 그는 최근의 말다툼과 무리한 사건 조사를 존에게 떠넘긴 것으로 인해 악화된 둘의 관계를 원상태로 회복시키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파리에 같이 갈 수행원으로 도노반이 아닌 자신을 선택한 것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였지만, 지금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도노반이 책을 갖다주러 올 때와는 다르게 방을 깨끗하게 보이게 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가 보이는 나름의 화해의 제스처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존은 살짝 미소지으며 그를 칭찬해주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잘했어요."

 

 그 말에 별달리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그의 입꼬리가 확연하게 올라갔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을 본 존은 그런 셜록이 어쩐지 귀여워보였다. 바로 다음 순간 존은 남자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화들짝 놀랐다.
 존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셜록."
 "왜? 벌써 가려고?"

 

 기껏 허드슨 부인께서 인심을 썼는데 차나 들고 가, 라고 존을 붙잡는 셜록에게 존이 민망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바로 가려던 건 아니고요."

 

 안심하는 셜록에게 존이 하고 싶던 질문을 했다.

 

 "파리에 수행원으로 가는 거 말이예요, 전 뭘 준비하면 되죠?"

 

 그러고보니, 그는 심지어 셜록과 동행한다는 파리 회동이 언제 열리는 지 날짜도 모르고 있었다. 셜록이 전혀 언질을 하지 않은 탓이다. 셜록은 항상 이것저것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너의 뇌세포가 펑펑 놀고 있는게 아깝다며 '관찰을 해, 관찰을! 눈은 뒀다 뭐에 쓰려고!'라고 핀잔주기 일쑤였기 때문에 어느새 그런 방식에 익숙해진 존은 미처 그 문제에 대해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셜록은 변화없는 여상한 목소리로 존의 질문에 대답했다.

 

 "준비할 건 없어. 보아하니 언제 가는지도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뭐 그건 날짜를 알려주지 않은 내 잘못이니 자넬 탓할 순 없지. 내일 오전 6시 20분에 출발이니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네?"

 

 순간적으로 셜록이 쏟아낸 말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존은 멍청하게 반문했다. 셜록은 존의 놀란 표정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말을 계속했다.

 

 "왜 그리 놀라? 그나저나 차가 식어가는데 차나 한 잔 해."

 

 그러나 전혀 차를 들 생각이 들지 않았던 존은 셜록에게 다시 말했다.

 

 "그런데, 전 아직 짐도 못 쌌고-"
 "일 주일 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짐 싸가지고 오늘에서야 동거하던 집에서 나와서 여관에 짐을 부려둔 거 다 알고 있어. 그래서 아까 전에 내가 가서 자네 물건들 다 여기로 가져왔으니까 짐 싸는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

 

 도대체 존이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은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셜록 앞에서는 입도 뻥긋 하지 않았던 사안이었는데 말이다. 경악의 눈초리로 셜록을 보는 존에게 셜록이 손을 내저으며 설명하기조차 귀찮다는 어조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자네 하는 짓을 보면 다 알 수 있다고. 며칠 전부터 얼이 빠져가지고선 옷매무새에 신경을 쓰는 정도도 줄었고, 자주 만지던 핸드폰도 만지지 않고, 면도도 신경써서 하지 않더군. 귀 밑 턱 근처에 면도 거품 자국이 그대로 남은 채로 한숨만 푹푹 쉬어대고 있는데 자네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걸 눈치 못 채는 사람이 멍청한 거 아닌가?"

 

 어찌 보면 무신경한 말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감흥 없이 여자친구와 헤어진 데에 대해 나름의 죄책감을 지니고 있던 존은 그 말에 오히려 자신이 그 일 때문에 마음이 아프긴 아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심이 되었다. 물론 여관에 맡겨놓은 짐을 본인도 아닌 주제에 어떻게 가져왔는지는 그 방법을 알아내기조차 무서웠으나 그 나름의 무뚝뚝한 배려에 존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찻잔을 들어 적당히 식은 차를 한 모금 들이키는 존에게 셜록이 말을 걸었다.

 

 "어쨋든,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존이 물었다.

 

 "혹시 여분의 침대가 있나요?-없으면 소파라도 괜찮습니다."

 

 존의 조심스런 물음에 셜록은 태연한 얼굴로 응수했다.

 

 "여분의 침대라니? 내 침대에서 자면 되지."

 

 존은 셜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존의 얼굴에는 오늘만 해도 두 번이나 경악의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다행히도 차를 마시던 중은 아니었던지라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차를 푹 하고 셜록에 얼굴에 뿜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역시 셜록과 함께 있으면 잠시도 평온할 틈이 없다니까-라는 느긋한 감상을 할 틈도 없이 존은 황급히 그 제안을 거절하기 위해 입을 벌렸으나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어버버 하는 존에게 셜록이 휴, 하고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농담이야."

 

 하여튼 자넨 매사에 너무 진지해서 탈일세, 라고 말하는 셜록에게 그건 농담을 농담같지 않게 말하는 당신 탓이라고요!라고 존은 속으로 항변하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셜록이 한 말 때문에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 탓일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에 존은 더이상 차를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잃어버리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저 우스갯소리일 뿐인 셜록의 의미없는 말에 순간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아직도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바쁜 자신에 대해 고찰하기는 잠시 미루기로 하고 말이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