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레존/마존/짐존/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AU


 "당신 뭐냐고?"

 

 존의 말투가 위협적으로 바뀌었다. 남자는 이런 위압적인 상황에서도 밀리지 않는 기세를 보이는 존을 자못 즐거운 듯 바라보더니 말했다.

 

 "셜록 홈즈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 하나죠."
 "셜록에게 관심이 있다고요? 당신은 그의 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당신도 알겠지만-그에게 친구가 많진 않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비웃듯이 피식 웃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셜록 홈즈가 가질 수 있는 친구-와 비슷한 것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죠."
 "그게 뭡니까?"
 "적."
 "적?"
 "그는 그렇게 생각하죠. 그에게 물어본다면...그는 아마 저를 최대의 숙적이라고 말할 겁니다."
 "그렇게 자칭하는 사람에게 제가 그의 사생활을 알려주어야 할 이유가 없을 텐데요."

 

 차갑게 말하는 존에게 그가 갑자기 표정을 진지하게 굳히고 말했다.

 

 "그건 내가 그를 걱정하기 때문이지요...-아주 많이."

 

 존이 급격히 변한 그의 표정에 입을 다문 사이 그가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대외적 관계 때문에 제 걱정을 드러내놓지 못합니다."

 

 존은 말했다.

 

 "됐습니다."
 "뭐라고요?"
 "그 제안 거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단호한 존의 말에 남자는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좋습니다."

 

 남자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파일은 가져가도 됩니다. 제-뭐랄까,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차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었다. 어느새 존이 근무하는 잡지사의 건물 앞에 도착한 것이다. 존이 내릴 채비를 하는데 남자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며 내밀고는 말했다.

 

 "이것도 가져가요."

 

 조그마한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는 존의 원래 휴대폰과 똑같은 기종의 핸드폰이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만남이 아주 잘 계획된 만남이라 이거군.
 존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남자에게 일별도 하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

 

 존이 그날 밤 브루스 파딩턴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자, 셜록은 그가 해낼 줄은 몰랐다는 듯한 눈빛을 하고는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긴 보고서였지만 빠르게 종이를 넘기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점퍼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휴대폰이 잡히는 것에 존은 문득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다시 손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캐치한 셜록은 존에게 말했다.

 

 "뭐가 문제지?"
 "네?"
 "주머니에 든 휴대폰 말이야."

 

 아...하고 존은 잠시 고민하다가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하기로 했다.

 

 "오늘 당신의 친구를 만났거든요."

 

 존의 말에 셜록은 굉장히 놀랍다는 표정으로 보고서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친구라고?"

 

 예상보다 큰 그의 반응에 존은 마저 털어놓았다.

 

 "적...이라고 하던데요."

 

 셜록은 그제야 안심하며(?) 되물었다.

 

 "오, 누군데?"

 

 존은 딴데를 응시하고 있던 고개를 돌려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신의 숙적이라고 하더군요."

 

 셜록이 존의 말을 듣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가 날 염탐하라고 돈을 제공했나?"

 

 셜록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행동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존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랬죠."
 "그 돈을 받기로 했나?"

 

 존은 그런 질문을 자기에게 해대는 셜록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요."

 

 셜록은 흐응, 하더니 말했다.

 

 "유감이네. 당신 월급도 적은데 그냥 받지 그랬어."

 

 존은 무의식적으로 웃음이 입가로 새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질문했다.

 

 "그는 누구죠?"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존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순순히 말했다.

 

 "자네가 여지껏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위험한 남자지. 지금은 문젯거리가 아니지만-참, 휴대폰 좀 줘봐."

 

 존이 휴대폰을 내밀자, 셜록은 그것을 들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 편집장실을 나서는 그의 뒤를 존은 영문도 모르고 쫓아갔다.


 급하게 걸음을 옮긴 그가 도착한 곳은 건물 지하에 있는 과학실이었다. 셜록이 문을 벌컥 열고는 소리쳤다.

 

 "몰리!"

 

*

 

 "역시 도청기와 마이크로 카메라가 장착되어있군."

 

 몰리의 도움으로 엑스레이 기기를 사용해 휴대폰 내부를 스캔한 셜록은 그럼 그렇지, 라는 어조로 중얼거렸고, 존은 아까의 남자에 대한 분노가 다시금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셜록은 휴대폰을 쉽게도 분해하더니 문제의 부속품들을 분리해내고 그에게 다시 건넸다.

 

 "아마 저기에 인식되는 정보가 곧바로 그에게 전달되도록 해놓았을 거야. 그런고로 아마 성능은 기성 휴대폰보다 훨씬 좋을걸. 이를테면, 와이파이, 그게 아마 다른 것들보다 잘 터질 걸세."

 

 존은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그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과학실을 나서서 함께 1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그 둘은 잠깐 동안 어색한 순간을 함께했다. 다행히도 셜록이 이번엔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수고했어."

 

 존의 고개가 그쪽으로 휙 돌아갔다. 셜록은 그동안 존이 한 일에 대해 입발린 공치사 한 번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칭찬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사흘도 되지 않아 마이크로프트가 직접 정보를 배달하게 만들다니,-어지간히 탐이 나나 보지."

 

 뒷말은 입 안에서 씹듯이 중얼거렸던 탓에 존에게 잘 들리진 않았지만, 어쨋든 존이 마이크로프트가 준 자료의 힘을 빌렸다는 것은 진작에 들통이 난 듯 싶었다. 존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셜록은 부속품을 손가락으로 궁굴리더니,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어, 라고 말하곤 존을 내버려둔 채 휭 하니 연구실을 나섰다. 존은 벙찐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몰리는 익숙하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셜록이 핸드폰을 분해한 잔해를 청소했다.

 

*

 

 우여곡절 끝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한 존은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라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최근 들어 존이 새로운 직장 때문에 바빠지면서 그가 본 사라의 모습은 잠자는 모습 아니면 자기 직전의 모습뿐이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사라에게 무관심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 존은 미안함을 느끼며 사라의 옆으로 가서 뺨에 키스를 하며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존의 키스를 마지못해 받아들이긴 했지만, 사라의 기분은 여전히 저조해보였다. 존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말을 걸었다.

 

 "사라, 아깐 미안해. 사건 관련 자료를 가져온 사람이 휴대폰을 날려버리는 바람에...뭐라고 했었어?"

 

 사라는 존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또 셜록 홈즈, 그 사람이 시킨 일 때문이겠지?"

 

 존은 사라가 하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기에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그래. 난 그의 어시스턴트니까."
 "아깐 그만둔다고 하더니?"
 "생각해보니까 지금 내 처지에 가릴 게 없잖아. 상사하고 트러블이 좀 있었지만, 지금은 해결됬고..."

 

 그 말을 듣고 잠시간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존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시 후 사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존...당신이랑 나랑 이렇게 마주보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지 벌써 한 달이 넘는 거 알아?"

 

 존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랬던가? 존은 알 수가 없었다. 사라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식으로 사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건 당신도 잘 알거야."

 

 존이 사라의 말에 다급히 말했다. 그러나 어쩐지 쓸데없는 발버둥이라는 생각이 스스로도 들었다.

 

 "사라, 내가 미안해. 앞으로 더 잘 할테니-"
 "아니, 존."

 

 사라가 존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우리 헤어져."

 

*

 

 사라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존 그 자신의 심정이 너무나도 무덤덤했다는 것이다. 왜일까? 너무도 흥미진진한 사건 사고의 세계에 있다보니 평온한 관계에 대한 마음이 어느새 식어버린 것일까? 존 자신도 자기자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저 그 순간 가장 먼저 생각이 난 것은, 셜록이 이를 알아채면 뭐라고 말할까,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 이후 셜록은 일 주일 간 본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셜록이 보이지 않음에 따라 외근도 하지 않게 된 존은 도노반의 업무를 분담하여 골머리를 썩게 되었다.
 어느 오후, Coffee break time에 도노반은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녀는 평소의 쌀쌀맞은 말투 대신 고양이처럼 상냥한 말투로 존에게 말을 걸었다.

 

 "존, 사내 공지사항 메일 읽었어?"
 "아니요? 그런 것도 있었어요?"

 

 도노반은 후훗, 하고 웃고는 말했다.

 

 "하긴 존 씨는 아직 수습이니까 읽어봤자 소용없긴 하겠다. 이번에 범죄 잡지 부문의 편집장들의 회동이 파리에서 열려. 그리고 편집장들은 각자 수행원을 한 명씩 대동하지."

 

 존이 시큰둥한 기색으로 오, 하고 말하자 도노반은 안되겠다는 듯 더욱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회동은 이름이 따로 붙여지진 않았지만 영국의 그리다이언 클럽과 같은 수준의 모임이지. 말이 편집장들의 모임이지 영국 각계의 고위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사교 행사거든. 거기에 수행원으로 뽑혀서 간다는 건 앞으로의 출세길은 보장되어있다는 거나 마찬가지지. 물론 수행원으로 뽑히려면 나 정도의,-"

 

 그녀는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성실성과 경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지."

 

 존은 영국에 그런 모임이 있다는 것도 몰랐으므로 도노반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매우 놀랐고 호기심이 생겼다. 잠시 눈을 반짝이던 존은 자신의 위치-수습 어시스턴트에 불과한-를 상기하고는 다시 어깨를 축 내려뜨렸다.

 

 "하긴 전 어차피 신입이니까요. 게다가 이 일 오래할 것도 아니고. 사실 사내 연애 때문에 전 직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해서 급하게 잡은 일자리거든요."

 

 존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뭐 그래봤자 이제 그녀와는 헤어졌지만..."

 

 존이 현재의 고충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것을 도노반은 듣고 있다가 말했다.

 

 "여기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런 수순을 거치더라고. 혹시 담배를 피우게 되면 말해."
 "왜요?"
 "승진 직전의 증상이거든."

 

 자신이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그녀는 새 담뱃곽을 열어 담배 한 개피를 꺼내고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잠시 담배를 피우던 도노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존씨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는 줄은 지금 처음 알았네. 뭐 파리 회동에 가고싶어하는 경쟁자가 더 늘어날 필요는 없는 거니까 나로선 다행이네."

 

 그녀는 다소 차갑게 말을 끝맺었다. 자신이 너무했다고 느낀 것인지 어정쩡하게 커피를 한 모금 호록 들이킨 그녀는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뭐 억지로 잡은 일자리라고는 해도 지금까지 버틴 건 그래도 잘 하고 있단 뜻이니까, 열심히 하라고. 언젠간 존 씨도 파리에 갈 날이 오지 않겠어?"

 

*

 

 그랬던 그녀가 셜록이 돌아온 며칠 후, 셜록이 있는 편집장실에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록 존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편집장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언성을 높이는 도노반을 셜록이 의자에 앉은 채 쓱 올려다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뭐긴 뭐예요! 파리 회동에 데려가실 수행원 문제죠!"

 

 존은 소리를 질러대는 도노반의 기세에 밀려 눈치를 보며 쪼그라들었다.
 문제의 파리 회동에 동행할 수행원이 바로 존 왓슨, 그 자신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선임인 절 제쳐놓고 수습에 신입에 말단에 불과한...!"

 

 마치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한다는 듯 더듬거리기까지 하는 그녀에게 셜록이 간단히 한 마디를 던졌다.

 

 "승진."

 

 셜록의 말을 들은 도노반이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잠시 셜록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범죄 부문 정식 에디터."

 

 셜록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도노반의 얼굴에 잠시 화색이 돌았으나 여기서 물러서기에는 파리 회동 수행원이라는 기회는 너무 큰 것이었기에 도노반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래도-"
 "월급 인상."

 

 도노반이 깜짝 놀라 입을 헤 벌린 채 서있자 셜록이 결정타를 날렸다.

 

 "10%."

 

 셜록은 재고의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 마지막으로 못박았다.

 

 "이상."

 

 들어올 때 공룡처럼 쿵쾅거리던 도노반의 걸음걸이가 나갈 때는 아주 점잖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바뀌어서 나가는 것을 본 존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Posted by 에스MK-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