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존/레존/마존/짐존/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AU

 

 그들의 대화를 훔쳐듣는 것이 글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셜록은 기분이 나쁘다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는 쿵쾅대는 발걸음으로 그들 가까이에 다가와 말했다.

 

 "레스트레이드, 일이 모자란가? 그래, 이렇게 노닥대는 것을 보니 확실히 그래보이는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셜록에게 레스트레이드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제스처를 하며 말했다.

 

 "좀 봐달라고, 셜록."

 

 장난스럼게 손을 싹싹 비비는 레스트레이드에게 셜록은 인상을 팍 썼다. 그리고 셜록은 코트 옆주머니에 쑤셔넣었던 종이조각 뭉치를 그에게 던지듯 건네며 말했다.

 

 "이거나 검토해."

 

 셜록이 건넨 구겨진 종잇조각을 펴서 안에 적힌 내용을 쓱 살펴본 레스트레이드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아...새 단서로군."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지."

 

 셜록이 뻐기는 태도로 말하며 코트 깃을 추켜세웠다. 의도하는 바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확실치 않았으나 셜록은 그가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을 때나 남들 앞에서 편집장으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려 할 때 종종 저렇게 코트깃을 턱까지 올려 여미곤 했다. 레스트레이드는 그가 잘난 척을 해대는 것을 신물이 날 정도 봐왔기 때문에 그가 코트깃을 추켜올리건 말건 그다지 신경쓰고 싶지 않았으므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잘했어, 셜록. 그리고 말인데, 직원들 겁이나 주면서 온 건물을 싸돌아다니지 말고 사무실에나 가서 좀 앉아있게."

 

 셜록은 레스트레이드가 그걸 알 줄은 몰랐는지 눈이 조금 커다래졌다. 자기가 놀랐다는 기색을 들키기 싫었던 그는 눈을 한 번 깜작여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자네같이 둔한 사람이 그걸 어찌 알았는지 모르겠군."
 "지금 내 핸드폰을 울리게 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레스트레이드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며 들어올린 핸드폰에는 문자메시지가 속속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내용은 하나같이 '맙소사, 편집장님이야!' 또는 '편집장 주의보!' 또는 '오늘 편집장 기분 안 좋은 듯, 다들 조심해!'라는 사내 통신망들의 발빠른 알림이었다. 셜록은 입술을 삐죽였고, 레스트레이드는 알 만 하다는 듯 고개를 연극적으로 절레절레 저었다.

 

 "어때, 회사 건물을 한 바퀴 돌며 사원들에게 차례로 겁을 주고 오니까 좀 마음이 풀리나?"
 "그렇다는 걸 부인할 수 없군."

 

 셜록은 전혀 마음이 풀리지 않은 심통맞은 어조로 말했다. 레스트레이드는 셜록의 반응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셜록은 레스트레이드가 의뭉한 표정으로 웃는 것을 싹 무시하며 존의 팔을 붙잡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레스트레이드가 존을 불렀다.

 

 "존!"

 

 레스트레이드의 부름에 존이 고개를 돌렸다. 사실 아직도 기분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 셜록에게 질질 끌려가기보다 레스트레이드의 곁으로 몸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셜록이 자신의 팔을 틀어쥔 손아귀의 힘이 여간 센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머리만 그쪽으로 돌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존과 눈이 마주치자 레스트레이드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수고해, 라고 말했다. 그러나 존의 눈에는 그 미소가 전혀 자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셜록의 등쌀에 시달릴 존에 대한 애도의 의미이리라. 존은 울상이 된 채로 에디팅 룸에서 반강제로 끌려나갔다.

 

*

 

 언제나 그렇듯이 셜록이 한 뭉치 수집해온 증거물들과 서류들을 분류하고 있는 도노반의 책상을 지나 셜록과 존이 편집장실로 들어섰다. 셜록은 존을 편집장실의 책상 앞에 세우고 자신은 평소에는 거의 내팽개치다시피하는 방치된 커다란 사장실용 가죽 의자에 앉아 다리를 날렵하게 꼰 채로 그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이건 마치 면접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한데?라고 존은 순간 생각했다. 그러나 찌르듯이 그를 쏘아보는 셜록의 기세에 그는 잡생각을 그만두고 자세를 가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아프간 귀환병이라는 자랑스런 경력은 어디다 팔아먹은 것인지 존은 셜록 앞에서만큼은 고양이 앞에 쥐, 뱀 앞의 토끼만큼 겁을 먹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존은 저도 모르게 선임 앞에 도열한 후임병들처럼 똑바른 군인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

 

 아직도 군인 시절의 버릇을 떨치지 못한 그 모습을 보는 셜록은 아침에 났던 화가 저도 모르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존은 사정을 모르니 자신이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도 모를 터다. 그런 이상에야 그에게 화를 내는 것은 공연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셜록은 어째서인지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침에 셜록은 전날부터 골몰하던 사건에 대한 실마리가 영 풀리지 않아 기분이 저조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존이 자신에게 비아냥대자 셜록은 저도 모르게 존에게 화풀이를 해버렸다. 그리고 셜록에게는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원인 제공인은 정말로 존이기도 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지지난 주에 끽연을 넘어서 폭연을 하는 셜록의 모습을 본 존은 셜록에게 '그러다가 건강 망쳐요'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셜록은 그 말을 듣고서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금연을 남몰래 시도하게 되었다. 약 일 주일 정도는-금연 선배인 레스트레이드가 추천해 준-니코틴 패치로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었으나 어쩐지 입이 심심한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셜록은 그러한 느낌이 금단 증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에 금단 증상은 극에 달해, 아무리 니코틴 패치의 갯수를 늘려도 도통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기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날밤을 샌 셜록의 신경은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셜록은 존의 말 한 마디에 금연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존 때문에 머리속이 정리가 안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고, 결국엔 가벼이 넘어갈 수 있는 존의 비아냥에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버린 것이다. 이것이 셜록이 존에게 쏘아붙인 일말의 해프닝의 경위였다.
 존에게 화를 낸 셜록은 사무실을 뛰쳐나가 온 런던을 쏘다니며 노숙자들을 달달 볶아 정보를 캐내고, 자기가 약삭빠른 축에 속한다고 자부하던 잡범들을 뒤에서 덮쳐 온갖 방법으로 갈구며 기분을 푸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기의 출현만으로도 빙하기라도 마주한 마냥 윗니와 아랫니를 달달 떨며 부딪치는 휘하의 부하 사원들을 괴롭히기로 마음먹고 건물의 1층부터 자신의 사무실인 편집장실과 레스트레이드가 근무하는 에디팅 룸이 있는 최상층까지 단 하나의 방도 빼놓지 않고 돌아다니며 사원들이 화들짝 놀라 갑자기 바쁜 척을 하거나 자기를 피해다니려고 애를 쓰는 군상을 보며 냉소를 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화가 풀렸다 싶어 이젠 존을 밝은 낯빛으로 마주할 수 있겠거니 싶어 편집장실로 향하던 셜록은 이제까지 간신히 억지로나마 좋게 만든 기분이 다시금 나빠지게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존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그를 은밀하게 노리는 레스트레이드와 노닥노닥거리며 정담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레스트레이드는 존의 어깨를 친밀한 손길로 도닥이며 존에게 뭐라 말하고 있었다. 입술의 움직임을 읽어내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내려 했으나 레스트레이드의 고개가 반쯤 돌아가 있어 뭐라 말하는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셜록이 눈에 불을 키고 둘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존은 잔뜩 기가 죽어 옅은 파란색의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레스트레이드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처량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셜록은 그가 그런 상태인 이유가 자신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존이 왜 저러지?'라는 생각을 하며 유리창 너머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때 레스트레이드가 존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셜록은 정도가 지나치게(?) 밀착적인(?!) 그의 스킨십에 화가 나 레스트레이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레스트레이드의 다정한 눈에는 애정의 표시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저 행동은 위로의 행동을 가장한 대시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존은 그의 행동에 담긴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마냥 좋아만 한다는 것이었다. 근심이 어려있었던 그의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떠올랐다는 사실을 보았을 때 레스트레이드의 위로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존이 레스트레이드의 스킨십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둘째치고, 셜록은 그 상황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셜록이 그를 노려보는 것을 알아챘는지 레스트레이드는 존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이보란 듯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셜록은 그의 얼굴에 떠오른 승리감을 보고 약이 올라 죽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는 들으란 듯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그도 철이 들겠지."
 '이 능구렁이 아저씨가 어디에 대고 지금 철이 드니 마니 떠들어대는거야!'

 

 셜록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에디팅 룸 문가에 발을 들여놓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럼. 그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네를 많이 아낀다네. 안 그런가, 셜록?"

 

 존이 무언가를 물어보고 있었고, 레스트레이드가 대답하며 셜록을 향해 눈짓을 했다. 레스트레이드가 말하는 '그'가 누구지? 오늘 하루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두뇌 회전을 한 결과 '그'가 자신이란 것을 추론해낸 셜록은 레스트레이드에게 그날 줏어온 단서 쪼가리를 던져주고 존을 데리고 에디팅 룸을 나섰다.

 

*

 

 편집장실 밖에서는 도노반과 한 떼의 사람들이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란 편집장실로 혼자 불려간-끌려갔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지만-존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원들의 무리였다.

 

 "어떻게 된 거래요?"
 "편집장님이 존을 잡아먹지나 않을런지 몰라!"
 "오늘 안 그래도 험악하시던데."

 

 하루 종일 사무실에 박혀 전송되는 자료를 정리한 죄밖에 없는 도노반은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이 짜증났으나 한편으로는 편집장이 무슨 이유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존을 편집장실에 데리고 들어가 콕 박혀서 나오지 않는지 궁금했기에 사람들의 소란을 참아주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속닥거림때문인지 편집장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문틈으로 들리기는 커녕 이런 광경을 셜록에게 들킬까봐 걱정되기 시작한 도노반은 검지를 입술에 대며 쉿 하는 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금세 그 의미를 알아채고 소리를 죽였다.

 

*

 

 한편 안에서는 셜록과 존이 묘한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지속되던 상황에 존의 몸을 굳기 직전이었고, 셜록의 눈치를 보며 그가 몰래 몸을 지탱하던 발을 왼발에서 오른발로 바꾸려는 순간 셜록이 입을 열었다.

 

 "에디팅 룸에서 뭘 하고 있었지, 존?"

 

 순간 휘청하고 자세가 흐트러질 뻔한 존은 간신히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고 대답을 해냈다.

 

 "그렉 씨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요?"

 

 셜록이 자신들이 하는 대화를 듣지 못한 거라고 생각한 존은 시치미를 떼기로 마음먹었다. 셜록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들의 대화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의심이 마음 한 구석에서 차오를 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 셜록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렉이 누구지?"

 

 존은 순간 편집장 자식이 미쳤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거친 말을 안으로 갈무리한 존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레스트레이드 씨를 말하는 건데요."

 

 셜록이 미심쩍은 듯 물었다.

 

 "암호명같은 게 아니고?"
 "레스트레이드 씨 이름-"

 

 순간 편집장실 바깥에서 왁 하고 웃음이 터졌다. 잠시뿐이었지만 편집장실 안에 있던 두 사람 모두 알아챌 정도로 큰 웃음이었다. 웃음소리는 금방 잦아들어 숨죽인 킥킥거림으로 바뀌었지만 셜록과 존 사이에 감도는 분위기는 냉각될 대로 냉각되어 존으로서는 도저히 돌이킬 수가 없었다.

 

 '젠장!'

 

 존은 속으로 외쳤다. 아주 크게.

 

Posted by 에스MK-2 :