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레존/마존/짐존/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AU


 존이 셜록의 갑작스런 고백에 놀라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셜록은 소파에 누워 얼굴을 돌린 채로 주절주절 말했다.

 

 "사실 이 회동이 일 주일 늦춰져서 망정이지 원래는 회동이 끝나고서 자네에게 고백...을 하려고 했었어. 고백...하고서 같이 이것저것 해보려고 미리 예약도 해놓고 데이트...코스도 다 짜놨단 말이야. 그런데 일정이 어그러져서 뭔가 앞뒤가 바뀌어버렸어."

 

 고백이니, 데이트니 하는 낯부끄러운 단어에서는 멈칫멈칫 하더니 마지막 말에는 약간 분노가 어린 것 같았다. 순조로운 고백 일정을 망가뜨린 누군가에 대한 원망인 것 같았다.
 셜록이 말을 마치고 나서, 얼떨결에 고백을 해버린 셜록도 느닷없이 동성의 남자로부터, 게다가 상사이기까지 한 사람으로부터 고백을 받아버린 존도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존은 설마 설마 했지만 실제로 그가 고백을 해 올지는 몰랐던지라 더욱 놀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존이 입을 열었다.

 

 "일단 거기 처박혀있지 말고 똑바로 날 보고 이야기해요."

 

 셜록이 마지못해 소파에서 일어났다. 존이 그런 그에게 물었다.

 

 "원래 회동 일정이 일 주일 전이었다고요?"
 
 셜록은 존의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존이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회동이 이미 끝난 후의 일정인텐데, 내가 당신의 고백을 거절하면 어쩔 작정으로 미리 예약같은 걸 해둔 겁니까? 설마 내가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셜록의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로 그럴 거라고 생각한 듯 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상식이란게 없는 사람이어도 그렇지 어떻게 남자가 같은 남자의 고백을 받아들여 줄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그만큼의 허술한 여지를 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자니 눈 앞이 캄캄해져 왔다.
 문제는 지금의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기분이 나쁜 부분은 자신이 셜록의 고백을 쉽게 받아들여 줄 거라고 생각했다는 점이었고, 고백을 받았다는 부분에서는 구역질이 난다던가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참 자신도 중증이구나, 생각하며 존이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셜록."

 

 셜록이 기대감에 찬 얼굴로 죄인처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고백을 승낙한다는 의미는 아니예요."

 

 셜록이 실망한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존이 달래듯 말했다.

 

 "생각해봐요. 이건 정말 갑작스럽다고요. 생각할 시간을 좀 줘야 하는게 도리잖아요."

 

 존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니까, 일단 이쪽에 집중하도록 하죠."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닌데...라고 셜록은 속으로 궁시렁거렸지만, 안 그래도 놀란 존을 이 이상으로 몰아붙이고는 싶지 않았으므로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대답은, 파리 여행이 끝나고 들려드리겠습니다."

 

 존의 말에 셜록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계획이 들킨 시점에서는 고백이고 뭐고 없이 부하 직원의 정조(?)를 노리고 접근한 변태 상사로 오인되어 고소를 하겠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명백히 여자친구도 있던 스트레이트에게 저런 뉘앙스의 말을 들은 것만 해도 반쯤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셜록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

 

 셜록은 존이 보기에도 만족스럽게 차려입고 차를 타고 회동이 열리는 건물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는 존도 셜록도 서로에게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으나 일단 회동에 도착한 이상 다른 이들에게 얕잡아보일만한 언행은 보이면 안되므로 그나마 대인배인 존이 먼저 말을 붙였다.

 

 "가시죠."
 
 셜록과 존은 회동이 열리는 연회장으로 향했다. 연회장 문 앞에 다다라 셜록이 줄곧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존."
 "네?"

 

 셜록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마 전에 봤던 사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너무 당황하진 마. 그래봤자 좋아하기만 할 테니까."

 

 상변태거든, 이라고 덧붙이는 셜록이었지만, 애초에 전에 봤던 사람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존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셜록의 말을 들었다. 셜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호텔로 가라고 하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바로 호텔방으로 가."
 "왜요?"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니까. 일단은 묻지 말고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존은 셜록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의 말에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좋아, 그럼 들어가 볼까."

 

 셜록은 양복 재킷의 매무새를 만지고 연회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호화의 극치였다. 일반적인 건물로 보이던 안에 이런 거대한 홀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치 못한 존은 입을 헤 벌리며 주변을 돌아보느라 바빴지만 셜록이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황급히 입을 다물고 똑바로 정면을 응시했다.

 

 "일단 정해진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다음으로 파티가 있을텐데..."

 

 설명하는 셜록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누군가가 요란하게 환영의 인사를 했다.

 

 "자기야(Honey)!"

 

 남자의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간드러지는 음성에 셜록과 존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존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오른 것과는 다르게 셜록의 얼굴에는 명백히 불쾌감이 떠올라있었다.

 

 "그렇게 부르지 마. 이 사기꾼같으니라고."

 

 나직하게 위협하듯 그르렁거리는 셜록의 무서운 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씬한 체구의 남자가 간들거리며 둘에게 다가왔다.

 

 "아이, 왜 그래.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라고? 사이랄 게 존재하는 사이였나? 네게 엿 먹은 것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군."

 

 이렇게까지 셜록에게서 적대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상대도 몇 없을 것이었다. 게다가 웬만해서는 비속어를 입에 담지 않는 셜록이 '엿 먹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셜록에게 못된 짓을 한 모양이었다. 존은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흑갈색의 머리칼,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밤색의 눈. 언뜻 보면 부드러운 인상의 동안이었지만 그 눈만큼은 다소 교활한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게다가 일부러 그런 말투를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상당히 게이같아 보이는 것이 현재 셜록에게 고백을 받은 것 때문에 성 정체성으로 고뇌하는 존에게는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은회색의 고급 수트를 차려입은 그는 존이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로 그와의 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셜록에게 연신 말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지 마. 사실 오늘은 너보다는 다른 사람이 보고 싶어서 부른 건데-그 귀요미는 어디에 놔두고 왔어?"

 

 귀요미라니, 존은 그 말에서 상당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시치미떼지 마. 웬 남자 하나를 애지중지한다는 거 다 들었어. 내가 프랑스로 망명온 몸이라지만 런던의 소식통에게 그런 정보 나부랭이 줏어먹는 거 나한텐 일도 아니란 거 잘 알잖아?"
 "망명이라니, 영국 정부에 의해 국가 전복죄 혐의로 추방당한 걸 고상하게도 말하시는군. 그리고 그 소식통이란 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헛소문을 잘못 전달한 모양이야. 루머가 따로없군 그래."

 

 애지중지한다, 라는 대목에서 그 '귀요미'라는 것이 존 왓슨 자신을 뜻한다는 것을 얼추 알아챈 존은 제발 이 많은 곳에서 아웃팅을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느님께 빌기 시작했다.
 셜록은 존의 바람대로 그 소문 자체를 부정했지만 셜록 옆에 있는 존의 모습을 어느새 캐치한 것인지, 이름 모를 경박한 남자는 존을 무례하게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 이 남자구나! 전직 군인티 물씬 나고 금발에 파란 눈. 딱 봐도 알겠다. 얼마나 이 남자를 애지중지하길래 이런 공적인 행사에까지 데려온 거야? 아하, 동행으로 데려온 건가?"
 "저는 홈즈 씨의 수행원이지 귀요미라거나 게이 남친 따위가 아닙니다."

 

 참다 못한 존이 입을 열었다. 수행원에 불과한 그가 누군지 모를 상대에게 험악하게 말하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것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일단 상대편에서 먼저 삿대질을 한 이상 막나가기로 한 존의 행동은 셜록에게는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보였다.
 문제는 화를 내며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는 그 경박한 남자는 그러기는 커녕 무척이나 흥미로워하며 오히려 존에게 더욱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이야, 정말 귀엽게 생겼다. 게다가 성깔까지. 나도 저런 거 하나 키우고 싶었는데! 부럽다, 부러워."

 

 하룻밤만 빌려주면 안되? 라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그 때문에 기껏 나서서 대꾸한 보람도 없이 난데없는 두통에 시달리는 존을 대신해 셜록이 존과 남자의 사이를 가로막고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네 자리로 돌아가. 곧 만찬이 시작할 시간이다."

 

 남자는 지금껏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던 것과는 다르게 깨끗이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그럼 이따가 봐, 라고 말하며 둘에게서 멀어졌다.

 

 잠시 후 둘은 남자가 한 이따가 보자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만찬에서는 회동의 주최자가 안배한 대로 지정 좌석으로 앉아야 했는데, 그 남자와 다른 한 사람, 그리고 셜록이 같은 테이블로 배정이 된 것이었다.

 

 "도대체가, 센스 따윈 개나 준 모양이군."

 

 회동의 주최자를 겨눈 셜록의 촌평이었다.


 존은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제에 이어 소화불량의 연속이겠구나, 라고 체념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을 또 하나 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존 왓슨."

 

 바로 자신의 핸드폰을 웅덩이에 빠뜨리는 연극을 하며 존에게 셜록의 정보를 팔라고 협박했던 남자였다. 그때와 다름없이 다갈색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기고 최고급 수제 양복을 차려입은 그는 자못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오랜만이죠?'라고 인사했다. 그 남자를 가리키며 존이 셜록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셜록, 이 사람이예요. 왜, 전에...셜록의 숙적이라는. 핸드폰."

 

 몇 개의 키워드를 말하자 셜록은 곧바로 존이 어떤 일을 말하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숙적'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던 셜록은 존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정확히 그를 지목할 수 있었다. 셜록은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그 남자에게 말했다.

 

 "듣자하니 존한테 수작을 부렸다면서?"

 

 왜인지 친근한 어조에 존이 눈을 굴리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는데 그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네가 워낙 엄마 속을 썩여야 말이지."
 '엄마?'
 "엄마? 내가 엄마 속을 썩인다고?"

 

 존이 점점 알아듣지 못할 방향으로 바뀌어가는 대화의 향방을 조금 더 알아듣기 쉬운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염치불구하고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잠깐. 당신 셜록의 숙적이라면서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셜록이 대신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사사건건 끼어들고 하숙집에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내 어시스턴트까지 납치하는 게 숙적이 할 행동이 아니면 뭐겠어?"

 

 남자는 상당히 억울하다는 어조로 항변했다.

 

 "그 정도의 일을 한다고 숙적이라고 매도하다니! 나는 영국 정보부의 수장이고 영국 정부를 대표하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어. 게다가 그렇게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는 너같은 3급 감시 대상에게는 당연히 부가되어야 할 정부의 방침이라고."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은 아까 전 게이같은 남자가 대신했다.

 

 "와, 마이크로프트, 동생 앞에선 체면 많이 구긴다더니 정말이었구나."
 
 셜록과 마이크로프트라고 불린 남자가 동시에 말했다.

 

 "닥쳐 모리어티."

 

 너무해, 라며 가짜로 울상을 짓는 남자를 모두가 무시하는 와중 존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숙적이라길래...범죄 단체의 수장이라거나 뭐 그럴 줄 알았는데..."

 

 마이크로프트라고 불리는 남자가 혀를 차며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고, 셜록은 말했다.

 

 "범죄 단체 수장은 저쪽."

 

 그리고 셜록이 범죄 단체의 수장이라며 가리킨 남자는 은회색 수트을 입은 게이같은 남자였다. 남자는 부정하지도 않고 손을 들어보이며 하하 웃음지었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