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레존/마존/짐존/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AU


 존은 셜록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편집장님이 정말 미친 건가?'

 

 안 그렇다면, 잡지계 인사들과의 회동이 열리기까지 무려 일 주일이나 남은 시점에서 파리 기행을 다닌답시고 존을 데리고 파리의 명소라고 소문난 곳을 여기저기 돌아다닐 리가 없었다. 일단 도노반으로부터 지급으로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회동 전 주에 열리는 식전 행사 따위는 아예 없을 뿐더러, 설사 그런 게 열린다고 해도 귀찮다며 다 빼먹고 회동 자체에만 잠깐 들렀다가 나올 인간이 바로 셜록 홈즈였다.
 게다가 셜록 홈즈는 기삿거리를 얻어낸답시고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된 유명 레스토랑 같은 곳에 존을 데리고 가서 막상 자기는 음식에 손도 안대고-그래서 여러 식당의 셰프들을 공연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불쌍하게도...-존이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봐서 존의 소화 작용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루 정도만 그랬었다면 존은 셜록이 파리에 올 때마다 그랬었나보다, 하고 연례 행사 정도로 넘어가겠지만, 이 행각들이 일 주일 내내 이어지다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셜록이 비효율이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미의 소유자라는 것을 잘 아는 존이 봤을 때는 자기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셜록의 껍데기만 뒤집어 쓴 다른 사람이 아닌가, 라고 의심하기에는 부족할 것이 없는 정황이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 아까 먹은 음식이 별로였나?"

 

 자기가 이상하게 비춰지고 있다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셜록 이 인간은 이런 소리나 지껄이고 있다.
 안면이 있건 없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같이 퉁명스럽게 대하는 셜록이 이런 식으로 배려심을 보이니 존에게는 오히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셜록의 비위를 거스르기라도 한 건가? 그래서 사과를 요구하는 신종 고문법이라도 생각해 낸건가, 싶었다. 존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쯤 셜록한테 사과의 말이라도 건네야 용서해 주려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 아까 먹은 립아이가 잘못된 거로군. 당장 항의하러 가야겠어."

 

 존은 타고 있는 벤츠의 운전수에게 당장 지시를 내려 아까 들렀던 음식점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리는 셜록을 말렸다.

 

 "그게 아니예요! 아까 먹은 고기에는 아무 문제 없다고요."

 

 사실 존은 아까 셜록과 함께 간 레스토랑에서 먹은 쥐꼬리만하고 핏물이 비치는 고기가 립아이인지도 몰랐다. 메뉴판은 불친절하게도 온통 프랑스어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프랑스어라고는 봉 쥬르, 쥬 뗌므 밖에 모르는 존이 립아이를 립아이인줄로 알고 시켰을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실, 그 고기는 매우 맛있었다. 양이 적다는 것만 제외하면, 만족스런 식사였다. 그러므로 애꿎은 식당 주방장이 식당 위생법 위반으로 고소당하기 전에 셜록이 날뛰는 것을 막는 도리밖에 없었다.
 존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는 셜록이 나중에 호텔에 가서 뒤끝 작렬하며 레스토랑에 전화하여 손을 쓸까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고기 정말 맛있었어요."

 

 존의 필사적인 말에 셜록이 레스토랑을 닥달하려는 것은 단념하고 다시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말했다.

 

 "식사가 맛있었다니 다행이군."

 

 핀트가 약간 엇나간 것 같지만 진정한 셜록의 분위기에 안도하던 존이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이제는 셜록으로부터 질문 공세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에피타이저는 어땠나? 후식은? 등등으로 이어지는 질문에 뭐 하나라도 삑사리가 났다간 당장 해당 레스토랑이 망할 기세였던지라 존은 열심히 맛있었어요, 정말입니다를 연발했다. 사실 셜록이 줄곧 쳐다보면서 존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었다면 더욱 즐겁게 음식을 즐길 수 있었겠지만, 존은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을 정도의 현명함은 갖추고 있었다.
 다행히 호텔에 도착할 즈음에 셜록의 질문 공세는 끝이 나서, 또다시 존이 곤란해질 만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존의 객실과 셜록의 객실은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다행히 둘의 객실이 안에 있는 별도의 문으로 연결되어있다거나 하는-존의 입장에서 봤을 때의-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 존과 셜록은 복도에서 멈추어 서서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 셜록의 부담스러운 시선 공격만 없었다면 요 며칠 간은 참 즐거운 날의 연속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외에 다른 나라로는 가 본 적이 없는 존에게 파리는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파리는 낭만을 상징하는 대표격인 도시가 아닌가. 물론 직무 차 온 것이라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무르다가 구경다운 파리 구경도 못하고 귀국하리라는 존의 예상과는 달리 이렇게나 호사스러운 일 주일을 보내게 된 것은 앞장서서 존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카드를 마구 긁어댄-셜록의 공이 컸다.
 존이 미소를 짓자 셜록은 멋쩍은 듯 고개를 살짝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런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딱히 당신만을 위해서 파리를 돌아다닌 건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사건을 위해서 한 거니까 너무 들떠하진 마."

 

 퉁명스러운 대답을 내뱉는 셜록이었지만, 존은 셜록이 공치사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별로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그럼, 내일 저녁 여덟 시에 찾아뵙겠습니다."

 

 회동의 시작 시간은 아홉시였고 회동이 열리는 장소도 그다지 먼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존이 셜록의 객실에 들를 때마다 소파에 누워서 빈둥대는 모습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라서 약간 불안해진 존은 임의로 일정을 앞당긴 것이었다. 게다가 도노반과 레스트레이드가 옷을 잘 입혀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것도 있으니-안 그러면 시트 한 장만 걸치고 나설지도 모른다고 레스트레이드가 말했지만, 농담인지 진담인지 존은 알 수가 없었다-제대로 챙겨입혀 보낼 예정이었다.
 
 "그래."

 

 짧게 대답한 셜록의 얼굴에 약간 미소가 비친 듯 보였지만, 존은 착각이겠지 싶어 그대로 자신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안으로 들어가 점퍼를 벗어던지고 편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존은 룸서비스로 맥주를 한 잔 시키고 나서 곰곰히 생각했다.
 그 생각이란 다름이 아니라, 셜록의 행동이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셜록 홈즈라는 사람은 항상 이성이 감성보다 앞서는 사람인지라 그의 행동에는 언제나 그에 선행하는 행동의 이유와 근거라는 것이 있었다. 존에게 열렬한 관심을 쏟는 것으로 보아 파리에 와서의 그의 행동의 기저에는 존에 대한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차 안에서는 그의 행동이 존 자신의 잘못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건 셜록에게 하도 타박을 당하다 보니 생긴 피해망상적인 생각일 것이었다. 게다가 사과를 바라는 사람이 왜 사과를 해야하는 사람에게 비싼 식사를 대접하고 그게 맛있는지 맛이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눈치를 본단 말인가. 또한 셜록이 기사로 실을 만한 소재를 찾는다며 돌아다니던 것은 전부 핑계에 불과하다는 건 조금만 더 생각해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셜록의 잡지는 미식가 잡지가 아니라, 엄연히 범죄 연감 잡지였으니까 말이다.
 존은 문득 아까 전 존에게 강압적인 어조로 음식이 맛있었냐고 물어보며 존의 반응을 열심히 살피던 셜록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공을 주워와 주인에게 내밀며 나 잘한 거 맞지?라고 눈을 또록또록 굴리는 강아지가 연상됬기 때문이다. 파리에 오기 전에 셜록의 플랫에 들렀을 때도 이런 정신나간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하는 자신도 제정신은 아닌가 보다 생각할 때 웨이터가 룸서비스를 가지고 왔다.
 마침 웨이터가 날라 온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다가 존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셜록이 날 좋아하는 거 아냐?'

 

 그 생각을 하자마자 순간적으로 입에 든 맥주를 뿜을 뻔했던 존은 사레가 들려 죽기 전에 맥주를 제대로 넘기고 생각을 계속했다.
 
 '솔직히 내가 여자였으면 이게 정답인데...'

 

 뭔가 생각을 계속할수록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에 존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파리로 출발하기 전날부터 시작된 지나칠 정도의 배려-물론 여관에 맡긴 짐을 멋대로 옮겨오는 것은 정상적인 배려의 범주에 들지는 않았지만, 런던의 비싼 숙박비를 감안했을 때 그것은 그 나름의 배려였다-, 그리고 어시스턴트 직을 시작하고 얼마 지난 후부터 상당히 친절해진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봤을 때 저 생각이 맞을 확률은 굉장히 높았다. 게다가 도노반과 레스트레이드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자신 이전의 어시스턴트들은 거의 3D 직종과 맞먹는 고생을 한 것과는 다르게 자신을 조심스럽게 굴린다(?)고 하지 않는가.

 

 '안돼 안돼! 난 스트레이트란 말이야!'

 

 발악성의 외침을 스스로에게 해보았지만, 어쩐지 셜록을 생각하면 할수록 두근거리는 자신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아까 전 셜록을 생각하며 귀여운 강아지를 떠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 존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보통은 이런 생각이 들면 소름이 끼치거나 해야 정상이지만, 존 자신의 누나가 레즈비언이기도 해서 그 쪽에는 별반 거리낌이 없어서 그런지, 이런 생각이 들어도 그다지 그를 멀리하고픈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셜록에게 수난을 많이 당한 그였지만, 최근 들어 그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가까워진 탓인지 '셜록이라면 나쁘지 않아' '셜록정도면 괜찮을 지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존은 멀쩡한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무래도 자신은 오늘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역시 쓸데없는 생각 말고 발 닦고 잠이나 자는 게 최고인 것 같았다.

 

*

 

 밤새 셜록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다 잠을 설쳐서인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존의 얼굴에는 상당히 피로가 어려있었다. 평소 생활 패턴을 규칙적으로 하고 살아온 만큼 그 리듬이 깨지자 상당한 피로가 역으로 존을 덮쳐온 것이다. 육체적인 피로(셜록때문에 사건 현장이며 식당이며 장소를 막론하고 끌려다닌 것)와 정신적인 피로(셜록때문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한 것)가 누적된 것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라 오후가 되어서도 존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걷히지 않았다. 하지만 티를 내면 셜록이 호텔의 지배인에게 매트리스에 대한 불평을 할 것이 분명했기에 존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셜록의 방 초인종을 울렸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안의 상황은 존이 예상했던 것과 한 치도 다름이 없었다. 셜록은 흐트러진 머리를 수습할 생각도 않고 하품을 쩍쩍해대고 있었다. 뭐, 정장은 커녕 가운도 벗지 않은 상태에서 머리 손질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었지만.
 존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자자, 셜록. 아직도 가운을 걸치고 있으면 어떡해요. 내가 일찍 오길 천만다행이네요."

 

 셜록은 존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했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잤군."

 

 저 귀신같은 인간이 또 알아채버렸다. 필사적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는 존의 노력은 깡그리 무시하고서. 존은 어차피 들켜버린 마당에 표정 관리를 하는게 무슨 소용이겠냐 싶어 미소를 지우곤 말했다.

 

 "그래요. 어제 이런저런 생각 하느라 못잤습니다. 그러니 어서 제대로 된 옷을 입고선 제 수고를 좀 덜어달라구요."

 

 존의 당찬 대꾸에 약간 놀란 셜록이었지만 거기서 바로 수긍하고 옷을 챙겨입으면 셜록 홈즈가 아니었다.

 

 "어디 한번 볼까. 존 왓슨의 생각 외로 협소한 인맥 가운데 존의 골머리를 아프게 할 사람이 누가 있을지를 말야. 일단 가장 가까운 가족인 해리엇 왓슨. 그러나 그녀에겐 파리로 간다는 말도 안했을 게 분명해. 아직까지는 그녀가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는 모양새를 이해할 만큼 마음이 풀리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그러면 친우인 스탬포드일까? 이런 거지같은 직장을 알선해줬다고 원망할 셈이었나? 하지만 그런 원망을 하려면 입사 초기에 했을테지. 지금 하기에는 자네도 지금 직장에 꽤 마음을 붙였고-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다행이지-굳이 국제전화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그에게 원망을 퍼부으려 전화할 이유는 없지. 그러면 전 여자친구? 하지만 자네는 사귀기 전과 사귈 때 만큼은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정도로 잘 해주다가도 막상 헤어지면 은근히 마음을 빨리 정리하는 습성이 있으니 헤어진 지 한 달이 다 지난 지금까지 그것때문에 머리가 아플 이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그러면 다음은 난데-"

 

 존이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을 짓자, 셜록이 그제서야 정말로 놀라서 물었다.

 

 "정말 나 때문인건가? 대체 왜?"

 

 존이 항변했다.

 

 "요 며칠 간 이상했잖습니까."
 "뭐가 말인가?"
 "파리 구경을 간답시고 저를 끌고 다니고-아니, 어시스턴트에 불과한 저에게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한 레스토랑의 음식을 사줄 때부터 이상했어요! 생각해보니 말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겁니까? 보통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가 된 곳에서 식사하려면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잖아요?"

 

 셜록이 존의 추궁에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존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설마 저에게 사주려고 예약을...?"

 

 궁지에 몰린 셜록은 가운을 몸에 둘둘 말아 소파에 몸을 던지고 웅크렸다. 명백히 대답을 회피하는 행동이었다.

 

 "정말로 그러신 거예요?"

 

 존이 조용히 묻자 셜록은 소파에 파묻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왜요?"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존은 기다렸다. 침묵을 이기지 못한 그가 곧이어 소리쳤다.

 

 "자네가 좋으니까!"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